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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5일 十五日 소사(素沙)의 아교(阿橋)에 이르니 물이 불어나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한참을 지체하다가 간신히 강을 건넌 뒤에 점심을 먹고, 화성(華城) 용주사(龍珠寺)에 이르러 묵었다. 至素沙 阿橋, 水漲不得渡。 移時遲滯, 艱辛濟江, 因爲中火, 至華城 龍珠寺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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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새벽에 출발하여 좌전(坐箭)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양지(陽地)36) 신주막(新酒幕)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용인(龍仁)37) 어후내에 이르러 묵었다. 100리를 갔다. 曉發至坐箭朝飯, 抵陽地新酒幕中火。 抵龍仁 어후내留宿。 行百里。 양지(陽地)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용인(龍仁) 지금의 용인시로, 한반도 및 경기도의 중심에 있으며, 동쪽은 이천시, 서쪽은 수원시와 화성시, 남쪽은 안성시·평택시, 북쪽은 성남시·광주시와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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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새벽에 출발하여 노령(蘆嶺)을 넘었다. 순창(淳昌) 읍내에 이르러 여막(旅幕)에 노복과 말을 남겨두고 화방재(畫舫齋)9)에 갔다. 지난 10일에 내훈(乃勳)이 이곳에 와서 기다리다가 우리 일행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로 문암리(門岩里)로 들어가 문암리(門岩里)로 찾아오라는 뜻을 벽에 써 놓고 갔다. 그래서 교촌(校村) 뒤 주점으로 가 점심을 먹고, 길을 재촉하여 간신히 담양(潭陽)의 문암리를 찾아갔더니, 내훈이 내행(內行)10)을 거느리고 먼저 새벽에 길을 떠났다고 하였다. 교촌(校村) 뒤 주점(酒店)으로 돌아오니 밤이 이미 깊었다. 그대로 머물렀다. ○曉發越蘆嶺, 抵淳昌邑內, 留奴馬於旅幕, 往畵舫齋, 則去初十日, 乃勳來待此處, 以吾行之不及, 還入門岩里, 而尋門岩里來到之意, 書壁而去, 故往校村後酒店中火。 促鞭艱尋潭陽 門岩里, 則乃勳率內行, 先曉發程云, 故還來校村後酒店, 則夜已深矣。 仍留。 화방재(畫舫齋) 순창 읍성 관아에 달린 건물이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1957년에 편찬한 순창군지에 전하고 있다. 여암 신경준의 《여암유고》 권4에 기록된 <화방재기>에, "1769년에 세운 화방재는 당시 순창의 명승으로 알려진 응향각 주변에 자리했다. 응향각은 주위에 대숲과 나무들이 둘러싸 그윽한 맛이 있었으나 넓게 트인 경치를 볼 수 없어 응향각 서쪽 남지(南池)와 시내 사이 긴 언덕에 새로 누각을 세워 화방재라 했다"라고 전하고 있다. 내행(內行) 내행은 원래 길을 나선 부녀자를 말하는데, 글의 흐름으로 볼 때 여기서는 내훈(乃勳)의 안식구를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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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신도(新都)를 둘러볼 생각으로 곧 아침을 먹고 고개 둘을 넘어 신도에 이르렀다. 대궐터를 둘러보니 기둥과 주춧돌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상세히 두루 구경하기도 전에 비가 쏟아졌다. 백암동(白巖洞) 앞 주막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한참 있다가 비가 조금 잦아들면서 갤 기미가 있는 듯하였으므로 비를 무릅쓰고 출발하였다. 개태(開泰) 객점에 못 미쳐 들에서 모내기하는 곳을 만나 모내기 밥을 얻어먹었다. 연산(連山) 고을 앞에 이르러 개태정(開泰鼎)54)을 구경하였다. 둘레는 5~6파(把) 정도이고, 깊이는 1장(丈 10척)쯤이었다. 구경을 다하고 나서 출발하였다. 중도에 소나기를 만나 의관이 흠뻑 젖어 몹시 괴로웠다. 간신히 대천(大川)을 건너 은진(恩津) 삼거리에 이르러 잠시 쉬고 나서, 저물녘에 시암(杮岩)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欲玩新都之意, 仍朝飯, 越二嶺, 抵新都。 翫大闕基址, 則列置柱礎石。 未詳周翫之際, 雨作。 入白巖洞前酒店避雨。 移時少選後。 似有開霽之望, 故冒雨發程。 未及開泰店, 野中逢移秧處, 得食秧飯。 抵連山邑前, 翫開泰鼎。 周可五六把、深可一丈。 翫後登程。 中路驟雨, 衣冠盡濕, 悶悶。 艱越大川, 抵恩津三巨里暫憩後, 暮抵杮岩留宿。 行七十里。 개태정(開泰鼎)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에 있는 '개태사 철확(鐵鑊)'을 말한다. 이 솥은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개국사찰로서 개태사를 창건하였을 때 주방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직경은 289㎝이고, 높이는 96㎝이며, 둘레는 91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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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일찍 출발하여 여산(礪山)55) 새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능측(陵側)56)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용산교(龍山橋)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객방(客房)에 빈대[蝎]가 많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에 일어나니 주인이 정주간에 자리를 깔아 주었다. 그래도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몹시 짜증이 났다. ○早發, 抵礪山新店朝飯。 抵陵側午飯。 抵龍山橋店留宿。 行七十里。 店房多蝎, 夜不秪睡。 夜起, 主人鋪席廚間。 仍不秪眠達曉, 可憤可憤。 여산(礪山)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이다. 능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익산 쌍릉으로 보인다. 마한(馬韓)의 무강왕 및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고, 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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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밥을 먹은 뒤 개간소로 갔다. 낮에 회동으로 가서 송 장성을 만나 전주 송민수의 서간을 전해 주었다. 저녁에 곽교(㰌橋)로 들어가 송 판서를 잠시 만나고 관정동으로 왔다. 저녁을 먹은 후 율지와 함께 정동으로 가서 유숙하였다. ○食後, 往刊所。 午間往晦洞, 見宋長城, 傳全州宋民洙書簡。 夕間入㰌橋宋判書暫見 而來冠井洞。 夕飯後, 與聿之往貞洞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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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새벽에 일어나 과천(果川)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강을 건너 청파(靑坡,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의 영대(永大) 집에 이르니 영대는 입번(入番)42)하였다. 그길로 나와 청파 도로변 주막에서 유숙하였다. 심형이 오한으로 몸을 떨며 크게 아팠다. 몹시 걱정되었다. ○曉發, 抵果川邑內朝飯。 越江抵靑坡永大家, 則永大入番, 仍出靑坡路邊酒幕留宿。 心泂寒戰大病。 悶悶。 입번(入番) 관리가 관청에 들어가 숙직하거나 근무하는 일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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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밥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그길로 순천의 좌수(座首) 박윤원(朴允源)을 보려고 읍으로 들어갔다. 향청(鄕廳)에 기별을 보내니, 나오겠다는 답이 왔으므로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출발하여 객사 동헌 밖에서 요기를 하였다. 광양(光陽)의 유정(楡亭)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食後發程。 仍見順天座首朴允源入邑。 通奇鄕廳, 則出來爲答, 故移時企待, 而終不來。 故移發, 客舍東軒外療飢。 抵光陽楡亭留宿。 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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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일찍 출발하여 실(實)2) 저자 주변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지만, 비를 무릅쓰고 출발하였다. 율동(栗洞) 마을 앞에 이르러, 비를 피하려고 한 행랑으로 들어가, 그 성명을 물으니 서영주(徐永周)라고 하였다. 여전히 비가 그치지 않아 종일 머물렀다. 잠을 자려고 하니 파리 떼가 극성이라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몹시 괴로웠다. 저녁 무렵 비가 좀 개어 출발하였다. 진창길에 무릎이 빠지고, 옷과 버선이 모두 젖어 몹시 짜증이 났다. 간신히 성부(成部) 장터 주막에 도착하였다. 비가 다시 시작되어 그대로 유숙하였다. 10리를 갔다. ○早發, 抵實市邊朝飯。 雨始, 冒雨發程。 至栗洞村前, 避雨次入一行廊。 問其姓名, 則徐永周也。 仍雨不止, 留終日。 而欲眠, 則蒼蠅之多侵, 不得就寢, 苦哉苦哉。 夕時稍霽, 故移發。 泥濘沒膝, 衣襪盡濕, 憤憤。 艱到成部場墟酒幕。 雨更作, 仍留宿。 行十里。 실(實) 원래 지명에서 한 글자가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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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일찍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능측(陵側)17)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여산(礪山)에 이르러 곧장 산소에 올라가 성묘를 하고, 산지기 집으로 내려와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早飯發程。 抵陵側中火 抵礪山, 直上山所省墓, 下來山直家留宿。 行六十里。 능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익산 쌍릉으로 보인다. 마한(馬韓)의 무강왕 및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고, 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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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아침 일찍 출발하여 연산(連山)20)의 관동(館洞)21) 앞에 이르러 노비와 말을 곧장 주막으로 보냈다. 길보(吉甫)는 일행과 관동의 김의현(金義鉉) 집으로 들어갔다. 그와 더불어 동행하겠다고 말하니 말이 없다고 일컫고, 또 구애되는 일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세마(貰馬, 세를 받고 빌려주는 말)를 타고 갈 생각으로 1냥을 내고 나와 주막에서 아침을 먹었다. 신도(新都)의 석보(石湺)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에 눈보라가 매서웠다. 앞으로 갈 길은 20여 리인데 날은 이미 저물었다. 저물녘에 밀목치(密木峙)22)를 넘는데, 돌길로 된 고개가 높고 험했다. 간신히 서원 밑에 이르니 밤이 벌써 삼경(三更)이었다. 길을 가는 도중에 당한 고초는 평생 처음 겪은 것이었다. ○早發, 抵連山館洞前, 奴馬直送酒幕。 吉甫與同行入館洞金義鉉家, 與之同行爲言, 則稱以無馬, 又有拘碍之事云。 故以騎來貰馬之意, 出給一兩錢, 出來酒幕朝飯。 抵新都石湺店中火發程。 中路風雪極寒。 前路二十餘里而日已暮矣。 暮越密木峙, 石路峙嶇。 艱抵院底, 則夜已三更矣。 中路困苦之辱, 平生初見矣。 연산(連山)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이다. 관동(館洞)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이다. 밀목치(密木峙)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의 학봉리와 계룡시 신도안면의 용동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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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丁文玉【璨壽】 之子志于學。前程歲月多。爲山由覆簣。達海在盈科。聖訓看愈味。人心放郞蹉。實效也要得。斯須莫謾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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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金翼卿【世輔】 長夏在山廬。忍飢讀古書。心期照水月。功利視雲虛。咬菜事能做。飯蔬樂有餘。須當堅此志。半道莫躕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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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別崔秀才【采佑】 山門白日靜。開卷坐松雲。惟爾不憚遠。來訪意良勤。顧此空疎物。臨行何所云。歸家勉孝悌。餘力則學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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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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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李无悶【喜冕】大明洞行 混沌一闢乾坤大。太陽亭午將過半。人於兩間惟至貴。天敍天秩萬古幹。此身俯仰優得所。一唱狂歌復三嘆。請君停酒聽我歌。我心忉忉百憂攢。吾輩幸生千載後。賴有經傳尊閣案。羲黃堯舜皇極建。孔孟程朱心法纘。間有邪說壞人心。先聖之道後聖捍。大明日月三百年。四海蒼生俱仰看。不幸洪水重爲災。神州陸沈無涯岸。瑪竇耶蘇何怪物。生於此世勢瀰漫。今人莫辨人獸界。奇技淫巧適貪玩。楊墨釋老猶歇後。氣數胡然又一亂。不必士師人皆誅。特立中途須我伴。昏夜持燭讀春秋。明晨擔耟治田畔。大冬凜凜寒無比。人能貞固事可幹。含冤忍痛相傳訣。世人如何摠云謾。石面煌煌大明字。摹出心緖非閑散。惟君莫禁風泉思。展發德音起此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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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元。憶重菴先生【甲午】 憶昔重菴子。斯文若有功。春秋扶大義。日月照精忠。斥和同吟澤。距邪配抑洪。九原如可作。此際哭無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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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秋上弦。大彦來。言所懷【甲午】 昊天監在下。何辜今之人。處處兵戈起。年年饑饉臻。瀛海那生意。玉林可托身。願君休告別。堅忍待明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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剝月望朝。書示吳禮中【庸在】丁瑩汝【玟壽】金直卿【在植】李祥元【思皥■甲午】 衆陰殆剝盡。碩果獨難存。年穀荐飢饉。兵戈卽蕩奔。大衣爲世諱。古籍與誰論。惟願僉同志。歸家莫出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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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律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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