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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눈과 추위가 크게 일어나 출입할 수 없어 종일 차동에 머물렀다. 雪寒感大作, 不得出入, 終日留車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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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크게 눈이 내렸다. 종기 치료 때문에 편치 않아서 경모궁(景慕宮) 조한(趙漢)의 막사에 와서 머물렀다. 진 주부(陳主簿)를 불러서 종일 얘기를 나누었다. 大雪。 以瘇氣治療之不安, 來留於景慕宮 趙漢之幕, 要來陳主簿, 終日談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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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동이 틀 무렵 길을 나서 성환(成歡)에 이르러 잠시 말에서 내려 요기를 하였다. 천안(天安) 읍내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는데, 김 객이 발병이 심하여 전혀 움직이지 못하니 걱정스럽다. 또 가랑비가 내리기도 하고 원터[院基]가 모조리 불에 탔다고18)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덕평(德坪)까지 30리를 가서 묵었다. 平明登程, 至成歡, 暫爲下馬療飢。 至天安邑內, 秣馬中火, 而金客足病大端, 專不運動, 可悶。 又細雨或下, 而院基盡入回祿云, 故不得已至德坪三十里留宿。 불에 탔다고 원문의 '회록(回祿)'은 오회(吳回)와 육종(陸終), 곧 전설상의 불의 신을 말한다. 옛날의 제왕 전욱(顓頊)의 손자와 그 아우 오회, 아들 육종이 뒤를 이어 화정(火正)이 되었는데, 세 사람 모두 직무에 충실하고 공명정대하여 화신(火神)으로 섬겼다. 회록은 오회와 육종을 줄인 말이므로 '회륙(回陸)'이라 해야 할 것이, '륙(陸)'과 '록(祿)'은 음이 서로 통하여 '회록'으로 관례화되었는데, 화재를 '회록지재(回祿之災)'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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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동이 틀 무렵 길을 나서 원터를 지나가는데 불과 두서너 집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불에 타버렸으니, 그 모습이 근심스럽고 가슴 아팠다. 인주원(仁周院)에 이르러 요기하고, 모란원(牧丹院)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금강(錦江)을 건너 경천(敬天)19)에서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平明登程, 過院基, 不過數三家僅免, 餘皆燒燼, 景色愁痛矣。 至仁周院療飢, 至牧丹院, 秣馬中火。 渡錦江至敬天留宿。 是日行百里。 경천(敬天)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경천역(敬天驛)이 있어 경천(敬天)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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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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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면교(面橋)의 용전(龍田)에 머물렀다. 이는 대개 삼정(森亭)의 이종(姨從)형님 형제와 함께 가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일부러 우회하여 기다리려는 생각에서였다. 留面橋 龍田, 盖以森亭姨兄主昆季, 約與同行, 故故爲逶迤留待之意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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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비가 갤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화옥(華玉)이 필시 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대로 천평에 머물렀다. 雨意不霽, 故意謂華玉必不發行。 因留泉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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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새벽에 출발하여 묘치(峙)를 넘어 아침을 먹고, 석곡(石谷)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무동정(舞童亭)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曉發踰峙朝飯, 抵石谷酒幕午飯。 抵舞童亭酒幕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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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회계 文會稧 송흠문 성안 경인 은진사람 청주 거주안동형 경통 정유 순흥사람 해주 거주김재봉 의지 계묘 광산사람 공주 거주홍기영 사춘 남양사람 연기 거주박치환 은문 을사 면천사람 회천 거주김재대 건지 무신 광산사람 공주 거주김이현 성서 무신 광산사람 공주 거주박재병 남중 무신 밀양사람 청주 거주임주례 성기 정사 상주사람 충주 거주김석현 성규 기미 광산사람 회천 거주성영석 원로 신축 창원사람 대흥 거주송재옥 사형 갑자 본관 여산 천안 거주정현석 군범 을묘 본관 광주 임천 거주안성흠 성태 병진 본관 순흥 옥천 거주고상의 유중 정미 본관 청주 음성 거주권중건 사극 임술 본관 안동 서울 거주금석로 영수 병진 본관 봉성 옥천 거주정재팔 순거 계해 본관 의성 용담 거주한경복 백원 갑신 본관 청주 회천 거주송수각 자신 본관 은진 회천 거주김방기 중경 정사 태인 거주박정일 윤겸 을미 본관 상주 광양 거주서택인 맹거 임자 본관 달성 대구 거주서영래 대여 경술 은진 거주송흠태 국언 계묘 태인 거주최광악 응오 정해 본관 전주 금구 거주송노전 백도 신해 본관 덕수 해주 거주최달민 인첨 정미 본관 전주 김제 거주송연영 국형 신해 본관 여산 임실 거주이주재 임신 본관 한산 해주 거주송석년 수이 무술 본관 여산 흥양 거주신재술 본관 평산 안동 거주 宋欽文 聖安 庚寅 恩津人 居淸州安東亨 敬通 丁酉 順興人 居海州金在鳳 儀之 癸卯 光山人 居公州洪沂泳 士春 南陽人 居燕歧朴致煥 誾文 乙巳 沔川人 居懷川金在大 健之 戊申 光山人 居公州金彛鉉 聖瑞 戊申 光山人 居公州朴載丙 南仲 戊申 密陽人 居淸州林周豊 聖基 丁巳 尙州人 居忠州金錫玄 聖圭 己未 光山人 居懷川成永錫 元老 辛丑 昌原人 居大興宋在玉 士衡 甲子 礪山人 居天安鄭玄錫 君範 乙卯 光州人 居林泉安聖欽 聖泰 丙辰 順興人 居沃川高尙義 由中 丁未 淸州人 居陰城權中建 士極 壬戌 安東人 居京琴錫老 永叟 丙辰 鳳城人 居沃川丁載八 舜擧 癸亥 義城人 居龍潭韓慶福 伯源 甲申 淸州人 居懷川宋秀覺 子臣 恩津人 居懷川金邦基 仲璟 丁巳 居泰仁朴楨一 允謙 乙未 尙州人 居光陽徐宅仁 孟居 壬子 達城人 居大邱徐榮來 大汝 庚戌 居恩津宋欽泰 國彦 癸卯 居泰人崔光岳 膺五 丁亥 全州人 居金溝宋魯傳 伯道 辛亥 德水人 居海州崔達旻 仁瞻 丁未 全州人 居金堤李周載 壬申 韓山人 居海州宋延英 國馨 辛亥 礪山人 居任實宋錫年 壽而 戊戌 礪山人 居興陽申在述 平山人 居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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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서원장51) 新安書院狀 전라도 유생 유학(幼學) 최관현(崔寬賢) 등이 삼가 목욕재계하고 재배 후에 대종백(大宗閣, 예조판서를 달리 일컫는 말) 합하(閤下)께 글을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임실현(任實縣) 신안사(新安祠)는 바로 주 부자(朱夫子)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제사를 지낸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향사(鄕祠)52)와 사액(賜額)53)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선후의 다름이 있지만, 현인을 높이 받들고 도를 사모하는 정성만은 같습니다. 이미 현인을 높이 받들고 도를 사모함은 조정의 고관(高官)과 사림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액(賜額)을 요청하는 문제는 일단 앞날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지만 숭봉(崇奉)하는 일의 체모와 거행하는 의절(儀節) 같은 경우는 원래 피차의 구별이 없습니다. 더구나 주부자(朱夫子)의 사우(祠宇)는 우리나라의 제현과 더욱 달라서 천성(千聖)의 적통(嫡統)이 이에 빛나고 만세의 사도(師道)가 매우 엄하니, 특히나 십분 더 공경을 다하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이번 신안서원의 사례(事例)는 전부터 함평(咸平)의 자양사(紫陽祠)54)와 대략 엇비슷하므로 제반 의문(儀文, 의례에 관한 법도)을 견주어 동일하게 하였습니다. 봄가을의 제수(祭需)는 이미 본도(本道)의 순영(巡營)에서 많은 선비들의 정문(呈文)55)으로 인하여 본손(本孫)에게 관문(關文)56)을 보내 신칙하였는데, 자양사(紫陽祠)의 예에 의거하여 관(官)에서 제물을 갖추어 보내고, 원생(院生, 서원의 생도)과 보노(保奴)57)의 무리도 조치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영읍(營邑)에서 정도(正道)를 지키는 성대한 뜻인데, 본원의 모양새가 조금 이루어져 규모와 제향 의례58)에 정성과 공경을 다하였으니, 삼가 사문(斯文)의 다행스러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다만 삼가 생각건대, 팔도의 사원(祠院)은 모두 예조 관할입니다. 그리고 예조에 《사원록(祠院錄)》이 있으니 이미 사액(賜額)하고 사액하지 않은 것을 막론하고 각각 부책(簿冊, 장부)이 있고, 그 중요한 도원(道院)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돌보고 보호하는 것이 각별하니, 대개 또한 우리나라가 유학을 중시하고 도를 숭상하는 상전(常典)을 우러러 본받았기 때문입니다.저희들은 이에 감히 우러러 호소하노니, 삼가 바라건대 공의(公議)를 굽어 살피시어 임실(任實)의 신안사(新安祠)를 본조(本曹)의 《사원록》에 실어 일의 체모를 중히 하고 사림을 빛내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임오년(1822, 순조22) 10월. 全羅道儒生幼學崔寬賢等, 謹齋沐再拜, 上書于大宗伯閤下。 伏以任實縣 新安祠, 卽朱夫子影幀奉安之所, 而俎豆之享之有年矣。 鄕祠與賜額, 有公私先後之別, 而其爲尊賢慕道之誠則一也。 旣有尊賢慕道, 則縉紳與士林亦一也。 是以請額一款, 不得不姑俟來頭, 而至若崇奉之事體, 擧行之儀節, 元無彼此之區別矣。 況朱夫子祠宇, 尤異於我東諸賢, 千聖之嫡統斯光, 萬世之師道至嚴, 尤當十分致敬, 不容疎忽處也。 今此新安事例, 自前與咸平紫陽祠, 略相髣髴, 故諸般儀文, 比而同之。 春秋祭需, 已自本道巡營, 因多士呈文, 關飭本孫, 依紫陽祠例, 自官備送, 而院生保奴之屬, 亦有所措置者, 是皆營邑衛道之盛意, 而院樣稍成, 規模享儀, 庶盡誠敬, 竊不勝斯文之幸。 第伏念八路祠院, 俱是春曹所管, 而春曹有《祠院錄》, 無論已賜額未賜額, 各有簿冊, 其重道院所重, 則顧護自別, 盖亦仰體我國家重儒崇道之常典也。 生等玆敢仰籲, 伏願俯察公議, 以任實新安祠, 載入於本曹《祠院錄》, 以重事面, 以光士林, 幸甚。壬午十月。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 1588년(선조21)에 한호겸(韓好謙)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제자가 신안사(新安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69년(현종10)에 중건하였으며, 1788년(정조1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송경원(宋慶元)·한필성(韓必聖)·한명유(韓鳴愈)·강백진(康伯珍)·송시태(宋時態)를 추가 배향(配享)하였다. 1819년(순조19)에는 함평의 자양서원(紫陽書院)에 안치된 주희(朱熹)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와 주벽(主壁)으로 봉안함과 동시에 '신안(新安)'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향사(鄕祠) 이름난 학자,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집을 세우고 제사지내는 사당(祠堂)을 말한다. 조선 중기에 학문의 권장을 위하여 지방에 서원과 정사(精舍)가 생겨나고 자기 조상들을 위하여 사우(祠宇)가 많이 건립될 때 생겨난 특징 있는 주민들의 사당이다. 사액(賜額) 임금이 사당(祠堂)이나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扁額)을 내리던 일이다. 자양사(紫陽祠) 전남 함평에 있었던 사당으로, 주희(朱熹)를 향사(享祀)한 사당이다. 1783년에는 송시열(宋時烈)의 영정도 봉안했었다. 정문(呈文) 백성이 관청에, 또는 하급 기관에서 상급 기관에 제출하는 문서를 말한다. 관문(關文) 원문의 '관칙(關飭)'은 관문(關文)으로,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에 보내는 공문(公文)이다. 감결(甘結), 예칙(禮飭)이라고도 한다. 보노(保奴) 조선 시대 병영이나 관아 또는 서원 등에 딸리어 잡역에 종사하던 하례(下隷)를 말한다. 제향의 의례 원문의 '향의(享儀)'는 제향(祭享) 후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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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八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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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눈이 내렸다. 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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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일찍 출발하여 고개 아래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전석치(磚石峙)를 넘어 절구 한 수를 읊었다.푸른 벼랑의 흰 바위 가장 높은 봉우리에(蒼崖白石最高峯)그대에게 묻노니 어떤 승려가 소나무를 심었는가(問爾何僧手植松)방성의 웅장한 형세를 굽어보니(俯瞰方城雄壯勢)범이 꿇어앉은 듯 용이 웅크린 듯하여라(況如蹲虎又盤龍)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전석치 봉우리 백보 오르고 또 오르니(百步登登磚石峯)보이는 건 면면이 이어지는 높고 낮은 소나무뿐(但看面面高低松)그대에게 청하노니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일랑 꾸지 말게(請君莫作還鄕夢)마음속에 경영한 구상대로5) 계룡으로 향하세나(意匠經營向鷄龍)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아침햇살 속에 천천히 걸어 저 언덕에 오르니(倦步朝陽陟彼岸)우뚝 솟은 오래된 바위 길고 짧은 소나무 있네(崢巆老石短長松)살펴보니 곤륜산 줄기임을 알겠거니(看來認是崐崘脈)굽이굽이마다 산의 정령 용호를 달리게 하네(屈曲精神走虎龍)자윤(子允)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힘겹게 지팡이 잡고 저 언덕에 오르니(强把鳩笻登彼岸)푸른 회화나무 그늘 가에 소나무도 푸르러라(綠槐陰畔又靑松)풍광은 길가는 사람 발길을 멈추게 하니(風光能使行人住)앉아서 뭇 산에 웅크린 용들을 바라보노라(坐見群山某某龍)오수(獒樹)에 이르러 요기하고 각각 길을 나섰다. 나는 국평(菊坪) 송기렴(宋基濂)의 집에 들어갔으나, 하서가 출타 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그 아들 송전(宋椣)만 만나보고 출발하였다. 야당(野塘)의 송필동(宋必東) 집에 들어가서 그 외아들 상(喪) 당한 것을 조문하였다. 또 송계천(宋啓天)을 조문한 다음 마을 앞 정자(亭子) 아래로 내려오니 하서가 마침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이 한사코 만류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머무르기로 하고, 주막(酒幕)으로 나와서 주점(酒店)에 두 벗을 머물게 한 다음, 율지와 야당으로 들어가 송연영(宋連英)의 집에 머물렀다. 오늘 밤은 선고(先考)의 기일(忌日)이다. 지난해에는 서울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기일에 제사를 지내지 못했었는데, 올해도 이와 같은 상황이니 슬픈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早發抵嶺下店朝飯, 越磚石峙, 吟一絶曰: "蒼崖白石最高峯, 問爾何僧手植松。 俯暇方城雄壯勢, 況如蹲虎又盤龍。" 聿之次曰: "百步登登磚石峯, 伹看面面高低松。 請君莫作還鄕夢, 意匠經營向鷄龍。" 汝玉次曰: "倦步朝陽陟彼岸, 崢巆老石短長松。 看來認是崐崘脈, 屈曲精神走虎龍。" 子允次曰: "强把鳩笻登彼岸, 綠槐陰畔又靑松。 風光能使行人住, 坐見群山某某龍。" 抵獒樹療飢, 各爲登程。 余則入菊坪 宋基濂家, 則夏瑞出他不見, 只見其子椣而發。 入野塘 宋必東家, 吊遭其獨子喪。 又吊宋啓天, 下來村前亭下, 則夏瑞適來, 仍與相話。 以主人之堅挽, 仍留爲計之, 出來酒幕, 留兩友於酒店, 與聿之入野塘, 留宋連英家。 今夜則先考忌日也, 而前年以京行之致, 不得將事於忌日, 今年又如此, 心懷之愴然, 不可言之。 마음속에 경영한 구상대로 원문의 '의장(意匠)'은 고안(考案)을 실제로 응용하는 일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경영하는 가운데 의장이 참담하다.[意匠慘淡經營中]"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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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밤에 내리던 비가 늦게야 맑아졌다. 오후에 시장 근처에 갔다가 왔는데, 문중(門中) 사람들이 비가 오는 탓에 오지 않아서 답답하였다. ○夜雨晩晴。 午後往市邊而來, 門中以雨戱之致, 不來悶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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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일찍 출발하여 모전등(茅田登)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나는 원동(院洞)에 들어가 잠시 이종엽(李宗燁) 어른을 만나 뵙고 출발하였다. 광천(廣川) 주막(酒幕)에 이르니 동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길을 나섰는데 가는 도중에 운자(韻字)를 부르며 여옥(汝玉)이 먼저 읊었다.여행길에 함께 나선 두 노인과 두 소년(二老行中兩少年 )앞으로 가야할 길 영주에서 한양까지라네(瀛洲前路漢陽邊)대지팡이 짚고 걷고 걸으며 모두 말이 없으니(行行竹杖渾無語)우리 무리 여러 사람인데 잠든 것만 같구나(吾黨諸人況若眠)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서울 길 나선 것이 몇 년 만이던가(洛行經營問何年)이제는 귀밑머리 가득히 백발이 내려앉았네(今來白髮滿鬢邊)지팡이 짚고 쇠한 다리로 간신히 걷노라니(扶笻懶脚步步艱)나그네 맘 아득한데 잠잘 겨를 어디 있으랴(客懷悠悠暇不眠)자윤(子允)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백발 늙은이와 청년이 동행하여(白首伴靑年)한강 가를 향하여 길을 떠났어라(路開漢水邊)마음속 말일랑 꺼리지 말아야지(莫諱心內說)흥취가 늦으면 오히려 잠을 재촉하리(興晩尙催眠)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청년에서 노인까지 행장을 꾸려(行裝老路自靑年)태양 아래 멀리 서울 바라보며 가네(日下長安望眼邊)길동무 세 사람 모두 나의 벗이라(作伴三人皆我益)청아한 말 아끼지 않아 졸다 깨었네(淸談不惜警昏眠)저녁에 대초정(大抄亭)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早發抵茅田登療飢, 余則入院洞, 暫見李丈 宗燁而發, 至廣川酒幕, 則同行留待矣。 暫憩後登程, 路中呼韻, 而汝玉先吟曰: "二老行中兩少年, 瀛洲前路漢陽邊。 行行竹杖渾無語, 吾黨諸人況若眠。" 聿之次曰: "洛行經營問何年, 今來白髮滿鬢邊。 扶笻懶脚步步艱, 客懷悠悠暇不眠。" 子允次曰: "白首伴靑年, 路開漢水邊。 莫諱心內說, 興晩尙催眠。" 余次曰: "行裝老路自靑年, 日下長安望眼邊。 作伴三人皆我益, 淸談不惜警昏眠。" 暮抵大抄亭留宿。 行六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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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아침을 먹은 뒤에 병든 몸을 부축하여 말에 올라 창동(倉洞)에 가서 승지(承旨) 박기정(朴基正)을 만나 관교(官敎)를 써 준 뜻과 그 밖에 연시(延諡)하는 모든 절차에 대해 늦게나마 감사를 드렸다. 한참 말을 주고받고는 이어서 주동(注洞)에 가서 판인(板印)하는 일을 보았다. 종일토록 얘기를 나누다가 요기를 하고 나왔는데, 정신과 기운이 쇠약해져 인사불성이 되었다가 초저녁에야 진정되었다. 食後扶病上馬, 往倉洞見朴承旨 基正, 追謝書給官敎之意及他延諡凡節。 移時酬酢, 因往注洞見板印之役。 終日談話, 療飢後出來, 神氣泹喪, 不省人事, 初昏鎭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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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바람이 심하게 불고 눈이 많이 내려서 종각(鍾閣)의 큰 길에도 행인(行人)이 전혀 없으니 시정(市井)에서 장을 열지 못하였다. 마침내 근래 없던 큰 추위가 닥쳤다. 風雪大作, 至於鍾閣大道, 全無行人, 市井不得開市。 遂爲挽近所無之大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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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어제보다는 날이 조금 풀렸는데 아직도 몹시 추웠다. 稍解於昨日, 而猶爲極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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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아침을 먹기 전에 내 생일이라고 하여 내간(內間, 안채)에서 술과 안주를 갖추어 대접하니 매우 감격스러웠다. 저물녘에 근동(芹洞)에 가서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왔다. 朝前謂我晬日, 自內間具酒饌以饋之, 伏感伏感。 晩後往芹洞, 飽喫酒肉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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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길을 나서 벌교(筏橋)에 이르러 요기하고, 미태정(米太亭)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發程至筏橋療飢, 抵米太亭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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