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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섰다. 과역(過驛)에 이르러서 점심을 먹고 왔다. 早飯後登程, 至過驛中火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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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장차 화옥(華玉)을 만나기 위해 성균관에 들어가 곽교(廓橋)에 이르렀다. 화옥도 우리를 보러 왔기에 경득(景得)의 집에 들어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將見華玉次入館行, 至廓橋, 則華玉亦爲見我而來。 因入景得家, 暫時相話而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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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청파(靑坡)에 가서 흥양(興陽)의 소식을 묻고자 하였으나 왕래하는 사람이 없어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호서와 영남에 독감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사망자가 서울만큼 심하지는 않다고 하였다. 권 서방(權書房)이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대접하였다. 往靑坡, 欲問興陽消息, 而無往來人, 不得聞知, 而傳聞自湖中嶺南, 毒感大熾, 而死亡不如京中之甚云。 權書房具酒肴而饋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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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입관(入館)하는 길에 예조(禮曹)에 들렀다가 안일득(安一得)을 만났더니 춘행(春幸, 봄철 원행)이 필요 없을 듯하다고 하였다. 지난겨울의 본 계책에서 상언(上言) 한 장을 올리지 못한 것과 크게 어긋나니, 한탄한들 어찌하겠는가. 반재(泮齋, 성균관 별칭)에 들어가니 화옥(華玉)이 마침 나를 기다리며 홀로 앉아 있었다. 이에 함께 머물며 밤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入館之路, 歷入禮曹見安一得, 則春幸似不必云。 經冬本計, 大違於不呈一丈上言, 恨歎奈何? 入泮齋, 華玉方待我獨坐矣。 因與同留夜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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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건(健)·순(順) 두 형, 경욱(景旭)의 형제들과 등고치(登高峙)에 올라가 종일토록 화류(花柳)를 구경하며 회포를 풀었다. 조카 희(希)의 병이 끝내 쾌차되지 않았으니 고민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저녁에 술에 취해 돌아왔다. 與健、順兩兄及景旭昆季, 上登高峙, 終日花柳暢懷, 而希侄之病, 終不快差, 悶悶不可言。 夕間乘醉而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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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아침 전에 윤오(允五)와 계천(啓天)이 찾아와서 관등(觀燈) 뒤에 곧바로 길을 떠나자고 약속하고서 갔다. 아침을 먹은 뒤에 건(健)·순(順), 경욱(景旭) 등 여러 벗들과 경복궁(景福宮)에 가서 경회루(慶會樓)의 옛터와 어탑(御塌)의 터를 두루 살펴보았다. 담장이 부서지고 주춧돌이 파손되어 몹시도 가슴 아프니, 우리 동방의 백성들이 어찌 남쪽 오랑캐에게 원수 갚기를 꺼려서야 되겠는가. 저녁에 왔다. 朝前允五及啓天來見, 約以觀燈後卽爲發程之意而去。 食後與健、順及景旭諸友, 往景福宮, 周觀慶會樓舊址及御塌基址。 頹垣敗礎, 極其傷感, 吾東君民, 豈可忌讐於南寇哉? 乘夕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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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일찍 출발하였다. 노자(路資)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부내(府內) 영주인(營主人) 집에 들러 변통할 요량으로 주인집에 들어갔으나 주인이 부재중이라서 곧바로 길을 나섰다. 신외(新隈)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 임실(任實)의 방동(方洞) 송연규(宋延奎) 집에 가서 묵었다. 80리를 갔다. 주인은 돈학공(遯壑公)50)의 자손이다. 早發。 以路資之不足, 入府內營主人家, 辨通意專, 入主人家, 則主人不在, 故卽爲發程抵新隈中火, 卽到任實 房洞 宋延奎家留宿。 行八十里。 主人則遯壑公子孫也。 돈학공(遯壑公) 송경원(宋慶元, 1419∼1510)으로,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돈학이다. 김종직·남효온 등과 교유하였다. 1455년 음보로 전라도사에 임명되었다. 1457년(세조3) 단종이 영월에 유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종형 송간(宋侃)과 함께 영월로 달려가 문밖에서 복명하고 돌아왔다. 단종이 사사되자 송간과 함께 계룡산으로 들어가 2년간 복상하였다. 그 뒤 출세를 단념하고 임실 백이산(伯夷山)에 은거하고,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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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아침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서 대곡(大谷)의 송낙철(宋樂喆)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이어 야당(野塘)의 송규천(宋奎天) 집에 이르니 주인은 부재중이고, 그의 일가 노인인 필동(必東)만 있었다. 거기서 묵었다. 30리를 갔다. 食後發程, 抵大谷 宋樂喆家中火。 仍抵野塘 宋奎天家, 則主人不在, 只有其一家老人必東。 仍爲留宿。 行三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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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일찍 일어나 동향(同鄕)의 여러 친구들과 작별하였다. 올 때 동행했던 이들은 모두 내려갔지만 나는 예조에 소장 올리는 일 때문에 함께 가지 못하였으니 마음이 실로 난감하였다. 오늘이 비록 삼일제(三日製)이나 돈 문제가 판가름 나지 않아서 과장에 출입하는 것이 한탄스럽다. 급히 재동(齋洞)18)으로 갔더니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 이미 과장에 들어갔다. 이에 급히 묘동으로 갔으나 공서(公瑞)도 과장에 들어가 상의할 수 없으니 답답하고 걱정스러웠다.삼청동(三淸洞)19)의 이 판서(李判書, 이헌기(李憲綺))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흥양(興陽) 장보(章甫,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서원 건립하는 일의 전후 사적(事蹟)을 보고 싶다고 청하니 한번 보여 드리겠다 하고서 이에 책자를 드렸다.한참 뒤에 어디에서 온 음식을 나에게 나눠 먹자기에, 감히 먹을 수 없다고 하였더니 퇴상(退床)을 보내온 것이라 하여 배불리 먹었다. 음식은 모두 여행하면서는 보지 못한 것들이었으므로 매우 감사하였다. 한참 있다가 대감이 취하였으므로 나와서 다시 재동으로 가니 과장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공서(公瑞)와 함께 이 석사(李碩士)를 뵙고 상의하였더니 내일 다시 오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재동(齋洞)으로 돌아왔다.여해(汝海)와 예조에 소장을 올려 받은 제사(題辭)20)를 즉시 예조 장방(長房)21)에 들어가서 재록(載錄)하려 했으나, 서리(書吏) 배광옥(裵光玉)이 밖에 나가 부재중이어서 재록하지 못하고 도로 주인집으로 와서 머물렀다. 早起與同鄕諸益作別, 來時同行, 皆爲下去, 而余則以呈禮曹之事, 不得同行, 心懷實爲難堪。 今日雖三日製, 而以錢事之不得辦, 出入場中, 可歎。 急往齋洞, 則欲見之人, 已爲入場, 故急往廟洞, 則公瑞亦爲入場, 不得相議, 悶悶。 往三淸洞 李判書家, 暫話後, 請其興陽 章甫, 以建院事前後事蹟欲見, 則答以一覽爲言, 故仍納冊子。 移時有自何來飮食, 使余分食, 而以不敢之意言及, 則饋以退床故飽食。 飮食皆以在行時, 不見之物也, 多感多感。 移時大監醉睡, 故仍爲出來, 更往齋洞, 入場之人皆出來。 與公瑞請李碩士相議, 明日更來爲言, 故還來齋洞。 與汝海呈禮曹得題, 卽爲入去禮曹 長房載錄, 則書吏 裵光玉出外不在, 故不得載錄, 還來主人家留。 재동(齋洞) 서울시 종로구 재동으로, 명칭은 계유정난에서 유래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때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하자, 이곳을 재로 덮어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곳은 잿골로 불렸고, 잿골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 재동이다. 삼청동(三淸洞)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마을로, 도교의 뿌리로 도교 신인 태청(太淸)・상청(上淸)・옥청(玉淸)의 삼청성신( 三淸星辰)을 모신 삼청전(三淸殿)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제사(題辭) 조선 시대에 백성이 올린 소장(訴狀), 청원서(請願書), 진정서(陳情書)의 좌편 하단 여백에 관에서 써 주는 판결문 또는 처결문을 말한다. 주로 관찰사나 순찰사에게 올린 의송(議送)에 내리는 판결문을 말하며, 수령에게 올린 민원서에 쓴 처분(處分)은 '제김[題音]'이라고 한다. 장방(長房) 서리(胥吏)들이 집무하거나 거처하는 방, 또는 서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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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밥을 먹은 뒤 여러 벗과 종루로 갔다. 비 때문에 발이 묶여 저녁때까지 비가 개기를 기다렸다. 나는 정동으로 들어가 유숙하였다. ○食後與諸益往鍾樓, 滯雨夕間待霽。 余則入貞洞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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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十一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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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신묘) 1831年(辛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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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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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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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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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출발하여 유천혜(柳千惠)의 집에서 묵었다. ○發行宿柳千惠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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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귀남(龜南) 종객(宗客)이 왔다 갔다. 龜南宗客, 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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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새벽에 군택(君澤) 부자가 왔다 갔다. 曉頭君澤父子, 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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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추웠다. 종일토록 심하게 앓았다. 寒。 終日大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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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몹시 추웠다. 사랑(舍廊)이 썰렁하여서 노비 시놈[時老味]의 방으로 나와 머물렀다. 極寒。 以舍廊之疏冷, 出留於時老味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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