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5640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9일 二十九日 일찍 출발하여 동산동(東山洞)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직산(稷山, 충남 천안지역 옛 지명) 읍내를 지나 개치(皆峙)7)를 넘어 두거리(豆巨里) 시장 근처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진령(鎭嶺) 읍내를 지나 유성(油城) 시장 근처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공주(公州) 땅이다. 早發至東山洞朝飯, 歷稷山邑內越皆峙, 至豆巨里市邊中火。 歷鎭岺邑內, 抵油城市邊留宿。 行八十里。 公州地也。 개치(皆峙)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원덕리 개치골과 공주시 정안면 태성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일 初二日 새벽에 출발하여 개태령(開泰嶺)을 넘고 선창(船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이곳은 바로 신도(新都)의 하구(下口)인데, 돌아올 때에 구경하려고 멀리서 바라만 보고 지나갔던 곳이다. 진치(盡峙)와 산정령(散亭嶺)을 넘어 공주(公州)의 유성(油城) 시장 근처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오촌(鰲村)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80리를 갔다.지난 28~29일 이틀 동안 내리던 비는 오촌에 이르니 곧 눈이 되었으므로 지나는 길의 질퍽거리는 상황을 말로 다할 수가 없다. 간신히 이곳에 도착하니 다리 통증이 심했다. 봄에 여기 왔을 때에 용담(龍潭) 정재팔(丁載八)을 만났었는데, 이번 여행길에서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정 석사(丁碩士), 옥천(沃川)의 석사 금석로(琴錫老), 임천(林川)의 석사 정현석(鄭玄錫)과 함께 용운(龍雲)의 집에 머물렀다.저녁을 먹은 뒤에 들어가 장석(丈席)을 알현하니 기후(氣候)는 일단 편안해 보였으나 숙환(宿患)의 여러 증세가 여전히 낫지를 않으니 걱정스럽다. 장석이 나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이처럼 변고가 발생하는 해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번에 다시 얼굴을 본 것이 기쁘고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그대가 부탁한 글은 몸의 병 때문에 아직도 짓지 못하였으니 도리어 편치가 않네."라고 하셨다. 曉發越開泰嶺, 抵船倉朝飯, 此地卽新都下口也。 來時欲玩之意, 只爲望見而過。 越盡峙 散亭嶺, 抵公州 油城市邊中火, 抵鰲村, 日已暮矣。 行八十里。 去廿八九兩日雨, 到此見之, 則乃是雪也, 行路之泥濘不可言。 艱到此處, 脚痛大發。 春間來此時, 逢龍潭 丁載八矣。 今行相面可幸。 與丁碩士、沃川 琴碩士 錫老、林川 鄭碩士 玄錫, 同留龍雲家。 夕飯後入謁丈席, 氣候姑爲安寧, 而宿患諸症, 尙亦未瘳悶悶。 見我而言曰: "如此變年, 慮無所不到, 今此更面, 雖爲喜幸, 君之所托文字, 以身病尙不得製置, 還爲不安云云耳。"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5일 二十五日 일찍 출발하여 미태정(米太亭)에서 아침을 먹고, 벌교(筏橋)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백정자(柏亭子) 어귀에 이르러 동행과 헤어지고, 나는 사촌(社村)에 들어가 잠시 쉰 뒤에 사교(四橋)의 가교(柯橋) 댁에 들렀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재동(齋洞) 동면(東面)의 형님 장사지낸 일이 내일이라고 하므로 미옥(美玉)과 그길로 마륜(馬輪)에 갔다. 동편의 성윤(聖允) 집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재동 종가에 들어가 가묘에 배알하고, 궤연(几筵)에 절하고 곡한 뒤에 말할 수 없이 피곤하여 잠깐 눈을 붙였다. 早發至米太亭朝飯, 抵筏橋午飯。 抵柏亭子前, 與同行分路, 余則入社村, 暫憩後, 入四橋 柯橋宅。 敍話後, 言齋洞 東面兄主葬事明日云, 故與美玉, 仍往馬輪。 入東邊聖允家夕飯。 入齋洞宗家, 祗謁家廟, 拜哭几筵後, 困憊難狀, 暫爲接目。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3일 初三日 ○오전에 노원이 경순과 같이 왔다. 경순이 내일 동행할 생각으로 극구 만류하였으므로 여산에 일행을 권하여 보내고, 나와 무열 씨와 경순이 함께 묵었다. 어제 전주에 들어갔을 때 무열 씨가 먼저 다음과 같이 읊었다.성조가 이 고을에서 개창하였으니(聖祖龍興自此州)패풍25)의 산수 형세 오래도록 남아있네(沛豊山水勢長留)우뚝한 사당에 아름다운 기운을 바치고(巋然殿廟呈佳氣)눈에 가득 봄꽃 만발한 명승을 유람하네(滿目烟花勝地遊)내가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호남을 낱낱이 헤아려 제일의 고을이니(歷數湖南第一州)신풍26)의 용덕27)이 이곳에 남아있네(新豊龍德此間留)눈앞에는 모두 번화한 물색이 있으니(眼前都是繁華物)소인묵객이 유람하며 몇 번이나 무릎을 치네(幾度騷人擊節遊)오서 객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아름다운 산과 수려한 강이 풍부한 전주라(佳山麗水饒全州)호남 좌도의 풍경이 이곳에 남아있네(湖左風烟此地留)의관이 모두 다 화려한 자제들이(衣冠摠是繁華子)객점에서 젊은 기생28)과 진종일 노니네(店錦纏靑盡日遊) ○午前魯源與敬純偕來。 敬純以明日同行之意堅挽。 故勸送同行於礪山, 余與武說氏及敬純同留。 昨日入完時, 武說氏先吟曰: "聖祖龍興自此州。 沛豊山水勢長留。 巋然殿廟呈佳氣, 滿目烟花勝地遊。" 余次曰: "歷數湖南第一州, 新豊龍德此間留。 眼前都是繁華物, 幾度騷人擊節遊。" 烏栖客次曰: "佳山麗水饒全州, 湖左風烟此地留。 衣冠摠是繁華子, 店錦纏靑盡日遊。" 패풍(沛豐) '풍패(豐沛)'라고도 하는데, 한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고향이므로 후세에는 제왕의 고향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여기서는 전주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대가 살던 곳이므로 패풍이라고 한 것이다. 신풍(新豐)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부친을 모셔 와 장안(長安)의 황궁(皇宮)에서 태상황(太上皇)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하였는데, 그 부친이 고향인 풍현(豐縣)을 못 잊어 하자 장안 부근에 새로운 풍현[新豐]을 조성(造成)하여 위로해 드렸다는 고사가 있다. 《西京雜記 卷2》 용덕(龍德) 임금의 덕을 말한다. 젊은 기생 원문 '금전(錦纏)'은 옛날 예인(藝人)이 가무를 끝내고 나면 손님들이 그 대가로 주던 비단, 즉 금전두(錦纏頭)를 말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9일 二十九日 ○온종일 비가 내려 나갈 수가 없어서 두 친구와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빗속의 객고(客苦)에는 위로가 되었지만, 주인이 없어서 몹시 서글펐다. ○終日雨, 不得出來, 與兩友終日談話。 雖慰雨中之客苦, 以主人之不在, 甚爲悵悵。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0월 十月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2일 十二日 점차 화창해졌다. 감기가 크게 기승을 부려 사망자가 잇따르고 심지어 경상(卿相)의 집에서도 관을 다스리지 못하여 7, 8일이 지났는데도 성빈(成殯)1)하지 못하는 경우가 간간이 많이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팔도가 다 그렇다고 하니, 몹시 두려운 일이다. 漸和。 感氣大熾, 死亡相因, 至於卿相之家, 不得治棺, 過七八日, 不得成殯者, 間多有之。 傳聞八路同然云, 極可畏也。 성빈(成殯) 장사를 지내기 전에 빈소를 차리는 것을 말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3일 十三日 비로소 주동(鑄洞)에 갔더니, 상하의 집안 노인들이 병을 앓고 있다고 하였다. 오는 길에 창동(倉洞)에 들어가 박 승지(朴承旨)를 만나보니, 또한 병이 심하여 이불을 안고 누워 있으므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始往鑄洞, 則上下家老人, 方痛云矣。 來路入倉洞見朴承旨, 則亦方痛而擁衾, 暫話而來。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2일 二十二日 이른 아침에 예조(禮曹)의 직방(直房)에 갔다가 상언(上言)이 내려지지 않았음을 알고 즉시 돌아왔다. 오늘은 인일제(人日製)10)를 설행하였으나 상언(上言) 때문에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상언(上言)은 내리지 않으셨다. 천 리 먼 곳에서 와서 이 일을 경영하였는데,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그 낙막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날 계노(癸奴)를 보냈다. 早朝往禮曹 直房, 知上言之不下, 卽爲回還。 是日設人日製, 而以上言之故, 不得入場矣。 上言不下。 千里遠來, 經營此事, 而事旣不成, 其落漠不可言。 是日送癸奴。 인일제(人日製) 인일(人日)인 음력 1월 7일을 가절(佳節)로 보아 이날에 보이는 과거 시험을 말한다. 이때는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시험을 보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4일 二十四日 이종형님, 후장(厚長)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종각(鍾閣) 행랑(行廊)에 가서 술을 마시고 요기를 하였다. 나는 주동(注洞)으로 가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오는 길에 창동(倉洞)의 박 감사(朴監司) 집에 들러 그때 들어온 기별을 물어보고 왔다. 이종형님의 참방(參榜)11)은 축하할 만하였다. 與姨兄主及厚長諸人, 同往鍾閣行廊後, 飮酒療飢。 余則往注洞, 移時談話, 來路入倉洞 朴監司家, 問其時入來之奇而來。 姨兄主參榜, 可賀。 참방(參榜) 과거의 합격자 명단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과거 합격자의 명단을 적어 게시하는 것을 방목(榜目) 또는 방(榜)이라 하고 여기에 참여되는 것을 참방이라 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1일 二十一日 일찍 출발하여 ᄀᆞᆯ길리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연기(燕岐) 삼거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용정(龍亭) 나루를 지나 오촌(鰲村)에 도착하였다. 80리 길을 갔다.장석(丈席)의 환후는 아직 쾌차하지 않았고, 또 근래 일어난 국상(國喪)으로 곡반(哭班)에 참여하느라 읍내를 왕래하고 있는 데다 조섭을 잘못하는 일이 있으니 매우 걱정스러웠다. 우리들이 상경한 뒤로 요청했던 문자를 지어 두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계속 겨를이 없어 유념하지 못했다고 하니 걱정스러웠다. 早發至ᄀᆞᆯ길리酒幕朝飯, 抵燕岐三巨里中火。 到龍亭津, 得達鰲村, 行八十里。 丈席患候未快, 且近以國恤哭班往來邑內, 又有失攝之道, 可悶可悶。 意謂吾等上京後, 所請文字製置矣。 連汨無暇, 不得留念云悶焉。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3일 二十三日 이찬(而贊)과 읍내로 가서 주관(主官) 송유재(宋儒載)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곧바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에 장석(長席)께 문후(問候)를 드렸더니, 장석께서 말씀하시기를, "며칠 동안 머물러 있어도 그 사이에 어찌 지어줄 방법이 없네."라고 하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어찌할 수 없는 형세일 듯하므로 내일 출발하려고 마음먹었다. 與而贊往邑內, 見主官宋儒載暫話, 卽爲還來。 夕間問候於丈席, 則丈席曰: "數日留連, 伊間製給無可奈"云云, 故反以思之, 則事勢似然不得已, 明日發程爲計。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8일 二十八日 군택(君澤)과 기지(器之)가 왔다 갔다. 君澤及器之, 來見而去。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5일 初五日 비가 내렸다. 종일토록 비가 그치지 않으니 출입할 수가 없어 주인집에서 누워 있었다. 雨。 終日不止, 不得出入, 臥主人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9일 初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정 진사(丁進士)의 사관(舍館)에 가서 잠시 쉬었다가 구리개동(九里介洞)의 박영수(朴永壽) 집에 갔다. 문욱(文旭)과 과장(科場)에 함께 들어가기로 약속한 뒤에 종묘동(宗廟洞)에 가서 구환(龜煥) 형제를 방문하였으나 출타하여 만나지 못했다. 오는 길에 구례(求禮)의 이지문(李志文)을 만나 빚 얻을 방도를 의논하였는데, 물어볼 만한 곳이 없다 하니 장차 어찌 한단 말인가. 해 진 뒤에 다시 오겠다 말하고 헤어졌다.성균관 앞에 가서 문욱을 만나 함께 관주인(館主人)인 이쾌철(李快哲) 집에 들어갔다. 신시(申時)에 문을 열기 때문에 저녁을 먹은 뒤에 과장에 들어갔다. 문욱의 동접(同接)13)과 정 진사(丁進士)의 동접(同接)을 찾아갔는데,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초저녁 때에 동접들마다 등을 걸었다. 춘당대(春塘臺)의 백포장(白布帳) 안에 한 조각의 공지(空地)도 없이 등을 달고 등불을 밝힌 것이 끝이 없어 하나의 큰 장관이었다. 과거를 보는 유생의 모임은 전후로 처음인데, 경신년에 비해 더 많다고 하였다.밤이 깊은 뒤에 문욱과 함께 월근문(月覲門)으로 나와 이쾌철(李快哲) 집에 머물렀는데,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들이 많이 모여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食後往丁進士舍館, 暫憩後, 往九里介洞 朴永壽家。 與文旭同入場中之意相約後, 往宗廟洞, 訪龜煥兄弟, 則出他不得相見。 路逢求禮 李志文, 議得債之路, 則無問處, 此將奈何。 斜後更來爲言, 而相分往成均館前, 逢文旭同入館主人李快哲家。 申時開門, 故夕飯後入場中, 推尋文旭接與丁進士接, 則相去不遠也。 初昏時, 各接懸燈, 春塘臺白布帳內, 無一片空地, 懸燈觀燈無恨, 一大壯觀也。 科儒之會, 前後初度云矣, 比庚申年尤多云。 深夜後, 與文旭同爲出來月覲門, 留李快哲家, 而科儒多會, 不得就睡。 동접(同接) 과거 응시를 앞두고 선비들이 한곳에 모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만든 동아리 또는 그 구성원을 이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0일 初十日 바로 정시(庭試)를 보는 날이다. 닭이 울 때 아침을 먹고 동접(同接)들과 월근문(月覲門)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 동이 트자 전좌(殿座)14)하는 곳과 과장(科場)을 설치한 길을 바라보니, 모두 백포장(白布帳)으로 둘러놓았다. 처음에는 왕이 친림한다는 말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옥련(玉輦, 임금의 수레)만 나왔는데 군병과 기치(旗幟)와 창검(槍劍)은 왕이 거둥할 때와 다름이 없으니 평생에 한번 보는 장관(壯觀)이었다.묘시(卯時)에 출제(出題)하였으니, 바로 '흠명문사안안(欽明文思安安)'15)이었다. 문욱 동접들과 이어 초안을 작성하였으나, 납번(納番, 답안지 제출)할 때에 혹 선비들이 밟혀 죽을까 하는 근심이 있어 마음이 몹시 두려웠다. 나 또한 납번하는 차례에 직접 들고 갔으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함께 온 동접 중에 소년을 시켜 납번하게 하였다. 낙안(樂安) 형님의 정초(正草)는 내가 가서 제출했는데, 그때에는 조금 덜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주인집으로 와서 잠시 쉰 뒤에 문욱을 기다리는데 끝내 나오지 않으므로 먼저 나와 정 진사(丁進士)의 주인집으로 가서 잠시 쉬다가 경주인 집으로 돌아왔다. 김계한(金啓漢)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같은 고향 사람들이 모두 모레 출발하겠다고 말하였다. 卽庭試日也。 鷄鳴時仍朝飯, 與同接入月覲門。 良久開東, 望見殿座處與設場之道, 則皆以周設, 而初有親臨之言矣。 末乃只出玉輦, 而軍兵與旗幟槍劍, 無異擧動時也, 平生一壯觀也。 卯時出題, 卽'欽明文思安安'。 與文旭同接, 仍爲構草, 而納番之時, 或有士子踏死之患, 心甚悚然。 余亦納番次躬往矣, 不得前進, 來接中使少年納番。 樂安兄主正草, 則余往納之, 其時則稍歇故也。 卽爲出來主人家, 暫憩後待文旭, 則終不出來, 故先爲出來丁進士主人暫憩, 來入京主人家。 與金啓漢暫話, 而同鄕之人, 皆以再明日發程爲言耳。 전좌(殿座) 과거를 시행하거나 하례(賀禮)를 받는 것처럼 공식 행사가 있을 때 임금이 그곳에 마련된 어좌(御座)에 나와 앉는 것을 말한다. 흠명문사안안(欽明文思安安)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나오는 말로, 요 임금의 덕을 찬양하면서 "공경하고 밝고 빛나고 사려가 깊은 것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왔다.[欽明文思安安]"라고 하였다. 일부러 힘쓰지 않아도 그 덕성(德性)의 아름다움이 다 자연스러운 속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7일 二十七日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4일 初四日 매일 아침저녁으로 간청하였다. 이는 다만 좌우의 여러 벗들이 곁에서 잘 말해 준데다가 장석(丈席)께서 먼데서 올라온 노력과 비용11)을 특별히 헤아려 지극히 잘 대우해 주었기 때문에 3~4일 머무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셨다. 오후에 예폐(禮幣)12)를 드렸다. 장석(丈席)께서 병으로 예를 행하기 어려운데도 이처럼 예폐를 받아주신 것은 모두 두터운 대우에서 나온 것이다. 목사공(牧使公)의 《정충록(精忠錄)》에 대한 일도 또한 예폐를 드렸으니 매우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連日朝夕懇請。 非但左右諸益從傍善告, 且丈席特恕遠方之勞費, 極爲善待, 故留底三四日受爽諾, 午後納幣。 丈席病不能行禮, 而受此禮幣, 此莫非待之厚。 牧使公《精忠錄》事, 亦爲納幣, 感幸感幸。 노력과 비용 원문의 '노비(勞費)'는 육체적인 노동과 금전적인 비용을 말한다. 예폐((禮幣) 고마움과 공경하는 뜻에서 보내는 물품을 말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8일 十八日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아침을 먹은 뒤 느즈막에 잠깐 비가 갰으므로 즉시 비를 무릅쓰고 길에 올랐다. 오리치(五里峙)에 이르자 비가 크게 내려 의복이 모두 젖고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였다. 부득이 무동정(茂東亭)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화옥이 어제 지나갔다는 것을 물어서 알고는, 곧바로 비를 맞으며 출발하였다. 여암막(餘巖幕)에 이르니 여암막 기둥에, '화옥(華玉)은 어제 그 여암막에 머물고 있다가 고읍(古邑)에 있는 벗 박양언(朴良彦)의 집으로 출발하였다'라고 써서 걸어 두었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좌수(李座首)의 집에 들어가니 이생(李生)이 정성스레 대접해 주었다. 온돌(溫突)에 약간이라도 의복을 말릴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終日雨注。 朝飯後, 向晩乍霽, 故卽爲冒雨登程。 至五里峙雨大作, 衣服盡濕, 進退維谷。 不得已至茂東亭, 秣馬療飢。 問知華玉昨日過去, 因卽冒雨發行。 至餘巖幕, 則幕柱書揭華玉昨留其幕, 發向古邑 朴友 良彦家云, 而日已夕矣。 不得已入李座首家, 則李生款接。 溫突略燥衣服, 可幸。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9일 十九日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나 고읍(古邑)의 마을 앞에 이르렀다. 양언(良彦)의 집에 노복을 보내어 화옥(華玉)이 머물며 기다리는지 살펴보게 했는데, 박우(朴友)가 오라고 하였으므로 고읍(古邑)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병동(屛洞)의 송지각(宋之珏)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돌아오는 길에 신기(新基)로 가서 약노(若魯) 씨의 궤연(几筵)에 조문하고 한참을 위로하다가 면교(面橋)로 방향을 바꾸어 나주 형님의 상(喪)에 조문하였다. 早朝登程, 至古邑村前。 送奴於良彦家, 探知華玉留待, 而朴友要之, 故入古邑朝飯。 至屛洞 宋之珏家, 中火秣馬。 來路往新基, 吊若魯氏几筵, 移時致慰, 轉向面橋, 吊羅州兄主喪。

상세정보
56403건입니다.
/2821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