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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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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폭설이 내렸다. 大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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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일찍 출발하여 금강(錦江)을 건너며 절구 한 수를 읊었다. 시는 다음과 같다.맑은 모래 푸른 물 돌아가는 나루를 묻노니(沙明水碧問津歸)한 줄기 아침 안개 양편 언덕에 떠다니네(一帶朝霞兩岸飛)눈 가득 멋진 경치 거두어 비단 주머니에 담나니(滿目風烟收錦囊)이러한 광경을 아는 사람 드물도다(箇中光景識人稀)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북쪽을 향해 가는 길 금강에 들어서서(路入錦江向北歸)달빛 아래 지팡이 멈추고 떠가는 구름보네(停笻步月看雲飛)천 리 먼 길을 걷고 또 걸어가니(行行大道一千里)처음 본 사람 많고 알던 사람 드물구나(生面人多舊面稀)사원(士元)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오늘도 낙성에 돌아가지 못하였는데(當日洛城未得歸)푸른 하늘에 구름 속 학이 날아가려 하네(欲將靑天雲鶴飛)금강이 가까우니 고향산천 점차 멀어지고(家山漸遠錦水近)여기에 이르니 아는 얼굴 드물도다(到此面面識者稀)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금강은 건네주는 사람 몇 번이나 북쪽으로 갔던가(錦水濟人幾北歸)공산성의 성가퀴7)는 남쪽으로 날아(公山堞雉却南飛)길손은 고향집에 소식을 전하려 하나(旅窓欲寄家鄕字)나는 기러기 드물어 소식이 아득하네(消息蒼茫雁到稀)자봉(子鳳)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늙은이 지팡이 짚고 갔다 돌아오는 길(扶老携笻第往歸)중천에 까마귀가 나는 것 매번 두렵네(中天每畏日烏飛)다시 술잔을 가져다 서로 주고받으니(更將盃酒聊相勸)서쪽 장안으로 들어가면 옛 친구 없으리라(西入長安故舊稀)일신점(日新店)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광정(廣亭)에서 점심을 먹었다. 길보(吉甫)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출발하였는데, 차령에 오르니 회화나무 그늘 아래에서 노래와 퉁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그늘 아래에서 쉬다가 절구 한 수를 읊었다.험준한 고개 간신히 넘어오니(艱上嶺之險)맑은 그늘에 또 맑은 돌 샘물 있네(淸陰又石泉)노래와 퉁소소리 둘 다 있으니(歌簫兼有二)음악 소리에 취해 험난했던 앞길 잊었네(耽聽却忘前)고개를 내려와 서정점(西亭店)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早發越錦江, 吟一絶曰: "沙明水碧問津歸, 一帶朝霞兩岸飛。 滿目風烟收錦囊, 箇中光景識人稀。" 聿之次曰: "路入錦江向北歸, 停笻步月看雲飛。 行行大道一千里, 生面人多舊面稀。" 士元次曰: "當日洛城未得歸, 欲將靑天雲鶴飛。 家山漸遠錦水近, 到此面面識者稀。" 汝玉次曰: "錦水濟人幾北歸, 公山堞雉却南飛。 旅窓欲寄家鄕字, 消息蒼茫雁到稀。" 子鳳次曰: "扶老携笻第往歸, 中天每畏日烏飛。 更將盃酒聊相勸, 西入長安故舊稀。" 抵日新店朝飯, 抵廣亭中火。 逢吉甫暫話而發, 上車嶺則槐陰下有歌簫。 暫憩陰下, 吟一絶曰: "艱上嶺之險, 淸陰又石泉。 歌簫兼有二, 耽聽却忘前。" 下嶺抵西亭店留宿。 行八十里。 성가퀴 원문의 '치첩(堞雉)"은 성 위에 낮게 쌓은 성가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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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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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날씨가 조금 풀렸다. 저녁 무렵에 사랑으로 돌아왔다. 日氣稍解。 夕間還舍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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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三十日 추웠다. 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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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기미) 1799年(己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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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元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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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추웠다. 흥양(興陽)의 호장(戶長) 설리(薛吏)가 집에서 온 편지를 가지고 와서 전하였지만, 이는 다만 공간(空簡)10)일 뿐이니 분(憤)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寒。 興陽 戶長 薛吏, 持家書來傳, 只是空簡, 憤不可言。 공간(空簡) 선물이나 예물이 딸리지 않은 편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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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가랑비가 내렸다. 아침 전에 이찬(而贊)과 비를 무릅쓰고 폐문동(閉門洞)의 오위장(五衛將)이 사는 곳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의복이 모두 젖어버렸으니 매우 속상했다. 아침을 먹은 뒤에 날씨가 개기를 기다렸다가 행장을 꾸려 동진(銅津) 어귀에 이르렀다. 광풍이 세차게 부는 바람에 모래가 날려 눈앞에 가득하였는데, 배를 타자 바람의 형세가 더욱 심하여 매우 위태로웠다. 간신히 강을 건너 승방(僧房) 주막45)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지지현(遲遲峴)46)을 넘어 화성(華城)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微雨。 朝前與而贊, 冒雨往居閉門洞五衛將所在處, 暫敍而來, 衣服盡濕, 可憤可憤。 食後待霽治發, 到銅津頭, 狂風大作, 飛沙滿目, 而爲乘船, 以風勢之極惡, 萬分危凜。 艱渡至僧房酒幕中火。 越遲遲峴, 抵華城留宿。 行七十里。 승방(僧房) 주막 승방평(僧房坪)에 있었던 객점을 말한다. 승방평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앞들에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승방뜰・심방뜰이라고도 불렀다. 지지현(遲遲峴) 지지대(遲遲臺)고개로, 수원과 의왕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고개이다. 《화성지》에 따르면 원래는 사근현이었는데 정조가 '미륵현' 그 후에 다시 '지지현(遲遲峴)'으로 고쳤다고 한다. 사근현(沙近峴)이라고 한 것은 고개 아래에 사근참이 있었기 때문이며 '지지(遲遲)'라고 한 것은 사도세자 능을 참배하고 돌아갈 때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이곳에서 한참 지체하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정조는 이곳에 장승과 표석을 세웠고, 1807년(순조7)에 지지대 서쪽에 지지대비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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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근동(芹洞)에 가서 서봉(書封)에 내타인(內打印)4)하였다. 往芹洞, 書封內打印。 내타인(內打印) 시권을 제출할 때 예조좌랑(禮曹佐郞)이 타인관(打印官)이 되어 오시(午時)에 시권을 거두어서는 시폭(試幅)과 시폭의 연첩처(連貼處)에 예조의 인을 찍은 뒤 돌려준다. 이를 내타인(內打印)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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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예조에 가서 안일득(安一得)을 만나 상언(上言)5)하는 일을 상의하였다. 오는 길에 대묘동(大廟洞)에 들어가서, 삼정(森亭)의 접(接)6)과 임 상사(林上舍)에 대해 물었다. 현재 이문동(里門洞)에 머물고 있다는 기별에 다시 이문동(里門洞)으로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往禮曹見安一得, 相議上言事。 來路入大廟洞, 問森亭接及林上舍, 方留里門洞之奇, 轉入里門洞, 暫話而來。 상언(上言) 주로 집안 일로 백성이 임금에 진정(陳情)하는 글을 올리는 것, 또는 그 글을 말한다. 상언의 내용을 보면, 주로 자손이 조상을 위해서거나 또는 사림(士林)이 선열(先烈)을 위해서 올리기도 하고, 충절(忠節)ㆍ효행(孝行)ㆍ정렬(貞烈)에 대한 정표(旌表)ㆍ증직(贈職)이나 신원(伸冤) 등을 위해 올리기도 하는 것으로, 일정한 서식(書式)이 있다. 접(接) '접'은 글방 학생들이나 과거에 응하는 유생들이 모여 이룬 동아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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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새벽에 주인과 홍화문(弘化門) 밖에 가서 성복(成服)한 곡반(哭班)38)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최복(衰服)을 갖추어 입은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엄숙하게 모여 있었다. 10여 리를 늘어서서 때를 기다렸다가 예를 행하였으니, 이는 모두가 애통해하는 일 중의 하나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곧바로 주인집으로 나와서 아침을 먹고, 주인과 묘동(廟洞)39)에 가서 보성(寶城) 종인(宗人) 공서(公瑞)를 찾아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곧바로 주인집으로 돌아와 묵었다. 曉卽與主人往弘化門外, 參成服哭班, 而是時滿朝百官俱衰服, 濟濟來會。 羅立十餘里, 待時行禮, 此亦普痛中一初見也。 卽爲出來主人家朝飯, 與主人往廟洞, 訪寶城宗人公瑞。 暫話後, 卽爲出來主人家留宿。 곡반(哭班) 국상(國喪) 때에 곡(哭)하는 벼슬아치의 반열(班列)을 말한다. 묘동(廟洞) 서울특별시 종로구 묘동(廟洞)으로, 조선조 역대 임금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종묘가 있는 곳이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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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 순자강(蓴子江)을 건너고, 주포(周浦)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돈 1전(錢)을 주인집 사내에게 주며 《서재실기(西齋實記)》를 도산(道山)의 송필흥(宋弼興) 집에 전해 달라고 하였다. 길을 떠나 남원읍(南原邑)에 이르러서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나는 먼저 향교(鄕校)로 출발하여 실기(實記) 한 권을 전한 뒤 곧바로 출발하여 전석치(磚石峙)2)를 넘어 임실(任實) 야당(野塘)에 이르렀다. 동행은 먼저 주막으로 가고, 나는 송필동(宋弼東) 씨의 집에 들러 실기 한 권을 신안서원(新安書院)에 전하게 하였는데, 예조에 재록(載錄)했는지에 대해 묻기에 아직 재록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서원을 세운 지가 이미 오래인데 어째서 재록하지 않았느냐며, 신안서원(新安書院)은 작년에 실었는데 들어가는 것이 적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장계의 초고를 청하여 주막으로 가지고 와서 여환(汝煥)에게 베껴 오도록 하였는데, 이는 나도 예조에 소장을 올리려는 계획에서였다.-등서한 장본(狀本)은 뒤에 붙였다.-저녁을 먹은 뒤에 주막으로 나와 동행들과 함께 머물렀다. 90리를 갔다. 낮에 남원 길에서 시 한 수를 읊었다.천릿길 동행한 열세 사람(千里同行十有三)호남에서 북쪽 여행길 떠나 왔네(北征行色自湖南)며칠이나 걸려야 경성에 도착할꼬(間開幾日京城到)훗날 고생한 만큼 즐거움도 볼 수 있으리(可見他時苦盡甘)정 진사(丁進士)가 화답하였다.늦봄 삼월 서쪽으로 떠나는 천릿길(西行千里暮春三)산색은 푸르르고 물은 남쪽으로 흘러가네(山色蒼蒼水盡南)천 자나 높은 용문 계수나무 잡은 곳에서(千尺龍門攀桂地)오늘 함께한 고초와 즐거움 떠오르리(却思今日共辛甘)신윤보(申允甫)가 화답하였다.곤륜의 한 줄기 빼어난 삼각산(崑崙一脈三角秀)천지간에 정신 온통 남쪽에 있네(天地精神盡在南)천릿길 떠나온 노고 도리어 잊어버리고(千里還忘勞苦我)어사화 어주가인 듯 술동이 가득 달기만 하네(賜花御酒滿樽甘)정 진사(丁進士)가 또 읊었다.밤새 비는 강남에 쏟아져 다리가 잠기고(夜雨江南水沒橋)푸른 회화나무 길을 막고 보리는 허리까지 잠겼네(靑槐擁路麥齊腰)이번 길 용꿈을 꾼 나그네 누구인가(此行誰是龍夢客)들새가 노래하는 것도 비웃는 것도 같구나(野鳥如歌又似嘲)내가 화답하였다.짚신 신고 지팡이 끌며 오작교3)를 걷노라니(竹杖芒鞋步鵲橋)잘록한 허리의 미인들 성에 가득하네(盈城美女盡纖腰)이번 길 봄을 만끽하기 위해 온 게 아니건만(此行不是貪春客)혹여 옆 사람 비웃을까 두렵구나(或恐傍人有笑嘲) 早朝發程, 越蓴子江, 至周浦酒幕朝飯。 傳《西齋實記》於道山 宋弼興家之意, 出給錢一戔主漢。 發行抵南原邑, 乃中火秣馬。 余則先發鄕校, 傳實記一卷, 卽發越磚石峙, 抵任實 野塘。 同行則先去酒幕, 余則入宋弼東氏家, 傳實記一卷于新安書院, 問禮曹載錄, 故姑未載錄云爾, 則建院已久, 而何其不載乎? 新安書院則昨年載, 而所入不小云, 故請其狀草, 持來酒幕, 使汝煥謄書以來者, 余亦欲呈禮曹計耳【謄書狀本附後】。 夕飯後, 出來酒幕, 與同行同留。 行九十里。 午間南原路上, 咏一律曰: "千里同行十有三, 北征行色自湖南。 間關幾日京城到, 可見他時苦盡甘。" 丁進士和曰: "西行千里暮春三, 山色蒼蒼水盡南。 千尺龍門攀桂地, 却思今日共辛甘。" 申允甫和曰: "崑崙一脈三角秀, 天地精神盡在南。 千里還忘勞苦我, 賜花御酒滿樽甘。" 丁進士又號曰: "崑崙一脈三角秀, 天地精神盡在南。 千里還忘勞苦我, 賜花御酒滿樽甘。" 余和曰: "竹杖芒鞋步鵲橋, 盈城美女盡纖腰。 此行不是貪春客, 或恐傍人有笑嘲。" 전석치(磚石峙) 일명 '박석고개'로 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과 사매면 대율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박석치는 비포장 시절에 고갯마루가 지표 유출에 의한 토양침식으로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얇고 넓적한 돌을 깔아 놓은 데서 유래하였다. 오작교 원문의 '작교(鵲橋)'는 남원 광한루(廣寒樓)에 있는 오작교(烏鵲橋)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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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호조(戶曹)에 가서 좌랑(佐郞)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往戶曹, 與佐郞, 移時談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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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눈이 왔다. 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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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행장을 꾸려 서울로 출발하였다. 대개 지난해에 연시(延諡)한 뒤로 처음 길을 나선 것인데, 시호(諡號)를 내려 줄 때의 예관(禮官)에게 사례(謝禮)를 할 생각이다. 과역(過驛)에 이르니 봉동(鳳洞)의 송 도감(宋都監)과 지정(池亭)의 신생(申生)이 요로(要路)에서 전송하였다. 이어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탄포(炭浦)에 이르렀다. 남원(南原)의 생아(甥兒)가 도중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병동(屛洞)에 와서 묵었다. 治發京行, 盖爲年前延諡後初行也, 爲謝宣諡時禮官之意也。 至過驛, 鳳洞 宋都監、池亭 申生, 要路餞行。 因爲秣馬, 至炭浦。 南原甥兒留待路中, 故暫話後, 來宿屛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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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오후에 연아(年兒, 아들 석년)와 조카 호(豪)를 돌려보내고 종인(宗人)인 지각(之珏)과 동행하여 낙안(樂安)에 이르렀다. 상중(喪中)에 있는 낙승(樂承) 박씨 집에서 묵었다. 午後還送年兒及豪姪, 與宗人之珏同行, 至樂安。 樂承 朴哀家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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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서면로(西面路)에 이르러 이 좌수(李座首) 형제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동정(茂童亭)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순천(順天) 천평(泉坪)에 와서 머물렀다. 早食後, 至西面路, 逢李座首兄弟暫話。 至茂童亭中火, 來留順天 泉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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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비가 내렸다. 그대로 머물렀다. 雨。 因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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