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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영변(寧邊)에 이르렀다. 철옹성(鉄甕城)63) 만노문(萬弩門)64)으로 들어가 곧바로 관문에 이르러 통자(通刺, 명함을 내놓고 면회를 청함)하고, 곧바로 대아(大衙)에 들어갔다. 그 성지(城池)를 보니, 참으로 천참(天塹, 천연의 요충지)의 관사(官舍)이며 웅장한 고을이었다. 早發行四十里, 抵寧邊。 入鉄瓮城萬弩門, 直至官門通刺, 卽入大衙。 觀其城池, 儘天塹官舍, 眞雄府也。 철옹성(鐵甕城) 고구려 때 처음 쌓은 본성·약산성과 조선 시대 때 쌓은 신성·북성 등 4개의 부분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구려 때 처음 쌓은 이래 조선 시대까지 서북 방위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였다. 네 방향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항아리 입구와 같이 생긴 까닭에 철옹성(鐵甕城)이란 이름이 붙었다. 만노문(萬弩門) 영변 철옹성의 정문인 남문으로, 완월문, 고연주성문, 은주루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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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주동에 가서 답간(答簡)을 받아 왔다. 병동(屛洞)의 지옥(之玉) 종인이 떠나겠다고 하기에 야간에 편지를 써서 부쳐 보냈다. 往鑄洞, 受答簡而來。 屛洞 之玉宗人告去, 故夜間修書付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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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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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주동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往鑄洞, 談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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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근동(芹洞)에 가서 이 석사(李碩士)와 이 흥양(李興陽)을 만나고 차동에 머물렀다. 往芹洞見李碩士及李興陽, 留車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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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춥다. 아침을 먹기 전에 내려와서 사헌과 함께 주동(注洞)으로 가서 종일토록 있다가 왔다. 寒。 食前下來, 與士憲往注洞, 終日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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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합동(蛤洞)에 가서 윤 남포(尹藍浦)를 만나고, 오는 길에서 이 흥양(李興陽)을 만났다. 往蛤洞見尹藍浦, 而來路見李興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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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吏判南台秉哲及訓將金台炳國書【六月初旬】 伏以徒立四壁方切膚床之嘆願受一廛敢效踵門而告言猶未畢文豈子虛伏念生匠園龍鍾藝林驢楦一字不堪煮浪讀古文今文寸璧難自珍狂奔朝市暮市言念雨露之沾沐亦云歲年之浸湥懷往辰於簪花居然三朝日月計舊甲於槖筆邈乎二紀星霜藍田之一官太淸難救羸鼠之肚栢臺之兩銜雖侈那免飢烏之名而旅遊豈樂爲哉嗟恒産末如何耳旄邱之葛何誕瑣尾三年陋巷之瓢屢空傷心一室西河之慘切骨尙未暇雙淚滂沱東郭之愁撑腸寧或忘十口顑頷顧其情吁亦慽矣欲無愬可得已乎進退如觸藩之羝抑有垂憐者否遲徊若戀豆之馬實非懷利而然捐親戚棄墳塋嗟何時可已振貧窮拔淹滯幸斯世適丁是所謂聽雷之蟲非敢曰慕羶之蟻樊籠之羽方困願借上林一枝涸轍之鱗欲乾莫惜西江餘派三時望於霈澤正似旱田之枯苗千重隔於海山伊誰迷津之慈筏伏惟閤下維嶽生甫於水見河經品題便作佳幾騰識荊州之願被容接得爲幸爭詫御李君之榮故家門繩墨尙傳施德於不報眞宰相器局自在斂功於無言肆將呼庚之楚言敢望君子之周急苟一才適於用不以人而廢馬歷數當世之賢舍夫子其誰也渴易飮飢易食不遑鋌鹿之擇音拯其溺救其焚只冀鞭馬之及腹伏望俾穫升斗之邑幸保困危之蹤則謹當藏之中心仰若北斗執鞭爲御長趍承於下風結草以酬且恭俟於後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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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京畿儒生上言草【三月十九日】 伏以捄菑卹難誼士之高風也醻德銘功哲辟之彛典也是故泰人之同仇而有無衣同袍之歌周人之敵氣而有櫜弓貺心之咏夫一往一來禮之情也以德報德聖之經也何況我邦之於皇朝所受之恩何如而欲報之心亦何如鳴虖往昔龍蛇之變尙忍言哉蠢彼黑齒毒如稧揄跳梁我京闕焚壞我城邑兇鋒所過靡不摧折宣廟下哀痛之敎於西狩之日而故西川君臣鄭崑壽挺身而往控于大邦痛哭於庭時則有若兵部尙書石星爲之泣下曰如彼苦忠勁節雖古之申包胥何以加此遂力排衆議屢叩天陛竟回宸聰以至動天下之衆傾府庫之財再造我東藩式克至今日休者莫非神宗皇帝之德而從中效力者盖石尙書也石尙書之爲我國苦心血性始欲效郇伯之勞而終未免萇弘之寃則之于今我國之人雖汲婦樵竪亦爲之齎咨涕洟何幸石尙書之從孫繼祖奔命東萊始住江界終遯安峽長老兒孫不求人知逮至正廟朝聖敎若曰水中之蠏草間之蛛尙爲人愛惜況以石爲姓者於我國爲何如也當壬辰之役也翠華駐於龍灣皂盖馳於鳳城誠岌岌乎其殆哉其時天朝諸公輾然以笑曰外國自相攻擊何敢仰煩大邦惟大司馬石公慵慨以東事自任排甲乙盈庭之論動百萬超距之衆垂德於不報之地志決身殲竟不免於大僇雖使東土黎獻家祭扃戶祝尙不足焉今於滄桑之後有稱汾陽之後淮陰之子則其欣其慽當如何況姓石者乎姑先給料令畿伯東伯誠心採訪使之叅班爲敎云云石繼祖之後孫漢英承召入見于大報壇之齋室旋命閣臣攷實以聞且令訓局御營勸武獎拔未幾漢英不幸夭逝于嗟莫敎之鬼不其餒而大抵我朝之於皇朝崇報之典靡不用極朝宗之門萬東之廟嵬嵬煌煌每於大政銓注之日首下皇朝人收用之敎李㧾兵焉世享其祀麻提督焉闡揚其孫龍光焜燿泉塗無憾而以若石尙書先檢之功自任之勞獨無世其祀闡其孫之擧豈不爲晠世之一大欠典乎漢英旣無後而漢英之從孫數人流寓都下俜仃無托際玆聖化普施之辰俾繼石尙書之絶世則其於以德報德之政更當何如雖於皇朝尋常之人每何惻怛之敎況玆石氏遺苗乎臣等遍被皇朝再造之恩者也風泉之感發於彛性玆敢不避僭猥齊聲仰籲於蹕路之前爲白去乎伏乞天地父母俯垂鑑諒特命該司訪其後裔使之收用石繼祖遺孫以奉石尙書之祀伏蒙天恩爲白良結望良白去乎詮次善啓向敎是事望良白內臥乎事是亦在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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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동틀 녘에 길을 떠나 오산(烏山)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옛 수원(水原)에 들어가 멀리 원소(園所)를 바라보고, 화산(花山) 용주사(龍珠寺)8)에 들어가서 절을 두루 살펴보니 매우 사치스럽고 아름다웠다. 잠시 말에게 꼴을 먹이고, 화옥(華玉)의 시에 차운하고 절구 한 수를 지어 베꼈다. 성진(性眞) - 1자 원문 결락 -9) 성진은 바로 흥양(興陽) 금탑사(金塔寺)10)의 승려인데, 이 절에 와서 머물면서 부처와 승려를 공양(供養)한다고 하였다. 시는 다음과 같다.먼 길을 돌아 천 리를 왔으니(迂路來千里)화산에서 성진을 찾아가 보리라(花山欲訪眞)진정한 도인 석장을 날리고 떠났기에11)(眞飛錫杖去)마음속에 품은 사람 만날 수 없어라(不見意中人)원운(元韻)은 다음과 같다.영주12)에서 온 그대(爾自瀛州至)화산에서 참된 본성을 길렀네(花山養性眞)나 또한 영주의 선비요(我亦瀛州士)- 1, 2자 원문 결락 - 13)(□□塔上人)마침내 채찍을 재촉하여 신수원(新水原)에 이르니 촌락이 조밀하고 인물이 번화함이 작년 봄보다 갑절이나 더했다. 또 영성(營城)의 역사(役事)로 돌을 운반하여 길 좌우에 늘어놓은 것이 10여 리에 걸쳐 있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 군포천(軍布川)에서 묵었다. 平明啓行, 至烏山療飢。 入舊水原, 望見園所, 入花山 龍珠寺, 周觀梵宇, 最極侈美矣。 暫爲秣馬, 次華玉韻, 咏一絶寫性眞養□。 盖眞也, 卽興陽 金塔僧也, 來住此寺, 爲供佛僧云, 詩曰, "迂路來千里, 花山欲訪眞。 眞飛錫杖去, 不見意中人。" 元韻, "爾自瀛州至, 花山養性眞。 我亦瀛州士, □□塔上人。" 遂促鞭至新水原, 村落之稠密, 人物之繁華, 有倍於昨春。 又營城役運石, 列置於路之左右者, 彌亘於十餘里矣。 中火後, 宿軍布川。 용주사(龍珠寺) 조계종의 절로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화산에 위치해 있다. 이 절은 신라 말기인 854년에 염거화상(廉巨和尙)이 지었고, 원래 이름은 갈양사(葛陽寺)였다. 고려 때인 10세기에 확장되었다. 조선 정조 때에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서 정조의 명으로 18세기에 다시 지어졌다. 1자 원문 결락 원문은 '性眞養□'인데, '養'도 결자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금탑사(金塔寺)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에 있는 절로, 신라 선덕 여왕 6년(637)에 원효가 창건하였다가 정유재란 때에 소실된 것을 왕순(王淳)·궁현(窮玄) 대사가 중건하였다. 응진이……가버렸으니 원문의 '응진(應眞)'은 범어(梵語)인 나한(羅漢)을 의역(意譯)한 말로, 진도(眞道)를 터득한 사람을 뜻하며, '석장(錫杖)'은 스님의 지팡이를 말한다. 석장을 날린다는 것은 곧 옛날 고승 은봉(隱峰)이 오대산(五臺山)을 유람하고 회서(淮西)로 나가서는 석장을 던져 공중으로 날아서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전하여 승려들이 정처 없이 이리저리 행각(行脚)하는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游天台山賦)'에 "진정한 도인은 석장을 날려 허공을 밟고 다닌다.[應眞飛錫以躡虛]"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주 영주(瀛州)는 흥양(興陽)의 별칭으로, 고흥(高興)을 말한다. 그 외 고양(高陽)이라고도 한다. 1, 2자 원문 결락 원문은 '□□塔上人'인데, '塔上人'도 결자와의 관계를 알 수 없어 번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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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竹僑鍚斅追挽【十一月初二日十疊】 箕師東渡八條興殷禮靑邱有足徵百世雲孫傳勿墜松燈手鈔細如蠅便覽名書印竹僑林樊樂志賦逍遙兒孫計活都無管圃叟溪丁暮復朝葛衫芒屩謝塵紛石痼泉盲臥白雲已矣當年經濟術菓園培植有空文德門高拱極南星妥怗龜床八十齡裸廟省墳三舍地不依笻力便康寧遐齡耋耄世相傳不賴靑城拘杞泉種德百年天有頰於公純嘏更稱全羽翮高張庇族親模楷旁達洎鄕鄰補苴牽架恒無已用力平居一字仁蘭陔架軸挿層層玉樹繁柯瑞氣凝榜鼓幾鳴南省解文垣一捷上黌升孝思揚先寢不甘星霜裏足抱璚圅貤官表楔平生志繼述今年有肖男月下篁扉警咳音軟雪襟話夜相尋淸濁滄浪無限感鯫生自詡最知心鹵風猨鶴不勝愁人去山空蕙張秋鷄酒竟違蒿里餞蒹葭漢上夢悠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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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陵將事之夜贈別李參奉泰應【臘月三十日一韻二疊】 山窓瀜洩九分春雀噪鳩鳴破寂新鏡裏鬢霜無限感明朝五十七年人典祀官銜春復春小靑門外又迎新無端悵別林齋下泉石關心似故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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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春偶吟【癸亥正月初一日】 颯颯霜華兩鬢邊黑頭游雒已先天傍人莫問年多少三十年今釋褐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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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江享役歸路口占【正月初八日】 去年宗正漢江臯禱雨炎天汗綠袍五日騎郞何苦劇一春王事獨賢勞金冠照耀爭星燭玉珮琳琅和月濤此夜臺銜猶聖渥風稜鶚立更淸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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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날이 밝기 전에 출발하여 소사(素沙)에서 점심을 먹고, 진위(振威) 읍내에서 묵었다. 未明發行, 至素沙中火, 宿振威邑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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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일찍 출발하여 무동정(舞童亭)3)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영귀정(詠歸亭)4)에 이르러 주점(酒店)에서 동행을 기다리다가 잠시 영귀정에 들어가 외종수(外從嫂, 외삼촌의 며느리)를 만나 요기하였다. 용계(龍溪)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곡성 땅이다. 早發至舞童亭朝飯。 至詠歸亭, 留同行於酒店, 暫入歸亭, 見外從嫂, 仍爲療飢。 抵龍溪留宿。 行七十里, 谷城地也。 무동정(舞童亭)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덕산리 소재 죽산 마을로, 지금은 주암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죽산 마을은 풍수지리상 정자 밑에서 아이가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하여 개촌 당시 무동정(舞童亭)이라 불리었는데, 서울 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영귀정(詠歸亭) 순천시 주암면 마전리 영귀마을 마천 양수장 자리에 있었던 영귀당(詠歸堂)으로, 삼탄(三灘) 조태망(趙泰望, 1678~?)의 별장이다. 말년에 화순에서 활동했던 양거안(梁居安, 1652~1731) 등이 남긴 차운시[次趙泰望詠歸亭韻]가 있다. 정자는 이후 사라졌다가 구한말에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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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돈 문제가 급하므로 일찍 일어나 서둘러 묘동(廟洞)으로 찾아가서 공서(公瑞)와 상의하였더니, 말하기를, "구례(求禮) 이 석사(李碩士)와 상의해 보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통지하여 불러와 상세히 의논하였더니, 조금은 도모할 만한 형편이 되어 매우 다행이었다. 내일은 바로 선고의 기일인데, 집안에서 과연 별 탈이 없이 제사를 잘 지내런지 모르겠다.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워 묘동(廟洞)에서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동향(同鄕)의 여러 친구들과 함께 머물렀다. 早起以錢事之急, 促尋往廟洞, 與公瑞相議, 則云"以與求禮 李碩士相議"云, 故通奇請來詳議, 則稍有可圖之勢, 幸幸。 明日卽先考諱日, 而未知家中其果無故安行祀事耶。 心懷難抑, 自廟洞還來主人家, 與同鄕諸益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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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희도원(希到院)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성환(成歡)34)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천안 신(新)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100리를 갔다. 曉發至希到院朝飯, 抵成歡午飯。 抵天安新酒幕留宿。 行百十里。 성환(成歡)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에 있는 읍명으로, 성환읍 성환리에 성환역(成歡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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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닭이 운 뒤에 바람이 심하게 불고 눈이 많이 내렸다. 날이 밝아올 무렵 출발하여 화성(華城)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이포(泥浦)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였다. 우연히 전주(全州)의 마부(馬夫)를 만나 말을 세내어 걸음을 대신하였으니 다행이다. 갈원(葛院)에 이르러 묵었다. 鷄鳴後, 風雪大作。 質明發行, 至華城朝飯, 至泥浦秣馬。 偶逢全州 馬夫, 貰馬代步, 可幸。 至葛院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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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싸늘하였다. 북기막(北機幕)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원터(院垈)에 이르러 묵었다. 남쪽 지방 관행(官行)의 행차에 상일(喪日)을 네다섯 번이나 만났으니, 금년의 운기(運氣)가 참혹함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陰冷。 至北機幕, 中火秣馬。 至院垈留宿。 盖南中官行之行, 喪日逢四五, 今年運氣之慘毒, 從此可知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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