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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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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일 初二日 다시 예조로 가서 곡절을 상세히 묻고, 다시 논의가 있었는가를 재차 물었으나, "없었습니다."라고 답하기에 곧바로 돌아왔다. 종인(宗人) 사수(士洙)가 아침 일찍 와서 보고 갔다. 밤에 비가 왔다. 밥을 먹은 뒤에 복룡(卜龍)이 비로소 와서, "내일 내려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復往禮曹, 詳問委折, 復問有更議云否, 答曰: "無之。" 故卽爲回來。 宗人士洙, 早朝來見而去。 夜雨。 食後卜龍始來云, "以明日下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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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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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4일 卄四日 날이 밝을 무렵 길을 나서 동점(銅店)에서 아침을 먹었다. 우산(牛山)에 들어가 안형중(安衡仲) 형을 조문하고는 이어 점심을 먹었다. 대개 성경이 먼저 이곳에 도착하여 상중인 종매(從妹) 임가(林家) 집에 머물렀기 때문에 함께 길을 나섰다. 낙수(洛水)에 이르러 화옥 숙질과 헤어지고, 천평(泉坪)으로 들어가 묵었다. 平明登程, 至銅店朝飯。 入牛山吊安兄衡仲, 因爲中火。 盖誠卿先來到此, 留其從妹林哀家, 故同與登程。 至洛水, 與華玉叔姪分路, 入泉坪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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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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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5일 卄五日 궁호(弓湖)에 이르자 화옥(華玉)이 와서 머물며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지신(智信)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곡성(谷城)의 동막(東幕)에 이르러 묵었다. 至弓湖, 華玉來留留待矣。 暫話後, 至智信中火, 至谷城 東幕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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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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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與石下和崔愚山憲秀詩韻得一律【己未元夕】 溪上無風煥氣晴新春慰我若多情一山淺笑眉初展百鳥高征羽欲平處處華衫聞喜縣家家綠酒不愁城忽因晝錦旁人祝大覺聞眠兩耳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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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7일 初七日 새벽안개가 진시(辰時 오전 7~9시)까지도 짙게 깔려 있었다. 해가 뜰 무렵에 조겸(趙傔)·홍 첨지(洪僉知)와 서로(西路)31)로 길을 떠났다. 길을 나설 즈음에 죽을 먹고 술을 마시며 참봉과 백건(伯健) 형제와 작별하였다. 말에 올라 사현(沙峴) 전석치(磚石峙), 창릉(昌陵)32) 여현(礪峴),33) 신원(新院)34) 망실치(望賓峙)를 넘어 고양(高陽)까지 5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벽제(碧蹄)·헌음령(憲陰嶺)35)·세류점(細柳店)·신점(新店)을 거쳐 파주(波州) 읍내까지 가서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절구 한 수를 읊었다.서관의 아름다운 풍광 들은 적 있어(西關佳麗飽曾聞)안개 속 채찍을 울리며 백문36)을 나왔네(霧裡鳴鞭出白門)지금 떠나는 향산 천 리 길(此去香山千里路)풍광이 어찌 그리 듣던 대로인가(風光何似所云云)해가 질 무렵에 일행이 상재(喪災)가 생겨 머물 객점에 들어갔는데, 고을 수령이 또한 나와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홍 첨지가 하루 종일 크게 취하여 속된 말을 지껄이니 그 고민스럽고 위태로운 상황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주인집 안방을 얻어 피하여 잠을 잤다. 다행히 별 탈이 없었다. 曉霧至辰時量大塞矣。 平明與趙傔及洪僉知, 作西路之行。 登程之際, 食粥飮酒, 遂別參奉及伯健兄弟。 上馬踰沙峴 磚石峙、昌陵 礪峴、新院 望賓峙, 至高陽五十里, 朝飯秣馬。 自碧蹄、憲陰嶺、細柳店、新店, 至波州邑內留宿。 是日行百里。 口吟一絶, "西關佳麗飽曾聞, 霧裡鳴鞭出白門。 此去香山千里路, 風光何似所云云。" 黃昏時分, 有一行喪災, 入所住之店, 而主官亦出來, 只隔一牕, 而洪也終日大醉, 肆發俚語, 其苦悶危凜之狀, 不可言。 艱得主者內房避宿, 幸得無事耳。 서로(西路) 평안도와 황해도, 즉 관서(關西)와 해서(海西)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창릉(昌陵) 예종(睿宗)과 그의 계비 한씨의 능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龍頭里)에 있다. 여현(礪峴) 홍은동네거리에서 은평구 녹번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이 고개 석벽에 자연동(自然銅)인 속칭 산골이 산출되므로 산골고개라 하고, 여현이라고도 불렀다. 신원(新院) 서울 서초구 원지동과 신원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조선시대에 새로 이곳에 원(院)을 설치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신원동의 서북쪽에 위치하였으며, 새원이라고도 하였다. 헌음령(憲陰嶺) 1864년에 편찬된 《대동지지》에 따르면, 한양에서 의주까지 연결된 간선도로인 의주로(義州路)는 병전거리를 지나 유대소록반현(踰大小綠礬峴)-양철평(梁鐵坪)……벽제역(碧蹄驛)- 헌음령(憲陰嶺)-세류점(細柳店)……. 등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저본의 '瑞'는 '憲'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백문(白門) 본래 서남방의 별칭으로, 도성의 서문이나 남문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이백(李白)의 시 〈양반아(楊叛兒)〉에 "어느 곳이 사람들 맘 가장 끄는가, 까마귀가 우는 백문 버들이라네.[何許最關人, 烏啼白門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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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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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9일 初九日 이른 새벽에 길에 올랐는데 산길이 험악하고 산세가 구불구불하였다. 구금천(舊金川) 읍내에 이르자 비로소 날이 밝아왔다. 계정(鷄井)·두석애(豆石崖) 수문(水門)을 지나 옛 금천을 통하여 저제곡교(猪諸谷橋)를 건넜다. 그 다리 길이는 한눈에도 족히 한 마장(馬場)은 되보였으니, 이곳이 바로 경기와 황해 양도의 경계선이다. 냉정점(冷井店)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인 다음 사곡(蛇谷) 칠현(漆峴), 응봉장점(鷹峯場店) 칠현을 지났다. 평산 읍내 앞에는 태백산성(太白山城)44)이 있었다. 남천(南川) 금교역(金郊驛, 현 황해도 금천군의 역명), 석종발소(石宗撥所)45) 총수(蔥秀)46) 55리를 가서 유숙했다. 凌晨上程, 山路險惡, 山勢縈回。 至金川邑內, 日始明。 過鷄井、豆石崖水門, 通舊金川, 渡猪諸谷橋。 其橋延袤爲, 初見洽滿一馬場, 是爲京畿、黃海兩道之界也。 至冷井店, 朝飯秣馬。 過蛇谷漆峴、鷹峯場店漆峴。 平山邑內前, 有太白山城。 南川 金郊驛、石宗撥所、蔥秀五十五里留宿。 태백산성(太白山城) 황해도 평산군 산성리 태백산에 있는 고구려 때의 돌성이다. 성벽의 바깥 부분은 돌로 쌓아서 만들고 내부는 흙을 채워 지었다. 성벽에는 5개의 치(雉)를, 동서남북의 육축(陸築) 위에는 문루를 세웠는데, 현재 남아 있는 동문과 서문은 조선 시대에 세운 것이다 발소(撥所) 서울과 의주 사이의 길가에 군데군데 있던 역참으로, 정류소라고도 한다. 원래 중국의 역(驛)을 뜻하는 몽골어의 한역어(漢譯語)이다. 1864년에 편찬된 《대동지지》에, '석종발소(石宗撥所)'는 보이지 않고 '석우발소(石隅撥所)'라는 명칭이 보인다. 총수(蔥秀) 저본의 '총수(叢數)'는 황해도 평산(平山)의 '총수(蔥秀)'의 오기인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1권 〈황해도(黃海道) 평산도호부(平山都護府)〉에 총수산(蔥秀山)은 부의 북쪽 30리에 있으며 총수관(蔥秀館)은 중국 사신이 머무르던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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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邑之政將何以盡其方而得其要均豊年之慶歟諸生必有講究于中願聞其說 對愚謹按貨殖傳曰金穰木飢穰則病農蘇子亦曰穀太賤則傷農然則病農傷農固可爲上瑞歟粒米狼戻終有狗彘之不檢商賈遊食乃致蟊蠹之爲弊一斗之價三錢而難酬子母之贏息一畝之出千種而難起雇傭之惰慢以至編戶之持梁富家之連陌未嘗不由於豊則愚以爲無德之豊竟致無災之災矣雖然民農則樸樸則易用易用則四境安主位尊民農則重重則少私義少私義則公法立力專一民農則其産復産復則重徙重徙則死其處而無二慮民舍本而事末則不令不令則不可以守不可以戰后稷曰所以務耕織者以爲本敎也則農者天下之本食者小民之天先王旣思所以厚其生又思所以利其用旣思所以興其利又思所以除其害拳拳致豊之意如此百姓豈有不從事南畝而能致西成哉畢命之資富能訓指其豊也箕範之旣富方穀亦以豊也由此言之則年之爲豊無負於人而享豊之道不以其義則反以爲病農傷農矣愚生長於畎畝之中執此說而以待明問久矣何幸明問之及此耶迺言四年之大有曰豊盖稼穡小人之所依農作終歲之所苦五穀皆登然後可無艱食之患萬物均成然後始有恒産之樂靈芝鳳凰之瑞莫過於占豊景星慶雲之祥不踰於有年有是哉豊年之爲上瑞也是以自古聖君仁主政必先於務農治必貴於獲稔十日雨五日風調順陰陽之氣千斯倉滿斯箱占驗豐登之祥苟有一穀之不登一稼之不成謂有欠於大熟若有匹夫之或飢匹婦之或寒必自反於仁政然而和氣至而雨露風霜得其時則百穀用成乖氣降而旱蝗水澇不得其平則百穀用不成徒知農事之作在乎人而不知農功之成在乎天惟知災祥之降在於天而不知災祥之致由於人則吾之氣不順而天地之氣不順天地之氣不順而農事之祥無以致矣傳曰致中和天地位萬物育後之欲享豊登之樂者盍於致中和三字上勉旃請曰明問而臚列之易之上雷下火盖取豊亨之義詩之多黍多稌斯有豊年之慶若非羲皇之聖德則何以致豊亨乎苟非周王之晟化則曷以臻豊穰乎噫炎皇之耒耨以利天下邰后之播藝粒我烝民則此果由人事也噫元日祈穀年之始也秋成報賽歲之終也其始其終皆循其序也噫貢賦徹助三代之捐益也茨梁坻京曾孫之稼庾也則其制其時不必架床噫魯史之書有年當春秋之際其可多乎周樂之咏屢豊克殷商之餘豈無徵乎噫上古聖世未必皆豊後世亂世亦多有豊則或有天數之適然矣雖曰天數而不稼不穡則何以致豊乎專委人事則或旱或澇而豈可爲災乎大抵豊者天之所以養民也民者國之所託爲本也民事曰農而農者王業之本也故聖王所以財成出治而粒我烝民實由於豊國有蓄積亦賴於豊若是乎豊年之爲美也惟我東方粤自箕聖井田之後八家同井千里通烟洎于羅麗民知食力地無遺利徛歟我祖宗朝聖治以豊爲先務逮我當宁以來歲致屢豊黎民不飢克享大有之慶奈之何今年夏旱爲愆馬不載秧牛不服田終賴圭璧之擧旋致珠玉之慰不失爲豊年之慶而普天之下猶有憾焉則廟堂之籌當議發實藩邑之政必思捐廩救荒之策似不踰於此矣篇將終矣豊年之瑞不可諉之天數亦不可諉之人事惟在得其道而道在中和矣中者天下之大本也和者天下之達道也苟致中和之治則小康之休固不暇論大有之慶亦不足以致矣謹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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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江祈雨遙和東坡韻【五月三十日祈雨祭以執禮出漢江二疊】 畦畛龜坼平背腹纖塵埋沒菜娥足枯苗正似兒失乳老農拊膺愁欲哭此日圭璧仰宸念不待雲漢周詩軸江上祀官何秩秩赤芾邪幅歌采菽祀事肅肅戒文武九重憂民若慈母曉漏步輦親齎香衛卒翩如石鷰舞無限松風吹送凉駁雲堆堆釀甘乳影響一理終難掩江神亦應知聖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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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政策【六月二十一日自宗簿書呈泮中】 王若曰【有國之大政厥目有三曰田賦也曰軍籍也曰還穀也三政之設初豈非經國理民之大柄歟唐虛三代尙矣毋論中國歷朝規矱頓異今當剝膚之憂奚暇遠引博援支離其說乎本朝開國近五百年凡所規畫無非良法美制以言乎田賦則改量之限其歲二十六年之分厥等六九改量不擧分等無別自何時而然歟以言乎軍籍則五衛之制廢而三營設上番之規弛而收布始其得失可得以詳言歟以言乎還穀則自羅濟以來已有之其始未嘗非先王省助之義西京賑貸之政取耗補用固出於不得已之政仍作經費亦有古制之可援歟予非欲廣詢典攷困人於觚墨之間使爲誇該淹較藝術之意也不詳悉源委無以設矯捄之方故略擧其槪而詢之以予所識先爲披露國初三政本是爲國爲民而設田不收賦軍某衛邦穀不議振而能成國者未之有也國不成國民將疇依然則三政不理其責在於君國子民之地法久弊生終古而然今日之政可謂弊到極處矣豪勢兼幷而經界紋矣狡黠逃竄而尺籍虛矣奸猾舞美弄而糴法壞矣民不堪命國將隨傾猶復伈泄不思矯革豈窮則變變則通之義也予欲從頭厘革不患無其說經界紊則將改量而均齊之矣尺籍虛則將査括而塡充之矣糴法壞則將蠲蕩而寬紓之矣捄正之道不外於是第念此擧左右掣礙做說矛盾苟欲改量先務得人次又辨財人才已不逮故而財力從何辨多苟欲査丁宜刷冒稀之幼學又罷投托之閑丁括簽之際易致混淆苟欲蠲還漢家之常平隋氏之義倉皆爲良規取耗穀作經費匪今斯今此非予匪領好用宮室冥樂之費卽是京司外營日支月給之需蠲之固快又將何取而以給其代歟旣不能罷又不能捄其將束手以坐恝視民國之胥阽于危歟鳴呼予以寡德承祖宗遺大投艱之緖忍見祖宗赤子曰趨溝壑中夜繞壁錦玉何安民存然後國可存國存然▣家可存今自廷臣念之及此豈無愓然興歎泫然流涕者乎子大夫子諸生▣有素講于心捄弊之方其各無隱悉涷于策予將親覽焉】臣對於戱粵在皇明稽古定制田制則履畝丈量而有緫圖有魚鱗冊其賦役焉戶二等田二等租二等丁二等役三等也軍制則兼行屯課而內有都督府外有都指揮司其稽覈焉曰見伍曰召募曰徵調曰淸句曰充發也糴制則以備災荒而令各處悉立預備倉擇其地年高篤實者管理每一縣於境內定爲四所而郡縣官以廢擧爲殿最厥初制法非不詳密而嗣後百弊滋興則更張之議紛紜不一賦役則以里從額有預知單之名以田定規有丈量之請以年準課有一條鞭之法其中可採者丈量而丈量云者因區定畝因畝準稅區爲綱畝爲目綱以▣目則無漏畝畝爲毋稅爲子毋以權子則無逋稅損益得中役輸鮮不均之嘆而識者以爲郡邑程日趍工多委諸吏胥之屬得以高下在心則釐▣適爲貽害云軍伍則初自五軍營屢變爲三大營十團營十二營戎政府而衛軍有漏籍之患則歲遣御史淸軍多以充伍爲功枉民滋擾而軍復不堪用矣議之者以淸句有損無益乃罷淸軍御史之差而其害漸弛云荒政則林希元上荒政叢言而有二難三便六急三權六禁三戒之條列周忱定濟農倉之法王建相議杜倉之規有行之者有不行之者夫以皇明用法之峻嚴末流之弊尙患如是何況本朝乎本朝農憲多準皇朝然而文勝乎質姬周之治也仁厚立國趙宋之政也文勝乎質則易致奸僞之滋生仁厚立國則漸見綱紀之不振奸僞滋生綱紀不振則不得不有今日更張之論矣設廳周咨洪範之謀及卿士也臨軒親策漢廷之詔擧敦榛也如傷若保之意藹然於絲綸之表諄複誨諭不翅丁寧惻怛以堯舜上聖之姿舍已而從人好問而好察者猶有望於愚者之千慮一得也歟臣雖草茅蠢蠕之物敢不刳剔心肝仰答洪造之萬一也臣伏讀聖策有曰有▣之大政厥目有三云云臣謹稽帝王之達國親民也分田計口而賦役隨之卽令之田賦也天生五材兵居其一而有▣則有兵故因田賦以定車乘卒伍之制卽今之軍籍也水旱饑饉聖世之亦所不免故以耕二餘一之制設鄕關委積以待艱阨卽今之還穀也國不可無田而有田則有賦國不可無兵而有兵則有籍國不可無穀而有穀則有儲田有賦然後可以有經度之均矣兵有籍然後可以無句括之擾矣穀有儲然後有荒歲無荒民矣田有經度之均則九賦九貢歲得致惟正之供兵無句括之擾則六步六伐人皆曉常習之陳有荒歲無荒民則梁家之移栗秦人之乞糴不亦勞乎禹責之不距朕行壤賦之得正也車攻之有聞無聲師徒之定律也王制之民無菜也倉庫之豫蓄也無野人莫養君子則所可講究者莫先乎田賦迨天未兩綢繆桑土則所可商確者莫急乎軍籍其還穀然則二政豈非國家大關捩乎田賦也軍籍也還穀也分而爲三而統而言之則一也何者有田賦而後所以養軍旅辦糶糴則田賦者三政之綱也有人民以後可以治田疇納土賦則人民者又三政之大原也賦其田者民也籍於軍者民也備糶糴之穀者又民也國非民三政何從而生所謂皮之不存毛將安傳也國之於民如魚之有水燈之有膏人之有血脉是以聖王之政必以保民爲本語田欲嘉穀之茂者先除其惡草民者嘉穀也害民者惡草也威克闕愛非徒師律爲然亦可施之於除惡之政殿下盍於剛克上益勉聖德乎臣伏讀聖策有曰本朝開國近五百年凡所規盡無非良法美制云云臣窃以爲東國制度至本朝而極備譬如大樂之金聲玉振緫貫條理盡善而盡美矣雖三代以上良法美制蔑以過此田制卽夏后氏之則壤成賦也軍制與糴制乃周家之軍旅會同及廩人積貯也以田賦而言則世宗朝癸亥土分六等年分九等而改量之規以二十年爲一限至世祖朝壬午依限年量八路田成宗朝壬子量京畿忠淸兩道之田明年量嶠湖兩南之田再明年乙卯又改量湖南田中宗朝癸未量關東田明年甲申量湖南田宣祖朝甲辰量八路田仁祖朝乙亥量三南田顯宗朝癸卯量京畿田肅宗朝庚寅量關東田己亥量三南田其後列聖朝每有改量之議而至于今未克擧者實聖代未遑之典也以軍籍而言則成宗朝癸巳改軍籍中宗朝己巳又改軍籍而各營門則文宗朝辛未設義興龍驤虎賁忠武忠佐五衛之軍宣祖朝甲午罷五衛設訓鍊都監爲輦下親兵仁祖朝癸亥置御營使而孝宗朝設軍營肅宗朝壬戌減訓局軍㧾以其中部別隊及兵曹精抄軍合設爲禁衛營此皆列聖朝因時制宜也上番收布之制臣未能詳攷年條而最初有騎兵上番之規以兩朔爲一當番每番一千兵內二百五十名爲上番正軍其餘爲保各收布一疋爲番軍資裝未上番者騎步戶保皆收価布而自兵曹雇坊民代番其後又革罷上番捧防番錢此皆載在國典而奧昔先正臣李珥以養兵建請則前此軍政之疎▣可推也以還穀而言則還餉之法刱於高句麗故國川王而糶糴之名昉於勝國成宗之辛卯至本朝開國之初亦有義倉世祖朝丁丑設常平倉莫非古聖王省助之義漢家賑貸之政而耗者取名乎崔鼠之耗也每石以什一條取一斗五升爲耗穀而斂散於民積貯郡邑者厥惟久矣孝宗朝承壬丙之後經用匱竭因廷臣金應祖之建請以爲一切權宜之術盖出於不得已之政而以假借爲名未卽充償至于今仍爲經費者實爲聖朝苟且之政也溯古而論之斂散之術齊以管仲而霸糶糴之利魏以李悝而强後來漢之耿壽▣▣長孫平宋之廣惠倉皇明之豫備倉皆踵此法而行之其曰取耗補用臣實矇眛未敢搜據也臣伏讀聖策有曰國初三政本是爲國爲民而設云云盖國有三政而後國爲國民爲民而三政不擧則國不國民不民矣到今百弊俱興三政有其名而無其實以至民國之俱困厥初爲國爲民之本意果安在哉經界所以分田而兼幷之家橫行則量案錯矣部伍所以詰戒而狡黠之丁逃脫則尺籍枵矣積貯所以備荒而奸猾之更舞弄則倉簿僞矣故田有川浦之徵丁有黃白之簽糴有加疊之斂究竟則國無其利民有其害夫民國一體也害毁於民民不可堪則國可得而安乎窮則變變則通古今之通義也當此之時猶復伈伈泄泄不思矯革之方可乎量案錯而有川浦之徵則當改量而正經界矣尺籍枵而黃甬之簽則當査括而嚴部伍矣倉簿僞而有可疊之斂則毋寧蠲蕩而紓民力矣然而此擧左矛右盾掣肘極矣欲改量則人不逮古而財又難辦欲査括則冒稱之幼學投托之閒丁匪無其人而括簽之際易致混淆欲蠲還則取耗補用匪今斯今京司外營日支月給之需又將何取而以給其代歟旣不能罷又不能捄則將見民國之胥阽于危矣然則如之何其可也傅巾有人此有土有土此有財有財此有用有人有土而患財用者臣未之聞也湯以七十里而王文王以百里而興我國雖僻處海隅地方三千戶口百萬較於戰塗七雄之世則亦足謂萬乘之國也昔羅濟麗三國分據一隅土宇未滿千里然而羅氏制梃而▣島夷之皆濟民可海而割准揚之疆麗氏以蕞爾之衆摧隋唐百萬之師況今統有三國之地而女眞沃沮肅愼靺鞨諸國俱入防域之內人民土地倍蓰於三國以若人民以若土地區區以三政爲憂者得不爲羅濟麗所笑乎先王之良法美制奉若關和先王之孺界區重完如金甌臣妾服役之勞耕織工賈之勤不減于昔鑄山煮海之富魚稻束束栗之饒依然如昨村絶金革之警者數百年矣野穫穗秉之利者數十年矣上而無弋獵聲色之娛下而公卿大臣勳舊戚臣爲國家惓惓忠愛之意每見於奏對論議之間足以致咸五登三之治而民不被其澤者何也上而仁愛之心優於剛斷下而忠厚之風勝於彈駮是故豪强有侵漁之患而置而不問貪墨有椎剝之毒而罰止惟輕噫彼蠹國厲民之流恣行胸臆幣不知畏則雖使劉晏掌財賦蘇綽典戎▣張咏主糴政莫之矯捄也假使今日矯捄得宜三政俱擧豪强之侵漁貪墨之椎剝復如前日則今日之釐弊反爲明日之貽害以臣愚見拔其本塞其源然後可以矯三政之弊矣逃竄之丁目之以狡黠而逃竄之本在於侵漁舞弄之掾名之曰奸猾而無弄之源出於貪墨倘使都邑無侵漁之患則軍人安其業矣豈有逃竄之勞乎無貪墨之政則掾屬服其廉矣敢生舞弄之智乎臣以爲防兼幷之路杜僥僥之門則不患三政之不擧矣兼幷之路侵漁者縱橫之經也僥倖之門貪墨者出入之竇也苟能斷其徑而破其竇則今日除一害明日袪一瘼漸見百病之蘇醒不然而但究三政之末則朝著之上空成聚訟村閭之間反增繹騷有更張之名而無更張之實矣商君之變舊制非不富國而秦以之殘介甫之建新法非不興利而宋以之壞此無他焉不能損上益下之致名曰富國而其民則貧稱以興利而害歸於下民貧則君不能獨富下害則上不可專利是故晋陽之尹鐸損其戶數而趙穫其利酇邑之冉求聚斂益之而魯受其害是皆前代得失之大較際玆聖明之世未必聚斂掊克之臣創出變法興利之說而以臣過慮方今憂虞溢目急於矯捄恐有橫議之生於其間也或者以汰冗官爲言臣則曰不然先王之建官雖閒司漫職各有攸宜官之冗在乎人人不冗則官不冗人有冗則可以汰之而官不可汰矣顧今文蔭武通朝籍之人可謂萬有餘員而官方則統計內外未滿千數常患鬱之不給延頸而跂足者相接而起矣其可以損官方乎或者以減餼廩爲言臣則曰不然百官之貧莫今時若雖上公之祿猶遜於周制下大夫而下大夫以下不足以代其耕則四方游宦之士常患糊口之不贍望君門而長吁者不可勝數其可以損廩祿乎官方不隘則奔競之風歇廩祿有贏則貪鄙之心銷管子曰倉廩實而知禮節衣食足而知營濚辱見今士趍之漸卑未始不由於官方之狹廩祿之瘃也或者以京坊五部之民古有收稅之例爲言臣則曰不然京師四方之根本往者郡邑此此有燎原之弗靖而根本不搖故隨卽撲滅同是民也而京師之民晏然者別非愛戴之忱優於郡邑之民而然也平居無事戶無租調之徵身無庸役之責而各安其業故耳誠或有一毫侵擾之害則其怨懟之心有倍於常稅之遐氓矣雖以一時變通家喩而戶曉其肯曰唯唯諾諾乎根本一搖則莫之能遏殆所謂季孫之憂不在顓臾而在蕭墻之內也如不得已則生財有道大抵豪勢之害有過於奸猾之吏狡黠之丁矣近自畿甸遠曁八埏兼幷之田連于阡百名之日賣買而其實則攘奪矣飮博之浪徒假托公通而蕩覆富族之積産武斷之土豪虛張債券而巧占饒民之沃壤甚者以子弟而竊父兄之契券以女壻而盜婦翁之田庄此皆王法之所不容誅而冒占之田沒于縣官未爲不可以豪勢言之則得之失之本非已物且以見奪者言之積年所失之物寧寧於公快事也亦所願也今若頒一尺之紙於郡縣則旬月之間坐可致數三萬鍾膏腴之田矣然後募願耕者計口分田俾爲永業則歲可收數百萬斛之穀而軍丁也糴穀也自在其中何患狡黠之逃竄乎何勞還耗之補用乎此乃三代上寓兵於農而歷世屯田之良規也人有難於臣曰此刱例也不其近於蹊田奪牛之嫌乎臣則曰昔張橫渠論經界之制而以爲今之病難行者未始不以亟奪富人之田爲辭然玆法之行悅之者衆苟處之有術期以數年不刑一人而可復云云所謂富人之田太半是攘奪之物而生民之貧富不均職田於此橫渠之論盖本於孟子之仁政自經界是而漢代董仲舒限田之議亦此意也不然則抑又有一道焉分遣繡衣於列邑審覈貪汙之吏而其犯贓之物贖納于公府則毋慮爲數百萬之財可以補國家一二年大經費矣不猶愈於取耗補用之苟且乎人有難者曰亦有援据否臣曰人臣之罪莫大乎亂逆而古來大度之君或多寬容而不誅至於害民之贓吏則斷不容貸是贓吏之罪浮于亂逆也亂逆之財産法有籍沒則贓吏所犯之物不可以贖納歟今臣所陳二策皆以捄急而言也不然則矯捄之術緩則緩矣而得民心爲上策得民心在於擇守令苟能綜覈名實信賞必罰善善惡惡皆得其正則斯民也三代之以直道行者也設或有不得已之加徵墨役民皆田國事也君命也屈首聽從必無怨言況愼揀賢能以久任爲限而因循撫摩施措得宜則且無加徵疊役之可言者乎因此以究則威制豪强括兼幷之田者則克而後可也嚴懲貪墨刷犯贓之物者剛克而後可也擇守令而綜覈名實亦剛克而後可也書曰沈潛剛克剛克只在乎殿下一政令之間懋哉▣篇將終矣又撮其大要而仰達焉猗歟我英宗大王臨御五十年常服澣濯之衣珠玉錦繡不留乎心目故太倉之栗陳陳紅腐至于北倉充溢露積鸛鶴巢于其上至今閭巷士庶相傳爲太平美談當時三政亦今日之三政也未聞有更張之擧而何如是致治之隆此盛也雖出於綜覈之政而其本則躬行節儉之效也易曰節以制度不傷財不害民孔子曰節用而愛人苟能節用則寸銖之累可齊邱陵不能節用則一綫之溜終成江何節用然後積小以成大日計不足而月計有餘月計不足而歲計有餘竟致百弊之俱蘇伏願殿下以祖宗爲法恒懋節儉則今日三政何憂古昔之不逮也臣謹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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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菜享役【八月初七日】 浮名一市誤人多白首如今所得何杏樹西風夫子廟愀然斂袵聽絃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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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용전에 머물렀다. 留龍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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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卄一日 화옥이 말 때문에 일을 망치게 되어 내지(內地)로 들어갔다고 하였으므로 다시 용전(龍田)에서 머물렀다. 聞華玉致敗於馬事, 入去內地云, 故更留龍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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毓祥宮秋夕話襟【八月十四日夜】 拜園春復夏登廟又中秋物與年華變人於享帖浮淸譚餘暇在白髮舊情留叙阻如鄕里蒼蒼月滿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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毓祥宮秋分前夜又以享官口號【八月三十日秋分】 白鬚宗正不蕭條役役西風宦味饒罇下祝釐如昨日階前讀笏又今宵錦川橋畔疎星冷紫閣峰頭斷靄消五鼓聲中歸客店松扉一犬吠寥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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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용전재(龍田齋)에서 문회(門會, 문중의 모임)에 참석했다. 參門會於龍田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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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동틀 무렵에 길을 떠나 여산(礪山) 읍내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오후에 삼례(參禮) 10여 리를 지나 다시 말에게 꼴을 먹였다. 곧바로 완부(完府)를 지나 신원(新院)에 머물 생각이었는데, 듣자니 마을에 전염병이 크게 번졌다고 하였다. 쌍정(雙亭)에 이르러 어렵사리 촌가(村家)를 얻어 유숙하였는데, 날은 저물고 또 작두가 없어 장초(長草)를 말에게 먹였다. 平明登程, 至礪山邑內, 秣馬療飢。 午後過參禮十餘里, 更爲秣馬。 直過完府, 將留新院, 聞村染大熾。 至雙亭, 艱得村家留宿而日暮, 又無斫刀, 以長草秣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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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나서 노구암(老狗巖)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잠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임실(任實) 굴암(窟巖)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증산(甑山)에 이르러 묵었다. 未明登程, 至老狗巖朝飯, 暫爲秣馬。 至任實 窟巖秣馬, 至甑山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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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아침에 맑았다가 저녁에 눈이 내렸다. 일찍 밥을 먹고 길에 올랐다. 백정(白亭)에 이르러 약노(若魯) 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즉시 출발하여 추동(楸洞)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눈바람이 크게 일어났지만 눈을 맞으며 길을 나서 가까스로 무동정(茂童亭)에 이르니,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이날 60리 길을 갔다. 朝晴暮雪。 早飯登程, 至白亭, 與若魯氏暫話, 卽發至楸洞, 秣馬療飢。 風雪大作, 冒雪登道, 艱到茂童亭, 日已昏矣。 是日行六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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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대가가 화성(華城)에 거둥하였다. 이른 아침에 주동(注洞) 종인이 찾아와서 만나고 갔다. 천노(千奴)가 근간에 올 것만 같은데, 밤낮으로 몹시 기다려도 끝내 소식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大駕幸華城。 早朝注洞宗人來見而去。 千奴之來似在近間, 而晝夜苦待, 終無消息, 悶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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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三十日 아침을 먹은 뒤에 산양(山陽)의 벗 안사강(安士剛)과 김각(金珏)이 찾아와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갔다. 백건(伯健)이 와서 윤기(尹愭)의 거주지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이우(李友, 이씨 성을 가진 벗)가 자세히 알므로 이우(李友)로 하여금 통언(通言, 의사를 전달함)하게 하였더니 내일 마땅히 찾아가 물어볼 것이라고 하였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食後山陽 安友 士剛、金珏來見, 移時談話而去。 伯健來問尹愭居住及何樣人, 則李友詳知, 故因使李友通言, 則明當探問云, 可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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