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昭寧園天中節又以獻官冒寒享行終夜 冷節歸來病數旬西園享帖又招人三銓不是無情者白首居官恨此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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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비가 왔다. 매우 늦게 출발하여 인주원(仁州院)에 이르러 묵었다. 雨。 最晩發程, 至仁周院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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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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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갑인) 1794年(甲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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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正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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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행장을 꾸려 천노(千奴)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는데 마음이 매우 편치 않았다. 治送千奴還鄕, 而情懷頗不安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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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눈보라 치고 추웠다. 송산(松山)과 윤생(尹生) 두 사람이 와서 보고 갔다. 雪風寒。 松山 尹生兩人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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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僑老人韓錫斅醮甲讌【幷小序】 乙卯三月十三日卽竹僑老人醮甲也古云巹禮不賀回巹之禮亦可賀乎齒雖回巹琴瑟不調則不可賀也琴瑟雖調庭蘭不茁則不可賀也琴瑟調庭蘭茁而家甚窶無以爲禮則亦不可以受人之賀也今竹僑翁齒屆七十有六家室康寧兒孫林立亦有以庠捷鄕貢翩翻貽悅而家且不甚寠矣然則不可以不賀上以賀竹僑翁之享嘏下以賀羣子姓之衍慶云六十年前十六年二姓相姤卽靑春十六年後六十年白首重逢舊吉辰堂中琴瑟樂如何其舊孔嘉復若新春物與人亦孔嘉舊種庭樹花繽繽大兒年紀六十幾中男少男俱五旬孫曾無數立如竹頭角箇箇玉猉麐書櫓筆巢籍有聲餘事桑麻家不貧上堂獻壽餘波足斗酒十千聚比鄰煥苬凉簟錯文綺濶袍長帬圍六親南陔玉樹能餙慶禮云禮云速嘉賓烹炮龍鳳玉爲脂紫駝之峯水精鱗瓊章珠什堆滿床瑞石與之爭嶙峋人間此樂固罕有膾炙羊棗騰萬脣布衣作相不足貴白日昇僊難與倫擧世之人所大欲翁獨不廉享其純借向翁何如脫屣僑坐竹樹寂寥濱耕翁樵叟相低仰不求聞達甘沈淪百家禮䟽探根柢一部山林付經綸苟非得道寧如彼㶊神養氣自有眞韶顔雅齒期不老七十六年康彊身誰道十六加六十猶是先甲靑春人問豐年係生民之大本關國家之永命則豊年之爲瑞顧不大歟易著豊享之象詩有豊年之頌則取象作頌之義皆可明言歟神農敎耕後稷播穀則豊年果是人事之必致歟元日祈穀豊年之爲始也秋成報賽豊年之告功也其始其終皆有其道歟貢賦撤助豊年之定制也茨梁京坻豊年之爲樂也旣有其制則豊年必致於每歲旣有其樂則豊年果在於何時歟春秋之書有年者凡幾大武之樂屢豊者何由上古聖人之世未皆豊年後世昏亂之時或多有豊年則果是天數之適然歟豊年之謂天數則不稼不穡而亦可致豊年歟豊年由人事則或旱或澇而亦可致豊年歟大抵豊年者天之所以養斯民也聖人所以財成出治也粒我烝民由於豊年國有蓄積賴於豊年若是乎豊年之爲美也惟我東方盖自箕聖井田之後雖羅麗之際素稱富厚而徛我祖宗朝治法必以豊年爲先務逮我當宁以來歲致豊年黎民不飢克享大有之慶至於今年邦慶荐疊豊穰無前奈之何夏旱爲愆移秧失節雖賴圭璧之擧旋得慰洽之喜不失爲豊年而不無被災之處已登之處固可足食而受災之處將待拯救廟堂之籌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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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매우 늦게 길을 떠나 과역(過驛)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였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最晩發程, 至過驛秣馬後, 遂還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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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축시(丑時, 오전 01~03시까지)가 지나서 출제(出題)되었다. 이에 '소아의 3편을 익히게 하는 것은 그 처음에 벼슬길을 가르치는 것이다.[宵雅肄三, 官其始也.]'라는 제목으로29) 부를 지어 올렸다. 丑時後出題, 故製進 '宵雅肄三, 官其始'賦。 소아의……제목으로 원문의 '소(宵)'자는 '소(小)'자와 통용하는 것으로, 《시경》의 〈소아(小雅)〉를 가리키며 〈녹명〉, 〈사모〉, 〈황황자화〉는 벼슬살이하며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노래한 시이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소아〉의 〈녹명〉, 〈사모〉, 〈황황자화〉 등 세 편의 시를 익히는데 이는 벼슬살이하며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학생에게 기대한 것이다.[宵雅肄三, 官其始也.]"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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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주동(注洞)의 종인(宗人)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주자장인(鑄字匠人)을 다른 곳에 빼앗겨 사람을 시켜 그 기계(器械)를 빼앗아 오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환전(換錢)을 아직 손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어긋날 염려가 있으니 한탄스럽다.고향 사람 여러 명이 모두 찾아와서 보고 갔다. 전해 듣기로, 산양(山陽)의 안사강(安士剛)이 여점(旅店)에 와서 머물고 있다고 하는데, 병 때문에 가서 볼 방도가 없으니 서글프고 한탄스러운 마음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注洞宗人來見爲言, "鑄字匠人之見奪於他處, 使人往奪其器械"云, 而以換錢之尙未入手, 故事有違之慮, 可歎。 鄕人數輩, 皆來見而去, 傳聞山陽 安士剛, 來留於旅店云, 而病無往見之道, 悵歎何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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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사동(沙洞)의 최생(崔生)이 찾아와서 만났다. 상원(尙元)이 주동(注洞)으로부터 와서 말하기를, "한창 간행(刊行) 중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가서 만날 길이 전혀 없으니, 한탄스럽다. 沙洞 崔生來見, 而尙元自注洞來言, "方張刊役"云, 而萬無往見之道, 可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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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어제부터 마음에 번민스러운 증세가 있어서 이른 아침에 팔선(八仙)을 김 주부(金主簿) 집에 보냈더니, 답하기를, "간병(看病)하기 위해 나갔다가 3일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라고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왔으니 한탄스럽다. 우선 소생(蘇生)과 강생(姜生) 두 사람이 돌아가겠다고 고하였기 때문에 가서(家書)를 부쳐 보냈다. 自昨日中焦似有煩悶之症, 故早朝送八仙於金主簿家, 則答云 "看病次出去, 已三日 不來云," 故不得已空還, 可歎。 姑蘇、姜兩生告歸, 故付家書以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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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인일제(人日製)1)를 행하였다. 行人日製。 인일제(人日製) 성균관의 원점 유생(圓點儒生)을 대상으로 인일인 1월 7일에 보는 제술 시험이다. 특교(特敎)가 있을 경우에만 방외 유생(方外儒生)까지 통틀어 시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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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주인 영감이 지영(祗迎)2)하는 일로 의금부(義禁府)에서 추고3) 중에 있었기 때문에 이 석사(李碩士) 형제 및 귀악(龜岳)과 함께 의금부의 의막(依幕)에 함께 가서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정동(貞洞)에 들러 종인(宗人) 익상(翼庠)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감기가 끝내 쾌차하지 않았으니 한탄스럽다. 主人令監, 以祗迎事, 在禁推故, 與李碩士兄弟及龜岳, 同往禁府依幕, 終日談話, 而來路入貞洞, 見宗人翼庠, 暫話而來。 感氣終不快差, 可歎。 지영(祗迎) 아래 관원이 아침에 윗 관원을 공손히 맞이하던 예(禮)를 말한다. 의금부(義禁府)에서 추고 '금추(禁推)'는 의금부에서 죄인을 심문하던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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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서반(西泮) 김재광(金再光)의 집에 들어갔다. 오후에 다시 예조에 갔다가 신시(申時, 오후 3시~5시까지) 무렵에 과장(科場)으로 들어가 밤을 새웠다. 入西泮 金再光家, 午後復來禮曹, 申時量入場中達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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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이른 아침에 상원(尙元)이 와서 말하기를, "고향 사람 중에 내려가는 인편이 있습니다."라고 하였으므로 집에 보낼 편지를 써서 전하여 부칠 계획이었다. 아침을 먹은 뒤에 반촌(泮村)으로 가서 박 상사(朴上舍)의 소식을 물었더니, 나갔다고 하기에 북사동(北寺洞)으로 방향을 돌렸다. 복숭아꽃이 온 산을 뒤덮어 참으로 그림속의 강산 같고 비단으로 산골짜기를 수놓은 듯하였다. 종일토록 오르내리면서 회포를 풀다가 왔다. 早朝尙元來言, "有鄕人下去便。" 故修家書傳付之計。 食後往泮村, 問朴上舍消息, 則出去爲言, 故轉向北寺洞。 桃花遍山, 眞畵中江山, 錦繡溪壑也。 終日上下, 暢懷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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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차동(車洞)의 내행차(內行次, 부인의 행차)가 해영(海營, 황해도 감영)으로 출발하였는데, 궐문 밖 지척에서 머물고 있으면서 경욱(景旭), 현숙(顯叔)과 작별을 하지 못하였으니, 그 병의 위중함을 알 수 있다. 車洞內行次 發向海營, 而留在門外咫尺之地, 不得與景旭、顯叔作別, 其病之重, 可知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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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동틀 무렵 길에 올랐다. 강을 건너 이문동(里門洞)17)에 이르러 이 석사와 작별하고 주인댁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주인댁 내행차(內行次, 부인의 행차)가 아직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렀다. 平明登程。 渡江至里門洞, 與李碩士相別, 至主人宅朝飯。 主人宅內行次, 尙不下去, 故因留焉。 이문동(里門洞)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에 이문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우리말로 '이문골', '이문안'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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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18)에 가서 종친들을 만나고 왔다. 朝飯後, 往鑄洞, 見僉宗而來。 주동(鑄洞) 서울특별시 중구 남학동・예장동・주자동・충무로2가・충무로3가・필동1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이곳에 조선시대에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 내던 주자소(鑄字所)가 있었기 때문에 주잣골이라 하고, 한자명으로 주자동이라 하였으며 줄여서 鑄洞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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