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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이른 아침에 칠패(七牌)에 가서 윤 생원(尹生員)을 만나 대략을 말한 뒤에 곧장 팔선의 집에 와서 머물렀다. 早朝往七牌見尹生員, 略言大槩後, 卽爲來留於八仙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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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瑩傳 崔瑩者高麗司空崔惟淸五世孫也狀貌魁偉以膂力少隸楊廣軍爲列士恭愍王元年趙日新作亂瑩與安祐崔源擊斬之拜護軍三年從元丞相脫脫伐高郵三十七戰皆勝之又禦賊于准安和泗之間大戰斬首虜甚衆還擊倭大破於西海八年紅頭陷西京瑩爲西北邊兵馬使伐賊有功拜西京尹十一年合諸將兵二十萬人伐沙劉關先生斬之賊衆死者十餘萬人遂復京城十二年金鏞謀擧兵犯興王行宮瑩急擊賊盡殺之拜門下贊成辛旽嫉之讚王貶爲鷄林尹尋削官放流之二十年有倭寇急召拜六道都巡察掌點陟諸將不用命者皆令自斷明年爲楊廣全羅慶尙諸都統使發三道兵二萬五千伐濟州叛者胡石迭里必思古肖禿不花觀音甫等平之禑二年擊倭於鴻山破之又大戰於海豊大破之倭中相戒曰畏避白首崔萬戶云十年拜侍中謝病上都統印綬乞解兵柄禑不許十四年我太上回軍以瑩決策攻遼囚巡軍鞫之流忠州竟斬之瑩初居鐵原年十六父元直臨終戒曰見金如石瑩佩服遺訓不事産業服食儉素其視乘肥衣輕者如犬豕然每臨陣對敵神氣安閒矢石交於左右略無懼色戰士却一步者斬之期以必勝以故御軍三十年大小百餘戰所向有功未嘗一敗國賴以安民受其惠久爲將相手握重兵而關節不到世服其淸務持大體不究細理終身掌兵麾下軍士所識面者不過數十每赴都堂正色直言不少隱左右無應者獨自唏噓而已嘗語人曰吾於國事中夜思之詰朝語同列則旡與我同志者不如致仕閒居然性少戇不學無術凡事斷以己意及其衰耗識慮顚錯妄興攻遼之師尹紹宗論曰功盖一國罪滿天下世以爲名言臨刑辭色自若嘆息曰我生不作惡業無過而死我死草不生塚死之日都人爲之罷市遠近聞者至街童巷女皆爲之流涕棄屍於道行者皆下馬而過之都堂賻米豆百五十石布百五十疋其塚在高陽謂之赤塚洪州三峯有崔瑩祠其神最靈能作禍福殃慶有慢不敬者立死鄕之人驚恐嚴祀之又立迎神望神之祠瑩死之年禑亦見廢四年麗氏遂不祀後謚武愍贊曰麗之典法卽舍上疏論崔瑩曰事我玄陵定亂興王驅僧北鄙逮奉上王却倭寇于昇天以存社稷盪羣匈於今春以濟生民誠社稷之臣也然闇於大體不顧羣議決策攻遼獲罪天子幾至覆國前功盡棄願殿下斷以大義亟命決罪云是疎也果出於輿憤乎或者以爲瑩不死麗亦不亡抑未可知也中朝官人語李穡曰汝國崔瑩將精兵十萬而李某執之易如捕蠅李某罔極之德汝國之民何以報之云瑩雖不死其如天何雖然瑩百戰百克未嘗一挫盡心所事正色直諫節儉淸素家無儋石及死之日使遠近之人罷市巷哭苟非大過於人其能若是乎吁崔武愍其亦人傑也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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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十二驛 丹邱驛在營門南五里原州仇火督郵所住處東軒曰羽化堂門樓曰挾仙樓官橋曰駕鶴橋橋之北十餘步有鍊丹亭亭廢有址村居可過數百餘戶士庶良賤雜錯相隣良田膏沃宜禾稌木棉女紅尙蠶桑雉岳在東白雲在南前後左右多士族家邱墓之地上等馬二疋中等馬一疋下等馬七疋【吏額十五馬戶十通引五六閑散吏四十急唱奴二使令奴四庫直奴一房子二婢子四】神林驛在丹邱南四十里原州仇火有院宇冷落路傍人家不過十數戶西北五里許有營門屯倉南數十里許有橫嶺卽湖西提川縣境橫嶺外椵嶺其南義林池云東十里杻嶺走酒泉之路下等馬三疋新興驛在神林東四十里原州仇火峽間村宇纔爲十餘戶東五里有酒泉淸虛樓臨江照耀村有原州東倉及士族家甍宇民物鮮硏新興賴酒泉而頗不草草然而沿路支站多受其害云上等馬一疋楊淵驛在新興東南六十里寧越仇火村有寧越西倉賴而頗不蕭條人居可爲三十餘戶東五里許有角汗峙峙下卽淸冷浦登峙而可望魯陵火巢村後山西往往有石窟深暗不見底問諸郵人皆不能知上等馬二疋中等馬一疋下等馬五疋延平驛在楊淵東三十里寧越仇火距邑治十里村居纔爲八九戶而峽中計活甚貧薄云自越東走旌善三陟之路上等馬一疋藥水驛在新興東五十里自延平西北三十里平昌仇火東居邑十里西五里有叱馬峙十里有去時利峙山下十室未免蕭條以蕎麻爲業北三十里有舟峙走江綾之路上等馬一疋下等馬五疋平安驛在藥水東四十里平昌仇火峽裏計活稍優於藥水云十餘里有山篝火縋石可治爲硯卽平昌石硯是也下等馬二疋碧灘驛在平安東三十里旌善仇火山中村樣稍勝云下等馬三疋好善驛在碧灘東二十里旌善仇火去邑相近而郵樣酸薄云下等馬二疋餘粮驛在好善東三十里旌善仇火南化外驛中最優者而去年有回祿之災人物産業多被燬燼云山有石可治爲磨巖下往往多蜂筒大抵山東之俗以釀蜜漚麻爲生涯云上等馬二疋下等馬四疋臨溪驛在餘粮東三十里江陵仇火民物不甚殘薄云上等馬一疋下等馬二疋高丹驛在餘粮東北三十里自臨溪相距十里江陵仇火郵樣頗遜於臨溪而亦不甚簫冷云中等馬一疋下等馬二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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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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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이른 아침에 복룡이 돌아가기를 고하므로 집에 보낼 편지를 부쳐 보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으로 가서 종일토록 이야기하다가 왔다. 早朝卜龍告歸, 故付送家書。 食後往鑄洞, 終日談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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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꼭두새벽에 길을 나서 갈산(葛山)까지 6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동작(銅雀)을 건너 청파(靑坡)에 들어가 묵었다. 曉頭登程, 至葛山六十里, 朝飯秣馬。 渡銅雀, 入靑坡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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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차동(車洞)에서 머물렀다. 사수가 찾아와서 보고 돈 한 냥을 주었다. 留車洞。 士洙來見, 給一兩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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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차동에 머물렀다. 留車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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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九日 차동에 머물렀다. 동향 여러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므로 약간의 글을 써서 집에 소식을 부쳐 보냈다. 아침을 먹은 뒤에 근동(芹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自曉頭雨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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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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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비가 내렸다. 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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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꼭두새벽에 밥을 먹고 궐문 밖에 갔다. 박씨 척족(戚族)도 모두 와서 모였는데 오늘은 바로 삼일제(三日製)17)가 있는 날이다. 동이 틀 무렵 돈화문(敦化門, 창덕궁 정문)으로 들어가 진선문(進善門)18)에서 숙장문(肅章門)19) 앞까지 장막을 설치하고 좌정(坐定)하였다. 잠시 뒤에 인정전(仁政殿)20)으로 들어오라는 명이 있었기에 인정문(仁政門)21)으로 들어갔다. 동편의 인정전 월랑(仁政殿月廊)22)에 앉아 '근원이 있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 밤낮으로 흘러서 구덩이를 채우고 난 뒤에 나아가 사해에 이른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23)라는 부제(賦題)24)로 부(賦)를 지어 올렸다. 대개 경과(慶科)25)를 치르는 날이라서, 팔도의 과유(科儒)들이 모두 전정(殿庭)에 모였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曉頭食飯, 往闕門外。 朴戚亦皆來會, 而是日乃三日製也。 平明入敦化門, 自進善門, 至肅章前, 設幕坐定。 有頃有入仁政殿之命, 故入仁政門。 坐東邊月廊製進,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進, 放乎四海'賦, 而盖當慶科之日, 八道科儒, 咸集殿庭, 其數夥多, 不可言矣。 삼일제(三日製) 유생의 학문을 장려하기 위하여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제술 시험으로, 절일제(節日製)의 하나이다.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 관각(館閣)의 여러 당상관이 성균관에 모여 거재생(居齋生)과 지방 유생에게 제술(製述)만으로 시험을 보인다. 진선문(進善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錦川橋)를 건너면 나오는 중문(中門)이고 창덕궁 창건 무렵에 세워졌으며 1908년 인정전 개수공사 때 헐렸다가 1999년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숙장문(肅章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통과하여 금천교(錦川橋)와 진선문(進善門)을 지나면 진선문 맞은편에 나오는 중문(中門)이다. 숙장문은 성종 6년(1475) 좌찬성 서거정이 지어 올린 이름을 성종이 낙점하여 사용된 이름으로, 일제에 의해 헐렸다가 1996년 시작된 복원공사를 통해 재건되었다. 인정전(仁政殿)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 조정의 각종 의식이나 외국 사신의 접견을 하던 곳이다. 인정문(仁政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에 이르는 정문으로, 국왕 즉위식이 거행된다. 인정문은 태종 5년 창덕궁의 창건 때 다른 전각들과 함께 지어졌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인정전 월랑(仁政殿月廊) 월랑(月廊)은 궁궐이나 사찰과 같이 규모 있는 건물에서 앞이나 좌우에 줄지어 만든 건물을 지칭한다. 비슷한 의미의 말로는 행랑, 행각, 상방이 있다. 기둥과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는 복도 모양의 형식을 갖춘 것도 있고, 건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종묘의 월랑은 익실의 끝에서 직각 방향으로 연접한 건물을 말한다. 근원이……이른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나오는 구절로, "근원 있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 밤낮으로 흘러서 구덩이를 채우고 난 뒤에 나아가 사해에 이른다. 학문에 근본이 있는 자가 이와 같은지라 이 때문에 취한 것이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하였다. 이는 사람이 실제 행실이 있으면 그만두지 않고 점차 진보하여 지극한 경지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일성록》 정조 18년 갑인(1794) 2월 21일(기묘)에 "인정전에 나아가 삼일제를 행하였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부제(賦題) 과거를 보일 때 과문(科文)의 부(賦)를 지으라고 내는 글제목이다. 경과(慶科)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시로 보이는 과거이다. 이는 특별히 대궐 뜰에서 보이므로 정시(庭試)라 하며 문무과(文武科)에 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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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차동에 머물렀다. 동향 여러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므로 약간의 글을 써서 집에 소식을 부쳐 보냈다. 아침을 먹은 뒤에 근동(芹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留車洞。 同鄕諸人皆下去, 故付送家信若干字。 食後往芹洞,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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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일찍 출발하여 사곡(蛇谷)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야당(野塘)에 이르러 묵었다. 早發至蛇谷, 中火秣馬。 至野塘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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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꼭두새벽에 길을 떠났다. 사교(沙橋)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효포(孝浦)에 이르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曉頭發程。 至沙橋, 中火秣馬。 至孝浦, 日已暮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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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새벽에 길을 나서 중진원(中津院)6)에 이르렀는데 수해가 크게 일어나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증산(甑山) 주막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올 여름의 물난리 때문에 길이 몹시 험악해져서 주포(周浦)에서 오수(獒樹)7)까지 종일토록 걸어갔는데, 길 좌우로 보이는 수해의 참상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농사 작황도 좋지 않아 흉년을 면치 못한 것처럼 보이니 백성들의 사정이 가련하였다. 임실(任實)의 야당리(野塘里)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80리를 갔다. 曉頭登程, 至中津院, 水瘴大發, 咫尺不辨矣。 至甑山酒幕, 秣馬中火。 以今夏水破之故, 道路極惡, 自周浦終日徒步, 至獒樹, 則沿路水破之狀不可言。 且農形不登, 所見未免歉歲, 民事可憐。 至任實 野塘留宿。 是日行八十里。 중진원(中津院) 중진(中津)은 순자진(鶉子津)으로, 곡성군 북쪽으로 10리 되는 남원(南原)경계의 대로(大路)에 있었고, 순자원(鶉子院)은 순자진(鶉子津) 언덕 위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섬진강을 건널 수 있게 설치된 중진원교(中津院橋)가 있었다. 오수(獒樹)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으로, 과거 역참이 있던 지역이다. 역참일 당시 오수역은 남원, 구례, 광양, 순천 등 호남 지역의 역참을 관할하던 대형 역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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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또 동가(動駕)한다는 기별을 듣고 칠패(七牌)로 갔더니 이미 명을 거두셨으므로 즉시 돌아왔다. 저녁에는 비가 왔다. 又聞動駕之奇, 往七牌, 則已寢令, 故卽爲還來。 夕間雨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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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주동(鑄洞)에 가서 송별하였는데, 용강(龍岡) 아객(衙客)42)이 내려오고 여러 사람들이 왔다. 往鑄洞送別, 龍岡衙客之下來, 諸人而來。 아객(衙客) 고을 수령을 찾아와 지방관아에 묵고 있는 손님을 이르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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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아침을 먹기 전에 청배(靑排) 상원(尙元)의 집에 갔는데, 흥양의 소식을 알고 싶어서 온 것이다. 밥을 먹은 뒤에 죽사(竹寺) 신종재(申宗才)가 지방군[鄕軍]으로 어제 들어와 가서(家書)를 전해 주었는데, 별 탈 없이 무사하다는 소식이어서 여러 달의 근심스럽던 마음을 조금 풀 수 있었다. 食前往靑排 尙元家, 欲探興陽消息而來矣。 食後竹寺 申宗才, 以鄕軍昨日入來, 來傳家書, 卽平信也, 稍解累月愁悶之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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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날씨가 조금 풀렸다. 이날 주동(注洞)에 가서 보청주인(譜廳主人)을 만나서 종현(鐘峴)에 함께 갔다가 송 교리(宋校理)를 만나고 돌아왔다. 日氣稍解。 是日往注洞見譜廳主人, 因與同往鐘峴, 見宋校理而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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