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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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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昌基天中節享役【墓在崇禮門南五里二疊】 齋宇幽寥以佛棲九分山色一分溪林間小鳥何心緖盡日徘徊羽翮低短草麤沙路不微林風自動淡霞飛山中此飮葛醪否五見端陽客未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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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아침 전에 천노(千奴)를 데리고 예조(禮曹)에 가서 안리(安吏, 성이 안씨인 아전)를 만났다. 대개 성상께서 시호를 내려 주도록 재촉하신 지가 이미 여러 날이 되었는데, 흥양 본관 정만시(鄭萬始)19)가 응교(應校)가 되어 15편의 시장(諡狀)20) 중 다섯 사람의 시호만을 행하고 우리 선조의 시호는 준비해 두지 않았으니 가탄스럽다. 그길로 주동으로 가서 종친들과 종일토록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예조 안리(安吏)와 약속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저물 무렵에 다시 예조에 갔으나 이 좌상(李左相)·황 판서(黃判書)·판서 이익정(李益炡)21)·공서린(孔瑞麟)22)·제말(諸末)23) 등 다섯 사람의 시호와 시사(施舍) 낙점이 아직 내리지 않았기에 나와서 차동(車洞)24)에 머물렀다. 朝前率千奴往禮曹見安吏。 盖自上催促賜諡之擧已多日, 而興陽本官鄭萬始爲應校, 十五諡狀中, 只行五人諡號, 而吾先祖不預, 可歎。 因往鑄洞, 終日談話, 盖其禮曹 安吏有約故也。 日暮時, 更往禮曹, 則李左相、黃判書、李判書益炡、孔瑞麟、諸末五人諡號及施舍落點, 尙不下矣。 因爲出來, 留車洞。 정만시(鄭萬始) 1745~1800. 자는 일지(一之), 호는 정와(靜窩),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경기 출신으로 1782년 임인알성시에 과거에 급제를 하였으며, 주요 관직은 삼사 이랑( 三司 吏郞)을 지냈다. 시장(諡狀) 죽은 뒤에 자손들이 시호(諡號)를 조정에 청할 때 죽은 사람의 일생 동안의 행적(行蹟)을 기록하여 적은 글이다. 이익정(李益炡) 1699~1782.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숙(明叔)이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현손이며, 밀창군(密昌君) 이직(李樴)의 아들이고, 영조 때 공조 판서를 지낸 이성규(李聖圭)의 아버지이다.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공서린(孔瑞麟) 1483~1541.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희성(希聖), 호는 휴암(休巖),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기묘사화 때 투옥되었으며, 그 후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선비들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여러 번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대사헌, 황해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제말(諸末) 고성(固城)의 천민(賤民)으로, 임진왜란 때에 웅천(熊川)·김해(金海)·정암(鼎巖) 등지에서 대승(大勝)을 거두었다. 그 공이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조정에 알려져 성주 목사(星州牧使)에 제수되었으나,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죽었으므로 공적을 크게 나타내지 못하였다. 제말에 대한 내용은 성주(星州)의 《선생안(先生案)》에 실려 있다. 정조(正祖) 때에 병조 판서에 추증(追贈)되었다. 차동(車洞) 중구 의주로1가・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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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임자) 1792年(壬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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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九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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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동틀 무렵 길을 나서 유천(柳川)까지 4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과천(果川, 경기도 중남부에 있는 시)까지 50리를 가서 묵었다. 平明登程, 至柳川四十里, 朝飯秣馬。 至果川五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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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밤에 비가 내렸다. 동틀 녘에 길을 나서 광정(廣亭)12)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공주(公州) 신점(新店)에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금강(錦江)의 물이 불어나 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다고 하니, 매우 염려스럽다. 길을 재촉하여 나루터에 이르자 배가 이미 도착해 있어서 다행이었다. 즉시 배에 올라 중류(中流)에 이르자 풍랑이 크게 일어 파도가 배 안으로 들이쳤는데, 배가 썩고 낡아서 사방으로 물이 새니 그 두려운 상황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가까스로 강을 건넌 뒤 서둘러 채찍질하여 효포(孝浦)에 이르러 술을 사 마시고 요기를 하였다. 중도에 고읍(古邑)의 김 생원(金生員)을 만나 흥양(興陽)의 소식을 물었으나, 전혀 알지 못하니 한탄스럽다. 판치(板峙)에 이르러 해의 형세로는 정천(定川)까지 갈 수 있지만, 그곳은 시기(時氣)13) 때문에 정결한 집이 없다고 하므로 어쩔 수 없이 판치(板峙)에 머물렀다. 밤에 위 아랫집들을 보니 모두 등불을 밝히고 한밤중에 죽을 끓이고 있었는데, 모두 병을 앓고 있는 집들이었다. 이날 90리를 갔다. 夜雨。 平明發程, 至廣亭朝飯, 公州 新店秣馬。 聞錦江水漲, 渡江未易云, 極可慮也。 催行至津頭, 則船已到泊, 可幸。 卽卽上船, 至中流, 風浪大作, 波濤跳入船中, 而船且朽傷, 四邊水漏, 其悚惧之狀, 不可言。 艱辛利涉, 促鞭至孝浦, 沽酒療飢。 中路逢古邑 金生員, 問興陽消息, 則專然不知, 可歎。 至板峙, 日勢則能進定川, 而時氣無一家乾淨云, 故不得已, 留板峙矣。 夜見上下家, 皆明燈中夜煎粥, 俱是方痛之家也。 是日行九十里。 광정(廣亭)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시기(時氣) 때에 따라 유행하는 상한이나 전염성 질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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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또 몹시 추웠다. 대체로 금년의 추위에 대해 모두들 근래에 처음 있는 추위라고 했다. 요통이 그치지 않았는데, 또 감기까지 겹쳐 몸이 오한으로 심하게 떨렸다. 이에 어쩔 수 없이 팔선(八仙)의 집을 청해 얻어서 불을 많이 때고 땀을 흘리자 한기는 조금 줄어들었으나 허리 병은 그대로였다. 又極寒。 大抵今年之寒, 皆云近來初有云。 腰痛不止, 又患感氣大寒戰, 故不得已, 請得八仙家, 多爇取汗, 寒氣小減, 而腰病自如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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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추웠다. 아침을 먹기 전에 칠패(七牌)에 가서 생원 윤열(尹烈)을 만나 우리 집안의 세덕(世德)을 언급하고, 오는 길에 곧바로 근동(芹洞)으로 가서 벗 이건(李健)〮·이순(李順) 형제를 만났다. 또 이 흥양(李興陽)을 만나고 왔다. 寒。 食前往七牌見尹生員 烈, 言及吾家世德, 而來路直向芹洞, 見李友健順伯仲。 又見李興陽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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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요통(腰痛)이 매우 심했으나 가까스로 근동(芹洞)에 가서 이 흥양(李興陽)을 만났다. 또 칠패(七牌)에 갔으나 윤 생원(尹生員)을 만나지 못하고 왔다. 이날은 몹시 추웠다. 腰痛大發, 艱往芹洞見李興陽。 又往七牌, 不見尹生員而來。 是日極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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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행장을 꾸려 서울로 출발할 때에 남촌(南村) 형님과 삼정(森亭) 두 이종(姨從)형님이 와서 머물다가 작별하였다. 비가 그친 뒤에 길을 나서 과역(過驛)1)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봉포(鳳浦) 송 도감(宋都監)이 찾아와서 만났다. 오후에 길을 나서 용전(龍田) 나주댁에 이르러 묵었다. 재동(齋洞) 초천(艸川) 형님과 순천 손님이 해질 무렵에 와서 머물렀다. 이날 50리를 갔다. 治發京行時, 南村兄主及森亭兩姨從兄主來留作別。 雨歇後發程, 至過驛中火秣馬。 鳳浦 宋都監來見。 午後上程, 至龍田 羅州宅留宿。 齋洞 艸川兄主及順天客, 黃昏來留。 是日行五十里。 과역(過驛) 전라남도 고흥군(高興郡) 과역면(過驛面)의 마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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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맑았다. 아침 전에 군배(君培)와 윤급(允乃) 씨가 찾아와서 만났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덕철(德哲)도 왔다 갔다. 오후에 죽동(竹洞)에 이르러 묵었다. 晴。 朝前君培及允乃氏來見。 食後德哲亦來見而去。 午後至竹洞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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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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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함께 머물렀던 염상(鹽商)에게 짐을 지게하고 동틀 무렵에 출발하였다. 낙수(洛水)에 이르러 공서와 헤어지면서 절구 한 수를 읊었다.객지에서 우연한 만나니 기약했던 것보다 기쁜데(客地偶逢勝有期)중양절이라 누런 국화꽃마저 한창이네(維當重九菊花時)한 달 남짓 함께 고생하여 서운한 맘 사무치니(月餘同苦猶餘愴)이별에 임하여 다시 석별의 시를 읊노라(臨別還成惜別詩)공서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중도에서 만나자는 기약도 없이 만나(中路相逢以不期)저물면 머물고 새벽에 길 떠나기를 각각 때를 따랐네(夕留晨發各隨時)동행하여 동종의 정의가 배나 간절한지라(同行倍切同宗誼)이별에 임하여 몇 구의 시를 읊어보노라(臨別吟來數句詩)또 내가 한 수를 읊었다.다리 가 갈림길에 흰 구름이 일어나고(別路橋邊起白雲)낙엽 진 이별의 정자에서 헤어짐이 애석하네(離亭葉下惜相分)재삼 우두커니 서서 앞으로 가는 길 물어보고(再三立立前頭問)강가로 고개를 돌리며 어서어서 가시라 하네(回首江頭早早云)공서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고개 돌려 남쪽 팔영산의 구름 바라보다(回首南看八影雲)걷고 걷다 낙수에 와서 함께 온 길 갈라지네(行臨洛水路相分)동쪽 강물 하나의 띠처럼 넘실넘실 흘러가는데(東流一帶洋洋去)누구에게 이별하는 심회의 장단시를 말할거나(誰與離懷長短云)그길로 작별하였는데, 천리 길을 함께 고생을 한 뒤라서 그 서운한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길을 재촉하여 낙안의 기동(基洞) 어귀 정문등(旌門登)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주막 앞에서 여러 차례 이경오(李敬五)를 불렀는데 끝내 답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기별을 통하게 하였으나 경오(敬五)는 출타 중이고, 그의 대인(大人, 경오의 아버지)이 문 앞에 서서 내가 바로 지나가는 것을 알고는 내게 그 집에 들어가 묵어가기를 청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갈 길이 바쁜 탓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령(西嶺)을 넘어 추동(楸洞) 주막에 이르렀다. 염상(鹽商)과 서로 헤어지고 나서 짐을 지고 벌교 시장 근처에 이르러 윤동(輪東) 군직(君直) 씨를 만나서 동행하였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밤을 틈타 용전(龍田) 무안(茂安) 댁에 들어가 유숙하고 나서야 비로소 집안 소식을 알게 되었다. 우선 별탈이 없다고 운운(云云)하니 매우 다행이었다. 90리를 갔다. 負卜於同留鹽商, 平明發抵洛水。 與公瑞相分, 仍吟一絶曰: "客地偶逢勝有期, 維當重九菊花時。 月餘同苦猶餘愴, 臨別還成惜別詩。" 公瑞次曰: "中路相逢以不期, 夕留晨發各隨時。 同行倍切同宗誼, 臨別吟來數句詩。" 又吟一絶曰: "別路橋邊起白雲, 離亭葉下惜相分。 再三立立前頭問, 回首江頭早早云。 " 公瑞次曰: "回首南看八影雲, 行臨洛水路相分。 東流一帶洋洋去, 誰與離懷長短云。" 仍與作別, 千里同苦之餘, 其懷難抑。 促行抵樂安 基洞前旌門登療飢。 於幕前頻呼李敬五, 則終不答, 故使人通奇, 則敬五出他, 其大人立于門前, 知余之直過, 請余入于其家留宿而去云云, 而以行忙之致, 不得入去, 越西嶺, 抵楸洞酒幕。 與鹽商相分, 仍爲負卜, 抵筏橋市邊, 逢輪東 君直氏, 仍爲同行, 日已暮矣。 乘夜入龍田 茂安宅留宿, 始知家間消息。 姑無故云云, 幸幸。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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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가교(柯橋) 댁에 갔다가 머물다 가라 붙잡았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렀다. 食後往柯橋宅, 以挽留之致, 仍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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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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懿昭墓享役漫吟【忌辰三月初四日墓在敦義門西南五里】 笙鶴▣山幻影空無情綠草又東風蒼凉畵閣松陰下掩暎寒橋澗籟中翁仲百年愁欲老子規三月染何工先王寶黑今如昨怊悵穹碑字刻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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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中撥悶【三月十八日】 子夜街鍾歷歷聽如期一日雨冥冥焚香獨坐橋南屋點檢連山太上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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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비가 내렸다. 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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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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