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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敎齋永恩府院君六十二歲進甲詩【幷序】 聖上十有二年辛酉黃鐘之月二十五日先生嶽降之週甲也上命承宣宣黃封法醞賜雲和二等之樂宗族老少公卿大夫士咸萃燕悞稱觴迭祝璚篇錦牘溢箱堆几誠曠世盛事也粵明年壬戌復値皇覽之辰震休再拝膝席而諗于撰曰先生當世三達尊也位望已峻績庸已懋而年彌高德彌邵爲民國可無賀乎謹稽往牒周之尙父翼輔王室伯仲周召績勤彛鼎名耀竹帛壽且百有餘歲後嗣蕃昌式著東土聖女邑姜繼任姒而贊陰功列于十亂之一而武之穆繁且衍矣成康以來世卜三十年卜八百實基于此夫國舅之盛閱三古莫尙父若而漢唐以下椒房之親固不足論也猗歟聖明在上乾坤正位宮闈歌周南之覃葛閭巷咏漢上之喬木螽羽之▣▣狑定之振振將復覩斯今而公以肺腑之親兼股肱之責濟之以忠貞率之以恭儉贊揚聖化自邇而遠人不見其運動而功利之普施指不勝摟族戚有睦婣之譽隣里有任卹之稱薦伸章甫曰國耳公耳皁隸停僕曰惠我顧我以至遐澨窮峽無一夫石被其澤和氣感應百福幷湊風雨時寒暑節五穀熟六畜蕃草木遂其性魚鼈得其所奠國勢於磐泰之址躋民俗於仁壽之域者式至今千有三載而先生之齒六十有二矣其於尙父之齒才爲强半而勳業若是其燀爀從今復屆尙父之齒則成周垂拱之治矣獨專美于古昔也然則先生之壽非徒一室之慶寔爲民國旡疆之福雖欲多讓烏得已哉經曰仁者壽傳曰有德者昌先生積有仁德於人矣孰不曰壽且昌乎震休出入先生之門抑爲數十年所而受賜多矣一副悃愊百倍常情而羈旅濩樂報答無梯秪以尙父之遐齡爲先生虔禱焉尾之以歌曰花山故宅基業大世世忠貞邦國賴樹德有報天弗爽簪笏聯翩芬未沫聖考初載屬重光極天駿嶽英靈會先生降武乘休運灝氣軒欄凝瑞靄玉局眞仙平地游明月華珮綠雲蓋正値都兪祈姚世祥獜棲息瑞鳳翽王室之翰百辟憲肺腑瓜牙兼中外身佩安危今幾歲砥柱屹立排湍瀨汲綆賢俊伊誰勩圭璋特達吉士藹佇看民國休旡疆壽于箕翼鞏磐泰節儉謙恭卽天賦門如儒素袪珠貝濟飢救溺平生志惠風遐覃行路匃凝重寡言功利溥滄海萬頃包汪濊小局蠡管誠莫量齊楚之於曺與鄶風流篤厚古亦罕仁愛一心當歲最巷叟街童爭手額皓首丹忠到耆艾廟謨戎算歸妥怗大事決疑叶蓍蔡明良際遇隆且盛山龍彛葆絺而繪郁郁仰贊崇文治不獨芹宮鸞旂茷和氣召祥年屢豊麻麥幪幪荏菽旆酬勳養老殊禮備自天翩翻降恩霈拜賜宮壺香雨露勻天樂譜又竿籟仰答宸眷需雲爛賓朋燕娛講麗兌餘慶更添卿月輝玉樹芝蘭春氣馤且看孫桐陰滿庭無數枝葉靑蔚薈大老康寧坐春風上卿緋服通天帶古來國舅疇共此有周盛時公曰太稱觴獻祝區區忱佐理昇平長瑞▣願將一甲爲一籌與國咸休彌穹壒六六三十六百甲昌熾壽臧永無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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度支直舍訪小溪九鉉夜與諸詩朋相酬【申白坡獻求徐石囱相祖朴弘庵慶壽趙斗南寅奎金石莊明覺柳雲樵諸人齊會正月十一日四疊】 鶴歎鳧愁大夢中梅花一笑與君同迎年齒欲參三達餞臘身如送五窮快活棄官多白日逡避把酒又東風浮生會合誠難事且可今宵剪燭紅蟹眼茶濃月未西曲欄人影兩三迷燈前靜坐琴藏匣酒後高吟浪拍提雪暈纔消禽舌澀春光欲漏柳眉齊歸鴻那識人懷緖謾向江南歷歷啼夢魂浮在故園林瘦鶴籠中歲月湥店飯誤人添白髮朋罇慰我匝靑襟馮郞謾惜明時老越客難禁病裏吟今夜掃除愁萬緖新詩活動少年心歷亂村鷄唱不遲蒼蒼曙色柝人知酒暈漸消山翠滴詩愁方歇露華垂虛閣有聲羣雀語曲塘生影綠楊窺聊應別後梅花屋對月難忘此夜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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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동이 틀 무렵에 길을 나서 수원(水原) 읍내에 이르렀는데, 길에서 영광(靈光)으로 내려가는 사람을 만나 동행하였다. 중저(中底)까지 60리를 가서 아침을 먹었는데, 말이 잘 먹지 못한데다가 병의 기미가 있었다. 길을 나서 진위(振威)에 이르니 말이 몹시 지쳤기에 결국 걸어서 소사(素沙)까지 50리를 갔다. 말이 전혀 먹지 못하는 것이 복통(腹痛) 때문임을 알고서 다방면으로 치료하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닭이 울 때야 비로소 차도가 있었다. 이른바 영광(靈光) 사람은 먼저 떠났고, 나는 뒤에 처졌다. 올해는 흉년이 특히 심하여 길에서 도적의 우환이 매우 많았는데, 천 리 먼 길을 혼자 몸으로 나섰으니 근심과 괴로움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늦은 아침밥을 먹은 뒤에 길을 떠나 북기점(北機店)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덕평(德坪)까지 90리를 가서 묵었다. 平明登程, 至水原邑內, 路逢靈光下去人, 因與同行。 至中底六十里朝飯, 而馬不善喂, 且有病機矣。 遂上程至振威, 鬣者頗困, 遂徒步至素沙五十里。 馬專不食, 始知腹痛故也, 多方治療, 夜不接目, 鷄鳴時, 始有差勢。 所謂靈光人, 先爲出去, 余則落後。 今年凶荒特甚, 路上賊患頗多, 而千里長程, 隻身發程, 憂惱不可言。 晩朝飯後發程, 至北機店秣馬, 至德坪九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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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건(健)·순(順) 형제, 욱여(旭汝)와 함께 송현(松峴)으로 갔다. 이어 육각치(六角峙)의 필운대(弼雲臺)에 올라 종일토록 꽃을 감상하였는데, 저녁 무렵에 송현(松峴)에서 차를 보내왔다. 그러므로 실컷 마시고 배불리 먹고 왔다. 食後與健、順兄弟旭汝往松峴。 因上六角峙 弼雲臺, 終日賞花, 而夕間茶饋自松峴來, 故醉飽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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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저녁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에 가서 묵었다. 의주(義州)의 김선상(金善相)이라는 사람과 오늘 밤 만나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어둠을 무릅쓰고 간 것이다. 夕食後, 往鑄洞留宿。 盖義州 金善相人, 而今夜有約相會, 故冒昏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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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또 예조에 갔더니, 화옥(華玉)과 성경(誠卿)이 찾아와 만나고 갔다. 又往禮曹, 華玉及誠卿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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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남태령(南泰嶺)66)을 넘었다. 승방점(僧房店)67)에 이르러 떡을 사서 요기한 다음, 강을 건너 수청거리점(水淸巨里店)에 이르렀다. 아침을 먹은 뒤에 청파(靑坡)의 길가에 이르러 동행과 서로 헤어지고, 나는 박영대(朴永大)의 집에 들어갔다. 이어 주인과 요기하고 잠시 쉬었다가 서소문(西小門) 밖 이희(李)의 집에 갔으나 주인은 부재중이었다. 그런데 어떤 모르는 조관(朝官) 한 사람이 내게 묻기를, "흥양에 사십니까?"라고 하므로 내가 답하기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하자 이어 말하기를,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바로 회덕(懷德)68)에 사는 장소(長小) 송명규(宋明圭)인데, 주인과 친사돈 관계인 사람이었다. 가지고 온 민어(民魚)를 노비에게 들여보내니 안채에서 말을 전하였는데 전일의 정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예조의 서리 안인성(安寅成)을 만나기 위해 예조에 갔더니 예조의 직방(直房)69)으로 들어갔다고 하므로 그길로 직방(直房)으로 갔다. 나는 문 밖에 서서 주인에게 통지하게 했더니 곧바로 나왔다. 선 채로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나서, 먼저 재록(載錄)했는지의 여부를 묻자 곧바로 재록하였다고 하였다. 술집에 함께 나가자고 청하자 옷을 입고 나왔는데, 곧바로 나오면서 《사원록(祠院錄)》을 가지고 나왔다. 직접 보니 과연 재록되어 있어 매우 다행스러웠다. 대개 이번 여행길은 전적으로 이 일을 보기 위하여 왔기 때문에, 이 일이 이처럼 재록(載錄)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그길로 함께 술집으로 나와 술을 사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액(賜額)을 청한 일에 대해 언급하였더니, 이 일은 큰일이라서 수령이 쉽사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유생의 상소가 있더라도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기약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또 첩미(帖尾)에 대한 일도 언급하니, 그가 관계된 바가 아니어서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관장하는 사람과 상의해 보겠다고 하기에 내일 다시 오기로 약속을 하고 나왔다. 광교(廣橋) 경주인(京主人) 집에 들어가 잠시 쉬다가 저물녘에 주인집으로 나왔다. 曉發越南泰嶺, 抵僧房店, 買餠療飢, 仍爲越江, 抵水淸巨里店。 朝飯後, 抵靑坡路邊, 與同行相分, 余入朴永大家。 仍爲主人療飢, 暫憩後, 往西小門外李家, 則主人不在, 而有不知朝官一人, 而問余曰: "在興陽?"云, 故答曰: "何以知之?" 仍曰: "有知之道"云, 故仍與敍話, 則乃懷德居宋長小 明圭, 而與主人親査人也。 持來民魚, 使奴婢入送, 則內間傳語出來, 不忘前日之意。 爲見禮吏 安寅成 往 禮曹, 則入去禮曹 直房云, 故仍往直房。 余則立門外, 使主人通奇, 則卽爲出來。 立談數語, 先問載錄與否, 則卽爲載錄云, 請與出去酒家, 則着衣出來矣。 卽爲出來, 而《祠院錄》持來, 親見則果爲載錄, 幸幸。 盖此行專以爲見此事而來矣, 此事若此載錄, 可幸可幸。 仍與出來酒家, 買酒相飮敍話, 仍說請額事, 則此事大事也, 倅難易成, 雖有儒疏, 畢成難期云矣。 又論帖尾事, 則渠非所關, 不可詳知, 與所掌之人相議云云, 故以明日更來爲約而出。 入廣橋 京主人家暫憩, 乘暮出來主人家。 남태령(南泰嶺)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에서 과천시 과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승방점(僧房店) 승방평(僧房坪)에 있었던 객점을 말한다. 승방평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앞들에 있던 마을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승방뚤・심방뜰이라고도 불렀다. 회덕(懷德) 대전광역시 대덕구 회덕지역의 옛 지명이다. 직방(直房) 조방(朝房)이라고도 하는데, 조정의 신하들이 조회(朝會) 때를 기다리느라고 모여 있던 방이다. 대궐문 밖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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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九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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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황화정(皇華亭)에 이르자, 새벽빛이 이제 막 밝아왔다. 전라도의 첫 경계에 들어섰으므로 각각 시 한편을 지었는데, 공서가 먼저 읊었다. 시는 다음과 같다.이제야 전라도 경내로 들어오니(始入全羅境)때마침 새벽빛이 막 밝아오누나(時當曉色新)우리 전라도 길이라 하니(道吾之道也)정신이 한층 더 상쾌해졌네(快活更精神)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경내로 들어서니 내 마음 한결 기쁘고(入境吾心喜)먼동이 트니 날이 점차 새로워지네(開東日漸新)오늘 아침 두 가지의 아름다움 함께하니(今朝兼二美)이제야 정신이 상쾌해지는구나(方覺爽精神)최진욱(崔震煜)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이른 새벽 우리 경내로 들어오니(凌晨入我境)고향의 맛 차츰차츰 생겨나 새롭네(鄕味漸生新)하늘이 어리석은 생각 한이 될 줄 알아(天知恨迷意)아침 햇살 비춰 정신을 맑게 하네(初日照精神)이어 대추(大棗)와 떡을 사 먹고, 최진욱과 작별하였다. 소로(小路)에 들어가 여산(礪山)의 심천(深川)에 이르러 일가인 송함보(宋涵甫)와 아침을 먹고, 이어 〈제각중건통문(祭閣重建通文)〉을 전하였다. 새벽에 출발하여 여산읍(礪山邑)에 이르러 호산춘(壺山春)79)을 사서 마시고 신점(新店)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삼례(參禮)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曉發至皇華亭, 曙色初明, 全羅初境, 故各作一聯, 公瑞先吟曰: "始入全羅境, 時當曉色新。 道吾之道也, 快活更精神。" 余次曰: "入境吾心喜, 開東日漸新。 今朝兼二美, 方覺爽精神。" 崔震煜次曰: "凌晨入我境, 節味漸生新。 天知恨迷意, 初日照精神。" 仍買棗餠相食, 與崔作別。 入小路至礪山 深川, 與宋涵甫同宗朝飯, 仍傳致《祭閣重建通文》。 曉發抵礪山邑, 買飮壺山春, 至新店中火, 至參禮留宿。 行七十里。 호산춘(壺山春) 찹쌀과 멥쌀로 세 번 빚은 술이다. 전라북도 여산(礪山)의 특주로서 여산의 별호가 호산(壺山)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술의 특징은 밑술을 두 번 담그고 다시 덧술을 하여 세 번을 담그는 데 있다. 조선 중엽 이후의 《산림경제》·《주방문(酒方文)》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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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아침을 먹기 전에 출발하려고 하니 송민수(宋民洙)가 돈 1전 5푼으로 아침밥을 사먹으라고 주었다. 노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다시 동(銅) 1관(貫)을 빌려 쓰기를 청하니, 송약수(宋若洙)가 한 젊은 종인(宗人)을 불러와 돈 2전을 가지고 오라 하면서 한 자리의 술값이나 하라며 도움을 주었다. 아침에 전성철(全聖哲)의 집에 이르러 아침을 먹은 뒤에, 유석하(柳錫夏)와 영윤(永允)을 데리고 함께 서문(西門) 안의 송덕진(宋德瑨) 집에 갔다. 그 사람은 바로 여산송씨(礪山宋氏)로 부내(府內)에 살고 있을 때 나주(羅州) 주인이 되었는데, 영저(營底)에서도 권세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예방 영리(禮房營吏)80)인 정읍(井邑) 이동환(李東煥)과 주객(主客) 사이의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몇 자 써주기를 청하자, 송덕진이 그의 가동(家僮, 어린 사내 종)을 불러 우리 두 사람을 영청(營廳)에 데리고 가서 예리(禮吏)에게 편지를 전하니 아전이 찾아내었다. 지난번 상경했을 때에 육충사(六忠祠) 열록(列錄)을 기록해 두었다가 《사원록(祠院錄)》에 재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위의 기록은 아직도 선화당(宣化堂)에 있고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예리가, "안에서 나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착실히 기록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기록을 직접 보지 못하고 돌아오니 마음이 매우 답답하였다.장흥(長興) 벽사(碧沙)의 역리(驛吏) 김방업(金邦業)은 재작년 오촌(鰲村)으로 가는 길에 마침 낙안 도중에서 만나 그대로 길동무하며 간 영저(營底)의 사람이다. 나와 정이 있어 육충사(六忠祠) 재록하는 일을 편지로 부탁하였는데, 그 조용한 때를 이용해서 예리(禮吏)에게 부탁해 줄 것을 신신당부하여 말했다. 돌아올 때 또 송덕진(宋德瑨)을 만나 다시 편지로 부탁하고는 그대로 출발하여 남문 밖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정자동(亭子洞)에 이르러 묵었다. 25리를 갔다. 食前欲爲離發, 則民洙以一戔五分錢, 買食朝飯之意給之。 路貰不足, 故更請一貫銅貸用, 若洙招來一少宗人, 二戔錢持來云, 而惠以一時之酒債矣。 朝到聖哲家朝飯後, 與携錫夏、永允, 偕往西門內宋德瑨家。 其人卽礪山之宋, 而居在府內時, 爲羅州主人, 而營底之有權者也。 其人與禮房營吏 井邑 李東煥, 主客相親之間, 故請以數字書, 則其人呼其家僮, 陪我二人往于營廳, 傳書于禮吏, 吏搜出。 頃者上京時, 書托六忠祠列錄, 欲載《祠院錄》矣。 右錄尙在宣化堂, 姑未出來, 故其吏言, "內待後出來之日, 着實載錄。"云, 故未得親見載錄而歸, 心甚㭗㭗。 與長興 碧沙驛吏金邦業, 卽再昨年鰲村之行, 適逢樂安路中, 仍爲作伴於營底之人也。 與我有情故, 書托六忠祠載錄事, 而乘其從容時, 言屬禮吏之意, 申申言之。 來時又見宋德瑨, 更爲書托, 而仍以發行, 抵南門外中火, 抵亭子洞留宿。 行二十五里。 예방 영리(禮房營吏) 예방은 조선 시대 지방관서에서 예전(禮典) 관계의 실무를 맡아보던 부서 또는 그 일에 종사하던 향리를 말하고, 영리(營吏)는 행정 실무에 종사하던 말단 관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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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일찍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에 가서 치회(穉會)를 만나고, 반촌(泮村)으로 길을 돌려 화옥을 만나고 왔다. 早食後, 往鑄洞見穉會, 轉向泮村, 見華玉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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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비가 내렸다. 아침 전에 한동(翰洞)에 가서 한참 동안 글을 논하고 왔다. 雨。 朝前往翰洞, 移時論文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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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병진) 1796年(丙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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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十一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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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출발하여 조생(趙甥)을 데리고 직접 동촌(東村)에 가서 묵었다. 發行而率趙甥, 親往東村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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騎省眞中酬和【金石莊明覺黃漢案伍姜蕙東鏞趙簑衣鼎鎬鄭錦農繓南石民大植金東嶺炳甲齊會金夢樵復均李東渚在容亦和五月初十日夕又和金石莊】 一樓璚律動牙絃白髩靑眸酒國天燕子簾頭春意逗榴花庭畔午陰圓迷魂幻蜨醒今日過跡磨驢話昔年把袂論心猶未歇半塘山影滴如煙留連圍燭坐詩豪杜甕淋漓未盡醪得月更看庭砌豁迎風不妨院檐高一遊會意春生頰萬事回頭雪染毛夜靜西隣童子睡空潭如鏡湧金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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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유둔(油屯) 시장 근처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이에 용전(龍田)에서 머물렀다. 到油屯市邊, 秣馬療飢, 因留龍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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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주동(注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윤 남포(尹藍浦)가 찾아와서 보고 갔다. 밤에 비가 내리고 바람 불어 추웠다. 往注洞暫話而來。 尹藍浦來見而去。 夜雨風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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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추웠다. 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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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맑고 화창하였다. 晴而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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