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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안봉환(安琒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戌臘月卄六日 査弟 安琒煥 丙戌臘月卄六日 安琒煥 査頓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6년에 안봉환(安琒煥)이 사돈 이승학(李承鶴)에게 사위 이광수(李光秀)를 보내면서 전한 간찰. 1886년에 안봉환(安琒煥)이 사돈 이승학(李承鶴)에게 사위 이광수(李光秀)를 보내면서 전한 편지이다. 지난번 몇 날 밤을 함께 얘기 나누면서 고가(古家)의 풍모를 볼 수 있었다며 감탄의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사돈의 객지 생활은 좋으신지 묻고, 본인은 예전과 같이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사위는 볼수록 기이하여 보내고 싶지 않은데 세속의 격식에 따라 돌려보내게 되어 서글프다고 전하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며 편지를 마쳤다. 안봉환은 죽산안씨(竹山安氏)로, 보성(寶城) 출신이다. 이광수의 장인으로, 안방준(安邦俊, 1573 ~ 1654)의 후손이다. 안방준의 자는 사언(士彦), 호는 은봉(隱峯)ㆍ우산(牛山)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밝았다.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따위의 국난 때에 의병에 참여했으며, 의병과 당쟁에 관한 사적 등을 정리하고 저술하여 의병사ㆍ당쟁사 연구에 이바지한 공로가 컸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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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宵奉晤寒見古家風範伏詢朝晡旅體珍重仰溸勞祝査弟省狀依昨而已 允郞看看益奇不欲遽捨而依俗套告歸悵缺甚矣餘擾不備禮丙戌臘月卄六日査弟安琫煥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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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이귀선(李龜善)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己丑九月十七日 進士 李龜善 等 7人 昌平鄕中 己丑九月十七日 李龜善 昌平鄕中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9년 9월에 이귀선(李龜善) 외 7인이 창평(昌平)의 유림에게 유희춘(柳希春) 묘소의 범장(犯葬) 문제로 보낸 통문. 1889년 9월에 이귀선(李龜善) 외 7인이 창평(昌平)의 유림에게 유희춘(柳希春) 묘소의 범장(犯葬) 문제로 보낸 통문이다. 하리(下吏) 무리가 세력을 믿고 법을 멸시하는 변고가 있어 왔는데 심지어는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선생의 묘소를 범장(犯葬) 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는 것이다. 미암 선생의 도학(道學)과 절의(節義)가 뛰어나 유문(儒門)에 공적이 있고, 윤강(倫綱)을 부지하여 밝게 빛낸 공적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다는 것이다. 또 미암 선생은 다행히 호남(湖南)에서 태어나서 담주(潭州, 담양)에서 노후를 보내시어 그 흔적이 이 지역에 남아 있어서 여타의 사람들보다 그 사모함이 배가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하리가 마음대로 범장하였으며, 또 범장한 지 일 년이 넘도록 소장(訴狀)을 진달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연시켰으니 담양의 선비 된 자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으니 매우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제 장성(長城)의 강소(講所)에서 장관(長官)에게 통지하여 여러 읍에 두루 알려서 이번 20일에 미암 선생의 묘소 아래에 모여 의논하여 소장(訴狀)을 올려서 한편으로는 범장한 묘를 파내게 할 목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범장에 대한 죄를 물을 목적이 있다고 하였다. 또 이 일이 성사되지 않을 때는 대궐 문 앞에 가서 호소하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전하며 유림의 참여를 독려했다. 이 일을 유림에게 통지했으나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듣지 못할까 염려되어 이 통문을 먼저 보낸다고 하면서 참여를 촉구하였다. 통문 피봉에는 창평의 각 지역명이 표기되어 있어서 이 통문이 창평의 각 면에 전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록된 지역은 삼천(三川), 수곡(壽谷), 유촌(柳村), 후산(后山), 교촌(校邨), 하북산(下北山), 성산(聲山), 선산(先山), 구읍(舊邑), 서면(西面), 성산(星山), 지곡(芝谷), 연천(煙川) 등이다. 유희춘의 본관 선산(善山), 자 인중(仁仲), 호 미암(眉巖), 시호가 문절(文節)이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았던 집 뒤의 바위가 눈썹의 모양이라고 해서 호를 미암(眉巖)이라고 지었다. 최산두(崔山斗) ·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으로, 문과에 급제해 대사성 · 부제학 · 전라도관찰사 ·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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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성균관(成均館) 답통(答通)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檀紀四千二百九十年五月日 成均館長 金昌淑 綾州鄕校 儒林 僉君子座下 檀紀四千二百九十年五月日 金昌淑 綾州鄕校 儒林 成均館印 1顆(4.5x4.5), 成均館長之印 1顆(2.5x2.5)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7년 5월에 성균관장(成均館長)이 능주향교(綾州鄕校) 유림들에게 충효사에 대한 칭송과 함께 당부의 말을 써서 보낸 답통(答通). 1957년 5월에 성균관장(成均館長) 김창숙(金昌淑)이 능주향교(綾州鄕校) 유림들에게 충효사에 대한 칭송과 함께 당부의 말을 써서 보낸 답통(答通)이다. 통문의 내용에 따르면 지금 능주 유림들의 통문을 보고 옛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모봉(茅峰) 박지수(朴枝樹) 유적의 흠경함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박지수의 충절과 아들 박천수의 효성을 간략히 서술하며 이들을 칭송하였다. 선조 때에 상대(霜臺, 사헌부)의 청직(淸職)을 맡아서 24명의 어진 동료와 함께 총마계회(驄馬契會)에서 시를 주고받으니 선조께서 이를 가상히 여겨 총마도(驄馬圖)와 시(詩)를 지어 주었고, 임진왜란 때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을 모시고 북관(北關)으로 피난하였으며 종사(宗社)가 위급함에 미쳐서는 분격(憤激)함을 이기지 못해 "그 나라가 망하고 몸이 사는 것은 몸이 죽고 나라가 있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서약봉(徐藥峯), 정농포(鄭農圃) 등 제현(諸賢)과 함께 부의(赴義)하여 전투에서 싸우다 마침내 순절하고, 그 아들 주부(主簿) 회재(悔齋) 박천주(朴天柱)는 정성이 하늘에 근거하여 여막에 거쳐하며 읍혈(泣血)하니 망북현(望北峴) 쇄루암(灑淚巖)이 생겼다고 하였다. 한 집안에서 양세(兩世)에 충과 효가 나타나니 영지(靈芝)도 뿌리가 있고 예천(醴泉)도 근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도 이러한 행적이 드러나지 않아 울적하였는데 고종 때 정려와 증직이 내려져 다행이라고 하면서 또 성균관장의 조두문자(俎豆文字)가 미치니 지체할 겨를이 없다며 지금 겨우 사우(祠宇)를 세우고 배향했다고 하지만 대개 궁통(窮通, 빈궁과 영달)과 현회(顯晦, 유명해지는 것과 은폐되는 것)는 짐짓 그 때가 있다고 하면서 기강을 바로잡고 쇠퇴한 풍속을 격려하고 이같이 숭상하는 곳이 없으므로 앞으로도 계속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의 말로 회고(回告)하였다. 충효사(忠孝祠)는 화순군 도암면 벽지리에 자리하며 박지수(朴枝樹)와 아들 박천주(朴天柱)를 배향하고 있는 사우이다. 1598년 건립되었고, 1868년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 그 후 1924년에 우선 단(壇)으로 제향해오다가 195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현재 밀양박씨 문중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으며 2001년 7월에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되었다. 박지수(朴枝樹, 1562~1593)는 본관이 밀양(密陽), 자가 무중(茂仲)이고, 호가 모봉(茅峰)이다. 밀양군(密陽君) 박중손(朴仲孫)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찰방 박영걸(朴永傑)이고, 아버지는 사맹공(司猛公) 박억서(朴億瑞)이다. 자질이 빼어나고 일찍부터 강개한 뜻이 있었으며, 1580년(선조 13) 별시(別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합격하였다. 1591년 사헌부 감찰을 제수받았으며, 동료들 24인과 함께 사헌부에서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시를 지어 주고받았다. 선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총마계회도(驄馬契會圖)」를 지어서 주었다. 임진왜란 때 특명으로 왕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을 호위하여 북도로 피난 도중 적병 수천 명을 만나 삼일간의 접전 끝에 온몸에 상처를 입어 회령에서 순절하였다. 그의 노복이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에 돌아오자 부인 노씨가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고, 이 광경을 지켜본 노비 근춘(斤春) 역시 자결하였는데 이에 일문삼절(一門三節)이 배출되었다고 회자되며 이들의 충절이 높이 평가되었다 한다. 부친 사맹공(司猛公)은 83세의 나이로 재산을 털어 군수를 보조하였다. 1869년에 좌승지에 증직되었으며, 1870년에 정려가 내려지고, 1892년에 좌참찬에 증직되었다. 충효사(忠孝祠)에 그의 아들 박천주와 함께 배향되었다. 박천주(朴天柱, 1578~1650)는 자가 경국(擎國)이고 호가 회재(悔齋)이다. 박지수(朴枝樹)의 아들로, 주부(主簿)를 지냈다.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였다. 나이 10세에 부모님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계속 부모님이 처음 돌아가신 때와 같이 변함없이 하여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였다.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충효사(忠孝祠)에 아버지 박지수와 함께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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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禎六年十月十五日褒忠祠有司前明文右成文事段有移居古內厢之計▣▣廢城內代田買占次以妻邊衿得耕食爲如乎柳等谷里旨坪伏在淡字畓二十二負三束稻種七斗落只庫乙同祠良中價折正木五十匹交易捧上爲遣永永放賣爲去乎後日或有雜談爲去等持此文券告 官辨理事畓主自筆學生朴思遠[着名]證同生弟學生朴思道[着名]證妻同姓五寸叔學生高傅敏[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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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년 포충사 유사(褒忠寺 有司)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崇禎六年十月十五日 畓主 自筆 學生 朴思遠 褒忠寺 有司 崇禎六年十月十五日 朴思遠 褒忠寺 有司 朴思遠[着名], 朴思道[着名], 高傅敏[着名]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33년 10월에 박사원(朴思遠)이 포충사(褒忠祠) 유사(有司)에게 작성해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633년(인조 11) 10월 15일에 답주(畓主) 박사원(朴思遠)이 포충사(褒忠祠) 유사(有司)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사원은 이거(移居)할 계획으로 폐성(廢城) 내 대전(代田)을 매점(買占)하기 위해서 처가로부터 상속받아 갈아먹던 유등곡리(柳等谷里) 지평(旨坪)에 있는 담자답(淡字畓) 20부 3속 볍씨[稻種] 7마지기[斗落只]를 포충사 유사에게 정목(正木) 50필을 받고 팔았다. 이 거래에는 증인(證人)으로 박사도(朴思道)와 고부민(高傅敏)이 참여해 문서를 작성하였다. 증인으로 참여한 박사도(朴思道)는 박사원의 동생이고, 고부민은 박사원 처가 오촌숙(五寸叔)이다. 이 밖에 포충사 관련한 문서로는 1614년 광주목 입안, 1622년 광주목 입안, 1627년 광산현 입안이 있다. 박사원(朴思遠)은 본관이 충주이고, 아버지는 박시영(朴時英)이며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후손이다. 배우자는 장흥고씨이다. 박사도(朴思道)는 본관이 충주고, 아버지는 박시영(朴時英)이며 형은 박사원(朴思遠)이다. 고부민(高傅敏, 1577~1642)은 자가 무숙(務叔)이고, 호가 탄음(灘陰)이며, 본관은 장흥이다. 어려서는 강항(姜沆)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김장생(金長生) 문하에서 성리학에 몰두하였다. 1627년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삼종인 고부립(高傅立), 종제인 고부필(高傅弼) 등 동지 수십 인과 호남의병장인 재종숙 고순후(高循厚)의 막부에 들어가 군량을 모으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도 동지 오천여명을 규합하고 군량을 모아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청주에 이르러 정부의 강화로 적이 퇴거하였다는 말을 듣고 통탄하며 향리에 돌아와 은거하면서 시를 읊어 뜻을 보이며 여생을 보냈다. 포충사는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1533~1592)과 고종후(高從厚, 1554~1593)·고인후(高因厚, 1561~1592)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 1544~1592), 안영(安瑛, 1564∼1592) 등 5위를 배향한 사우이다. 1601년(선조 34) 호남 유생들이 광주 제봉산(霽峯山) 아래에 사당을 건립했고, 1603년(선조 36)에 박지효(朴之孝) 등 문인과 후손들이 사액을 청해 '포충(褒忠)'이란 액호를 받았다. 포충사는 사액 사당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철되지 않았던 사우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흔히 토지와 노비, 가옥 등을 매매하는 문서명으로 쓰인다. 토지매매명문은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 연월일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 번(番), 결부(結負), 복속(卜束)과 두락(斗落), 배미[夜味]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財主],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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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공명첩(空名帖) 고문서-교령류-공명첩 정치/행정-임면-공명첩 光緖二十年四月日 光緖二十年四月日 高宗 施命之寶(10.5×10.2)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에 孺人을 貞夫人으로 추증한다는 내용으로 발급된 空名帖. *상태: 증직을 받은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음 *左傍書: 嘉善大夫兵曹參判依法典司憲府監察 祖妣 妻從夫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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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雪 連陰窮晦朔時序更何如殘葉鬪風外晩牟爭雨餘乍暄籬影轉漸冷竹光疏膚寸雲生壁須臾雪滿墟繞飛憑檻後揚片捲簾初大地都輸汝流光正感予自宜登絶唱最好訪幽居莫謾資遊賞偏憐映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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壺社與雲樵藍山東谷共吟二首 昏燈無計破愁城誰遣諸君有此行心事已從風外去鬢絲爭向鏡中明雲含遠岫常如墨雨洗芳林旋作晴睡起悠然忘俗累好敎花鳥競關情百度相尋雙眼靑夜深燈火竹窓明群兒倦讀硯前睡歟子苦吟庭畔行隔樹鷄鳴村更遠盈階月白雨全晴却憐底意東園鳥烟外喧催曙色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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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鄭圃雲【完錫】 風塵磊落一儒巾遊戲江鄕十載春如令得地輸心事也知今世作名人龍臺迢遞綠江濱詞客來遊秋復春誰知今日成千古長恨樽前少一人安西門戶信崔嵬自詡重連宅相來縱看諸客勤揮淚可及蕉樽寓一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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渡潺水津 荒郊行盡到平沙沙際依微一逕斜峽坼淸江來十郡雲銷危壁點千家映崖游鯽搖人影隔樹晴嵐側日華却喜經春春尙在晩蜂籬落數叢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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遙賀金滄山週甲 苟安高弟有斯翁才氣翩翩出衆中眞訣己從何處得文心自與古人通移家爲見終南月幷世及聞淮上風最是壎床梅影下如君花甲復誰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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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酉堂水竹軒韻 溪上幽軒萬竹陰幾番風調動詞林辭歸蓮幕餘雙屐步入藍田隨一琴密葉縈烟饒古色奔波挾雨發洪音海飛寧闔文昌眼高臥胡床不廢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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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咸陽大館林韻 聞道咸陽最上林蒼蒼鬱鬱境何深老根留帶千年蹟蜜葉濃成十里陰官道雷鳴車轂轉歌臺風動舞衣森溪邊石古如人立疑是孤雲抱膝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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酉堂席上崔生【學林】携酒而來約以明日上巳會飮 一斗淸酤載片舟溪村來及午雲流明朝況値重三節肯負佳期竹裏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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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靑軒唱酬【自庚午至癸酉每夏秋數月與尹酉堂王蘆山王玉泉梁鍾山朴愚川舍弟漢擧會川上之一靑軒或命題或無題限韻唱酬】 樵蘇同結杜哦咏到宵中驟熱難成夢開襟竹際風落日溪邊屋庭花晴更濃披襟增灑落竹外月生峯境好人誰在村貧客自疏溪童晩相集工綴細沙書茅堂涼似水來往一橋低屐齒莓苔石溪唇郭索泥萬樹溪邊路樵蘇對掩門風蟬偏作隊鎭日自生喧淸遊趁伏日溪畔一亭高坊酒醵已判午飧君更勞家家逢閏歲劇暑夏偏長稍喜階前樹遲遲送夕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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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賦七絶石田適至 諸君澹泊我從容結交還憐氣味濃故倣斜川當日事長敎一夕一相逢楠樹當門門映池不堪殘暑座頻移紛紛向夕牛羊路薥黍原邊一短碑幽居曾卜此林崖休笑生平一草鞋慣是溪壇風雨裏逢君幾得瀉幽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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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卯國白村見訪 槐樹風輕火酒盃籬邊移席是涼臺塵世難逢如此客柴門送別約重來相從日日摠閒身終古儒農接水隣縱道棲遲差可樂風塵還愧作詩人千峯潦盡破層雲野客東西已夕曛莫問溪亭誰是主芳醪待熟更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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