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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家兒今日寄書凡四度次次入抵否直也不來家信未聞甚爲菀菀大抵近皆無事瑣瑣世務無遺而暇及對冊否吾爲老矣爲汝光陰豈不懸念也父客狀依前日而尙不出入度日苐俟日去而已南來消息陸續而但無家信泄泄桃洞則去月作別後今朝始參冬至茶禮而座擾不及他語聞中間所傳則桃台漸有解惑於吾云耳扶安族丈二員今始來到松禾則姑無影闇未知何故也他派則日至而今譜大君派別譜皆入原譜云云未知下回如何而果不分淆雜極矣不干爲上耳驢子姑不賣去留未定故而亦頗苦矣路中窃發近稍止息云京中在在而近無所聞耳向者所用皆以今念爲約者而已爲抖擻拮据否先父君忌日隔邇而身在客地哽塞而已適逢綾州族人暫付數語想信傳矣不具己亥菊至日卽陰曆卄日父欠三□新郞皆有來去而今冬有願請新婦禮家乎是甚關念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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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山山房讀書榥月前長鬚還以數寸紙仰候幸免洪喬浮沈則伏想早落仙榥不鄙入覽耶弟歸臥江上煎茗消日每雪霽曉月明取兄詩曼歌志士於今淚不窮句不能自禁淚泣數行下何時梅五堂橫籌扈隨謔浪在今便千古伏聞近日同隱淪同志六七入山房多讀古人書千萬卷有時曳杖穿屩逍遙秋南名山水奇絶處或恨少一人沙上奇元直否輒憶至此好酒萬斛不能沃熱腔千曲晦根亦同牕否明春春三月草茸茸江柳細時一面分明在眼兄勿改圖弟日與龜東爲邛邛耳餘只祝雪寒多讀勿病復之卄八日弟奇應度拜兄則名如司馬仁如破鏡諒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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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기우만(奇宇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二月四日 奇生宇萬 丁未二月四日 奇宇萬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2월에 奇宇萬이 보낸 간찰. *상태: 상단이 찢김 *원문: 向別時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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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8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閏八卄四日 父 閏八卄四日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승학(李承鶴)이 서울에 기거하는 아들에게 여러 가지 소식과 당부를 전한 간찰. 이승학(李承鶴)이 서울에 기거하는 아들에게 여러 가지 소식과 당부를 전한 편지이다. 편지 서두는 편지의 전달 여부와 답장을 기다린다는 말로 채웠다. 이승학은 이달 7월에 우체국으로 편지를 보내고 이후로 인편이 없어 부치지 못하고 있다가 이씨(李氏) 친구 편에 편지를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없어 답답하다는 말을 전하며 아들 소식을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겨울이 깊어가는 생활은 어떠하냐며 묻고, 겨울 채비를 위해 침구류 등을 순도(順道)에게 보낸다는 말을 전했다. 다음으로 문중에서 간행 중인 것으로 짐작되는 족보(族譜)에 관한 내용이 이어진다. 족보의 진행은 어떠하며 정서(正書)는 마쳤는지 묻고, 지난번 순천(順天) 종인(宗人)의 일은 담양의 백동(栢洞) 족숙(族叔)이 변통하여 처리할 방도가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투필(投筆)하고 물러나 후일의 구설을 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문중의 갈등과 관계된 일을 처리할 때는 더욱 신중히 하고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한 내용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광수가 문중의 족보 일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문중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던 듯하다. 이승학은 아들이 곧 볼 과거 시험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음 달에 네가 소원하던 바가 있을 것인데, 합격 여부는 운수와 관계된 것이지만 사람의 일이기에 전력하다 보면 성취할 수 있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며 시험을 앞둔 아들의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아들의 안부를 두루 물은 다음 이승학은 본인의 최근 근황을 상세히 알렸다. 이달 15일에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선생이 강회(講會)에 참석하려고 왔는데 유생(儒生)들의 참여가 적어서 강회를 열지 못하고 향음주례로 대신했다는 것, 이승학이 갑자기 찬례(贊禮)를 맡게 되었다는 것, 연재 선생을 모시고 내장사(內藏寺)를 방문했다는 내용 등을 두루 전했다. 스승이자 인척(姻戚)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집안의 장례 일에 관한 소식도 알렸다. 장삿날이 모레 있는데, 묘소가 담양(潭陽) 용추사(龍湫寺) 부근으로 잡았으며, 내일은 상례 행차가 우리 쪽 경계를 지난다는 것이다. 그때 본인이 장례에 참석하여 역부(役夫)들에게 술을 대접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집안의 혼례 소식도 알렸다. 장성(長城) 봉덕(鳳德)으로 시집가는 딸의 우귀(于歸,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가는 일) 날짜가 다음 달 27일로 정해졌는데, 기씨(奇氏) 사위를 아직 보내지 않고 있으니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면 속상함을 드러냈다. 이승학은 장녀를 기우만의 손자인 기낙도(奇洛度)에게 시집보냈고, 차녀는 기재(奇宰)의 손자인 기인도(奇人度)에게 시집보냈는데, 이때 언급한 신랑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어 이승학은 딸을 시댁에 보내면서 준비할 물건들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특히 홍롱(紅籠)과 승혜(繩鞋, 미투리), 면구(緬具)는 서울에서 준비하려고 하여 돈이 모이면 순도(順道)와 상의하여 구할 계획이라는 말과 수침(水砧)이 팔리지 않아 갈등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친인척과 관련된 황당한 사건에 대해 전한 내용도 확인된다. 지난달 말에 하동(河東) 횡월리(橫月里)에 사는 월초(月樵) 어른이 이곳으로 왔다가 장성(長城) 쪽으로 갔는데, 그 어른과 작별하면서 들었는데, 봉덕의 자인(子仁)이 논 판 돈 300냥을 그 아버지께 고하지도 않고 가지고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이 일에 관해 이승학이 당부하기를 만일 자인과 서울에서 상봉한다면 충효(忠孝)의 도리로 잘 회유하라고 전했다. 편지 하단은 보채(報債) 및 문중의 서당 등에 관한 내용, 아들이 부탁한 비용 마련에 대한 어려움, 족보의 명하전(名下錢) 문제, 윤홍(允弘) 숙질(叔姪)에 관한 당부, 본관(本官)의 수령에 관한 내용 등을 언급했다. 이 편지는 필사본으로 보인다. 편지 상단에 먹선으로 두 줄을 지운 흔적 등이 있고, 편지지 앞뒷면으로 내용이 채워진 것으로 보아 집안에서 필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편지 작성 일자가 '윤달 8월 24'로 적혀졌으나 내용에는 '서리의 위력이 높아지고 추위가 점점 심해진다'는 말로 보았을 때 이 편지는 여름에 작성된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몇 편의 편지 내용을 모아 수정하여 필사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간지가 생략된 채 일자가 적혀 있어서 연도를 잘 알 수 없으나 이광수가 과거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말과 윤월(閏月)이라는 내용 등으로 보아 1900년에 쓰인 내용으로 추측된다. 이광수는 1901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 시험으로 성균관(成均館) 박사(博士)가 되었다. 1900년은 이광수가 시험을 보았던 해이고, 이해 8월에 윤달이 들었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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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7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七月初吉 父 寄家兒 七月初吉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7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문중(門中) 문제 등 서울에서 겪은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한 간찰. 모년 7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문중(門中) 문제 등 서울에서 겪은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한 편지이다. 지난달 말에 금강산(金剛山)에서 서울로 들어와서 26일에 우체국으로 편지를 부쳤는데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하면서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집안 식구들은 별 탈 없는지, 농사는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남쪽 사람들이 올해 풍년이 들 조짐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냐며 기대감을 표했다. 이어 이승학이 겪은 일들을 낱낱이 알렸다. 서울에서 5일을 머물다 엊그제 밤에 도동(桃洞, 서울 소재)으로 수성부부인(隋城府夫人)의 기제(忌祭)에 참석했는데, 비 때문에 문중 어른들이 몇 명밖에 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수성부부인은 양녕 대군(讓寧大君)의 배위(配位)로, 광산김씨(光山金氏) 김한로(金漢老)의 따님이다. 이 기제에서 전주이씨(全州李氏) 가문의 억울한 일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였는데, 지금 때를 놓치면 안되기 때문에 귀향하여 문중 회의를 하겠다고 하고, 양녕 대군의 사적을 기록한 ?지덕지(至德誌)?를 가지고 간다고 알렸다. 이승학이 언급한 억울한 일이란 양녕대군의 후손인 순성군(順城君) 이개(李?)의 배우자와 관련된 것을 말한 듯하다. 1899년에 종정원 경(宗正院卿) 이재완(李載完)이 고종에게 요청하여 ?선원보(璿源譜)?를 수정하고자 했다. 이때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전주이씨 양녕 대군 계열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이전에 만들어진 ?선원가현록(璿源加現錄)?에서 양녕 대군 이제(李禔)의 아래에 '순성군(順城君) 이개(李?)의 첩(妾)의 맏아들 오천군(烏川君) 이사종(李嗣宗)'이 라고 기재되어 있고, ?선원속보(璿源續譜)?에는 오천군 이사종의 기사 옆에 주석(註釋)을 달기를, '어머니인 연일 정씨(延日鄭氏)는 참의(參議) 정종성(鄭宗誠)의 서녀(庶女)이다.'라고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천군 후손들은 나라의 문헌과 개인 문헌들을 통해 연일 정씨가 서녀라는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종성의 아들 정보(鄭保)가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온 집안이 모두 반역자로 몰리자 순성군의 처도 첩으로 강등(降等)되었다는 것이다. 옛 ?선원록(璿源錄)』에 순성군이 연일 정씨에게 정식으로 장가들었으며, 또 순성군은 첫 부인 신씨(申氏)와 같은 산기슭에 따로 장사지내고, 후실인 정씨는 순성군과 함께 나란히 쌍무덤으로 장사지냈다고 씌어 있으니 정씨가 순성군의 첩이 아니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것이다. 이승학을 포함한 이개 계열 사람들은 당시 ?선원보? 편찬을 계기로 연일 정씨가 정식 처(妻)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억울함을 씻고자 했다. 계속해서 이승학은 그간의 일정을 자세히 적었다. 과천(果川)으로 길을 잡아 궁촌(宮邨)으로 들어갔으나 비를 만나 지체되었는데 마침 소산(小山)으로 가는 인편이 있어 편지를 부쳤다고 하였다. 또 노잣돈에 대한 어려움이 적지 않아서 강화(江華)로 가지 못한다는 내용, 오늘 과천으로 가서 성묘한 후에 내일 곧바로 내려가면 보름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내용, 능주(綾州) 어르신께서 좌천된 것은 우리 가문의 불행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안타까움을 전한 내용 등이 확인된다. 이 편지는 간지가 생략된 채 월과 일만 표기되어 있어서 쓰인 연도를 잘 알 수 없다. 편지에 실린 문중 문제 등의 내용으로 짐작건대 ?선원보? 수정이 결정된 1899년 이후의 편지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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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寄家兒書南門外 伊門洞今月七日付郵遞書得見否此後無便付字矣□里李友持來書卽見而計日則此月無聞可菀耳旅狀槪如前乎霜威已高寒事漸緊旅館經過必難褥子急求一舛覆藉免致生病衣服今因順道便付送必則抵矣譜役今至如何正書已畢乎頃以順天宗人事專爲發書者以永五族之故也而此果與栢洞族叔有別區處之道耶不然則投筆自退以免後日之唇舌可也一門之伺隙在此十分重愼不可輕忽須知此意焉京中近耗又未知如何汝之所望在來月云則雖繫身運謀事則在人事到十分地頭專力於此可以成矣勿歇后失時焉家間近皆無故耳苐以講會在於今望而淵齋丈來臨云故吾亦與章伯諸人進參而以其章甫之數黟講不得設代行鄕飮禮吾以贊禮猝難辭避不得已筆行耳翌日陪向內藏寺又留一日而拜送矣松沙襄日在再明而新作則此邑之北龍湫寺後云明日喪行過潭市邊而旣入吾境人事又異略掇數行文明將早發酹奠隨往會葬瀉醪或海又饋役夫計耳鳳德于日以來月念七擇來而奇郞尙不送來未知何故然于行不得不送之而凡具之未備者太多窘必甚矣紅籠與繩鞋自京得送而得錢則與順道相[背面]議其回便付送緬具亦如是焉此是好便而近無措手不得先換送之耳水砧尙不得賣此亦葛藤奈何前月末月橫月樵丈來此向鰲山月初還來作別于福川而歸矣其時聞鳳德子仁持其賣沓錢三百兩不告其親而浮海去云或抵京否若入京則必相逢而善誘之告其忠孝之道爲汝之道且聞其家少年又有二人去者聞甚可驚耳田夷今聞順道說果是不去而達中之每每見欺如是矣前者兩書使之覓去而又未知如何也先事旣成後自京雖爲區處此中報債必無期限矣今日又爲門會云而吾以事不得去聞其消息則一邊皆如前不參云或傳究竟未晩或傳書堂錢不可入此云自門中專當可也云云畢竟事未知如何耳京中所費錢向聞有急奇云云雖欲更收而周看無一應者且夏間名下錢齊或尙不收捧而又此收錢事必不成故吾亦中止而使之待後云大抵譜成下後必皆結梢矣允弘叔侄去已久矣必不同處或間間相見否通心則必不爲汝亦知此爲之聞其取齋節如拾地芥今至如何云耶本倅聞已免本官而尙在風高民情益惑他不一一耳閏八卄四日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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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卯至月卄九日 族下 承鶴 辛卯至月卄九日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 11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족인(族人)께 안부를 전하고 과거(科擧) 등의 서울 소식을 물은 내용의 간찰. 1891년 11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족인(族人)에게 안부를 전하고 과거(科擧) 등의 서울 소식을 물은 내용의 편지이다. 이승학은 편지 첫머리에서 족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지난 1년간 곁에서 지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그때를 회상해 보니 꿈만 같지만, 항상 마음속으로 떨치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이 구절을 보면 이승학이 서울에 있는 동안 이 족인의 집에서 머물렀거나 근처에서 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승학은 과거 시험을 위해 1890년 9월에 서울로 가서 근 1년간을 지냈다. 이어서 이승학은 벼슬길에 있는 족인과 그 아들의 안부를 묻고 서울 상황을 두루 확인하였다. 지난번 여관(汝寬) 족인의 편지에 녹림(綠林, 반정부 세력)의 혼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는 매우 놀라운 일로 도시에서도 이러한데 외방(外方)의 경우는 어떠하겠느냐며 세상의 변란을 근심하였다. 계속해서 이승학은 자신의 최신 상황을 전하였다. 본인은 추위(秋圍, 가을 향시(鄕試))에 낙방했는데, 이는 명운(命運)이기도 하지만 소홀히 준비했기에 빚어진 결과라며 반성하기도 했다. 또 귀향하고서 비 때문에 병을 얻어 고생하고 있다는 안부를 전하고, 경향(京鄕)에 있는 족인들이 추향(秋享)에 참석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하며 문중 일을 걱정하기도 했다. 이승학이 과거 시험 일정을 묻는 내용도 보인다. 그는 내년 봄에 증광시(增廣試)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면서 과연 그러한지 확인했다. 본인은 과거를 포기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작(振作)할 기운도 없다며 탄식과 미련을 드러내기도 했다. 편지 말미에서 여관(汝寬) 족인에 대한 안부를 묻고 인편이 없어 편지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씨 뺀 솜 2근을 함께 보낸다는 말을 추신으로 적었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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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卯二月十四日 舍伯 舍弟 辛卯二月十四日 李承鶴 舍弟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 2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여러 집안 사정을 묻고 과거 시험 중인 본인의 사정을 전한 간찰. 1891년 2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안부와 여러 가지 사정 등을 전한 간찰이다. 이승학이 1890년 11월 이후로 동생 이승구(李承龜, 1860~1942)에게 편지를 보내 지속적으로 집안 사정 등을 당부한 것으로 미뤄봤을 때 이 편지 역시 이승구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승구는 이승학의 숙부(叔父) 이원선(李元善)의 양자로 들어간 둘째 동생이다. 이승학은 그간의 인편을 통해 편지가 전해진 사정 등을 먼저 언급하며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집안의 세세한 일들로 관심 쏟을 곳이 많은데도 이승학 자신의 우려가 커 피하기만 하고 해결하지 못해 우습고도 가련하다고 한탄했다. 이어 가족들의 안부와 누이동생의 혼사에 관해 언급했는데, 누이의 혼사가 어떠한 일로 갈등을 겪고 잘 성사되지 않은 듯하다. 이승학이 편지에서 이러한 갈등은 본인이 자초한 것이며, 또 애초부터 근실하지 않은 잘못도 있다고 하면서 이 통한 세상의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는 길이라고 동생을 달래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어 이승학은 과거 시험의 상황에 대해 전했다. 과거 시험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본인이 오활한 서생(書生)이라 그런지 자책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지난번 향시(鄕試)가 여의치 않아 아직도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과 세력가에게 분주히 달려 다니지 못해 시험이 풀리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은 예를 따라 과거 시험에 응시할 것이라는 점을 전했다. 계속해서 말하기를 지난번 동생의 편지에 광수(光秀)가 서울로 올라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절대 올려 보내지 말 것과 함께 자세한 말은 별지(別紙)에 썼다는 말로 편지를 마쳤다. 이를 보았을 때 별지에 중요한 내용 등을 전한 듯 한데 별지가 남아 있지 않아서 그 내용을 알 길이 없다. 이승학(1857∼1928)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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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卯三月卄六日 舍兄 舍弟 辛卯三月卄六日 李承鶴 舍弟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여러 집안 사정을 묻고 과거 시험 준비 중인 본인의 안부를 전한 간찰. 1891년 3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여러 집안 사정을 묻고 과거 시험 준비 중인 본인의 안부를 전한 간찰이다. 동생은 이승학이 서울에 있는 동안 집안일을 주관하고 있었던 동생 이승구(李承龜, 1860~1942)를 지칭한 듯하다. 이승구는 이승학의 숙부(叔父) 이원선(李元善)의 양자로 들어간 둘째 동생이다. 이달 초에 담양(潭陽) 연동(淵洞) 인편으로 편지를 전했으며, 담양 백동(栢洞)의 족숙(族叔)이 곧바로 내려가 그간 사정을 자세히 알려줄 것이라는 말로 편지를 열었다. 이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 등이 이어졌다. 또 이승학 자신의 사정을 전했는데, 현재 양씨(梁氏)와 기씨(奇氏) 두 분과 함께 기거하고 있으며, 숙씨(叔氏)도 잘 지낸다는 말을 하였다. 숙씨가 가까이 살거나 함께 지내기 때문에 숙씨도 안부도 알린 듯하다. 이어 영진(永珍)과 만난 사정, 환전(換錢)에 관한 내용 등을 언급했는데, 영진과 관련된 일이 꽤 언급되나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그 내막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환전의 일은 1890년 11월 이후 편지에서 계속 보이는 담양읍(潭陽邑)의 상인 국영진(鞠永趁)이 이승구 집안에 갚아야 하는 돈을 말한 듯하다. 편지 끝에서 이승학은 여름은 고향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번 서울 행차는 좋은 상황도 아니고 불리한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용국(龍國)이 내려간다고 하여 이편에 편지를 부치는데, 용국이 용대(龍臺)에 전달한다고 하였다고 당부했다. 이를 보면 이승학은 가까운 주변 인물을 통해 자주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승학(1857∼1928)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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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兒見三朔間重侍狀安過讀字旣與乃範諸友同處則庶無浪過時日否遠在旅館寂寞夜每側耳如聞咿唔聲焂覺非聽也此吾之心馳而然也汝能無間단知此乃父心而不懈耶徒悠泛而已耶吾未知也雖然乃父之望於汝者幸其自成立庶不爲人下之歸耳乃父平生立心立脚不得定牢作事每如捕風人所爲自娛而見笑於人無非此豁汝不必遠求而以吾爲前車則亦知自謀矣西遊之計是吾快心經營而無事之不從心久矣竟歸馬有停罷在趁而無便寄書徒使家中空生離遠之懷思之可悶而聞此不去如死者之生還在於漢城不足論也到此進退亦難留俟開正浩然而所謂得失喜付於一一有何人力可及也家間事汝叔父旣看則汝之所業專意而外內細瑣勤勤奉承也吾之出家後宿疴稍減委或添或歇而近日毒感在身亦可以行氣餘外勿慮但費用每關念如家務世念之逐人困甚若是爲甚可苦可苦歲內衣服一襲付送然後可以卒歲矣若無信便可付則送于下沙可也此兄方同處而龍成歲內又上來云耳餘難一一庚寅至月念五 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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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 임삼택(林三澤)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卯三月二十一日 侍生 林三澤 丁卯三月二十一日 林三澤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묘년 3월에 임삼택(林三澤)이 안부를 전하면서 고풍시(古風詩)를 부탁한 내용의 간찰. 정묘년 3월에 임삼택(林三澤)이 안부를 전하면서 고풍시(古風詩)를 부탁한 내용의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에게 지난번 헤어진 후로 건강은 좋으신지, 무사히 돌아갔는지를 묻고, 이어 본인의 안부를 전했다. 자신은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시고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이어 시(詩)를 부탁하기를, 지난번 고풍시를 지어 주겠다고 승낙하셨는데, 이번에 감히 청하건대, 가는 인편에 시를 써서 보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편지 발신자인 임삼택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어서 간지의 연도를 잘 알 수 없다. 다만 이 편지가 이승학(李承鶴) 가문에서 나온 문서라는 것으로 미루어 수신인을 이승학으로 추정했을 때, 편지에 적힌 정묘년은 1927년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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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만(奇宇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新年十三日 奇生宇萬 新年十三日 奇宇萬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奇宇萬이 보낸 간찰. *원문: 白君省几回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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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응(奇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臘小望 弟 奇膺 玉山侍經丌 壬臘小望 [1902~1912] 奇膺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12월에 기응(奇膺)이 인척(姻戚)인 이광수(李光秀)에게 안부를 전하고 내년 봄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내용을 전한 답장 간찰. 모년 12월 14일에 기응(奇膺)이 인척(姻戚)인 이광수(李光秀)에게 안부를 전하고 내년 봄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내용을 전한 답장 편지이다. 편지 첫머리는 인형(姻兄)인 이광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전한 내용이 담겼다. 장성(長城)의 초가집에서 차를 다리며 오롯이 앉아 보내다가 매번 꿈속에서 담양(潭陽)으로 달려가곤 하는데, 이는 담양의 산수가 좋아서만이 아니라 인형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며 그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뜻밖에 보내신 편지를 받아 보니, 편지의 내용이 멀리 70리 밖에 사는 저의 폐부(肺腑)를 울려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의기(意氣)를 차오르게 하며, 말이 모두 향기롭고 상쾌하여 병자가 회생할 듯 하다고 문장 솜씨를 극찬했다. 편지는 이광수의 안부를 확인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이광수가 산방(山房)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집 뜰에는 중국 한(漢) 나라 학자인 정현(鄭玄)의 제자들이 책을 맬 때 썼다는 고사로 유명한 서대초(書帶草)가 생겼을 것이라고 하며 이광수의 학자적 면모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또 이광수가 태산(泰山)과 같은 선생 아래 거처를 정했다고 들었는데, 이 결심은 우리 도(道)의 복이 아니겠냐며 축하한다는 말을 한 내용이 보인다. 이 구절은 아마도 이광수가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을 스승으로 받들게 된 일을 두고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광수는 아버지 이승학과 함께 기우만을 스승으로 모셨다. 계속해서 기응은 그간 자신의 안부를 알렸다. 겨울 동안 기침 소리를 내며 지내다 보니 생인(生人)의 흥취가 모두 사라졌다면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 근래 고문(古文) 수백 권과 명화(名畫) 수십 본과 함께 썰렁한 집에서 좀벌레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또 능히 일을 마칠 수 있다고 한 구절이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회근(晦根) 또한 별 탈 없느냐고 안부를 물으면서 저를 위해 소식을 전해주기를 청했으나, 회근 역시 누군지 알 수 없다. 이어 이귀동(李龜東)은 우뚝하게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의 교송(喬松)과 같아서 일찍이 저와 함께하려 하지 않았을 것인데, 지난번 시회(詩會)에 와서 현순(弦旬) 동안 머물다가 금성산(金城山) 아래 영강(靈江) 상인(上人)이 되었다고 하며, 이귀동의 신선과 같은 면모를 칭찬한 내용도 보인다. 끝으로, 답장 편지를 곧바로 전송하지 못해 망망(惘惘, 맥없이 마음을 잃은 모양)하다고 하며 미안함을 표하고, 봄에 만나자는 약속을 상기시키며 편지를 마쳤다. 편지를 쓴 날짜 부분에 '壬腊小望'으로 표기되어 있어 연도가 불분명한데, 그동안 장성의 인척에게 온 편지들로 미뤄봤을 때 1892년 임진년(壬辰年)으로 추정된다. 장성의 인척인 기중도(奇重度)와 기응도(奇應度)의 편지를 보면, 1893년 봄에 유람 약속을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 1898~1977)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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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山侍經丌回納沙上奇弟謹上謝白屋煎茗兀坐每夢想馳於秋南者非獨秋南山水好而已我故人玉人其人在意外惠翰同鄙星至抑何神耶字字肺腑能使七十里外人擊節釀淚弟之生平意氣得兄此書盡矣永夕奉玩頰舌盡芬爽然病者有回甦精神故人之賜大矣彿恩可忘伏審早入山房云庭下必生書帶草矣可卜泰山下先生豈非吾道福哉弟三冬雪月色喀喀聲中度了生人之趣都窮矣近以古文數百卷名畫數十本同此愛病一軀置之寒齋上作蠹魚優游其間不死足矣能事畢矣晦根亦無恙否爲我寄聲李龜東屹屹凌宵喬松曾不欲與弟同牕而向者以詩會來留一弦旬內作金城山下靈江上人兄書未卽傳送思極惘惘春約令人沾沾益知不遐萬萬意長神短不能盡傾熱腔不備謝上壬腊小望弟奇膺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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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金寅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弟 金寅圭 金寅圭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김인규(金寅圭)가 이광수(李光秀)에게 그간 뵙지 못한 사정과 새해 인사를 전한 내용의 간찰. 12월 30일에 김인규(金寅圭)가 창평군(昌平郡) 장전(長田)에 사는 이광수(李光秀)에게 그간 뵙지 못한 사정과 새해 인사를 전한 내용의 편지이다. 며칠 동안 소식이 막힌 것이 마치 한 달과 일 년 같이 아득하게 느껴졌는데 오늘 편지를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말로 편지를 열었다. 올해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으니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의 비분강개한 마음이 다른 때보다 심하다고 하며 세밑에 오는 서글픈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이 구절에서 김인규가 다른 지방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 편지로 이광수의 안부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되었다는 말을 하였다. 김인규 본인은 이번에 결단코 이광수를 찾아뵙고자 했으나 공교롭게도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더욱이 추위 때문에 길을 나서지 못했다고 전하며 죄송한 마음을 표했다. 새해 정월달엔 길이 막혀있다고 해도 기어이 만나 뵙고 이전에 부탁한 일을 준비하자고 말하고, 새해 인사를 전하며 편지를 마쳤다. 편지는 연도가 없이 '小除日'이란 일자만 표기되어 있어서 어느 해에 보냈는지 알 수 없고, 김인규에 대한 정보도 피봉에도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 1898~1977)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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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별지(簡札別紙)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교통편을 제시하며 만날 장소를 알린 내용의 간찰 별지. 황해도 금천(金川) 등지의 구체적인 교통편을 알려주며 만날 장소를 전한 내용의 간찰 별지이다. 별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해도 금천의 금교역(金郊驛)에 하차하여 평산(平山)의 저탄교(猪灘橋)를 건너서 오탄(鳥灘)에 기거하는 주사(主事) 이승묵(李承黙) 집을 방문하고 한포정거장(汗浦停車場)으로 나오라는 내용이다. 이 별지는 본 편지와 함께 있지 않아 수ㆍ발신에 대한 정보와 쓰인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승묵(1854~?)이 양녕대군의 둘째 아들 함양군(咸陽君) 이희(李䛥)의 후손이라는 것과 이승학 가문에서 나온 문서라는 점으로 이승학 집안으로 온 문서로 추정할 뿐이다. 이승학 가문 사람이 집안 식구들에게 보낸 문서일 가능성도 크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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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川金郊驛에下車하야平山猪灘橋를건너셔鳥灘居李主事承黙家를訪宿하고出于汗浦停車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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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長田李進士宅回納昌吏上謝候伏拜審體候萬安仰慰苐京換苦請者何人用之者何人栗哉初不相知而只恃 令胤爲之也今聞李碩士所恃則 以保證一款有管不知而推於生是豈平日所望於尊座耶夫以經緯上言之票主不出則自歸於保證矣此之經緯應想先燭而何不速辦以給放此葛藤耶伏歎伏歎玆一曰今日內通電於 令胤兄限五六日間下來無至相推之地若何餘不備上謝禮侍生張復圭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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