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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兒客中游學未必非好事於汝爲太早計恐無實見得徒費好箇光陰如始料早之圖歸雖以通家若父兄子侄非吾見及處皆是優途況復多年輩日事戱笑則將何益於身心哉蚤夜警惕須防此而知戒惧否才不可以强能惟見識篤行可礪而至莫限才薄行益力可也近留下沙乎莊山乎先述終始同進退逢海亦得同處否二枝中洞間修人事今將發行乎來時入廣里見汝內從覓山擇而從容袖來訪見李生員向者虛費精力謝過焉餘不一一壬菊晦父書蓮花五朶蓮葉五斤求來焉此是昌平宅藥材所托緊急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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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기우만(奇宇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申元卄日 奇生宇萬 戊申元卄日 奇宇萬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8년 1월에 奇宇萬이 보낸 간찰. *상태: 상단이 찢김 *원문: 白斯文省几回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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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기우만(奇宇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申仲秋十七 奇宇萬 戊申仲秋十七 奇宇萬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8년 8월에 奇宇萬이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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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舍弟書華邨便書計日則已得見矣書發時難定歸期以八日卜日而七日所約事不入料更以十日爲言而又不如意又以今日爲限而此日事不知將如意否也緣此而費盡歲月則卽今中路改眼之節爲難且此事自此結末可以浩然而一番誤着無事葛藤至此甚哉苐又思惟吾之常初出脚雖是妄想到此久留之餘前頭數朔間事可謂關係而卽今徒歸無益梁奇兩兄旣與之同處又爲之伴行作定而今皆坐停爲過夏計吾則前頭會試雖無意想抛過亦難不得已留待七月計而其間數朔之費亦是朝三暮四況今 陵行後又爲增廣云云則似非虛傳若然則這間往來亦難非但此也以式科言之下不出七月歸家家事之狼狽吾之不自謀且家運也汝輩勿以專爲深憂也百口計活雖是可惧可慮處吾豈不知而爲此長遊乎今年是大限定終若不利則亦長往不返計也姑試之而已此則吾自專故耳家中事汝雖百般苦況忍過忍過課農課讀副此付梅之意見今春夏間早夏太甚而下鄕則間有添洽時耶生在乾坪此是苐一可宜眼前百難雖有無犯手於谷種爲可龍國兄便書得抵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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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寅陽月七日 父 寄家兒 庚寅陽月七日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0년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공부에 대한 당부를 전하고 본인의 안부를 적은 내용의 간찰. 1890년 10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공부에 대한 당부를 전하고 본인의 안부를 적은 내용의 편지이다. 서울 길을 나선 지 한 달이 지나는데 남쪽의 소식을 들을 길 없어 막막하다는 말로 편지를 열었다. 이어 조모(祖母)에 대한 안부를 묻고 공부의 진척과 여러 가지 당부 등을 담았다. 이승학은 아들에게 '크게 역량을 키워야 많은 사업(事業)을 도모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역량을 키우는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독려했다. 또 집안 문제는 제부(諸父, 부친의 항렬인 가까운 친척)과 여러 숙부가 담당할 것이니 간섭은 하지 말되, 다른 사람의 일처럼 여기지 않도록 하라고 하며 집안에서 아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일러두었다. 또 오로지 학문에 힘써서 가문의 명성을 실추시키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하였다. 이어 이승학 본인의 안부를 전하면서 속마음을 내비쳤다. 본래 이번 행차는 과거 시험 등의 이해 때문이 아니라 중국을 유람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승학은 식재(植齋) 기재(奇宰, 1854∼1921)형과 함께 이달 보름쯤에 인천(仁川)으로 가서 화륜선(火輪船)을 타고 중국을 유람하려고 했으나 가족들을 놀라게 할까 염려하여 계획을 포기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내년 봄쯤에 귀가할 계획이니 마음졸이며 기다리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편지 끝에 이승학은 아들에게 거듭하여 공부를 강조한 내용이 보인다. 가문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공부하여 멀리 있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 달라는 것이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 1898~1977)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가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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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亥四卄四日 父 寄家兒 己亥四卄四日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 4월에 이승학이 아들 이광수에게 전한 간찰. 집안 일을 잘 단속하라는 당부와 본인의 소식을 상세히 전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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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子正月卄三日 少弟 李承鶴 戊子正月卄三日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 1월에 李承鶴이 지인에게 보낸 간찰. 남쪽에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는 내용, 지난번 못 보낸 돈을 보낸다는 내용, 增廣試 시행 여부를 묻는 내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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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冬饕風虐雪可謂滋甚而向北啓駕能無勞攘利稅耶追後區阻歲又換矣起居伏惟萬旺 覃節俱思於新舊之際益不勝遠溸憧憧少弟省節印昔而正初以感冒作幾日叫苦尙此圉圉耳今年南中毒感無異運氣而在在皆然亦甚苦悶處也居時所關零數以此處慕爲參緡而漁洞亦欲便未付故當五六兩文今纔備呈代領仰念春間又有增廣云果然耶不日非遠書可旣惟烱亮不備候禮戊子正月卄三日 少弟李承鶴拜手票紙還送爲好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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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疏上城主 座前稽顙謹封稽顙再拜言秋初返旆後窃欲以數字書疏伏探近候而家憂私撓滾汨無時未遂素忱罪悚罪悚每因族兄問候伏聞必致厚念於無告之罪民尤何等惶恐哀感也伏問比來篆軆度萬相區區伏遡下忱罪民奉筵之外僅保頑喘餘復何達此時伏有切急事情不得已仰達于城主未知如何而罪悚極矣在夾告千萬荒迷不次謹再拜疏上城主 下鑑甲申八月十七日夕罪民李承鶴疏上[別紙]洪雅士鍾轍居靈光卽今上試之同宗也罪民之切戚也得茂長倅書簡欲納于三試長水而有晩時之歎要于中路不得納則且明日試日也若入于試所則閽禁至嚴尤不可爲矣聞今夜宿所于本府方且前進而使罪民請于城主前此科事也何忍强恝乎城主亦爲下諒矣幷爲封納卽使通引輩傳于三試則非徒罪民之生光科士之不狼貝大矣渠亦知感矣千望萬望恃愛妄讀尤極惶恐惶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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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書前日末始自金剛入京卄六日郵遞付書入抵否其間經過略悉或無洪喬否間來家中皆無故所農若何否傳聞南來之言頗有豐登之望云果然乎父留京五日再昨夜宿桃洞參隋城府夫人忌祀以兩諸族會無幾人矣吾家雪寃事累累說及而觀其意向今不過却且有機會難失之慮然吾下去後當門議矣至德誌已覓來耳昨日向果川之路入宮邨遇雨止宿而適聞有便小山似先我而去故暫付數字之路資葛藤不少江華則不得前進今日向果川省墳明日則直下爲計望前必入門矣綾州丈左遷非但爲自家之不幸也今將勸赴新郡云吾去前似發矣數數問安也暫此不一一七月初吉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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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移館門外非不意也見各處諸族收單而來吾順城派尙不齊會然扶安與公州新昌稷山等地所居族方來到而單寒心矣且以大君派言之無不知吾派之寃而今番不可失時云者一口然矣此順城派無人之譏必將難免吾之所行者亦忍痛含寃迫不得已八字耳吾必出入日使栢叔動得桃台似過三四分然前日多來之爲害不少下稍姑不知而苐觀動靜耳此紙勿煩人付丙也今逢順城派各處人廣詢其烏川伊山兄弟分間之說探得則皆云各家文蹟初無是事云云但文岡所持文蹟有之而此則自天齡氏家無后後得來云然亦諱而不發云耳此事則不足爲憂初以此等爲慮者今幸無事矣勿煩勿煩苐待下回但此字經過日用甚歎可歎不用下換者每致家中爾輩之撓故耳驢子尙不喜借于桃洞騎而食之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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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별지(簡札別紙)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들에게 족보 편찬 중에 제기된 양녕대군(讓寧大君) 순성파(順城派) 문제를 전한 내용의 간찰별지. 이승학(李承鶴)이 창평(昌平)에 있는 동생들에게 ?선원보(璿源譜)? 편찬 중에 제기된 양녕대군(讓寧大君) 순성파(順城派) 문제를 전한 내용의 간찰 별지이다. 이승학이 한양에 있으면서 알게 된 족보 관련 소식을 자세히 전한 것인데, 별지 중간에 '불에 태우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민한 사항이기 때문에 별지로 따로 적어 집으로 보낸 듯하다. 본 편지가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1899년에 작성된 이승학의 편지에 족보를 자주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 해에 작성된 별지로 추정된다. 별지는 오늘 (한양의) 문밖으로 숙소를 옮겼다는 소식으로 시작하여, ?선원보(璿源譜)? 편찬의 진행을 상세히 전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각처에서 족인들의 수단(收單)이 오는데, 순성파(順城派)는 아직도 다 모이지 않고 있으며 부안(扶安)과 공주(公州), 신창(新昌), 직산(稷山) 등지에 사는 족인들이 이제 도착했는데, 그 수단이 매우 한심하다고 표하기도 했다. 이어 순성파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두루 전했다. 양녕대군파가 우리 순성파의 원한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원보? 편찬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고, 또 순성파는 인재가 없다는 기롱이 있어서 반드시 면하기 어렵겠다는 말도 있으니,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은 '통분을 참고 원한을 품는 것은 절박하여 그러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가 없다.[忍痛含冤迫不得已]'는 이 여덟 글자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순성파 문제는 이승학 자신이 관여하기보다는 족숙인 백동(栢洞) 대감과 도동(桃洞) 대감이 중재하여 처리할 것이기에 자신은 일의 추이를 살펴보겠다고 하였다. 또한 순성파 각 지역 사람들에게 오천군(烏川君, 이사종(李嗣宗))과 이산부정(伊山副正, 이사성(李嗣盛)) 형제의 분파에 대한 설을 널리 물었더니 모두 각 집안의 문적(文蹟)에 애초부터 이 일이 없었고, 다만 문강공(文岡公) 집안의 문적 중에 이 일이 보이는데, 천령씨(天齡氏) 집안에 후손이 없어 나중에 얻게 되었는데 이 일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 등은 크게 근심할 것이 없고 다만 돌아가는 상황을 기다릴 뿐이라고 집안 식구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이 단락에서 언급한 오천군과 이산부정의 분파나 문강공 가문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다. 편지는 서울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비용 때문에 매번 동생들에게 혼란을 일으킨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 내용과 나귀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아 도동에서 탈 것을 빌렸다는 말을 끝으로 편지를 마쳤다. 별지에서 언급된 순성군 문제는, 순성군 이개(李?)의 배우자와 관련된 것을 말한 듯하다. 1899년에 종정원경(宗正院卿) 이재완(李載完)이 고종에게 요청하여 ?선원보?를 수정하고자 했다. 이때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전주이씨 양녕대군 계열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이전에 만들어진 ?선원가현록(璿源加現錄)?에서 양녕대군 이제(李禔)의 아래에 '순성군 이개의 첩(妾)의 맏아들 오천군 이사종'이 라고 기재되어 있고, ?선원속보(璿源續譜)?에는 오천군 이사종의 기사 옆에 주석(註釋)을 달기를, '어머니인 연일 정씨(延日鄭氏)는 참의(參議) 정종성(鄭宗誠)의 서녀(庶女)이다.'라고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천군 후손들은 나라의 문헌과 개인 문헌들을 통해 연일 정씨가 서녀라는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종성의 아들 정보(鄭保)가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온 집안이 모두 반역자로 몰리자 순성군의 처도 첩으로 강등(降等)되었다는 것이다. 옛 ?선원록(璿源錄)』에 순성군이 연일 정씨에게 정식으로 장가들었으며, 또 순성군은 첫 부인 신씨(申氏)와 같은 산기슭에 따로 장사지내고, 후실인 정씨는 순성군과 함께 나란히 쌍무덤으로 장사지냈다고 씌어 있으니 정씨가 순성군의 첩이 아니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것이다. 순성군파 사람들은 당시 ?선원보? 편찬을 계기로 연일 정씨가 정식 처(妻)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억울함을 씻고자 했다. 참고로 순성군과 연일 정씨 사이에 4남을 두었는데, 오천군 사종(嗣宗), 차남은 헌양군(巘陽君) 사조(嗣祖), 3남은 포산부정(苞山副正) 사원(嗣源), 4남은 이산부정(伊山副正) 사성(嗣盛)이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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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答舍弟書入此年來非無下去便而神思憒憒無意作家書日南望家使焂過正一月矣山直便書初不如不聞而克紹之來始打罷舊菀則慰可知矣細細家冗又令人關心者益多此生憂慮本是過重走避不得果若是甚乎自笑自憐奈何奈何卽日春暄漸宜母主氣力無損省履一如否經婚葛藤莫非乃兄自取者也何以經紀深爲爾曺憐悶雖然人世事不勤其始每至若此惟望涉難長智也大小節俱安喜聞而外何求於客中哉舍伯經冬捿屑無非滄浪苦況而豈全無心而索長安□者但經營每多不如意頗近書生誤闊甚是無謂而可笑也已今番鄕試初若如意則庶有下去之意而尙無指的之道故雖爲停坐然旣有通名之便則不可無納名也亦在周旋得宜否吾不欲以此屑屑於道塗奔走故如是耳隨例觀光無過溺於俗套中以成吾志也克紹事似如意而一門助筆何以容易議到也汝則以吾事不可不赴試所而光兒輩初不妄動可也況吾未去乎前書見兒也欲上來云者是何故也嚴禁也吾事究竟日自有無恨多日何必如是乎餘在片夾便一一細看也姑不具辛卯二月十四日舍伯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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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卯三月四日 寄舍弟書 辛卯三月四日 李承鶴 舍弟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환전(換錢) 등의 일을 당부하고 과거 시험 준비 중인 본인의 상황 등을 전한 간찰. 1891년 3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환전(換錢) 등의 일을 당부하고 과거 시험 준비 중인 본인의 상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여기서 동생은 이승학이 서울에 있는 동안 집안일을 주관하고 있었던 동생 이승구(李承龜, 1860~1942)를 지칭한 듯하다. 이승구는 이승학의 숙부(叔父) 이원선(李元善)의 양자로 들어간 둘째 동생이다. 담양(潭陽) 연동(淵洞)의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가족들의 안부를 두루 묻고 집안일이 군색할 텐데 가장인 본인이 객지에 있어서 동생들을 고생시킨다고 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또 환사(換事)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는 1890년 11월 이후로 이승학이 지속해서 편지로 말한 것으로, 담양읍(潭陽邑)의 상인 국영진(鞠永趁)이 이승구 집안에 260냥을 집전(執錢)하여 엽전으로 주기로 한 일을 이른 것이라 추측된다. 이번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영진이 이 돈을 원래 작년까지 주기로 하였으나 해가 넘어가도록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때문에 이승학도 동생에게 이 일을 독촉하도록 당부했다. 편지는 이승학의 서울 생활로 넘어간다. 이승학은 그간에 본 향시(鄕試)의 결과가 나왔을 듯한데 아직 알 수 없어 답답하다는 것과 두 해에 걸쳐 객지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는 내용, 담양(潭陽)의 백동(栢洞) 족숙(族叔) 편에 자세한 내용을 전달한다는 내용 등이 실렸고, 추신으로 춘의(春衣) 등의 의복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이승학(1857∼1928)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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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舍弟書今月初吉淵洞便付書二日發去云必卽傳而得見矣近日春色日暢侍狀安吉諸眷俱平日南望鄕思尤不自堪也家中近經何以推過必多窘窒而吾則遠遊未歸徒使爾書作此無限苦惱可念可念前書中換事又申之言之則其間周旋至於如何而已爲發行耶此事究竟然後可以安心而卽今過限則不無見促下便不容易上來可謂滄浪而徒悶鄕試得失已辦而姑未得知可菀一解得失不係吾之去留且無關情者而兩載旅途外面亦難耳近日事前書已言栢洞族叔今又下去則細細事必聞之矣擾甚略此不具式辛卯三月四日舍兄書春衣裌衣與苧布弊衣上下單衣送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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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家兒登途後已過一月而南來信字莫憑徒增泄泄比日祖母主氣力萬康家中無大何讀字課日否仰應乃範同接乎凡人之有許大力量然後做許多事業而汝之不動向學每每可念家中事汝之諸父諸叔俱在使之擔常做去勿爲干涉勿如看他人事專念向學勿墜家聲留意焉父姑無歉狀而今行本不關利欲西入中州爲遊覽計而已與植兄結伴將以今望間獎發向仁川候火輪而期在明春則家中勿爲甚待也當初有此意而不發者恐驚汝曺故耳他難一一而所望於汝者勤勤向學不墜家聲而已以副汝父之在滄海萬里之外念也汝之室以今四日無事得抵否俱爲悤悤庚寅陽月七日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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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寅至月念五日 父 光兒 庚寅至月念五日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0년 11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이광수(李光秀)에게 안부를 전하고 공부와 집안일 등을 당부한 내용의 간찰. 1890년 11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이광수(李光秀)에게 안부를 전하고 공부와 집안일 등을 당부한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 서두에서도 안부를 두루 묻는 내용이 보인다. 이승학은 서울로 올라온 3달 동안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면서 잘 지내고 있으며 독서는 어떠하며 동무들과 모범이 되는 공부를 하는지를 물었다. 이어 이승학 본인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본인은 서울의 적막한 여관에서 지내면서 잠 못 들고 있다고 하며 그리움을 표하고 아들의 공부를 독려했다. 이승학은 자신이 뜻을 세우고 행동을 함에 굳게 하지 못하였고 일을 함에 마치 바람을 잡듯이 허황하여 우활 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자책하면서 아들에게는 이 같은 잘못을 하지 말고 아버지를 경계로 삼아 스스로 도모하도록 하였다. 계속해서 이승학은 자신의 현재 계획과 심정 및 앞으로의 계획 등을 두루 아들에게 전했다. 지난달 10월 7일에서 말한 중국 유람은 즐거운 계획이긴 하나 뜻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내년 1월까지 서울에 머물렀다가 미련 없이 갈 것이라는 말 등 서울에서 생활하는 동안의 마음가짐을 표했다. 또 집안일과 관련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중요한 집안 문제는 숙부들이 처리할 것이니 쇠미한 일은 부지런히 숙부를 잘 받들고 공부에 전력하라고 당부했다. 이어 묵은 질병과 독감으로 고단하긴 하지만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내용, 서울살이 비용으로 매번 염려된다는 내용, 의복이 와야 올해를 잘 마칠 것이라는 내용, 편지를 보낼 인편이 없으면 하사(下沙)로 부치라고 하는 내용 등을 두루 밝혔다. 여기서 하사는 이승학 사돈댁인 장성의 하사마을을 지칭한 듯하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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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亥菊至日卽陰曆卄日 父 寄家兒 己亥菊至日卽陰曆卄日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종실록(高宗實錄)? 전주이씨추성수파중중 편, ?전주이씨추성수파보(全州李氏秋城守派譜)?, 낭주인쇄사, 1990 이승학, ?청고집(靑皐集)? 1899년 9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문중의 족보 소식과 집안일에 대한 당부를 전한 간찰. 1899년 9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문중의 족보 소식과 집안일에 대한 당부를 전한 편지이다. 4차례나 편지를 보냈는데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말과 집안 소식이 오지 않아 울적하다는 말과 식구들 안부, 틈틈이 독서는 빠뜨리지는 않고 있느냐는 내용으로 편지를 열었다. 이어 이승학은 예전과 같이 지내며 있으며 밖의 출입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낸다고 말을 하였다. 이어 남쪽의 소식은 계속 들려오는데 집안 소식만 없다고 걱정했다. 당시 동학도의 봉기, 일본과 러시아 등의 외세가 기승을 떨치고 있는 현실에서 이승학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어 현재 이승학이 관여하고 있는 문중 문제를 상세히 전했다. 지난달 8월에 도동(桃洞) 어른과 작별한 후에 오늘 아침 동지(冬至) 다례(茶禮)에 그분과 함께 참석했는데 이승학에 대한 오해를 푼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부안(扶安) 가문 및 문중 각파의 동향, 대군파(大君派)의 별보(別譜)를 모두 원보(原譜)에 들인다고는 내용 등을 자세히 실었다. 1890년 무렵 고종의 명으로 왕실 족보인 ?선원보?를 편찬하게 되었는데, 완순군(完順君) 이재완(李載完)이 주도하였다. 이승학 가문은 양녕 대군(讓寧大君) 아들인 이개(李塏) 계열에 속하였으므로 족보 편찬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 하단에는 집안일에 대한 당부 등을 적었다. 이승학은 앞으로의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자못 고통스럽다는 말 등을 전하며 지난번 사용한 비용 처리 문제, 아버지 이최선(李最善)의 기일이 가까워지는데 객지에 있어 걱정이라는 내용, 마침 능주(綾州)의 족인(族人)을 만나 그편으로 편지를 붙인다는 내용 등을 실었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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