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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卯至月十三日 父 家兒見 辛卯至月十三日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에 4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서울살이가 지체된 까닭과 집안일에 대한 당부 등을 전한 내용의 간찰. 1891년에 4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서울살이가 지체된 까닭과 집안일에 대한 당부 등을 전한 내용의 편지이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리움이 깊다는 말로 편지를 열고, 아들의 안부와 공부의 진척에 관해 물었다. 이어 이승학은 서울살이가 길어진 연유를 상세히 전달했다. 지난번 동생들의 편지를 보고 귀가 날짜를 정하려고 했으나 과거 시험 상황으로 보았을 때 서울에 더 있으면서 결말을 짓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그사이에 만일 고향을 왕래한다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고, 동당회시(東堂會試)가 비록 계륵(鷄肋)이긴 하지만 이 시험을 보고 내려가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귀가가 늦어질 것이니 당분간 기다리지 말라고 전했다. 이 말끝에 본인은 평생 구설이 따랐으며 진퇴(進退)도 마음대로 하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으며, 과거 시험을 위해 서울에 온 것도 원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탄 섞인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시험 준비는 올해를 기한으로 더는 하지 않을 생각인데 식구들이 귀가를 재촉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내용을 보았을 때 가족들은 가장인 이승학이 고향을 오가면서 복잡한 집안일 등을 결정해 주기를 바란듯하지만, 이승학은 시험으로 서울에 온 김에 시험에 집중하고 내려갈 결심을 한 듯하다. 가족들과의 의견 차이로 이승학이 아들 광수에게 귀가가 늦춰진 이유와 심정을 상세히 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이승학은 집안일에 대해 의견을 전했다. 집안일의 낭패는 가운(家運)이라 어찌할 수 없지만 본인이 잘 도모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느냐고 탄식했다. 또 사람의 삶은 정한대로 되지 않으니 넓은 시야를 가지되, 본인처럼 처리하지는 말라고 당부하기도 하였다. 내형(內兄)과 한 달 동안 함께 거주했다는 말과 문중(門中)의 일은 반드시 자세히 전하라는 말을 덧붙이며 편지를 마쳤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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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규(張復圭)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念八日 侍生 張復圭 李進士宅 念八日 張復圭 李進士宅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창평군수(昌平郡守) 장복규(張復圭)가 이진사(李進士)댁에 신문을 받았다는 내용 등에 관해 전한 간찰. 창평군수(昌平郡守) 장복규(張復圭)가 이진사(李進士)댁에 신문을 받았다는 내용 등에 관해 답한 편지이다. 상대방의 안부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 된다고 하고 본인은 공무(公務)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 보내준 8폭의 신문을 잘 받았다는 내용, 모씨(某氏)의 일은 반드시 다시 알려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혔다. 모씨의 일은 아마도 수신인과 합의하여 해결을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 편지의 수신인은 진사(進士) 이최선(李最善) 댁을 책임지고 있는 이승학(李承鶴)을 이른 듯하다. 편지를 쓴 날짜에 '念八日'로만 표기되어 있어서 연도를 알 수 없다. 이 편지는 장복규가 창평군수를 맡았던 1905년 1월에서 1907년 3월 사이에 쓴 것이다. 장복규(1869~?)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字)는 공삼(公三)이고 호(號)는 학운(鶴雲)이며, 금구(金溝, 현 김제) 출신이다. 1885년 진사(進士)가 되었고,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와 창평군수 등을 역임했다. 1905년 1월에 창평군수로 발령받아 1907년 3월에 면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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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長田李進士宅回納昌吏上謝候伏拜審宵落侍體候萬安仰慰侍生一味公擾而耳 新聞八幅依受而某事不必更達耳餘不備上謝禮侍生張復圭再拜念八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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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규(張復圭)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侍生 張復圭 李進士宅 張復圭 李進士宅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창평군수(昌平郡守) 장복규(張復圭)가 경환(京換)의 보증 문제로 이진사(李進士) 댁에 보낸 간찰. 창평군수(昌平郡守) 장복규(張復圭)가 경환(京換)의 보증 문제로 이진사(李進士) 댁에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수신인은 진사(進士) 이최선(李最善) 댁을 책임지고 있는 이승학(李承鶴)을 이른다. 편지의 주된 내용은 이승학이 이광수를 위해 경환(京換)을 부치면서 장복규에게 보증을 부탁했는데, 비용이 잘 처리가 되지 않아 보증인에게 빚 독촉이 오자 장복규가 이승학에게 속히 이 문제를 처리하도록 재촉하면서 보낸 것이다. 편지에서 이르기를 경환을 간청해서 쓴 자가 누구인데, 오히려 자신이 떨고 있다며 자신의 상황을 토로하고, 애초에 보증을 선 것도 이승학의 아들을 믿고서 한 것인데 오히려 보증인인 저에게 미뤄지고 있다면서 불평했다. 평소에 이승학에게 가졌던 믿음에 실망을 표하기도 했다. 경환의 경위(經緯)에서 보자면 표주(票主), 즉 증명서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자동으로 보증인에게 빚이 전가되게 되는데, 이러한 사정을 응당 먼저 알고서 속히 마련하여 지급하지 않고 이렇게 갈등을 일으키냐며 이승학을 몰아세우기도 했다. 또 자일(玆一)이란 자가 이르기를 '오늘 내로 아들(이광수)에게 연락하여 5~6일 사이에 내려오게 해서 서로 미루는 지경에 이르지 말게 하라'고 하였다고 전하며, 이광수가 와서 속히 빚 문제를 처리하도록 재촉했다. 편지는 날짜가 표기되지 않고, 발신자 장복규만 기록되어 있다. 이 편지는 장복규가 창평군수를 맡았던 1905년 1월에서 1907년 3월 사이에 쓴 것이다. 이 시기 이광수는 성균관 박사(成均館博士)가 되어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다. 장복규(1869~?)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字)는 공삼(公三)이고 호(號)는 학운(鶴雲)이며, 금구(金溝, 현 김제) 출신이다. 1885년 진사(進士)가 되었고,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와 창평군수 등을 역임했다. 1905년 1월에 창평군수로 발령받아 1907년 3월에 면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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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기우만(奇宇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亥十二月七日 奇生宇萬 辛亥十二月七日 奇宇萬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1년 12월에 奇宇萬이 보낸 간찰. *상태: 상단이 찢김 *원문: 暮窮恭得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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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기우만(奇宇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辰七月卄七日 病生 奇宇萬 丙辰七月卄七日 奇宇萬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7월에 奇宇萬이 보낸 간찰. *원문: 不見故人殆數年望之如雲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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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辰臘月三日 弟 李承鶴 庚辰臘月三日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0년 12월에 李承鶴이 지인에게 안부를 전한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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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夏事吾無宿圖而得追思之未嘗不喜心尙留在胸中但別後信息無便可憑今拜令從氏旣認侍居寜謐又聞進益日懋此非則舊喜消息耶顧此坐在舊日何蒙者寜不聞風自愧何當一握以續前遊願言無乃乎萬文諉筆忘略此替伸只希恕照庚辰臘月三日弟李承鶴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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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申八月十七日 罪民 李承鶴 城主 甲申八月十七日 李承鶴 城主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4년에 李承鶴이 喪中에 있는 수령에게 보낸 간찰. 그간 안부가 소홀하여 죄송하다는 내용과 別紙를 함께 보낸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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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天無心東子胡罪往者如狂如醉莫之定情今也寜欲溘然而不可得將欲何恃而寄生乎汝亦可歸矣旅過十載所得何事目見不忍見耳聞不忍聞而復有所希望乎汝父老可以歸養汝兒長可以歸敎汝婦怨可以歸慰家産縮可以歸收鄕里笑可以歸隱去留無關國計營爲無益身分而負此五件大違曳裾長安市上有何能事甘作賤丈夫乎如曰不然死生任天而已過境之囹圄以新聞趁知逮與放不須慮如料矣過此後又何不卽日納履復有顧戀乎所畜所隨則任其自行所事牽掣則卽時打罷當此時百兩能讀歸去來辭歌反招隱外無他自今以往雖以藥鍾養吾無不顧醉榮乎醉名乎前者猶有一半分反顧今何所顧乎有口莫說日暮途遠人間何世忍痛含怨迫不得已八字朱子已言之守此法門而已他何足道勿復然也初欲起身又難如意空被檢事査知何益矣付此數語更勿猶豫謝却孝臆塞不拕長庚戌八月八日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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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戌正七日 父 寄家兒 甲戌正七日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술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혼란한 집안 사정을 전하고 서울에서 해산(解産)하도록 당부한 내용의 간찰. 갑술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혼란한 집안 사정을 전하고 서울에서 해산(解産)하도록 당부한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 서두는 그동안 잘 전해지던 편지가 새해 들어 막혀서 울적하다는 내용, 객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의 안부와 그가 머무는 주인댁의 안위를 묻는 말로 채웠다. 이어 고향 집에 있는 본인과 식구들의 편치 못한 상황을 두루 전하며 아들에게 귀향(歸鄕)을 늦추라고 당부했다. 본인은 작년 12월 23일에 감기로 몸져누웠다가 27일에 불측한 변을 만나 건강을 돌보지 못하다가 어제 겨우 움직였다고 전하고, 너의 조부모님과 어머니도 변란을 겪으면서 건강이 좋지 않다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하였다. 이렇듯 집안 사정이 어수선하니 지금 며느리를 데리고 내려오지 말고 서울에서 해산(解産)하라고 일렀다. 집안 사정이 어지럽게 뒤얽힌 삼 가닥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으니 어찌 식구들을 데려올 수 있겠느냐며 거듭 귀가를 말렸다. 또 아들의 종조부(從祖父)가 되는 서(西) 대감의 수감 소식을 알리며 어수선한 집안 상황을 전했다. 종조부가 현재 담양(潭陽) 경찰서에 있는데 근간에 광주(光州) 검사국(檢事局)으로 옮긴다고 하는데, 그의 정신을 감정한 후에 참으로 광란(狂亂)한 것이라면 오래지 않아 풀려 나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4~5년간 징역(懲役)을 살 것이라고 하는데, 본인 생각으로는 곧 풀려날 것이라고 하였다. 만일 종조부가 풀려나 귀가한다면 그 후 어떻게 조처할지가 큰 문제라고 하면서 우려를 표했다. 이 편지는 갑술년(甲戌年)에 쓰인 것으로, 담양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승학 가문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간지를 보았을 때 이승학이 쓴 것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이승학의 생몰년을 기준으로 하면 갑술년은 1874년이나 1934년을 가리키는데, 편지의 내용을 따르면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어야 하는데, 이승학(1857~1928)의 생몰년과 아버지 이최선(李最善, 1825~1883)의 생몰년, 아들 이광수(李光秀, 1873~1953)의 생몰년을 따져 보았을 때 1874년과 1934년 모두 성립하지 않는다. 아마도 담양에 거주하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집안의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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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兒見天之涯地之角兩感不見舐犢之情將禁乎卽日淸和重省安吉家間免何而課工不忘否南望鄕山我心徒菀此餘欲歸未歸滯留已久而向見汝叔父書歎然定歸日而此中事商量又異此日彼日到今無究竟尙坐此而待之者自此結末然後可以無事故如此而遷延多日可慮餘外無他慮耳旣爲久留之餘又思之雖今歸家吾做何事若推過數朔則七月事可無憂而下去則其間炎程憧憧往來亦是難便者甚多況又東堂會試雖是鷄肋留此身觀光下去則無味姑爲逗遛似無妨家中勿苦待我我之平生以口舌自繞一身進退可謂不得自由而到此地頭吾豈無千思萬量而樂此長遊不反乎所謂觀光以今年爲鐵限則在爲不爲間耳汝輩不知意每每促歸使客懷不容甚是悶歎家事之狼狽已爲如此則付之以家運吾之不善自謀更誰怨尤雖然人生事自無定處而闊看則無事矣汝無效乃父之放曠着念招基收拾家中待吾七月也內兄近一朔同處而歸旅中事必細傳矣姑不一一辛卯巳月十三日父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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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亥正月卄九 父答 答川兒 己亥正月卄九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전주이씨추성수파중중 편, ?전주이씨추성수파보(全州李氏秋城守派譜)?, 낭주인쇄사, 1990 이승학, ?청고집(靑皐集)? 1899년 4월에 이승학(李承鶴)이 강학소에 머물면서 이광수(李光秀)에게 시국 상황을 전하고 여러 가지 집안일을 당부한 내용의 간찰. 1899년 4월에 이승학(李承鶴)이 강학소에 머물면서 이광수(李光秀)에게 시국 상황을 전하고 여러 가지 집안일을 당부한 내용의 편지이다. 문을 나서면 난리를 만나게 되는 상황이라 집에 있는 자는 객지에 있는 가족을 걱정하고, 객지 가족은 집의 가족을 근심하는 때라고 한탄 섞인 말로 편지를 열었다. 이어 아들에게 여러 가지 집안일에 대한 처신을 알려주었다. 갑오년(1894)의 난리를 겪은 뒤로 두려움이 남아 있어 더욱 염려된다고 하면서 아들에게 당부하기를 밖에서 들려오는 풍문을 함부로 듣지 말되, 지나치게 놀라지 말고 법도에 알맞게 처리토록 하였다. 또 만일 위급한 경보가 오면 집안을 지키기 어려우니 예전과 같이 처리하라고 하고, 저 동학교도(東學敎徒)의 기세의 여부를 관망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갑오년에 동학교도가 분기했을 때 이승학은 가족을 이끌고 방장산(方丈山)으로 이들을 피해 있었다. 이승학은 동학도들의 형세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으니, 혹시 위기가 닥쳤을 때 갑오년 당시에 처신한 것과 같이 가족을 이끌도록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 또 편지에서 이르기를 많은 식구가 실업(失業)하게 되면 구렁에 버려질 위험이 있기에 제때 맞춰 농사를 짓도록 하라고 하면서 만일 있을 소요를 대비토록 인도했다. 산송(山訟)은 결말이 났는지를 묻고 만일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우선 그대로 두라고 하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세세히 챙겼다. 이승학은 동학교도에 대해서도 아들에게 자세히 전했다. 그는 동학교도를 무뢰한이라는 의미의 '비도(匪徒)'라고 칭하면서 19일 밤에 고부(古阜)을 함락시켜 병장기(兵仗器)를 가지고 갔는데, 이들의 세력이 무려 수천만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수백만을 넘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 전주의 병사와 교전하다가 그 한 부대가 22일에 태인(泰仁)에 머물러 후군(後軍)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 수 없으나 시급히 공격할 뜻은 없는듯하다고 전했다. 지금 나라의 계책으로 보았을 때 조금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되는데도 자신은 세월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편지 하단에는 이승학의 근황을 전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승학은 동산에서 유씨(柳氏)가로 옮겼다가 행단(杏壇, 강학소)에 이르러 길의 소식을 탐문하고 최문창(崔文昌), 최치원(崔致遠)의 영상(影像)에 배알 하고 고현(古縣) 송정(松亭)의 김씨(金氏) 집안에 머물고 있다고 하면서 자세한 이동 경로를 알려 아들을 안심시켰다. 또 앞으로 도망할 염려는 없을 것이나 간혹 있더라도 담대하게 처신한다면 크게 일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능주(綾州)의 환전(換錢) 일은 지금 상황을 보았을 때 반드시 이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만일 온다면 동암(峒菴)으로 기별하라고 전하였다. 피질(披姪) 편에 편지를 보낸다고 하면서 편지를 끝마쳤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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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家兒出門日又遭亂雜在家必思爲客爲客難忘在家然生此世者安得無今日也但甲午餘怖尙存尤關念矣外來風傳勿爲泛聽勿爲過驚酌中做去如有急警則難以守家須如往昔先發可也姑觀彼之鴟張與否多口之家失業則難免溝壑無失農時凡事十分着意朝夕間常自省察焉山訟間已結末否若不如意則姑置之可也匪徒十九日夜陷古阜兵仗取去外張聲勢無慮數千其實不過數百云完兵三路交下一隊則二十二日宿泰仁其翌又待後軍而留之雖未知裏許似無急擊之意云以今國計則此時不可少緩而玩賞時日亦復如何吾行常自宿園栗翌日宿柳郞家以挽留半日留抵杏壇爲探前路消息止一日謁崔文昌影像途古縣松亭諸金氏主人來頗頻矣木支族祖先待同暢餘可傳矣今方向上而不可回轡行行前進無憂汝父而爲汝事也前頭無奪騎之慮而若或有之闊看則無事矣綾州換事覓去耶以今時象則必不來而若來則如來時言以四爲主裁書於峒菴也方披侄而發暫書此付木支族祖餘必許矣不具己亥四卄四日父在杏壇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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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雨旋晴熱且陰懷想勞勞卽拜審日間體事萬旺何等何慰實副隕祝記下一視前樣之日事愁惱而已敎意恪悉而見今洛下素親之友衛坐試藥則一席各試可謂白而不精且無信孚之誼苐觀下回動靖更當委□幸伏望爲我紹紒千萬千萬今此專敎感如感矣然其於事狀之爲右奈何此病之加減別無遲緩之慮以此諒下少俟通奇如何如何餘留不備謝候禮卽記下任百憲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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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二月十九日 罪記末 二月十九日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상중(喪中)에 있는 아무개가 이진사댁(李進仕宅)에 안부 인사 등을 전한 간찰. 상중(喪中)에 있는 아무개가 이진사댁(李進仕宅)에 안부 인사 등을 전한 편지이다. 요사이 수신인 조모(祖母)의 건강이 더욱 나빠졌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차도가 있는지 묻고 걱정하면서 편지를 시작했다. 또 봄바람이 거세지는 날씨에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생활은 별 탈 없는지 듣고 싶다고 하였다. 이어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를, 대상(大祥, 사후 2년 만에 지내는 제사)이 며칠 남지 않아서 애통한 심정을 형용하기 어렵고, 동생이 아직도 집에 오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심부름꾼에게 편지를 보내고자 했으나 겨를이 없어 이루지 못했다고 하고, 오늘 충도(忠道) 편에 몇 자 적어 안부를 여쭙는다고 하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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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6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菊晦 父 家兒 客中 壬菊晦 [1902~1912]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9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공부를 독려한 내용을 전한 간찰. 모년 9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공부를 독려한 내용을 전한 편지이다. 유학(游學)하여 공부하는 것이 너에게 좋은 것이겠지만 지나치게 서둘면 실제로 견득(見得) 하는 것이 없이 시간만 낭비할 수 있다는 말로, 객지에서 공부하는 아들에 대한 염려를 드러냈다. 이어 처음 생각과 같이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편지에서 보이는 지명인 하사(下沙), 장산(莊山), 중동(中洞) 등으로 보았을 때 이광수는 당시에 장성(長城) 지역의 여러 선배와 함께 공부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광수는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고, 장성의 기씨(奇氏) 가문과는 인척(姻戚)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장성으로 가서 공부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이승학은 아들에게 여러 선배와 공부하면서 신중한 태도로 공부에 임하도록 당부하기도 했다. 선배들과 지내면서 밤낮으로 경계하고 삼가라고 하면서 재주만으로는 억지로 할 수 없으니 힘써 아는 바를 돈독히 행하면 못난 재주라도 더욱 힘쓸 수 있다고 당부했다. 또 근래에 머문 곳이 하사(下沙)인지, 장산(莊山)인지 묻기도 했는데, 이를 보았을 때 최근에 아들과의 소식이 자주 오고 가지 않은 듯하다. 편지 하단에는 귀갓길에 광리(廣里, 나주 소재 추정)에 다녀오도록 부탁한 내용이 보인다. 이승학이 아들에게 이르기를 광리에 사는 내종(內從)을 뵙고 장지(葬地)의 택일을 물어서 이생원(李生員)을 방문하여 전해달라고 하였다. 이 말 뒤에 지난번에 이생원의 정력(精力)을 허비하게 하여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는 것으로 보아 지난번 이승학과 이생원이 장지를 정하기 위해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신에 연꽃과 연잎을 구해 오라고 일렀는데, 이는 창평(昌平) 집에서 긴급하게 약재로 쓴다고 부탁받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편지는 '壬菊晦'로 간지가 불분명하게 표기되었는데, 이승학과 이광수의 생몰년과 편지 내용으로 보았을 때 임진년(壬辰年)인 1892년으로 추정된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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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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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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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皮封]倉坪服座柳下重侍案稽顙近聞重闈愼節比苦就日來則差減否今逢忠道而亦未聞其詳憫切慮仰慮仰且間春風多厲重侍履增重無損耶亦餘願聞罪記末祥期餘無幾日慟隕無以形喩舍弟姑未來□耳切欲委伻而僅指無暇未能遂意今於忠道之歸略付數字荒迷不次二月十九日罪記末知通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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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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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兒見臨時抵海吉書得聞消息而歲後無聞心鬱未知新元旅況平吉課工勤做主宅諸節各得萬祥耶願聞父去臘卄三日以感氣痛臥矣卄七日遭不測之變伊時未得攝養卄九日更爲痛臥矣自昨日起動祖父主及祖母主亦自去臘間欠寜矣祖父主僅僅起動祖母主尙今委席汝慈亦經一痛而此莫非驚㥘之所致也今則俱是向快而但祖母主患候伏悶交耳家中如是無況中度了故使汝婦留京解産則勿促下鄕焉初料則吾亦率來下鄕而解産計矣亂麻未定之此時豈可率來耶勿使催促下鄕焉西台從祖尙留潭警而日間送于光州檢事局云自此精神鑑定後果是眞狂則不久出來不然則四五年徵役不可免也然如吾意則不久出來而若歸來則後日之措處一大問題也餘多不具甲戌正七日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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