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令允謂謝見訪袖傳惠書辭指隆重存撫純摯不知疾劣何以得此第切感戢不容名喩仰審比寒精體度旣壽且康曷勝賀祝 駿善 獲戻于天近遭毒慽慘不忍言入山之計非直爲潔身地祗爲無可安身處出可不得已者也令 蒙過葬還深歉愧耳 疾病侵尋無由晉軒候而尤不勝悚然餘萬眩甚不備餘謝狀上乙卯十月二十五日生吳駿善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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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子臘月卄三日 承鶴 福川侍史 戊子臘月卄三日 李承鶴 福川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 8월에 李承鶴이 福川형께 보낸 간찰. 안부를 묻고, 본인은 先父君의 緬禮를 행할 예정 이라는 소식을 전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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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川侍史相識周星矣這間幾面不無頻頻俾也可忘歲且窮天寒若是每念流民之愼□望耿耿心寒未知今世誰能作千家活佛濟此漏舡众生以吾所知福川有福家或庶幾矣臨風遙慰卽玆臘尾省節俱安顯念無斁緬服人今月初親墓緬奉于近地攀和如新之痛益復罔涯荒年百凡難於稱禮徒切傷哉之歎而耳細音緣此有事差池失信亦必有觀過之道矣沒數送去考收可也票紙還付亦如何多少留不宣戊子臘月卄三日 承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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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舍弟光州便去字栢叔便來信計其同日似非偶然慰可知矣卽此漸熱省事怛怛家中一如前日否徒勞我思光兒課作着念否槽洞行自爲則是太妄而手下曾一了耶常初事無非吾妄想中致此而何不周思之耶吾之近經舊樣客苦去益支離況復感熱常前而會日又退在來月十七則無意想之事徒勞人而已監會卽再明而明月鄭兄將入泮計耳泮主金喜晏之子去月始得見而說槪昔日淚潸潸下今年期於反櫬云耳自會後旣留之餘則到七月旬間卽當浩然耳外他在夾都漏而付郭兄便不能一一辛卯五月卄日舍兄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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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陽月七日 舍伯 舍弟見 庚陽月七日 [1890] 李承鶴 舍弟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0년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서울 행차에 대한 소식과 집안일에 대한 당부 등을 전한 간찰. 1890년 10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서울 행차 중에 겪은 일과 집안일에 대한 자세한 당부 등을 담은 내용의 간찰이다. 동생은 이승학이 과거(科擧) 시험 준비로 서울에서 있는 동안 집안일을 맡고 있었던 동생 이승구(李承龜, 1860~1942)를 지칭한 듯하다. 편지 서두에는 서울 길의 도정(道程)과 그 사이에서 겪은 고충을 상세히 전한 내용이 실렸다. 도정 상에서 전주 감영(監營)에 들러 식재(植齋) 기재(奇宰, 1854∼1921)를 만나려고 했으나 어긋난 점이나 말이 탈이 나서 일정에 곤란을 겪은 상황 등을 자세히 전하였다. 이어 동생에게 집안 상황을 자세히 묻거나 당부한 내용이 보인다. 누이동생의 혼사가 능성(綾城)으로 정해지면 올해 안에 성사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것,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선생의 소식이 집으로 왔는지를 묻는 내용, 사수(四嫂)의 우례(于禮)에 관한 사항, 노비 용석(龍石)을 데려가야 할 듯 한데 그의 어머니와 처에게 잘 일러두라는 내용, 그간의 집안의 비용 마련 문제 등을 상세히 당부한 내용 등이 보인다. 그리고 이승학의 아들인 광수(光秀)의 공부를 엄히 단속하라고 하였는데, 이승학이 동생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으레 아들의 공부 문제를 언급한 것이 눈에 띈다. 또 편지 끝에 이승학은 이번 서울 행차는 본인의 커다란 경영(經營)인 것이지, 한때의 유람이 아님을 밝혀 서울행에 대한 기대와 결심을 표현한 것도 주목된다. 이승학(1857∼1928)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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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기우만(奇宇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戌七月十一日 奇生宇萬 庚戌七月十一日 奇宇萬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0년 7월에 奇宇萬이 보낸 간찰. *원문: 承枉不多日又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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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丑三月望 父書 子 辛丑三月望 李承鶴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 3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과거(科擧) 합격 여부를 묻고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한 간찰. 1901년 3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아들 이광수(李光秀)에게 과거(科擧) 합격 여부를 묻고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한 편지이다. 소식이 막히고 서로 멀리 떨어져 그리움이 깊어간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또 이승학이 처한 현실을 한탄하며 옛사람들이 공을 세우고 일을 함을 사사로움에 연연하겠느냐며 당시 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당시 이광수가 경의문대(經學問對) 시험을 치르고 합격 여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승학은 이에 대해 자세히 물은 내용이 보인다. 아들과 만나기로 한 날이 이미 지났고 확실한 합격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서 풍문으로만 듣고 있다고 하였다. 소문으로는 어떤 이는 아들이 과거에 낙방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이달 2일로 합격이 미뤄졌다고 말하고, 혹은 이달에 합격 여부가 결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어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승학은 아들에게 합격 여부는 하늘에 맡기고 양심을 잃지 말고 본원의 자리를 닦으라고 당부하는 등 침착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또 세상에서 명리(名利)를 구함은 쉽게 헛된 욕심이 생겨나 갈등을 일으키게 되니 마음을 잘 보존해서 기다려야만 복덕이 있을 것이라고 침착하게 과거 합격 여부를 기다리라고 당부했다. 지금쯤 합격의 당락이 나왔을 것인데 합격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낙방했다고 해도 낙담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이전처럼 공부에 힘쓰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어 이승학은 문중 일 등의 관심사 및 여러 가지 일등을 낱낱이 전하여 아들에게 알렸다. 시호(諡號)의 일은 이달에 개좌(開座, 관리들이 모여 사무를 봄)하여 명을 받들었는지 물으면서 이 일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며 근심을 드러냈다. 이승학은 이 일이 결말이 나야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시호 문제는 그가 속한 전주이씨 양녕 대군(讓寧大君)과 관련된 인물의 시호를 받는 문제인 듯하다. 또 도시에 여러 가지가 풍파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인지 묻고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개화 및 외세의 난입으로 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로 보인다. 이어 집안 식구들은 무고하다는 내용, 윤홍(允弘)은 그간에 승중자(承重子)의 상을 당했는데 이달 18일에 장례를 치른다는 소식, 옥과(玉果)의 김명오(金明五)가 편지를 전했는지 아닌지를 묻는 내용, 이달 2일에 우편으로 보낸 편지는 받았는지 묻는 내용, 이번에 서울로 올라간 조우(曺友)에 관한 내용, 성범(聖範)이라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갔는데 낭패를 당하고 비웃음을 받고 있으니 자주 찾아가 보라는 내용, 시리(柿里)에서 편지가 도착했는데 네가 관여한 일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니 이는 인정(人情)상 옳지 않다고 비난한 내용, 하촌(下邨)과 율동(栗洞)의 두 족숙(族叔)이 20일쯤에 길을 나선다는 내용, 성균관(成均館) 학도(學徒) 한 자리를 잃지 말라는 내용, 시호 문제가 연기되면 우선 집에 돌아올 계획이라는 내용, 본관(本官)이 아직 가지 않았으나 우리 문중 일이 뜻대로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전한 내용, 시회(詩會)는 장례 등으로 이달 26일로 연기됐다는 내용, 어암(漁岩)의 김씨(金氏)에게 시집간 딸이 산후 통증이 있어 집에 와있다는 말 등을 두루 전했다. 어암의 김씨에게 시집간 이는 이승학의 누이일 가능성도 있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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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기우만(奇宇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辰陽二 病生 奇宇萬 丙辰陽二 奇宇萬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10월에 奇宇萬이 보낸 간찰. *상태: 상단 일부 훼손 *원문: 積病杜門人間何世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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舍弟見靖省之節家中之事兄來後一如否旅館寒燈客不眠此等事乎吾行三日登程而翌到南涯留宿而發則馬已生頉矣十七到完營未逢植兄爲之痡也尤甚進退經谷不得已解卜負人到公州留三日與伯陶聯行到果川又留一日初二入闉凡十九日也素河之上三四十里間綠林蜂起聞見可謂愁慘而無事得抵幸也馬也姑不得放賣而似不見利云耳今行不關於科汝輩不得知矣將西渡爲大觀而歸期勿間無待也家事這間必多葛藤而安心做去妹昏綾城云云處受諾則歲內期於過行可也向有松沙回答耶不然則送壽弟於壽谷使殷兄作一番之行探知無妨四嫂于禮開正二間爲之可也龍奴不得不率去而渠之母妻聞此則必將大驚善爲安撫農作如前任之另爲加護也植兄亦事一家丁則以此立證也如干谷數所捧依前例爲之則似無悲也見縮處數使奴丁收來零錢兩收用木花等執錢則厪厪可與幾朔矣向逢鄭龍旺於路中下去後五十緡起送爲約則今番似不食言矣此錢則無已則犯手不然則別念也債錢皆以吾下去區處爲言也凡此萬里行者細瑣家冗安能盡□念頭也君須細諒爲之光兒之課程使之嚴立爲門戶計也吾行是平生大經營亦不但遊覽而已何能多言也鄕隣宗族聞此必駭而卽子四方之志本自若是何必與斗筲子爭論也艸此付下沙想卽抵矣怱極不盡底凡事須細商量着念着念庚陽月七日 舍伯書果川墓祀今月初十元定云常進參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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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通文三川 壽谷 柳村 后山校邨 下北山 聲山 先山舊邑 西面 星山 芝谷 煙川右通喩事下吏輩怙勢蔑法無變不有而至於犯葬柳眉巖先生墓所而極矣蓋其眼中有一半分不死士氣渠敢乃爾伏惟 先生何等道學節義其有功儒門扶植倫綱昭如日星累百年如昨日事婦孺輿儓尙能言之嗚呼先生生於湖南湖南之幸老於潭州潭州之福況其依履之藏在玆晨夕羹墻自倍餘人而縱下吏犯葬亦旣周歲曾不一擧陳狀遷延至今爲潭士者不得辭其責而知罪知罪今自長城講所起通告長官回喩列邑以今二十日會于先生墓下爛量議到陳狀邑營一以掘去一以請罪如不得請則抱疏叫閽乃其究竟事嗚呼名在儒籍爲先生奔走血脚與有榮焉貴縣士林亦使此中相通日迫恐未及聞知也玆以先通須及期來會而冠儒服儒孰不齊憤闕而不參則形跡殊異何足道何足道右敬通于昌平鄕中己丑九月十七日 進士李龜善幼學李奎永宋在黙宋來琦金永綺柳炳寬李承鶴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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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장문규(張文逵)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丙寅九月日 發文 出身 張文逵 等 7名 潭陽校宮 丙寅九月日 張文逵 潭陽鄕校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 9월에 장문규(張文逵) 외 6명이 담양향교(潭陽鄕校)에 서학(西學)의 무리를 몰아내기 위해 의병으로 참여해 줄 것을 독려한 통문(通文) 초본(抄本). 1866년 9월에 장문규(張文逵) 외 6명이 담양향교(潭陽鄕校)에 서학(西學)의 무리를 몰아내기 위해 의병으로 참여해 줄 것을 독려한 내용의 통문(通文) 초본(抄本)이다. 조선(朝鮮)이 건국된 지 400여 년 동안 교화가 잘 행해져 삼천리 강토에 병화(兵火)가 일어나지 않아 승평(昇平)의 때가 오래되었는데, 양이(洋夷)의 난리를 만나 혼란하여 왕업(王業)이 평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양이(洋夷)가 감히 그들의 호강(豪强)을 믿고 유입해 요사한 교육이 이어져 이륜(彛倫)의 근심을 일으켜 평안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또 전해 듣건대 군무(軍務)에서 장차 병사를 모아 외세를 물리치려고 결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십실(十室)의 마을에 충신(忠信)한 이들이 존재하니 이 같은 상황에 어찌 분개(憤慨)하지 않겠느냐고 하며 의병 참여를 촉구했다. 또 우리 호남(湖南)은 본래 왕실의 풍패(灃沛)의 고향으로 계속해서 복을 받아 옥과 같은 문장을 짓는 자들의 연원이 되고, 기자(箕子)의 가르침을 따르는 충의(忠義)의 고장이며, 문정공(文正公)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밝은 가르침도 우뚝하여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과 같은 충혼(忠魂)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곳이라는 점을 들어 충의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지역임을 강조했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지금 호남인들이 그들과 같지 못해서 감히 충신과 의사(義士)와 견주기는 힘들고 모은 군사들이 약하다는 것이 우려되지만, 오직 나라를 근심하여 이륜을 지키는 마음이 있고, 상사(上沙) 어른의 밝은 인도가 있으니, 바라건대 여러 군자께서는 각자 분발하여 감히 지체하지 말고 의병에 힘을 더해 달라고 요청했다. 각기 의병에 참여하여 서학(西學)의 무리를 섬멸하고 전성(前聖)의 도통의 연원을 밝히고 거듭 독려했다. 이어 장문규(張文逵) 등 통문을 작성한 이들의 성명이 적혀 있고, 추가로 이 통문을 속히 각 진(鎭)과 면, 리, 사찰에 전하여 의병에 참여할 인원의 명첩(名帖)을 만들어 곧바로 전주부모의소(全州府募義所)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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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伏惟肇基四百年宗社幸遙 靈於敎化風行倂生三千里封疆不見兵於昇平日久際右文之做治斥左道之亂法懼王業之不便安洋寇敢恃自强之勢洎人文之已宣朗妖敎恐斁彛倫之患宸裏不安於丙枕達報累至轉聞軍務將蒐于甲衣外攘難決克獻千古文物豈有被髮而祭者十室忠信非無激慨之義乎惟我湖南本道枌社綿籙兪出璿璜之源箕聖遺敎素稱忠義之鄕微高山安仰文正之明敎尙在與秋色爭高霽峰之忠魂不泯苐伏念吾儕其人非敢擬忠臣義士能犯火石不知募軍弱卒自赴陽火其在憂國秉彛豈非志士死命且復上沙丈席明訓典重回於閭下題敎摯故勸勉及此伏願僉君子各自奮發無敢遲回終軍之請縷才不倍於異代溫生之絶裾美罔專士古人於聖德之不忘乃氣義之攸在惟冀殲厥西學之寇昭前聖一貫道之淵源奠吾東封之社用供王萬曆年之洲休右敬通于潭陽校宮丙寅九月日 發文出身張文逵南宮濂徐俊豊幼學權守憲李存奎權大曄此亦中今此通文速傳于各鎭各面各里各寺刹願赴人員名帖先爲修成冊卽送于全州府募義所至無遲滯之地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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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寄舍弟書 李承鶴 舍弟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어머니의 기일(忌日) 불참 소식과 서울살이를 전하고 여러 가지 집안일 등에 관해 묻고 당부한 내용의 간찰.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어머니의 기일(忌日) 불참 소식과 서울살이를 전하고 여러 가지 집안일 등에 관해 묻고 당부한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에서는 먼저 이승학 본인의 안부를 전하였다. 돌아가신 어머니 기일이 임박했으나 서울에서 응대하는 일들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집안일을 맡은 동생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또 작년 아버지 기일에도 참석하지 못했으니 작고하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전할 길 없어 애타는 심정만 들끓고 있다고 하면서 기다리는 가족들께도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이승학의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지평(持平)에 증직(贈職) 된 이기대(李箕大)의 여식이다. 임오년(1822)에 태어나 을축년(1865) 4월 3일에 졸하였다. 슬하에 이승학과 이승구(李承龜)를 두었다. 편지에서 말한 어머니 기일은 음력 4월 3일을 이른 것이다. 이승학의 아버지 이최선은 을유년(1825)에 태어나 계미년(1883) 11월 23일에 졸하였다. 계속에서 이승학은 고대하던 소식에 관해 전한다. 이곳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23일에 영진(永珍)이 왔으나 편지를 가져오지 않았고, 그믐날에 복군(卜軍, 짐꾼)이 와서 비로소 편지를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모든 일은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의혹이 깨지고 고대하는 마음이 조금 풀렸으나 궁극에는 신운(身運)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은 말할 것이 못 되니 편지를 본 후에 내려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동행한 이들도 있고 여러 가지 사정이 많아 4~5일간은 출발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에서 이승학이 말한 고대한 소식이 과거(科擧) 시험과 관련된 것인지, 집안일에 관한 것인지 편지에 드러나지 않아 알 수 없다. 간찰은 수신인과 발신인이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쓴 문서이기 때문에 내용이 생략된 경우가 많다. 특히 친밀하고 각별한 사이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이승학이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종종 주요한 내용을 생략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본인의 소식을 전한 후에 이승학은 여러 가지 집안일에 대해 적었다. 외숙(外叔)의 상(喪)은 서울까지 부고가 전해지지 않아 오늘 들었으나 거애(擧哀)를 제대로 표출할 길이 없어 서글프다는 내용, 외숙의 장례(葬禮)를 치를 때 숙질(叔姪) 중에 호상(護喪)을 맡아야 할 텐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염려한 내용이 보인다. 지난달 26일에 용국(龍國) 형에게 편지를 붙였는데 말은 많았으나 통쾌하지 못한 것은 편지를 보지 못하고 말했기 때문이라는 내용, 영진에게 편지를 부친다는 내용, 매번 동생들의 과한 염려를 받고 있다는 내용, 용국 편으로 부친 편지를 용대(龍臺)가 전해주었는지 묻는 내용, 문중으로 온 지평(砥平) 어른의 아버지 상에 대한 부고 전달 여부를 묻는 내용, 영진이 환전한 돈 2백 냥을 찾아 쓰라는 내용, 부쳐준 의복이 왔다는 내용, 짐삯[駄價]을 주어 보냈다는 내용 등 집안일에 대해 상세히 다뤘다. 이 편지의 수신자로 적힌 '사제(舍弟)'는 이승학의 손아래 동생인 이승구를 이른 듯하다. 또 편지에 간지가 있지 않아 시기를 알 수 없으나 내용으로 미뤄봤을 때 이승학이 과거 시험을 위해 서울에서 생활한 1890~1891년 무렵으로 보인다. 또 이승학의 아버지 기일인 11월 23일에 서울에 있었다는 내용과 어머니 기일인 4월 3일이 임박했다는 것으로 보아 편지가 쓰인 시기는 대략 1891년 3월 어느 날로 추정된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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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舍弟書此日間吾先孺人喪餘之日而留滯漢中應事未歸使爾曹將事作此大不肖之之責乎去歲先考忌日亦經于此今又至此此罪何以自贖南望欲哭而未能欲奮飛而末由祗自焦盡欲滅而已家中待我亦知如是而已矣無及則所謂浮名將誤我一則家計更誰咎哉栢叔之去此地之想多已悉此地逗遛只待自下消息故坐了一箇月永珍二十三日來見而不傳書到晦日卜軍入來始傳見諸般不如意皆已破惑稍解苦待之心而末稍究竟只繫身運之如何旣往事更不足說而見書後卽爲下去作定則此中同行與凡事久留之餘多不容易不出四五日間發行耳外叔主喪事京中無訃故今始承聞而客中難以擧哀衋然徒傷奈何葬時爾叔侄中護喪不可無而又未知如何也去二十六日龍國兄發去付書言多未暢者以其不見書故也永珍似先我入今方下去而先付此書者此人也似先吾而去又每□爾曺之過慮也龍國便書使龍臺傳之而卽到否砥平丈竟爲遭外艱有通訃於門中此中來到而自島中或又通訃來耶永珍換來二百兩覓用耳如此先換三加則爲害不少而衣服付來駄價常五五兩捧去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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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5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寄舍弟書 李承鶴 舍弟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귀가가 늦어진 이유와 여러 가지 집안일에 관한 당부를 전한 내용의 간찰.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귀가가 늦어진 이유와 여러 가지 집안일에 대한 당부를 전한 내용의 편지이다. 화촌(華邨) 편으로 보낸 편지의 도착 여부를 물으면서 그 편지에서 언급한 귀에 대한 사정을 적었다. 귀가할 날짜를 정하려고 했으나 확정하여 어렵다고 하면서 그 연유를 전했다. 서울에서 과거 시험을 위해 세월을 보내고는 있지만, 미련이 없기를 위해서라도 서울에 더 머무는 것이 무익하게 돌아가는 것보다 낫다는 내용으로 동생을 설득하였다. 또 양씨(梁氏)와 기씨(奇氏) 두 분과 함께 거처하면서 함께 행동하기로 작정했는데, 그들이 서울에서 여름을 넘기기로 계획했다는 것이다. 이승학도 앞으로 있을 회시(會試)를 위해 7월까지는 머무를 것이라고 하면서 귀가를 미룰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다. 또 임금께서 능행(陵行)이 있고 나서 증광시(增廣試)가 열릴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이는 헛된 소문이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 과거 시험에 대한 희망을 동생들께 전달하기도 했다. 이승학이 귀가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상세하게 알린 것으로 보아 동생들이 이승학의 귀가를 재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생들이 이승학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지 않아 수신자의 입장을 파악할 수 없어 아쉽다. 편지 중반에는 여러 가지 집안일에 관한 것으로 채워졌다. 이승학은 집안일의 낭패는 스스로 도모한 것이 아니라 가운(家運)이 그러해서이니 깊이 우려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이때 말한 집안일에 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이전 편지에서 누이의 혼사를 지속해서 말한 것으로 보아 혼사가 성사되지 않은 일을 이른 듯하다. 이어 이승학은 본인이 서울에 있으면서 가족들을 돌보지 않은 죄책감을 표하며 과거 시험에 대한 결심을 전했다. 그는 동생들이 식솔들의 생활을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 올해를 기한으로 더는 과거 시험을 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본인이 없는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참고 견디라고 당부한 내용과 농사와 독서를 신경 쓰라고 당부한 내용 등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눈앞의 어려움 때문에 곡식의 종자(種子)를 함부로 사용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하면서 편지를 마쳤다. 추신으로 용국(龍國) 형 편에 부친 편지를 받아 보았는지를 물었다. 이승학은 서울에 있으면서 아는 인편을 통해 편지를 보냈는데, 항상 편지의 전달 여부를 물어 확인한 것으로 보아 당시 편지가 잘 전달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사제(舍弟)로 되어있는데, 내용으로 볼 때 전남 창평에 있는 이승학의 동생인 이승구를 비롯한 동생들 모두에게 부친 것으로 보인다. 또 편지 끝부분이 잘려 마지막 인사말과 간지를 알 수 없는데, 내용으로 추정컨대 이 편지는 이승학이 과거 시험을 위해 서울에서 생활한 1890~1891년 무렵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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