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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박경표(朴慶杓) 산도(山圖)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甲午九月卄四日 甲午九月卄四日 使[着押], 朴慶杓[着名], 梁義永[着名] □…□ 3顆(7.0x7.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오년 박경표(朴慶杓)와 양의영(梁義永) 사이 산송 관련 산도(山圖). 갑오년에 박경표(朴慶杓)와 양의영(梁義永) 사이의 산송 관련 산도(山圖)이다. 도형에는 박경표 선조총(先祖塚), 박경표 재종형총(再從兄塚), 양총(梁塚), 그리고 주변에 산재해 있는 정총(鄭塚), 나총(羅塚) 등이 표시되어 있고, 가운데에 박경표 재종형 무덤과 양의영이 새로 굴거(掘去)한 무덤까지를 일직선으로 표시하고 거리를 기록하였다. 박경표 재종형(再從兄) 무덤에서 양의영의 새 무덤까지는 서로 거리가 48척(尺)이다. 좌측 하단부에 도형이 이상이 없음을 박경표와 양의영 양측의 확인을 받았다. 도형의 뒷면에 갑오년 9월 24일자 뎨김(題音)인 판결문이 있다. 판결문에 계하(堦下)로 40보로 금(禁)할 뿐만 아니라 송사를 일으켜 관가의 처분을 기다리지 않고 마음대로 장사지냈으나 장상(葬喪)에 어려움으로 짐작되니 양씨(梁氏)의 무덤은 기어이 독굴(督掘)하게 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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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이시원(李是遠) 상소(上疏) 초(抄) 고문서-소차계장류-상소 국왕/왕실-보고-상소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에 李是遠이 고종께 올린 상소 抄本. 서양 세력이 침략해 오는 위급한 상황에서 인사 정책과 절용, 애민의 정치를 펴도록 독려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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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이승학(李承鶴) 단자(單子)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卯四月日 化民 李承鶴 癸卯四月日 李承鶴 潭陽郡守 行官[押] 潭陽郡印 3顆(4.8×4.4)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4월에 李承鶴이 潭陽郡守에게 올린 단자. 작년에 부득이하게 향교 都正직을 맡았으나 그 직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교체해 달라고 요청한 내용 *題音: 정황을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그대로 맡아달라는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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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유영옥(柳榮沃) 등 상서(上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巳年四月日 幼學柳榮沃等 76名 城主 癸巳年四月日 [1893] 柳榮沃 羅州牧使 牧使[着押] [羅州牧使之印] 3顆(8.0x8.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C001_01_A00007_001 1893년 유학(幼學) 유영옥(柳榮沃) 등 76명이 나주목사(羅州牧使)에게 함평이씨(咸平李氏) 삼부자의 충효 행적에 대한 표창을 요청하며 올린 상서(上書). 1893년(고종 30) 4월에 유학(幼學) 유영옥(柳榮沃) 등 76명이 나주목사(羅州牧使)에게 나주 함평이씨(咸平李氏) 삼부자의 충효 행정에 대한 표창을 요청하며 올린 상서(上書)이다. 유영옥 등 총 76명의 유생들은 나주 함평이씨(咸平李氏) 가문의 이유회(李惟誨), 이지득(李止得), 이지항(李止衖) 삼부자(三父子)의 충효(忠孝)가 남달리 뛰어나 『호남절의록』, 『삼강록』 등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아직까지 포정절혜(褒㫌節惠)의 은전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이 사실을 임금에게 아뢸 수 있도록 영문(營門)에 보고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유회(李惟誨, 1534~1603)는 고봉 기대승의 문인이며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향리에서 은일하며 지낸 사적(事蹟)이 『삼강록』과 『나주읍지』에 들어있고, 아들 이지득(李止得, 1555~1594)은 임진왜란 때 군량미를 제공하고 의사 장경홍 등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하다 흥양포 전투에서 순절한 내용이 『절의록』과 『삼강록』에 들어있으며, 이지득의 동생 병절교위(秉節校尉) 이지항(李止衖)은 임진왜란 때 어머니를 대신해서 죽었다고 한다. 이들 삼부자의 충효와 충절이 이같이 뛰어남에도 아직까지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서술하였다. 당시 나주목사는 윤상익(尹相翊)으로 1891년 11월 13일에 제수되어 1893년 8월 21일까지 근무하였다. 나주목사는 이같은 요청에 대해 감영에 보고하여 등문(登聞)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처분을 내렸다. 한편 함평이씨 3부자의 표창을 요청하기 위해 나주 유생 유영옥을 중심으로 전라도 유생들이 동년(同年) 동월(同月)에 전라도 순찰사에게도 동시에 상서(上書)를 올렸다. 상서(上書)는 조선시대 민원서(民願書)인 소지류(所志類)로 그 서식은 다른 소지류와 약간 다르다. 이 문서는 관찰사·수령·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며, 그 내용은 산송(山訟)과 효행(孝行)·탁행(卓行)의 정려(旌閭)를 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원이 많은 경우는 연명하여 올리기도 한다. 이 상서는 전래되고 있는 것이 많으며, 시대는 대개 조선 중기 이후에서 말기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 상서를 접수한 관찰사나 수령은 이를 검토하고 그 처분을 문서의 좌편 하단의 여백에 써놓는다. 이것을 제음(題音) 또는 제사(題辭)라 한다. 이와 같이, 처분한 내용을 써서 상서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수령에게 1차 올려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차, 3차 계속 올리며,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관찰사에게 올리게 된다. 이러한 상서는 당시의 사회사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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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유영옥(柳榮沃) 등 상서(上書)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巳四月日 道內儒生柳榮沃 等 112名 巡相閤下 癸巳四月日 [1893] 柳榮沃 巡相閤下 都巡使[着押] □…□ 3顆(9.5x9.5)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C001_01_A00007_001 1893년(고종30)에 도내(道內) 유생(儒生) 유영옥(柳榮沃) 등 112명이 순사또(巡相)에게 함평이씨(咸平李氏) 삼부자의 충효 행적에 대한 표창을 요청하며 올린 상서(上書). 1893년(고종 30) 4월에 도내(道內) 유생(儒生) 유영옥(柳榮沃) 등 112명이 순사또(巡相)에게 나주 함평이씨(咸平李氏) 삼부자의 충효 행적에 대한 표창을 요청하며 올린 상서(上書)이다. 전라도 유생 유영옥, 오계수(吳繼洙, 1843~1915) 등 총 112명은 나주 함평이씨(咸平李氏) 가문의 이유회(李惟誨), 이지득(李止得), 이지항(李止衖) 삼부자(三父子)의 충효(忠孝)가 남달리 뛰어나 『호남절의록』, 『삼강록』 등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아직까지 포상을 받지 못한 사실을 서술하였다. 또 이 문서에 앞서 본읍(나주목)에 같은 사항의 문서를 올리어 나주목사로부터 감영에 보고하여 등문(登聞)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판결을 받은 사실을 알리며 순사또께 나라에서 특별히 충효의 정려를 내려주기를 요청하였다. 이와 같은 요청에 전라도 순찰사는 행실을 들으니 매우 흠탄하지만 예조의 계문(啓聞)은 신중해야 하니 공의(公議)가 더 확산되기를 기다리라고 하는 처분을 내렸다. 상서(上書)는 조선시대 민원서(民願書)인 소지류(所志類)로 그 서식은 다른 소지류와 약간 다르다. 이 문서는 관찰사·수령·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며, 그 내용은 산송(山訟)과 효행(孝行)·탁행(卓行)의 정려(旌閭)를 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원이 많은 경우는 연명하여 올리기도 한다. 이 상서는 전래되고 있는 것이 많으며, 시대는 대개 조선 중기 이후에서 말기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 상서를 접수한 관찰사나 수령은 이를 검토하고 그 처분을 문서의 좌편 하단의 여백에 써놓는다. 이것을 제음(題音) 또는 제사(題辭)라 한다. 이와 같이, 처분한 내용을 써서 상서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수령에게 1차 올려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차, 3차 계속 올리며,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관찰사에게 올리게 된다. 이러한 상서는 당시의 사회사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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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內儒生柳榮沃吳繼洙等謹齋沐百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褒忠㫌孝爲 國先務激勸世道扶植人心苟有忠孝之曠感行義之激切則其所以襃獎而發輝者百世如一日片善亦不遺所以蹁世而樹風監古而式後此豈特爲其人之地哉誠以敦風敎淑人心之政亶不外此雖一箇忠一箇孝無不闡揚而況此一家三父子之忠孝兼全者乎今此羅州古稱多俊異之人其間忠孝節行之彬彬輩出而苟有可褒之忠可㫌之孝則豈以世代之久遠置而不論哉故逸主簿李公惟誨卽補祚功臣咸平君克明之玄孫敵慨功臣咸城君從生靖國功臣咸豊君宗義之從孫討平倭寇參判宗仁之孫高峯奇先生門人也孝友出天德行名世累以孝廉薦入洗馬副率之望而爲弘瞻輩所沮而當昏朝隱德不仕世稱高巖先生公之事蹟大略皆著於本州三綱錄與邑誌當壬辰倭亂召其子止得曰 國憂如此豈可坐視我今老矣汝須勉哉云云李公止得志節俊邁以別薦爲內乘聞 大駕播遷馳赴 行在時兵糧竭之募粟納饋餉廳還船南下與義士張景弘等戰于興陽浦斬倭石綻等數十級與義士張景弘等同日中丸而死事蹟大略昭載於節義錄三綱錄止得之弟秉節校尉止衖襲家庭之學當其亂負老母避亂于錦城山中城陷之日賊徒猝至欲害其母公哀乞代命翼蔽其母身被鋒刃流血淋漓倭奴憐而書話孝子給母粮六字令公佩之曰如有後至者則示之云云而去賊又大至母子俱不屈而死三父子忠孝大略俱昭載湖南節義錄三綱錄與本州邑誌而且道內儒生前後營邑呈狀如是昭然更不必一一懸錄三父子之忠孝一義士之忠節如是卓異久未蒙 褒贈節惠之典其爲子孫者生無顔於世而忠魂義骨死不杇於地矣幽明之間寧不寒心哉其在士林之公議不勝抑鬱生等▣…▣稟于本邑則題旨內李公三父子卓異之忠孝張公布衣擧義同日立節之事莅玆邑已有所詳見於湖南節義錄本州三綱錄與邑誌而未嘗不三復掩卷欽歎而思矣今觀此狀久未蒙 褒㫌節惠之典而至今湮沒▣…▣聞是如乎伏願▣…▣不至湮沒之地則不但爲士林之幸甚其於 國家㫌別忠孝激勵世道之風化未必無少補豈不美哉豈不休▣…▣▣▣ 處分癸巳四月 日羅州幼學 柳榮沃 吳繼洙 進士羅東綸 李心雨 幼學崔圭鉉 朴鼎陽 梁相衡 林肯圭 奇周鉉 羅瑢植 鄭㯳 張永載 裵瑜基 金泳懿 崔琦相 李炳壽 閔敬植 柳杞淵 綾州幼學 鄭義林 梁善黙 安喆煥 張命慎 裵學舜 丁斗煥 進士梁會益 幼學朴準謨 安宅煥 咸平幼學金勳 李學榮 鄭蘭 鄭煥彩 徐鳳寬 尹相度 安時良 金奎煥務安幼學 尹滋敬 朴民相 朴允相 朴在麟 羅啓煥 高敞柱 柳復基 進士林炳大 吳鎭龍 光州幼學 高人柱 高濟厚 尹範郁 朴源升 朴升柱 奇相鉉 金洪益 金洪穆 金晩植 金命植 南平幼學 崔聖敎 崔應敎 洪祐賢 洪弼周 尹大鎭 尹俊八 長成幼學 金穉煥 奇曾宇 進士 郭璟鍾 幼學 金堯雲 靈光幼學 高大鎭 金載穆 丁贊用 高時烋 金在淇 金在禧長興幼學 張永斗 文基垕 安奎鉉 韓國榮 金益寬 李興集 朴命權 張禹植 魏啓喆 宋伯圭 趙義振 靈巖幼學 朴圭鎭 崔鎭基 愼頭歲 李烋 李敏喆 朴漢龍 昌平幼學 高儕儒 鄭偉 鄭海晩 高台柱 高璥柱 寶城幼學 柳發榮 安啓煥 柳正煥 柳承煥 全州進士 朴麟萬 幼學 李炳璘 黃在天 鄭奎煥 茂長進士 吳道源 幼學 鄭鍾泰 李致雲南原進士 高宗柱 幼學 許牒 洪鍾根 趙性九 金在璜 李仁宇 高濟東 金平執 等都巡使[着押](題辭)偉績實行聞甚欽歎啓禮愼重蓋竢公議之愈蔚事卄八日[官印] 3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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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朴慶杓再從兄塚至梁義永新窆處相距四十八尺朴慶杓[着名]梁義永[着名](背面 題辭)堦下四十步之也不但可禁起訟之不待官決任自入葬揆以或問後葬喪窮故梁塚期於督掘此後罪官爲知向事甲午九月卄四日 背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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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 오시유(吳時裕)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丑十二月日 全羅道列邑儒生進士 吳時裕 等 111名 巡御使道 辛丑十二月日 [1781] 吳時裕 巡御使道 巡撫御使[着押] □…□ 5顆(7.0x7.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1년(정조5) 12월에 전라도(全羅道) 진사(進士) 오시유(吳時裕) 등 111명이 순어사또(巡御使道)에게 이지득(李止得)의 충절에 대해 표창해 주길 청하는 상서(上書) 1781년(정조5) 12월에 진사(進士) 오시유(吳時裕) 등 전라도 열읍(列邑) 유생(儒生) 111명이 연명으로 순어사또(巡御使道)에게 이지득(李止得)의 충절에 대해 표창을 청하는 상서(上書)이다. 나주 진사 오시유 등 총 111명의 전라도 여러 고을의 유생들이 나주의 사복(司僕) 이지득(李止得, 1555~1594)의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 사실을 서술하면서 그의 충절이 이와 같이 뛰어남에도 지금까지 포상의 은전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이 사실을 임금님께 아뢰어 포정(褒㫌)의 은택을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순어사또는 '이공의 충절은 매우 흠탄할 만하나 다만 임금께 글로 아뢰는 것은 중대하니 이조에서 마땅히 헤아려서 할 일'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상서에 연명한 이들은 나주, 광주, 영광, 함평, 능주, 창평, 담양, 화순, 장성, 남평 등 나주 인근 지역에 사는 유생들이다. 이지득의 충절 포창과 관련하여 1863년 2건의 문서가 있으며, 1893년에는 함평이씨 삼부자의 표창을 요청하는 문서가 함께 남아있다. 이지득(李止得, 1555~1594)의 자는 덕보(德甫), 본관은 함평, 함풍군 극명(克明)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유회(李惟誨)이다.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 초동에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 별천(別薦)으로 겸사복(兼司僕) 내승(內乘)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이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량을 모아 행재소로 가서 남으로 내려오기를 청하고 돌아왔다. 1594년(선조 27)에 사재를 털어 군량미로 공급하였고, 장경홍(張景弘)ㆍ장경남(張景男) 형제와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흥양포(興陽浦)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892년(고종 29) 충신정려(忠臣旌閭)가 내려 졌고,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현재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 초동마을에 이지득의 정려각인 포충각(褒忠閣)이 있다. 상서(上書)는 조선시대 민원서(民願書)인 소지류(所志類)로 그 서식은 다른 소지류와 약간 다르다. 이 문서는 관찰사·수령·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며, 그 내용은 산송(山訟)과 효행(孝行)·탁행(卓行)의 정려(旌閭)를 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원이 많은 경우는 연명하여 올리기도 한다. 이 상서는 전래되고 있는 것이 많으며, 시대는 대개 조선 중기 이후에서 말기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 상서를 접수한 관찰사나 수령은 이를 검토하고 그 처분을 문서의 좌편 하단의 여백에 써놓는다. 이것을 제음(題音) 또는 제사(題辭)라 한다. 이와 같이, 처분한 내용을 써서 상서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수령에게 1차 올려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차, 3차 계속 올리며,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관찰사에게 올리게 된다. 이러한 상서는 당시의 사회사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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化民儒學李溎等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伏以本州地擅南鄕人多俊異其間忠義節行之彬彬輩出豈特歷數而 後知耶所以表忠㫌節前後相望亦豈非 朝家激勸襃揚之遺也耶然貳因雲仍之殘替或因世代之緬遠至今數百載之間終未蒙昭代之晠典則其於公議之憫鬱當如何哉故兼司僕內乘李公止得抗義討賊募粟餉師赴戰甘死等事其忠矣哉而口碑家乘果非誣也盖李公平日志節俊邁以別薦授兼司僕內乘壬辰方家居聞大駕播遷遂慟哭曰此豈人臣保妻子之日哉卽馳赴 行在時糧艱乏李公自請南下募穀餉師其時相臣聞而奇之遂行關于兩湖曰焚蕩殺戮之餘兵無數日之糧一國臣民但費揮灑唐兵自天而下粮蒭不繼大事將去苟有血氣孰不傾財破産以助 綴旒之急哉內乘李止得見 國家急急之勢懷斷斷急病之心願下本道募粟于同志以助 國家萬一之用其誠可嘉各道各官勿以啇賈而有禁畧于船隻蠲稅許載亦勿阻遏使卽上來以助軍兵之需云云李公卽促鞭還家盡傾私儲雲納于餽餉廳尺文有曰羅州前內乘李止得領進義穀白米一百四十二石九斗五升赤豆一石以天兵粮依數納上云云此實 萬曆二十一年之三月六日也李公復還船南下聞倭賊潛遣船隻先探我國水路犯長興界卽募義旅與張景弘等數百人奮擊大破追及長興界促櫓而行遇一大船直超而登先斬石綻等數級忽有一倭放丸中公左脅落水奴金同者善於泅負公還船自是病不能視軍顧謂張景弘曰一丸殞我 國憂將何生不斬倭酋死不杇義骨天長地久此恨何極言未訖而絶焉其貞忠大節如是炳烺而旣無大人君子爲之表章故本州諸忠臣褒㫌之日不敢幷擬矣以言于世德則咸平君克明以後世有忠節焉以全羅水使討平倭寇 陞北兵使宗仁乃公之曾祖以學行世稱蒿菴先生惟誨卽公之考而莊襄公襄翼公是公之族高曾祖 贈刑曹判書忠臣㫌閭止孝亦公之從兄也公之忠烈有所自來鄕人之欽艶匪今斯今而如許至行韙躅終至於泯豈不慨然乎哉鄕儒及道儒屢度呈書尙未蒙褒㫌之典玆以去月念間道內儒生齊龥於 巡使道觀風採詢之下而 題音內誠如狀辭卓異之節令人欽歎狀 聞體重大邑報當摭實量處事爲敎則其摭實轉報之道惟望於我 閤下崇仁尙節之下故敢此營題帖聯齊龥故內乘李公止得實蹟礿以抗義討賊再爲募粟餉師末乃殺身成仁如許堂堂卓節之狀據實薦報俾以爲伸此輿情鬱結之寃千萬幸甚行下 向敎是事癸亥八月 日化民幼學 李溎 羅景弼 李希文 崔昌民 洪益淵 羅爀采 林就鎭 崔光朝 柳文榮 金聲漢 李洙進 羅元弼 金錫海 崔元之 鄭希喆 張齊甲 李儒聖 洪翼謨 林厚鎭寄允謨 李鳳運 金斗臣 吳相宇 李之晶 羅基弼 李永默 林正鎭 李儒信 崔翼之 柳錫夏 高山斗 崔昌業 柳堜 李邦臣 柳時春 柳錫良 奇泰運金器周 柳璟 崔逸東 李儒德 柳錫冑 金錫文 等使[着押](題辭)李公鄙義尙未褒揚極爲欠事是矣年久之事 猝難轉報事十六日[官印] 3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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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朴載弘) 산도(山圖)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卄五日 卄五日 朴載弘[着名] □…□ 5顆(7.0x7.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박재홍(朴載弘)의 10대조 산소 내 산송(山訟) 관련 산도(山圖). 박재홍(朴載弘)의 10대조 산소 내 산송(山訟) 관련 산도(山圖)이다. 산도에는 박재홍의 10대 조부모 무덤과 그 위쪽에 평장총(平葬塚)이 표시되어 있고, 아랫부분에 평장총과의 거리와 기송자(起訟者)인 박재홍의 서명이 있다. 박재홍 10대 조부모 무덤에서 평장총(平葬塚)까지 보수(步數)가 1척(一尺) 5촌(五村)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도형의 뒷면에는 25일자 뎨김(題音)인 판결문이 있다. 판결문에 도형을 보면 타인의 무덤이 머리에 자리하고 있어 장사를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저들이 내현(來現)하는 것을 기다려 잡아들이라고 하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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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朴載弘十代祖父母塚至平葬塚步數爲一尺五村是向齊起送朴載弘[着名](題辭)觀此圖形他人憤腦人餘地永非可葬之處故凶如彼漢者平葬卽掩踰今日孤狸掘破其塚此可謂天誘而神告也然骨節散換衣衾剝落若於此隙輕先犯手則恐爲塚主籍姑觀數日動靜彼當來現待來現卽爲捉納事卄五日[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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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道列邑儒生進士吳時裕等謹齋沐上書于巡御使道按節之下伏以褒忠㫌節爲 國先務激勸世道扶植人心苟有可褒之忠㫌之節則豈以世代之久遠置而不論哉竊念羅州節義之鄕也金健齋倡義使父子及梁承旨山濤諸公當壬辰倭寇殉節於晉州之矗石江其偉烈貞忠與星月爭光而 朝家褒寵炳烺於千載之下矣至若羅州故司僕李公止得末宦家食殉 國自誓素所蓄積於中者而逮逢龍蛇之亂兩京旣覆八路俱壞墟里烟絶臣民鳥竄雖 天兵東救住郞開府而十萬軍粮無以供饋上自畿旬下至州縣無現存?師之穀伊時 國勢殆乎汲汲智者束手而汲策 朝野跂足而無計於是乎李公奮袂而起先募義穀於列郡同志之士與奇公孝曾幹當其事載運於千里海路以助軍粮未哉大軍滯陣不進京城危迫迫在朝暮且萬軍頷顑無復進戰之心李公見 國歌急急之勢挺身獨當更募義穀白米一百四十二石九斗五升赤豆一石及期轉運再饋天兵進復京城李公之前後効忠班班可考於兩紙古蹟而且其時右相未知爲何公而成給帖文喪葬運穀之苦忠益勉其更募漕運印踏署押之跡只今未沫則李公之効忠不待卞說而矣及至島夷充斥兩南擰鋒前到興陽等地則李公挺身而出手持長槍胺帶大刀與同志張公景弘搏進賊?斬馘倭酋石綻等十餘級忽有飛丸中傷公左脅落於水奴金同者負公而歸于船公將紀呼張公而訣曰生未斬倭死豈▣▣▣人眷佑廓掃妖氣丈夫雖殞義魂猶幸云而遂絶焉李公之義烈至今尙在口碑嗚呼李公之再募義穀勇斬倭首級夫賊鋒之殉節明白巍卓宜若竝列於金健齋梁承旨諸公㫌褒之日而募穀之尺文無人現告殉身之毅節無人闡揚遂致湮沒而未彰在李公則無憾而 朝家㫌褒之典顧不有欠哉玆乃鄕人聞于官道內章甫爭赴名帖呈于 巡營則題云李公忠節在古亦罕兩紙古蹟宛然可考多士呈單蔚然可見百戰之下令人欽歎但孝烈狀 聞已於歲首封進今無可及留待後日云矣生等生長於李公之隣邑而慣聞李公之殉節目覩其募義尺文 政府帖文不勝其仰鬱泯滅之感更此仰蹟於▣節之下伏▣…▣之再運募穀之忠竟致殉節之義啓達 天門俾蒙褒㫌之澤勿令義烈百代未闡之地千萬祈懇之至巡御使道 處分辛丑十二月 日羅州進士 吳時裕 奇繼商 廉宗愼 廉宗鏶 金之獜 金吉羽 閔邦仁 幼學 柳希顔 洪載淵 柳德漠 金德鼎 李遇臣 金麗臣 羅得敬 洪若洙 張天翰 羅廷瑞 柳文錫 吳時爕 柳德復 崔承烈 林永鎭光州進士 朴徽鎭 金義集 朴聖激 鄭潤吉 朴河鎭 幼學 柳迪 柳光國 奇秉勳 柳逹 金大鳴 崔澐之 李有坤 李實 金孝一 朴爕 高一柱 靈光進士 李以錫 吳先源 李景錫 幼學李國佐 柳元龜 丁友仁 李應台 金必大 金允國綾州進士 文演撲 南熤 幼學 文濬吾 閔奎五 洪永宅 李政垕 崔鳳祉 林泰赫 奇宗喆 宋(氵+喆)梁命龍 咸平幼學 安邦允 李洪心 鄭錫亮 安復允 鄭錫白 金垕錫 李命建 李慶鳳 李廷燦 鄭齊夏 金宅欽 金若欽昌平進士 高時遇 朴虎瑞 吳相鼎 幼學 鄭梓 梁學海 朴瓓 柳震升 羅得奎 潭陽進士 羅得和 南彦夏 幼學 金文達 金虎達 務安幼學 金鎰 金涷 崔致祥 金淑 林東鎭 高載岳 宋之翼 金虎瑞 和順進士 曺翊鉉 幼學 崔孝昌 崔堯昌 曺翊俊 柳涑柳亨運 長城進士 邊得衡 幼學 邊得一 朴成春 金直賢 金益賢 南平進士 洪鳳周 幼學 崔鳴岐 洪憲東 宋相履 李徵福 鄭明欽 任昌福 徐粹貞 等巡撫御使[着押](題辭)李公忠節聞極欽歎但登聞体重更當商量向事卄二[官印] 5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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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박상언(朴尙彦)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子閏九月日 西二化民 朴尙彦 等 4名 城主 丙子閏九月日 朴尙彦 綾州牧使 使[着押] [綾州牧使之印] 1顆(6.5x6.5)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6년(영조 32) 박상언(朴尙彦) 등 4명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올린 소지(所志). 1756년(영조 32) 윤9월에 화민(化民) 박상언(朴尙彦) 등 4명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이 문서에서 박상언 등은 자신을 화민(化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화민은 자신이 사는 고장의 수령이나 조상의 산소가 있는 고장의 수령에게 일컫는 자칭이다. 능주목 서이면((西二面)에 사는 박상언, 박상철(朴尙喆), 박필범(朴必範), 박필증(朴必曾)은 자신들의 선산이 능주목 서일면(西一面)에 있는데, 묘 아래 사는 양홍거(梁弘擧)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번 달 초9일에 투장을 하려고 자신들의 선산 주맥(主脈) 가까운 곳에 개토(開土)를 계획하고 있을 때 뜻하지 않게 일의 낌새를 알아채고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그가 아직도 투장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으니 이후에 반드시 밤을 타서 투장을 하는 변이 생길 수 있다고 걱정하며 이것은 이치에서 벗어나 법에 위배되는 무덤이므로 한편으로는 관지(官旨)에 의거하여 면임(面任)을 데리고 굴거(掘去)의 까닭을 각별히 엄제(嚴題)하시고, 한편으로는 힘을 믿고 법을 업신여기며 마음대로 투장하는 부류를 금하시고, 한편으로는 일후에 관전(官前)에서 쟁송(爭訟)을 벌이는 폐해가 없도록 방지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능주목사는 신경보(申經普)로 1755년 2월부터 1757년 2월까지 근무하였다. 능주목사는 이와 같은 요청에 대해 입지(立旨)를 발급해 주라고 하는 처분을 내렸다. 소지(所志)는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청원서·진정서. 발괄〔白活〕이라고도 한다. 소지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 일어난 일 중에서 관부의 결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민원에 관한 문서이므로 그 내용은 아주 다양하다. 또한 소지는 소지를 올린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가문에서 소중히 보관해, 현존하는 고문서 가운데 토지문기(土地文記)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소지를 수령이나 관계 관부에 올리면 해당관원은 소지의 내용을 살펴본 뒤 그 소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뎨김〔題音〕' 또는 '제사(題辭)'라고 한다. 뎨김은 소지의 왼쪽 아래 여백에 쓰며, 그 여백이 모자라면 뒷면에 계속해서 쓰기도 하고 별지를 붙여쓰기도 하였다. 뎨김을 적은 소지는 그 소지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주어 그 판결에 대한 증거자료로서 소중히 보관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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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二化民朴尙彦朴尙喆朴必範朴必曾右謹言所志萬萬無據凶惡情由段大抵遐方人心之不測去去益甚中至於山家之慾則雖甚太重是乎乃近來貪濫凶獰人情乙細細審知則其矣父母生時未得孝子之名者死後則欲蒙其地下陰助之德是乎矣虛多無主空山乙不爲致誠占得安葬是遣他人營求入葬處乙特聞其無欠有吉之言則敢生非理無據之慾而守護山直乙威力結縛是遣暗然偸葬之擧比比有之而因爲成習成風則遐方無勢之人痼弊之慘莫此尤甚是如乎民等先山在於西一面相距遙遠之地則墓下所居梁弘擧亦其矣亡父乙今月初九日分偸葬次民等先山主脉至近處開土設計之際適偶知幾堅守故渠亦今雖理屈見遂偸葬之慾撑中不弛則果如是後必有乘夜偸葬之変是白置偸葬之変實是理外犯科之塚則亦以以惡報惡之例互相對拒次一依 官旨而面任眼同掘去之由乙各別 嚴題爲白良一以禁遐方恃强侮法任意偸葬之類是尔一以杜日後官前爭訟紛紜之弊幷以特爲行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丙子閏九月 日史[着押](題辭)立旨來給事十五日[官印] 1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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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김수(金洙)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乙酉二月日 道內進士 金洙 等 64名 巡相 乙酉二月日 [1825] 金洙 全羅道觀察使 巡使[着押] [全羅道觀察使之印] 5顆(8.0x8.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5년(순조25) 2월에 진사(進士) 김수(金洙) 등 64명이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게 안신손(安信孫)의 충절에 대해 표창해 주길 청하는 상서(上書). 1825년(순조25) 2월에 남원 진사(進士) 김수(金洙) 등 64명이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게 안신손(安信孫)의 충절에 대해 표창을 청하는 상서이다. 전라도 남원, 창평, 전주, 나주, 광주, 순창, 장수, 임실, 구례, 곡성의 유생 64명은 남원부(南原府)에 주부(主簿) 안신손(安信孫)의 정유재란때 의병활동 사실을 서술하면서 충의(忠義)가 탁월한 공적이 있으니 포증(褒贈)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 문서는 이전에 올린 소장의 처분에 따라 세초(歲抄)를 기다려 다시 올린 것이다. 이에 전라도관찰사는 '오래된 일이고 교체될 때로 이 일을 의도(議到)할 겨를이 없었다'고 하는 처분을 내렸다. 당시 전라도관찰사는 조봉진(曺鳳振)이었다. 안신손의 충절 포창을 요청한 문서는 이 외에도 1825년 최갑효(崔甲孝) 등이 올린 상서가 남아있다. 안신손(安信孫, 1567~1608)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후원(厚源), 호는 풍와(楓窩), 문성공 안향(安珦)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안벽(安璧)이다. 정유재란 때 남원이 적에게 포위되자 가동 50여 명과 군량 40석을 가지고 남원성에 이르렀으나 성이 이미 함락되었다. 이때 전라도관찰사 홍세공(洪世恭)이 그를 조정에 천거하여 유진장겸지군향사(留鎭將兼知軍餉事)에 임명하였다. 영남과 호남을 돌아다니며 약탈하고 있는 적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고 곧바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군사와 군량을 모집하고 성을 손질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유민들을 불러 모아서 성을 지킬 계책을 세웠다. 또한 성묘(聖廟)를 수호하고 초하루와 그믐에는 분향하며 경내의 민심을 어루만졌다. 이후 정유재란 때의 공적을 전라도관찰사가 계문(啓聞)으로 올리고자 하였으나 그가 사양하며 올리지 말도록 하였다 한다. 상서(上書)는 조선시대 민원서(民願書)인 소지류(所志類)로 그 서식은 다른 소지류와 약간 다르다. 이 문서는 관찰사·수령·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며, 그 내용은 산송(山訟)과 효행(孝行)·탁행(卓行)의 정려(旌閭)를 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원이 많은 경우는 연명하여 올리기도 한다. 이 상서는 전래되고 있는 것이 많으며, 시대는 대개 조선 중기 이후에서 말기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 상서를 접수한 관찰사나 수령은 이를 검토하고 그 처분을 문서의 좌편 하단의 여백에 써놓는다. 이것을 제음(題音) 또는 제사(題辭)라 한다. 이와 같이, 처분한 내용을 써서 상서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수령에게 1차 올려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차, 3차 계속 올리며,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관찰사에게 올리게 된다. 이러한 상서는 당시의 사회사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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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內進士金洙幼學崔羲澤等謹齋沐百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湖南一道素稱我東之齊魯也其忠義名節尤多砥礪當受兵危亂之時或蹈火冒刃守禦棘賊或召募義旅奮忠討賊之人多出於本道而雖有死生存亡之殊其斷斷之忠炳炳之節本無二致焉盖以其心之同出於忠義也生等道內南原府有故主簿安信孫卽其人也安信孫文成公裕十一代孫也其後有文淑公諱牧文惠公諱元崇副提學諱祖同皆以文學名世高祖諱貴行當端宗遜位以陽城縣監役紱屛跡於南原之女院山下號白山正宗己未 贈大司諫鄕人立祠以享之曾祖諱撝主簿祖諱克諶參奉考諱璧公胚胎前光生有異質氣岸魁偉性度忠直事親孝與友信餘力學問造詣淵深以蔭除主簿而無意仕宦考盤於山水間操守先生業獎進後學逮夫壬辰島夷猖獗公憤忠慷慨欲擧義殲賊以雪 國恥而母夫人七耋沉病不忍離側母夫人知其意勸赴 國亂曰忠孝不可兩全豈以病母之故不念 君父之蒙塵乎至孝所在不忍遽離而時不禁痛泣奧明年癸巳母夫人謝世纔經襄禮擬以墨衰起義時則甲午夏四月也朝廷際有罷義兵之命公憤念垂涕曰 君父播越不能雪 國恥報 君恩其可謂爲人臣子乎居常悒悒及丁酉島夷再猘南原圍急公奮發杖釼率家僮五十名輸軍糧四十石直抵城下則城已陷矣八忠死之公大痛曰彼亦臣子我亦臣子而彼同死報 國吾不得與之同死將何以洩此滿腔忠憤遂與再從姪判官嗣悌定議追擊倭賊未行本道伯洪公世恭慮守成無人以公有膽略馳 啓于朝特除留鎭將兼知軍餉事旣職事有繫則不敢離次遂送嗣悌往從趙公慶男義旅之下而公夙宵警惕殫竭心力修城池繕器械防遏嶺湖遊掠之賊募兵粟招流亡以爲咽喉固守之計通告境內諭以安接之策守護聖廟不廢朔望焚香每中夜北向四拜號天而祝曰願天冥佑保我東土盖其斷斷貞忠自本性中做出來一境賴公百姓安集亂已 道伯嘉其節而壯其蹟仍欲啓聞請 褒則公力止曰徵勞何敢于恩衒能求榮非吾志也累度力辭結廬于楓巖之下自號楓窩歛跡以終世嗚呼以公忠義之卓功績之懋宜蒙 褒榮而公旣防啓於生時人無闡揚於身後埋沒草菜今且數百年士林抑鬱愈往而深彛性攸好擧槩先呈于本府則題內如此忠義之卓節尙未蒙 褒贈之典此非但士林之抑鬱闡揚之責亦在士林而尙今湮沒勝慨歎枚報時晩姑待歲抄宜當向事行下是乎矣以待歲抄時涉晩後故道內諸儒齊發公議玆敢擧悉仰龥於承宣之下伏乞 採實轉達丹扆以蒙 褒贈之典矜式瞻聆敎化幸甚乙酉二月日南原進士金洙 幼學崔羲澤 梁復奎 崔甲孝 李正銓 金仁鑑 尹致永 金樂麒 宋鍵 楊奎煥 黃?洙 張(火+允) 崔綱範 尹鼎錫 盧䄷 許曣 崔龜河 進士梁霖 幼學丁昌崑 洪濂 韓百祚鄭在黙 朴夢洙 吳漢鎭 鄭在昌 高時聖 金德基 鄭在璉 昌平幼學 高時彦 李顯弼 柳濟 蘇在鶴 全州幼學 李顯黙 朴希壽 李儒永 羅州幼學 林永浩 李錫根 羅漢永 光州幼學 奇商欽 金星彦 崔寬賢 李致文 尹成鉉 金世鑑 崔光河淳昌幼學 洪在協 楊源 申敬天 尹正鉉 長水進士 韓驥 權思銓 幼學 韓胤祚 李廷馨 任實幼學 郭載南 鄭存三 李春煥 洪鸞 求禮幼學 李章翊 高時玉 李一瑞 谷城幼學 吳廷燦 進士 申世淳 幼學 洪永宅 姜道周 等使[着押](題辭)事係年久分叱除良遞易之際此等事未暇議到向事初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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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최갑효(崔甲孝)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乙酉三月日 南原幼學 崔甲孝 等 71名 巡相閤下 乙酉三月日 [1825] 崔甲孝 巡相閤下 都巡使[着押] □…□ 5顆(8.0x8.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5년(순조 25) 3월에 남원(南原) 유학(幼學) 최갑효(崔甲孝) 등 71명이 순사또(巡相)에게 안신손(安信孫)의 충절에 대해 표창해 주길 청하는 상서(上書). 1825년(순조 25) 3월에 유학(幼學) 최갑효(崔甲孝) 등 71명이 순사또(巡相)에게 안신손(安信孫)의 충절에 대해 표창해 주길 청하며 올린 상서이다. 남원 유학 최갑효 등 71명의 유생들은 남원부(南原府) 주부(主簿) 안신손(安信孫)의 정유재란 때 의병활동 사실을 서술하면서 그의 충의(忠義)가 탁월한 공적에 대해 포증(褒贈)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같은 해 2월에 이미 전라도 유생 64명이 안신손의 충절에 대한 표창을 요청하기 위해 전라도관찰사에게 소장을 올린 바 있다. 따라서 이 문서는 남원부사에게 올린 소장의 처분에 따라 전라도관찰사에게 다시 올린 것이다. 이상과 같은 요청에 순사또는 13일에 안주부(安主簿)의 충절은 영문(營門)에서 이미 듣고 흠앙하여, 그 포양하는데 있어서 어찌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는가라고 하며 때가 아니니 진실로 매우 한탄할 일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안신손(安信孫, 1567~1608)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후원(厚源), 호는 풍와(楓窩), 문성공 안향(安珦)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안벽(安璧)이다. 정유재란 때 남원이 적에게 포위되자 가동 50여 명과 군량 40석을 가지고 남원성에 이르렀으나 성이 이미 함락되었다. 이때 전라도관찰사 홍세공(洪世恭)이 그를 조정에 천거하여 유진장겸지군향사(留鎭將兼知軍餉事)에 임명하였다. 영남과 호남을 돌아다니며 약탈하고 있는 적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고 곧바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군사와 군량을 모집하고 성을 손질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유민들을 불러 모아서 성을 지킬 계책을 세웠다. 또한 성묘(聖廟)를 수호하고 초하루와 그믐에는 분향하며 경내의 민심을 어루만졌다. 이후 정유재란 때의 공적을 전라도관찰사가 계문(啓聞)으로 올리고자 하였으나 그가 사양하며 올리지 말도록 하였다 한다. 상서(上書)는 조선시대 민원서(民願書)인 소지류(所志類)로 그 서식은 다른 소지류와 약간 다르다. 이 문서는 관찰사·수령·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며, 그 내용은 산송(山訟)과 효행(孝行)·탁행(卓行)의 정려(旌閭)를 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원이 많은 경우는 연명하여 올리기도 한다. 이 상서는 전래되고 있는 것이 많으며, 시대는 대개 조선 중기 이후에서 말기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 상서를 접수한 관찰사나 수령은 이를 검토하고 그 처분을 문서의 좌편 하단의 여백에 써놓는다. 이것을 제음(題音) 또는 제사(題辭)라 한다. 이와 같이, 처분한 내용을 써서 상서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수령에게 1차 올려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차, 3차 계속 올리며,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관찰사에게 올리게 된다. 이러한 상서는 당시의 사회사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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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原幼學崔甲孝李正銓等謹齋沐百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殫誠報 國臣子之常分 褒忠闡幽 朝家之盛典而本府故主簿安信孫之忠節尙未蒙 褒贈之典此非但士林之紆鬱抑爲 昭代之欠典故生等爲先擧槩齊龥於本官城主是乎則題內如此忠義之卓節尙未蒙 褒贈之典此非但士林之抑鬱闡揚之責亦在士林而尙令湮沒豈勝慨歎枚報時脫姑待歲抄事行下是如竊伏惟 壯巡相閤下以忠孝之淵源闡揚之權衡承綸 北闕宣化南服生等玆敢齊瀆于 旬宣之路伏乞 閤下細細垂察焉奧在丁酉島夷再猘本府圍急朝暮其勢智士捲舌武夫投戈之際主簿安公以疾風之勁草頹派之砥柱擊釼奮發獨倡義擧率家僮五十名輸軍糧四十石直抵城下則城已陷矣八忠死之公大慟曰彼亦臣子我亦臣子而彼同死報 國吾終不得與焉歟遂與再從侄判官嗣悌追倭轉戰斬䤋無殺于時本道伯洪公世恭慮其守成之無人慱採人望以公素有忠節膽略直啓于 朝特除留鎭將兼知軍餉事旣職事有繫則不敢離次夙宵警惕殫竭心力修城池繕器械募兵粟招流亡控守嶺湖之咽喉屹爲東南之保障一邊守護聖廟朔望焚香一如舊儀一府之不至搶攘百姓之終底妥帖盡是安公之力此非但湖南老夫之傳誦昭然載在於節義錄是如向使安公若無 朝廷留鎭之命而任行其志則雙烈可三八忠可九以一時一體之忠節安公一人獨未蒙 褒豈不寃哉豈不惜乎噫安公卽文成公晦軒裕十一代孫其後有文淑公牧文惠公元崇副提學祖同皆以文學名世公之忠節亦有所發源高祖貴行以陽城縣監當端宗遜位日投紱屛跡於南原之白波正宗己未贈大司諫鄕人立祠於藍田嗚呼安公倡義之擧始於壬辰而終於丁酉者有所然而然者伏乞 閤下更加垂察焉逮夫壬辰島夷猖獗公欲擧義殲賊而母夫人七耋沉病不忍離側母氏知其意勸赴 國難曰忠孝本無二致而亦不可兩全豈以病母之故不念 君父之蒙塵乎公雖知戰陣武勇非孝之道而顧念病母之扶護亦乏其人因痛哭而止越明年癸巳母氏病終纔經襄禮遂以墨衰起義時卽甲午夏四月也朝廷適有罷義兵之命故公不勝憤念居常悒悒及夫丁酉果以王命留鎭本府猶未洩滿腔忠憤是公餘恨然吏盖此留鎭乃是王命之有重當時之急務則其於報 國之道不可以生死異日而論也亂已不復留意於仕宦固辭道伯之抄 啓鞱晦以終焉若忠義之卓功績之懋尙未蒙 褒贈之典士林之抑鬱愈往而愈深故彛性攸好擧槩仰龥伏乞 採實轉達丹扆以蒙 褒贈之典矜式瞻聆敎化幸甚乙酉三月 日幼學 崔甲孝 李正銓 韓用大 梁復奎 金仁鑑 尹致永 金樂麒 宋鍵 梁奎煥 黃?洙 崔寬賢 李致文 張(火+允) 崔遇澤 尹鼎鉉 崔綱範 韓百祚 盧䄷 崔光翼 金慶行 尹鼎錫金星彦 李亨祿 盧錫瓚 尹成鉉 黃處洙 陳聖鉉 崔羲澤 丁昌崑 盧錫胤 金永文 尹致華 盧錫民 金郁鑑 李鍰 尹致遠 宋益濂 金世鑑 崔龜河 許曣 金仁達 盧錫贇 金萬喆柳東奎 金星爀 黃達洙 尹摯鉉 金百鑑 盧錫相 崔光河 梁雨集 盧學中 金星應 梁顯光 洪濂 金止鑑 韓允祚 金鐸 盧光潤 金洵組 陳錫龜 韓喆祚 吳夏翼進士 金洙 幼學 房有相 金漢東 柳學濂 金漢忠 李行權 尹榮錫 吳顯奎 等都巡使[着押](題辭)安主簿忠節營門雅已聞之常所欽仰 其所襃揚之道豈或歇後而式年已過啓聞非時誠甚嗟歎事十三日[官印]5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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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幼學柳榮沃等謹齊沐上書于城主閤下伏以本州古稱多俊異之其間忠義節行之彬彬輩出而褒忠㫌節爲 國先務激勸世道扶植人心苟有可褒之忠可㫌之孝則豈以世代之久遠置而不論哉故逸主簿李公惟誨卽補祚功臣咸平君克明之玄孫敵愾功臣咸城君從生靖國功臣咸豊君宗義之從孫討平倭寇陞北兵使 贈參判宗仁之孫高峰奇先生之門人也孝友出天德行名世累以孝廉薦入洗馬副率之望而爲弘瞻輩所沮而當昏朝隱德不仕公之事蹟大略皆著於本州三綱錄與邑誌當壬辰倭亂召其子止得曰 國憂如此豈可坐視我今老矣汝須勉哉李公止得志節俊邁以別薦爲內乘聞 大駕播遷馳赴 行在時兵糧竭之募穀納饋餉廳還船南下與義士張景弘等戰于興陽浦斬倭石綻等數十級與義士張景弘同日中丸而死事蹟大略昭載於節義錄三綱錄止得之弟秉節校尉止衖當其亂負老母避亂于錦城山中城陷之日賊徒猝至欲害其母公哀乞代命翼蔽其母身被鋒刃流血淋漓倭奴憐而書話孝子給母粮六字令公佣之曰如有後至者則視之云云而去賊又大至母子俱不屈而死三父子忠孝大略俱昭載湖南節義錄三綱錄與本州邑誌而且道內儒生前後營邑呈狀如是昭然更不必一一懸錄而三父子之忠孝一義士之忠節如是卓異久未蒙 褒㫌節惠之典其爲子孫者生無顔於世而忠魂義骨死不杇於地矣幽明之間寧不寒心哉伏願閤下勿以循例渾同亟報 營門登聞于 天俾伸累百年鬱結之寃千萬祈懇之至城主閤下 處分癸巳四月 日幼學柳榮沃 柳榮實 柳榮采 柳榮洙 柳復 參奉柳昶 崔升翰 幼學崔圭鉉 崔羽鉉 崔錫翰 崔貴翰 崔基峻 崔基中羅燾元 羅燾休 羅燾允 羅東健 羅恒集 羅應集 林基洪 林相禧 林荷洙 林獻圭 林肯圭 林炳壽 朴圭鎭 朴齊璜 朴寅陽 朴鼎陽進士羅東綸 幼學羅徽瑞 羅瑢碩 羅允煦 監役羅秉軾 幼學梁相衡 梁相泰 吳繼洙 吳禎善 吳俊善 吳滋善 鄭㯙 鄭守烈李東圭 李東植 李鍾仁 李炳壽 張景載 張永載 金泳懿 金宗鉉 金聖圭 金鐵煥 裵煥瑢 裵煥慶 裵瑜基 裵恒根 鄭鴻基李奉夏 李璟植 張彦垕 張彦三 張顯日 張龍奎 張勉奎 高濟豊 洪祐敦 閔璋鎬 奇秉根 奇周鉉 崔宅欽金光錫 金光載 崔原相 崔洛璿 崔琪相 崔洛圖 等巡使[着押](題辭)李公三父子卓異之忠孝張公布衣華義同日立節之事莅玆邑已有所詳見於湖南節義錄本州三綱錄與邑誌而未嘗不三復掩卷欽歎而思矣今觀此狀久未蒙褒㫌節惠之典而至今湮沒其間子孫之零替士林之拂鬱可知而此有大關於樹風揚美之道卽當報營登聞向事初九日[官印] 3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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