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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이낙기(李洛基)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교육/문화-문학/저술-시 甲寅菊月念八日 族孫 洛基 甲寅菊月念八日 李洛基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에 이낙기(李洛基)가 족인(族人) 이승학(李承鶴)에게 올린 송별시(送別詩). 1914년에 9월에 이낙기(李洛基)가 족인(族人) 이승학(李承鶴)에게 올린 칠언율(七言律)의 송별시(送別詩)이다. '족대부(族大父) 청고(靑皋) 어른과 이별하며 지은 시'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은 것이다. 시의 첫머리인 기구(起句)의 내용은 어언 16년 만에 다시 만나 보니 양 귀밑머리에 흰서리가 더해지고 머리칼에는 하얀 눈빛의 흰 머리가 가득할 정도로 모습이 변했음을 말하며 오랜만의 만남을 표했다. 다음 구절에는 산천(山川)은 어찌하여 많은 구름으로 가로막았으며 세월은 무정하게 흐르고만 있었느냐고 읊으며, 그동안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자연과 세월에 돌려 담아냈다. 전구(轉句)에서는 지팡이 짚으며 함께 소나무 숲 언덕에 올라 술을 가지고 국화 핀 누정(樓亭)에 올랐다는 내용인데, 오랜만에 만나 경치 좋은 누정에서 술을 마시며 회포를 푼 만남을 되새기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는 오늘 아침 이별의 아픔을 말할 수 없나니 나중에 단풍 구경을 위해 만나자는 약속을 분명히 하자는 말로 이별의 회한과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약속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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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종(李宅鐘)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교육/문화-문학/저술-시 丁酉九月初二日 宗下 宅鐘 靑皐宗氏 丁酉九月初二日 李宅鐘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에 이택종(李宅鐘)이 족인(族人) 이승학(李承鶴)에게 올린 화답시(和答詩)와 시서(詩序). 1897년에 이택종(李宅鐘)이 족인(族人) 이승학(李承鶴)에게 올린 화답시(和答詩)와 시서(詩序)이다. '청고(靑皐) 종씨(宗氏)에게 화답하며'라는 시 제목이 나오고, 이어 긴 장시가 적혔다. 시의 대략적인 내용은 능성(綾城)에서 지난날 있었던 화수(花樹) 모임을 생각하니 꿈만 같다는 내용, 점차 서리가 내리는 9월의 계절에 그리움이 깊어간다는 내용, 창평(昌平) 장전(長田)에 사는 이승학의 세속을 초월한 풍모 등을 찬탄하여 묘사한 내용, 단란하게 모여 수창(酬唱)하여 자리를 함께하자는 내용 등을 담았다. 서문에는 청고에게 서 온 글을 받고 감사하다는 내용과 시에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해 부끄럽다는 내용 등을 표했다. 이택종은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창평 현령(昌平縣令)을 지낸 이범학(李範學)의 아들이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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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종(李宅鐘)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교육/문화-문학/저술-시 歲在丁酉重九月 綾留 宗人 宅鐘 玉山宗氏 歲在丁酉重九月 李宅鐘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에 이택종(李宅鐘)이 족인(族人) 이광수(李光秀)에게 올린 화답시(和答詩)와 시서(詩序). 1897년에 이택종(李宅鐘)이 족인(族人) 이광수(李光秀)에게 올린 화답시(和答詩)와 시서(詩序)이다. '옥산(玉山) 종씨(宗氏)에게 화답하며'라는 시 제목이 나오고, 이어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의 서문이 자세히 실렸다. 동종(同宗)을 화수(花樹)라고 하는 이유는 한 뿌리에서 나와서 번성하여 천 개의 가지와 만 개의 잎이 되기에 뿌리로 말하면 본(本)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지와 잎으로 말하면 말(末)이 된다고 하고, 역(易)의 원리를 이용하여 자세히 설명하면서 동종의 일체성을 강조한 내용이 나온다. 이어 전주이씨(全州李氏) 사람들이 경향(京鄕)에 흩어져 살아 각기 빈부(貧富)와 궁통(窮通)의 차이는 있지만 대대로 화목한 것은 장공예(張公藝)의 구세동거(九世同居)와 같고, 범중엄(范仲淹)이 의전(義田)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장공예는 중국 당(唐)나라 사람으로, 9대가 함께 동거하여 북제(北齊), 수(隋), 당(唐) 등 세 왕조에서 그 집에 정표(旌表)를 내렸다. 당나라 고종이 친족 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을 묻자, 그가 지필묵을 꺼내어 참을 인(忍) 자 100여 자를 써서 올렸더니, 고종이 훌륭히 여겨 비단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범중엄은 송나라 명재상으로 고향인 오중(吳中)에 좋은 전지(田地) 수천 묘(畝)를 사들여 그 조를 거두어 저축해 두었다가 족인 중에 혼가(婚嫁)나 상장(喪葬)을 치르지 못하는 자에게 공급해 주었다. 서문에서 계속해서 말하기를, 지난번 부친 이범학(李範學)이 창평 현령(昌平縣令)으로 계실 때 담양(潭陽)의 제종(諸宗)과 이웃하였는데 그동안 경향으로 멀리 떨어져 모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고 하였다. 1896년에 이택종이 아버지를 찾아뵈었을 때 부친과 담소를 나누는 이를 보았는데, 그가 이광수였다는 것이다. 이광수의 논의는 정확했으며, 식견이 넓은 것을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하였다. 이 만남으로 한편으로는 이백(李白)이 화창한 봄날 형제들과 복사꽃 오얏꽃이 핀 정원에서 술자리를 벌이며 즐겁게 놀았던 것처럼 종족 간의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붕우(朋友)가 함께 학문을 강습하여 서로 이익을 주는 이택(麗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이후 올해 5월에 부친께서 능성(綾城)으로 임지를 옮겨와 서로 이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열흘 안에 오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그 서글픔은 멀리 떨어진 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에 이번에 이광수로부터 서문(序文)과 시(詩)를 받아 매우 감동했고 감사함을 전하며 창화(唱和)가 없을 수 없다면서 시를 함께 보낸다고 하였다. 이광수에게 부친 칠언율시(七言律詩)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대한 재덕(才德)을 지닌 이광수의 명성은 간담(肝膽)을 기울이게 하고, 중양절(重陽節)의 약속을 꿈속에서도 그리워한다고 하며 만남에 대한 갈증을 드러냈다. 이어 깊어가는 가을밤에 풀벌레 소리 들리고 찬 하늘에 성(城) 위로 솟은 달빛을 보며 다시금 그리움이 깊어짐을 전했다. 마지막 구절에서는 매번 화수(花樹)를 말하며 그 뿌리를 떠올리는데 높은 북두성에서 기러기 소리 들려온다고 하며 이광수가 전해 온 편지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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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교육/문화-문학/저술-시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4편의 7언 절구시. *원문: 長江失愉內城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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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교육/문화-문학/저술-시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7언 율시 1수. *원문: 漢城二客共來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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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학(李承鶴) 만시(輓詩) 고문서-시문류-만사 종교/풍속-관혼상제-만사 地上友 李承鶴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승학(李承鶴)이 1918년에 작고한 춘담(春潭) 기동준(奇東準) 선생을 위해 지은 만시(輓詩). 이승학(李承鶴)이 1918년에 작고한 춘담(春潭) 기동준(奇東準) 선생을 위해 지은 만시(輓詩)이다. 만시의 앞 구절은 송사(松沙) 기정진(奇正鎭) 어른의 죽음 뒤로 다시 춘담형을 위해 곡(哭)을 하게 되었으니 스승을 잃은 남쪽 유림의 덕이 외로워지고, 후생들도 돌봐주는 스승이 없어 서글픔이 깊다는 내용을 담아, 이승학을 비롯한 호남 유림의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뒤 구절 내용은 몸은 옷조차 못 이기는 듯 말은 더듬는 듯하고, 지(志)는 기(氣)를 잘 통솔하여 경(敬)을 실정으로 삼았으며 평생토록 신근(辛勤)의 뜻을 수립했으니 그 영향력이 우산(牛山)으로 떨어져 명월(明月)로 우뚝하다는 것으로, 춘담 선생의 평소 인품을 찬탄하고 그 영향력이 영원할 것임을 드러낸 구절이다. 우산은 우산정사(牛山精舍)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 정사는 현재 광주(光州) 효령동 종방마을에 있는 정사로 송은(松隱) 기정륜(奇梃崙, 1663~1740)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인데, 후손인 춘담이 이곳에 기문(記文)을 남겼다. 기동준(1869~1918)의 본관은 행주(幸州)이며, 자는 평중(平仲), 호는 춘담(春潭)이다. 1860년 기대승(奇大升)의 후손인 창현(昌鉉)의 아들로 광주(光州) 광곡리(廣谷里)에서 태어났다. 18세에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갔다. 1880년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과 만났으며,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을 기리는 모임에 참여하는 등 유림 활동에도 활발했다. 1894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가지지 않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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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학(李承鶴) 문(文) 고문서-시문류-문 교육/문화-문학/저술-문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승학이 부모님의 葬地와 관련하여 적은 雜著. *원문: 承鶴早告怙恃常懷風樹蓼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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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최선(李最善)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건창(李建昌)이 저술한 한 말 유학자 석전(石田) 이최선(李最善)의 묘갈명(墓碣銘). 이건창(李建昌)이 저술한 한 말 유학자 석전(石田) 이최선(李最善)의 묘갈명(墓碣銘)이다. 묘갈명 첫머리에는 철종(哲宗) 말기에 석전(石田, 1825~1883) 선생이 상소(上疏)로 삼정책(三政策)을 진달(陳達)한 배경과 그 삼정책의 대략적인 내용이 소개되었다. 그 대략은 '정치는 스스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얻어 행하는 것'이라고 하며 인재 선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 상소를 본 담양부사(潭陽府使)가 문장에 꺼리는 기색이 없다고 하여 올리지 않자, 선비들이 삼정책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내용도 함께 실었다. 이어 이건창은 양이(洋夷)가 침입해온 1866년 병인양요가 발생하자 석전 선생께서 호남의 종친들에게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아 서울에 도착한 내용 등을 언급하며 도(道)에 마땅하고 시(時)에 걸맞다고 칭찬했다. 이어 석전 선생의 성품을 기술하면서 '뜻이 크고 기개가 있으면서 기지(氣智)롭다'고 하며 친부(親父)의 면례(緬禮) 때 향리(鄕吏)와 묘소 문제를 슬기롭게 처리한 일화를 상세히 소개했다. 또 석전의 인품을 알 수 있는 몇 개의 일화 등을 덧붙였다. 묘갈명 중간에 이건창이 석전 선생의 묘갈명을 짓게 된 배경이 나온다. 석전의 아들 이승학(李承鶴)이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이건창에게 묘갈명을 부탁하였는데, 가장에 석전의 효성과 경사(敬師)로부터 고아와 과부를 두루 보살펴주는 일에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고 칭찬한 내용이 나온다. 이건창은 이 가장을 바탕으로 묘갈명을 작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묘갈명은 석전의 사승 관계로 이어진다. 호남(湖南)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선생으로 인해 학문이 번창했는데 석전이 노사 선생을 40여 년 동안 예율(禮律)로써 스승을 모셨으며, 스승도 석전을 매우 중히 여겼다고 기술했다. 이어 석전 선생의 가계를 소개하였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증손인 이산부정(伊山副正) 사성(嗣盛)의 제3자인 추성수(秋城守) 이서(李緖)가 담양에 입향(入鄕) 하면서 세거(世居)했다는 것과 석전의 증조(曾祖)에서 자손 대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실었다. 석전 선생이 관직 이력과 묘소, 명문(銘文)을 넣어 묘갈명을 끝마쳤다. 석전 이최선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유(樂裕), 호는 석전경인(石田耕人)이다. 1838년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858년 증광시에 급제하였으며, 1861년 삼정(三政)에 관한 구언(求言)이 있어 「삼정책(三政策)」을 지어 올렸으나, 조정에 전달되지 못하였다. 1873년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과거의 폐단을 보고 출사(出仕)를 단념하였다. 기정진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하여 척사위정(斥邪爲政)의 정신에 투철하였으며,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옹호하고 외세를 철저하게 배격하였다. 문집으로 ?석전집(石田集)? 4권 2책이 있다.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조선 2대 왕인 정종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이며,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순절한 이시원(李是遠)의 손자이다. 자는 봉조(鳳朝), 호는 영재(寧齋), 명미당(明美堂)이다. 1866년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였다. 1874년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청(淸)나라에 가서 여러 문장가와 교유하여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강위(姜瑋) · 김택영(金澤榮) · 황현(黃玹)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충청우도 암행어사(忠淸右道暗行御史), 승지 등의 벼슬을 했으며, 1896년 해주부 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다가 고군산도로 유배되었다. 그 뒤 고향인 강화에 내려가서 서울과는 발길을 끊고 지내다가 2년 뒤에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인 저술로 ?당의통략(黨議通略)?이 있으며, 문집으로 ?명미당집(明美堂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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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기계상(奇繼商)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羅州儒生進士奇繼商 等 135名 巡相閤下 [1863] 奇繼商 巡相閤下 巡使[着押] □…□ 5顆(7.0x7.0) 전남도청(2019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나주 유생 기계상(奇繼商) 등 135명이 순사또(巡相)에게 이지득(李止得)의 충절을 표창해 주길 청하는 상서(上書). 나주 유생 기계상(奇繼商, 1710~?) 등 135명이 순사또(巡相)에게 이지득(李止得)의 충절 행적에 대한 표창을 청하며 올린 상서(上書)이다. 기계상 등 나주 유생들은 새로 부임한 순사또께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 순절한 나주 사복(司僕) 이지득(李止得)의 의병활동 사실을 등을 서술하고, 여기에 의정부(議政府) 관문(關文)과 의곡자문(義穀尺文)을 덧붙여 다시 올리니 자세히 살펴보시고 임금께 알리어 수백 년 동안 쌓인 억울함을 펼 수 있도록 해달라며 요청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요청에 순사또(巡相)는 효열장계(孝烈狀啓)를 지금 이미 봉진(封進)하였으니 기다리라는 처분을 내렸다. 이 외에도 이지득의 충절 표창과 관련한 문서로는 1781년과 1863년에 올린 상서가 있다. 이지득(李止得, 1555~1594)의 자는 덕보(德甫), 본관은 함평, 함풍군 극명(克明)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유회(李惟誨)이다.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 초동에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 별천(別薦)으로 겸사복(兼司僕) 내승(內乘)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이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량을 모아 행재소로 가서 남으로 내려오기를 청하고 돌아왔다. 1594년(선조 27)에 사재를 털어 군량미로 공급하였고, 장경홍(張景弘)ㆍ장경남(張景男) 형제와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흥양포(興陽浦)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892년(고종 29) 충신정려(忠臣旌閭)가 내리고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현재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 초동마을에 이지득의 정려각인 포충각(褒忠閣)이 있다. 상서(上書)는 조선시대 민원서(民願書)인 소지류(所志類)로 그 서식은 다른 소지류와 약간 다르다. 이 문서는 관찰사·수령·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며, 그 내용은 산송(山訟)과 효행(孝行)·탁행(卓行)의 정려(旌閭)를 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원이 많은 경우는 연명하여 올리기도 한다. 이 상서는 전래되고 있는 것이 많으며, 시대는 대개 조선 중기 이후에서 말기까지의 것이 대부분이다. 상서를 접수한 관찰사나 수령은 이를 검토하고 그 처분을 문서의 좌편 하단의 여백에 써놓는다. 이것을 제음(題音) 또는 제사(題辭)라 한다. 이와 같이, 처분한 내용을 써서 상서를 올린 사람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수령에게 1차 올려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차, 3차 계속 올리며,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관찰사에게 올리게 된다. 이러한 상서는 당시의 사회사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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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州儒生進士奇繼商等謹齋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羅州古稱忠義鄕矣如金健齋父子之壬辰立慬其義聲直節固已聞於天下其餘若林光州之甘心死綏梁佐郞之含笑赴水朴錦溪之跋涉扈難崔興陽之慷慨獻䤋亦皆昭著國乘或棹楔焉或爼豆焉而其間抑有精忠韙節與彼數公者無上下而或因雲仍之零替文獻之無稽至今累百載之間鬱而未暢焉則豈不爲昭代之欠典蒼海之遺珠者耶故兼司僕李公止得抗義討賊募粟餉師赴戰甘死等事而猶以未見 朝家信筆爲恨矣何幸今者議政府關旨一張餽餉厅尺文一張遽出於境內一士友之家印跡昭森辭義悱惻讀之令人聲淚交迸嗚呼其忠矣哉口碑家乘果非誣也議政府關辭煩不殫記若有曰焚蕩殺戮之餘兵無數日之粮一國臣民但費揮洒唐兵自天而下粮蒭不繼大事將去苟有血氣孰不傾財破産以助綴旒之急哉兼司僕李止得見國家急急之勢懷斷斷急病之心願下于本道募粟于同志以助 國家萬一之用其誠可嘉各道各官勿以啇賈而有禁畧于船隻蠲稅許載亦勿阻遏使卽上來以補軍兵之需云云而行關于忠淸全羅兩道觀察使節度使水使而右議政及從事官兩員各署手押餽餉廳尺文略曰羅州前兼司僕李止得領進義穀白米一百四十二石九斗五升赤豆一石以 天兵粮依數納上云云而堂上及郎廳亦各着押實 萬曆二十一年三月六日也擧此兩歎可見其竭忠募粟冒險運船之勤也至若野史所載則有曰壬辰公聞賊船犯長興地卽募義軍略干人直下長興蹴踏倭賊倭敵不敢逼遁去又聞賊船泊於興陽界促櫓而行遇一大船直超而登先斬石綻等數倭忽有一倭以短釼擲之中公左臂落于水奴金同者善於泅負公還船自是病不能視軍未幾直長奇孝曾知公有瞻男招公爲從事官詣行在時京外焚蕩軍需告匱公自願南下募粟漕運進餽 天兵此則班班實蹟且當與倭交戰之日公先登奮擊累?其銳賊勢尙熾大軍數敗公以長鎗大釼踴躍指揮斬䤋十餘級而乘勝蹴踏之際淬藥飛鏃忽破公之肩脅間公落馬急呼班張景弘曰一箭殞我 國憂將何生不斬倭酋死不杇義骨天長地久此恨何極 皇天眷祐我邦廓淸妖氣形骸忍歸窀穸毅魄猶待恢復言未訖殞絶焉卽募粟之翌年甲午五月十七日也其直忠大節獨不下前輩而旣無大人君子爲之表章故本州諸忠臣褒㫌之日不敢幷擬矣今則右議政關旨及尺文忽出於數百年積鬱之餘斯豈非氣數之有待而顯晦之有時者耶以言乎世德則咸平之李寔爲湖南之甲乙族咸平君以後世有忠節焉勳臣則副護軍贈兵曹判書忠臣則兵馬節度使 贈兵曹判書乃公之高曾祖而成均進士世稱蒿菴先生卽公之考也道學忠節繼繼煊爀而莊襄公襄翼公是公之族高曾祖而立節臣咸豊君亦公之從兄也書院旌門項背相望公之忠烈有自來矣鄕人之欽艶景仰匪今斯今而如許至行韙躅有不可終泯玆以議政府關及義穀尺文帖連仰龥於 新莅採詢之下細細察納焉故前兼司僕李止得之實蹟礿以抗義討賊再爲募粟餉師末乃殺身成仁如許堂堂凜凜卓節有志之士孰不無嗟惜之心乎更伏乞 巡相閤下勿以巡禮渾同另加採 察亟報 天門伸累百年鬱結之寃千萬幸甚行下 向敎是事▣使道 處分▣…▣儒生進士 奇繼啇 幼學 柳德漢 崔弘烈 柳希諺 柳廷烈 李德相 崔德相 崔聖烈 張得忠 裵碩纘 李春植 柳希聖 張齊白 崔承烈 李德進 裵仁明 李寅立 李寅達 柳德重 吳應淵 李菜 李德謙 李糖 李命翼 李宏幹 李德建 張得信 崔昌業 金麗臣 洪光漢 羅廷誼 吳時爕 柳文錫進士 吳時裕 幼學 李廷華 張齊文 崔昌基 李寅培 李寅玉 張翼 裵碩采 李希仁 李希勳 張敬元 崔翊東 李希文 李橙 進士 金之橉 幼學 柳圭 李櫂 崔光朝 柳宗魯 柳宗烈 李秀宗 李昌補 裵義明 李景淵 李存性 金始達 金相祿 李宏宅 李坤 李鎭萬 李鎭夏 洪允貞 洪潤道進士 廉宗慎 張天翰 鄭命龜 李喬臣 李赫臣 鄭稷 朴聖坤 李希福 李希祿 柳德種 柳漢宅 李希玉 柳德坤 林永鎭 林衡鎭 林▢鎭 吳敬已 林義鎭 林澤遠 吳敬源 崔宗赫 崔宗喆 羅廷學 洪若洙 羅得緯 洪敬漢 羅得采 吳鳳原 洪樂後 吳相源 洪哲漢 鄭達運 鄭秀馨 洪奎漢 羅學新 羅宗甲幼學 林德遠 廉宗鐸 金德麗 金得垕 李永達 洪章漢 張齊甲 崔東齊 崔南齊 張顯維 崔興烈 吳應宅 羅命天 羅翼天 奇大坤 閔邦仁 閔邦哲 奇碩東 閔邦漢 柳德文 柳義春 閔邦元 鄭大殷 羅守天 高山嶺 柳希和 鄭億 吳燦相 李儒聖 李洙 金昌鉉 柳濡 金得瑚 李陽運 等巡使[署押](題辭)李公忠烈令人欽歎孝烈狀啓今已封進勢將留待後日向事[官印] 5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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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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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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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巖居前海南朴世章▣…▣綾州居出身 朴泰彬右謹言所志憤痛情由段矣等先山在於綾州西一面月谷村後而矣等則或居綾州西二面或居靈巖是乎所其間相距隔遠是白在如中同月谷居梁居益亦瞰其子孫之遠居而去月分其矣同生與子姪三葬乙一日之內盡爲矣等曾祖墳山龍尾至近之地冒占偸葬爲乎矣矣等所居隔遠乙仍于趂未知幾而不得禁葬爲白良以至今日之近延則瞻聆所及稍有血氣者莫不切齒剖心是白去乎況於矣等之憤痛當復如何哉大槩矣等曾祖朝散大夫行司憲府監察是白遣至於子孫世連官爵爲有如乎雖或凡人葬山是良置步數之內以他人不得任意入葬是去等況且士大夫墳山步數之內有此冒占偸葬者乎不勝其憤鬱之情爲白齊敢此控訴是去乎伏乞神明孝理之下特察梁居益無據之狀爲白良同偸葬刻期掘移事各別 嚴明行下爲只爲行下向敎是事兼城主 處分戊子十一月日▣▣[着押](題辭)果如狀辭則梁居益暗然偸葬於士夫山所至近之處 極爲痛駭罪爲摘奸尺量牒報以爲處置之地事卅日留鄕所[官印] 3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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