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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主前 上白是日前朴參奉便上書下鑑否霖雨支離伏未審比辰氣軆候一享萬安痢患餘症快完否伏慕區區不任下誠之至子眠食無恙伏幸何達潭兒際此放學敎師歸家申生亦歸傍無助益渠自無聊故伴隨海南學生閔議官慶鎬子姪也今日送白浦留五六日後使歸勤上來耳雖無誠稍知向學而今年期得漢語卒業明年使學英語則似得四五年切力然后可成而學費雖困難如此敎育則一平生無碍生計亦在其中耳 下諒伏望餘不備上白是癸丑六月二十二日子光秀上白潭兒名以爀一字改定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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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이택종(李宅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酉菊月初六日 宗下 宅鐘 丁酉菊月初六日 李宅鐘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 9월에 이택종(李宅鐘)이 종인(宗人) 이광수(李光秀)에게 안부 등을 전한 간찰. 1897년 9월에 이택종(李宅鐘)이 종인(宗人) 이광수(李光秀)에게 안부 등을 전한 편지이다. 지난번 화수회(花樹會), 즉 친족모임이 있었는데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을 전하고, 저의 마음을 서로 알아주는 이는 옥산(玉山, 이광수 호)이라고 하며 친근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번 매산(梅山)의 모임은 일생에서 잊지 못할 만남이었으나 평교(平橋)에서 잠깐 상봉하고 헤어져 아쉬움이 들지만, 이 또한 좋은 인연이었다며 위로하기도 했다. 이어 말하길, 백 리의 거리를 두고 서로 떨어져 지낸 지 4달이 지나 그리워하던 중에 이광수가 읍으로 보낸 편지와 서문(序文), 시(詩)를 받아 읽어 보았다고 하였다. 이 글들을 보니 황홀하여 마치 청아한 모습을 대하는 것 같았다고 기쁨을 표시했다. 또 가르침을 받고 매우 기뻤으나 그간 답장을 하지 못한 사정과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이광수의 안부를 물은 내용이 보인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시고 잘 지내고 있는지, 식구들과 마을의 여러 어르신은 두루 안녕하신지를 물어 이광수의 식구뿐만 아니라 문중 어르신의 안부까지 두루 챙겼다. 또 여름에 오서(鰲西)의 유람은 반드시 광명(光明)이 되었을 것이니 축하한다고 하며 부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택종 본인의 안부를 전하기를, 아버지께서 화담증(火痰症)을 앓고 계시는데 특별한 효험을 보지 못해 걱정된다는 말과 서울 소식이 몇 달 동안 막혀있어서 답답하다는 것, 공부는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데도 문자를 접할 겨를이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하면서 편지를 마쳤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 1898~1977)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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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玉山 重侍案 執事峒庵宗謹謝函曏者以花樹之樂僑於藤邨之時一邱隔聞未得日之穩討其於以心相許則乃玉山與峒庵也至於梅山之會是所一生不忘者而平橋暫逢相語而別如非佳緣耶一分百里相阻者凡四朔悵悵然於邑忽於心劃辱墜兼承一序一詩奉讀周篇怳若接淸儀而承敎如狂摳倒不覺傍者之笑也至於無書之責不啻時沕之暇日事怡慢有意未遂者愧何足道古人所謂千里之外朝夕相遇者是心也心已相許則有書無玉何足關哉更惟便后日富重侍體上遠護萬祉 閤節曁洞中諸丈箇箇安寧否懸懸不忘區區伏祝長夏鰲西之遊必是光明之道入於至微之間矣仰賀且羨宗下來此以後親患以火痰暑滯尙未顯效日事刀掛京信之阻如以累朔無非悶鬱傷心處也所謂工夫本其尋常而且何暇於文字耶奈何奈何万万都縮姑此布肅丁酉菊月初六日宗下宅鐘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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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이동헌(李東憲)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未九月十九日 族末 東獻 宗中 僉執事 癸未九月十九日 李東獻 宗中 僉執事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미년 9월에 이동헌(李東獻)이 담양(潭陽) 종중(宗中) 어른들께 선조 개장(改葬) 일의 불참에 대한 죄송함과 선물에 대한 감사함을 전한 답장 간찰. 계미년 9월에 이동헌(李東獻)이 담양(潭陽) 종중(宗中) 어른들께 선조 개장(改葬) 일의 불참에 대한 죄송함과 선물에 대한 감사함을 전한 답장 편지이다. 피봉을 통해 흥동(興洞)에 거주하는 이동헌이 담양군 대곡면(大谷面) 종중 어른들께 올린 편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지 서두에는 편지를 받고 서리 내리는 시기에 여러 어르신이 두루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되었다고 전하고, 이동헌 본인의 안부를 전했다. 자신은 집안의 운수와 신수(身數)가 모두 혹독하여 거듭 참독(慘毒)한 상(喪)을 만나서 애간장이 끊어질 듯하다며 서글픔과 탄식을 드러냈다. 이어 선산(先山)의 개장(改葬)의 불참 문제를 들었다. 지난번 경기도 과천(果川) 청계산(淸溪山) 아래 위치한 광명동(廣明洞)의 개사초(改莎草), 즉 무덤에 떼를 갈아입히는 일은 종중 어른들에 힘입어 마쳤다고 하니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그러나 처음 이 일의 시행 여부를 제대로 듣지 못해 참석하지 못했다고 전하며 죄송한 마음을 표했다. 이어 보내주신 백문(白文)은 아이들의 과거 시험을 준비로 쓰겠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과천의 광명동 묘소는 이개(李?)의 무덤이다. 이개는 전주이씨 왕실의 계통으로, 양녕 대군(讓寧大君)과 영일 정씨(迎日鄭氏)와의 사이에 태어난 장자(長子)이다. 순성군(順城郡)이라 봉(封)하였고, 작위는 흥록대부(興祿大夫)에 이르렀으며, 시호(諡號)를 희안(僖安)이라 증(贈)하였다. 나이가 들어 과천 청계산 아래 광명동으로 물러나 사시었다가 돌아가시자 이곳에 장사하였다. 배위(配位)인 평산 신씨(平山申氏)는 경연지사(慶筵知事)인 자경(自敬)의 따님인데 자손이 없었고, 배위인 군부인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참의(參議) 종성(宗誠)의 따님이요,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손녀로 4남을 두셨다. 장남은 오천군(烏川君) 사종(嗣宗), 차남은 헌양군(巘陽君) 사조(嗣祖), 3남은 포산부정(苞山副正) 사원(嗣源), 4남은 이산부정(伊山副正) 사성(嗣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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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大谷 宗中 僉執事興洞族末 謝書景仰中承拜下狀謹審霜令僉起居萬重仰慰仰慰宗末門運身數俱爲孔酷荐遭慘毒之喪寸腸如裂衰老漸甚自憐奈何廣明洞先山改莎之役賴宗氏之拔身幸以完役欣忭曷已始役時未乃得聞歇未往見愧歎愧歎此來僉宗阻餘敍懷而無味於科事可歎 下惠白文用於兒輩科需良感良感餘不備狀禮僉下照謹謝書癸未九月十九日 族末東憲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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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조용숙(趙鏞肅)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巳七月卄九日 弟 趙鏞肅 癸巳七月卄九日 趙鏞肅 李光秀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3년 7월에 조용숙(趙鏞肅)이 이광수(李光秀)에게 보내준 시(詩)에 대한 감사 인사와 안부를 전한 간찰. 1893년 7월에 조용숙(趙鏞肅)이 이광수(李光秀)에게 보내준 시(詩)에 대한 감사 인사와 안부를 전한 편지이다. 편지는 피봉과 편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편지지 배면까지 내용이 적혀 있다. 편지 첫머리는 우애(友愛)를 확인하는 내용이 보인다. 조용숙은 자신이 용렬한 재주와 못난 자질로써 지향하는 것도 고루하고 학문도 얕아 교유하는 이들이 넓지 못해 자신을 증진 시킬 수 있는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데, 이광수만이 집안 대대로 맺은 우호를 지키며 저를 비루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또 집으로 처음 찾아갈 때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마치 오래도록 사귄 벗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 후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삼백 리 먼 길까지 편지를 부쳐주시고, 5언과 7언의 절구시(絶句詩) 2편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였다. 보내준 글에는 곡진한 마음이 담겨 있어서 황홀함이 마치 상대방을 대한 듯 하다고 글에 대한 감동을 덧붙였다. 또 듣자니 솔바람 부는 언덕의 정자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시 모임을 했다고 하는데, 저와 같은 미천한 사람이 그 모임의 시를 얻을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다고 하고, 보답하려고 했으나 인편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후 소식까지 전하지 못해 의아했을 것이라며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조용숙은 이광수의 안부와 그 가족들의 안부를 두루 물었다. 서울에 계신 가족의 안부 소식은 계속해서 전해지는지, 부모님을 모시고 학문하는 생활은 좋으신지 묻고 더 노력하여 운남(雲藍) 어른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고 하였다. 이어 하룻밤에 사나운 바람이 일어서 조용숙이 사는 영남 전 지역에 대살(大殺) 기운이 퍼져 흉년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며, 이전에 나라를 걱정하며 풍년을 기원했던 것이 진실로 이것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계속해서 조용숙 본인의 안부를 전하기를, 요즘 생활은 특별할 것이 없고 다만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예전과 같이 별 탈 없이 지내셔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이광수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안부 인사가 이어졌다. 이광수의 아버지, 즉 이승학(李承鶴) 어른께서 서울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하여 편지를 따로 드리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마을의 친족 어르신과 친우들은 두루 평안한지 물었다. 어느 때나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편지지를 대하고 더욱 서글퍼진다는 말로 편지를 마쳤다. 조용숙(趙鏞肅, 1867~1929)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초명은 용대(鏞大)이다. 자는 사흠(士欽), 호는 복재(復齋)이며 진주(晉州) 출신이다. 할아버지 조성가(趙性家)에게 수학하였고, 송병선(宋秉璿) · 기우만(奇宇萬) · 김평묵(金平默)을 사사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지리산 밑으로 이사하여 석실정사(石室精舍)를 짓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태극동정설(太極動靜說) ·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 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 · 명덕설(明德說) 등은 기정진(奇正鎭)의 학설에 기본을 두고 절충식 방법을 취하였다. 위정척사 의식을 표방한 「부정척사론(扶正斥邪論)」 등의 저술을 남겼다. 문집으로 ?복재집(復齋集)? 10권 4책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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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則兄 省座下兩年別懷兩地何殊而遠途者之鄕思與知舊親同似加倍於在家矣但南向日祝新年來省餘慶福以至諸節續平區區溸仰弟旅道兩歲無端至此進退亦末由姑亦坐停于此而今番科事又不得如意黃果姑無已執者耶雖然淳試不可無納券而非吾同硏舊誼誰常此苦須與季也相議初場一張特垂許惠以副遠友之望切仰切仰此中經歷家書略言想聞到矣極悤悤不盡底惟望會團相達不備候上辛卯二月十四日承鶴弟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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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戌八月卄四日 生 李承鶴 戊戌八月卄四日 李承鶴 崔斯文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에 이승학(李承鶴)이 최사문(崔斯文)에게 최익현(崔益鉉)의 안부와 여러 가지 사정 등을 전한 간찰. 1898년 8월에 이승학(李承鶴)이 최사문(崔斯文)에게 안부와 여러 가지 사정 등을 전한 간찰이다. 수신인은 최사문으로 되어있는데, 최사문은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아들 최영조(崔永祚)로 추정된다. 사문(斯文)은 유학, 특히 성리학을 업으로 삼는 유생(儒生)을 지칭한 말이다. 이승학은 최사문에게 지난번 서울 여관에서 만났는데 아직도 기억하는지 묻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이 같은 통탄의 세상에서 다행히 춘부장(春府丈, 최익현)이 계셔서 엄숙히 모범이 되어 주어 세상이 유지된다는 말을 하였다. 또 매번 춘부장을 찾아뵙고 문후를 여쭈고 배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세상이 험하고 이승학 자신도 병이 많아 서글픔만 더해간다고 토로했다. 재작년에 춘부장께서 호남의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산재(山齋)에 오셨다고 하셨는데 이승학이 궁벽한 곳에 있다 보니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아서 찾아뵐 기회를 놓쳐 한이 된다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계속해서 춘부장 최익현의 근래 안부를 묻고서 이승학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이승학은 요사이 쇠약하고 병이 많아 대장부의 뜻을 이루지 못해 근심인데, 최근 4살 된 손자를 잃어 더욱 슬프다고 전했다. 이제 문중의 두 아이를 시켜 춘부장을 뵙게 하면서 편지를 함께 보낸다는 말을 하였다. 이승학(1857∼1928)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제자로, 그의 손자 기우만과도 같은 문하이면서 사돈 사이이다. 같은 위정척사(衛正斥邪) 기치를 내세웠던 최익현과도 친밀한 사이라, 이승학의 문집인 ?청고집(靑皋集)?에도 최익현에 올린 편지가 실려 있기도 하다. 이 편지로 최익현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과도 교유를 이어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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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崔斯文 侍執 拜啓長田 李生謹候漢邸旅館拜晤追逐想或 記得否于今星霜四置閏矣二難賢範夢想往來只恨無翼奮飛置身 左右以聽緖餘年來世變百㥘國威日削或不知趨痛深骨髓而何幸春府先生秉執益嚴立懶廉頑維持一世是誰之力也若非循路之木祈難乎免於今之世矣生在南陲雖不分東西每西向問 起居候欲備灑掃之誠日夜若水之東注而況有先人之好於先生生亦曾有拜謁而不能一造門下請 候世險路硬身多病故耿耿此心無地可布矣再昨年聞有南爲之駕及於松沙山齋而居僻後知失一番好機會悵恨何及也伏惟秋高春府先生道軆神扶貞吉侍候動止百福湛樂益勝遠切伏溯生慈省印分未昏而衰衰又多病六尺之軀不能自任平生桑弧之志將歸焉有亦甚悒悒而近失一孫稚爲四歲者殊無悰怳造物戱人甚哉今者門內二少輩進謁門下去遠地信禠不易敢達區區於先生兼 候斯文恕其誅而原其情則甚幸亦何可望也伏祈 心炯不貳謹上戊戌八月卄四日 生李承鶴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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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丑正月十一日 宗下生 承鶴 己丑正月十一日 李承鶴 宗人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9년 1월에 李承鶴이 宗人에게 보낸 간찰. 흉년에 대한 언급한 내용, 이곳에서 가는 族人을 잘 돌봐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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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上書臨歲賜答伏拜伏感獻發有日慕仰尤切伏未審正元篆軆度迓新萬康 衙節俱爲泰平伏慕區區不任下誠宗下生省率僅得無何於新年萬萬伏幸而歉歲物情有難救道窮春經歷姑未知如何得宜伏切漆憂而已?白此去鄙族方以宗事有事於 治下族人家玆以冒恳其在室之誼曲垂下恤之澤千萬千萬伏惟下照不備謹上書己丑正月十一日宗下生承鶴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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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謹拜候一周年追遊軒屛歸臥山屋思惟得非南柯雖然至滿于中無時不北望瞻誦伏詢至寒台體候萬旺今冬供仕夙夜之勞何如賢胤課業日懋益伏溯區區頃自汝寬族書中傳聞有綠林之夜驚聞甚悚駭而都下如是則外方何論擾物姑舍亦可以觀世變奈何奈何族下秋圍之左右狼狽無奈命運不足而做事本自歇后亦何望哉但歸時爲雨水生病歸家尙未蘇往往作苦自憫而已京鄕間諸族家秋無見參門運空耶還可笑也明春又聞有增廣云果然耶雖無坐停之意更無振作之氣奈何汝寬族亦安過耶趨趁欲探候而無便未能負之悚之統希照納不備謹候禮辛卯至月卄九日族下承鶴拜手去核二斤伴呈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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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戌二月四日 記下 李承鶴 戊戌二月四日 李承鶴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 2월에 이승학(李承鶴)의 동갑(同甲)의 지인에게 새해 인사를 전한 간찰. 1898년 2월에 이승학(李承鶴)의 동갑(同甲)의 지인에게 새해 인사를 전한 편지이다. 편지는 지난번 만남을 되새기며 그리움을 표하고, 이어 이승학 자신의 안부를 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이승학은 저물어 가는 무렵에 동갑의 지인을 만나 진실로 위로가 된다고 하고, 지난날 밤에 함께 등불을 켜고 술을 마시던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이어 상대방의 안부를 물으며 가는 곳마다 주천(酒泉)일 것이니 걱정 없이 마음껏 마시고 기분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주천'이라는 말로 짐작하건대 주천의 지명이 있는 경북 예천(醴川)이나 강원도 영월(寧越)에 상대방이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승학이 지명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기거하는 곳이 물이 좋다고 이름난 지역일 가능성도 있다. 상대방에게 덕담한 후 이승학은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해가 바뀌는 시기에 감기가 심해져서 감삼탕(甘蔘湯)을 시음하여 효과를 보아 담증(痰症)이 조금 나아졌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어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김씨(金氏) 친구는 고풍(古風)이 진작되고 있는 인물이라고 칭찬하며 이 친구에게 우선 안부를 전한다고 하며 편지를 마쳤다. 추신으로 풍동(豊洞)의 여러 식구에게는 따로 편지를 드리지 못하니 새해 안부를 전해달라는 내용을 덧붙였다. 추신의 내용으로 보아 이승학이 상대방의 친척과도 우애가 있는 관계였던 듯하다. 피봉의 수신란에 호(號)로 보이는 '석초(石初)'로만 표기되어서 수신인을 알 수 없다. 다만 편지 본문에 '동경(同庚)'이란 말로 동갑의 지인이라는 것만을 짐작할 뿐이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아들 이광수(李光秀)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이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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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卯二月十四日 承鶴 景則兄 辛卯二月十四日 李承鶴 景則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에 이승학(李承鶴)이 경측(景則)에게 과거 시험 문제 등을 전한 간찰. 1891년 8월에 이승학(李承鶴)이 경측(景則)에게 과거 시험 문제 등을 전한 간찰이다. 수신자 경측이 누군지는 알 수 없다. 2년 동안 이별하여 그리움이 지극하다는 내용과 경측의 안부를 묻고 이승학의 안부를 전하면서 편지를 열었다. 편지 본문에서는 이번 과거 시험도 여의치 않지만 아직은 시험을 더 준비해 보겠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상의한 초장(初場) 시험의 한 장(張)을 특별히 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말을 전했다. 남은 얘기는 편지로 다 하지 못하니 직접 만나자고 하며 편지를 끝마쳤다. 이 편지에 알 수 있듯이 1890년 무렵 이승학은 서울 근방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과거 시험에 도전하고 있었다. 지인에게 시험에 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부탁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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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徐承旨宅長田謹椷雲茫雖殊每道同庚之好令監之高風令人可掬伏惟令軆起居湛樂萬裕現今駕住京耶鄕耶於京則見帶何職於鄕則消受何方邈矣無由得聆臨風瞻溯曷任遠悃庚生歲前作別後以病不卽還鄕亦不得出入凡月餘作苦辛酸何諭先事亦不得伸理無所屈而勢有所屈也亦復奈何歸家亦以病每每不健衰相良苦且憐而令監聞此必掀髥矣家兒但知讀書作文頗知歸趣而於世情疎矣使之北途同庚之子幸賜指敎耶願望萬惟烱照不備謹候庚子三月旣望庚生李承鶴二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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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이승학(李承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寅至月晦 舍兄 寄舍弟書 庚寅至月晦 李承鶴 舍弟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0년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안부와 여러 가지 당부를 전한 간찰. 1890년 11월에 이승학(李承鶴)이 동생에게 안부와 여러 가지 당부를 전한 간찰이다. 여기서 동생은 내용의 전개 등으로 보았을 때 이승학의 숙부(叔父) 이원선(李元善)의 양자로 들어간 이승구(李承龜, 1860~1942)를 지칭한 듯하다. 노비 용석(龍石)과 정춘(丁春)을 통해 편지가 계속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 소식이 오랫동안 막혀 울적한 심정이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3달 동안 과거(科擧) 시험 준비로 객지 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전하였다. 지난번 보았던 시험은 어렵겠다는 말과 명성을 가진 세력에 의지하려는 자가 많다는 내용, 수제(壽弟)는 무과(武科) 향시(鄕試)에 일단 합격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러나 공정하게 무과에 임했던 이들이 모두 떨어졌다는 말에서 당시 문란한 시험 상황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수제는 아마도 무과에 합격한 이승학의 동생 이승한(李承漢)을 지칭한 듯하다. 이어 이승학은 봄에도 과거 시험이 계속 있어 아직 남아 있겠다는 말과 이승학이 집에 없는 동안 잘 처리해 나가도록 독려한 내용이 보인다. 또 이승학의 체류 비용 역시 지난번 편지대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이전에 언급한 담양읍(潭陽邑)의 상인 국영진(鞠永趁)에게 260냥을 집전(執錢)하여 받도록 한 일을 말한 듯하다. 또 의복을 보내달라는 말과 누이동생의 혼사 등 세세한 집안일에 대해 당부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이승학이 현재 거주하는 서울집에 진주하씨(晉州河氏) 하선전(河宣傳)이 함께 기거하는데 마음이 잘 통해 기쁘다는 내용, 숙씨(叔氏)가 근처에 있어 지낼 곳을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함께 지낼 것 같다는 등이 편지에 실렸다. 이승학의 이 편지에서 이승학의 1890년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 무렵에 이승학이 몇 달간 서울에 머물면서 과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그 비용 등을 어떻게 마련했고, 가족들이 어떻게 뒷받침해주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승학(1857∼192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이승학 본인도 기정진의 문하에서 배웠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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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石初 惠啓靑皐候緘徂歲邂逅遇我同庚浮生良慰半夜傳燭呼酒阿凍其樂孔嘉俾也可忘春已仲矣更惟體事珍腴到處酒泉能無恙痛飮消遣臨風溸祝記下新舊之交又添寒感只作喀喀聲度日欲政專却不是陽界好況耳甘蔘湯試服有效而以痰蹙中止者累矣此去金友聞其高風方進去暫此探候不備上豊洞諸節泰平耶新年未聞泄泄爲傳此意否耶忙未修候耳戊戌二月四日記下李承鶴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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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이광수(李光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申臘月二十一日 宗生 光秀 丙申臘月二十一日 李光秀 宗人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6년에 이광수(李光秀)가 강화도(江華島)에 있는 종인(宗人) 이건창(李建昌)께 찾아뵙지 못한 사연과 안부를 전한 간찰. 1896년 12월에 이광수(李光秀)가 강화도(江華島)에 있는 종인(宗人) 이건창(李建昌)께 찾아뵙지 못한 사연과 안부를 전한 편지이다. 편지 상단에서는 그동안 이건창 선생을 뵙지 못한 그리움과 시세(時世)에 대한 근심 등을 실었다. 지난겨울에 보낸 편지는 잘 도착했는지 묻고 강화도와 담양(潭陽)으로 서로 떨어져 2년 동안 뵙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 온 세상이 풍우(風雨)로 가득하여 애통하다는 내용, 이러한 혼란의 때에 친우들도 우려하는데 선생과 같은 대인(大人)과 군자(君子)들의 근심은 어떠하겠느냐며 그 마음을 위로한 내용이 보인다. 이어 사람의 생사가 중요하나 이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항상 선생께 배우려고 했으나 아득한 운산으로 막혀 끝내 이룰 수 없어서 날마다 조보(朝報)로만 소식을 접했다고 전했다. 또 지난 6월에 선생께서 정기(正氣)를 짊어지고 대의(大義)를 위해 송(宋)나라 정이(程頤)가 부주(涪州)로 유배를 떠나듯이 처신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처음엔 그 소식을 듣고 믿지 않았으나 지금 사변을 보니 과연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했고, 보당(葆堂) 서병수(徐丙壽)의 편지를 얻어 선생께서 유배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하였다. 이광수는 이 소식을 접하고 선생을 뵙기 위해 길을 나서려고 계획했으나 관보(官報)를 보고 선생께서 유배에 풀려나왔다는 소식을 접해 뵙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 구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96년 4월에 이건창이 해주부 관찰사(海州府觀察使)를 제수받았으나 개화파의 득세와 을미사변(乙未事變)의 처리 문제 등을 들어 상소를 올리고 극구 사양하다가 고종과 조종의 노여움을 사 고군산도(古群山島, 현재 전북 군산시 소재)로 유배되었다가 특별 사면으로 2개월 후에 풀려난 사건을 말한다. 이광수는 이건창 선생이 군산으로 유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담양에서 군산으로 찾아뵐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하기 전에 선생이 해배(解配) 되어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계속해서 이광수가 편지에서 이르기를 '선생께서 해배 된 후에 장성(長城)의 식재(植齋) 기재(奇宰) 어른께 가서 선생의 편지를 얻어 보았더니 처신하는 명백한 의리가 분명하였다'고 전했다. 더불어 선생의 편지 끝에 '가군(家君)에게 편지를 쓴다'는 말이 있었는데, 끝내 그 편지를 잃어버려 암담한 심정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편지 하단은 선생의 근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새말에 건강은 어떠하며, 두문불출하며 책을 읽으면서 묘책을 얻고 있는지, '벼슬에 나가서도 나라를 걱정하고 물러나서도 나라를 걱정한다는 말'이 선생께 해당한다고 하면서 심정을 헤아려 보기도 했다. 이어 이광수 자신의 안부를 전하기를, 본인은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시고 예전과 같이 지내고 있으나, 지난번 한 번 찾아뵌 이후로 세상이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이 변해서 책에 마음을 쏟지 못하고 있고, 지기(志氣)가 한결같이 혼란하고 태만하여 진취하는 것이 비루하다며 자신의 상황을 한탄했다. 지난번 선생께서 주신 시(詩)와 서(序), 간독(簡犢) 등 여러 편의 글은 정문일침(頂門一針)과 같이 매섭기도 하지만 사람을 아껴주는 성대한 덕이 담겼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더불어 선생을 모시고 그동안 듣지 못한 가르침을 배워 마음과 눈을 밝게 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편지 끝에는 나라를 위해 더욱 몸을 아끼시고 도(道)를 위해 보중(保重)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하며 선생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다. 이광수(1873~1953)의 호는 옥산(玉山), 자(字)는 미중(美中)이다. 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와의 사이에 외아들 혁(爀, 1898~1977)을 두었다. 노사학파의 일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0년에 경의문대(經義問對)로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로 되었으며, 계몽운동가인 양한묵(梁漢黙) 등과 교유하면서 신학문에 뜻을 두고 개화(開化)에 앞장섰다가 송사에게 파문(破門)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병합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조선 2대 왕인 정종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이며,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순절한 이시원(李是遠)의 손자이다. 자는 봉조(鳳朝), 호는 영재(寧齋), 명미당(明美堂)이다. 1866년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였다. 1874년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청(淸)나라에 가서 여러 문장가와 교유하여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강위(姜瑋) · 김택영(金澤榮) · 황현(黃玹)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충청우도 암행어사(忠淸右道暗行御史), 승지 등의 벼슬을 했으며, 1896년 해주부 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다가 고군산도로 유배되었다. 그 뒤 고향인 강화에 내려가서 서울과는 발길을 끊고 지내다가 2년 뒤에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인 저술로 ?당의통략(黨議通略)?이 있으며, 문집으로 ?명미당집(明美堂集)?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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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上書客冬上書登覽否遠乎哉沁都何天秋城何地天之涯地之角若是懸隔而聲氣之落落二秊于玆但瀰天風雨連年不絶使戴髮含齒者所可哀痛者數矣于斯時也知舊憂慮亦有之而況當時大人君子如 先生而旣蒙 厚念之澤嚮慕之誠曷嘗少弛人之存沒亦雖大矣然猶大於此者常欲往聞於 左右矣雲山千里終不得遂誠日望 朝報之如何六月聞先生負正氣處大義涪州之行又在玆省初不信然然而今事變亦未必不然二十一日得葆堂書始知果然驚惶悚蹙繼謂自幸又欲修寂寞中起居禮將治裝有日矣適自隣邑得官報而計日則蒙宥已久想必返旆故悵然停止北望叫鬱不能定情追後自長城得拜抵植齋丈書槪詳處義之明白而末端已有書於家君云竟爲浮沈益覺黯黯獲拜君子之一幅德音亦有數乎伏惟歲色薄紗氣棣軆候對時萬康杜門繙書如何作消受妙方進憂退憂正是爲先生今日語也不任區區之至宗生重省視昔伏幸而一自拜退後累經滄桑心目未嘗到於冊子邊志氣一向昏怠進就一向鄙陋難免於聖人不移之戒而猶恐爲 先生之遐棄也敢不自憐而自增往日所贈詩與序簡犢諸篇是絶絶頂針久而伏讀尤切愛人之盛德而未副萬一負負實多那當復從於下風益聞其所不聞以望其心目俱明也萬萬不能遠書可旣不備伏惟爲國加愛爲道保重丙申臘月二十一日宗生光秀上書[別紙]邦瑞兄夏間付書幷付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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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封]玉山 侍經案 長田復齋生追謝緘庸才菲質薄志陋學淺而又不得廣植交游以資切琢彫朽之益自分爲溝中之斷久矣吾兄獨以世好之故不我鄙夷簉 門之初傾蓋如舊解携未幾珠玉之 唾飛越三百里抵落於樵牧之社而副之以五七二絶詩紙上 繾綣可匊怳然復若對芝宇而奉 淸晤聞一亭畔松濤游瀝蒲坪路次野酌淋漓自顧賤分何以獲此驚先於感亦未知何以報答匪報此稽非直討便之囏也計已在包荒中矣伊后聲息敻然莫續絶不見報則輟常情也固不能以常情致訝於兄而自罪則深矣謹詢[背面]京候續承安信而侍右學履萬重惟願益自努力毋負雲藍丈丈湖南第一人之獎勸也一夜惡飈全嶺辦此大殺貿貿溝壑如眼前事憂國願年豊良有以也弟狀無足道而惟幸重省觕依耳春府丈似聞洛駕未還故闕上謝書耳 村內令族諸長老諸執友俱泰平否希寜思仲皆無見故耳會面何時臨紙於邑不宣追謝上癸巳七月卄八日弟趙鏞肅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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