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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유고(一石遺稿) 一石遺稿 一石遺稿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최병하(崔炳夏)의 시가(詩歌)와 산문(散文)을 엮어 1965년에 간행한 시문집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최병하(崔炳夏)의 시가(詩歌)와 산문(散文)을 엮어 1965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6권 2책의 석인본(石印本)이다. 최병하의 손자인 최성익(成翼)이 편집하고 간행하였다. 권말에 손자 성익의 발문이 있다. 권1∼4에는 시(詩) 722수, 권5에 기(記) 12편, 서(序) 7편, 발(跋) 1편, 제(題) 2편, 행장 2편, 비음기(碑陰記) 1편, 묘갈명(墓碣銘) 2편, 제문(祭文) 2편, 상량문(上樑文) 7편, 잡저(雜著) 2편, 권6에 부록으로 행장(行狀) 1편, 묘갈명 1편, 제문 2편, 만사(輓詞) 7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록된 글 중 주목되는 것은 "피발변입임실산중탄세연차염락운(避髮變入任實山中嘆世連次濂洛韻)"라는 제목의 시다. 이 시는 단발령(斷髮令)을 피해 전라북도 임실군의 산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탄식하며 지은 것이다. 그리고 "산당관조(山塘觀釣)"에서는 고기가 미끼를 탐하다가 잡히는 것을 보고, 벼슬을 탐하는 세상 사람을 풍자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잡저 중 "육탄(六歎)"은 우리의 고유 문화가 파괴되고 무분별한 외래문화가 유입되는 시태, 그리고 인재등용과 과거제도의 폐해 등 6가지 시폐를 지적한 글이다. 본 일석유고는 구한말의 학자인 최병하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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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家吟 我飮我泉處我堂 暮年拙計得宜當閒來倦臥身差適 興到況吟韻更長就架抽書看古迹 巡籬採菊飽寒香此閒偏愛兒孫戱 多種名花又海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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示時澤 凡爲長子者 不可出爲人後 爲父者 亦不可以長子爲人之後 禮也 噫 先世已定之事 後孫改之 實是未安 然事失其正則改之 不亦可乎 嗚呼 惟我本生高祖 但有一男 不敢違仲氏之命 繼其後而無後 心斯慽矣 盖無後而有後 雖云可也 有後而無後 不亦悲乎 汝即我之長子 當爲我後 汝之伯父 以時?立後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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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說 性固是天命 而卽心之理也 湯誥曰 惟皇上帝 降哀于下民 若有恆性 子思子曰 天命之謂性 盖命是天之所賦 底性即仁義禮智信 而無所不善者也 所謂哀 亦人之所禀底 即仁義禮智信之性 而與心俱生者也 且字樣從心從生 而心爲體 蓋該載於心而純粹至善 未嘗有惡 然但爲氣禀所拘 物欲所蔽 則或有時而不善 惟其本體之善 則亦不改頭幻面 故君子學問思辨 明其固有之善 而變革其氣禀物欲 以復其性初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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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笏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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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祭笏 【❍ 沙溪曰 設位而無主 則先降後參 墓祭亦然 家禮先參後降 未知其意 要設墓祭 先降後參 恐爲得也 便覽 亦在此說 先師云 墓祭 是體魄所在 宜先參 不可以無主後參 當從家禮 恐此似爲正也】獻官【首獻】以下 西上序立【序以行爲主】 再拜參神❍ 行降神禮❍ 首獻 盥手 升詣香案前 跪❍ 執事 各奉香 奉爐❍ 獻官 焚香再拜 少退 立❍ 執事 取【東階卓上】盞盤 立于獻官之左❍ 執事 執酒注 立于獻官之右❍ 獻官 跪❍ 執事 奉盞盤 跪進獻官❍ 獻官 受之❍ 執事 執注 跪斟酒于盞❍ 獻官 左手執盤 右手執盏 灌于階下5) 以盞盤 授之執事❍ 俛伏興 再拜 少6)退立❍ 行初獻禮【粟谷曰 初獻 扱匙正筋 按初獻時 三祭于階下 亞終獻 皆亦然】❍ 首獻 盥手 升詣香案前 北向立❍ 執事 執注 立于獻官之右❍ 獻官 奉考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考位前❍ 次奉妣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妣位前 俛伏興 少退立【執事 盛肝炙奠于魚肉之閒】❍ 執事 啓飯盖 扱匙正筋【扱匙子飯中正筋于楪上】❍ 獻官以下 皆跪7)❍ 祝 詣獻官之左 東向跪 讀祝❍ 讀祝❍ 畢 皆興❍ 祝 降復位❍ 獻官 再拜❍ 退復位❍ 執事 以他器 撤考妣位盞酒 置盞于故處❍ 行亞獻禮❍ 亞獻 盥手 升詣香案前 北向立❍ 執事 執注 立于獻官之右❍ 獻官 奉考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故處❍ 次奉妣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故處 俛伏興 再拜❍ 退復位【進肉炙】❍ 執事 以他器 撤8)考她位盞酒 置盞子故處❍ 行終獻禮❍ 終獻 盥手 升詣香案前 北向立❍ 執事 執注 立于獻官之右❍ 獻官 奉考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故處❍ 次奉妣位盞盤 東向立❍ 執事 西向 斟酒❍ 獻官 奉奠于故處 俛伏興再拜❍ 退復位【進魚炙】❍ 獻官以下 俯伏 少許❍ 皆興❍ 執事 撤9)羹進水❍ 少頃❍ 執事 下匙筋 闔飯盖❍ 献官以下 再拜 辭神❍ 祝 焚祝文❍ 執事 監撤10) "三祭"는 단어는 나중에 누군가가 써넣은 것이다. "少"는 단어는 나중에 누군가가 써넣은 것이다. 이 내용은 원래 아래의 "祝 詣獻官之左 東向跪 讀祝" 다음에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누군가 "當書于祝詣上"이라고 써넣은 부분이 있어 이를 따랐다. 정서본에는 "徹"로 되어 있으나 이는 "撤"의 誤字로 판단되어 바로 잡았다. 정서본에는 "徹"로 되어 있으나 이는 "撤"의 誤字로 판단되어 바로 잡았다. 정서본에는 "徹"로 되어 있으나 이는 "撤"의 誤字로 판단되어 바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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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文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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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土地 祝文式 維年號幾年 歲次干支 幾月干支朔 幾日干支 某官姓名 敢照告于土地之神 某【首獻】 恭修歲事于某親某官府君【或某封 某氏 卑幼 去府君二字】之墓 維時保佑 實賴神休 敢以酒饌 敬伸奠獻尚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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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章 精毅平生實踐形 古家文獻不虛名百年歸後多餘慶 應使蕞蘭萬世榮高興 柳挺一萬疊逢壺毓氣靈 碩人存沒摠由靈可憐石佛一坏土 不埯先生精毅靈高興 柳興善惟一惟精强且毅 心常顧諟篤言行木里間雲高士處 不求聞達自含章光山 金永憲溫溫德性是天眞 行蹟何斯孝且仁手澤存書難讀子 心懷著筆易知人百世高風山水綠 一生固節柏松新曾年落在塵間士 去作今朝上帝臣瑞興 金在鉉人間行樂七旬餘 絃絶琴床淚滿裾風尙寬和公自若 躬修恭儉孰能如裕後克戒文學業 奉先僻置義田廬天堂或問平生事 世債了來莫過余竹山 安鳳輝伎心炳德老於是 晩歲令交上友疇慕得前賢能賦恕 受藏遺訓幸齊修年將大耋云阿攞 行聞一鄕合佼婁忍挩白箋臨紫界 薤歌疎雨暮山陬平康 蔡東夏惟公單訣毅而精 鑽仰臼山期畢生老且嗜書因體泰 貧猶樂道卽心平混中誰識全瑜美 寒後方看古栢貞當日補仁吾敢負 不辭執弗引前程然無憾歸仙路白 雲歸今成乎古歸同門後學 平康 蔡東建40)天步艱難道理窮41) 又喪南國毅齋翁閑聖淑民功未就 遽然齎志黃壤中同門後學 耽羅 高東是師生重誼可相同42) 聞訃當時恨不窮處世無關榮辱事 居家有遺學行風非徒德業傳孫後 自是衣冠守我東一曲哀詞先痛哭 蒼凉遠樹夕暉紅金海 金鍾炳憶昔追陪杖屨遊 鷄山空自白雲留飄然仙敍歸公道 痛矣遐齡感海篈蘭禧蕙情蒙蔭地 金昆玉或繼箕裘靈輀旣駕薤歌訣 往跡悽凉落月秋43)全州 李起胤十室從容穆尙村 鄕隣宗族吊靈魂庭學應無墻面立 家齊曾以道心存壽過古稀仁可必 躬行今是德何論吾東儒業誰能繼 愁雲慘月寂斯門驪陽 陳榮錫齋高精穀隱名聲 訓誥淳淳每有情仁壽延長天定數 道源遠達世眞淸悲雲散合牛眼處 爽魄降昇鶴駕城追憶從師如昨日 輀歌一曲各幽明金海 金秉斗賢士吾鄕有一人 終無好惡善持身簡寬處世宜惇族 誠敬根天克孝親年至八旬仁必壽 心存三樂德爲隣薤露南山松柏下 風悲雲慘淚沾巾族姪 廷基非仁莫壽壽應仁 今日乃知享福人蹤跡疑隨蓬海棹 靈魂必伴赤松隣誘掖盡心誠敦族 送終竭力克思親一幅丹旌歸去路 後生孰不淚盈巾族姪 彩基精毅先生毓海東 獨存今日儒家風心靈常守公明上 事業不離道理中衆孫克肖能承祖 三子惟賢了債翁疑難問答從何受 却使後生泣不窮族姪 碩基蓬海神靈降此仁 生來率性自天眞持心堅固成儒業 處世安間種德隣凄音切切寒琴曲 和氣瀜瀜寶樹春邈矣儀容今永訣 斜陽故路淚沾巾族叔 東述自天降矣亦順天 遐福尤稱八耋年胎厥嘉猷安素履 受其遺訓保靑氈龜頭靈跡雲林下 鶴背仙緣玉宇邊寶樹香蘭永訣路 護從孰不轉澘然族姪 順基忽聞音訃覺斯眞 八十光陰玉洞春明訓家庭書月郞 處仁鄕里士風新功名可惜靑年日 公道其何白髮辰蒼翠森松先壠下 輀歌數曲淚沾巾族姪 坤基精毅攸齋有是賢 安知虎逝遇今年賓筵讓揖儀文備 丈席据衣道鉢傳茁蘭庭下長留馥 鳴瑟堂中持拂絃後生從比誰承誨 感望泉臺淚自漣族姪 賢基白髮平安八十翁 終身不在是非中繞院菊松君子趣 滿庭詩禮古家風萬死常存心穀直 一生何患運窮通爲公今日誰無涕 雲不靈東出祖東族姪 灒基堂堂事業學先賢 德冠鄕隣性本天頂針敎訓終難繼 薤露斜陽涕淚漣族弟 炳梓先生文與德 曾聞海中州宦榮已斷絶 經術老無休能繼先人跡 不懈後學求一夕謦咳遠 木中春色幽千里承訃晩 入門餘恨悠族孫 邦宇公之在世七十七歲 其受氣也 固是厚 其持養 亦不苟 中身以後 親有道存乎中者可謂醇 如著於外者 亦見燦然 此所以壽躋隆耋 又爲鄕黨之所稱頌 天以淸貧 享其一生 而庸玉其成 又錫以嘉子秀孫 不匱其後 玄宰之厚 於公異乎人者 遠矣 嗚呼 吾於公 非特族誼之親 其受薰炙 亦多 敢述數行 以勖引紼族孫 鍾貴可惜文章一代師 忽聞襄禮使人悲孤魂瀛海雲歸處 往跡禴齋月上時子姪滿堂傳後事 圖書掛壁遠前期丹旌遙指泉臺路 涕淚漣漣日影遲族孫 鍾澤憶昔先生尙德仁 應知仙窟降情神寬心鍾地能敦族 眞性率天克孝親餘壽終敎賢閤享 遺訓盡屬渾家陳如斯處世如斯逝 寶樹庭前萬歲春靑松 沈宜奎天奪毅翁道益窮 殆如昏夜老須逢身任繼開功未遂 空齎遺恨九原中族孫 仁洙聞道平生性率眞 艮門高足乃如人精徵經旨須深頤 毅訥文辭庶近仁床瑟偕嗚期百年 庭蘭交翠帶三春村閭敎訓鄕黨譽 追慕當年若見親耽津 安東觀純古匪今精毅翁 惟中執得一心公仁從實地開安宅 孝是根天養美風胡爾奪斯君子速 飄然遊彼帝鄕同後生何處尋紗帳 哀淚春阡恨未窮同門後學 商山 金秉植 이 만사의 내용에도 수정 흔적이 많다. 추가 확인이 필요할 듯하다. 정서본을 보면 "難"과 "道" 사이에 "吾"를 넣으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오류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하면 글자의 수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文脈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서본을 보면 "師生重誼可"에 대해 "刪"이라는 표식이 있다. 지우라는 의미일텐데 그러면 글자 수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일단 지우지 않았다. 이 만사에 대해 "刪"이라는 표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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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精毅齋遺稿 有感 漢植嘗謂 爲詩與爲文 皆在知要而務實 何如矣 今讀精毅齋李先生遺稿 誠所謂知要而務實者也 先生以忠厚慷慨之資 濟仁義道德之學 發於詩 著於文者 多愛國憂道之語 若使後之人讀此稿而有所感發與起焉則 有功於斯文 世敎者 豈尠少也哉 於是乎 書以寓景仰之思云爾同門後學 全州 崔漢植 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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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公諱驥魯 字德夫 李氏系出瀛州 以髙麗文憲公諱敬祖爲始祖 以本朝執義 爲莊陵自靖者諱伯膽爲中祖 執義子錫祉司直 以剛直 見重於世 司直子長孫郡守 郡守子壹進士 生雲齡 才行薦授參奉 生僉知承宗 亦以行義稱 三傳而至小心齋克守 師事尤菴宋先生 先生亟稱其實學 是爲公六世 曰長春 曰崇 曰鎭燁 小心子孫曾 連世文行 祖萬祿 孝聞表宅 考東益 號直齋 勤儉孝友 妣扶寧金氏奉珏女 公以哲廟辛亥五月三日生 幼而端莊 異凡兒 稍長 深重寡黙 書籍之外 無他好 始學於三從叔山塢公東顯 復從其子南罔公泰魯講磨 弱冠前 已立根基矣 事親 以養志爲主 奉二兄 怡怡如也 丙寅丁母憂 情禮俱盡 戊子丁外艱 家貧年凶 送終儉薄 以此爲終身恨 間一日拜兩親墓 不以老而少弛 教誨族子鄉少 不問聰鈍 誠心導率 視爲己任而不憚勞 性眞率 不飾邊幅 平居無疾言遽色 無親疎貴賤 皆接以和顔 然有不正者 心惡而疎之 見人語及時政得失人物長短則 嘿不酬答 貧益甚 屢至絶火 堅坐看書 并不許家人稱貸曰 與其逋人財而爲不義之生 無寧守吾本分而死 常戒其子曰 人之居家 自有無限好道理 須是從勤 謹中做去 及世道一敗 宗國幾危 邪說愈恣 以寒後二字 扁其堂 盖以歲寒松柏自期也 乙已歲 艮齋田先生之南駕也 納贄行弟子禮 就正所學 先生以精毅齋錫號 於是老成德聖 爲同門所推 時仁說多歧 先生每深慮焉 公集合孔孟言仁諸說 并作一篇 名曰 洙泗言仁錄 使讀者知 所自究而不事紛爭 盖倣南軒所編而因舊名也 座揭要切之言 爲警省之資 庭列羣芳之物 爲養心之需 皆昔賢銘訂頑觀庭草之意也 疾俗輩謀利之酷 憫殘民保生之艱 每對人以仁義道德之說 反覆曉告 此又仁人君子回淳反朴之志也 公之爲學 專用心於內 故著於文辭者 少 其發爲五七言咏嘆者 較多 而要皆愛國憂道忠憤惻恒之辭 其亦變雅之遺調歟 自丙寅臘月 寢疾 翌年正月妄間 令辦喪具 至二十五日 謂其子曰 今日吾符到期也 屏婦女著新衣 要命以歛襲營葬之節 果以是日卒 享年七十七 葬于扶安郡下西面書堂洞丁坐原 從先兆也 配義城金氏璜載女 無育 繼配高興柳氏燠奎女 有婦德 克配君子 三男 時澤 時寬 時?出系仲父 三女 義城金鏞采 淳昌薛載澤14) 延安李東寧 時澤 娶扶寧金淵述女 四男 鍾珍 鍾熺 源鍾 僩鍾15) 時寬娶全州李容馥女 一男鍾奎 時?娶密陽朴亨圭女 五男 鍾培 鍾現 鍾祥 鍾然 鍾16) 金壻男 升洛17) 臻洛 宗洛18) 薛壻男 啓錄19) 李壻男 義鉉 嗚呼 跡公心行 洵淳古清厚外柔内剛人也 盖公得資質之美 襲先德之懿 固有事半功倍之易 然非有闇然自修到老穼篤之工 何以至此 謂公厚善有餘 明剛不足者 乃嚴師敎人之過慮 或者認爲實際定論則 失之矣 余嘗謁公於木上里庄也 公喜曰 不意子之訪我 我無文 故士多過而不入 子有文而顧訪我耶 此雖公自謙語 實病世之以文取人也 噫 是亦可以見公之所尙也 時澤 以公家狀一通 來示余曰 此吾族鍾坤君撰也 而有失於太畧 子其重爲備述也 余惟爲公同門二十年 知公固悉矣 且曾爲公作寒後堂記 贊服其所操 今於狀德之役 何敢固辭而不卒誠也 顧微顯闡幽 古之道也 故表章公之内剛有不負田先生精毅之錫者 用告夫世之淺知公者云爾歲在庚午三月下旬日 扶寧 金澤述撰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仁鎬"로 썼다가 이를 지우고 "載澤"으로 쓴 흔적이 있다. 네 아들 중 "源鍾"과 "僩鍾"의 이름은 별도의 종이를 이용하여 추가로 써넣은 것이다. 時?의 다섯 아들의 이름은 별도의 종이를 이용하여 추가로 써넣은 것이다. 다만 다섯 번째 아들의 이름은 정확히 기재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원래는 "鼎洛"으로 적었다가 "升洛"으로 바꾼 흔적이 있다. 원래는 "元洛"으로 적었다가 "宗洛"으로 바꾼 흔적이 있다. 원래는 "永泰"으로 적었다가 "啓錄"으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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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21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정쇠(丁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元年辛巳十二月初二日 李生員宅奴 丁金 道光元年辛巳十二月初二日 李生員宅奴 丁金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1년(순조 21) 12월 2일에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정쇠(丁金)가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택천동(宅泉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1년(순조 21) 12월 2일에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정쇠(丁金)가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택천동(宅泉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생원댁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다면서 택천동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4마지기 3작(作)을 판다는 뜻의 위임장, 즉 패지(牌旨)를 정쇠에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정쇠는 이를 근거로 매입자에게 이 논을 시가(時價)대로 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논의 문서에 붙어 있으므로 매입자에게 건네주지 못했다. 나중에 혹시 이 논을 두고 다툼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생원댁노 정쇠와 증필(證筆)로 서유록(徐有祿)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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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경진년(庚辰年) 정읍(井邑) 여산송씨(礪山宋氏) 종회(宗會) 설유서(說諭書)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庚辰九月十七日 宋氏宗會 庚辰九月十七日 礪山宋氏宗會 전북 정읍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경진년(庚辰年) 9월 17일에 정읍(井邑)의 여산송씨(礪山宋氏) 종회(宗會)에서 결의된 설유서(說諭書). 경진년(庚辰年) 9월 17일에 정읍(井邑)의 여산송씨(礪山宋氏) 종회(宗會)에서 결의된 설유서(說諭書)이다. 천애산(天涯山)에 있는 선산(先山)의 관리와 관련하여 종회(宗會)에서 결의된 사항을 기록한 문서이다. 선산의 일부를 사점(私占)한 건, 종토에 대한 수세(收稅), 송추(松楸)에 대한 조사, 문임(門任) 선임, 산직(山直) 교체 등 여러 안건이 종회에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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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농사지을 시기에 소를 잃어 말을 팔아 소를 사들이고서 장난삼아 절구 한 수를 짓다 臨農失牛。賣馬買牛。戲成一絶。 젊은 시절의 간담(肝膽) 몹시도 어리석고 광망하니마구간의 발 빠른 명마53)처럼 사방에 뜻을 두었네오늘 너를 팔고 다시 송아지를 샀으니이제부터 곧장 농장에서 늙어가고자 하네 少年肝膽太愚狂櫪上風驃志四方今日賣渠還買犢從玆便欲老農庄 발 빠른 명마 원문은 '풍표(風驃)'로, 곧 '추풍표(追風驃)'의 준말이다. '추풍(追風)'은 '바람을 뒤쫓는다'는 뜻으로 명마를 의미하며, 옛날 준마(駿馬)의 이름이기도 하다. 두보의 시 〈도보귀행(徒步歸行)〉에, "처자가 산중에서 하늘 보고 통곡하고 있으니, 공의 마굿간에 있는 추풍표가 필요하외다.[妻子山中哭向天 須公櫪上追風驃]"라 한 대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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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새벽 생각 曉思 원기(元氣) 흘러넘치고 이슬이 하늘을 적시니흰 구름 날다가 무거워서 바위 가에 기대 있네세상 사람들 아직 연정에 끌린 꿈54)에 매여 있으니오직 새벽닭만이 번갈아 울면서 새벽을 전하네두 번째이슬 기운 쌀쌀하고 천지는 텅 비었으니산천 드넓어 은은한 바람 일으키네누가 내 마음의 곡절을 알아줄까아득한 대해(大海) 동쪽에 홀로 서 있네 元氣淋漓露濕天白雲飛重倚巖邊世人尙緣牽情夢惟有晨鷄迭唱傳其二露氣凄凄天地空山川虛曠起微風何人識得吾心曲獨立茫茫大海東 연정에 끌린 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꾸는 속된 꿈을 말한다. 당나라 온정균(溫庭筠)의 〈효선요(曉仙謠)〉에, "안개가 어지러운 속세의 수많은 집을 뒤덮으니 세상 사람들 아직도 연정에 이끌린 꿈꾸고 있네.[霧蓋狂塵億兆家 世人猶作牽情夢]"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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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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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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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遊春曲 【凡人生而內無賢父兄外無嚴師友而能有成人者 鮮矣】 孌女遊春風 羅裳曳綠草自言出采桑 直向城南道年方二八餘 姿質亦云好敎導則成人 家無舅姑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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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瀛州李氏世系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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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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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卷之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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