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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艮齋先生 【癸卯】 羣彦之進於門下者 扶風惟多而德聞之洋洋 不啻雷灌 只緣貧病纒迫 未得一致身於門屏 以承謦欬 風夜自訟 莫知攸措 何幸族孫鍾坤 有志於學問 今進尊階 伏乞 特垂仁慈 湥加警策 以免馬牛襟裾 則鄙門之幸 孰加於此哉 惟門下垂燭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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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艮齋先生 【甲辰】 道體貞泰 慕仰區區 驥魯素學空疏 未嘗不欲勵志劬書 以收桑楡之餘光 然有意未遂 慚靦何言 先墓下丙舍 己保三百年之久 而迄今闕大人君子不朽之迹 心常欫然 伏乞先生 特賜齋號與記文 使此空山權室 賁然生光 則一門受賜 亦多矣 敢瀆尊聽 惶恐無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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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艮齋先生 【丁未】 顧此昏黑世界 履霜堅冰已極 士當明春秋大義 撥亂反正 可也 然非惟才勇不足 只是窮而在下 雖欲奮起 勢所末田也 潛處林盧 俯讀仰思 粗窺一箇道理曰 但當抱經遯迹 忍痛自靖 雖枯死溝壑 甘受母悔 是也 淺見似此 未知如何 餘伏望體仁衛道 以慰天下之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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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家兒 禮 凡有吉凶 必告祠堂 事死之禮也 凡有大小 必告父母 事生之禮也 記昔松谷 邊進士某之子弟 凡事必告其親 惟命是從 故令名無窮焉 今見族姪碩基 凡事必告其重聽之老親 一無所違 不亦孝孚 此皆母自欺 不欺親之至意也 汝曹 亦常體行 勿使此二人專美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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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艮齋先生 【己酉】 伏得下賜 爲仁說數殷 奉讀再三 不覺心目俱開 有此牖昏之賜 而至有切實體行 以爲師弟偕進之敎 感舊幷極 繼以涕淚 盖仁者 是人心之全德也 純然天理 而無一毫人欲之雜 及其流行也 無一息閒 斷無一物不存 卽天下之正理也 然則兼該萬善 眼前道理 無非這箇氣脈 而其爲道也 至大至廣 苟非專心體之而不息不倦者 未可有爲矣 伏念 小子志氣昏惰 其於居敬窮理致知力行 恐不能承當而似負先生敎誨之慇切 惶恐無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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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汝克【淵述 甲辰】 毎承德音 常切高山仰止之思 不鄙寒微 曲賜連楣之誼 私分之感 罔有涯涘 卽伏承寵圅 奉玩辭意 卽吉日之告期也 究諸時情 果無所碍 而事貴乎速成 雖曰 凡百促迫 敢不嘉命承奉 令胤親事 亦在同月云 在弟栢悅之欣 曷有涯涘哉 先以貢賀 繼以蹈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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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戚弟李季潤 【喜璡】 緬惟學 况清和矣 入山後 久不相見 懸念何言 高明以美資粹質 專心劬書 日從賢師友 講求好道理 操持之 玩索之 宜乎知識不期高明而自然高明 胷次不期快豁而自然怶豁 况迢遥盤桓於内藏佳山好水中 俗累自絶 心地光明矣 而且夫閒雲舒卷 而天光呈露綠陰蒲庭 而禽聲上下恁地 仁智之樂 有不能自己者矣 仰羨仰羨 只恨不得與賢同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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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從甥金輔吉【鵬基】 尊先妣除喪前 擬以一造酹靈爲計 老者 事終未果 而漠然若不相知 是豈情禮乎 義理乎 悠悠此恨 無時可己耳 料外 不以爲鄙而遠送胤兒 兼施惠墨 欣慰罔喩 而矧審棣體湛樂 眷節平迪者乎 拙狀無足提喩 而但賤齒洽滿七旬 無他所求 而只待就木之日而己耳 所託教訓令胤 是何等重事而欲委之於老醜耶 余素學識空踈 非惟無敎人之術 亦威儀不攝 不可勘居師長之位也 且賢師立立於黃卷中 人若不求耳 如求之 無處不在 不必他求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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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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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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示家兒 人子居家 有無限好道理 須是從勤謹儉畧 中做去底 是也 夙興夜寐 靜省動察 做我所當爲底 而不爲過分之事 則心常舒泰 而事事中節 若怠惰華靡 廢墮典常 則身陷坑塹 而百事瓦解 可不懼哉 故朱夫子每訓子弟 提出此勤謹儉畧四字 而丁寧警戒 其義深矣 吾亦於汝輩云爾 勿以余言而忽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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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安友【秉榮】梧亭韻 嶧陽孤本種亭前 企待材成計十年栽培宜彼林塘士 生長任諸雨露天高枝麗景雲霄聳 大葉淸光霽月圓安分主翁多所樂 客來自遠設詩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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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蔡友東夏枕泉亭韻 【二首】 居幽地接排風城 枕下泉冽累緖晴可灌瑞苗興野色 能添流水作溪聲飮來渴吻因消暑 滌去煩襟更洽情縹緲茅亭淸意味 主翁知得樂平生地是水盤背土城 此閒泉出累塵晴不息長流源是活 無心泛聽混無聲松柏陰成聊可愛 芙蓉花發亦多情主翁淸趣誰能識 一代平安一老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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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木 【用朱子詩牙字】 古木枝枝交錯牙 春來偃蹇不須花形疑華柱時過鶴 影似彎弓自劫鴉江雪斜陽寒骨瘦 谷風暮雨老龍嗟世閒頑固無如爾 莫向千紅萬紫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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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銘 艮齋先生門 四方賢士 出入多矣 而簡重寡黙 樂善務實如處士者 盖鮮矣 處士姓李 諱驥魯 字德夫 精毅齋 先生所賜號 瀛州人也 始祖文憲公諱敬祖 入我朝 執義諱伯瞻 光廟初 棄官自靖 八傳 至諱克守 號小心齋 師尤菴宋先生 學識爲當世推重 高祖諱崇 曾祖諱鎭燁 祖諱萬綠 以孝蒙旌 詳載奇蘆沙墓碣文 考諱東益號直齋 天分質直 事親奉兄 俱竭其誠 妣扶寧金氏奉珏女 有閨範 公生于扶安郡乾先面木上里第 幼而異群兒 長而淡靜遂古 身不離經籍 心不懈開蒙 峨冠博帶 實古人之風儀 簡言質行 非世人之儔擬 晩師艮翁 正其趨向 爲儒門之宿德 世値百六之運 高揭寒後二字而自靖 世稱敦艮君子也 事親能順志 奉兄能怡怡 至於族戚 一以敦和爲主 敎後學誠勤爲先 集合先賢仁說 以質於先生 吟詠風物 以寓感懷 一日 命其家人曰 今吾歸日 勿近婦女 更着新衣 悠然而32)逝 卽丁卯正月二十五日也 葬于同郡下西面書堂洞先塋下負丁原 配義城金氏璜載女 無育 配高興柳氏容33)奎女 婦德純備 能配君子 生三男三女 時澤 時寬 時{金+憲}出繼仲父 女義城金鏞采 淳昌薛載澤34) 延安李東寧 孫35) 鍾珍 鍾熺 源鍾 僩鍾 長房出鍾奎 次房出 鍾琣 鍾現 鍾祥 鍾黙 鍾錫 過房出 外孫 升洛36) 臻洛 宗洛37) 金出啓錄38) 薛出義鉉 李出也39) 時澤 克守家庭 承訓師門 謂有世誼 託我以誌 不敢固辭 遂爲之 銘曰瀛州之南 處士古宅書堂吉麓 處士幽室上事賢師 下開後學務實落華 所集仁說寒後二字 高揭堂額趨庭三龍 能紹舊業蓬萊仙鄕 陟降彷彿癸酉端午日 長興高濟奎撰 "而"는 정서본이 완성된 후 누군가가 써넣은 것이다. 정서본을 보면 "煥"을 "容"으로 고친 흔적이 있다.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薛仁鎬"로 되어 있었으나 나중에 "薛載澤"으로 수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손자에 관한 내용에는 수정된 부분이 많다.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鼎洛"으로 적었다가 나중에 "升洛"으로 바꾼 것으로 되어 있다.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元洛"으로 적었다가 나중에 "宗洛"으로 바꾼 것으로 되어 있다. 정서본을 보면 원래는 "永泰"泰으로 적었다가 나중에 "啓錄"으로 바꾼 것으로 되어 있다. "義鉉"과 "李出"은 정서본이 완성된 후 누군가가 써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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約社巖 屈曲穿林逕 古來約社奇頑巖開窟宅 雄峽繞家基傍有靈泉冽 洗心自適宜南通無限景 擧眼快襟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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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4년 신경중(辛敬重)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三年甲戌十月十五日 辛敬重 同治十三年甲戌十月十五日 辛敬重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4년(고종 11) 10월 15일에 유학(幼學) 신경중(辛敬重)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澤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4년(고종 11) 10월 15일에 유학(幼學) 신경중(辛敬重)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澤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경중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동도면 택상동(澤上洞) 전평(前坪)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8두락지, 부수(負數)로 18복 1속이 되는 곳과 시장(柴場) 20동락을 19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기와 구문기를 매입자에게 함께 건네주었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경중과 증인(證人)으로 유학 김이중(金利仲)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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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19년 이양순(李養淳)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二十四年己卯十二月初五日 李養淳 嘉慶二十四年己卯十二月初五日 李養淳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19년(순조 19) 12월 5일에 유학(幼學) 이양순(李養淳)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19년(순조 19) 12월 5일에 유학(幼學) 이양순(李養淳)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양순은 다른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선대로부터 자기 몫으로 물려받은 동도면 택상동(擇上洞)의 전평(前坪)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4마지기, 부수(負數)로는 7복이 되는 곳을 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논의 문기에 붙어 있으므로 매입자에게 건네주지 못했다.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양순과 증필(證筆)로 유학 전복휴(田福休)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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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을사년(乙巳年) 견문록(見聞錄) 乙巳年 見聞錄 고서-사부-전기류 개인-생활-일기 乙巳 乙巳 1965 南原 全州李氏家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을사년(乙巳年)과 병오년(丙午年) 중춘(仲春)에 남원(南原)의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작성한 견문록(見聞錄) 을사년(乙巳年)과 병오년(丙午年) 중춘(仲春)에 남원(南原)의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작성한 견문록(見聞錄)이다. 지질(紙質)이나 글씨로 보아 을사년은 1965년을, 병오년은 1966년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표지를 보면 임오산방(林悟山房)이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이는 본 견문록을 쓴 사람의 호(號)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임오산방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견문록(見聞錄)이란 일반적으로 여행 등의 과정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적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견문록이라면 본인의 저작을 수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지만 본 전주이씨가 견문록은 그와 조금 다르다. 임오산방의 작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옮겨 적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서에 실린 "퇴계금강산운(退溪金剛山韻)", "송시인영차 의재허백련설(宋詩人詠茶 毅齋許百鍊說)", "한석봉금산시(韓石峯金剛詩)", "송우암금강시(宋尤庵金剛詩)", " 매월당한계사운(梅月堂寒溪寺韻)", "영조시시인월암李匡呂(英祖時詩人月岩李匡呂)", " 순시시(李純信詩)" 등의 시들은 당연히 임오산방의 작품이 아니다. 임오산방은 위 시들을 일고 나름대로 기록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듯하다. 그런가하면 임오산방에는 역사적 인물에 관한 간단한 이력을 정리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운곡 원천석 자자정 원주인(耘谷 元天錫 字子正 原主人)", "박팽년 자인수 호취금헌(朴彭年 字仁叟 號醉琴軒)"이라고 한 부분이 그러한 예인데, 이런 예는 많이 있다. 본 견문록은 1960년대 지방 양반들의 관심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판단된다. 전체 분량은 표지를 제외하고 21장 42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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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실기(松菴實記) 松菴實記 松菴實記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시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송암(松菴) 박문수(朴門壽)의 문집 본 송암실기(松菴實記)는 박문수(朴門壽)의 문집이다. 송암은 박문수(朴門壽)의 호이다. 국한문혼용체(國漢文混用體)이며, 3권 1책의 단권(單卷)이다. 1967년에 연활자(沿活字)로 간행한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 인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출판기(出版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책 말미(末尾)에 나오는 발문을 통하여 출판 시기를 알 수가 있다. 발문은 박문수의 후손인 박중식(박仲植)이 썼다. 말미를 보면 "세재정미원월하한 후손중식근식(歲在丁未元月下澣 後孫仲植謹識)"라고 나온다. 박문수는 본관이 죽산(竹山)이었는데, 죽산박씨의 시조가 바로 박문수였다. 박문수는 고려 말에 우의정(右議政)을 지낸 인물로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고려 왕조의 신하로서 절개를 지켰다. 오늘날 남원의 수지면(水旨面) 호곡리(好谷里)에 사는 홈실박씨들이 바로 이 박문수의 후손들이다. 그런데 박문수의 문집인 송암실기는 이미 두 차례나 발간된 적이 있었다. 첫 번째의 것은 1856년(철종 7) 목활자본(木活字本) 3권 1책으로, 이 책의 서문은 송래희(宋來熙)가 섰고, 발문은 오희상(吳熙常)이 썼다. 그러다가 1907년에 박주현(朴周鉉)의 발문을 붙여 다시 한 번 간행하였는데, 1907년본도 목활자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1967년에 와서 연활자본으로 다시 한 번 송암실기를 펴내게 된 것이다. 책의 내용은 전혀 바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연활자본 송암실기의 표지 뒷 장을 모면 "백세풍송(百世風聲)"이라고 하는 네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데, 이는 송암실기의 주인공 박문수의 명성이 백 세 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는 후손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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