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사군(尹使君)137)【종지(宗之)】가 부쳐온 시에 차운하다 酬尹使君【宗之】寄詩韻 언덕가의 서리 맞은 대나무 골짜기에 자란 난초집 두른 푸른 소나무 세한(歲寒)에 늙었구나138)세 달 동안 문 닫고 지내느라 찾아오는 이139) 없었는데소부(召父)140)가 보내준 평안하다는 소식 기쁜 마음으로 듣네 岸邊霜竹谷中蘭繞屋靑松老歲寒三月閉門無剝啄喜聞召父報平安 윤 사군(尹使君) 윤종지(尹宗之, 1597~?)를 가리킨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임종(林宗), 호는 백봉(白篷), 자호(自號)는 송월정(松月亭)·소수주인(小睡主人)이다. 161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大科)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호란 때 난리를 만나 영남으로 피신, 유리(流離)생활을 하다가 효종 즉위년에 다시 음직(蔭職)에 발탁되어 남평 현감(南平縣監), 곡산 군수(谷山郡守), 대구 부사(大邱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푸른……늙었구나 소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논어》 〈자한(子罕)〉에, "날씨가 추운 뒤에야 송백이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찾아오는 이 원문은 '박탁(剝啄)'이다. 손님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당나라의 한유(韓愈)의 〈박탁행(剝啄行)〉에, "쾅쾅 대문을 두드리니, 손님이 문에 이르렀네.[剝剝啄啄 有客至門]"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소부(召父) 윤종지(尹宗之)를 소부에 비긴 것이다. 소부는 한(漢)나라 때 사람 소신신(召信臣)을 말하는데, 남양 태수(南陽太守)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서 백성으로부터 '소부(召父)'라 불렸다. 《漢書 召信臣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