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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昔年種一梧。枝葉自根發。何時屋價增。霽後三更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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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農談因野聞。詩話待君至。古來一要訣。難與時人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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偶吟 山翁還有事。時步曲欄上。閒中看綱目。千載發遐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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偶吟 閒中觀物理。榮悴不同時。忽聽三更雨。便成小逕泥。梅子應和鼎。竹孫却護籬。伊來多慷慨。把筆賦新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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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七言四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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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挽閔君鬥斗南【一鎬】 君承湛老業。爽氣此中留。筆法雲霞起。詩名花鳥愁。松䲧塢閒日月。棐幾几講春秋。失我平生友。悽風淚下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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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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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906년 남원(南原) 전주이씨(全州李氏) 모인(某人)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午正月 日 城主 丙午正月 日 南原 全州李氏 族人 南原郡守 전북 남원시 4.0*4.0 2개(적색, 정방형), 2.5*2.5 1개(적색, 정방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06년 1월에 남원(南原)에 사는 전주이씨(全州李氏) 문중의 모인(某人)이 남원군수(南原郡守)에게 올린 소지(所志). 1906년 1월에 남원(南原)에 사는 전주이씨(全州李氏) 문중의 모인(某人)이 남원군수(南原郡守)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호포(戶布)를 줄여 달라고 작년에 이미 호소하였으나 마땅히 줄여주어야 하는 데도 줄여주지 않으니 자신만 조정의 은전(恩典)을 입지 못한 것이라며 억울한 마음에 다시 호소하니, 호색(戶色)에게 제사(題辭)를 내리고 방장(坊長)에게 명령을 내려 줄여 달라고 하였다. 이에 1월 17일 남원군수(南原郡守)는 호포색리와 방장에게 '이전 관(官)의 전령이 있으니 신칙하여 시행하라'고 제사(題辭)를 내렸다. 문서에 작성연대가 병오년으로만 나오지만, 남원의 수령이 현감이 아니라 군수로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1906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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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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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22년 정창균(丁昌均)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十一年 丁昌均 大正十一年 丁昌均 전북 남원시 [印] 3개 1.0*1.0 3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22년 7월 21일에 정창균(丁昌均)이 작성한 계약서 1922년 7월 21일 정창균(丁昌均)이 작성한 계약서(契約書)이다. 계약 상대방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정창균이라는 이름도 사실은 도장을 보고 확인한 내용이다. 계약서 상에는 그저 정(丁)이라는 성씨만 적혀 있다. 계약서를 쓰면서,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계약서를 쓰는 당사자의 이름도 정확하게 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대만해도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끼지의 서류는 그저 위와 같은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작성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다. 정창균이 본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 이유는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백미(白米) 3두(斗)를 빌리는 일 때문이었다. 이 계약서를 쓸 당시 정창균의 처지는, 정말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곤궁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아무튼 정창균은 백미 3두를 얻어가면서, 백미 3두에 해당하는 24량을 오는 9월 안으로 갚는다고 약속하였다. 다만 이자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아마도 이자는 따로 부담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짐작된다. 본 문서는 1920년대 초반 당시의 백미 시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죄는 자료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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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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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22년 양지서(梁之西)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十一年 約主梁之西 大正十一年 梁之西 전북 남원시 [指章] 1.0*1.0 1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22년 음력 12월 27일 양지서(梁之西)가 작성한 계약서(契約書) 1922년 음력 12월 27일, 양지서(梁之西)가 작성한 계약서(契約書)이다. 양지서가 이 계약서를 쓰게 된 이유는 빌린 조가(租價), 즉 쌀 값 30량 때문이었다. 이 돈은 물론 계약서를 받는 사람으로부터 빌린 것인데, 이 돈은 원래 올해 10월 보름까지 갚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였고, 지금까지도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다시 약속하면서 계약서를 쓴 것인데, 계약 내용은 앞으로 한 달 후인 1월 안으로 갚기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담보로 솥 하나를 전당(典當)하며, 만약 이번 약속을 어기면 그 솥의 소유권을 넘기기로 하였다. 한편 양지서는 본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본 계약서를 쓸 당시 마침 도장을 지참하지 못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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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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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12년 김영일(金永一)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丙午 契約主 金永一 丙午 金永一 전북 남원시 [指章] 1.0*1.0 1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2년 김영일(金永一) 계약서(契約書) 1912년 김영일(金永一)이 작성한 계약서(契約書)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써 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내용은 이렇다. 김영일은 본 문서를 받는 사람으로부터 병오년 이후부터 본 문서를 작성했던 시점까지 지속적으로 105승(升)의 쌀을 빌렸다. 병오년이라면 1906년이 되는데, 그 가운데 30승에 해당하는 돈 45량을 갚기로 하고, 나머지 75승은 1912년 가을 추수 때 갚는다는 의미이다. 그때까지 월 4리로 계산해 준다는 점도 추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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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30일 신해 三十日 辛亥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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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무신) 三十日 戊申 반은 흐리고 반은 맑음. 밤에 비바람이 쳤다. 半陰半陽。夜風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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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임자) 五日 壬子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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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30일 (경술) 三十日 庚戌 맑음. 신암(新庵)의 회갑 시와 원운(原韻) 시에 차운하였다.〈신암의 회갑 시에 차운하다〉(次新庵壽韻)-신암은 김병민(金炳敏)이며, 신촌(新村)88)에 거주한다.-(【新庵, 則金炳敏, 居新村】)친구의 회갑 노래를 갱재하여 부르니,89)(賡載故人花甲歌)육십년 세월이 또다시 다듬어진 것 같구려.(光陰六十復如磨)훈(壎)과 지(篪)를 부니 담락90)이라 하겠고,(吹以壎篪云湛樂)비파랑 거문고 타니 또한 서로 화락하도다.91)(皷之琴瑟亦相和)손님들 축하하는 말에 한마음으로 좋아라,(佳賓賀語同心好)자식들 축수(祝壽)의 술잔에 큰 복도 많구려.(肖子壽巵景福多)본관이 안동이라 조상의 음덕도 크니,(系出安東餘蔭大)덕성(德星)92)이 응당 이 전라도에 비추겠지.(德星應照是全羅)〈또 원운시에 차운하다〉(又次原韻)옛 터에 새로이 한 정사를 세우니,(裁新因舊一精盧)진실로 어진 사람은 거처하는 곳 넓도다.93)(眞是仁人廣所居)무성한 숲에 그칠 줄 아는 새처럼 깃들고,94)(棲若邱隅知止鳥)물고기가 큰물에서 마음껏 헤엄쳐오는 것처럼 시원하네.95)(沛如大壑縱來魚)오동나무 정자에 달 뜨면 술 부르기 한가롭고,(梧軒得月閒招酒)대나무 창은 남향이어서 책 보기에 좋다네.(竹牖向陽合看書)진덕수업 여러 날에 품행은 안에서 이루어지고,(進修多日行成內)화기(和氣)가 저절로 생겨남에 복(福)도 따르네.(和氣自生福有餘) 陽。次新庵壽韻與原韻。〈次新庵壽韻〉【新庵。 則金炳敏。 居新村】賡載故人花甲歌。光陰六十復如磨.吹以壎篪云湛樂。皷之琴瑟亦相和.佳賓賀語同心好。肖子壽巵景福多.系出安東餘蔭大。德星應照是全羅.〈又次原韻〉裁新因舊一精盧。眞是仁人廣所居.棲若邱隅知止鳥。沛如大壑縱來魚.梧軒得月閒招酒。竹牖向陽合看書.進修多日行成內。和氣自生福有餘. 신촌(新村) 현재 전남 담양군 담양읍 반룡리를 말한다. 갱재하여 부르니 ≪서경≫ 〈익직〉에 고요(皐陶)가 순(舜)의 노래에 이어 화답하는 노래를 부른 것을 갱재가(賡載歌)라 한 데서 임금의 말이나 노래에 신하가 화답하는 것을 갱재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앞시에 차운한 것을 말한다. 훈(壎)과 지(篪)를 부니 담락 훈지(壎篪)는 형제 혹은 친구 사이의 화목과 조화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으로, ≪시경(詩經)≫ 〈소아(小雅)·하인사(何人斯)〉에 "맏형은 훈을 불고 둘째형은 지를 분다.[伯氏吹壎, 仲氏吹篪.]"라는 말이 있다. 담락(湛樂)은 ≪시경≫ 〈소아(小雅)·상체(常棣)〉에 "형제간이 서로 화합하여야만, 화락하고도 즐거우리라.[兄弟旣翕, 和樂且湛.]"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비파랑 …… 화락하도다 처자식들이 화갑에 화락한 모습을 말하고 있다. ≪시경≫ 〈소아(小雅)·상체(常棣)〉에 "처자들과 좋아하고 화합함이, 비파와 거문고를 타는 듯하네.〔妻子好合, 如鼓瑟琴〕"라고 한 말이 있다. 덕성(德星) 목성(木星). 상서(祥瑞)로운 표시(表示)로 나타나는 별. 서성(瑞星)이라고도 하며, 현인(賢人)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진실로 …… 넓도다 정사(精舍)를 묘사하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을 찬미한 것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 대장부장(大丈夫章)에 "천하의 넓은 집[仁]에 거처하고,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義]를 행한다.[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라는 말이 있다. 무성한 …… 깃들고 ≪대학장구(大學章句)≫ 전 3장(傳三章)에,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꾀꼴꾀꼴 꾀꼴새는 숲이 무성한 곳에 그친다.[緍蠻黃鳥 止于丘隅]'고 했거늘, 공자가 이르기를, '새도 그 그칠 바를 알거니, 사람치고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於止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고 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시경(詩經)≫은 〈소아(小雅)·면만(綿蠻)〉을 말한다. 물고기가 …… 시원하네 한(漢)나라 왕포(王褒)의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에 "큰 물고기가 큰 바다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것처럼 시원스럽다.[沛乎若巨魚縱大壑]"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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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무술) 二十日 戊戌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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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30일(경오) 三十日 庚午 흐림. 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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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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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30일 晦 9월[剝月]19) 그믐에, 취하여 〈지선주(止善酒)〉를 지었다.아아, 이학(異學)이 봉기하여 우리 부자(夫子, 공자)의 도(道)를 알지 못하고 천하를 바꾸고자 하니, 이 때문에 근심이 적지 않다. 근심을 해소하는 계책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이니, 조금만 마셔도 문득 취하여 낯빛이 풀리고 귀가 뜨거워지며 장(腸)이 풀려 배고픔을 면하게 된다. 때로 붓을 뽑아 선왕의 도를 조술(祖述)한다. 요(堯)는 '윤집궐중(允執厥中)'20)이라 하였고, 순(舜)은 '유정유일(惟精惟一)'을 더하였다. 우(禹)는 도를 탕(湯)에게 전하였고, 탕은 이 도를 문왕ㆍ무왕ㆍ주공에게 전했으며, 주공은 이 도를 우리 부자(夫子, 공자)에게 전했다.21) 부자는 '우리 도는 일이관지(一以貫之)'22)라고 말하였고, 문인인 안자는 '학이지지(學而知之)'23) 하였으며, 증자는 조술(祖述)하여 전하였고, 부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는 그 도가 실전될 것을 근심하여 《중용》을 지었다.이단(異端)의 도는 나날이 새롭고 성대해졌지만, (우리 도는) 그 전함이 민멸(泯滅)되어, 곧 우리 도가 붙어 있는 것은 언어와 문자의 사이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도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아성(亞聖)인 맹부자[맹자]의 공이다. 송나라 〈지명〉하남(河南)〈/지명〉의 두 부자[이정(二程)]께서 나오게 되자 선왕의 도가 찬란하게 다시 세상을 밝혔다. 남송에 이르러 천년에 한번 맑아지는 〈지명〉황하(黃河)〈/지명〉가 다시 맑아지게 된 것인가? 신안 부자(新安夫子, 주자)가 다시 일어나 위로 일천 성인의 도를 조술하자 사문이 크게 밝아지고 이륜(彛倫)이 펼쳐졌다. 이후로 제현이 계속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망령된 저들은 사도(斯道)의 중함을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향방을 알지 못하니, 지금에 뜻이 있는 자가 어찌 근심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술을) 마시며 스스로 지켜, 술을 '지선주(止善酒, 지극한 선에 머물게 하는 술)'로 삼는다.옛날에 예락(醴酪)24)이 있어 〈인명〉의적(儀狄)〈/인명〉25)이 술을 만들었는데, 숭백(崇伯)의 아들이 싫어한 것은 부모를 돌아보고 봉양하고자 해서 그런 것이다.26) 주시(周詩, 시경)에 이미 이르기를, '이미 술에 흠뻑 취하였고, 이미 덕에 배가 불렀도다[旣醉以酒, 旣飽以德]'27)라고 하였으니, 후세에도 금할 수 없었고, 제사에 술이 없으면 성대하지 않고, 즐거운 잔치에 술이 없으면 풍성하지 않은 것은 그 뜻이 그러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晉)의 처사 정절(靖節, 〈인명〉도연명〈/인명〉)은 갈건(葛巾)으로 술을 걸렀고28), 선정(先正) 하서(河西) 〈인명〉김인후(金麟厚)〈/인명〉는 술을 그칠 때 쓰기를 그쳤으니, 후생 말학이 어찌 (술을) 마셔 근심을 잊지 않을 수 있겠는가? 醉而題〈止善酒〉。古有醴酪。 〈인명〉儀狄〈/인명〉作酒。 崇伯子惡旨。 以其顧養而然也。《周詩》旣曰。 '旣醉以酒。 旣飽以德' 則後世禁之不得。 而祭祀非酒不殷。 宴樂非酒非盛。 以其旨之然也。故晉處士之貞節。 漉用葛巾。 金河西之先正。 止以寫止。 後生末學。 豈不飮而忘憂也哉。嗚呼。 異學蜂起。 不知吾夫子之道。 欲以易天下。 以是之憂不少。解憂之計。 常常引飮。 飮少輒醉。 則怡顔熱耳。 解腸免飢。於時抽筆。 而祖述先王之道。堯曰 '允執厥中'。 舜加之以'惟精惟一'。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ㆍ武ㆍ周公。 周公以是傳之吾夫子。夫子曰 '吾道一以貫之'。 門人顔子。 學而知之。 曾子述以傳之。 夫子之孫子思子。 憂失其傳。 而作《中庸》矣。異端之道。 日新月盛。 其傳泯焉。 卽吾道之寄。 不越乎言語文字之間。 而傳其道者。 亞聖孟夫子之功也。至於有宋〈지명〉河南〈/지명〉兩夫子出。 而先王之道。 粲然復明於世。至於南宋。 千一淸之。 〈지명〉河〈/지명〉復淸歟? 新安夫子復起。 上述千聖之道。 斯文大闡。 彛倫惟敍。此後諸賢。 繼繼承承。至于今日。 妄彼人生。 不知斯道之爲重。 而倀倀然不知向方。 當今之時。 有志者。 寧不憂也? 故飮而自衛。 以酒爲止善酒。 박월(剝月) 박월(剝月)은 《주역》의 64괘(卦) 중 박괘(剝卦)에 해당하는 달로 음력 9월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윤집궐중(允執厥中) '진실로 그 중도를 잡아야 한다.'라는 의미로,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세하니, 오직 정밀하고 일관되게 하여 진실로 그 중도(中道)를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 "요임금이 순에게 고할 때 다만 '진실로 그 중도를 잡아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순임금이 우에게 명하였으니, 또한 그 까닭을 미루어 자세히 말한 것이다.[堯之告舜, 但曰 '允執其中', 今舜命禹, 又推其所以而詳言之.]"라고 하였다. 우(禹)는 …… 전했다 한유의 〈원도(原道)〉에 "요는 이 도를 순에게 전하고, 순은 이 도를 우에게 전하고, 우는 이 도를 탕에게 전하고, 탕은 이 도를 문왕ㆍ무왕ㆍ주공에게 전하고, 그들은 공자에게 전하고, 공자는 맹가에게 전했는데, 맹가가 죽은 뒤에는 전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武周公, 文武周公傳之孔子, 孔子傳之孟軻, 軻之死, 不得其傳焉.]"라는 유가(儒家)의 이른바 도통설(道統說)이 나온다. 우리 …… 일이관지(一以貫之) 모든 이치가 하나의 이치로 관통된다는 뜻이다. 공자가 증자(曾子)에게 "우리 도는 하나로써 모든 것을 꿴다.[吾道一以貫之]" 한 데서 온 말이다.(《논어》 〈이인(里仁)〉) 학이지지(學而知之) 배워서 이치를 아는 현인(賢人)의 공부를 뜻한다.(《논어》 〈계씨(季氏)〉) 예락(醴酪) 예(醴)는 하룻밤 만에 담근 감주(甘酒), 즉 발효가 덜 되고 멈춘 초보적인 단계의 술을 말하며, 락(酪)은 초(醋)를 가리킨다. 의적(儀狄) 의적(儀狄)은 우(禹) 임금 때에 술을 잘 빚었던 사람이다. 하우씨(夏禹氏) 이전까지는 감주(甘酒)만 있고 술은 없었는데 우 임금 때에 이르러 의적이 술을 만들어서 우 임금에게 바치자, 우 임금이 마셔 보고 이르기를 "후세(後世)에 반드시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마침내 의적을 멀리했다고 한다.(《전국책》) 숭백의 아들 …… 것이다 숭(崇)은 나라 이름이며, 백(伯)은 작위(爵位)이다. 우 임금의 아버지인 곤(鯤)을 숭(崇)에 봉한 까닭에 《국어(國語)》에서 그를 숭백(崇伯)이라 하였다. 그 아들이란 우 임금을 말한다. 《전국책》 〈위책〉에 우임금이 술을 질타한 내용이 있고, 《맹자》 〈이루 하〉에 우임금이 맛좋은 술을 싫어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또한 '부모를 돌아보고 봉양하고자 해서 그런 것'은 《맹자》 〈이루 하〉의 '불고부모지양(不顧父母之養)'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미 술에 …… 불렀도다 《시경》 〈대아(大雅)·기취(旣醉)〉에 "이미 술에 흠뻑 취하였고 이미 덕에 배가 불렀도다. 군자께선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시기를.[旣醉以酒, 旣飽以德。君子萬年, 介爾景福]"이라는 말이 나온다. 진의 처사 …… 술을 걸렀고 도연명은 음악을 알지 못하면서 소금(素琴) 한 장(張)을 가지고 있는데 줄이 없었다. 매양 술과 쾌적한 일이 있으면 어루만져 희롱하여 그 뜻을 붙였고, 여름에 북창 아래 누워 있다가 맑은 바람이 불어오면 스스로 복희씨 시대의 사람이라 하였다.(《진서(晉書)》 〈도잠전(陶潛傳)〉) 이백(李白)이 이를 인용해 지은 〈장난삼아 정율양에게 주다[戱贈鄭溧陽]〉라는 시에서 "소금은 본래 줄이 없고, 술 거를 땐 갈건을 썼다네. 맑은 바람 부는 북창 아래 누워, 스스로 태고 적 사람이라 하였네.[素琴本無絃, 漉酒用葛巾. 淸風北窓下, 自謂羲皇人.]"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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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기 棲巖記 선비가 당호(堂號)를 지어 문미(門楣)에 걸어 두는 것은 도(道)와는 관계가 없지만, 옛날 현인들은 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어찌 그런가? 사람의 일심(一心)은 허령(虛靈)하고 통철(通徹)하여, 수양(守養)에 도가 없으면 물(物)로 인해 방탕하게 움직이고 인욕(人欲)으로 흘러가서 그 본연의 양심을 잃게 되니, 몸이 서지 않고 도(道)가 닦이지 않는다. 수양(守養)에 진실로 그 도가 있다면, 사물을 접할 때에 물(物)로 인해 정밀하게 살피게 되니, 이치에 합당한 것은 취하여 법칙으로 삼고, 이치에 합당하지 않는 것은 버리고 멀리한다.일사일물(一事一物)과 일동일정(一動一靜)이 내 마음에서 취재(取裁)하지 않음이 없으니, 인욕을 막고[遏人欲]1) 도심(道心)을 확장하면 몸이 설 수 있고 도가 닦일 수 있다. 그러므로 물로 인해 이름을 짓는 것은 진실로 조존성찰(操存省察)의 일도(一道)에 근본한 것이고, 장차 외물(外物)로써 내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김영찬(金永粲)은 필문(蓽門)의 수재로서, 젊어서는 배우기를 좋아하고, 늙어서도 또 게을리 하지 않고 오로지 극기의 도에 힘쓰니, 그 성품이 염정(恬靜, 편안하고 고요함)하고 세리(勢利)와 화려한 것에는 담연(淡然)하여 마음을 주지 않았다. 또 세상이 변화되어 왕의 은택이 이미 마르게 되었으나 임금을 그리워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을 안고, 주치(州治)의 남쪽인 오룡(五龍)의 궁벽한 골짜기에 자취를 감추고서 날마다 옛 도[古道]를 강의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하게 하여 장차 생을 마치려는 듯하였다.집 주위에 바위가 있었는데, 방박(磅礴, 돌이 크고 단단한 모양)하고 견완(堅頑)하였다. 그 형태가 매우 기이하여 애완하며 보배로 여겨, 그 견완(堅頑)한 것으로써 수심(守心)과 존성(存性)의 법도로 삼았다. 심의(深衣)2)에 복건(幅巾)3)을 하고 날마다 그 바위에 깃들어 시(詩)를 짓고 읊조리며, 배회하고 서성이면서 잠시라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미에다가 '서암(棲巖)'이라고 편액을 걸어, 수심(守心)하고 성신(省身)하는 데 일조(一助)하였다.대개 고정부자(考亭夫子, 주자)가 암서(巖棲)에서 미효(微效)를 바란 의미를 취한 것이다. 그 고정(考亭)의 도를 배우기를 원한 까닭에 마음에 성실하게 한 것이지, 입과 귀를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저 고정부자에게는 끝내 미칠 수 없으나, 고정의 옷을 입고, 고정의 도를 공부하며, 고정의 일을 본받아 부지런히 힘쓰고 노력하여 종신토록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거의 고정의 문도(門徒)가 됨을 잃지 않을 것임을 여기에서 그 지상(志尙)의 대략을 볼 수 있다.아! 세상이 크게 변하여 세속이 투박함을 숭상하니, 선비들이 지켜온 것이 쓸데없는 말과 소용이 없어져버린 곳에 부쳐졌다. 명색이 학자라는 사람들은 거센 물결 가운데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우리 부자의 정대한 도가 장차 어둡고 캄캄한 곳에 이르게 되어 구제할 수가 없으니, 어진 사람들의 근심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나 희적(希迪)은 그가 분발하여 세속을 돌보지 않고 심지를 굳게 지키며 용감하게 스스로 수신하는 것을 아름답게 여겨서 그 대강을 서술하여 후학에게 고하노라.경신년(1920) 중춘 초삼일 기묘, 선산(善山) 유희적(柳羲迪)은 삼가 기록한다. 士之作號揭楣。 無與於道。 而古之賢人莫不有焉。 何者? 人之一心。 虛靈通徹。 守養無道。 則緣物動蕩。 橫流人欲。 失其本然之良。 而身不立。 而道不修。守養苟有其道。 則接乎事物之際。 因物精察。 當於理者。 取而法焉。 不當於理者。 舍而遠之。一事一物。 一動一靜。 無不取裁於吾心。 遏人欲而擴道心。 身可立而道可修矣。故因物名號。 固本於操存省察之一道也。 而將以外物。 守戒於吾心也。金永粲。 蓽門秀才。 少而嗜學。 老且不倦。專務克己之道。 其性恬靜。 勢利芬華。 淡然無與心。又値世變。 王澤旣渴。 抱戀君憂國之誠。 而屛跡於州治之南。 五龍窮谷。 日講古道。 自潔其志。 若將終身焉。宅畔有巖。 磅礴堅頑。其形甚奇。 愛玩寶之。 以其堅頑。 取法守心。 存性之道。深衣幅巾。 日棲其岩賦詩。 嘯咏徘徊盤旋。 不欲暫離。 而扁其楣曰'棲巖'。 以備守心。 省身之一助焉。盖取諸考亭夫子巖棲。 冀微效之意也。其所以願學朱子。 誠於心。 而非餙於口耳也。夫考亭夫子。 卒不可及。 而服考亭之服。 學考亭之道。 效考亭之事。 孜孜勉勉。 終身不怠。 則庶幾不失。 考亭之門徒也。於此可見。 其志之大略矣。嗚呼! 世否變。 俗尙偸薄。 儒子所守。 付之空言。 無所用之地。 名爲學者。 不陷溺於頹波中。吾夫子正大之道。 將至於晦盲。 莫之救。 仁人憂過何如哉? 羲迪。 偉其奮不顧俗。 堅守心志。 勇於自修。而敍其梗槪以諗來者。歲庚申仲春初三日己卯。 善山 柳羲迪 謹記。 인욕을 막고 《맹자》에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한다.[遏人欲, 存天理]'라는 말이 있다. 심의(深衣) 선비들이 편안하게 거처할 때 입던 편복(便服)으로, 유학자들이 주로 입었다. 주로 백색의 천으로 만드는데, 직령(直領)으로 된 깃과 단, 도련 둘레에 검은색의 가선을 둘렀다. 심의의 각 부분에는 철학적(哲學的)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복건(幅巾) 관(冠) 대신 쓰는 두건으로 주로 처사(處士)ㆍ은자(隱者)가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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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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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일(신유) 初一日 辛酉 -중광작악(重光作噩)-. 맑음. 【重光作噩】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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