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5640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연도>大正六年丁巳</연도>陰二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買得畓伏在<지명>南原郡寶節面黃筏里</지명>區內冶洞坪洪字員一二畓三斗只結六負果同字員一九畓二斗只結二負八束㐣價折錢文貳佰八拾兩依數交易捧上遣等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異說則文記一張憑考事畓主 <인명>李元溶</인명>[印]證人 <인명>趙基元</인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기축년(己丑年) 한위고시(漢魏古詩) 고문서-시문류-시 교육/문화-문학/저술-시 1889 南原 全州李氏家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南原)에 거주하는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의 어느 누군가가 기축년(己丑年)에 필사(筆寫)한 한위고시(漢魏古詩) 남원(南原)에 거주하는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의 어느 누군가가 기축년(己丑年)에 필사(筆寫)한 한위고시(漢魏古詩)이다. 한위고시란 중국 한(漢)나라와 위(魏)나라 시절에 지어졌던 고시를 말한다. 한나라는 물론 기원전 206년에 유방(劉邦)이 세운 고대국가로서,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통치 기간인 426년을 존속하였다. 다만 중간에 왕망(王莽)이 건국한 신(新)나라가 잠깐 들어선 적이 있었다. 이 신을 계기로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으로 나뉜다. 위나라는, 중국 역사상 여러 왕조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나라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조조(曹操)가 기잔을 닦고 조비(曹丕)가 세운 위를 가리킨다고 판단된다. 조선시대에는 이 한위고시처럼 중국의 시를 옮겨 적은 책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위나라의 시를 모은 예는 흔치 않은 듯하다. 그런데 사실을 정확히 말한다면 본 서는 당초 한나라의 시만을 모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원래의 제목도 "한시 오언(漢詩 五言)"이었다. 하지만 훗날 누군가 한위고시라는 글자를 써 넣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착각을 일으켰다고 생각된다. 실제로도 위나라의 시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한편 표지를 보면 "기축삼월상간수장(己丑三月上幹修裝)"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기축년 삼월 상한에 표지를 만들었다."는 의미인데, 여기서의 기축년은 책의 상태로 보아 1889년(고종 26)으로 추정된다. 분량은 표지를 제외하고 32장 64면이다. 내용을 보면 처음에는 서문에 해당되는 글이 세 개 나온다. 첫 번째 글을 제목이 없지만, 마지막에 "을사삼월초길우생회계하시서(乙巳三月初吉友生會稽夏時序)"라는 필사기가 나온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선시보주서(選詩補注序)"라는 제목의 글이 보인다. 선시보주라면 원래 유이(劉履)가 문선(文選)과 도연명(陶淵明)의 시집 등에서 뽑은 시를 모은 책을 말하는데 본 서문은 이 책의 서문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 한위고시의 본문에 수록된 시도 이 선시보주에 수록된 시를 옮겨 적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도연명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나라 때의 인물이 아니었다. 동진(東晋)과 유송(劉宋)시대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이 도연명의 시를 수록한 책에 한위고시라는 제목을 붙일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정확한 제목은 한위고시가 아니라 한시라고 보아야 한다. 아마도 본 한위고시는 보주선시에서 한나라 때에 지어진 시만을 옮긴 것이 아닐까 한다. "선시보주서"를 뒤이어 나오는 서문은 "풍아익서(風雅翼序)"이다. 풍아익이란 "시경(詩經)의 보조라는 뜻인데, 이는 선시보주를 달리 부르는 말이었다. 선시보주가 인간의 성정(性情) 도야(陶冶)에 있어 시경의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다. 이상의 설명을 참고한다면 남원의 전주이씨가에 소장된 한위고시는 보주선시에서 일부를 옮겨 적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점은 목록을 보아서도 알 수가 있다. 이를 보면 우선 선시보주목록(選詩補註目錄)이라 하고 다음으로 한시(漢詩)라는 목차가 보이기 때문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상사별곡(相思別曲) 고문서-시문류-시 교육/문화-문학/저술-시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작자 미상의 상사별곡(相思別曲)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상사별곡(相思別曲)이다. 국한문(國漢文)으로 쓰여 있다. 상사별곡이란 이별을 그리워하는 노래라는 의미인데, 본 상사별곡은 본 상사별곡을 쓴 사람이 직접 지은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져 있는 가사를 옮겨 쓴 것이다. 다만 옮겨 쓰는 과정에서 잘못 적인 부분도 없지는 않는 듯하다. 한편 본 상사별곡이 적힌 종이의 후면에는 회계 내용이 적혀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17년 김현(金顯) 영증(領證) 2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六年 領證主 金顯 大正六年 金顯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7년 음력 12월 9일 김현(金顯)이 작성한 영수증 2 1917년 음력 12월 김현(金顯)이 작성한 영수증이다. 전북 남원시 보절면(宝節面) 원신동(原薪洞) 양지평(陽地坪)에 있는 답(畓)의 매도를 인수하였다는 내용인데, 관련 문서 "1917년 김현(金顯) 영증(領證) 1"을 참고하면 이번에 받은 돈은 위 답 매도가의 잔액(殘額)이었음이 분명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1920년 김현(金顯)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九年 契約主 金顯 大正九年 金顯 전북 남원시 [印] 1.0*1.0 1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20년 음력 4월 16일 김현(金顯)이 작성한 계약서(契約書) 1920년 음력 4월 16일 김현(金顯)이 작성한 계약서(契約書)이다. 월 4리(利)의 이자를 부담하기로 하고 22원을 차용(借用)한다는 내용이다. 월 4리라면 상당한 고율(高率)이라고 보아야 한다. 김현이 이 돈을 왜 빌리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편 이 돈은 올해, 그러니까 1920년 12월까지 갚기로 하였다. 8개월만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33년 이철주(李喆儔) 보절공립보통학교(寶節公立普通學校) 통신부(通信簿) 고문서-증빙류-증서 교육/문화-근대교육-성적표 昭和八年 月 日 寶節公立普通學校 李喆儔 昭和八年 月 日 寶節公立普通學校 李喆儔 전북 남원시 1.7*1.7 9개(적색, 정방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33년에 작성된 이철주(李喆儔)의 보절공립보통학교(寶節公立普通學校) 통신부(通信簿). 남원(南原)의 보절공립보통학교(寶節公立普通學校) 4학년 학생 이철주(李喆儔)의 1933년도 통신부(通信簿)이다. 학생의 학업성적과 출석 상황 등 학교에서의 생활을 기록하여 학생의 가정으로 보내는 학생의 성적통지표이다. 이 통신부에는 이철주가 3학년의 과정을 수료하였음을 증명하는 증명서(證明書)와 수업증(修業證)이 인쇄되어 있다. 학업성적과 출석상황을 기록한 항목에는 1학기, 2학기, 3학기 등 세 학기로 나누어, 수신(修身), 국어(國語), 조선어(朝鮮語), 산술, 역사, 지리, 이과, 도화(圖畵), 창가(唱歌), 체조, 재봉(裁縫), 실업(實業), 평균, 조행(操行), 판정(判定) 등의 항목에 점수를 갑(甲), 을(乙) 등으로 매겼다. 다음으로 출석일수와 결석일수를 적었는데, 결석일수는 다시 병기(病氣), 사고(事故), 기인(忌引), 지참(遲參), 조퇴(早退) 등의 일수를 기록하였다. 이어 식일(式日)에는 출석, 결석 등을 기록했다. 이어서 주임훈도(主任訓導)와 보호자인(保護者印)의 도장을 찍어 확인하도록 하였다. 학업성적과 출석상황 다음으로는 신체의 상황을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등으로 나누어, 검사월일, 연령, 신장, 체중, 흉위, 발육, 영양, 척주, 시력, 색신(色神), 안질, 청력, 치아, 질병, 개평(槪評) 등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통신부에는 신체의 상황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학교가정통신난, 시업시각(始業時刻), 수업료, 자수시간(自修時間) 등의 난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학교장과 보호자의 이름을 쓰는 난과 주소를 기입하는 난이 있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契約書右契約은 一金貳拾圓을以月利得用이고 所有畓一斗只伏在項越坪典當이고 隨辦報納次로 契約候也<연도>辛酉</연도>九月十一日契約主<인명>丁星文</인명>[印]再米壹斗을本人病時得去인바右金二十원內에除納홈<인명>李元暢</인명> 殿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契約書右契約은 所買飼犢을 典當이고 一金拾圓을 以月利로 得用이고 限來七月報약이고 飼犢還退次로 玆成契約홈<연도>大正十二年癸亥</연도>二月十五日契約主 <인명>金</인명>[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領證一金拾伍圓也[印]但以<지명>南原郡宝節面新波里深谷坪</지명>畓三斗只価[印]文爲先先金領收홈<연도>大正六年丁巳</연도>閏二月十四日領證主 <인명>梁七漢</인명>[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契約書右契約事은 今年都米十五斗四升五合을 未得報納하야 以利로 明年九月晦內에 並本利하여 二十一斗六升을 無違邊濟之意 玆成契約홈<연도>大正十年</연도>陰十一月初六日契約主 <인명>丁昌斗</인명>[印]<인명>李主事</인명> 殿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1921년 정성문(丁星文)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辛酉 丁星文 이원창(李元暢)< 辛酉 丁星文 전북 남원시 [印] 1.0*1.0 1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21년 9월 11일에 정성문(丁星文)이 이원창(李元暢)과 작성한 계약서 1921년 9월 11일에 정성문(丁星文)이 이원창(李元暢)과 작성한 계약서(契約書)이다. 정성문이 이원창에게 항월평(項越坪)에 있는 1두지(斗只)의 답을 전당(典當)하고 20원을 빌린다는 내용이다. 이 돈은 정성문이 준비되는 대로 갚는 것으로 하였는데, 상환 일자를 이런 식으로, 다시 말해서 특정한 날짜를 정하지 않고 돈을 빌려가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갚게 한다는 점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아마도 정성문과 정성문에게 돈을 빌려주는 이원창과의 사이가 매우 돈독하거나 혹은 친척 관계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문서 말미를 보면 "재미일두(再米壹斗)을 本人病時得去(本人病時得去)인바 우금이십(右金二十)원 내(內)에 제납(除納)홈"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재(再)"는 추가 사항이라는 의미이다. 본문 외에 더 써야 하는 내용이 있을 때 "재"라고 적고 그 뒤에 추가 사항을 적도록 되어 있었다. 다음 "미일두"는 당연히 쌀 1두를 말하고, "본인병시득거"는 "본인이 병을 앓고 있었을 때 가지고 갔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본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 점은 다음에 나오는 "제납"이라는 단어로 짐작할 수가 있다. "제납"은 "제외하고 납부한다."는 것이므로, 돈을 빌린 정성문이 돈을 갚을 때 쌀 1두 값은 제외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가지고 간 사람은 정성문이 아니라 이원창이 되는 것이다. 이원창이 아플 때 돈이 필요하여 정성문으로부터 쌀 1두를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20량 중 쌀 1두의 값은 얼마로 계산이 되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4년 이홍기(李泓器)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正三年甲寅陰二月初六日 李泓器 大正三年甲寅陰二月初六日 李泓器 전북 남원시 [印] 1개 1.0*1.0 1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4년 음력2월 초6일에 이홍기(李泓器)가 남원군(南原郡) 보현면(寶玄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4년 음력2월 초6일에 이홍기(李泓器)가 남원군(南原郡) 보현면(寶玄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홍기는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았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보현면 동좌평(洞左坪) 2두락지(斗落只) 호자답(乎字畓)으로 수확량이 82석이고 부수(卜數)로는 7부(負) 5속(束), 2배미의 논이다. 방매 가격은 330냥이다. 매도인 이홍기는 새로 작성한 매매문서를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문서의 끝에는 만일 뒷날 이 거래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이 문기에 토지소재지로 명기된 보현면은 오늘날 남원시(南原市) 보절면(寶節面)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남원시 보절면은 보현면과 고절면(高節面)에서 한 자씩 따서 보절면으로 불리게 되었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삼종질(三從姪) 이홍기와 증필(證筆)로는 삼종(三從) 이교전(李敎典)이 참여하였다. 논의 주인 이홍기만 도장을 찍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2년 오병윤(吳秉允)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明治四十五年 賣主 吳秉允 明治四十五年 吳秉允 전북 남원시 [印] 2개 1.0*1.0 4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2년 7월 11일 오병윤(吳秉允)이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2년 7월 11일 오병윤(吳秉允)이 토지를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매수자에 관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오병윤이 팔고자 한 논은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宝節面) 화산리(華山里) 오야평(五也坪)의 위자(謂字) 24번(番)에 있는 답(畓) 2두(斗) 5승지(升只)였다. 이 논은 오병윤이 집안 대대로 경작해 오던 것이었다. 매매가는 256량 5전이었다. 오병윤은 본 매매문서를 작성하면서 앞으로 혹시라도 이번 거래와 관련하여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본 문서로 일을 바로 잡으라고 하였다. 한편 본 문서 작성시 증인은 이교면(李敎冕)이었다. 그는 오병윤과 같은 고을에 사는 사람이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1928년 김정근(金正根)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戊辰陰閏二月十二日 金正根 戊辰陰閏二月十二日 1928 金正根 전북 남원시 [印] 1개 1.0*1.0 1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28년 음력 윤2월 12일에 김정근(金正根)이 비료를 빌리면서 작성한 계약서(契約書). 1928년 음력 윤2월 12일에 김정근(金正根)이 비료를 빌리면서 작성한 계약서(契約書)이다. 김정근은 지난 정묘년 2월에 비료 2말을 빌렸는데 그때 당시 가격이 3원이었다. 비료를 갚지 못하여 상환일자가 계속 미루어지다가, 오는 16일로 상환일자를 다시 정하면서 소유하고 있는 논의 종맥과 소맥 3마지기를 저당 잡혔다. 만약 이때도 기한을 넘기면 위 종맥과 소맥을 상대방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당시 계약주 김정근이 혼자 문서에 날인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3년 김남석(金南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正二年四月七日 金永西 金南石 大正二年四月七日 金永西 金南石 전북 남원시 [印] 3개 1.0*1.0 3개(적색, 원형), 1.2*0.8 2개(적색, 타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3년 4월 7일에 김영서(金永西)가 장수군(長水郡) 상번암면(上番岩面) 상북리(上北里)에 있는 논을 김남석(金南石)에게 팔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3년 4월 7일에 김영서(金永西)가 장수군(長水郡) 상번암면(上番岩面) 상북리(上北里)에 있는 논을 김남석(金南石)에게 팔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영서는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농사지으며 먹고 살았던 상북리 치구평(峙舊坪) 40번지 논 6야미 1두락을 김남석에게 20원에 팔았다. 거래사유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라고 문서에 적고 있다. 거래 당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매매 당시 논 주인 김영서와 매수인(買受人) 김남석 그리고 보증인(保証人)으로 조백규(趙伯奎) 등 3인이 함께 참여하여 날인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병오년(丙午年) 남원(南原)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 용하기(用下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병오년(丙午年)에 남원(南原)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작성한 용하기(用下記) 병오년(丙午年)에 남원(南原)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작성한 용하기(用下記)이다. 병오년은 1906년으로 추정된다.

상세정보
56403건입니다.
/2821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