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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60년 정기규(鄭基圭)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庚申閏三月日 全羅道 靈光居 幼學 鄭基圭 城主 庚申閏三月日 鄭基圭 尙州牧使 전라남도 영광군 尙州使[着押] 3顆 영광 동래정씨 죽창공(정홍연)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0년(철종 11)에 전라도(全羅道) 영광(靈光)에 사는 유학(幼學) 정기규(鄭基圭)가 상주목사(尙州牧使)에게 올리는 소지(所志). 1860년(철종 11) 윤3월 16일에 전라도 영광(靈光)에 사는 유학(幼學) 정기규(鄭基圭)가 상주목사(尙州牧使)에게 성재문(成在文)을 엄히 다스려 굴이(掘移)하도록 재촉해 달라고 요청하는 소지(所志)이다. 성재문은 투장(偸葬) 독굴(督掘) 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나 가까이에서 동정(動靜)을 살피니, 그의 형제(兄弟)와 숙질(叔侄)로 하여금 "이번 달 보름간에 파봉(破封)하고 4월 10일에 옮길 계획"이라고 애걸하면서 간악한 성재문은 무소(誣訴)로 둘러댔다. 성재문이 기한 전에 석방된다면 도리어 관정(官庭)에 있으며 굴이(掘移)하는 것만 같지 않을 것이니, 엄히 다스려서 파가도록 재촉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상주목사는 윤3월 16일 제사(題辭)에서 지금은 죄수로 갇혀 있으니 4월 10일 후에 다시 소(訴)를 올리라 분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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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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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47년 이상수(李尙秀) 등 품목(稟目) 고문서-첩관통보류-품목 정치/행정-보고-품목 丁未八月日 李尙秀 等 27人 城主 丁未八月日 李尙秀 靈光郡守 전라남도 영광군 [着押] 3顆 영광 동래정씨 죽창공(정홍연)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7년 이상수(李尙秀) 등이 영광군수(靈光郡守)에게 올린 품목(稟目) 1847년 8월 10일에 이상수(李尙秀) 등 향중(鄕中) 선비들이 영광군수(靈光郡守)에게 지산사(芝山祠)의 춘추 제향에 쓰일 희생(犧牲)과 폐백(幣帛), 포(脯)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한 품목이다. 지산사는 죽창공(竹窓公) 정홍연(鄭弘衍)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죽창공을 숭상한 사림의 공의(公議)로 세워져서 춘추로 제향을 지내고 있는 곳이다. 제향 때면 관아에서 향촉(香燭)과 여러 물품을 제공해 주는데 희생과 폐백, 포가 준비되지 않아 사림의 개탄이 되니, 군수께서 특별히 이 물품들을 마련해 주어 제향 의례를 갖출 수 있도록 청했다. 이에 영광군수가 판결하기를 '유독 희생과 폐백이 빠진다면 과연 의례를 빠뜨리게 된다. 많은 선비가 일제히 고하니 공의(公議)를 볼 수 있다. 특별히 요청한 품목대로 시행하고 등록에 싣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여 요청을 허락하고 예리(禮吏)에게 시행토록 했다. 문서 우측 하단에 '擧行'이라고 표기된 것으로 보아, 품목이 거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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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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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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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사(錦湖祠)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八月二十六日 錦湖祠 八月二十六日 錦湖祠 나주 나주나씨 금호사 한국학호남진흥원 8월 26일에 금호사(錦湖祠)에서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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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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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삼가 어르신의 체후가 두루 평안하리라 생각되니, 우러러 송축합니다. 다만 금번에 본사의 추향(秋享)이 9월 11일에 있는데, 관직의 망(望)이 좌하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망첩(望帖)을 작성하여 올립니다. 부디 기일 전에 재실에 들어가 일을 담당하기를 몹시 바랍니다. 나머지는 예식을 갖추지 않습니다.8월 26일에 금호사(錦湖祠) 도유사(都有司)·장의(掌議) 伏惟尊軆萬旺 仰頌 第今次本祠秋享在於九月十一日 而 官之望歸於 座下 故望帖玆以修呈 幸須前期日入齊〖齋〗將事之地千萬千萬 餘不備禮八月二十六日錦湖祠都有司掌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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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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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을축년(乙丑年) 김석신(金錫愼)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陰三月日 發行有司 金錫愼 乙丑陰三月日 金錫愼 나주 나주나씨 금호사 한국학호남진흥원 을축년 음력 3월에 화암사숭절당유회(花巖祠崇節堂儒會) 발행유사(發行有司) 김석신(金錫愼)이 화암사지(花巖祠誌) 1부와 함께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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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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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갑진년 금호사(錦湖祠) 시도기(時到記) 고문서-치부기록류-시도기 錦湖祠 나주 나주나씨 금호사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금호사(錦湖祠)에서 작성한 시도기(時到記) 갑진년 9월부터 경신년 9월 추향사(秋享祀)까지 금호사(錦湖祠)에서 작성한 시도기(時到記)이다. 참여자의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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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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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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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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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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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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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悠然堂重建上樑文 述夫群賢을幷享俎豆에旣建祠而妥靈하고後學이自有淵源에宜升堂而肄業이라斯文未墜에舊制增新이라竊惟錦湖先生은忠孝傳心이요學文正脈이라早從師於履素하야獲接儒門繼開之功하고卒贈爵以贊成하야益著朝家崇報之典이라況六子共襲詩禮之訓하야因趨庭而得聞하고猗多士冞切高景之心하야儼同堂而倂侑라胡不幸而曩歲同撤고尙靡遑而積年經營이라子夜潛雷는必有回復之陽線하고丁日釋菜는詎乏舊禮之明禋가士論僉同에縱己建於賢宇나物力纖嗇에亦未及於講堂이러니今乃公議復興하야矧惟工匹咸集이라於我乎廈屋이曩有不承之嘆하고敝予又緇衣가更宜改造之善이라相舊址而開拓에地勢向壬하고選吉日而營修에月令建卯라組徠松新甫柏視是尺而是尋하고公輸墨離婁繩指彼刀而彼鋸라涼其軒燠其室에宜適冬夏之啓居하고奇爲戶耦爲門에便從乾坤之開闔이라春秋享祀는豈惟執事齊宿之方이며日月刮磨에亦爲生徒藏修之所라下莞上簟은乃占君子之寢寧이요西圯東階는終看賓主之升降이라猗歟林巒增彩하고美哉泉石이呈奇라奚但羅門氏葉之盡誠가實亦錦城士林之攸庇라玆綴長老之善頌하야助擧兒郞之脩樑이라拋樑東하니瑞石峯巓日射紅이라長夜駸駸誰說夢고師門正脈牖昏蒙이라拋樑西하니忠壯祠墟草滿堤라嘯浦偉功垂宇宙하니後生講服未諼兮라拋樑南하니榮湖灔灔碧如藍이라會須單袷新成後에風浴正宜三月三이라拋樑北하니京國迢迢瞻斗極이라家法相傳孝與忠하니尊周大義思衿式이라拋樑上하니雲宵遙望幾千丈이라六龍美譽尙今傳하니勳業文章人盡仰이라拋樑下하니漢水餘波門外瀉라晝夜眞源不息流하니朝家一理誰知者오伏願上樑之後에基礎永鞏하고靈神秘慳이라崇賢尙忠에衿紳이尙供籩豆之享하고興詩習禮에縫掖이不絶絃歌之音이라【歲甲子月日陽城李炳壽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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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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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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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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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748년 정시빈(鄭始斌) 등 등장(等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戊辰十一月日 奉山面 化民 鄭始斌, 鄭匡宇 城主 戊辰十一月日 鄭始斌 鄭匡宇 靈光郡守 전라남도 영광군 [着押] 5顆 영광 동래정씨 죽창공(정홍연)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48년(영조 24) 봉화면(奉山面) 화민(化民) 정시빈(鄭始斌) 등이 영광군수(靈光郡守)에게 올린 등장(等狀). 1748년(영조24) 11월일에 봉화면(奉山面) 화민(化民) 정시빈(鄭始斌) 등이 영광군수(靈光郡守)에게 정석조(鄭錫祖)가 납부하지 않은 나머지 돈을 받아주기를 요청하며 올린 등장(等狀)이다. 동래정씨 동족인 정석조와 계(契) 관련 문제로 서로 다투었는데, 정석조 등이 선조를 잊은 패륜은 한 가문뿐만 아니라 고을의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다. 선조를 잊은 패륜의 인간과 합계(合契)할 수 없다고 하며, 만약 석조 등이 분계(分契)의 불공정함을 억울하다고 말하면 서로의 문권(文券)을 거두어 공정(公正)하게 처결(處決)해 주시고, 문중에 납부하지 않은 나머지 15냥 7전을 조속히 받아달라고 요청하였다. 영광군수는 11월 17일에 일찍이 봉전(捧錢) 후에 합계할 생각이었는데 관전(官前)에 납초(納招)함에 이르렀다. 지금 봉전 뒤에 도리어 다른 뜻이 생겨 합계를 내켜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 소행을 추구하니 이같이 이미 놀랍다. 이미 합계를 하고자하지 않는다면 본전(本錢)의 나머지를 속히 내어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제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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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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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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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59년 정진용(鄭鎭容) 등 등장(等狀)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己未二月日 全羅道 靈光 化民 鄭鎭容 等 14人 城主 己未二月日 鄭鎭容 尙州牧使 전라남도 영광군 尙州使[着押] 3顆 영광 동래정씨 죽창공(정홍연)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9년(철종 10)에 전라도(全羅道) 영광(靈光) 화민(化民) 정진용(鄭鎭容) 등이 상주목사(尙州牧使)에게 올린 등장(等狀). 1859년(철종 10) 8월에 전라도(全羅道) 영광(靈光) 화민(化民) 정진용(鄭鎭容) 등이 상주목사(尙州牧使)에게 성재문(成在文)이 투장한 묘를 파내어 가도록 엄한 처분을 요청하며 올린 등장(等狀)이다. 동래정씨 선영(先塋)이 화서면(化西面) 제궁동(齊宮洞)에 있는데 뜻밖에 작년에 본면(本面)에 사는 성재문이 단백호(單白虎) 80보 내에 투장하여 정소한 결과 성재문이 패하였다. 7월 그믐 전에 파서 옮기겠다는 다짐을 관정에 제출하였는데 지금 6~7개월이 지났는데도 파가지 않고 있으니 성재문을 잡아가두고 독촉하여 파가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상주목사는 8월 5일에 다짐의 기한이 이미 지났으니 독촉하여 파가도록 을 잡아 대령하라고 제사를 내리고 장민(狀民;관가(官家)에 소장(訴狀)을 낸 백성)에게 담당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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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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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軒金先生事實 公諱智秀字而幹號竹軒直講公第四子也公器局雄偉智勇過人早襲庭訓折節爲文詞尤長於習詩禮而有文墨翰另於過人姊婿崔公忠毅深器之曰隨陸不武絳灌無文終古儘然君何咄咄作書生一流人哉公甚韙之旣而蔭軍器寺奉事歷敍軍資監直長宣廟癸卯捷武科拜宣傳光海時見瞻黨讐母公乃慨然歎曰書云孝乎惟孝友于兄弟施於有政嗚呼臨海已矣永昌何牽東門襄仲今又復生魯亂未已將何以政爲卽棄官家居仁廟初元李适內懷不平陰蓄異志二年甲子遂發兵叛自寧邊長驅南向戰守不及大駕蒙塵於是公奔勤王命扈鴐熊津承命覘賊歸奏甚悉上悅之先時公在宣傳也鄭忠信一見嗟異曰若人才略維國之幹至是鄭公請公同仇遂與協力大破賊兵於鞍嶺錄振武原從二等勳惟公文武全力資質之美信不可誣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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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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蒿菴金先生事蹟 癸亥十二月 日 地主李侯報營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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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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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경자년 수입기(收入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庚子年十二月五日 庚子年十二月五日 1960 東萊鄭氏門中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 동래정씨 죽창공(정홍연)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자년 12월 5일에 영광 동래정씨가에서 작성한 회계장부 경자년 12월 5일에 영광 동래정씨가에서 작성한 회계장부이다. 성책문서로 총12면이며, 겉표지가 따로 없다. 문서 처음에 '庚子年十二月五日文書修定時'라고 쓰고, 경자년수입기(庚子年收入記)를 기재하였다. 수입기는 모두 소작료로 소작료, 소작규모, 소작자를 기록하였다. 문서 마지막에 신축미수기(辛丑未收記)가 쓰여 있다. 이 문서의 생산연도는 화폐 단위가 원이 쓰인 것을 볼 때 1960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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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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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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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임신년 세입세출부(壬申年歲入歲出部)>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壬申四月 壬申四月 1992 東萊鄭氏門中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 동래정씨 죽창공(정홍연)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신년 영광 동래정씨가에서 수입지출을 기록한 회계장부 임신년 영광 동래정씨가에서 수입지출을 기록한 회계장부이다. 성책문서로 총4면이며, 표지는 따로 없다. 먼저 임신년 4월 이후 세출지부(歲出之部)를 적고, 임신년 가을 세입지부(歲入之部) 등을 기재하였다. 세입의 경우는 대부분 소작료로 소작료, 소작자, 소작규모를 기록하였다. 문서명은 문서내용에서 차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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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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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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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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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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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65년 정진용(鄭振容) 등 등장(等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乙丑五月日 奉山面芝山化民 鄭振容 等 4人 兼城主 乙丑五月日 鄭振容 靈光郡守 전라남도 영광군 兼官[着押] 3顆 영광 동래정씨 죽창공(정홍연)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5년에 정진용(鄭振容) 등 4인이 영광군수에게 올린 등장. 竹窓公 祠宇가 있는 지산에 偸葬한 자가 있어 관에 정소하여 제사를 받았으나 족인 중 한 사람이 犯葬에 대한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파보니 虛棺虛葬이었음. 구(舊) 면임(面任) 金啓哲과 面有司 金俱吉이 옆에서 보고 모두 간여하였는데 유독 당시 면임 池斗九만 겁을 먹고 달아나고 또 文報를 올리지 않는 것은 필시 虛葬한 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니 지두구를 잡아다가 엄히 조사하여 뒷날의 폐단을 막도록 해 달라고 요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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