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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신축) 十日 辛丑 흐림. 석양에 비가 내렸다. 陰。夕陽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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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임인) 十一日 壬寅 흐림. 비의 흔적이 있었다. 陰。雨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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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갑진) 十三日 甲辰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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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임진) 四日 壬辰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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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갑오) 六日 甲午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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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을미) 七日 乙未 잠깐 맑았다가 잠깐 흐려짐. 밤에 눈이 왔다.〈이단에 대해 변론하다[辨異端]〉어떤 사람이 나에게 묻기를 "지금 제교(諸敎)가 봉기하여 각기 '종교'라고 칭합니다. 사대부가 받드는 선현의 의리가 골수에 사무친 자가 아니면 모두 갈팡질팡하며 이교(異敎)로 달려가니, 대저 이교란 어떤 것입니까?"라고 하였다.내가 응답하기를 "오도(吾道)는 생민(生民)이래로부터 성인이 하늘을 법칙함을 밝혀서 후세에 전하였다. 대개 복희ㆍ신농ㆍ황제ㆍ요ㆍ순ㆍ우ㆍ탕ㆍ문왕ㆍ무왕ㆍ주공이 사도(斯道)를 몸소 행하였으니, 곧 민생이 일용하는 이륜(彛倫)이 이것이다. 공자는 하늘이 내신 성인[天縱之聖]1)으로서 선왕을 조술(祖述)하여 시서(詩書)를 간추리고 예악(禮樂)을 정비하였으며, 《주역》을 편찬했고 《춘추》를 지어 명교(名敎)를 크게 이루셨다. 《효경》과 《노어(魯語)》는 곧 그가 전수한 심법(心法)인 것이다. 그리고 그 도(道)를 이어받은 것은 자사ㆍ안자ㆍ증자ㆍ맹자였다. 자사는 《중용(中庸)》을 지었고 안자는 불행히 요절하여 비록 책을 지어서 학문을 전하지는 못하였으나, 극기복례(克己復禮)로 또한 심법을 전하였다. 증자는 《대학》을 저술하였고, 맹자는 《맹자》를 지었으니, 천리와 인사가 해와 달처럼 밝아서 천지를 다하도록 만고토록 뻗는 것이 마치 부절(符節)을 합한 것과 같다.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법칙을 세우고[繼天立極]2) 선현을 잇고 후학을 열어준[繼往開來]3) 것이 사도보다 성한 것은 없었다. 그러므로 송(宋)의 제현이 이 법을 준수하여 《근사록》 여러 편을 저술하였으니, 의리의 정미함이 이보다 자세할 수 없다. 몸을 닦는 큰 법도로 또 《소학》을 저술하니 성인의 가르침이 크게 갖추어졌다.우리 동방이 들림이 있게 된 것은 기자(箕子)의 공이다. 홍범을 보면 어찌 증명하는 데 부족함이 있겠는가?4) 기자가 동토(東土)로 온 이래 제현을 배향하고 사도를 천명하여 각기 옛 성인과 여러 학자의 문헌을 저술하여 분명히 서책에 실었으니, 비록 타고난 바탕이 고매한 자일지라도 소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낮에는 외우고 밤에는 사색하게 하였다. 털끝만한 차이가[差之毫釐], 기질에 구애되고 물욕(物慾)에 가리게 되면 끝내 소인으로 돌아가게 됨을 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도를 벗어나서 노망멸렬(魯莾滅裂)한 자가 좁은 소견으로 어찌 선왕의 대도를 알겠는가?노자가 주나라 말엽에 태어나 유무(有無)를 둘로 여기고 허무적멸(虛無寂滅)한 데로 돌아갔으며, 〈인명〉양주(楊朱)〈/인명〉와 〈인명〉묵적(墨翟)〈/인명〉이 전국시대에 태어나 인의(仁義)를 배웠으나, 어긋나기가 무부무군(無父無君)에 이르렀다. 불교가 한나라 때에 들어와 청정자비(淸淨慈悲)를 숭상하였으나 끝내는 윤리를 도외시했으며, 또 선학자(禪學者)가 있어 돈오(頓悟)로써 기약하였으나 의리에 모호하였다. 그 나머지 백가(百家)와 여러 학술의 유파는 모두 혹세무민(惑世誣民)하여 괴란함이 극심했다.선배들이 말하기를 '공자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인류가 멸망했을 것이다.[孔子不生, 人之類滅矣]'5)라고 하였으니, 어찌 나를 속이는 말이겠는가? 주자가 말하기를 '하늘이 물(物)을 낳을 때 근본이 하나이게 하였다.[天之生物, 使之一本]'라고 하였으니6), 이것이 옳으면 저것이 틀리고, 이것이 틀리면 저것이 옳다. 대개 병립하거나 양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시비(是非)를 안다면 하루가 안 되어서 제교(諸敎)를 막아내고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乍陽乍陰。夜雪。辨異端。或有問於余曰。 "至今諸敎蜂起。 各稱宗敎。若非士大夫奉承先賢義理浹髓者。 皆倀倀然奔走於異敎。 大抵異敎是何等物事也?" 余應之曰。 "吾道自生民以來。 聖人則天明以垂後世者也。盖伏羲神農黃帝堯舜禹湯文武周公。 躬行斯道。 卽民生日用彛倫是也。孔以天縱之聖。 祖述先王。 刪詩書。 定禮樂。 贊周易。 修春秋。 大成名敎。孝經魯語卽其傳授心法者也。 而以傳其道者。 子思顔子曾子孟子。子思作《中庸》。 顔子不幸而夭。 雖不作傳學。 克己復禮。 又傳心法。曾子述《大學》。 孟子作《孟子》。天理人事。 昭如日星。 窮天地亘萬古。 若合符節。繼天立極。 繼往開來。 未有盛於斯道也。故有宋諸賢遵斯法。 著述《近思》諸篇。 義理精微。 莫詳於此也。修身大法。 又著《小學》。 聖人之敎大備矣。吾東之與聞者。 箕聖之功也。得見洪範。 豈不足徵也? 箕聖之臨東土以來。 從享諸賢。 闡明斯道。各述往聖諸子文獻。 昭在方冊。 雖天質高邁者。 自少至老。 晝誦夜思。差之毫釐。 拘於氣質。 蔽於物慾。 終未免爲小人之歸。 況外於斯道。 魯莾滅裂者。 以管見。 豈足以知先王之大道乎? 老子生於周末。 以有無爲二。 而歸於虛無寂滅。〈인명〉楊墨〈/인명〉出於戰國。 學仁義而差至於無父無君。佛子入漢。 尙以淸淨慈悲。 終外倫理。 又有禪學者。 以頓悟爲期。 而含糊於義理。其餘百家衆枝之流。 皆惑世誣民。 乖亂極矣。前輩有言曰。 '孔子不生。 人之類滅矣。' 豈欺我哉? 朱子曰。 '天之生物。 使之一本。' 此是則彼非。 此非則彼是。蓋不容竝立而兩存也。若少知是非。 則近日而迸諸不與同也。 하늘이 내신 성인[天縱之聖] 제자 자공이 스승 공자를 하늘이 내신 성인[天縱之聖]이라고 하였다. (《논어》 〈자한(子罕)〉) 하늘의 …… 세우고[繼天立極] 주희(朱熹)의 〈중용장구 서(中庸章句序)〉에 "대개 상고 시대에 거룩하고 신령스러운 분들이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최고의 표준을 세운 때로부터 도통(道統)이 전해져 내려온 것이 원래 유래가 있었다.[蓋自上古聖神繼天立極 而道統之傳 有自來矣]"라는 말이 나온다. 선현을 …… 열어준[繼往開來] 지난 성인(聖人)의 뒤를 잇고 앞으로 올 후학을 열어주는 학문의 공을 말한다. 주자가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에서 공자의 덕을 찬양하면서 "지나간 성인을 잇고 후세에 올 학자를 열어 준 것은 그 공이 도리어 요순(堯舜)보다도 나은 점이 있다.[繼往聖開來學, 其功反有賢於堯舜者.]"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홍범(洪範)을 …… 있겠는가 기자는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숙부인데, 기(箕)는 나라 이름이고 자(子)는 작위이다. 은나라가 멸망한 후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물음에 답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의 대법(大法)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르쳐 주고 조선의 평양(平壤)으로 옮겨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웠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선배들이 …… 것이다 한유(韓愈)가 지은 〈원도(原道)〉에 "옛날에 성인이 없었다면 사람다운 사람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如古之無聖人, 人之類滅久矣.]"라는 구절이 있다. 주자가 …… 하였으니 원문에는 주자가 말했다고 하는데, 《맹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하늘이 물(物)을 낳을 때 근본이 하나이게 하였다.[天之生物也, 使之一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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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병신) 八日 丙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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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기축) 十一日 己丑 흐림. 참봉(參奉) 김용순(金容珣)과 동행하여 화개산(華蓋山)에 들어가 머물렀다. 다음날 장성(長城) 약수정(弱水亭)에 도착해 술을 시켜 함께 마시고는 달빛을 따라 궐전(蕨田) 김길령(金吉寧) 집에 도착해 유숙했다. 다음날 하만리(河晩里)에 들어가 여러 벗들의 상(喪)을 위문하고, 또 그 다음날 저물녘에는 곽한풍(郭漢豊)의 사랑(舍廊)에 들러 유숙했다. 또 그 다음날 아침에는 딸집에 도착했다. 그날 모현(茅峴)의 신석휴(申錫休)씨를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했고, 유상춘(柳相春)씨 댁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질녘에 만무정(晩舞亭) 공학원(孔學源) 댁에 도착해 며칠을 머물렀다. 돌아오는 길에 세곡(細谷) 왕림(旺林) 댁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공학원(孔學源)과 이기(理氣)를 논하였다. 학원이 말하기를, "저는 '이(理) 밖에 기(氣)가 없고 이는 기 가운데 있다.[理外無氣, 理在氣中]'라는 8글자로 해결하였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응하여 말하기를, "옳습니다. 이것은 이기를 합해서 말한 것입니다. 이기는 합해져 있으면서도 떨어져 있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합해져 있습니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라는 것을 선유(先儒)들이 이미 말했습니다."라고 했다.또 말하기를,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31)이 경연(經筵)에서 이기를 논하면서 율곡(栗谷) 선생의 말을 인용하여, '발하는 것은 기(氣)이고 발하게 하는 소이(所以)는 이(理)이다.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발할 곳이 없다. 선후(先後)도 없고 이합(離合)도 없다. 나누어 말할 것 같으면 이는 무위(無爲)하지만 기는 유위(有爲)하고, 이는 무형(無形)이지만 기는 유형(有形)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라고 했다.〈서암기(棲巖記)〉선비가 고심(苦心)하여 힘써 학문하는 것은 세상에 쓰일만한 인재가 되는 것에 뜻이 없을 수 없지만, 이미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자취를 감추고 학문에 힘써 홀로 그의 자신을 선하게 할 따름이다. 또 그럴 수 없다면 빈곤하고 궁박할 것이니 바닷가 절도(絶島)가 아니라면 반드시 궁벽한 산의 암혈(巖穴)에 거처하게 될 것이다. 선비가 이런 지경에 이르면 한탄하고 슬퍼하지 않겠는가?김영찬(金永粲)씨는 담양(潭陽)의 고사(高士)이다. 젊어서는 부지런히 학문을 하여 능히 수신제가(修身齊家)의 도리를 다 하였다. 늙어서는 또 부지런히 힘써서 곁으로 강마(講磨)의 이익을 구하였다. 그러나 유사(有司)가 그의 성명을 천거하지 않아 과거시험에 떨어졌다. 그러자 강의실 한 칸을 지어 향리에서 배우고자 하는 이를 받아 오로지 위기지학(爲己之學)에만 힘썼다. 머리를 굽혀 자취를 감추고 이에 거처하면서 마치 장차 몸을 마칠 듯이 하였다.그러나 세상이 더럽혀지고 풍속이 경박한 것을 숭상하게 되어 유학자가 가진 것은 선천구물(先天舊物)에 속해버리게 되었다. 몇 칸의 건물도 거의 지탱하기 어려워서, 나가면 의지거나 기댈 가망도 없고 들어오면 무릎을 허용할 땅도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앙앙(怏怏不樂)하며, 구림(邱林)에서 소요하고 집안에서 움추리고 지내니, 그 힘들고 곤고함은 시대가 그렇게 한 것인지라 누구를 탓하겠는가?집 주변에는 쌍암(雙巖)이 벽처럼 우뚝 서 있어서 때때로 오르내리며 소요하고 걸터앉기도 하면서 이끼를 긁적이고 새의 발자국을 지우기도 했다. 높고 험하여 그 완고함을 사랑하였고, 두드리고 밀어보아 그 견고함에 압도되었으며, 굽어보고 쳐다보거나 누웠다 일어나는 것을 오직 바위에만 의지하였다. 그것을 인하여 문미에 '서암(棲巖)'이라고 편액 하였으니, 옹(翁)은 바위에 대해서는 계획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다만 생각건대 '바위에 깃들어 살며 은미한 효험 바라노라[巖棲冀微效]'32)는 고정 부자(考亭夫子, 주자)가 지은 것인데, 그 귀의처는 유(劉) 병산(屛山)33)이 말한 '회(晦)'에 있다. 지금 옹의 '회적(晦跡, 자취를 감춤)'은 이미 서암 이전에 있으니, 어찌 암서한 이후에 그 은미한 효험을 바랐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가령 '봄의 자태가 찬란히 펴지고, 신명이 안에서 넉넉하다.[春容燁敷, 神明內腴]'34)는 것은 도체(道體)를 다 설명하였고, 정묘함을 철저히 발용(發用)한 것이다. 비록 고정(考亭)과 같은 학문으로도 오히려 평생에 힘을 들였는데, 궁벽한 시골의 만생(晩生, 선배에 대한 후배의 겸칭)이 어찌 감히 갑자기 의의(擬議)할 수 있겠는가? 바로 원하는 바는 곧 주자를 배우는 것이니, 옹의 품은 뜻[志尙]은 여기에 근거해 대강을 볼 수 있다.나 학원은 사산사(泗山祠)의 제사를 대개 창주정사(滄洲精舍)35)에서 행한 예(例)를 본받았는데, 옹이 자주 찾아 주었으니 또한 (주자의) '좋은 날에 꽃을 찾아 사수 가를 찾는다.[勝日尋芳泗水濱]'36)는 뜻을 본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나이를 잊고 함께 놀며 계합(契合)이 매우 친밀하니, 문미에 걸 기문에 대한 요청을 감히 어리석고 비루하다는 이유로 끝내 사양할 수가 없었다.기미년(1919) 10월 하순, 곡부(曲阜) 공학원(孔學源)이 삼가 짓는다. 陰。與金參奉容珣同行。 入華蓋山。 留連。再明到長城弱水亭。 招酒相飮。 隨月色。 至蕨田金吉寧家留宿。翌日入河晩里。 慰問諸友喪。 又明日薄暮轉於郭漢豊舍廊留宿。又明朝。 到女婿家。卽日訪茅峴申錫休氏。 不遇而午飯於柳相春宅。夕陽到晩舞亭孔學源宅。 留數漢回。回路午飯於細谷旺林宅以還。與孔學源論理氣。 學源曰。 "余以'理外無氣。 理在氣中'八字打開。余應之曰 "是也。 是合理氣言。 理氣合而離。 離而合。 一而二。 二而一。 先儒已言之。" 又曰。 "韓南塘經筵論理氣。 引栗谷先生言。 發之者氣也。 所以發者。非氣不能發。 非理無所發。無先後無離合。若分而言之。 理無爲而氣有爲。 理無形而氣有形也。"棲巖記士苦心力學。 不能無意於需世。 而旣不可得。 則晦跡藏修。 獨善其身而已。又不可得。 則厄窮矣。 如非瀕海絶島。 必也窮山巖穴。士而至此。 可不於邑長唏。金永粲氏潭之高士。少而勤學。 克盡修齊之道。老且矻矻。 旁求講磨之益。 有司不擧聲名。 不利於場屋。營講室一屋。 納鄕里之願學者。 專務爲己。屈首屛跡。 爰居爰處。 若將終身而已。世級汚下。 俗尙偸薄。 儒者所有。 屬之先天舊物。 數間棟宇。 殆不支吾。 出無依靠之望。 入無容膝之地。由是焉。 怏怏不樂。 婆娑邱林。 跼蹐戶庭。 其所厄窮。 時也誰尤? 宅邊有雙巖壁立。 時復登降。 盤旋箕坐。搔苔髮而浴鳥跡。 崚嶒而愛其頑。 敲推而服其堅。偃仰臥起。 惟巖是依。 因以棲巖扁其楣。 翁之於巖。 可謂得計。第念'巖棲冀微效'。 考亭夫子所作。 而其歸重在於劉屛山所示之晦。今翁之晦跡。 已在棲巖之前。 豈可謂巖棲然後。 冀其效也? 至若'春容燁敷。 神明內腴'。 說盡道體。 發用精妙到底。 雖以考亭之學。 猶爲平生用力。 寒鄕晩出。 豈敢遽爾擬議? 乃所願。 則學朱子者。 翁之志尙。 卽此而可見梗槪矣。學源俎豆泗山。 放滄洲精舍已例。 而翁頻賜筇屐。 亦效 '勝日尋芳泗水濱'之意。是以忘年相謔。 契合甚蜜。 記楣之請。 不敢以愚陋終辭。歲己未陽月下澣。 曲阜孔學源謹述。 한원진(韓元震, 1682~1751) 자는 덕소(德昭), 호는 남당(南塘), 본관은 청주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이며,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호론(湖論)인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성삼층설에 입각하여 성을 인간과 사물이 같은 초형기(超形氣)의 성, 인간과 사물이 다른 인기질(因氣質)의 성, 인간과 인간이 서로 다른 잡기질(雜氣質)의 성으로 구분하여 파악하였다. 또한 성은 이(理)가 기질 속에 내재된 뒤에 말해질 수 있는 개념이라는 이이(李珥)의 생각을 계승하여, 인성과 물성은 기질을 관련시키는 인기질의 차원에서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와 같은 사고를 바탕으로 인성과 물성은 다르다는 주장을 전개하였다. 그는 미발심체(未發心體)의 문제에 관한 논쟁에서도 미발의 심체는 본래부터 선하다고 주장하는 이간(李柬)과는 달리, 미발의 심체에도 선악의 가능성이 공재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미발심체유선악설(未發心體有善惡說)을 주장하였다. 바위에 …… 바라노라 주자의 〈회암(晦菴)〉시에 "오랫동안 자신하지 못하니 바위에 깃들여 은미한 효험 바라노라.[自信久未能, 巖棲冀微效]"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후 산속에 기거하며 학문에만 정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도산에 있는 퇴계의 암서헌(巖棲軒)과 화양동에 있는 우암 송시열의 암서재(巖棲齋)가 널리 알려져 있다. 유병산(劉屛山) 유자휘(劉子翬, 1101~1147). 자는 언충(彦沖), 호는 병산(屛山), 시호는 문정(文靖)이며, 복건성 숭안(崇安) 사람이다. 주희(朱熹)의 스승이다. 그는 1127년에 금(金)나라가 송나라의 수도 변경(卞京)을 함락시키고 흠종(欽宗)과 휘종(徽宗)을 포로로 끌고 간 정강(靖康)의 난리에서 아버지 유겹(劉韐)이 전사하자, 금나라에 대한 원한의 칼을 품은 채 평생 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무이산(武夷山)으로 들어가 강학에만 힘을 쏟았다.(《송사(宋史)》 권434 유자휘열전(劉子翬列傳)) 봄의 …… 넉넉하다 유자휘가 주희의 자(字)를 원회(元晦)라 지어 주며 남긴 축사에 "나무는 뿌리에 감추어야 봄의 자태가 찬란히 펴지고, 사람은 몸에 감추어야 신명이 안에서 넉넉하다.[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라고 하였다. 주자의 자인 원회(元晦)ㆍ중회(仲晦)와 호인 회암(晦菴)ㆍ회옹(晦翁)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창주정사(滄洲精舍) 주희가 복건성(福建省) 건양현(建陽縣)에 지은 정사이다. 주희가 그곳에서 기거하자 많은 제자가 그리로 모여들어 세상에서 그들을 일러 고정학파(考亭學派)라고 하였다.(《복건통지(福建通志)》) 좋은 …… 찾는다 주희의 〈춘일(春日)〉 시에 "좋은 날에 꽃을 찾아 사수 가를 찾으니, 가없는 봄 풍경이 한때에 싱그러워라. 심상하게 동풍이 얼굴 스친 줄만 알았더니, 붉고 검붉은 수많은 꽃이 모두 봄이로구나.[勝日尋芳泗水濱, 無邊光景一時新. 尋常識得東風面, 萬紫千紅總是春.]"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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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十一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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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정사) 三日 丁巳 -강어대황락(疆圍大荒落)-. 흐림. 【疆圍大荒落】。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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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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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을묘) 初一日 乙卯 -전몽단알(旃蒙單閼)-. 밤에 눈. 큰 바람에 나무가 부러지고 지붕이 날아갔다. 【旃蒙單閼】。夜雪。大風折木發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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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을해) 二十二日 乙亥 -전몽대연헌(旃蒙大淵獻)-. 맑음. 【旃蒙大淵獻】。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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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병자) 二十三日 丙子 -유조곤돈(柔兆困敦)-. 맑음. 【柔兆困敦】。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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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정축) 二十四日 丁丑 -강어적분약(强圉赤奮若)-. 맑음. 【强圉赤奮若】。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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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무인) 二十五日 戊寅 -저옹섭제(著雍攝提)-. 맑음. 【著雍攝提】。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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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갑신) 三日 甲申 -알봉군탄(閼逢涒灘)-. 맑음. 【閼逢涒灘】。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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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을유) 四日 乙酉 -전몽작악(旃蒙作噩)-. 맑음. 【旃蒙作噩】。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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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병술) 五日 丙戌 -유조엄무(柔兆閹茂)-. 맑음. 【柔兆閹茂】。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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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정해) 六日 丁亥 -강어대연헌(强圉大淵獻)-. 맑음. 【强圉大淵獻】。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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