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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고암서원(考巖書院) 김두해(金斗海)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己巳二月季丁 考巖書院 金斗海 等 35名 光州鄕校 己巳二月季丁 金斗海 光州鄕校 광주 진양하씨 사직공파 표산문중 한국학호남진흥원 1809년 2월에 고암서원(考巖書院) 김두해(金斗海) 등 35명이 광주향교(光州鄕校)에 보낸 통문(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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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동환(東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戌十一月 日 終末 東煥 戊戌十一月 日 東煥 영광 추원재 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에 종말(終末) 동환(東煥)이 보내는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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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 우호(楀鎬)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十二月二十九日 楀鎬 圭興 甲戌十二月二十九日 楀鎬 圭興 영광 추원재 한국학호남진흥원 갑술년 12월 29일에 우호(楀鎬), 규흥(圭興)이 보내는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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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있어서 노고가 많으십니다. …▣에 있어서는 한창 농번기를 맞아 참석까지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금 9천 환정을 올립니다. 이에 대해 조사·수용하시고 회신해 주기를 바랍니다.11월 6일에 광주군 잠중리(蠶中里) 한봉석 …▣業에苦勞하심니라…▣있어서는方時農繁期를당하여參席까지는到底히不能이와金九千圜整奉呈하오니査收하시옵고回信하여주시기伏望耳十一月六日光州郡 蠶中里韓奉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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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석(韓奉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十一月六日 韓奉錫 重建期成會 十一月六日 韓奉錫 重建期成會 영광 추원재 한국학호남진흥원 11월 6일에 한봉석(韓奉錫)이 중건기성회(重建期成會)에 보내는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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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한 뒤로 여러 달이 지났는데 조용히 지내는 체후가 연이어 평안하다고 하니 우러러 몹시 축하드립니다.저는 어제 걸어서 도착하여 겨우 몸을 버티고 있습니다. 영광 종중(靈光宗中) 채금(債金)은 아래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400원은 남겨 두고 잔금 4천▣원 61전은 내년 1월 5일 내로 지불하는 것으로 약정하였습니다. 남은 곡식은 매각하여 무사히 우편으로 보내주기를 몹시 바랍니다. 대수롭게 넘기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는 예식을 갖추지 않습니다.갑술년 12월 29일에 한우석·한규흥(韓圭興)이 삼가 편지를 올림.기록함.원금은 603원 65전으로 4월에서 12월까지 7개월분 33원 80전이다.원금의 잔금 447원 45전으로 11월에서 12월까지 2개월분 7원 16전이다.원금은 30원으로 8월에서 12월까지 5개월분 3원이다. 이상 분자(分子)는 도합 43원 96전이다.원분(元分)은 도합 677원 61전 내 230원이다. 두 차례 입금하여 현재 잔액은 447원 61전이다.28원 16전, 5원96전 別后數漢回靜軆連衛万重 仰溯區區至祝 族從昨步到着 僅支耳 ▣灵光宗中債金如左記 余計則四百円引存 殘金四千▣円六十一戔 明年正月五日內支拂爲約 則殘糧賣却 無事郵送之地 万万顒望顒望 勿泛如何 餘不備礼甲戌十二月二十九日 楀錫[韓楀錫]圭興[韓圭興章] 謹抵記元金六百三円六十五戔【自四月至十二月】七个月分三十三円八十戔元金殘四百四十七円四十五戔【自十一月至十二月】二个月分七円十六戔元金三十円【自八月至十二月】五个月分三円 右分子合四十三円九十六戔也元分合六百七十七円六十一戔 內二百三十円也 兩次入現在殘額四百四十七円六十一戔也後面二十八円十六戔五円九拾六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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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전주(全州) 희현당(希賢堂) 도회소(都會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癸酉五月 日 全州希賢堂都會所 光州鄕校 癸酉五月 日 全州 希賢堂 都會所 光州鄕校 광주 양천허씨 허수남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36_01_A00026_001 1873년 5월에 전주(全州) 희현당(希賢堂) 도회소(都會所)에서 광주향교(光州鄕校)에 보낸 통문(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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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나주향교(羅州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癸酉五月 日 羅州鄕校 光州鄕校 癸酉五月 日 羅州鄕校 光州鄕校 광주 양천허씨 허수남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36_01_A00026_001 1873년 5월에 나주향교(羅州鄕校)에서 광주향교(光州鄕校)에 보낸 통문(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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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문이 글은 통지하기 위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효는 온갖 행실의 근원이 되고 삼강(三綱)의 첫째가 되니, 어찌 아름답고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귀 읍의 고 사인(士人)은 허관(許寬)은 세덕(世德)을 논한다면, 문경공(文敬公) 휘 공(珙)의 14대손·대제학 휘 부(富)의 12대손·진사공 휘 창(淐)의 증손입니다. 공은 명가의 후손으로 품성이 순수하고 효성스럽고 집안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연로한데 숙수(菽水)를 계속 대기가 어렵게 되자 산에서 땔나무를 하고 물에서 물고기를 잡아 맛있는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뜻을 봉양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습니다.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펴 드리고 새벽에는 안부 인사를 올림으로써 예법을 부지런히 힘썼으니, 누군들 공경하지 않고 탄복하지 않겠습니까.부친이 연로하고 편찮으셔서 목숨이 거의 끊어질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허벅지살을 자르고 손가락을 잘라서 부친께 먹여 며칠간 다시 살 수 있게 하였지만, 천명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갑자기 숨을 거두자 슬퍼하고 몸을 상한 정상과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는 애통함은 듣는 이들이 감동하고 보는 이들이 탄복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을 장송하는 절차는 고례를 준수하고, 시묘살이한 삼 년 남짓 동안 가래나무를 붙잡고 통곡하여 나무가 말라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매번 밤이 되면 어떤 범이 찾아와 그 곁에 머무르며 호위하듯 지켰는데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삼 년간 이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까닭은 타고난 천성이 사물에 감응한 효성 때문일 것입니다. 아, 허관이여. 이 어찌 아름답고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까.더구나 다시 그 아내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남편의 효행을 준수하여 품팔이하여 부모님께 이바지하였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때는 마음에 들지 않음이 없었고, 죽은 이를 장송하는 절차에서는 슬퍼하고 몸을 상한 정상과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는 애통함이 끝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시묘살이할 때 아무리 모진 추위와 심한 더위에도 날마다 반드시 한 번 찾아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게을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옛날에도 드문 가정의 행실이니, 사림의 공의에 있어 어찌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러러 통지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여러 군자께서는 법사(法司)에 품달하여 서둘러 정려문을 세울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몹시 바랍니다.이 글은 광주향교에 공경히 통지하는 것입니다.1873년 5월 모일에 나주향교 발문(發文) 유학 양시모(梁時模)·류기진(柳基鎭)·오승룡(吳承龍)·임유상(林有祥)·나군집(羅群集)·박기석(朴箕錫)·오응휴(吳應休)·송내옥(宋乃玉) 등 通文右文爲通諭事 夫孝者百行之源 三網之首也 豈非美且大哉 貴邑故士人許 寬論其世德則文敬公諱 珙之十四代孫大提學諱 富之十二代孫進士公諱淐之曾孫也 以名家后裔稟性純孝 家貧親老 菽水難繼 山而樵焉 水而漁焉 甘旨之供 以養志爲先務 晨昏定省之節以禮法爲勤務 孰不欽仰 孰不歎服乎 其父親以老病 命在幾絶 割股斷指 飼之而迴甦數日 天命奈何 奄及屬纊 哀毁之狀 擗踊之痛 聞者感見者服 送終之節 克遵古禮 居廬三年 攀楸痛哭 至於樹爲之枯 每有夜虎來到身傍 有若護衛 而少無畏忌 如是至於三年 此出天感物之孝也 嗟哉 許 寬豈非美且大哉 况復其妻光山金氏克遵其夫之孝行 傭以供父母也 甘旨之供 無不適志 至於送終之境 哀毁之狀 擗踊之痛 罔有紀極 其夫㞐廬之時 雖祈寒盛暑 日必一往 終始不怠 此實自古罕有之行家也 其在士林之公議 未可以含嘿在之 故仰諭 伏願僉君子稟達法司 急爲棹楔之地千萬幸甚右敬通于光州鄕校癸酉五月 日羅州鄕校發文幼學 梁時模柳基鎭吳承龍林有祥羅群集朴箕錫吳應休宋乃玉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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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남원향교(南原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癸酉六月 日 南原鄕校 光州鄕校 癸酉六月 日 南原鄕校 光州鄕校 광주 양천허씨 허수남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36_01_A00026_001 1873년 6월에 남원향교(南原鄕校)에서 광주향교(光州鄕校)에 보낸 통문(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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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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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통문이 글은 통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효는 온갖 행실의 근원이 되고 삼강(三綱)의 첫째가 되니, 진실로 그 적임자가 있다면 어찌 추천하여 천양하지 않겠습니까. 본 도 광주에 고 사인(士人)은 허관(許寬)은 세덕(世德)을 논한다면, 문경공(文敬公) 휘 공(珙)의 14대손·대제학 휘 부(富)의 12대손·진사공 휘 창(淐)의 증손입니다. 공은 명가의 후손으로 품성이 순수하고 효성스럽고 집안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연로한데 숙수(菽水)를 계속 대기가 어렵게 되자 산에서 땔나무를 하고 물에서 물고기를 잡아 맛있는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뜻을 봉양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습니다.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펴 드리고 새벽에는 안부 인사를 올림으로써 예법을 부지런히 힘썼으니, 누군들 공경하지 않고 탄복하지 않겠습니까.부친이 연로하고 편찮으셔서 목숨이 거의 끊어질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허벅지살을 자르고 손가락을 잘라서 부친께 먹여 며칠간 다시 살 수 있게 하였지만, 천명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갑자기 숨을 거두자 슬퍼하고 몸을 상한 정상과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는 애통함은 듣는 이들이 감동하고 보는 이들이 탄복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을 장송하는 절차는 고례를 준수하고, 시묘살이한 삼 년 남짓 동안 가래나무를 붙잡고 통곡하여 나무가 말라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매번 밤이 되면 어떤 범이 찾아와 그 곁에 머무르며 호위하듯 지켰는데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삼 년간 이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까닭은 타고난 천성이 사물에 감응한 효성 때문일 것입니다. 아, 허관이여. 이 어찌 아름답고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까.더구나 다시 그 아내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남편의 효행을 준수하여 품팔이하여 부모님께 이바지하였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때는 마음에 들지 않음이 없었고, 죽은 이를 장송하는 절차에서는 슬퍼하고 몸을 상한 정상과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는 애통함이 끝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시묘살이할 때 아무리 모진 추위와 심한 더위에도 날마다 반드시 한 번 찾아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게을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옛날에도 드문 가정의 행실이니, 사림의 공의에 있어 어찌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우러러 하소연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서둘러 그 공적을 천양해서 한편으로는 선을 장려하는 논의에 부응하고 한편으로는 일제히 통지하는 정성에 부응해 주기를 몹시 바랍니다.이 글은 광주향교에 공경히 통지한 것입니다.1873년 6월 모일에 남원 발문(發文) 유학 방환충(房煥忠)·허복(許馥)·김형찬(金亨賛)·오동일(吳東一) ·김영삼(金永三) 등 通文右文爲通諭 夫孝者百行之源 三網之首也 苟有其人則 豈不薦而揚之乎 本道光州故士人許 寬論其世德 則文敬公諱 珙之十四代孫大提學諱 富之十二代孫進士公諱淐之曾孫也 以名家后裔稟性純孝 家貧親老 菽水難繼 山而樵焉 水而漁焉 甘旨之供 以養志爲先務 晨昏定省之節以禮法爲勤務 孰不欽仰 孰不歎服 其父親以老病 命在幾絶 割股斷指 飼之而迴甦數日 天命奈何 奄及屬纊 哀毁之狀 擗踊之痛 聞者感見者服 送終之節 克遵古禮 居廬三年 攀楸痛哭 至於樹爲之枯 每有夜虎來到身傍 有若護衛 而少無畏忌 如是至於三年 此出天感物之孝也 嗟哉 許 寬豈非美且大哉 况復其妻光山金氏克遵其夫之孝行 傭以供父母也 甘旨之供 無不適志 至於送終之境 哀毁之狀 擗踊之痛 罔有紀極 其夫㞐廬之時 雖祈寒盛暑 日必一往 終始不怠嗟嗟美哉 此實自古罕有之行家也 其在士林之公議 未可以含嘿在之 故玆以仰籲 伏願亟爲薦揚 一以副蔣善之議 一以副齊諭之忱 千萬幸甚右敬通于光州鄕校癸酉六月[南原鄕校]日南原發文幼學 房煥忠 許 馥 金亨賛 吳東一 金永三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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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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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태학관(太學館)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甲辰八月 日 太學館 僉尊座下 甲辰八月 日 太學館 僉尊 광주 양천허씨 허수남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36_01_A00026_001 1904년 8월에 太學館에서 僉尊에게 보낸 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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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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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성균관 통답품(通荅稟)이 글은 통문에 답변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다.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이 주(周)나라를 위한 것이고, 사적을 올리는 것은 송(宋)나라를 사모하는 것이니, 이는 성세(聖世)의 분명한 경계이다. 은전을 내려 표창하고 의풍을 떨친 기록이 국사에 실려 있지만, 용이 형세를 잃어 연못의 물고기와 굴에서 함께 살고 호랑이가 실성하여 교활한 토기와 부류를 함께하니, 사람의 실상(實像)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공을 부르지 않아 도리어 우리보다 못한 것이다. 일의 단서와 이치의 단서는 추천하는 것과 추천하지 않은 것과 관계되니, 오상(五常)과 삼강(三綱) 중에서 오직 효(孝)와 열(烈)보다 중대한 일이 없다. 물고기와 용이 때를 잃어 작은 동물과 부류를 함께 하는 것은 효자와 열녀가 추천되지 않는 것과 사물의 이치로써 보면 서로 같다. 합포(合浦)의 진주가 돌아오고 연산(連山)에서 종유석이 다시 나는 것1)은 선한 정치로 고을에 알려진 것이니 영탄함을 마지않는다.임금께서 "아, 짐은 동궁을 근심하도다. 임자년부터 삼강(三綱)의 어진 자루를 잃을까 두려워서 항상 이 사이를 염려하였다. 조서로 각 성(省)에 하교하여 명망이 높고 어질고 선량한 신하를 선택해서 여러 도에서 조서를 받들게 하고, 문집을 간행하는 공인이 하나하나 옷섶을 잡아서 구슬을 잃어버리는 탄식이 없게 하였으니, 침을 뱉어 놀라서 일어나게 하는 면책을 입겠는가. 말라 죽은 버들에서 새잎이 돋아나니 만년을 돌아보지 않겠는가? 공경심이 그치지 않는구나. 한스러움이 이로부터 생겨났다."라고 하였다.저희가 얼핏 들으니, 전라남도 광주군 삼소지면(三所旨面) 해산리(海山里)에 거주하는 고사(古士)의 족성은 허씨(許氏)이고 휘는 관(寬)이며 본적은 양천(陽川)입니다. 그는 동방의 거벽으로 충(忠)은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를 방불하고 학문은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에서 근원하며 재주는 관중(管仲)과 제갈량(諸葛亮)과 흡사하니, 대대로 이 가문을 끊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 명맥은 문경공(文敬公) 휘 공(珙)의 14대손이고 이조 판서, 홍문관 대제학을 역임한 휘 부(富)의 11대손이며 성균관 생원을 지낸 휘 창(淐)의 증손에서 나왔습니다.공의 학문과 행실은 여러 직책에서 알려져 감탄하고 흠모하였습니다. 음식이 옥쟁반에 놓였으니, 이를 모르는 자는 소경과도 같습니다. 귀 군의 유복(儒服)의 실상을 살펴보면, 주곡(周谷)의 정채(精彩)처럼 밝게 빛나 규옥은 깎이지 않고 거울은 때 묻지 않으며 색은 변하지 않으니, 이 사람의 모습과 이 사람의 절도는 물기(物機)와는 견줄 것이 없습니다. 과실이 없는 가지는 아래로 대광주리를 잡고 헛된 마음을 버릴 줄을 생각하고, 구슬을 꿰는 자리에서 그치지 않으며, 돈으로 보배를 맺고 사람으로 자루를 들어서 진정으로 정립한 정학(正學)을 헛되이 지키지 않고, "초나라는 보물로 삼는 것이 없고 오직 사람만을 보물로 삼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장차 천리를 비추는 것은 위나라의 네 신하인데, 지금 천리를 비추는 것은 우리나라의 한 사람입니다. 옛 나라의 네 신하를 어찌 지금 시대의 한 현인과 견주겠습니까? 우러러 앙모하는 심정이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갖춤이 단간목(段干木)의 집이 아니라면2) 오직 허군의 거처일 것입니다. 점차 완화계(浣花溪)3)는 되지 못하지만 초택(草宅)과 광산(光山)의 택인(擇仁)4)이 될 것입니다.그 아내 김씨가 허씨의 가문에 시집갔는데 광산의 고적(故籍)이 문정공 휘 태현(台鉉)에게서 나왔고, 후손의 범절은 규문의 예법을 어기지 않아 어버이를 곁에서 함께 모셨습니다. 또 예를 집행하고 여막에 사는 절차에서는 온갖 기송(杞宋)의 상례 절차에 한결같이 힘써서 홀로 정신을 차리기를 그치지 않았고, 아송(雅頌)의 제절(祭節)은 염락십철(濂洛十哲)을 본받았으니, 이와 같은 열행(烈行)을 어찌 천양하는 자리에서 아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저희는 공께서 선행을 포창할 인물을 추천할 때 어찌 그 행적을 아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즉시 포창하여 세풍(世風)이 백세토록 전해지기를 몹시 바랍니다. 이상은 여러 첨좌하께 공경히 통문한 것입니다.이 장문을 읽어보니, 두 가지 효열(孝烈)을 공경하고 가상할 만합니다. 즉시 정려문을 세워서 동방의 백성들이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의당할 것. 24일 합포(合浦)의……것 청렴한 정사를 펼친 것을 말한다. 동한(東漢) 때 맹상(孟嘗)이 합포 태수(合浦太守)로 부임하여 폐단을 개혁하고 청렴한 정사를 펼치자, 생산되지 않던 진주(珍珠)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는 고사가 전하고, 영주(永州) 영릉현(零陵縣)에서 종유석(鐘乳石)이 생산되는데, 나라에서 공물을 착취하자 지방민들이 종유석이 바닥났다고 보고하였다가 최민(崔敏)이 선정(善政)을 베풀자 그곳 백성들이 종유석이 다시 난다고 보고한 고사가 전한다.(『후한서』 권 76 「순리열전(循吏列傳)」,『류하동집(柳河東集)』「영릉복유혈기(零陵復乳穴記)」) 예를……아니라면 위 문후(魏文侯)는 전국(戰國) 시대의 은자였던 단간목(段干木)의 마을을 지날 때 수레의 횡목(橫木)을 잡고 몸을 굽혀 예를 표한 고사를 말한다.(『呂氏春秋』 「期賢」) 완화계(浣花溪) 사천성(四川省) 성도현(成都縣)의 서쪽에 있는 곳으로, 골짜기가 깊고 물이 맑아 두보(杜甫)가 이곳에서 살았다. 택인(擇仁) 인후한 풍속을 지닌 마을을 골라서 사는 것을 말한다. 舘通荅稟 覧此狀文 則兩間孝㤠 欽仰嘉尙 卽立旌閭 俾此海東之民開眼宜當者 卄四日右文爲荅通事 尊攘爲周 進蹟慕宋 聖世之昭界也 褒典揚義 載在於國史 而龍之失勢 與池魚同穴 虎之失性 與狡兎知類 人之實像 不招摸工 還下於鄙等者 事之端理之端係於薦不薦 是五常三綱 惟孝惟烈 爲大事莫於斯也 以魚龍失時 與小物同類也 以孝裂不薦 以物理渠亦相似 合?浦歸連山乳復 以善聞於郡 永欽不已 王若曰嗚呼 朕憂東宮 奧自壬子恐失三綱之賢柄 常念在玆間 詔下敎於各省 擇望重賢良之臣 奉勅于列道 以剞劂之工一一執秹 而無遺珠之嘆矣 被唾起之責耶 枯楊生梯 不顧乎晩 欽不止十 恨自此生矣 鄙等傾聞全羅南道光州郡三所旨面海山里居古士族姓曰許氏 諱曰寬 籍曰陽川也 以東邦之巨擘 忠或房杜 學源程朱 才或管葛 世世不絶于此也 裔脉出於文敬公諱珙十四代孫吏曹判公弘文舘大提學 諱富之十一代孫成均舘生員諱淐之曾孫也 公之學行聞於列座 嘆哉欽哉 飯飡置玉 不識者盲杖也 覽此貴郡之儒服實像暎照于周谷之精彩也 圭之不磨 鏡之不埋 色之不變 斯人之形斯人之節莫比於物機矣 無果之枝 下執筐思捨虛心 不止貫珠之席上 以緡結宝 以人擧柄 不虛守眞立正學 曰楚國無以爲宝 惟人爲宝 將照千里者魏之四臣 今照千里者 吾邦一人也 以古國四臣何當於今世一賢 景仰不已 式庐非段干木之門 惟許君之居 漸作伐籬之剖 不爲花溪之卜 聞君草宅光山之擇仁也 其妻金氏及笄於許氏之門 而以光山故籍出文正公諱台鉉 裔儀範不下於閨門之禮 同待親側 又在執禮居庐之節 如一勵百杞宋喪節 獨醒不已 以雅頌祭節效於濂洛十哲 如此烈行 豈不聞於薦揚哉鄙等擧公褒善之地何不揚蹟哉 頃刻卽褒 世風傳於百世之地 幸甚右敬通于僉尊座下 甲辰 八月 日太學舘稟通前吏曹判書 金宗漢 前吏曹參判 尹相翊 前進士 徐祥浩前成均舘 生員 泮首 申榮雨 前參奉 崔永祚 前禮曹參判 金宗【今益】昇 前牧使 朴濟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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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1년 허씨대종회(許氏大宗會)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辛未六月 日 許氏大宗會 全羅道 許氏宗中 辛未六月 日 [1931] 許氏大宗會 全羅道 許氏宗中 광주 양천허씨 허수남가 한국학호남진흥원 1931년 6월에 허씨대종회(許氏大宗會)에서 전라도(全羅道) 허씨종중(許氏宗中)에 보낸 통문(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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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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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윤회문(輪回文)위는 통지하여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생각건대, 우리 선조 문경공(文敬公)·문정공(文正公)·야당공(埜堂公)·매헌공(梅軒公)·양양공(襄陽公)·재령공(載寧公)·상우당(尙友堂)·전부공(典簿公)의 위토(位土)와 산림이 우근리(禹勤里) 구역 내에 있습니다. 여러 대에 걸쳐 수호한 이래로 작년 7월경에 대종손이 금원(金圓) 3,050원을 장단읍(長湍邑) 사람에게 전당 잡혔는데, 반년이 지나지도 않아 올해 1월 26일에 부자가 참사(慘死)하였으니, 종손의 불행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선조의 불행이고, 선조의 불행이 아니라 바로 우리 종족의 불행입니다. 그렇지만 선산을 수호하는 임무는 자손들의 정성에 근본합니다. 그러므로 근처에 사는 장단 한 군의 여러 종족이 서너 차례나 회의하고 타결해서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하기로 하였는데, 이전비는 도합 20,060원입니다. 한 고을의 쇠잔한 종족으로서는 이 거액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각 도와 각 군의 종친이 사는 곳의 수렴 유사(收斂有司)를 제종(諸宗)의 종중 각 원에게 보내도록 명한다면 선조를 위한 입장에서 누군들 공손히 허락하고 공경히 하례하지 않겠습니까.생각해 보건대, 우리 종친들은 어른과 아이를 막론하고 형편에 따라 넉넉히 협조해 주기를 몹시 바랍니다.이 글은 전라도 허씨 종중에 공경히 통지하는 것입니다.1931년 6월 모일에 발문 전 참판 진(璡)·장단 군수 섭(燮)·전 진사 영(泳)·제주 향유사 갑(鉀)·전 찰방 규(珪)·전 승지 환(鋎)·전 주사 달(達)·전 참봉 병(炳) 輪回文右通諭事 惟我先祖 文敬公文正公埜堂公梅軒公襄陽公載寧公尙友堂典簿公位土與山林在於禹勤里區內累代守護以來客年七月頃大宗孫 金圓 [許氏大宗會印] 參千 [許氏大宗會印] 伍十圓典執于長湍邑人 不過半歲 今年正月卄六日父子慘死 而是則非宗孫之下幸 即吾先祖之不幸 非先祖之不幸 即吾宗之不幸 然而先山守護子孫之本誠 故近居者長湍 [許氏大宗會印] 一郡諸宗三四次會議而觧決 費與共同移轉 費合二萬六 [許氏大宗會印]十圓也 一郡殘族不勝其鉅額 故自各道各郡僉宗所居處收斂有司命送于 諸宗宗中各員前 則爲先之地孰不恭聽而欽賀哉 惟我僉宗無論冠童 隨其勢力 優助之地千萬 [許氏大宗會印]幸甚右敬通于全羅道 許氏宗中辛未六月 [許氏大宗會印]日發文 前參判 璡 [許氏大宗會印] 前察訪 珪長湍郡守 燮 前承旨 鋎前進士 泳 前主事 達 [許氏大宗會印]濟州 鄕有司 鉀 前參奉 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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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幼學吳鼎煥 生員三等第三十六人入格者乾隆五十五年九月十一日[施命之寶](背面)幼學吳鼎煥生員三等第三十六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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步支石夜吟 春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b685523.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9pixel, 세로 48pixel如練勝淸秋殘月微烟共色流箇裏那堪同賞味强携詩杖問芳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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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朴升柱宿西倉夜占【辛酉春】 短林細柳洞門開邀友說詩更勸盃溪雲峰月時將好步立城頭問後來雨好朋良夜正閒溪聲雲影入窓寒如今相合非偶事翦燭談詩意自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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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歎口信【庚申十月】 人間不化龍虎子山彼無依水兮同回頭摩前程揣去一達丈夫一先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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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崔友月湖別贈 山屛精舍景明天講討日三得益然城程悵別無君我頻願藿場有賁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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