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정미) 十一日 丁未 흐림. 비 온 흔적이 있었다. 선묘(先墓)의 시향(時享)90)을 지냈다. 시향을 지낸 후에 묘정(墓庭)에서 말하기를 "우리 제족은 밝게 나의 말을 들어라. 왕자공(王子公)91) 이하 9세조의 묘지는 선대에 이미 제전(祭田)을 세웠고, 묘각(墓閣)을 수축하여 받들어왔다. 8세조 이하는 절로 한 파를 이뤄 구족(九族)에 이르는데, 아직도 제전을 세우거나 제각(祭閣)을 수축하지 못해서 해마다 시향 때면 제수를 설비할 방도가 없었다. 내가 지금 현주(玄酒, 물)와 청작(淸酌, 맑은 술)을 바쳐 궐향(闕享)을 면하였다. 바라건대, 너희 제족은 각각 정성을 다하여 비록 산 고사리와 마름풀[水藻]일 지라도 정결하게 해서 공봉(供奉)하라. 이훈(伊訓)에 이르기를 '귀신은 항상 흠향함이 없이 지극히 정성스러운 것만을 흠향한다.[鬼神無常享, 極誠惟享]'92)라고 하였다. ≪역≫에서 이르기를 '동쪽 이웃에서 소를 잡아 성대히 제사 지낸 것이 서쪽 이웃의 약제가 실제로 그 복을 받는 것만 못하다.[東家殺牛, 不如西家之禴祭實受其福]'93)고 하였으니, 너희들은 잘 염두에 두어라. 한문공(韓文公, 한유)은 〈명수부(明水賦)〉에 말하기를 '옛날 성인의 제도에 제사는 반드시 충경(忠敬)을 주로 하며, 길견(吉蠲)94)을 높이지 그 풍성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그 제수의 풍성함과 약소함은 가력(家力)이 어떠한가에 따라야 하고, 그 예와 절차는 제관이 갖추어지고 제물의 갖추어짐이 어떠한가에 따라야 한다. 바라건대, 우리 제족(諸族)은 '곳집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倉稟實而知禮節]'95)고 말하지 말고, 각기 그 정성을 다하라."라고 하였다. 陰雨痕。行先墓時享。 時享後墓庭說。 "惟我諸族明聽吾言。自王子公以下。 至于九世祖墓。 先代已爲立祭田。 修墓閣而尊奉之。自八世祖以下。 自成一派。 至于九族。 固未立祭田。 修祭閣。 年年時享。 末由設備。余今以玄酒淸酌之奠。 以免闕享。惟爾諸族。 各盡其誠。 雖山薇水藻。 精潔供奉。伊訓曰 '鬼神無常享。 極誠惟享。' ≪易≫曰。 '東家殺牛。 不如西家之禴祭。 實受其福。'。 汝等其念之。韓文公〈明水賦〉曰。 '古者聖人之制。 祭祀也。 必主忠敬。 崇吉蠲。 不貴其豊。'。 其豊其約。 隨家力之何如。 其禮其節。 官備具備何如。惟我諸族。 勿謂'倉稟實而知禮節'。 各盡其誠。" 시향(時享) 절기마다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한식 또는 10월에 5대조 이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관행적으로 칭하는 것으로, 시제(時祭), 시사(時祀)라고도 한다. 묘소에서 지낸다고 하여 묘제(墓祭), 묘사(墓祀), 묘전제사(墓前祭祀)라고 하며,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모신다고 하여 세일제(歲一祭), 세일사(歲一祀)라고 한다. 왕자공(王子公)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金興光)을 말한다. 시조 김흥광은 ≪동국만성보≫ 및 ≪조선씨족통보≫에는 신라 49대 헌강왕(憲康王)의 왕자로 기록되어 있다. 귀신은 …… 흠향한다 ≪서경≫ 〈태갑 하(太甲下)〉에서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고한 말이다. "아! 하늘은 친히 하는 사람이 없이 능히 공경하는 자를 친하시며, 백성들은 항상 그리워하는 사람이 없이 인이 있는 자를 그리워하며, 귀신은 항상 흠향함이 없이 지극히 정성스러움에 흠향하니, 천자의 지위가 어렵습니다.[嗚呼, 惟天無親, 克敬惟親, 民罔常懷, 懷于有仁, 鬼神無常享, 享于克誠, 天位難哉.]"라고 하였다. 동쪽 …… 못하다 ≪주역≫ 〈기제괘(旣濟卦)〉 구오(九五)에 "동쪽 이웃에서 소를 잡아 성대히 제사 지낸 것이 서쪽 이웃의 약제가 실제로 그 복을 받는 것만 못하다.[東鄰殺牛, 不如西鄰之禴祭, 實受其福.]"라는 말이 나온다. 약제는 박제(薄祭), 즉 검소한 제사를 말한다. 길견(吉蠲) 길일(吉日)을 택하여 정결하게 제계(齊戒)하여 제사하는 것이다. ≪시경≫ 〈천보(天保)〉에 "길일을 잡아 정결히 주식(酒食)을 장만해 이를 효성으로 제향한다.[吉蠲爲饎 是用孝享]" 하였다. 곳집이 …… 안다 ≪관자(管子)≫ 〈목민(牧民)〉에 "곳집이 가득 차면 예절을 알게 되고, 의식이 풍족하면 영욕을 알게 된다.[倉廩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