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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경신) 二十三日 庚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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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신유) 二十四日 辛酉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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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임술) 二十五日 壬戌 흐림. 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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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계해) 初一日 癸亥 흐림. 처사(處士) 유중교(柳重敎)49)의 편지를 보았다. ≪춘추(春秋)≫필법을 인용하여 '이적의 도가 있으면 이적이다.'라는 말과 '중하(中夏)가 현재 이적의 상황에 있으면 이적의 상황에 알맞게 처신한다.'50)의 주(註)에 "공자와 같은 경우 구이(九夷)에 살고자 하였으니, 군자가 거처한다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51)라고 한 의미를 참고하고 고증하여 헤아려보니, 고도(古道)를 바꾸지 않아야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陰。見處士柳重敎書。引春秋法。 '有夷道則夷之'之言。 與'中夏素夷狄。 行乎夷狄'。 註 "如孔子。 欲居九夷。 君子居之。 何累之有?"之義。 參互考訂忖度。 則不變古道。 無愧於心。 유중교(柳重敎, 1832∼1893) 초명은 맹교(孟敎), 자(字)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省齋),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아버지는 진사 유조(柳鼂)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이희복(李羲復)의 딸이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의 문인으로, 이항로의 사후에는 김평묵(金平默, 1819~1891)을 스승으로 섬겼다. 저서로는 ≪성재집((省齋集)≫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중하(中夏)가 …… 처신한다 ≪중용장구≫ 제14장에 "군자는 현재 처한 위치에서 알맞게 행동할 뿐이요, 그 이외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현재 부귀하면 부귀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고, 현재 빈천하면 빈천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며, 현재 이적(夷狄)의 가운데에 있으면 이적의 상황에 알맞게 처신하고, 현재 환난 속에 있으면 환난의 상황에 알맞게 처신한다. 따라서 군자는 어느 때 어느 곳에 있든 간에 자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가 …… 있겠는가? 공자께서 구이에 살려고 하시니, 혹자가 말하기를 "그곳은 누추하니,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였다. 이에 공자가 대답하기를 "군자가 거처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라고 하였다.(≪논어≫ 자한(子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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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을미) 初一日 乙未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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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병신) 二日 丙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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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갑오) 三十日 甲午 흐리고 추움. 陰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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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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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정유) 初一日 丁酉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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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기해) 三日 己亥 흐림. 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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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경자) 四日 庚子 흐리다가 맑음. 陰而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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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임인) 六日 壬寅 맑음. 〈임회처사실기(臨淮處士實記)〉를 보았다.공의 성은 박씨이고, 휘(諱)는 희권(希權), 자는 천경(天經)으로, 반남인(潘南人)이다. 단종의 신하로 김매월(金梅月)82)・남추강(南秋江)83)・원관란(元觀瀾)84)・조어계(趙漁溪)85)・성문두(成文斗)86)・이경은(李耕隱)87) 등 여섯 선생이 있었는데, 자연에 자취를 감추고 세상을 영영 버리고 은둔하였으니, 그 고충(孤忠)과 과절(姱節)은 백대의 스승이 될 만하다. 당시에 또 공이 있었는데 스스로 정절을 지키다 죽었다.대개 공이 눈물로 그의 아버지에게 권하여 진산(珍山) 군수의 관직을 버리고 사육신(死六臣)과 일을 함께 하기로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부자가 함께 금산(錦山)의 장평(獎坪)에 은거하여 시골 사람들과 자취를 섞여 당세에 일을 하려는 뜻을 끊었다. 매번 24일을 만나면 집의 북쪽에 단을 설치하고, 영월을 바라보고 곡을 하고 혼을 불러 제사를 지냈다.또 기록한 것이 있는데, "정인지(鄭麟趾), 정창손(鄭昌孫) 등이 당시 군주의 뜻에 영합하여 상왕을 밖으로 축출하기를 청하였고, 또 안에서 밀지를 내려 조정을 몰래 풍자하였다. 소계(疏啓)를 진달하여 청할 때에는 매번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이름을 머리에 올렸는데, 이 당시에 양녕대군은 관서지방에 여행 중이어서 실로 알지 못하였기에 전가(轉嫁)한 허물이 있었다."라고 하였다.또 공의 선고(先考, 돌아가신 아버지)인 진산 군수(珍山郡守)의 묘갈문(墓碣文)을 저술하였다.아, 불초한 제가 일찍이 듣건대 선유는 '군자는 그 친을 사사로이 여기지 않고 또 그 친을 친압하지 않는다.[君子不私其親, 亦不昵其親]'라고 말하였는데, 우리 황고(皇考, 아버지)의 행적을 기술함에 실제의 근거를 얻지 못한다면 장차 친을 사사로이 여기고 친을 친압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기 때문에 실적을 기록하여 신천(新阡)에 표한다.아, 우리 황고께서는 비조(鼻祖)인 호장공(戶長公)의 구세손이요, 사온(司醞) 직장공(直長公)의 현손이며, 문정공(文正公) 반남선생의 종현손이다. 가정과 백성을 잘 다스려 은혜와 위엄을 병행했으니, 이것이 그 실적(實蹟)이다.부군(府君)의 성은 박씨이며, 계통은 반남이고, 휘는 린(麟), 자는 성상(聖祥)으로, 영락(永樂)88) 갑오년(1414) 2월 3일에 태어나셨다. 경태(景泰)89) 원년 경오년(1450)에 처음으로 벼슬하였는데, 단종 계유년(1453)에 음직으로 진산군수가 되었다. 을해년(1455)에 선위(禪位)의 명이 있자, 불초고(不肖孤)가 영월의 행재소로 달려가 알현하려 했으나 구질(九耋)의 노모 김씨가 훈계하시길 '신하가 임금을 위해 죽는 것은 의리상 당연하지만, 너희 부자가 천리를 달려가 의리를 붙들 때 늙은 나는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너희는 그것을 헤아려 보라.'라고 하시자, 자친(慈親)의 명을 받아들여 그날로 벼슬을 버리고 금산 장평으로 물러나 살다가 무인년(1458) 정월 4일에 졸하였다. 13일에 본군[금산] 부동면(富東面) 양각산(羊角山) 아래 내장리(內腸里) 뒤쪽 인질산(釼叱山) 손하병좌(巽下丙坐) 언덕에 안장하였다. 배우자 영인(令人) 청풍김씨(淸風金氏)의 오른쪽에 부장했다.공(公)의 고(考) 휘는 두언(諱杜)이고, 자는 칠회(七晦)로, 세종조에 문과에 올라 승문원교감(承文院校勘)을 지냈다. 모 숙부인(淑夫人)은 연안김씨(延安金氏)로 부는 찬성(贊成)인 휘가 수(修)인 분이다. 조고(祖考)의 휘는 충(冲)이며, 자는 군유(君幼)로 태종조에 문과에 합격해 교서정자(校書正字)에 올랐다. 조비(祖妣) 숙부인은 무송윤씨(茂松尹氏)로 부는 사직(司直)인 휘가 변(汴)인 분이다. 증조고(曾祖考)의 휘는 힐(詰), 자는 원직(元直)이다. 태종조에 은둔하며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자, 임금이 그 절개를 가상히 여겨 제용감(濟用監) 벼슬과 동리에 집터[家垈]를 하사했으나 받지 않았다. 증조비(曾祖妣) 유인(孺人)은 철원최씨(鐵原崔氏)로 부는 간성도사(杆城都事) 인두(仁㺶)이다. 고조고(高祖考)의 휘는 상경(尙褧)으로 사온직장(司醞直長) 벼슬을 지냈고, 고조비(高祖妣) 단인(端人)은 서원염씨(瑞原廉氏)로 부는 밀직부사(密直副使) 대유(大有)이다.공의 배우자 영인(令人) 청풍김씨(淸風金氏)는 부가 좌의정(左議政) 달도(達道)인데, 2남 3녀를 낳았다. 첫째 아들은 희권(希權)이고, 둘째 아들 희손(希遜)인데 요절했다. 첫째 딸은 이신지(李新之)에게 시집갔고, 둘째 딸은 중명(仲命)에게 시집갔는데, 문과 출신이다. 셋째 딸은 김구영(金九英)에게 시집갔는데, 예조정랑(禮曺正郞)이다. 희권은 5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호인(好仁)과 부사과(副司果) 호의(好義), 생원(生員) 호례(好禮), 호지(好智), 호신(好信)이다. 딸은 김양손(金陽孫)에게 시집갔다. 내외의 증현손(曾玄孫)을 모두 기록하지 못하고 위와 같이 찬차(撰次)한다. 불초고가 추모의 뜻을 명문(銘文)으로 짓는다.우리 황고께서는(惟我皇考)높은 절개가 산과 같아라.(峻節如山)우리 황고를 생각하면,(念我皇考)순수한 효성이 샘물처럼 끝없네.(純孝如泉)새로 쓴 무덤 위에는,(新阡之上)푸른 산이 창창하고,(有山蒼蒼)새로 쓴 무덤 아래엔(新阡之下)끝없는 강물이 앙앙하도다.(有水泱泱)군자의 덕을 갖추시고(君子之德)동정에 떳떳함이 있으셨네.(動靜有常)경태(景泰) 10년 기묘년(1459) 3월 상완(上浣)에, 불초고(不肖孤) 희권(希權)이 삼가 찬하고 아울러 쓰다. 陽。看〈臨淮處士實記〉。公姓朴氏。 諱希權。 字天經。 潘南人。魯陵之臣。 有金梅月・南秋江・元觀瀾・趙漁溪・成文斗・李耕隱六先生。 放迹山水。 長往不返。 其孤忠姱節。 可以爲百世師。時又有公。 自靖以歿其身。蓋公泣勸其父。 投珍山郡紱。 而欲與死六同事不得。 則遂父子俱隱于錦山之獎坪。 混迹漁樵。 絶意當世。每値十月二十四日。 設壇家北。 哭望寧越。 招魂以祭。又有所錄。 "鄭麟趾鄭昌孫等。 迎合時君之意。 請黜上王于外。 而且內降密旨。 陰諷朝廷。陳請疏啓。 每以讓寧大君名爲首。此時讓寧出遊關西。 實不知而有嫁累"云。又著公先考珍山郡守府君墓碣文。嗚呼! 不肖孤嘗聞之。 先儒曰 '君子不私其親。 亦不昵其親。' 述我皇考行蹟。 不得據實。 則將不免私親昵親之譏。 故記以實蹟。 表于新阡。嗚呼。 惟我皇考。 鼻祖戶長公九世孫也。 司醞直長公之玄孫也。 文正公潘南先生之從玄孫也。克居家莅民。 恩威竝行。 此其實蹟也。府君姓朴氏。 系潘南。 諱麟。 字聖祥。生於永樂甲午二月三日。 筮仕於景泰元年庚午。 端廟癸酉蔭珍山。當乙亥禪代命。 不肖孤欲赴謁寧越行在所。 而九耋老母金氏戒之曰 '臣之死君。 義則當然。 而汝之父子。 千里扶義。 老我何依? 汝其諒之。'。 拜受慈親之命。 卽日投紱。 退居錦山獎坪。 而戊寅正月四日卒。三月十三日葬于本郡富東面。 羊角山下。 內腸里後釼叱山巽下丙坐原。配令人淸風金氏附右。公之考諱杜彦。 字七晦。 世宗朝文科。 承文院校勘。妣淑夫人延安金氏。 父贊成諱修。祖考諱冲。 字君幼。太宗朝文科。 校書正字。祖妣淑夫人茂松尹氏。 父司直諱汴。曾祖考諱詰。 字元直。太宗朝隱遯不仕。 上嘉其節。 賜濟用監。 洞家垈不受。曾祖妣孺人鐵原崔氏。 父杆城都事諱仁㺶。高祖考諱尙褧。 官司醞直長。高祖妣端人瑞原廉氏。 父密直副使諱大有。配令人淸風金氏。 父左議政諱達道。 生二男三女。長希權。 次希遜早圽。女長適李新之。 次適仲命文科。次適金九英。 禮曺正郞。希權五男一女。男好仁・好義副司果・好禮生員・好智・好信。女金陽孫也。內外曾孫。 多不盡錄。 而撰次如右。不肖孤追慕之志。 爲之銘。曰 惟我皇考。 峻節如山。 念我皇考。 純孝如泉。新阡之上。 有山蒼蒼。 新阡之下。 有水泱泱。君子之德。 動靜有常。景泰十年己卯三月上浣。 不肖孤希權。 謹撰。竝書。 김매월(金梅月) 김시습(金時習, 1435~1493)으로,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법호는 설잠(雪岑),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널리 알려졌는데, 21세 때에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簒奪)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보던 책들을 모두 불사른 뒤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 사육신이 처형되던 날,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주었고, 31세 되는 해에 경주의 남산인 금오산에 머물며 성리학과 불교를 연구하는 한편,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으며, 다시 방랑생활을 계속하다가 59세에 별세하였다. 숙종 때 생육신(生六臣)의 일원에 올랐다. 남추강(南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1492)으로,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행우(杏雨)・최락당(最樂堂)・벽사(碧沙),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1480년(성종11)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원관란(元觀瀾) 원호(元昊)로, 자는 자허(子虛), 호는 관란재(觀瀾齋)・무항(霧巷),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1423년(세종5)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직제학을 지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보고 낙향하여 은둔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조어계(趙漁溪) 조려(趙旅, 1420~1489)로,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 본관은 함안(咸安),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1453년(단종1, 계유) 성균관 진사가 되어 당시의 사림 사이에 명망이 높았으나, 1455년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禪位)하자 성균관에 있다가 함안으로 돌아와 서산(西山) 아래에 살았는데, 이 산을 후세 사람들이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 그는 벼슬을 하지 않고, 다만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스스로 어계라 자호하였다. 저서로 ≪어계집≫이 있다. 성문두(成文斗) 성담수(成聃壽, ?~?)로, 자는 미수(眉叟)・이수(耳叟), 호는 문두(文斗), 본관은 창녕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이경은(李耕隱) 이맹전(李孟專, 1392~1480)으로, 자는 백순(伯純), 호는 경은(耕隱), 본관은 벽진(碧珍)이다. 1427년(세종9) 문과에 급제하여 거창 현감을 지냈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선산으로 돌아간 뒤로 30여 년을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영락(永樂) 중국 명나라 성조의 연호로, 1403〜1424년에 해당한다. 경태(景泰) 중국 명나라 대종 때의 연호로, 1450〜1456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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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30일(임술) 三十日 壬戌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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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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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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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3월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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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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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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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5일(기해) 二十五日 己亥 맑다가 흐림. 엊그제 어린 손자를 데리고 와서 유숙(柳塾)에 입학시켰다. 그(손자)의 아비가 오자 애친지심(愛親之心)이 더욱 도타워져서 배움을 버리고 가버렸다. 거연히 기술한다.내가 배움으로 이끈 것은 성(性)의 욕구이며, 네가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은 성(性)의 이치이다. 성의 욕구란 것은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선(善)을 좋아하며, 성의 이치란 것은 양지양능(良知良能)1)함이다. 나와 너 사이에는 추구하는 것[趨向]이 같지 않으니, 나의 뜻대로 하고자하면 너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너의 뜻대로 하고자하면 나의 뜻을 어기게 된다.대저 일찍이 위인지리(爲人之理)에 대해 논했으니, 공자는 이르기를, "일음 일양을 도라고 하니, 그것을 잇는[발하는] 것이 선이고 그것을 이룬 것이 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2)라고 했다. 성(性)이란 것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인데, 맹자는 사단(四端)으로 끄집어내어 말하였고, 정자(程子)3)는 이것을 미루어 상달(上達)4)하였다.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이르러서 원래부터 이 이치가 있으며, 무성무취(無聲無臭)하고 혼연히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진실 무망5)한 것이 성(誠)이다. 때문에 성(誠)이 속에 있는 것을 신단(信端)으로 끄집어내어 말한 것이다. 이것 또한 맹자의 본래 뜻이다.그러나 얕은 견문과 지식으로는 두루 알기가 쉽지 않다. 가만히 ≪근사록(近思錄)≫의 한 단락을 생각해보니, 인(仁)에는 자애(慈愛)하고 온화(溫和)하다는 의미가 있고, 의(義)에는 참렬(慘㤠)하게 결단한다는 의미가 있다. 예(禮)에는 선저(宣著, 드러냄)하고 발휘(發揮)한다는 의미가 있고, 지(智)에는 수렴(收斂)하되 흔적이 없게 하는 의미가 있다.6) 이 네 가지의 의미는 곧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계절이 유행하는 기상이다.음양(陰陽)으로 총괄해보면, 온화하고 선저한 것은 양이고, 참렬하고 수렴한 것은 음이다. 오행(五行)에 해당시켜 보면, 온화·선저는 목(木)과 화(火)에 해당하고, 참렬과 수렴은 금(金)과 수(水)에 해당한다. 이 네 가지에 기왕(寄旺, 붙어서 왕성함)하여 성실(誠實)한 것이 토(土)이다. 천도(天道)의 원형이정(元亨利貞)은 곧 이것일 뿐이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원형이정은 천도의 떳떳함이요, 인의예지는 인성의 벼리이다.[元亨利貞, 天道之常. 仁義禮智, 人性之綱]"7)라고 하였다. 이는 실로 하늘과 사람의 이치로, 꼭 맞아떨어져 흠잡을 데 없는 말이다.하늘과 사람 사이에 소이연(所以然, 그렇게 되는 까닭)은 태극(太極)이요, 소연(所然, 그렇게 되는 현상)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그렇다면 태극은 이(理)요, 음양오행은 기(氣)이다. 다만 이러한 이와 기가 엉기고 교감하여 천지가 처음 열렸으니, 천지 사이에 가득한 것은 모두가 이와 기로, 만고(萬古)토록 유행(流行)하고 만물(萬物)을 화생(化生)한다.사람이 이 이치의 온전함을 품부 받아서 선으로 발현하고 성으로 이룬다.8) 성의 양지양능을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것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너의 능한 것을 따르고 나의 인도한 바를 생각하여 지키고 잃지 말지어다. 陽而陰。再昨率穉孫以來。 入學于柳塾。渠父之來。 愛親之心尤篤。 捨學以去。居然述之。余之引學者。 性之欲也。 汝之戀親者。 性之理也。性之欲者。 好學好善也。 性之理者。 良知良能也。余汝之間。 趨向不同。 欲遂余志。 咈汝志也。 欲遂汝志。 咈余志也。盖嘗論乎爲人之理。子曰。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 性也者。 仁義禮智信也。 孟子剔出四端而言之。程子推此上達。以至於至靜之中。 元有此理。 無聲無臭。 渾然全具。眞實無妄者誠也。故以誠在中者。 惹出信端而言之。此亦孟子之本意也。然淺見薄識。 難可容易周識矣。竊想 ≪近思≫一段。 仁有慈愛溫和底意思。 義有慘㤠强斷意思。 禮有宣著發揮底意思。 智有收斂無痕跡意思。此四意思。 卽春夏秋冬四時流行底氣象也。總之於陰陽。 則溫和宣著者陽也。 慘烈收斂者陰也。敷之於五行。 則溫和宣著者木火也。 慘烈收斂者金水也。寄旺於四者。 以誠實者土也。天道之元亨利貞。 卽此而已。朱子曰 "元亨之利貞。 天道之常。 仁義禮智。 人性之綱。" 此實天人之理。 脗合無間之語也。天人之際。 所以然者。 太極也。 所然者。 陰陽五行也。然則。 太極者。 理也。 陰陽五行者。 氣也。只此理氣。 絪縕交感。 肇判天地。 則塞于天地間者。 都是理氣。 而流行万古。 化生万物。人禀此理之全。 而繼以善。 成以性也。性之良知良能。 孰能禦之。 孰能奪之。從汝所能。 思余所引。 守以勿失也。 양지양능(良知良能) 양지는 저절로 아는 것, 양능은 저절로 능한 것을 말한다. 맹자가 이르기를 "사람이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은 양능이요,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것은 양지이다.[人之所不學而能者, 其良能也. 所不慮而知者, 其良知也.]"라고 하였다.(≪맹자≫ 〈진심상(盡心上)〉) 일음일양을 …… 이다 ≪주역≫ 〈계사 상(繫辭上)〉 제5장에 있는 구절이다. 정자(程子) 중국 송나라의 정명도(程明道, 1032~1085)와 정이천(程伊川, 1033~1107) 두 형제를 말한다. 상달(上達) 공자는 "군자는 상달(上達)하고 소인은 하달(下達)한다."라고 하였고, 또 "나는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 천리(天理)를 체득하는 사람이다.[下學而上達]"라고 하였다.(≪논어≫ 〈헌문(憲問)〉) 진실무망(眞實無妄) 주자(朱子)가 ≪중용≫ 제16장 "무릇 미세한 것이 나타나니, 정성을 가릴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夫微之顯, 誠之不可揜, 如此夫!]"에서의 '성(誠)' 자를 풀이하면서 "진실하여 허망함이 없는 것이다.[眞實无妄]"라고 하였다. 인에는 …… 의미가 있다 주자의 말로, ≪주자어류≫ 권6 〈성리(性理)3〉과 ≪성리대전서≫ 권30 〈성리(性理) 8〉에 나온다. 원형이정은 …… 벼리이다 ≪소학집주(小學集註)≫ 〈소학제사(小學題辭)〉에 나온다. 일기 원문에서는 '元亨利貞'에 대해 '元亨之利貞'이라고 잘못 표기하고 있다. 선으로 …… 이룬다 ≪주역≫ 〈계사전 상〉에 "한 번 양(陽)하고 한 번 음(陰)하는 것이 도이니, 이것을 잇는[발현하는] 것이 선(善)이고 이것을 이루는 것이 성(性)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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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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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30일(을해) 三十日 乙亥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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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915년(을묘) 1915年(乙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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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6일(경자) 二十六日 庚子 흐림. 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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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5일(기묘) 五日 己卯 흐리고 비. 陰雨。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8일(기유) 八日 己酉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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