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계묘) 二十三日 癸卯 맑음. 절곡의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83)의 편지에 대한 답장〉84)을 기록해둔다.근래 ≪독서록(讀書錄)≫을 상고해보니, 문청공(文淸公)85)이 말하기를 "눈을 들어보면 사물이 존재하고, 사물이 존재하는 데는 도(道)가 있으니, 이른바 형이하(形而下)・형이상(形而上)이라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예컨대 음양오행(陰陽五行)이 유행(流行)하여 만물을 발생시키는 것은 비(費)이고, 그 화생(化生)하는 기틀로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은(隱)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성인이 도(道)를 논함에 대부분 이(理)와 기(氣)를 겸하여 말하였다. 예컨대 이른바 '일음일양(一陰一陽)을 도(道)라고 한다.'라거나 '형이상하(形而上下)'를 말하는 것이 모두 이기(理氣)를 겸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또 말하기를, "마땅히 형체가 있는 곳에서도 무형의 이치를 묵묵히 알아야 하니, 이른바 '비이은(費而隱)'86)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볼 수 있는 것이 기(氣)이며, 기(氣)의 소이연(所以然, 까닭)이 바로 이(理)이다. 이(理)는 비록 기(氣)를 떠날 수 없지만 독립해 있고, 또한 기(氣)와 섞이지 않지만 별개인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형이상(形而上)의 것을 도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는 것은 은(隱)이고, '형이하의 것을 기(器)라고 한다[形而下者謂之器]'는 것은 비(費)이다."87)라고 하였습니다.이러한 말들이 8권 이상에서 뒤섞여 나오고 있으니, 특별히 초년의 소견이어서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 손수 쓴 글로, 한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니, 또 우연히 적절함을 잃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陽。記節谷〈答任鹿門聖周書〉。近考 ≪讀書錄≫。 文淸之言曰。 "擧目而物存。 物存而道在。 所謂形而下形而上者是也。" 又曰。 "如陰陽五行流行。 發生萬物費也。 而其所以化生機不可見者隱也。" 又曰。 "聖人論道。 多兼理氣而言。如所謂一陰一陽之謂道。 而形而上下之語。 皆兼理氣言也。" 又曰。 "要當於有形處。 默識無形之理。 所謂費而隱也。" 又曰。 "可見者是氣。 氣之所以然。 便是理。理雖不離氣而獨立。 亦不雜氣而無別。" 又曰。 "形而上者謂之道。 隱也。 形而下者謂之器。 費也。" 此等說。 雜出於八卷以上。 則非特初年所見爲然也。皆是手書。 而非但一再而已。 則又非偶失稱停而然也。 임성주(任聖周, 1711~1788) 자는 중사(仲思), 호는 녹문(鹿門), 본관은 풍천(豐川)이다. 충청도 청풍 출신으로, 아버지는 함흥판관 적(適)이며, 어머니는 호조정랑 윤부(尹扶)의 딸이다.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기일분수설(氣一分殊說)을 통해 이기(理氣)를 기일원론적(氣一元論的) 관념으로 통일했다. ≪절곡집(節谷集)≫ 권2 서(書)에 들어있다. 문청공(文淸公) 문청은 명나라 이학가(理學家)인 설선(薛瑄)의 시호이다. 그의 저서인 ≪독서록≫은 독서록 11권, 속록 12권의 전체 2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가 수시로 얻은 것을 기록하여 자주 볼 수 있게 한 것으로, 대부분 이기(理氣)와 성리(性理) 문제를 다루었다.(≪명사(明史)≫ 권282 〈유림열전(儒林列傳)〉) 비이은 ≪중용장구(中庸章句)≫의 비은장(費隱章)에, "군자의 도는 비(費)하되 은(隱)하다.[君子之道, 費而隱]에 대해 주자(朱子)는 "비(費)는 용(用)의 넓음이고, 은(隱)은 체(體)의 은미함이다."라고 하였다. 형이상의 …… 하였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의 "형이상의 것을 도라고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는 말을 은과 비로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