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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현【순묵】에게 드림 與梁宗賢【淳默】 세월이 빠른 말이 달리는 것 같으니, 삼가 생각건대 선부군의 상기가 이미 다하여 길복을 입을 것인데 효심의 개확(慨廓)52)함을 어떻게 견디는가? 몹시도 그리워하는 마음 감당할 수 없네. 의림(義林)은 평소 친밀하게 알고 지내던 처지에 있으면서도 생사 간에 슬퍼하고 위로 했던 것이 단지 한 장의 예장(禮狀)으로 상례에 따라 책임을 면했을 뿐이니, 생각하면 비통한 마음에 인사하지 못하였네. 단지 천한 이 사람은 명이 박하여 늙을수록 더욱 불우한 것이 마치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와 새장에 갇힌 새와 같아 소소한 동작도 스스로 할 길이 없으니, 이런 사정을 이미 잘 살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혹 용서하였는지? 사문(師門)에 갑자기 닥친 일은 실로 뜻밖이니, 어찌하겠는가? 도의 흥폐(興廢)는 단지 하늘의 처분에 맡길 뿐이네. 日月如駛。伏惟先府君喪期已盡。巾裳就吉。孝思慨廓。何以堪支。馳溯無任。義林係在平素知密之地。而所以生死哀慰者。只是一紙禮狀。循例塞責而已。撫念悲悼。無以爲謝。只是賤生薄命。老益蹇滯。如掛鉤之鱗。縶籠之翼。小小動作。末由自爲。想已諒燭。而或賜恕下耶。師門橫來之事。實出意外。奈何。道之興廢。只信上蒼處分耳。 개확(慨廓) 상(喪)을 당하여 그 슬픔이 축쇄(縮殺)되어 가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개(慨)는 소상(小祥)을 당하여 세월이 빠른 것을 탄식하는 마음을 말하고, 확(廓)은 대상(大祥) 때 정의(情意)가 허전한 것을 표현한 말로,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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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원【형섭】에게 답함 答尹士元【亨燮】 근래 학문에 종사하면서 과연 긴요하고 착실하게 힘을 써서 줄곧 발전하는가. 주자는 "우리들은 현재에 처하여 다만 깊고 궁벽한 곳에서 풀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나무뿌리를 먹더라도 다만 학문 한 가지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라 하였는데, 잘 모르겠네만 일찍이 이 말을 보았는가. 이는 현재에 딱 들어맞는 말이니, 대단히 노력하여 끝내 원대함에 이르도록 하게나. 日間居業。果能喫緊踏實。一味向上否。朱子曰。吾輩在今日。只可於深僻處。草衣木食。惟學問一事。可以盡心。未知曾見此語否。此是今日着題語。千萬勉力。卒究遠大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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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견에게 써 주다 書贈金叔見 나는 평소에 문원(文苑)에서 사람을 두루 겪어본 일이 많았다. 간혹 아름답고 훌륭한 자질이 또래보다 탁월하고 머지않아 능력을 펼치고 성취를 이룰 듯하여 안으로는 부모가 마음을 기탁하고 밖으로는 붕우(朋友)가 기대하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일이 지나면 점차 시들해져 결국에는 평범한 사람과 더불어 똑같은 전철을 밟는데 지나지 않았다. 손가락을 꼽아 일일이 헤아려보면 수많은 사람이 모두 그러하였다. 내가 일찍이 혀를 차고 탄식하면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는가를 생각하였다. 이것은 자질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다. 단지 뜻이 정성스럽고 독실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김군 숙견(金君叔見) 또한 나이가 젊은 걸출한 인재가 아니라고 이를 수 없다. 사람들이 마음을 기탁하고 기대를 하는 것이 바야흐로 가볍지 않다. 다만 군(君)이 세운 뜻이 어떠한지 알지 못할 뿐이다. 만약 뜻을 세웠다면 앞길이 1만 리이니 얼마나 나아갈지 헤아릴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앞사람의 전철(前轍)을 다시 밟게 될 것이다. 숙견은 이쪽일지 저쪽일지 모르겠다. 이와 같은 것이 병통임을 알았다면 또한 어찌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즐거움이라는 것을 모르겠는가. 몸에 지닌 신묘한 비방(祕方)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힘쓰거라! 余平日在文字場。閱歷人多矣。間有良才美質。出於等夷而奮張樹立。若將有日。內而父母寄意焉。外而朋友屬望焉。及其久也。漸次銷歇。終至與尋常人。同歸一轍。屈指擧數。滔滔皆然。余嘗咄咄怪歎。以爲何故而至於斯耶。非才之罪也。非父母之過也。只是志不誠篤之致也。金君叔見。亦不可謂非少年翹楚也。人之所以寄意屬望者。方此不輕。但未知君所立之志爲如何耳。志苟立矣。則前程萬里。其進有不可量。不然。恐不免復蹈前車之覆轍。未知叔見於彼乎於此乎。旣知如此是病。則亦豈不知不如此是樂乎。肘下神方。不外於此。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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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백의 자설 安慶伯字說 천하 사람들의 마음은 복(福)을 좋아하고 화(禍)를 싫어하며, 길함을 좇고 흉함을 피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복을 받는 자는 항상 적고, 화를 당하는 자는 항상 많으며, 길한 사람은 항상 적고, 흉한 사람은 항상 많으니, 그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주역》에 이르기를,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31) 하였으니, 선과 불선이 바로 화복과 길흉이 있는 곳이다. 선을 버리면서 복을 구하거나 악을 행하면서 화를 피한다면, 이것은 뒤로 걸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구하고, 아래에 있으면서 습한 것을 싫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안생(安生) 창섭(昌燮)이 경백(慶伯)으로 자(字)를 삼았는데, 그 뜻을 취함이 일찍이 복과 경사가 창대함을 사모할 만하다고 여기지 않은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는 것은 천명의 자연스런 이치이며, 인사의 당연한 법칙이니, 본디 화복을 위해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군자의 마음은 화와 복을 계산하고 비교하는 사사로움에서 벗어나 오직 천명을 받들고 하늘의 법칙을 따르며, 나의 법을 행하고 나의 직분을 다할 것만을 알 뿐이니, 이것을 보존하면 편안하고, 이것을 따르면 여유로워진다. 이는 필연적인 이치이며, 복과 경사를 구하지 않아도 복과 경사가 저절로 이르러 올 것이니, 경백은 힘쓰기를 바란다. 天下之情。莫不好福而惡禍趨吉而避凶。然福者常少。而禍者常多。吉者常寡。而凶者常衆。其故何居。易曰。積善之家。必有餘慶。積不善之家。必有餘殃。善與不善。卽禍福吉凶之所在也。捨善而求福。爲惡而避禍。則是何異於却行而求前。居下而惡濕乎。安生昌燮字以慶伯。其取意未嘗不以福慶昌大爲可慕也然爲善去惡是天命自然之理。人事當然之則。本非爲禍福而取舍者也。是以君子之心。脫然於禍福計較之私。而惟知奉天命。循天則。行吾法。盡吾職而已。存之則安。順之則裕。此必然之理也。不求福慶而福慶自至。願慶伯勉之。 선을……있다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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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敬通事 惟我同春先生 道接關閩 學貫天人 粹然爲百世之師 而去先生之世 已二百五十餘年矣 後生追慕而取法者 惟遺文幾卷而已 然則其片言隻字 皆可爲矜式者 果何如哉 肅廟庚申尤翁之登對也 詢以先正宋某文集刊否 對以未遑 敎曰此儒賢先朝之所禮遇 士林之所模範 其文之顯晦 亦關於世敎 文集之刊 豈可少緩 仍命藝館 斯速擧行事甚急 遽尤翁與士友 裒輯遺文 僅成十卷 盖十遺二三 後學之竊歎久矣 後百餘年 先生之玄孫文元公櫟泉先生 掇拾各家所在文字 又編八卷 名以別集 頒秩不廣 盖從渼湖金先生之言也 本孫家亦以事力不敷 因循至今 亦未嘗不世世掇拾者 又爲十二卷合前後纂輯爲三十卷 則可謂集大成也 絀於財而未得鋟梓 豈非我後學之責耶 况此時何時 滄桑悠變 人文否塞 吾道之不經凜凜如一髮 苟欲障狂瀾而支傾厦莫若以先哲嘉言善行 誘掖聰俊 使之漸磨以定趨向 不佞等妄不自量 方以同春先生全集刊印而廣傳 俾作牖蒙導俗之資 伏願僉位縉紳章甫同聲贊助 俾竣大事 吾道幸甚再一. 貴鄕中儒林各家 若有先生文字 一一收輯 火速送致于本所事一. 刊所置於尙州郡內西面蓮院洞興巖書院事一. 爲各地方交通便宜 發行所置於京城■…■[體府洞五八]笠井町二一四番地事一. 進行方針不得不協議決定 故以■…■[六月二十五日]七月十五日(雨則順延)定期通告 光臨于本發行所事戊辰五月晦日[印]發起人 前判書 尹用求前承旨 金甯漢前參判 權益相前郡守 金炳興前參奉 宋謙淳前典衛 崔勉植幼學 宋柱憲成植節目一. 同春先生續集增刊刊役所 置於尙州興巖書院事一. 爲各地交通便宜 發行所置於京城事一. 先生門生從遊 幷士林各家 發文通知事一. 先生原集十八卷 增刊續集十卷 合二十八卷 實費六十圓豫算事一. 五百板刻手工錢及寫手料金 合以二千圓作定事一. 每秩紙價二十八圓豫算事一. 頒秩方法義捐六十圓 一秩二十八卷三十圓 年譜五卷報酬事一. 一般任員一次選定后 辭單不得事一. 發行所維持方針幹部會議議定事一. 爲事業進行上協議 本孫中爲任員者二人 留連於發行所事任員都有司 前參判 金文濟副有司 前承旨 金甯漢別有司 前參奉 宋謙淳有司 前參奉 黃準性幼學 宋柱憲前參奉 徐丙聞前主事 洪承哲前主事 徐光悳前參領 李範七總務 前承旨 閔廣植監督 前郡守 金炳▣…掌財 進士 金▣…會計 前侍從 宋▣…監正有司 進士 趙▣…典衛▣…幼學▣…前主事 ▣…前▣…贊成長▣…▣…▣總裁 魚允迪會長 權▣▣副會長 金憙鎭總務 徐載德伏惟玆辰尊體貞旺 仰溸且禱 第令當近年罕有之酷暑 執務視役 殆難堪耐 勢不得已 印冊之役姑爲停止 一般任員 亦皆歸家 更於陰八月初五日相會之意 有臨時任員會決議 故玆仰告 以此?諒 自本月五日至八月五日三十日間刊所關係金錢送付及書信往復 必於茂朱邑內北里 副有司宋曾憲私宅 爲之古蹟保存會關係書信 必於大田大典町三一番地總務徐載德私宅 爲之至祝至祝 餘爲此謹具幷祈暑安丁卯七月初三日宋子大全重刊所總務金憙鎭華陽蘇堤古蹟保存會總務徐載德等二拜伏惟辰下興寢康重 仰頌無已 就本會前進實行之務 以座下之篤誠 兼有一郡之任司 其所殫竭心力 不待人言 何敢煩瀆 而反致失敬耶 然而期限漸近 就緖尙遲 臨事戒懼 不啻淵氷 故玆冒悚仰告貴鄕士友中 樂赴是事志願入會人氏名隨募集 陰本月十五日內 列錄回示 以便修整名簿而志願書用紙 如或不足 更加請求 則當繼送多小矣 以此涵亮仰要 餘惟冀時安丁卯七月七日華陽蘇堤古蹟保存會總務徐載德[피봉]元綾州郡道林面草坊梁會甲氏羅州郡本良面湧珍精舍華蘇古蹟保存會全南地方部仰惟秋晴尊體萬重 仰溯且祝 第 華蘇堤古蹟保存事 自蘇堤本會望帖與書類一一仰呈 則其裏許可以想得 不必更煩 而窃惟此事凡在吾儒 孰不樂聞樂從乎 是故擧國風動爭先致力 此會成立指曰可待本道自筆院道會後 夏秋迭序 尙此寥寥誠甚慨歎 今則涼生已月餘 方派送巡郡有司於各郡一番通告 望須以今月內 有司與總務 幷爲巡回風動 貴郡士林 到底周旋 期以不後他郡 而勿負衆望推薦之意 至仰至仰有樂善好義之心 則不待人言 而大發風力矣 惟是之恃耳經費 則自地方會所區劃矣 節約是望是望 入會願書從後速呈矣 以此諒存 而會員募集與金錢收合 以至月內爲恨 而隨捧郵付于光州郡林谷面博湖里會計梁孝黙許 企望企望 會員與金錢沒數收入後 自有一次論議 則際此時不憚遠程 期於來臨共論大事 切仰切仰 然此事之不後於他道 惟在僉賢之用力不用力耳 期勿後於他道 亦爲切望耳 見書後 卽爲回答于羅州郡本良面山水里吳東洙 而貴郡有物望風力 未有望帖處 錄示如何 餘不備上丁卯八月 日朴魯禎 金容珣 吳弼善 沈璿澤 ▣…[피봉]和順郡道林面草坊里梁會乙座下京城府笠井町二一四番地同春先生文集發行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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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포충사(褒忠祠) 내(內) 충효당(忠孝堂) 미국계(薇菊契)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褒忠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 포충사(褒忠祠) 내의 충효당(忠孝堂) 미국계(薇菊契)의 대표 및 임원이 계원들에게 의연금 출연을 독려하는 내용의 통문 1934년 2월 15일에 포충사(褒忠祠) 내의 충효당(忠孝堂) 미국계(薇菊契)의 대표 및 임원이 계원들에게 보낸 통문(通文)이다. 지역 유림들이 봄가을로 모여서 회포를 풀자는 계획으로 각기 10전은 기본비용이고 20전은 당일 비용으로 쓰면서 계를 만든 지 5~6년이 되었고 계원은 거의 600여 명에 달하는데, 매번 모임을 가질 때 추렴한 비용이 몹시 부족하므로 의연금을 모으자는 내용이다. 다만 각기 형편이 같지 않으므로 보통의 경우는 1~2원으로 하고 특별한 경우는 십 수원으로 하자고 하면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포충사(褒忠祠)는 임진왜란 초기 호남 지방에서 의병 7천 명을 모집하여 금산성 전투 및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高敬命), 고종후(高從厚), 고인후(高因厚)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 안영(安榮) 등 5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액 사당으로 광주광역시 지정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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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通伏惟春暮僉體萬安 竊伏惟我先師松沙先生之棄後學 今十有二年矣 嗚呼 先生在道在先生 先生歿道在遺書 使後生小子 講明斯道 獨不在遺書之役乎 此及門諸子之固未嘗一日忘于心也 然而藏之篋笥 少須臾待時者 實斯文鄭重之義 而今亦有不可膠守而任其泯沒也 曩時編錄頗欠情密 槩多闕漏 斷不可以此登梓 若復因循差緩 不爲汲汲改圖 則世風益渝 臨機順成 恐無其日 窃欲更稡淨瀉 取次設刊 而編輯之役 又難以時月 可就伏願僉尊及時致委 無有後悔 千萬千萬一. 文字自四月至八月晦內 一一爭先輸納事一. 前者謄葺 恐有訛誤之慮 必以本稿對訂事一. 通到卽日 各自傳示傍近士友 無或不知地事一. 編輯所以長城珍原面珍原里澹對軒爲定事丁卯三月 日發文曺悳承 金箕錫 康熙鎭安鍾基 梁會甲 李淳範李宏奎 李鍾遠 朴興圭安吉煥 奇老善 吳東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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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동춘선생 문집발간소(同春先生文集發刊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同春先生文集發刊所 梁會甲 同春先生文集發刊所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문집 속집(續集) 간행을 위한 취지 및 절목 등을 알리는 통문(通文) 및 이와 관련한 3건의 간찰 1928년 5월 그믐날에 동춘선생(同春先生) 문집 발간소에서 양회갑(梁會甲)과 양회을(梁會乙)에게 보낸 통문(通文) 및 간찰 몇 편이 점련되어 있는 문서이다. 첫 번째 통문은 동춘선생의 문집이 숙종의 명에 의해 간행된 문집은 겨우 10권으로 만들었으나 빠진 부분이 많아서 후학들이 탄식한지 오래되었고, 이후 백 여년이 지난 뒤 선생의 현손(玄孫)인 문원공(文元公) 역천(櫟泉) 송명흠(宋明欽) 선생이 각 집안에 있던 글을 모아서 또 8권의 별집(別集)을 만들었지만 널리 배포되지 않았으니 이는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의 말을 따른 것이며, 대대로 모은 것이 또 12권이므로 전후로 편찬된 것들을 합하면 30권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재력이 넉넉하지 못해 간행하지 못한 것은 후학들의 책임이고, 더구나 요즘처럼 인문(人文)이 비색한 시대에는 동춘선생의 전집을 간행하여 널리 펼쳐서 동몽을 깨우치고 풍속을 교도하는 바탕으로 삼고자 한다는 간행 취지를 전달하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귀향(貴鄕)의 유림들에게 혹 선생의 글이 있으면 일일이 수집하여 본 간행소로 보내달라고 하였고, 간소(刊所)는 상주군 내서면 연원동 흥암서원(興巖書院)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각 지방의 교통 편의를 위해서 발행소는 경성(京城)에 두고, 진행 방침은 협의해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7월 15일로 날짜를 정했으니 발행소로 왕림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문집 간행의 발기인은 윤용구(尹用求 1853~1939)를 비롯한 8인이다. 그 뒤에 10조목으로 구성된 절목(節目)이 점련되어 있는데, 간역소는 상주의 흥암서원으로 하고, 발행소는 경성에 두며, 원집(原集)과 속집(續集)의 규모 및 예산, 각수(刻手)의 비용, 지가(紙價), 배포 방법 및 예산, 발행소의 유지방침과 간부회의 등에 대한 것 등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뒤에는 임원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송자대전 중간소(宋子大全重刊所)와 화양소제고적보존회(華陽蘇堤古蹟保存會)의 이름으로 정묘년(1927) 7월 3일에 보낸 간찰은 간행하는 일을 우선 정지하고 일반임원이 모두 귀가했기 때문에 오는 8월 5일에 만나는 것으로 임시 임원회의 결의가 있었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화양 소제고적 보존회에서 정묘년 7월 7일에 보낸 간찰은 귀향(貴鄕)의 사우 가운데 지원하여 입회하는 사람의 명단을 7월 15일까지 적어 보내서 명부를 수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과 지원서 용지가 부족하면 더 청구하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화양은 괴산의 청천(靑川)에 있는 골짜기로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이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소제는 우암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686년(숙종9)에 회덕 소제동에 세운 남간정사(南澗精舍)가 있는 곳이다. 정묘년 8월에 박노정(朴魯禎) 등의 이름으로 보낸 간찰 1건이 더 점련되어 있는데 역시 화양소제고적보존회의 회원모집과 금전수합에 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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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97년 허용(許鏞)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許鏞 兼官[着押] 3顆(6.3×6.3)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24 1897년 4월에 전라도 남원 왕지전 2리에 사는 허용·소화영 등 12인이 겸관에게 이동우의 효성과 청주 한씨의 열행을 감영에 전보하여 임금께 보고하게 하여 표창 받게 해 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4월에 전라도 남원 왕지전(王之田) 2리에 사는 허용·소화영(蘇鏵永) 등 12인이 겸관(兼官)에게 이동우(李棟宇)의 효성과 청주 한씨(淸州韓氏)의 열행(烈行)을 감영에 전보(轉報)하여 임금께 보고하게 하여 표창 받게 해 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효라는 것은 인간의 떳떳한 본성이고, 천하의 아름다운 행실이니 누구나 이런 성이 있으나 그 천성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자는 드물고, 누구나 이런 행실이 있으나 그 덕을 보존 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왕지전 2리에 사는 선비 이동우는 효령대군 보(補)의 15세손이자 호은공(壺隱公) 수(洙)의 11세손으로, 태어난 지 3일만에 부친상을 당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커가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것을 위주로 하여 사소한 일이나 물건이라도 반드시 어머니에게 물은 뒤에 행하였으며, 아침에는 농사짓고 저녁에는 독서하였다. 모친의 병이 갑자기 위독해지자 항상 곁에서 문안하고 약시중을 들었으며, 하늘에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줄 것 빌었다. 창졸간에 별세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쏟은 피를 모친 입에 넣어 곧바로 회생하였으나 바로 돌아가시자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장례는 모두 예절에 따라 치르고, 달을 넘겨 집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 안장(安葬)하였다. 춥든 덥든 매일 성묘하여 거적자리를 깔고 흙덩어리를 베고 자면서 상복을 벗지 않았으며, 부모를 언급할 때마다 먼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동우의 어머니 청주 한씨는 열행(烈行)이 탁월하여 이미 각 방(坊)의 통문(通文)과 암행어사의 판결이 거듭 있었으나 아직까지 포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 집안에서 효열(孝烈)이 함께 온전한 경우는 드문 일이니, 참으로 그런 어머니 밑에 그런 아들이 있다고 할만하다. 이 일은 이웃에서 목격한 것이고, 원근의 사람들이 전파한 소문으로, 허용 등이 한 마을에 살고 있으면서 침묵할 수가 없어서 겸관에게 감영에 전보(轉報)하여 임금께 계달(啓達)하게 하여 이 실행을 밝혀서 드날리게 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겸관은 4월 18일에 '자모(子母)의 효열(孝烈)에 대해 들으니 매우 감탄스럽다. 속히 포앙(褒揚)해야 마땅하므로 전보하여 공천(公薦)에 보답해야 할 일'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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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王之田二里化民許鏞蘇鏵永張基弘等右謹言孝者生民之彛性天下懿行也人孰無是性而能全其賦者鮮矣人孰無是行而能保其德者尤鮮矣今夫本里士人李棟宇孝寧大君諱補之十五代孫壺隱公諱洙之十一代孫則璿源苗裔孝寧緖脉也夙遭憫㐫生孩三日慈父見背獨有偏母撫養漸長期於悅親爲主雖細微之事些少之物必稟行之朝耕暮讀無堕農學親病忽劇常侍問藥無敢或怠祝天願代登壇呼祈難代不宥蒼黃永訣斷指注血旋甦旋別擗踊呌叩問於禮家一遵禮節踰月安葬於五里許之地雖祈寒盛暑不廢省墳拜處亦穿寢苫枕塊不脫巾絰帶少無難焉語及父母淚先眩■(眩)〔泫〕然如非誠意所格豈有此行乎其母親淸州韓氏烈行卓異旣有各坊通章 繡營題音不啻申複尙未蒙褒典然一門之內孝烈兼全今世罕有之行尤不爲欽歎㦲眞可謂有是母有是子也隣里之所目睹遠近之所播聞也民等居在一里不可含黙無言故齊聲仰籲于仁盛之下伏願■(傳)〔轉〕報 營門啓達天陛以爲闡揚之地千萬幸甚行下向敎是事兼城主 處分兼官[署押]丁酉四月 日韓鐸履 蘇俊永 張啓邦 蘇秉源 許鉎 張永錫 許鍵 韓榮敎 張基祿〈題辭〉子母孝烈聞極歎賞宜亟褒揚當轉報報公薦向事十八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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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97년 남원향교(南原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南原鄕校 王之田約所 1顆(墨印, 7.0×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24 1897년 2월에 남원향교 교임 노경수·최병량 등 6인이 왕지전 향소에 이동우의 인효를 관에 보고하여 포상받게 해 줄 것을 촉구한 통문 1897년(광무 1) 2월에 남원향교(南原鄕校) 교임(校任) 노경수(盧景壽)·최병량(崔炳亮) 등 6인이 왕지전 향소(王之田約所)에 이동우(李棟宇)의 인효(仁孝)를 관에 보고하여 포상받게 해 줄 것을 촉구한 통문이다. 왕지전에 살고 있는 선비 이동우는 효령대군 보(補)의 15대손이자 호은공(壺隱公) 수(洙)의 11대손으로, 남쪽 지방에 떨어져 영달하기를 바라지 않고 힘써 농사짓고 살았으니 이는 선조가 그에게 편안함을 남겨 준 것이다. 이동우는 태어난 지 3일만에 부친상을 당하여 죽을 때까지 애통해 하였다. 그의 홀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아침저녁으로 하늘에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쏟은 피를 모친 입에 넣어 회생시켰다. 모친상에는 달을 넘겨 집 가까운 5리 즈음에 안장(安葬)하고, 날씨에 상관하지 않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묘하여 곡하며 집안 일을 함께 간섭(看攝)하면서도 상복을 벗지 않았으며, 거적자리를 깔고 흙덩어리를 베고 자는 데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를 언급할 때마다 먼저 눈물을 줄줄 흘렸으니, 인효가 아니라면 이처럼 능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남원향교에서는 침묵할 수 없어 왕지전 향소에 이 통문을 보내 이동우의 인효에 대해 관에 전보(轉報)하여 포양(褒揚)하게 할 것을 촉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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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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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全羅道金溝縣儒林幼學宋喆鑑等謹齋沐再拜上書于春官閤下伏以璞玉在山抱之而泣者以其美寶之不收也芝蘭在谷遇之而歎者以其幽香之見遺也然則人之有出天之孝希世之行而在於遐鄕窮谷未蒙褒美之 典者豈非玉之在山蘭之在谷而凡爲士林之觀感者可無抱玉而獻遇蘭而薦耶本縣士人郭永春系出玄風世襲忠孝而正懿公諱鏡之後也淸白吏諱安邦之十四世孫也壬辰功臣伴松堂興懋之七世孫也旌閭孝子聽溪堂后泰之五世孫也源淸者流潔根深者枝茂固其理也而斯人之克追家風又以孝行名於世者其在秉彝之同得而豈無欽仰而艶慕㢤斯人也禀質純粹孝親敬長自有天成其母遘疾累月沈痼百藥無效幾至殞絶裂脂垂口竟至回甦其父宿病累年委席極誠孝養不懈不怠賞糞甜苦驗其差劇晝夜祝天願以身代其他順旨之事養體之方無所不用其極盡人子職且與其弟永福友愛甚篤初無物我之心衣食相讓貨財相推其父母常曰吾兒孝子吾兒孝子鄕隣稱之曰郭孝子之孝友古人莫過云則其實行實心可推而知也盖毁身成孝人情之所難也穢口供職人子之未易而斯人則每於侍湯之際例以賞糞爲常事或在危急之際以裂脂爲恒式苟非一心純至之誠感天之孝則安有轉死回生之理乎孝㢤斯人猗歟所行遐鄕逖未蒙褒賞之 典故生等裂裳褁足匍匐仰籲於春官閤下伏乞摭實 啓達于天陛之下以爲微顯闡幽之地千萬祈懇不勝屛營春官閤下 處分禮曹[署押]庚子二月 日儒林幼學宋喆鑑 張友一 崔光岳 金淑 宋承源 李昉 金昌鉉 張友仁 溫鳳元 金在鉉 崔錫珪 吳致瓛 李晩 宋永源 李魯赫 溫德基 等〈題辭〉聞極嘉尙褒揚之節惟在式年道 啓向事十四日[禮曹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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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59년 금구향교(金溝鄕校) 통문(通文) 1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金溝鄕校 羅州鄕校 金溝鄕校(4.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09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 전교 임종호·장의 경인근 등 유림 14인이 나주향교에 금구군에 사는 배병주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을 함께 찬양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金溝鄕校) 전교(典校) 임종호(林鍾鎬)·장의(掌議) 경인근(景寅根) 등 유림 14인이 나주향교(羅州鄕校)에 금구군(金溝郡)에 사는 배병주(裵秉周)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兆陽林氏)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實行)을 함께 찬양(賛揚)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이다. 옛날 성대한 시절에는 교화가 크게 행해지고, 윤리와 기강이 갖추어져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부인은 부인으로서의 도리를 잃지 않고, 젊은이는 어른을 능멸하지 않았으며, 선을 권하고 인(仁)을 도왔다. 만약 그 도를 극진히 한 자가 있으면 사림(士林)이 천거하고, 임금이 듣고서 포양(褒揚) 할 때에 정려하기도 하고 관작을 내려주기도 하여 소문이 퍼지면 천하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싸늘한 비가 내려 50년 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먹고사는 데 분주하여 직분을 제대로 수행한 자가 드물게 되었다. 금구군 선비 달성 배익수(裵益洙)의 부인 조양 임씨는 벌열고가(閥閱故家) 출신의 여자로 성품이 정숙하고 단아하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효행으로 부모를 섬겼다. 결혼해서는 시부모를 친정부모 섬기듯 하였으며, 큰 손님 대우하듯 남편을 받들고, 남편은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선영(先塋) 일 때문에 피로가 쌓인 나머지 병이 들어 22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남겨진 어린 아들이 울어댔으나 그녀는 얼굴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3년상을 마친 뒤, 배익수의 동생 택수(澤洙)가 매우 급하게 형수 임씨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뒤뜰 나뭇가지에 목을 맨 뒤였다. 이를 발견하고 급히 형수를 나무에서 내려 구한 뒤, 택수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백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열녀라지만 불쌍한 저 혈혈단신 아들은 누구에게 의지하겠으며, 쓸쓸하고 가난한 집안 살림은 누가 맡아 처리하겠습니까?"라고 하며 통곡하니 그녀는 측은한 감정을 느껴 마음을 돌리고 곡기를 먹기 시작하여 훗날 집안의 명성을 세우고 늙을 때까지 정절을 지켰다. 이는 포장(褒獎)할 만한 일이지만 시대가 달라져 이러한 실적이 사라져서 소문나지 못하였으나 그녀는 성냄 없이 1957년(정유) 겨울에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쳤다. 임씨의 효자 배병주(裵秉周)가 차마 어머니의 아름다운 실적을 침묵할 수 없어 상복을 입은 채 금구향교에 울며 호소하였다. 이에 떳떳한 본성은 같은지라 너무 개탄스러워 금구향교에서 나주향교로 통문을 보내 이 엉망이 된 세상에 아름다운 본보기를 행한 실적을 찬양하는 데 함께 동참하여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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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諭事鄒夫子不云乎事孰爲大事親爲大守孰爲大守身爲大盖事親竭力者孝之至誠也守身盡心者守之大本也而側聞 貴郡富安面處士鄭溵弼系出東萊卽藝文舘應敎公諱承甫之十七代孫大護軍諱絪之十六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五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四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公諱守弘之十三代孫進士諱任之十二代孫生員進士行通訓大夫諱孝孫之十一代孫參奉公諱確之十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也而道義家風簮纓世德海東巨族湖南望閥也斯人粤自孩提誠孝根天仁善過人年甫十歲家貧親老全無奉供之道樵山漁水可肩隱淮之蕫生越境有方不下負米之仲由怡悅承順一以養志遽當親癠百方藥餌一心調治及其丁憂也哀毁悲泣之聲四隣來吊者莫不悅服行素食粥三年廬墓事死如生每當忌日前三日齋沐哀慕悲號之痛復如袒䄆〖括〗之日孝之至誠也年高七十杜門蔵蹤不求名譽守口如甁防意如城守之大本也言忠行篤足不入亂方口不道惡言齊家訓子之節可謂當世隱淪之士故累登於鄕道之薦 春曺之 啓而尙未蒙天聼之恩宲是公議之欠典故際玆䟽廳士論齊聲 登聞之意玆以發通惟願 僉執史以若實行無至泯沒於草野之地幸甚右敬通于古阜鄕校庚辰四月日 [印]全州長舘道會䟽廳發文多士 朴海昇 李啓鎬 崔遇亨 金龍洙 鄭海斗 金堯文 李秉德 安璣亨 李秉憲 趙鍾台 宋德洙 柳寅燁 朴蓍東 金龍祖 柳萬卷 金潤瓊 張時爀 成載奎 金漢龍 黃基煥 朴台東 李東鑚 朴時昌 南鑚 洪鍾浩 申興模 金相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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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충훈부호남소청(忠勳府湖南疏廳)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忠勳府 湖南疏廳 古阜鄕校 1顆(墨印, 7.2×6.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989 1885년 7월 충훈부 호남소청 창평 진사 박중희와 남원 고종주 등 전라도 열 아홉 지역 19인이 고부향교에 널리 공의를 모아서 장은필의 실행과 실효에 대해 다시 관에 아뢰어 순찰사에게 전보하고 임금께 계달하게 하여 이 뛰어난 효성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포상의 은전을 입게 해 줄 것을 촉구한 통문 1885년(고종 22) 7월 충훈부 호남소청 창평 진사 박중희(朴仲熙)·남원 고종주(高宗柱) 등 전라도 열 아홉 지역 19인이 고부향교(古阜鄕校)에 널리 공의를 모아서 장은필의 실행(實行)과 실효(實孝)에 대해 다시 관에 아뢰어 순찰사에게 전보(轉報)하고 임금께 계달(啓達)하게 하여 이 뛰어난 효성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포상(褒賞)의 은전을 입게 해 줄 것을 촉구한 통문이다. 교화를 세우고, 그 마을에 표하는 것은 하·은·주 때부터 이미 해왔던 일인데 하물며 지금 우리 나라 사람 중 타고난 효성과 뛰어난 행실로 고을에 천거되어 드러난 자가 있으니 사림이 일제히 포상해야 한다는 뜻을 드러냈다. 호남소청이 듣기로는 전라도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은 동래(東萊)에서 계출(系出)한 즉 이조판서로 임금께 하사받은 호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후예로, 어렸을 때부터 품성이 순후(純厚)하여 일찍 가훈을 계승했다. 부모를 효성으로 섬겨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살피고, 부모의 뜻과 의식(衣食)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장례 절차와 곡하며 우는 애통함을 모두 『가례』를 따라 3년상을 마쳤다. 어진 명성이 전해진 곳에 곧 인리(仁里)를 이루니, 행인들이 그 동네를 가리켜 효자동(孝子洞)이라 하고, 사는 사람들이 그 문을 가리켜 효자문(孝子門)이라고 하였다. 이때문에 호남소청은 그가 타고난 순수한 효성이 아니라면 이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여겼으며, 그와 한 지역에 살고 있어 이미 그의 실적을 귀에 익숙하게 듣고서 매우 감탄하며 존경하였다. 호남소청에서 지금 문헌공(文憲公)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 문효공(文孝公) 옥계(玉溪) 노진(盧禛, 1518~1578), 문충공(文忠公) 사암(思菴) 박순(朴淳, 1523~1589), 문절공(文節公)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1513~1577), 문경공(文敬公) 일재(一齋) 이항(李恒, 1499~1576) 등 다섯 선생을 문묘에 배향할 것을 복합상소(伏閤上疏)하는 일로 모두 모였는데 이 일에 공의(公議)가 일제히 일어나 고부향교에 통문을 보내, 고부향교에서 널리 공의를 모아서 장은필의 실행(實行)과 실효(實孝)에 대해 다시 관에 아뢰어 순찰사에게 전보(轉報)하고 임금께 계달(啓達)하게 하여 이 뛰어난 효성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포상(褒賞)의 은전을 입게 해 준다면 매우 다행이라는 뜻을 알렸다. 충훈부 호남소청 열 아홉 지역은 창평, 남원, 김제, 전주, 나주, 광주, 보성, 영광, 흥덕, 부안, 태인, 금구, 장성, 익산, 용담, 장수, 고산, 임실, 고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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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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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丙寅八月日光州監試初場榜目上試鄭顯裕賦一等三人 終場一等三人李炳秀 光州 李養浩 金堤 童蒙任憲吉 光州 李敬秀 光州鄭東澈 淳昌 李秉黙 寶城二等七人 二等七人金基齡 扶安 金允善 谷城白畿洙 光州 金燦奎 同福金觀泰 金堤 姜大囿 光州朴海菶 扶安 朴齊一 昌平蘇鎭千 南原 尹祺禞 長興李鎭泳 光州 申濚休 扶安崔旻廷 寶城 奇陽衍 長城三等三十五人 三等三十五人朴在憲 南原 李炳五 扶安鄭溎 昌平 洪泰奎 南平尹相鍵 龍潭 李喜寅 谷城金漢基 淳昌 秋潑 潭陽崔顯澤 南原 盧允壽 光州朴東翊 茂長 李東述 南原閔瑺 同福 丁大旭 南原崔時瓚 谷城 孔在銓 長城吳一鎭 昌平 蘇鎭璜 潭陽張榮甫 光州 羅元錫 羅州金魯爀 同福 崔震秀 樂安金珉煥 光州 金壽鉦 靈光申錘祿 興陽 尹益浩 海南張益秀 昌平 吳致玉 谷城徐方儒 南平 安榮奎 光陽崔相麟 鎭安 韓寅浩 光州尹鍾軫 康津 李斗應 康津安廷輝 井邑 林相顯 綾州尹承柱 康津 劉錫奎 南原許淵 南原 尹秉誼 南原承進福 光州 林大奎 務安柳思甲 和順 安基澤 南原朴悌澈 長興 鄭在漢 茂朱尹相殷 南原 劉載述 順天王道烈 谷城 魏析 長興白樂昇 靈光 庚馥烈 光州李圭世 靈岩 廉在卨 寶城尹觀夏 海南 林永黙 任實蔡致黙 寶城 曺錫杓 綾州崔昌玹 順天 李文黙 雲峰宋修勉 同福 崔德馹 南原梁在洙 礪山 洪値奎 南原李錫馨 全州 李泰會 南原鄭達周 南原 任義準 務安高翼柱 光州 許蘅 玉果賦國家千萬世無窮福詩願聖人壽願聖▣▣(富多)男子亦此詩之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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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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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55년 전주(全州) 방목(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5년(철종6) 봄에 전주(全州)에서 설행된 도과(道科)의 합격자 방목 1855년(철종6) 봄에 전주(全州)에서 설행된 도과(道科)의 합격자 방목이다. 상시관(上試官)이 전라도관찰사 서헌순(徐憲淳)인데, 서헌순은 《철종실록》 철종5년 12월 8일 기사에서 전라도 관찰사에 제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을묘년의 연대추정이 가능하였다. 시험은 부(賦)와 표(表)를 치러서 부 20인, 표 9인 모두 29인을 선발하였고, 합격자의 명단 아래에는 거주지를 기재하였다. 도과는 임금의 특별 지시에 따라 서도(西道)와 북도(北道), 강화(江華), 제주(濟州), 전주(全州), 송도(松都), 교동(喬桐) 등 특정 지역에서 시행하였던 과거로 외방 별과(外方別科)나 외방 별시(外方別試)라고도 하였다. 합격자에게는 곧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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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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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740년 양은묵(梁殷默)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梁殷默 綾州牧使 使<押> □…□ 5顆(6.5×6.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40년(경신년) 12월에 백성들이 연명하여 배이인과 남평 문씨의 효행이 포상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능주목사에게 요청한 상서. 1740년(경신년) 12월에 大谷面에 사는 백성 梁啓黙, 朴海鵬, 尹一龍 등 16명이 연명하여 綾州牧使에게 올린 上書이다. 상서를 올려 요청하는 사항은 裵以仁과 그의 弟嫂인 南平文氏의 효성이 지극하니 이들이 褒賞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 달라는 것이다. 상서 본문에서 포상 받을 사람의 인적사항과 효행을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한 집안에 한 효행도 오랜 세월 동안 드문일인데, 하물며 두 효행의 모범이 한 집안에 함께 나온 경우에 있어서겠습니까. 이는 오로지 본 面의 裵氏 집안에게서만 볼 수 있습니다. 두 효행이란, 士人인 裵以仁과 그 弟嫂 南平文氏입니다. 배이인은 太師 武烈公 裵玄慶과 密直公 裵廷芝 및 개국 원훈 貞節公 裵克廉의 후손이며, 효행으로 추천받아 참봉을 지낸 裵允德의 5세손입니다. 그리고 열녀로서 旌閭를 받은 金氏는 그의 고조모입니다. 그 弟嫂인 文氏는 江城君 三憂堂의 후예입니다. 배이인과 문씨는 직접 나물 캐고 물을 길러 부모를 봉양하였고, 몸을 편안하게 해드릴 물건을 마음을 다해 반드시 구해바쳤습니다. 그리고 산삼을 캐다가 드르린 일과 부엌으로 메추라기가 날아든 일화는 더욱 뛰어난 일입니다. 얼음 물고기와 눈 속 죽순만 옛날의 아름다운 미담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裵以仁과 그의 동생인 裵以潑의 처 文氏 효성을 강조하고, 이어서 "이런 뛰어난 행실은 사람들과 고을의 儒者들이 많이 보고드렸지만, 아직 포방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애석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보고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처결을 30일에 내리길, "한 집안에 두 효행이 있다니 예부터 드문 일이다. 이런 뛰어난 행실은 만드시 포상할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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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夫人이莫不有其親而能盡其孝者盖尠矣며莫不有其兄弟而能盡其友愛者又鮮矣라今按本洞洞會之衆薦則本里士人李冕儀은孝寧大君十六世孫이오掌令壺隱先生之十二世孫也라世世家行이孝友稱道는一鄕所共知也라自孩提로本性이至溫至厚하야每遊戱ᄋᆞㅣ罔敢父母之咈志하며遊外에或得實果면必綶獻之려니及其長也하야事父母호ᄃᆞㅣ甘旨之供을未甞乏絶하며冬溫夏淸과晨昏定省을無一闕漏하며與數多男妹로共食共衣에未有睨視呼叱之事하고與其弟等으로累次分家分財이되均平無私하야未有毫髮之怨에一家堂內가和氣自樂터니時乎大正八九年間因於物價之瀑騰瀑落하야暗悉中損失家業하고困苦莫甚이라當此客年之旱害하야所農이全無라恐其父母之供儒〖需〗無備하야典身得債에區外負米를無日不絶하야內無十有餘眷之飢餓하고外無朋友之失信하니此何異於古人之百里負米乎아如此罕睹罕聞之孝友로無心覌過爲難而今纔依衆論仰布하오니後來爲人子者垂範慕仰之地를千萬切仰耳乙丑十二月十五日 王峙面廣峙里 [王峙面廣峙里勞働稧所] 勞働稧長 李相儀[王峙面廣峙里勞働稧長之印] 總務 朴炳南[印] 顧問 李譱宇[印] 書記 韓弘錫[印] 評議員 張順容[印] 李鳳儀 趙永玉[印] 梁承鶴 朴東奎[印] 金成文[印] 李日成 張壽巖[印]讚成長 韓鐸履[印] 許泰[印] 張奎錫[印] 梁萬錫[印] 朴魯化[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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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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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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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87년 장자산면(莊子山面) 민인(民人) 등 등장(等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莊子山面民人 全羅都巡察使 官[着押] 3顆(6.8×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7년 12월에 전라도 무장현 장자산면의 주민들이 '성동면에 사는 정낙원 등이 훈련원 둔전에 소용되는 비용이라고 하면서 1결두마다 3냥씩 멋대로 징수한 일'로 도순찰사에게 의송하여 받은 판결문을 무장현감에게 알려서 그 판결대로 처리해 줄 것을 청원한 등장 1887년(고종 24) 12월에 전라도 무장현(茂長縣) 장자산면의 주민들이 '성동면(星洞面)에 사는 정낙원(鄭洛源) 등이 훈련원(訓鍊院) 둔전(屯田)에 소용되는 비용[浮費錢]이라고 하면서 1결두(結頭) 마다 3냥씩 멋대로 징수한 일'로 도순찰사(都巡察使)에게 의송(議送)하여 받은 판결문을 무장현감에게 알려서 그 판결대로 처리해 줄 것을 청원한 등장이다. 이 등장을 접수한 무장현감은 12월 10일에 '감영(監營)의 제음(題音)이 이처럼 준엄하니 훈련원 둔전 비용은 다시는 거론하지 않되, 둔전이 세 면에 속한 것은 매우 괴이하고 의심스럽다'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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