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문(通文)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寶城鄕校와 長興鄕校에서 양반의 군역충원에 반대하여 흥양향교의 협조를 요청하면서 보낸 통문을 필사한 문서 양반의 군역충원에 반대하여 흥양향교의 협조를 요청하면서 寶城鄕校와 長興鄕校에서 보낸 통문 2건이 필사되어 있다. 앞부분은 보성향교에서 보낸 통문으로 표제를 '寶城通狀'이라고 썼고, 뒷부분은 장흥향교에서 보낸 통문으로 '長興通文'이라고 적었다. 앞부분은 보성향교에서 大西面에 거주하고 있는 金春의 군역충원과 관련해서 흥양향교로 보낸 통문이다. 이 문서에 나오는 대서면은 현재 고흥군 대서면 지역이다. 본문에서는 흥양에 새로 들어와 정착한 金春의 군역부과에 대한 부당함을 말하고 있다. 김춘은 양반가의 후예로서 장흥에서 이거하여 흥양에 새로이 정착하였다. 그러던 중 朝令에 의하여 군역에 충원된 것이었다. 양반들은 군역의 의무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었지만, 김춘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보성의 유림들이 군역에서 그를 빼는데 흥양향교에서 적극 나서주길 요청하고 있다. 이 통문에 의하면 簪縷家의 자손은 백대의 良金이고, 淵源家의 苗裔는 만세의 美玉이라고 하면서 사람에게는 귀천이 있다고 하였다. 大西面에 사는 金春은 본관이 영광으로 본래 장흥에서 거주한 양반가로 장흥에서 흥양으로 移寓하여 산지가 벌써 三世를 지냈다고 하였다. 貴邑은 장흥에서 보이지 않아 초나라와 월나라 같이 서로 간에 관계가 먼 것 같지만 장흥은 귀읍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고 하면서 흥양이 이웃을 궁휼히 여기는 풍속 또한 지극하다고 하였다. 金春의 사람됨은 예전에는 점잖지는 않았지만 別隊에 充丁되었고, 烽燧臺에도 充軍되었다고 하면서 군역에 충원하는 일은 朝令으로서 각 읍에서 똑같이 이뤄지는 일이지만 이것은 靈家의 후예로서 이같이 降丁되는 것은 세상에서 드문 일이라고 하였다. 근래 鄕綱이 무너지고 풍속이 변한지 오래되어 이같은 일은 천만뜻밖의 일로 흥양의 안타까운 일이자 士林의 수치라고 분개하였다. 푸른 귤이 바다를 건너오니 탱자가 된 것처럼 사람이 의지할 곳을 잃어버리고, 窮人이 고을을 떠나게 되니 남의 어려움을 보고 괴롭히지 않고 순수하게 물에 빠진 사람을 구제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에 公議를 내어 관아에 이러한 사실을 알려서 양반가의 후예가 군역에 혼입되지 않고, 이웃을 궁휼히 여기는 풍속을 지킴으로써 후일의 잘못이 일어나는 폐단을 막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長興通文이라고 적힌 이후의 내용은 金春의 군역충원과 관련해서 흥양향교로 보낸 통문내용이다. 본문에서는 흥양에 새로 들어와 정착한 金春의 군역부과에 대한 부당함을 말하고 있다. 김춘은 양반가의 후예로서 장흥에서 이거하여 흥양에 새로이 정착하였다. 그러던 중 朝令에 의하여 군역에 충원된 것이었다. 양반들은 군역의 의무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었지만, 김춘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분개한 장흥의 유림들이 그의 신분을 보증하는 한편, 군역에서 그를 빼는데 흥양향교에서 적극 나서주길 요청하고 있다. 장흥통문에 의하면 芝艾는 나눔이 있고, 鳥는 鸞과 梟의 구별이 있다면서 그 本을 찾지 않고 다만 그 末을 말한다면 어찌 사람을 대하는 도리라고 하겠는가라고 서두를 열면서 귀 고을 大西面에 사는 金春은 곧 雪岩(金㻶, 1426~1470), 月峰(金光遠. 1478~1550) 두 선생의 후예로 장흥으로부터 흥양으로 이거하여 산지가 三世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서 金春이 어리석어 한 번은 別隊에 들어갔고, 한 번은 烽燧臺에 들어갔다면서 군역에 충원하는 일은 朝令으로서 각 읍에서 똑같이 이뤄지는 일이지만 先賢家의 후예로서 充丁에 이른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지각이 있는 사람으로 수치가 되니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다고 하고 또한 貴邑의 안타까운 일로 別隊軍, 烽燧軍에 들어간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김씨 집안의 상황은 분명하게 상고할 수 있고, 그 사람의 확실한 행적을 알 수 있으니 士林의 公議에 있어서 입다물 수 없고 물러날 수 없으므로 이같이 齊議하여 알려 드리니 貴邑에서 관아에 稟達하여 영광의 후예를 보호하고 移居의 窮함을 구제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