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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류춘석(柳春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丑二月十一八日 乙丑二月十一八日 柳春錫 柳重憲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에 고창의 柳春錫이 고흥의 柳重憲에게 보낸 간찰 1925년에 고창의 柳春錫이 고흥의 柳重憲에게 보낸 간찰. *원문: 春錫白星?相苒苒花樹落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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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 송병규(宋秉奎)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巳十月卄三日 宋秉奎 辛巳十月卄三日 [1941] 宋秉奎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사년 10월에 宋秉奎가 보내는 간찰 신사년 10월에 宋秉奎가 보내는 간찰. 宋秉奎는 小名을 京待라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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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류중철(柳重哲)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午正月十七日 壬午正月十七日 柳重哲 柳重憲 高興柳氏忠正公譜所 1顆(3.0×3.0)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에 柳重哲 등 17인이 宗人 柳重憲에게 전한 간찰 1942년에 柳重哲 등 17인이 宗人 柳重憲에게 전한 간찰. *원문: 歲已新月已圓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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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송기철(宋基哲)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卯十二月二十日 生 宋基哲 癸卯十二月二十日 宋基哲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3년 12월에 宋基哲이 雲谷祠 僉尊에게 보내는 간찰 1963년 12월에 宋基哲이 雲谷祠 僉尊에게 보내는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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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변시연(邊時淵)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至月九日 生 邊時淵 丁未至月九日 邊時淵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7년에 장성의 邊時淵이 고흥의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1967년에 장성의 邊時淵이 고흥의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원문: 虎山虎山聞已熟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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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변시연(邊時淵)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十二月四日 生 邊時淵 丁未十二月四日 邊時淵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7년에 장성의 邊時淵이 고흥의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1967년에 장성의 邊時淵이 고흥의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원문: 卒有事急于京費累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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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박영직(朴永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丑四月旬之二 朴弟永直 乙丑四月旬之二 朴永直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4월에 박영직(朴永直)이 보내는 간찰(簡札) 1925년 4월 12일 弟 朴永直이 松峴에 사는 이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박영직은 먼저 편지를 받는 이가 사는 松峴이 사람이 傑出하다고 하면서 당신 형제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라며 상대방을 칭찬하였다. 이어서 부모와 함께 형제가 살아있으니 독서가 참 즐거움이 된다고 하면서 맹자의 이른바 三樂에 대해 林氏가 그것을 설명하여 말하길 '하나는 하늘에 달려있고, 하나는 남에게 달려있으며 스스로 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인간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 뿐이다'라고 ?맹자?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며 행동거지를 잘 살펴보고 주의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 자신은 족하(足下)께서 들으신 것으로 알고 반드시 책임으로 여길 것이므로 말하지 않았으나 책임은 이미 무겁고 앞길은 이미 머니 그릇이 큼직하고 뜻이 굳세다면 옛사람들이 말한 '의리는 계속하기 어렵고, 공부는 중단하기 쉽다[義理難繼續 工夫易問斷]'는 戒示를 유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이 편지의 발신인인 박영직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편지 첫머리에 나오는 德山은 그가 살던 곳으로 짐작된다. 同名人으로 1897년에 출생하여 1989년에 사망한 호가 鶴算이고, 본관이 珍原인 박영직이 있으나 편지 발신인과 동일 인물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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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경필운동임시유회소(京弼雲洞臨時儒會所) 통고문(通告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壬戌十二月二十二日 京弼雲洞臨時儒會所 壬戌十二月二十二日 京弼雲洞臨時儒會所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82년 12월 22일에 京弼雲洞臨時儒會所에서 보낸 通告文 1982년 12월 22일에 京弼雲洞臨時儒會所에서 보낸 通告文. 내년1월 20일에 경성 필운동 130번지 9호 宋桂憲 집에 모여 華陽書院에 대해 논의하자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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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류재호(柳載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未二月十八日 族末 載浩 癸未二月十八日 [1823] 柳載浩 柳生員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미년 柳載浩이 종인 柳生員에게 보낸 간찰 계미년 柳載浩이 종인 柳生員에게 보낸 간찰. *상태: 배면에 수신자와 발신자의 주소가 적힘, 하단 일부 찢김 *원문: 承審惠書不?欣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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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류중철(柳重哲)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午二月十四日 族從 重哲 壬午二月十四日 柳重哲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2월 14일에 族從 柳重哲이 僉尊에게 족보 편찬 진행 상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간찰. 1942년 2월 14일에 族從 柳重哲이 僉尊에게 족보 편찬 진행 상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간찰이다. 이 편지에 수신자가 쓰여 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연결문서인 편지봉투 겉면에 '高興郡 虎東里 柳野山丈 靜座'라도 쓰여 있어 柳重憲에게 보낸 것으로 짐작되나 정확하지는 않다. 野山은 류중헌(1873~1952)의 자이다. 삼가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매우 감사하고, 僉尊의 體度가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가 된다고 하면서 자신은 그 사이 喪을 당해 孤露餘生이 되어 마음이 몹시 슬프다며 안부를 전하였다. 이어서 遺墟碑文의 일은 이미 많은 議論가 있었고, 지난 臘月에 醉汀(柳賢錫) 族丈께서 내려오셔서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이 일은 그럴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는 말을 전하였다. 설령 刻石面이 아니더라도 이미 正草를 허가하여 완성하였으니 어찌 판각[登梓]이 불가하겠느냐고 하면서 의견이 紛紜하여 발간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의 자식된 도리겠냐고 하였다. 또 두 사람의 이름을 넣는 것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이미 본래 草本 중에 있었으니 넣지 않는다면 도리어 一門에서 不睦의 발단이 될 것이므로 대략 끝에 넣는다면 피차 和好의 의리가 되니 어찌 해롭겠냐고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내려가 광주인쇄소에 간행을 정하고, 즉시 올라왔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 일은 모두 醉汀어른께서 하신 것이므로 누가 그치게 하고, 누가 그리하게 할 수 있겠냐면서 족보는 普和가 주이므로 어찌 불화의 단서가 되겠냐고 하면서 僉尊께 깊이 이해해주시고 支吾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 편지를 통해서 1942년에 고흥류씨 족보 간행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柳重哲은 자가 雲解이고, 본관은 고흥으로 아버지는 柳徽浚 이며 1911년에 태어났다. 배우자는 金寧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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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류영의(柳永毅)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午舊二月二十二日 族從 柳永毅 壬午舊二月二十二日 柳永毅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2월 22일에 族從 柳永毅가 족보 간행과 관련하여 집안 사람에게 보낸 간찰 1942년 2월 22일에 族從 柳永毅가 족보 간행과 관련하여 집안 사람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 편지는 수신자가 쓰여 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연결문서인 편지봉투 겉면에 '高興郡 虎東里 柳野山丈 靜座'라도 쓰여 있어 柳重憲에게 보낸 것으로 짐작되나 정확하지는 않다. 野山은 류중헌(1873~1952)의 자이다. 삼가 꽃 피고 따뜻한 때에 체후가 萬旺하신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예전과 같이 그럭저럭 지낸다고 하였다. 이어서 譜事가 멈추었다고 하니 우리 가문의 큰 다행이라고 하면서 遺墟碑文 改草事는 고치면 고치고 멈추면 멈출 뿐 어찌 먼 길 왕래가 장애가 되겠느냐고 하고, 근로자는 德根과 晟인데 이 무슨 의리냐고 하였다. 다만 碑文을 쓴 錦城에 사는 石範이 文化인지 알지 못하고 泂舍人이 있으니 같은 이름으로 잘못 보고, 舍人을 기록하였다는데 자신은 믿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 다음날 석범이 門老 某씨를 찾아가서 또 이 일을 門老에게 請하니 半許하며 永毅가 쓴 것은 그것을 보고 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으며, 석범을 다시 찾아가 그에게 물으니 門老가 이러이러 改書를 청했다라고 하였다는 말을 전하였다. 자신은 다 믿을 수 없고, 석범이 自意로 오직 去揚里 永華씨와 함께 合謀하여 그런 것이며, 마침 가서 보니 곁에 도끼가 있어 즉시 碑面을 다듬고 그 이후에 자신에게 영화씨가 埋碑를 請하였다고 하니 영화씨가 시일을 미루고 여러 해동안 정하지 못했으므로 그런 것이니 이 잘못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한탄하였으며, 자신이 고향을 떠나 있던 중 鄕中 미담으로 이 일에 대해 물으면 사람들을 향해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또 碑面에 그 文을 쓴 사람을 2명의 이름을 쓰는 것이 됩니까? 안됩니까? 묻고, 발간된 것에 자신의 이름이 빠졌는데 의논하지도 않고 간행하지 않았으며 다시 한마디도 없이 그것을 새기니 이 무슨 곡절이냐고 책망하였다. 그 時事를 믿을 수 없는 까닭으로 錦城 石範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하면서 碑文 拔去는 回示하여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마지막에 추신으로 만약 拔去하지 않았다면 高興 五派는 1질의 책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한 의지를 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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