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55년 고흥향교(高興鄕校)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乙未七月 日 高興鄕校 幼學 柳大錫 乙未七月 日 高興鄕校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5년 7월에 고흥향교(高興鄕校)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 1955년 7월에 고흥향교(高興鄕校)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류대석을 장의(掌議)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고흥향교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에 있는 향교이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1441년(세종 2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고흥현 서문(西門) 밖에 창건되었다.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695년 유생 강익무(姜翊武)·치무(致武) 형제가 향교의 재건을 상소하고 신규(申樛)·송만징(宋萬澄) 등이 발의하여 1700년 교궁(校宮)을 중건하였다. 광복 뒤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쳤으며 1955년 홍살문을 세웠다. 류대석은 1900년(광무 4) 8월 18일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다. 초명(初名)은 기석(基錫)이다. 자(字)는 계언(桂彥)이고, 호(號)는 송은(松隱)이다. 부인은 박영진(朴璟鎭)의 딸인 진원박씨(珍原朴氏)이다. 장의는 조선시대 성균관유생들의 자치기구인 재회(齋會)의 임원이다. 동재(東齋)와 서재(西齋)에 각 1인씩 있었는데, 선출방법은 현임의 장의가 후임장의를 천거하도록 하되 전임장의들의 완전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62년 충강사(忠剛祠)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壬寅正月 日 忠剛祠 祝 柳大錫 壬寅正月 日 忠剛祠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2년 1월에 충강사(忠剛祠)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 1962년 1월에 충강사(忠剛祠)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류대석을 다음 달 15일에 시행하는 춘향제(春享祭) 헌관(獻官)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충강사는 고흥군 대서면(大西面) 화산리에 있다. 충강사는 재동서원(齋洞書院)의 명칭 중 하나였다. 재동서원은 여산 송씨 충강공(忠剛公) 서재(西齋) 송간(宋侃)을 주벽으로 송대립, 송심, 송순례, 송희립, 송건과 김시습 등 15위를 향사하는 곳이다. 처음 1785년 송간, 유탁, 정운희, 송대립, 송침 5위를 향사하여 운곡사로 시작되었다. 10년 뒤 위차 문제가 있었으나 송간에게 시호가 내려졌기에 단독사우로 재동사라 칭했다. 그 이후 육충사(1801년)·세충사(1833년)·충강사(1956년)·재동서원(1965년)내에 창효사(1980년)의 추가건립까지 배향인물 변경과 명칭변경이 있었다. 류대석은 1900년(광무 4) 8월 18일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다. 초명(初名)은 기석(基錫)이다. 자(字)는 계언(桂彥)이고, 호(號)는 송은(松隱)이다. 부인은 박영진(朴璟鎭)의 딸인 진원박씨(珍原朴氏)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68년 고흥향교(高興鄕校)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戊申正月 日 高興鄕校 李鐘永 戊申正月 日 [1968] 高興鄕校 李鐘永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8년 1월 고흥향교(高興鄕校)에서 이종영(李鐘永)에게 보낸 망기(望記). 1968년 1월 고흥향교(高興鄕校)에서 이종영(李鐘永)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망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종영을 오는 10월 석전제(釋奠祭)의 진설(陳設)로 임명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고흥향교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에 있는 향교이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1441년(세종 2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고흥현 서문(西門) 밖에 창건되었다.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695년 유생 강익무(姜翊武)·치무(致武) 형제가 향교의 재건을 상소하고 신규(申樛)·송만징(宋萬澄) 등이 발의하여 1700년 교궁(校宮)을 중건하였다. 광복 뒤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쳤으며 1955년 홍살문을 세웠다. 이종영은 1945년 8월 27일 결성된 고흥 건국준비위원회에 속해 평의원으로 참여하였다. 석전제는 석채(釋菜), 상정제(上丁祭),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공자(孔子)를 모신 문묘(文廟)에서 선성(先聖)·선사(先師)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행해졌으며, 이로 인해 상정제(上丁祭)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주대(周代)이래 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등 여러 성인에게 석전을 올렸으며, 한(漢)나라 이후 유교(儒敎)를 숭상하면서 동자를 제사하는 의식으로 굳어졌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63년 광주포충사유회(光州褒忠祠儒會)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癸卯陰正月十五日 光州褒忠祠儒會 柳大錫 癸卯陰正月十五日 光州褒忠祠儒會 柳大錫 ▣…▣(3×3)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3년 1월 15일에 광주포충사유회(光州褒忠祠儒會)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 1963년 1월 15일에 광주포충사유회(光州褒忠祠儒會)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류대석을 춘향제(春享祭) 제관(祭官)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高敬命,1533~1592) · 종후(從厚,1554~1593) · 인후(因厚,1561~1592)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1554~1592) · 안영(安瑛,1564~1592)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중 하나이다. 이 건물은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朴之孝)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980년에 새로운 사당과 유물전시관(正氣館) · 내외삼문 · 정화비 및 관리사무소 등을 세웠고 이때 옛 사당을 보수하면서 충효당(忠孝堂) · 청사영당(晴沙影堂) · 전사청(典祀廳) · 고직사(庫直舍)등을 철거하였다. 그러나 옛 사당과 동 ·서재는 본래의 위치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남아있다. 포충사에 소장되어 있는 문적(文籍) 4종9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류대석은 1900년(광무 4) 8월 18일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다. 초명(初名)은 기석(基錫)이다. 자(字)는 계언(桂彥)이고, 호(號)는 송은(松隱)이다. 부인은 박영진(朴璟鎭)의 딸인 진원박씨(珍原朴氏)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68년 운곡사(雲谷祠)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戊申八月一日 雲谷祠 戊申八月一日 雲谷祠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8년 8월 1일에 운곡사(雲谷祠)에서 보낸 망기(望記). 1968년 8월 1일에 운곡사(雲谷祠)에서 보낸 망기(望記)이다. 오는 9월 13일에 하는 석채제관(釋菜祭官) 초헌관(初獻官) 송규봉(宋桂鳳)외 15인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운곡사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호동리 730번지에 있는 사당으로, 고흥유씨와 남양송씨 15위를 모시고 있다. 여산송씨 송간(宋侃), 송대립(宋大立), 송심(宋諶)과 고흥유씨 유탁(柳濯), 영광정씨 정연희(丁運熙)를 배향하기 위하여 1785년(정조 9) 현재의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곡리에 창건한 사당이다. 1796년(정조 20) 여산송씨 문중에서 서동사(西洞祠,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55호)로 송간·송대립 등의 위패를 모셔갔고, 같은 해에 남양송씨 송인(宋寅)과 영광정씨 정걸(丁傑) 등이 운곡사에 추배되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0년 유덕산 기슭의 고흥유씨 집성촌인 고흥읍 호동리에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설화문학의 대가였던 유몽인에게 광해군이 내린 교서인 '유몽인 위성공신교서(衛聖功臣敎書, 보물 제1304호)'가 보관되어 있다. 석전제는 석채(釋菜), 상정제(上丁祭),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공자(孔子)를 모신 문묘(文廟)에서 선성(先聖)·선사(先師)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행해졌으며, 이로 인해 상정제(上丁祭)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주대(周代)이래 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등 여러 성인에게 석전을 올렸으며, 한(漢)나라 이후 유교(儒敎)를 숭상하면서 동자를 제사하는 의식으로 굳어졌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69년 동감강목발간유회소(東鑑綱目發刊儒會所)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己酉十二月 日 東鑑綱目發刊儒會所 柳大錫 己酉十二月 日 東鑑綱目發刊儒會所 柳大錫 東鑑綱目發刊儒會之章(3×3)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9년 12월에 동감강목발간유회소(東鑑綱目發刊儒會所)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 1969년 12월에 동감강목발간유회소(東鑑綱目發刊儒會所)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류대석을 동감강목발간소의 유사(有司)로 천거한다는 내용이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동감강목은 송병선(宋秉璿)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사로 편찬한 책이다. 1902년에 완성된 필사본을 1970년 남원향교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27권 5책이다. 주희의 강목체(綱目體)를 편찬의 기준으로 삼아 우리 역사를 정리하였다. 우리 역사의 시원을 단군(檀君)으로 잡고 있으나 문헌의 입증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삼국통일을 이룬 669년(문무왕 9)에서 1863(철종 14)까지 1,195년간의 기사를 편년(編年)에 따라 수록하고 있다. 범례에서 밝힌 편찬의 원칙은 연대의 표시는 우리 왕호를 기준으로 중국왕조의 연대를 위에 붙이고 외민족의 왕조(五代·遼·金·元)의 경우는 우리 연대의 아래에 붙여 차별화하였다. 조선을 침략했던 청(淸)의 연대는 붙이지 않은 사실에서 화이론(華夷論)적 입장을 관철하고 있다. 『동감강목』의 편찬은 한말 도학자의 역사 인식과 사관을 밝힌 모범이 되고 있으며, 송병선의 문하에서는 이 책의 편찬 원칙을 이어 우리 역사의 편찬을 보완해갔다. 1912년 김종가(金鍾嘉)는 고종 원년(1864)에서 경술국치(1910)에 이르는 47년간의 역사로 『속동감강목』(1972) 6권 1책을 편찬하고, 1931년 김재홍(金在洪)은 단군에서 통일신라 직전인 문무왕 무진(668)까지를 수록한 『동감강목전편(東鑑綱目前編)』 8권 1책을 편찬하였다. 류대석은 1900년(광무 4) 8월 18일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다. 초명(初名)은 기석(基錫)이다. 자(字)는 계언(桂彥)이고, 호(號)는 송은(松隱)이다. 부인은 박영진(朴璟鎭)의 딸인 진원박씨(珍原朴氏)이다. 유사는 유사 중 그 우두머리를 '도유사(都有司)'라 하고 경리를 맡은 유사를 '사화유사(司貨有司)', 연락을 맡은 유사를 '전명유사(傳命有司)', 문서작성을 맡은 유사를 '사서유사(司書有司)'라고 불렀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유사라는 이름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였다. 장례·출간·건물 중수 등 단기간에 처리를 요하는 일시적인 유사는 그 예정된 일이 완료될 때까지 회의의 결정사항을 처리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감결(甘結) 초(抄) 고문서-첩관통보류-감결 정치/행정-명령-감결 [1886]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6년 新設學校節目의 반포를 알리는 甘結을 필사한 문서 1886년 新設學校節目의 반포를 알리는 甘結을 필사한 것이다. 이 문서는 內務府에서 하달된 관문에 의거하여 내린 감결을 謄書한 것으로서, 1886년 4월 19일 고종의 傳敎, 1886년 8월 16일에 이에 따른 내무부의 啓辭, 新設學校節目 14개 조목의 내용이다. 전교의 내용에 따르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는 어진 사람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기에 시골에 묻혀 있는 인재를 널리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인재를 만드는 것은 나무를 심어 재목이 될 수 있도록 가꾸는 것과도 같다고 하면서, 노는 것이 습성이 되어 쉽게 학문을 포기하는 세태를 교도하기 위해 강사(講舍)를 설립하고 인재를 뽑아 학업을 가르치게 하라고 하였다. 『고종실록』을 살펴보면 1886년 4월 19일 기사에 시골의 인재를 등용하고 강사를 설립하라는 전교를 내렸으며, 같은 해 6월 6일 기사에는 신설하는 학교의 절목을 계하(啓下)하면 서울과 지방에 반포하여 신칙하겠다는 내용의 내무부(內務府) 계(啓)를 확인할 수 있다. 新設學校節目은 14개의 항목으로 되어있다. 성균관 1~3항, 京學院 4~7항, 營學院, 官學院 8~11항, 사설학숙 12항, 선발 13항, 경과조치 14항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내용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균관은 생원, 진사를 원점수에 따라 80명 이내에서 선발하여 1년 동안 의무적으로 거재하게 한 뒤에 月課, 季考, 歲試의 시험을 보여서, 세시에서 우수한 자의 방목을 국왕에게 올리도록 했다. 四學의 과정은 성균관 月課, 季考에 許赴하였다. 京學院은 입학기준은 15~20세 士ㆍ民 子弟로 無定額이며 30명씩 住院 10일마다 교대하고, 과정은 성균관과 같았으며 季考에는 교수 4인이 합석하고 歲試에는 赴泮合試한다. 각 도의 營學院은 입학기준은 15~20세 士ㆍ民 子弟로 定額이고, 3년 수학 후 私塾으로 돌아가며, 자비부담자는 無定額이고, 과정은 京學院과 같으며 歲試는 관찰사가 주관한다. 각 군현의 官學院은 입학기준은 15~20세 士ㆍ民 자제로 定額이고, 3년 수학 후 私塾으로 돌아가며, 자비부담자는 無定額이다. 과정은 京學院과 같으며 歲試는 수령이 주관한다. 마을의 私塾은 京鄕 村坊 洞里의 興勸學徒 실효자를 보고하여 收用한다. 기타 서울의 歲試는 모두 성균관에서 합하여 시행하고, 지방의 歲試 결과는 관찰사가 취합하여 성균관에 보고하고, 매년 훈장, 우등인을 서울에 보고하여 面試 후 성적에 따라 許赴全試한다. 甘結은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에 내리는 문서를 가리킨다. 내용은 지시와 명령이 주가 되며, 물품의 출급·독촉이나 인원 차역, 죄인의 압송, 대민 고시 및 선무, 도적의 검속, 진휼정책의 방침과 시행에 대한 사항 등이다. 감결 중 대부분은 관찰사가 관하 읍에 내리는 것이다. 지방 행정상 같은 내용의 감결을 몇 개의 읍에 내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한 읍에 내리는 수도 있다. 또한, 암행어사도 임무 수행과 관련해 수령에게 내릴 수 있다. 그 때에는 관인(官印) 대신 마패(馬牌)를 감결의 몇 군데에 찍는다. 서식은 기두(起頭)에 '甘結某邑(감결모읍)' 또는 '甘結各邑(감결각읍)'이라 쓰고, 내용은 일정한 양식이 없이 지시, 명령하는 내용을 쓴다. 결사(結辭)도 지시, 명령하는 내용에 따라 약간씩 다르나 대개 명령의 거행 상태를 즉각 보고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발행한 시기는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간지(干支)로 표시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甘]結卽到內務府關內節 啓下敎今四月十九▣▣傳曰崇儒重道卽我 列聖相傳之家法也戔帛賁于邱園育莪勤于學校是俊髦蔚興治化郅隆衛正學而義理愈明抑▣說而騷訛自熄夫國之治忽亶在乎斯道之顯晦其關係顧不重歟而求賢思助尤爲今日急先之務巖穴斥弛必多經明行修之士有能矜式一鄕亦可楨榦一國求則得之豈無其人其令道臣守宰廣摻旁搜必以學術精專操履端正名實相符之人隨卽登聞以爲需用且培養作成卽所以植材菑田也古者敎人之法雖凡民之子八歲入小學十五歲入大學敎之之術學校之設皆有次序亦極周備此所云古之人無不學而謠俗醇美敎化易行也挽近嬉遊成習失學暴棄遂不知幼學壯行之爲何事可勝歎惜此在敎導勸奬之如何其自今閭里村坊從便設立講舍選年少聰敏有才德者敎之以學業申之以孝悌此等家塾黨庠之義而卽朝家尊尙儒術樂育人材之至意也凡所制置與規式自內務府尙酌磨鍊仍令措辭行會於八道四都府啓辭謹依下敎新設學校節目今方書入而待啓下頒飭中外之意敢啓答曰知道事傳敎敎是置傳敎內辭意奉審施行如有矣大抵崇儒延士王政之所先作人育材風化之攸係一乾斷乃成賁運思挽一念所曁萬化攸本曷敢不欽仰萬萬猗歟列聖朝以來重儒敦俗靡不容極養士之節課學之資上自太學下至邑庠隨其大小齋舍之設置公結之劃付果何等周備詳悉而挽近俗漸頹靡課資更歸虛簿邑隨湔陋講舍徒存浮各雜進之風更成酒食之窠操行之士如恥塗炭之坐敎以之解弛化以之壅遏言念及此寧不塞心際伏承諭旨之勤摯庸陳規式之周全後錄發關爲去乎關到之日先自該邑校齋之容接薪水之饋給一一磨鍊是矣自前劃付之田結所收遂底査括以爲補用若或不足及全無之邑營邑爛商措劃以贍需用課士之節無論邑之厚薄隨其資辦之多少依關辭確定條例恪厲奉行上而對揚聖意下而振厲風是矣自邑報營自營報府以爲從速稟處之地宜當向事此亦中關到日時先爲馳報爲㫆設始措劃之如何妥當言第修成冊計關到日三十日爲限卽報本府是遣至若剡蒪之節披求拔擧指各登聞次則爲間等利一依關後錄玆以發甘遂条相考擧行爲㫆設始措劃之如何今念內星火修成冊報來以爲轉報之地是矣俾無暫滯生校之弊爲㫆原甘星火替傳修到官段考稽次還上官次新設學校節目一成均館生進依圓數八十以揀選居齋無關冬春爲明經講義夏秋爲製述文字以本興學首善之意是白齊一爲月課法 七書中自願一書出講抽三節問義 製述則詩賦表策中每朔一度式輪回出題 每朔終泮長詣泮宮考取抽栍計劃爲季考法式同上每季考朔終同成均泮長合席考取計劃爲歲式法同上而講製俱試 每歲終文衡 如文衡有關文任考取 同年成均長幷爲考取而文衡主考計劃擇優修榜啓聞是白齊一每於月課季考歲試之日四學之徒亦許赴考講則背講而另爲計劃擇其最優許赴文武科會試是白齊一都城內建置學院曰京學院選士民子弟才質聰明年十五至二十餘者不拘多數入院記名往來肄 習講製節次一爲泮試而循序漸進不至躐等 試而每三十人限十日住院學習 限滿卽輪回相代如遞番例 自院饋給而均不準圖暇浪遊有名無實是白齊一四學敎授每十日輪回赴院 如入直例 掌敎訓學徒每於月課當直敎授聽考計劃季考則四員合席計劃歲試則俱卒學徒赴泮宮合試是白齊一置書記一人專掌院內文簿支應等節置大廳直二人使令一名使掌院內使喚置水工二名火工一名使掌院內供役是白齊一八道四都各營例儒生居接所 若無則以公廨變通 自該營酌量修葺曰營學院各邑則自有校宮而不能容則自該營酌量添建曰官學院各營邑古有養士贍學劃結所收 各目不同以或無此之邑營邑爛商措劃 然若有虧欠一切査充以爲課學需用之方是白齊一院內薪水膏火之資 每朔千兩式自宜惠廳劃付於書記利供支應而詳保出入敎授査檢每於朔終呈于文衡報簿署押隨宜酌定是白齊一各營邑學院學徒擇其本地士式子弟才質聰明年十五至二十餘者幾人量宜定額限三年肄習限滿則各歸私塾更爲新選充額而雖或額外自備薪水負笈願從亦不拘多數是白齊一講製節次一遵京學院例而但歲試時營學院則道伯主之官學院倅主之自邑報營自營都府報于成均館記名存査是白齊一擇其境內人地學識拔萃者三員以爲訓長每三朔式遞任學院課訓學徒而本境爲之可堪之人自延致于他邑是白齊一無論京各道村坊閭里如有出力而松設學塾興學徒以有實效資隨聞査登報酌宜收用是白齊一三年大考擇期設初詩取鄕漢城學院每歲啓草中訓長及優等人幷分日面試筹其高下許赴會試是齊一未盡条劃追後磨鍊是齊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78년 자양사(紫陽祠)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戊午三月九日 紫陽祠 柳大錫 戊午三月九日 紫陽祠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78년 3월 9일에 자양사(紫陽祠)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 1978년 3월 9일에 자양사(紫陽祠)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류대석을 원장(院長)에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자양사는 고흥군 도양읍 녹동에 있다. 류대석은 1900년(광무 4) 8월 18일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다. 초명(初名)은 기석(基錫)이다. 자(字)는 계언(桂彥)이고, 호(號)는 송은(松隱)이다. 부인은 박영진(朴璟鎭)의 딸인 진원박씨(珍原朴氏)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78년 연재송선생기념사업추진회(淵齋宋先生紀念事業推進會)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사회-조직/운영-망기 戊午年三月五日 淵齋宋先生紀念事業推進會 柳大錫 戊午年三月五日 淵齋宋先生紀念事業推進會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78년 3월 5일에 연재송선생기념사업추진회(淵齋宋先生紀念事業推進會)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 1978년 3월 5일에 연재송선생기념사업추진회(淵齋宋先生紀念事業推進會)에서 류대석(柳大錫)에게 보낸 망기(望記)이다. 류대석을 고흥군(高興郡) 유사(有司)로 임명하는 내용이다. 망기는 어느 한 직책에 합당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하는 문서로 서두에 망(望) 혹은 천망(薦望)을 기입하였다. 망첩(望帖) 또는 망단자(望單子)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 직책에 세 사람을 후보자로 열거하는 3 망이 원칙이었으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송병선(宋秉璿)은 1836년(헌종 2)년에 태어났으며 1905년(고종 42) 음력 12월 30일에 졸하였다. 자(字)는 화옥(華玉)이고, 호(號)는 동방일사(東方一士), 연재(淵齋)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본관은 은진(恩津: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이다. 대전시 회덕(懷德) 출생.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이며, 송면수(宋勉洙)의 맏아들로, 참의 송달수(宋達洙)와 송근수(宋近洙)의 종질이며, 송병순(宋秉珣)의 형이다. 큰아버지인 송달수에게서 송병순과 함께 성리학과 예학을 배웠다. 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송시열 등 대선비의 문집에서 좋은 글귀를 뽑아서, 『근사록(近思錄)』과 같은 범례를 좇아 책을 지어 『근사속록(近思續錄)』이라 하였다. 그밖의 저서로도 『연재집(淵齋集)』과 『근사속록(近思續錄)』, 『패동연원록(浿東淵源錄)』, 『무계만집(武溪謾集)』, 『동감강목(東鑑綱目)』 등 53권이 있다. 류대석은 1900년(광무 4) 8월 18일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다. 초명(初名)은 기석(基錫)이다. 자(字)는 계언(桂彥)이고, 호(號)는 송은(松隱)이다. 부인은 박영진(朴璟鎭)의 딸인 진원박씨(珍原朴氏)이다. 유사는 유사 중 그 우두머리를 '도유사(都有司)'라 하고 경리를 맡은 유사를 '사화유사(司貨有司)', 연락을 맡은 유사를 '전명유사(傳命有司)', 문서작성을 맡은 유사를 '사서유사(司書有司)'라고 불렀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유사라는 이름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였다. 장례·출간·건물 중수 등 단기간에 처리를 요하는 일시적인 유사는 그 예정된 일이 완료될 때까지 회의의 결정사항을 처리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告目 右伏告事段堂長宅書房主行次 校宮敎是生員主前色掌 付標敎是遣掌議一員鴈洞順天丁生員付標敎是遣掌議 一員馬輪社村申生員付標敎是遣色掌一員南陽新亭 宋生員付標敎是緣由詮次告課爲白臥乎事 庚午二月初八日 殿直若大 庫直光玉 虎山 柳生員主前 鴈洞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경오년 약대(若大) 등 고목(告目) 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개인-생활-고목 庚午二月初八日 殿直 若大 等 2名 柳生員 庚午二月初八日 若大 柳生員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오년에 전직(殿直) 약대(若大) 등이 유생원(柳生員)에게 향교 임원 부표 상황을 알리는 고목(告目). 경오년 2월 초8일에 전직(殿直) 약대(若大)와 고직(庫直) 광옥(光玉)이 호산(虎山)에 사는 유생원(柳生員)에게 향교 임원 부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고목(告目)이다. 이 고목은 향교 임원인 장의(掌議)와 색장(色掌)의 부표 상황을 알린 것으로 내용을 보면 당장댁(堂長宅) 서방(書房)님이 향교로 행차하시어 생원님께 색장을 부표(付標)하고, 장의(掌議)는 안동(鴈洞)의 순천 정생원(丁生員), 마륜(馬輪) 사촌(社村)의 신생원(申生員)에게 각각 부표하였으며, 나머지 색장 1원(員)은 남양(南陽) 신정(新亭)의 송생원(宋生員)에게 부표하였음을 알리고 있다. 고목은 관아에 속한 서리 및 지방관청의 향리가 상급자에게 공적인 일을 알리거나 문안을 할 때 간략히 작성하여 올리는 문서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