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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조아리고 절하며 말씀드립니다. 지난번 영남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까스로 한 차례 정다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 십 년 간의 독서를 여기에서 펼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편지까지 보내주어 안부를 대강 알았으니,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기쁨과 두려움이 밀려듭니다. 다시 생각건대, 조부모와 부모님을 모시는 체후는 근래 평안하고 식구들은 한결같이 건강합니까? 우러러 기원하고 하례드립니다.저는 목숨을 부지하고 노모를 모시면서 겨우 그런대로 지내고 있으니, 이는 다행입니다. 우러러 바라건대, 최근에 긴급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꺼리지 말고 한번 찾아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에 사람을 보내어 편지를 대강 쓰고 인편을 따라 즉시 와 주시기를 몹시 바랍니다. 나머지는 만나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이렇게만 씁니다.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이날에 고자 황기채가 글을 올림.이번에 가는 사람은 매정(梅亭)의 양씨 성을 가진 고용인으로 바로 저의 처 당질입니다. 이 점을 살펴서 대우해 줌이 어떻겠습니까? 철도가 가는 길에 있어 굳이 말과 마부를 보낼 필요가 없으니, 거비(車費) 2원을 보내고 윤랑(允郞)에게 출급해 주시기를 또한 바랍니다. 稽顙拜言 向者嶠行歸路 僅得一起情晤 十年之讀於是可攄也 繼有便梯 槩探震艮 續續欣懼 無別於合席也 更惟重省軆幹比來錦重 仁庇一吉 顒禱且賀 孤子頑喘奉老 僅依是幸 仰恳近有緊急相議底事 勿惜一賁如何 玆專人畧艸踵便 卽顧切企耳 餘在面討 止此 惟希嵬照卽 孤子黃起采 䟽上此去人是梅亭梁姓人來雇者卽鄙之妻堂姪也 諒此待之如何 飛轍在路不必送六足 車費二圓呈去 出給允郞亦望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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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채(黃起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卽 孫子 黃起采 卽 黃起采 申在熙 보성 평산신씨 신연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즉일에 손자 황기채(黃起采)가 할아버지 신재희(申在熙)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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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종은 골짜기에 버려진 늙은 자벌레 같습니다. 나라가 혼란한 이후 각 처 제종(諸宗)의 안부를 들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 침울하고 답답하였습니다. 뜻밖에 대동보(大同譜) 통문과 아울러 지난달 21일에 보낸 편지를 이달 2일에 받았습니다. 편지를 열어서 두세 번 읽어보았는데, 종친의 소식인 줄도 몰랐습니다. 요즈음 봄추위가 겨울 추위보다 매섭습니다. 삼가 종인들이 부모를 모시며 지내는 객지 생활이 부디 거대한 사업에 혼자 고생하는 문제는 없겠지요? 몹시 우려됩니다.저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 병세는 나이와 함께 더 심해져 죽음을 앞두고 있어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릴 뿐입니다. 오직 다행스러운 것은 슬하의 자식들은 병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저희 가문의 명단(名單)을 의리상 급히 작성하여 올려야 하지만, 우리 종친이 광순(光順)과 보화(寶和) 사이에서 제 살 곳을 얻어서 별과 구슬처럼 흩어졌습니다. 늙은 사람은 병을 앓고 숨었고 젊은 사람은 피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급하고 일은 늦어지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멀리서 생각해 보건대, 보소(譜所)에서 정단(正單)1)하는 일을 앞으로 어찌하겠습니까.원향(院享)은 봄 3월·가을 9월의 망일(望日)이 아닙니까? 우리 집안의 정단(呈單)은 춘향(春享) 때에 있을 듯합니다. 이것으로 살펴주십시오. 우선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바라건대 병이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찾아뵙고 위로할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겠지만, 노년의 인사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손이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워 이 정도로만 씁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고 답장합니다.1954년 2월 4일에 족종 신재희가 절하고 올림. 정단(正單) 호적이 작성되고 나면 호적청(戶籍廳)에서 별도로 좋은 종이를 써서 1통을 정서하여 도장을 누르고 수결을 받는 것을 말한다. 族從峽棄老蠖也 動亂後各處諸宗之存否無路得聞 故居常沈㭗 料外大同譜通文竝去月念一日出書 今二日獲承 披閱再三 未覺宗毛 際玆春寒峭於冬嚴 謹問僉宗侍旅履幸無瑕 於巨事賢勞之餘否 爲之貢慮區區 族從齒不甚高 病與年加 隔死如紙 姑俟皈盡之日而已 而惟幸膝下之無警耳 第鄙門名單義當急急修呈 而吾宗■(得)所於光順宝和間 如星珠分散矣 而老者病蟄 少者行蜀 故心急事緩 此將奈何 遙念譜所正單之役將何如哉 院享其非春三秋九望日乎 吾家呈單似在春享時也 以此 下諒 姑待之如何如何 幸待病歇 自料晉慰而老境人事果未知將如何耳餘手戰精昏 只此 不備謝甲午春二月四日族從 在熙拜拜[皮封] (背面) 荷洞 宝城 栗於 謹上巾香申衙門 伏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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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신재희(申在熙)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午春二月四日 族從 在熙 甲午春二月四日 申在熙 보성 평산신씨 신연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1954년 봄 2월 4일에 신재희(申在熙)가 족종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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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통이 글은 삼가 통문에 회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열(烈)은 부인의 직분으로 삼강(三綱)에 속하고 사덕(四德)1)보다 높은데, 하물며 효(孝)를 겸하고 있음에 있어서입니까. 그러한즉 효열(孝烈)은 세교와 관계된 것으로 찬란하고 분명히 나타납니다. 아, 숨은 공덕을 드러내고 미덕을 천양하는 것이 사림들의 공의이고, 선행을 드러내어 정표하고 표창하는 것은 조정의 성대한 은전입니다.삼가 귀 군의 추천장을 살펴보니, 세지면(細枝面) 오봉리(五峯里) 효열부(孝烈婦) 박씨는 밀양 출생이고 밀성군(密城君) 언침(彦忱)의 후손이며 사인 유삼(有三)의 딸입니다. 밀양 박씨는 규문의 법도가 드러나 시집을 갔고, 3년이 지나서 나주의 화족 금호공(錦湖公) 사침(士忱)의 후손 종기(鍾基)의 아들 득수(得洙)에게 시집갔습니다. 시집간 지 3일째가 되어 부엌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올리자, 시부모가 그 봉양함을 편안히 여기고 군자는 그 순종함을 즐겁게 여겼으며, 집안에는 이간질하는 말이 없었고 규문은 화목하였습니다.그 남편이 불행히도 우연히 불치병에 걸려서 병석에 누운 지 10여 년 동안 백방으로 치료하였지만 약이 효과를 보지 못하자, 하늘에 빌고 북두에 빌고도 감응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따라 죽기를 맹세하여 물과 음료를 마시지 않은 지 두어 일이 되었는데, 집안사람의 구호 덕분에 금세 생각을 바꾸고, "나의 팔자가 기구하여 갑자기 남편을 잃었는데 시부모는 늙어서도 봉양할 사람이 없고 두 고아는 아직도 어려서 보육할 사람이 없으니, 내가 이를 어찌할 수가 없구나."라고 여겼습니다. 위로는 시부모를 위로하고 아래로는 어린 고아를 어루만지며 죽은 이를 장송하는 모든 절차는 한결같이 검속하였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직접 행하였습니다. 장례와 우제, 대상과 담제는 예제를 따랐고 상기를 마친 뒤에는 항상 미망인으로 자처하여 화려한 의복을 입지 않고 한결같이 방적 일에 부지런히 힘써 집안의 도를 지켰습니다. 그 아들 상옥(相玉)·상교(相敎)가 또한 가르침과 훈계를 준수하여 모두 효우(孝友)로써 소문이 났는데, 예천(醴泉)과 영지(靈芝)가 절로 근원이 있다는 것2)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말이 아닙니다.저희는 한 군에 함께 살면서 감흥이 이는 바가 크니, 어찌 한목소리로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감히 우러러 답변합니다. 귀 군의 여러 군자가 이 탁월한 행실과 아름다운 사적을 사라지게 하지 않고 아름다운 명성을 천추토록 전해주기를 몹시 바랍니다. 이 글은 나주향교 유림 첨좌하께 공경히 회통하는 것입니다.단기 4289년(1956) 병신년 모월 모일에 전주향교 전교 이도형(李道衡), 유회(儒會) 전중권(全中權)·이학근(李學根)·최종식(崔宗植)·최용대(崔瑢大)·이의천(李義天)·박준근(朴準根)·홍경한(洪景漢)·이정현(李貞鉉)·한증수(韓曾洙) 사덕(四德) 옛날 부인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성으로, 부덕(婦德)·부언(婦言)·부용(婦容)·부공(婦功)을 말한다.(『周禮』 「天官 九嬪」) 예천(醴泉)과……것 예천(醴泉)은 맛이 달고 시원한 샘물인데, 근원을 통해서 물이 흘러나온 것이고, 영지는 불로장생의 약초인데 그 뿌리가 있어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곧 훌륭한 인물은 훌륭한 조상의 피를 물려받아 태어난 것임을 비유한 것이다. 回通右謹回通事 伏以烈是婦人之職 參於三綱 超於四德 况兼於孝乎 然則孝烈之關於世教 章章乎明矣 噫闡幽揚美 士林之公議也 旌善褒貤 朝家之盛典也 謹按 貴郡薦狀 則細枝面五峯里孝烈婦朴氏系出密陽 密城君彦忱后 士人有三女 閫範有著 及笄越三年 乃聘歸于籍羅州華族錦湖公士忱后鍾基子得洙 旣歸三日入廚具甘 舅姑安其養 君子樂其順 庭無間言 閨門雍睦 其夫不幸 偶嬰難症 委牀十餘年 百方救療 刀圭罔效 祝天祈斗 幷無感應 奄遭崩城 矢欲下殉 水醬不入口者數日 被家人之救護 旋而回念 曰吾八字淺薄 奄失所天 舅姑老而無養 二孤尙幼無育 我若無之奈何 上慰舅姑 下撫幼孤 送終凡節一一檢了 而有不如意者 躬自爲之 襄虞祥禫克遵禮制 闋制後常以未亡人自處 不着華服 一勤紡績 以扶家道 其子相玉相教亦遵奉教戒 俱以孝友聞 靈芝醴泉自有根源 信不誣矣 生等同在一省 多有所興感 當不同聲贊揚哉 玆敢仰答 惟願 貴郡 僉君子使此卓行美蹟 毋至於湮沒 而壽傳芳名於千秋 千萬幸甚 右敬回通于羅州 鄕校 儒林 僉座下檀紀四二八九年丙申 月 日全州鄕校典校 李道衡 儒會 全中權 李學根 崔瑢大 李義天 朴準根 洪景漢 李貞鉉 韓曾洙[皮封] (前面) 羅州 鄕校儒林 僉座下(背面) 全州 鄕校回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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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통이 글은 통문에 회답하는 것입니다. 삼가 아룁니다. 풍악(豐嶽)의 검은 뇌환(雷煥)을 만나서 발견되었고, 박옥(璞玉)의 아름다움은 변화(卞和)를 만나서 드러났습니다.1) 사물이 또한 이와 같은데, 더구나 사람에게 있어서이겠습니까. 충·효·열은 사물의 보물보다 귀한 것입니다. 삼가 귀 군의 추천장을 살펴보니, 세지면(細枝面) 오봉리(五峯里) 효열부(孝烈婦) 박씨는 본적이 밀양이고 밀성군(密城君) 언침(彦忱)의 후손이며 사인 유삼(有三)의 딸입니다. 규문의 법도가 평소 드러나 18세가 되자 나주 거족 사인 나득수(羅得洙)에게 시집갔습니다. 남편은 바로 금호공(錦湖公) 사침(士忱)의 후손이자 종기(鍾基)의 아들입니다. 밀양 박씨가 시집가서는 몸소 부도(婦道)를 행하여 효로 시부모를 섬기고 공경함으로 남편을 받들어 규문이 화목하고 향리에 모법이 되었습니다.남편이 불행히도 기이한 질병에 걸려서 십여 년간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쓰지 않는 약이 없었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하늘은 어찌 이 사람을 지상에 남겨 두지 않습니까.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자신도 따라 죽기로 맹세하고 3일간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돌연 생각을 고쳐먹고 "내가 죽으면 연로한 시부모님을 누가 봉양하고 어린 고아는 누구에게 의지하여 양육될 수 있을까."라고 하며 문득 눈물을 거두고 위로는 시부모를 위로하고 아래로는 어린 고아를 어루만졌습니다.이후 염습의 도구는 손수 스스로 재봉하였고 매장하는 절차는 몸소 스스로 검속하였으며 죽은 이를 장송하는 절차는 조금도 여한이 없게 하였습니다. 시부모를 섬기는 정성은 남편이 살아있을 때보다 배나 정성을 다했고, 방적 일에 부지런히 힘써 집안의 도를 지켰으며, 자식을 의로운 방법으로 가르쳐서 또한 집안의 가르침을 잇게 하였으니, 사림들이 칭찬하고 자랑합니다. 박씨의 효열이 아니었으면 나씨의 가문이 어찌 이와 같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저희는 같은 도에 살면서 이와 같은 탁월한 행실은 듣기 드문 경우이니, 어찌 말하지 않아 사라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감히 우러러 답변합니다. 오직 바라건대, 귀 군의 여러 군자가 더욱 찬동하여 당시에 예속(禮俗)을 밝히고 후세에 풍성(風聲)을 세우기를 몹시 바랍니다. 이 글은 나주향교 유림 첨자하에게 공경히 회통한 것입니다.단기 4289년(1956) 병신년 모월 모일에 남원향교 전교 이상의, 장의 권정규(權定奎)·안승섭(安昇燮)·강석희(姜奭煕)·오병기(吳秉箕)·박형섭(朴炯涉)·이장의(李莊儀), 색장 김후열(金煦烈)·김정덕(金正德)·노원태(盧源泰)·이만기(李萬器)·최성희(崔性煕)·원종찬(元鍾贊)·유도회장 노병인(盧秉仁)·형광욱(邢光旭), 양사재(養士齋) 장의 한관석(韓瓘錫), 충렬 장의 박형남(朴炯南), 다사(多士) 방진혁(房鎭赫)·박해천(朴海千)·안종후(安鍾厚)·최한범(崔漢範)·진성준(陳性駿)·양해룡(梁海龍) 풍악(豐嶽)의……드러났습니다 진(晉) 나라 때 장화(張華)가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늘 자줏빛 기운이 감도는 것을 보았는데, 뇌환(雷煥)이 그의 말을 듣고 풍성(豐城)의 감옥 터 땅속에서 춘추 시대에 만들어진 보검인 용천검(龍泉劍)과 태아검(太阿劍)을 발굴하였고, 춘추 시대 초(楚) 나라의 옥공(玉工) 변화(卞和)가 옥의 원석을 발견하여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차례로 바쳤다가 두 번 모두 임금을 속였다는 죄명으로 억울하게 월형(刖刑)을 당하고, 문왕(文王) 때 3일 밤낮을 통곡한 끝에야 겨우 진실을 인정받은 일을 말한다.(『晉書』, 『韓非子』) 回通右謹回通事 伏以豐嶽之■(劒)■■(雷)煥而發之 璞玉之美 得卞和而顯之 物亦如此 矧乎人哉 忠孝烈之人有甚於物之爲寶也 謹按 貴郡薦狀 則細枝面五峯里孝烈婦朴氏系出密陽 密城君彦忱后 士人有三女 閨範素著 年屆十八 聘歸于籍羅州巨族士人羅得洙 卽錦湖公士忱后鍾基子 旣歸躬執婦道 孝事舅姑 敬奉君子 閨門雍睦 鄕里模楷 其夫不幸偶嬰奇疾 委牀十餘年 藥無不用 祝無不誠 天胡不憖 奄遭崩城 矢欲自殞 不食者三日 幡然改悟 曰我若死之 老嫜有誰養之 幼孤依誰育之 輒收淚而上慰舅姑 下撫幼孤 後襲斂之具手自裁縫 葬埋之節 躬自檢攝 送終之節 少無餘憾 事舅姑之誠 倍於夫在日 克勤紡績 以扶家道 教子以義方 亦克襲庭訓 士林推詡非朴氏之孝烈 羅氏之門安得如此 生等居在同省 如此卓行果所稀聞 豈可無言 而泯沒哉 玆敢仰答 惟願 貴郡 僉君子益加贊同 明禮俗於當時 樹風聲於來世 千萬幸甚 右敬回通于 羅州 鄕校 儒林 僉座下檀紀四二八九年丙申 月 日南原鄕校典校 掌議 色掌李相儀 權定奎 安昇燮 姜奭煕 吳秉箕 朴炯涉 李莊儀 金煦烈 金正德 盧源泰儒道會長 養士齋掌議 忠烈掌議 多士李萬器 崔性煕 元鍾贊 盧秉仁 邢光旭 韓瓘錫 朴炯南 房鎭赫 朴海千 安鍾厚崔漢範 陳性駿 梁海龍[皮封] (前面) 羅州 鄕校儒林 僉座下(背面) 南原 鄕校回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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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오대선(吳大善) 등 통문(通問)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檀紀四千二百八十八年 羅州郡 鄕校 典校 吳大善 等 38名 列郡鄕校 儒林 僉座下 檀紀四千二百八十八年 吳大善 列郡 鄕校 儒林 나주 나주나씨 나덕준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5_01_A00002_001 1955년에 나주향교(羅州鄕校) 전교(典校) 오대선(吳大善) 등 38명이 열군(列郡) 향교(鄕校) 유림(儒林)에게 보낸 통문(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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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오대선(吳大善) 등 통문(通問)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檀紀四千二百八十八年乙未十二月 羅州鄕校 典校 吳大善 等 29名 列郡鄕校 儒林 檀紀四千二百八十八年乙未十二月 吳大善 列郡 鄕校 儒林 나주 나주나씨 나덕준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5_01_A00002_001 1955년 12에 나주향교(羅州鄕校) 전교(典校) 오대선(吳大善) 등 29명이 열군(列郡) 향교(鄕校) 유림(儒林)에게 보낸 통문(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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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이교채(李敎采) 등 통문(通問)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檀紀四二八九年丙申 光州鄕校 典校 李敎采 等 25名 羅州鄕校 儒林 檀紀四二八九年丙申 李敎采 羅州鄕校 儒林 나주 나주나씨 나덕준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5_01_A00002_001 1956년에 광주향교(光州鄕校) 전교(典校) 이교채(李敎采) 등 25명이 나주향교(羅州鄕校) 유림(儒林)에게 보낸 회통(回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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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이도형(李道衡) 등 통문(通問)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檀紀四二八九年丙申 全州鄕校 典校 李道衡 等 10名 羅州鄕校 儒林 檀紀四二八九年丙申 李道衡 羅州鄕校 儒林 나주 나주나씨 나덕준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5_01_A00002_001 1956년에 전주향교(全州鄕校) 전교(典校) 이도형(李道衡) 등 10명이 나주향교(羅州鄕校) 유림(儒林)에게 보낸 회통(回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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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이상의(李相儀) 등 통문(通問)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檀紀四二八九年丙申 南原鄕校 典校 李相儀 等 23名 羅州鄕校 儒林 檀紀四二八九年丙申 李相儀 羅州鄕校 儒林 나주 나주나씨 나덕준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5_01_A00002_001 1956년에 남원향교(南原鄕校) 전교(典校) 이상의(李相儀) 등 23명이 나주향교(羅州鄕校) 유림(儒林)에게 보낸 회통(回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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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류종룡(柳鐘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巳至月九日 生 柳鐘龍 癸巳至月九日 柳鐘龍 申在熙 보성 평산신씨 신연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1953년 11월 9일에 류종룡(柳鐘龍)이 신재희(申在熙)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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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겨우 30리 남짓임에도 문하에 나아가 뵙지 못했는데도 지금 존장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못난 저는 어떻게 받았는지도 알지 못하겠으니, 무슨 영문인지 감사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또한 편지 속에서 필봉이 예리하고 필치가 전아하며 또한 강건한 기운이 느껴지니, 팔순이나 되는 노사(老師)의 정력이 노쇠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능성(綾城)의 많은 석유(碩儒)가 참으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우러러 공경함은 나의 개인사일 뿐만 아니고 또한 세도를 위한 다행입니다. 시현(施鉉)의 나이에서는 또한 쉽게 얻기가 어려운 수재입니다. 매번 여러 몽매한 사람 가운데서 보면, 흡사 닭 무리 속의 학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근래에 인재가 묘연하여 훌륭한 일을 하는 자질이 되는 사람을 볼 수 있다면 어찌 애지중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그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재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재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고 행동을 가상히 여기는 것입니다. 공손하고 삼감은 가정에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 많습니다. 덕문의 남은 복이 끝이 없습니다.저는 본래 용렬하고 지식이 부족하고 지조까지 없어서 세태에 따라 부침할 뿐입니다. 어찌 감히 일깨우는 스승의 책임을 맡겠습니까. 학원에서 기숙하는 것이 어찌 그 본분이 넘치는 것을 피할 수는 있겠습니까. 하지만 거의 남의 자제를 망치게 만드는 것이니, 참으로 두려운 심정을 마지않습니다. 말씀하신 재종숙은 바로 저의 삼종숙모입니다. 일찍이 부덕(婦德)이 있어 향리에서 효녀와 열녀라고 칭찬받았습니다. 효가 되는 까닭과 열이 되는 까닭은 우선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종자를 후사로 삼아 산업도 또한 그런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체후가 때에 따라 평안하여 더욱 늙지 말기를 바랍니다. 삼가 예식을 갖추지 않고 편지를 올립니다.1953년 10월 9일에 생 류종룡(柳鐘龍)이 절하고 답장 올림. 地僅一舍餘 未得進拜 門屛 而今拜尊札 生之無似不知得此 何由愧悚先於感荷 且 書中詞鋒精利 筆致典雅而亦有遒勁之氣 可見八旬老師之精力不衰 早聞綾城多碩儒者信然爾 景仰非獨我私 而亦爲世道欣幸耳 令施鉉年亦難易得之秀才也 每見於叢蒙中 髣髴乎鷄羣之鶴也 近來人才眇然 如得見有爲姿質 安得不愛重 非愛其皃而愛其才之美 非愛其才 而可尙其言動 恭謹之有所受於家庭者多矣 德門餘福未艾也 生本闒茸少知 兼無操守 與世俯仰浮沈而已 安敢當師表提撕之責耶 寄食學園 豈其本分濫觴 猶可逭焉 而幾乎誤人子弟者 固自悚懼不已 下示 尊再從叔氏卽生之三從叔母也 早有婦德 鄕里稱其孝與㤠 其所以孝其所以㤠者姑不須枚陳 其別世已多年 以其從子爲后 産業亦依過耳 餘伏祝道體候循時康旺 益增難老 謹不備上癸巳至月九日 生 柳鐘龍 拜謝上[皮封] (前面) 申生員 栢隐 座下(背面) 宝寓 柳鐘龍謹拜候書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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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통이 글은 통문에 회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충·효·열 삼강은 만 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도 해내기 어려운데, 하물며 두 가지를 겸한 것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삼가 귀 군의 유천(儒薦)을 살펴보니, 세지면(細枝面) 오봉리(五峯里) 박씨는 본적이 밀양이고 밀성군(密城君) 언침(彦忱)의 후손이며, 사인 유삼(有三)의 딸로 효열녀가 바로 이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현숙한 덕을 갖추었고, 나주 망족 사인 나득수(羅得洙)에게 시집을 갔으니, 득수는 바로 금호공(錦湖公) 사침(士忱)의 후손 이자 종기(鍾基)의 아들입니다. 득수는 평소 사림의 중망을 받았고, 그 아내 박씨는 그 덕을 본받아 짝하였습니다. 박씨가 시집가자 시부모가 그 효성을 칭찬하였고 남편이 그 덕을 즐겁게 여겨 규문이 정숙하고 향당이 감탄하였습니다.남편이 불행히도 병에 걸리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백방으로 간호하고 치료하느라 눈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십여 년간 애써도 약은 효과가 없었고 기도는 감응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곧장 따라 죽고 싶었지만, 도리어 연로한 시부모를 염려하고 아래로는 어린 두 고아를 걱정하여 곧바로 눈물을 닦고 죽은 이를 장송하는 절차를 몸소 검속하여 조금도 여한이 없게 하였습니다.삼 년의 시간은 하루처럼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상기를 마친 후에는 미망인으로 자처하여 방적 일에 힘을 쏟아 집안일을 다스렸습니다. 또한 두 아이를 잘 교육시켜 두 아들이 착하게 자라 선대의 아름다움을 계승하여 모두 효우로써 알려졌습니다. 만약 박씨의 효열이 아니었다면 나씨의 가문이 어찌 이와 같은 명성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저희는 이웃 고을에 살면서 이미 이 일을 익숙히 들었고, 또한 이렇게 통문을 보내주어 침묵할 수가 없기에 이처럼 우러러 답변합니다. 오직 바라건대, 귀 군의 여러 군자께서 의당 역사서에 크게 기록하고 서둘러 정문(旌門)을 도모하여 아름다운 명성을 오래도록 전하고 훌륭한 사적을 널리 전파하여 풍속을 세우고 시속을 도탑게 하여 영원토록 불후하게 하기를 몹시 바랍니다. 이 글은 나주향교 유림 첨좌하께 공경히 회통한 것입니다.단기 4289년(1956) 병신년 모월 모일에 광주향교 전교 이교채(李敎釆), 장의 박정규(朴禎圭)·기우섭(奇雨燮)·고광세(高光世)·송태중(宋泰重)·이석근(李石根)·민치안(閔致安)·문현모(文顯模)·박길원(朴吉源)·고영훈(高永勲)·김진경(金鎭卿)·안종안(安鍾安)·이길우(李吉雨)·정해규(鄭海圭)·이상회(李相會), 다사(多士) 이회춘(李會春)·기근섭(奇近燮)·박승주(朴升柱)·이호경(李浩敬)·박종륜(朴鍾崙)·이교태(李敎台)·최수화(崔洙華)·고제용(高濟鏞)·민영두(閔永斗)·정순환(鄭淳煥) 回通右謹回通事 以忠孝烈三綱亘萬世不可易者也 而一猶難 况兼二乎 謹按 貴郡儒薦 則細枝面五峯里朴氏系出密陽 密城君彦忱后 士人有三女 孝烈是耳 自幼有淑德及歸于貫羅州望族士人羅得洙 卽錦胡公士忱后鍾基子也 得洙素有士林之推重 其妻朴氏式配其德 旣歸 舅姑稱其孝 君子樂其德 閨門貞肅 鄕黨欽嘆 其夫不幸有疾 暫不離側 百方調治 目不交睫 以此十餘年 藥無奏效 祝無感應 奄至屬纊 直欲下從 旋念舅姑之老 下思二孤之幼 輒收淚 而送終之節 躬自檢攝 一無少憾 三霜如一日闋制後以未亡人自處 克勤紡績 以治家伙 教戒二子 二子善長 克趾先美 俱以孝友聞 非朴氏之孝烈 羅氏之門安得如此 生等居在隣鄕 已爲稔聞 而又此來通 難可含默 故如是仰答 惟願 貴郡 僉君子宜乎大書竹帛 亟圖綽楔 壽傳美名 廣播懿蹟 以爲樹風敦俗 永世不朽 千萬幸甚 右敬回通于 羅州 鄕校儒林 僉座下檀紀四二八九年丙申[光州鄕校]月 日光州鄕校 典校 掌議李教釆 朴禎圭 奇雨燮 高光世 宋泰重 李石根 閔致安 文顯模 朴吉源 高永勲 金鎭卿多士安鍾安 李吉雨 鄭海圭 李相會 李會春 奇近燮 朴升柱 李浩敬 朴鍾崙 李教台 崔洙華高濟鏞 閔永斗 鄭淳煥[皮封] (前面) 羅州 鄕校儒林 僉座下(背面) 南原 鄕校回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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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金焯) 간찰피봉(簡札皮封) 고문서-기타-피봉 縳城歸房海舍金焯 羅斯文明庵 金焯 羅相玉 나주 나주나씨 나덕준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김작(金焯)이 나상옥(羅相玉)에게 보낸 간찰피봉(簡札皮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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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 (전면) 나주향교 사문 나명암의 성올(省兀)에게(배면) 능성(綾城)의 귀객(歸客) 해선(海善) 김작(金焯) [皮封] (前面) 羅州 鄕校羅斯文 明庵 省兀(背面) 綾城歸客海善金 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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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신한성(申漢星)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申漢星 施命之寶 (10.0×10.0) 광주 평산신씨 신익립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7년 12월에 고종이 신한성을 통정대부·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으로 추증하는 고신 1867년(고종 4) 12월에 고종이 신한성을 통정대부·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으로 추증하는 고신이다. 연호 왼편 방서에 따르면 손자 신재문이 종2품 가선대부에 오르면서 그의 할아버지를 법전의 규정에 따라 추증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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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學生申漢星 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者同治六年十二月 日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申在文祖考依法典追贈[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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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신한성(申漢星) 처(妻) 탐진최씨(耽津崔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申漢星 妻 耽津崔氏 施命之寶 (10.0×10.0) 광주 평산신씨 신익립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7년 12월에 고종이 신한성의 아내 유인 탐진최씨를 숙부인으로 추증하는 고신 1867년(고종 4) 12월에 고종이 신한성의 아내 유인(孺人) 탐진최씨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추증하는 고신이다. 연호 왼편 방서에 따르면 손자 신재문이 종2품 가선대부에 오르게 되면서 법전의 규정에 따라 그의 할머니를 가자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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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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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敎旨孺人崔氏贈淑夫人者同治六年十二月 日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申在文祖妣 依法典追贈[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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