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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 동중완의(洞中完議) 고문서-증빙류-완의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02년(숙종 28) 11월 13일 동중에서 작성한 완의 1702년(숙종 28) 11월 13일 동중에서 작성한 완의이다. 서두에 완의를 작성하는 까닭을 적고 이어 주맥유사안(酒麵有司案), 남화안(南花案), 동장(洞長)·공사원(公司員)·장의(掌議)·집강(執綱)의 명단을 나열하였다. 표지에는 표제(表題)인 동중완의(洞中完議)가 기재되어있고, 발행년을 강희41년(康熙四十一年), 숙종28년(肅宗二十八年), 개국311년(開國三百十一年), 임오(壬午)로 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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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康熙四十一年肅宗二十八年 壬午開國三百十一年第十二卷洞中完議2)洞中完議洞中社會 各任謀避 不無紛紜之擧 是乃吾洞之一大欠事也 玆於講信之日 發議論定酒麺有司則自六十歲至五十歲 南花則自3)五十歲以下爲定 惟願勿爲徑廷惕念擧行 幸甚酒麵有司案鄭俁仙洪以源洪以圭仙洪大受洪大瑬洪韻羽4)仙金聲發仙金大鎰鄭値仙洪以濂成夏鼎仙鄭鴻重仙崔東斗仙張世維鄭球洪峻基金德玘 曾經仙金 礎5)仙張世經仙金大焃鄭璿金礌 曾經鄭道明鄭琦仙李東茂仙洪瑞礎洪大節鄭琥鄭道三仙金世鳴6)金碔鄭珪金大鐘鄭民瑞洪翊禹仙鄭五瑞仙李日華7)南花案鄭珷洪大始張世紏曾經鄭道一曾經仙成楚進仙鄭璘鄭道貫洪夏圭8)仙鄭大瑞張宇柱洪以淟金碻鄭璡仙成楚擧金之玉洪以泗鄭道時仙鄭俔仙鄭地瑞鄭琮9)金重玉鄭弼周李東潝洪世圭鄭道中鄭鑑鄭彦復洪胤輔鄭彦慱成楚玉 曾侄李東浹洪大臨10)鄭昌周李東潤 曾侄鄭彦成鄭翼周成大一仙成{由/已}徵鄭七瑞李日光出仙鄭道成仙李日輝出鄭暳11)掌議仙羅斗燁洪以珪執綱洪大瑬仙鄭鳴重仙金礎鄭琥壬午十一月十三日立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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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鞍面化民鄭一浩·洪仁周·金恩澤等 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以世道之隆▣▣於斯 文斯▣…▣於庠序是 故國有庠其義 淸肅鄕有序其禮鄭重 此莫非崇文化俗之誼也 大抵金鞍洞雙溪亭 卽海東夫子文靖公雪齋鄭先生講學之所也 雪齋先生▣…▣斥佛 倡明道學 剏立斯亭 而同時名賢文肅公全先生 文顯公尹先生受學于斯 世人謂之三賢堂事實 昭在國史洞誌是如乎 逮于我 朝 戶曺判書亭公 領議政巖軒申先生 兵曹判書謚景武公鄭先生 領議政文忠公申先生 歸來亭申先生 府使洪公 吏曹判書文節公采先生 逸軒鄭先生 滄洲鄭先生 文正公思庵朴先生盤桓洪先生 參判羔巖洪公 慶源公鄭先生 丙子功臣錦隱洪先生 順天府使杏亭洪公諸賢 講學于斯亭 雅望碩德 後先輩出 寔爲流世之光 濂洛之風 彬彬乎斯矣 而外他科宦 不可一一枚擧是如 顧此亭榭之崇奉 不諭尊敬而自重也 上自雪齋鄭先生 下子杏亭洪公諱牒 別爲一案目之 而先生案繼之 而各姓氏才行之人錄之 而講學案 几坐于斯亭之樑上 世世系承 迄于累百年遺俗 則合而言之 名流之亭榭 分而言之 則各姓氏之祠宇也 士習謹愼 洞䂓嚴重 亭之四山內禁葬 亦一條条約也 而無一點八葬者矣 中年良 洞人洪聖周 偸葬于亭之後切迫之地 洞議齊起 卽爲聞 官督掘 以懲後習矣 料外去年良 洞案子弟洪承祚 素是豪悖之人 曼蔑前鑑 渠矣妻葬 偸葬于前塚塚官掘之地 沗先侮賢之罪 此莫甚焉 而自洞中累會亭榭 諭誨萬端是矣 一向萬拒以至今者 故一洞民人 帖聯舊狀 齊聲仰訴 洞燭敎是後 所謂偸塚 卽爲掘移 俾此民等快遂崇賢慕先之誠 萬千區區祈恳之至行下向 敎是事城主 處分 乙酉十月 日 化民 鄭一浩 洪仁周 金恩澤 鄭時浩 洪萬周 鄭桂 李敦燁 洪建周 鄭柱 鄭在三 洪興謨 鄭源益 洪啓謨 鄭㯳 洪贊周 鄭大會 鄭文浩 金長權 洪元謨 鄭一安 洪達周 洪祐直 鄭源吉 洪祐贊 鄭源宏 洪承敬 鄭源詢 洪祐全 鄭桓 鄭忠鉉 金重權 金在重 洪祐敬 鄭勉會 柳文募 鄭榮會 鄭仁會 洪祐三 鄭鐘運 洪祐國 柳秉詢 洪祐風 鄭晩會 洪承然 鄭甲會 鄭鐘浩 金仁權 洪承允 鄭近會 洪祐一 鄭光會 洪承學 鄭{木+玉} 洪承泰 鄭柈 鄭遇天 洪誾周 鄭楀 鄭芳會 鄭源誼 金聖權 鄭俊會 洪琬周 鄭采會 鄭源圭 洪祐勉 洪祐庠 鄭龜會 鄭琮會 洪邦周 鄭鳳會 鄭雲會 金元爕 洪武會 洪永周 鄭章會 洪祐模 李圭憲 鄭桶 金弘貫 鄭在會 洪祐春 鄭欇 鄭柱會 洪運周 鄭模 李震憲 鄭遇悅 鄭過敬 洪祐明 鄭淳德 金致祚 洪璋周 金恩祚 鄭一會 洪承柱 金允爕 鄭源俊 洪祐敦 等使[着押][羅州牧印](題辭)若果訟掘之地 則其所當禁 可以詳悉 査實杖囚督掘次 洪承祚捉來向事狀民等 卄四日主人(背題)當禁不當禁掘奸圖形以來向事吏差背題(背面籤紙)쌍계정이 삼현당임을증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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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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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운(洪致雲)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洪致雲 羅州府使 □…□ 3顆(7.0x7.0)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홍치운 등이 80인이 나주목에 올린 상서 모년에 화민(化民) 유학(幼學) 홍치운(洪致雲) 등 80인이 나주목에 올린 상서(上書)이다. 문서의 앞부분이 훼손되어 홍치운의 거주지와 앞의 내용을 알 수 없지만 홍치운(1600~1665)의 생몰년을 근거로 작성시기를 17세기 중반으로 추정하였다. 홍치운 등이 하소연하는 내용은 관가에서 종이를 다듬는 일[紙砧]과 관련하여 쌍계정(雙溪亭)의 나무를 베지 말도록 나주목에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나주목사는 '관에서는 요사이 일에 대해 알지 못하고, 다만 보고받은대로 나무를 베도록 한 것이니 사정이 이와 같다면 베지 말도록 하라.'고 26일에 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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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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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洞中有▣…者示不忘也 厥後壯元及第成晉鄭▣鄭詳洪千璟相繼 而出遊於斯▣…伐 則一洞之人必恭必敬者 豈特維桑與榟也 小子後生 雖不及先進好學 而或習▣…▣於斯亭 匪日不懈 不墜遺風 則斯亭之▣ 有關於後學 豈徒然哉 今者竊聞 官家紙砧 因其破傷而欲伐斯亭云 一木之見伐 雖出於二百年之後 而有志之士 實有憾於今日矣 後生蒙學於何考德焉於何述華焉伏乞城主閤下 特施愛士之情 俾遂勿伐之戒 千萬幸甚干胃 嚴威不勝惶悚之至化民幼學 洪致雲 鄭明瑞 生員洪逴 幼學 洪? 鄭存仁 鄭瀯 崔千仭 鄭震瑞 鄭演 洪致雯 鄭邦瑞 崔千重 洪遙 成以亭 金致道 洪逷 洪遇 洪富南 洪致霂 成瑗 鄭壽仁 金益剛 洪以舟 洪萬基 洪命基 李命彦 鄭友仁 鄭起塾 洪相基 洪遊 洪遴 張溟趐 金命圭 李推義 鄭寅佑 鄭如虞 鄭淑 洪以丸 崔汝恒 洪仁基 洪以錫 金聲周 洪遂 金聲禹 李命行 李震馨 金聲夏 洪以載 李命老 成以元 洪以一 鄭雲瑞 金聲漢 鄭休 鄭偁 崔汝華 鄭鴻基 洪以沃 鄭純仁 金聲武 成夏休 成以善 鄭健 成以春 成以文 成夏輔 鄭起序 成以秋 張大之 成以信 洪邊 鄭濈 洪暹 鄭俠 李時苾 洪以涉 鄭甫瑞 崔峻瞻 金萬剛 鄭弼瑞 等使[着押][羅州牧印](題辭)官不知此間 而只所報而使伐出爲有如乎 曲折如此則勿使斫出向事 卄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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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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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룡(洪羲龍) 등 상서(上書)○ 정의 홍희룡 등이 나주목사에 올린 상서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洪羲龍 羅州府使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에 홍희룡(洪羲龍) 등이 나주목에 올린 상서(上書)이다. 문서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지만 홍희룡(1786~1825)의 생몰년을 근거로 작성시기를 19세기 초반으로 추정하였다. 홍희룡 등이 하소연하는 내용은 지난 을해년(乙亥年)에 마을 주민 정찬열(鄭纘烈), 정수성(鄭遂檉)이 무덤을 몰래 장사(葬事)지낸 일로 관에서 '파옮기라'는 판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또 다시 상서를 올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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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宲等 謹齋沐上書于▣…▣安洞 卽士林之府庫也 名公巨卿 接迹而輩出 宏儒碩士 繼世而興▣…▣▣…▣斯焉 生長於斯焉 逍遙則某峀某邱 至今景仰 後生之興感 曷有其極以言▣…▣▣…▣花樹遺庒 錦峀崢嶸而繞其南 錦溪潺湲而流其中 粵在雪齋鄭先生創立▣…▣▣…▣然如覩於不美哉 夫何物理邅旋 興替有數 挽近以來 凶荒荐臻 死亡相繼 村落▣…▣▣…▣有犯葬之人 則呈 官卽掘矣 往在乙亥 洞人鄭纘烈鄭遂檉等 犯葬於洞▣…▣▣…▣掘移之地也 前後證案 若是昭昭 而右等之犯葬 誠極駭然 若此不禁 則▣…▣▣…▣仁政之下 伏願 閤下 另加軫念 而特爲發牌 上項鄭纘烈鄭▣…▣▣…▣鄭宜喆 洪羲善 洪致浩 鄭達喆 洪元浩 鄭基亨 洪羲龍▣…▣羅▣▣ 金致鍊 洪賢謨 鄭在煥 洪羲祚 洪復淵 金宗德▣…▣鄭鎬 金澄 等使[着押][羅州牧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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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정교(鄭僑) 등 의송(議送)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鄭僑 羅州府使 □…□ 5顆(7.0x7.0)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96년 7월에 정교 등 17인이 전라도관찰사에 올린 의송 1696년(숙종 22) 7월에 정교(鄭僑) 등 17인이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 올린 의송(議送)이다. 주요 내용은 도둑[草賊]의 절도행위에 대해 단속하시고, 각읍의 수령에게 단단히 타일러 마땅히 동약(洞約)에 따라 처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전라도관찰사는 이전에 이미 전령(傳令)을 내렸다며 도둑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처분을 내렸다. 고을 구성원이 함께 기찰(機察: 譏察)하여 잡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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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호(洪治浩)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홍치호 등이 관에 올린 상서 모년에 홍치호(洪治浩) 등이 관(官)에 올린 상서(上書)이다. 문서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작성자의 거주지와 문서의 내용, 문서를 작성한 날짜 등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마을 주민 정찬열(鄭纘烈), 정수성(鄭遂檉)이 투장(偸葬)한 일과 관련하여 상서를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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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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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等謹齋沐上書于▣…▣鄭纘烈鄭遂檉等犯葬事齊訴 則 題音內此非昨今拜▣…▣▣…▣警責固當固當 而鄭纘烈之犯葬 雖在乙亥 而鄭遂檉之犯葬 果在▣…▣▣…▣念數百年父老守護禁斷之地 以後生不敏之故 爲一北邙之地 則不徒▣…▣▣…▣葬之弊 則呈 官卽掘 而 金等城主 特爲親審而掘去 吳等城主則▣…▣▣…▣紛總之下乎 上項兩人 亦是洞中子孫 則知禁而故犯者 尤極痛▣…▣▣…▣甚▣…▣鎬 金宗德 羅致黙 鄭在煥 洪羲祚 鄭基亨 洪致浩 洪羲善 鄭宜喆 ▣基實洪羲▣[着押](題辭)此▣…▣之▣…▣呈▣…▣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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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3顆(7.0x7.0)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미상년에 미상인이 나주목에 올린 소지 미상년에 미상인이 나주목에 올린 소지이다. 문서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문서를 작성한 작성자의 거주지와 문서의 내용, 문서를 작성한 날짜 등을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마을 주민 정찬열(鄭纘烈), 정수성(鄭遂檉)이 투장(偸葬)한 일과 관련하여 상서를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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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州▣…▣右謹言▣▣情由段▣…▣望乎淂不痛 草賊之竊發 去春言之 則萬命殿屎之▣兩麥失稔之中 兪▣…▣斗斛之穫 目今衆庶之眝眝 未必不由於此此 類尙在奸習▣…▣爲▣鼎鐺 莫月▣…▣恣慘 易有甚極 式至今旧 又有甚焉 飢餒濱孔之民 日▣…▣在早稻爲其之者▣…▣軍 不計生熟 洗肆偸刈 甚至暮夜 作黨▣…▣竊 小無忌憚 夫草▣…▣憂 而觀其擧措之兇悖 來頭之患恐 不止草賊 此▣…▣切憫抑 將爲 國家之大▣…▣等伏想使道▣以凡例草賊視之 而▣▣別樣之擧 丕施▣盜之方 固不當唐突呼籲 而洗鼎方待之穀 晝入於賊輩之▣喁喁 大命將近 至痛所在 焉得無言 且本洞▣…▣一疑昭 右約条 非不欲自下申飭而▣…▣▣…▣決非尋常 若不以▣…▣使道明法加之 則區區洞約 焉得以▣▣哉 ▣…▣巡相別樣於關 申飭各邑 使之持可知守直▣…▣殺者萬無償命之理云 是則 巡相亦不以▣…▣ 矣等不憚煩猥 敢此溷陳 伏乞使道深軫▣情 別垂明察▣…▣賊之▣…▣活 矣等當以洞約從事 而隨所發覺 卽報▣…▣使道法監之審 古焉▣…▣切尙爲▣…▣況此飢歲偸俗 可不別慮而重治也 更乞使道垂納爲只爲行下 向敎是事右營使道處分丙子七月 日議送前訓練哨官鄭僑 幼學金聲五 鄭國老 鄭道明 羅斗燁 洪以圭 洪大瑬 成夏鼎 洪以廉 鄭値 鄭瑜 鄭道乾 金之玉 張世經 金德玘 李東潝 成穩 等[着押][全羅道觀察使之印](題辭)纔聞草賊竊發之▣…▣▣己發傳令 今▣…▣賊 有同强竊盜▣…▣別重治之意 ▣…▣▣付爲有置▣…▣▣將及里▣…同 機察捕納▣…▣別樣處置之▣…▣事 面任▣…▣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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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 정기표(鄭基杓)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鄭基杓 羅州府使 □…□ 1顆(7.5x7.5)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9년에 3월 정기표 등 117인이 나주목에 올린 상서 1769년(영조 45) 3월에 김안면(金鞍面)에 거주하는 화민(化民) 정기표(鄭基杓) 등 117인이 나주목에 올린 상서(上書)이다. 주요 내용은 마을 주민 홍성주(洪聖周)가 강학소(講學所) 쌍계정과 지척인 사산(四山) 내에 투장(偸葬)한 일에 대해 특별히 친심(親審)하고 투장한 무덤을 곧바로 파 옮겨달라고 요청한 내용이다. 나주목사는 초10일 산도(山圖)를 그려 오라는 처결을 내렸다. 이 처결은 향색(鄕色)에게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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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所見而去 何所聞而來乎▣…▣▣…▣餘生 俱汩喪敗 不遑人事之致▣…▣▣…▣所臨村落 不無殘敗之患 豈▣…▣▣…▣前後證案 若是昭昭 苟非功緊當 禁▣…▣▣…▣法▣鄭纘烈鄭遂檉等 捉致嚴▣…▣(題辭)▣…▣卑晩▣…▣▣…▣必再▣…▣▣…▣日之內▣…▣▣…▣着急則▣…▣▣…▣干之後▣…▣▣…▣考施行▣…▣[羅州牧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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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2顆(7.0x7.0)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미상년에 미상인이 나주목에 올린 소지 미상년에 미상인이 나주목에 올린 소지이다. 문서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문서를 작성한 작성자의 거주지와 문서의 내용, 문서를 작성한 날짜 등을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마을 주민 정찬열(鄭纘烈), 정수성(鄭遂檉)이 투장(偸葬)한 일과 관련하여 상서를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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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盤桓洪先生 逸軒鄭先生 錦隱洪▣…▣▣…▣山之 洪瑞與之 金河東之 鄭曰張▣…▣▣…▣焉 絃誦秋冬焉 考講藍田之遺約▣…▣▣…▣生感慕 涕淚泫漣 嗚呼噫噫 環一洞前後左右▣…▣▣…▣烈之葬處 卽鄭鎭一親葬訟掘之地也 遂檉之葬處▣…▣▣…▣衆塚 豈不寒心哉 卽當呈官掘去 而己甲餘生▣遑▣…▣▣…▣之遺意 一以保殘敗村落之地 千萬祝▣…▣[羅州牧印](題辭)▣…▣今年▣…▣▣…▣荒日歉▣…▣▣…▣斷自禁▣…▣▣…▣(背題)▣…▣已白是如▣…▣▣…▣所聞而▣…▣▣…▣煩訴向事十二[羅州牧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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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鞍面化民鄭基·拱采謨·崔學一等 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以崇賢▣…▣慕先 則寓桒梓之敬 何況杖履逍遙之地氏譜尊閣之所乎 盖 治之北金鞍洞 自 麗朝逮 我朝冠 盖爲里詩禮▣…▣洞中▣…▣立 則文靖公雪齋鄭先生 而文顯公尹先生 文肅公金先生 同學於斯 而其時目以三賢堂繼之 以戶曺判書鄭公 領議政號巖軒申先生 ▣▣▣▣洪公 景武公兵曺判書鄭先生 文忠公保閑齋申先生 領議政思菴朴先生 吏曺判書宋公 邑先生成公 壬辰功臣慶源府使鄭先生 號盤桓洪先生 刑曺參判號羔巖洪公 丙子功臣號錦隱洪先生 順天府使號杏亭洪公諸賢 擧皆講學於斯 題詠於斯 而其餘名碩科宦 亦不可一一枚擧 顧此一洞扶植之功一亭炳朗之迹 雖曠百世 義不可以終閔 故錄之以諱牒 目之以洞案 几坐子斯亭之梁上 而仍以成䂓爲洞案 子孫者世世列錄 父傳子授 至于今五百年 崇賢之義 如彼之篤 慕先之誠 若是之深 斯享之係重 非他亭榭之可比 而尊奉之義 無異乎祠宇 守護之道 殆同於公廨 又況洞䂓剏立之初 勧善懲惡之意 秩秩成軸 而四山內禁葬 亦其一也 亭之前後左右 無遠無邇 無敢一人犯葬者矣 今月初二日 本洞洪聖周 乘夜偸葬於亭之壓臨迫功之地 此誠五百年所無之大變恠也閤洞之臆塞膽慓 莫非在己之痛 而渠之侮賢泰先之罪 雖人人誅之 尙何贖焉 卽當不日內掘去 而事在法典 故齊聲仰籲 伏乞細細洞燭 是後特爲 親審處分 卽刻掘移偸塚 俾遂民等之崇賢慕先之誠 千萬幸甚行下向敎是事城主閤下 處分丙辰三月日 化民 鄭基杓 洪采謨 崔學一 鄭相赫 洪近謨 鄭斗赫 鄭在馨 金奎桓 鄭義赫 洪禹謨 鄭玉奎 洪羲九 鄭國升 洪羲學 鄭智浩 金碩桓 鄭國豊 洪羲赫 鄭鳳赫 洪羲瑞 金學坤 鄭在燦 鄭章赫 崔泰一 洪允周 鄭源悌 洪贊周 洪興周 鄭殷相 洪蓋周 鄭國容 洪轍謨 鄭德運 鄭日烈 洪翊周 鄭斗烈 洪箕謨 鄭鳳烈 鄭長浩 洪榮周 洪仁周 鄭源英 洪範周 金振澤 洪在謨 洪杓 洪煥周 鄭枰 金聖桓 鄭仁赫 洪善周 鄭普赫 洪弼周 鄭在南 洪甲謨 鄭桂 洪南周 崔鳳周 洪祐聲 鄭在寬 金長權 洪鶴周 鄭時浩 洪世周 洪權周 鄭在恒 洪在謨 崔泓一 洪成周 金恩澤 洪祐昶 鄭柱 洪祐燮 鄭在三 洪瓊周 鄭氣浩 洪楨周 鄭在七 洪祐違 鄭源興 鄭燦運 崔翔一 洪鳴周 鄭來東 鄭圭相 鄭源坰 洪祐龍 金在明 鄭源福 鄭國福 洪祐八 洪恩周 鄭俊相 柳秉勛 鄭源德 洪文謨 金碩権 鄭慶雲 洪祐彦 鄭信相 鄭源宗 金運燮 鄭星烈 鄭弼鉉 金奇燮 鄭泰赫 鄭致鉉 鄭鐘夒 鄭玉鉉 鄭源錫 鄭徹相 洪璟周 鄭源智 鄭龜鉉 鄭源伯 鄭?淳 洪貴謨 洪祐乾 等使[着押][羅州牧印](題辭)圖尺以來向事初十日鄕色(背面籤紙)證據一. 二三賢堂의 發見:一九七二年八月二十五日雙溪亭이 바로 三賢堂임을 證明하는貴重한 資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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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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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25년 정일호(鄭一浩)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鄭一浩 羅州府使 □…□ 6顆(7.0x7.0)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5년에 10월 정일호 등 112인이 나주목에 올린 상서 1769년(순조 45) 10월에 금안면(金鞍面)에 거주하는 화민(化民) 정일호(鄭一浩) 등 112인이 나주목에 올린 상서(上書)이다. 주요 내용은 예전부터 마을 주민 홍성주(洪聖周)가 투장(偸葬)한 일과 관련해서 관에 하소연한 것이다. 그때 관에서는 무덤을 파 옮기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지난해 동안(洞案) 자제(子弟)인 홍승조(洪承祚)가 그의 아내의 무덤을 조상의 무덤 앞쪽에 투장(偸葬)하였기에 동민(洞民)들이 쌍계정에 모여 상의하였고, 투장한 무덤을 파 옮기도록 타일렀으나 끝내 지키지 않았다. 이에 나주목에 이전에 올린 소지(所志)들을 첨부하여 '투장한 무덤을 즉시 파 옮겨 달라'고 다시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관의 첫 번째 판결은 24일 상서를 올린 장민(狀民)과 무덤 주인(主人)에게 '사실을 조사하여 엄히 가두고 독굴(督掘)하기 위해 홍승조를 잡아 오라'고 지시하였다. 배면(背面)에 적힌 두 번째 판결은 '금장해야 하는 땅이건 아니건 간에 도형(圖形)을 살펴 조사해 오라고 이차(吏差)에게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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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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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황철원(黃澈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巳元月日 玉潤 申仁圭 己巳元月日 黃澈源 申仁圭 보성 평산신씨 신연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1월에 황철원(黃澈源)이 사위 신인규(申仁圭)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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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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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통문위의 글은 통지하기 위해 알리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사람의 본성에는 사강(四綱)이 있는데 인(仁)·의(義)·예(禮)·지(智)입니다. 나라의 강(綱)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충(忠)과 효(孝)와 열(烈)입니다. 그 본성을 따르고 그 도를 준수한다면 사람은 귀하게 되고 나라는 바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성품을 다하고 도를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나라에서는 반드시 정려(旌閭)하고 표창하니, 이는 고금에 모두 통하는 의리입니다.본 군에는 열녀로 천양할 인물이 있으니, 성은 박이고 본관은 밀양이며, 고 사인(士人) 박유삼(朴有三)의 딸입니다. 어려서부터 여자의 일에 익숙하고 부도(婦道)를 익혔으며, 나주 나득수(羅得洙)에게 시집가서는 집안의 법도를 이어받아 집안의 도가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병에 걸리자 시부모님이 집에서 아들의 병을 더욱 걱정하였는데, 밀양 박씨는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고, 수명을 연장해달라고 하늘에 빌고 북두에 빌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더 살지 못하고 문득 세상을 떠나자, 애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고, 차라리 남편의 뒤를 따라 지하에서 남은 인생을 이어가는 것이 낫겠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누가 부양할 수 있으며 어린아이는 누가 양육할 수 있겠는가."라며 돌연히 깨닫고는 강인함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초상과 장례·제의(祭儀)를 한결같이 가례(家禮)를 준수하여 섭섭함이 없게 하였습니다. 효로써 노부를 봉양하고 고아를 보살피며 의리를 가르쳐서 부녀자의 일을 극진히 하여 문호를 보존하였습니다. 열녀의 행실은 아름답다고 칭찬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잇고 집안을 이루는 정성이 과연 어떠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가만히 생각건대, 우리들은 사람의 떳떳한 도리가 있으니, 정렬(貞烈)과 지성(至誠)을 현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실만을 채록하여 우러러 동관(同管)과 서울과 지방의 여러 군자에게 고합니다. 바라건대, 한목소리로 천양하여 사람들이 반드시 성품을 다하고 나라가 반드시 기강을 세워 인·의·예·지의 단서를 따라 충·효·열의 행의를 부지한다면 사람들은 성품을 다하고 나라에는 기강이 세워질 것이니, 이렇게 되기를 무척이나 바랍니다.이상은 여러 고을 향교 유림 첨좌하께 통지하여 알린 것입니다.단기 4288년(1955) 을미 12월 모일에 나주향교 전교 오대선(吳大善), 유도회장 이계두(李啓斗)·이종석(李鍾奭)·이우규(李禹圭), 장의 임인규(林麟圭)·김봉수(金奉洙)·허종(許鍾)·나도인(羅燾仁)·임민호(林珉鎬)·이교창(李敎昶)·김동현(金東賢)·정병호(鄭昺浩)·윤승의(尹承義)·진상수(陳相洙)·오승수(吳昇洙)·이병두(李丙斗)·이양신(李良信)·류재수(柳在壽)·홍조식(洪肇植)·나갑운(羅甲運)·류제봉(柳濟鳳)·나종근(羅鍾瑾)·류영오(柳永五)·오판근(吳判根)·홍동희(洪同憙)·이태형(李泰炯)·정태림(鄭太林)·정동채(鄭東采)·이동범(李東範) 등 通文右文爲通告事 竊以人之性有四綱 曰仁義禮智也 國之綱有三 曰忠孝與烈也 率其性而遵其道 則人而爲貴 國而得正矣 如有盡性行道者 則人必稱美 國必旌褒 古今之通義也 本郡以烈闡揚者有之 曰朴其姓 籍貫密陽 故士人有三女 幼閑女事 能習婦道 及歸于羅州羅得洙 克承刑化 家道安靜矣 及夫有疾 老舅在堂 愈恐惟憂竭誠救調 祝天祈斗 無所不至 以致假年 年未延壽 奄遭崩城 痛殞罔措 自謂曰寧爲下從 以續餘年於九原■(於)之下爲愈也 幡然改悟 曰尊舅誰能扶養 幼孤孰可撫育 强忍忍痛 喪葬祭儀壹遵家禮無憾 養老以孝 撫幼敎義 極盡婦工 以保門戶 非徒烈行之稱美 而已其繼世成家之誠果謂何如哉 竊以 鄙等秉彝所在貞烈至誠 不可不揚 故摭實仰告于同管 僉君子首善之下 望須齊聲薦揚 使之人必盡■(性)必立綱 以循仁義禮智之端 以扶忠孝烈之行誼 則人之惟國之綱千萬幸甚右 敬 通 告 于列郡 鄕校儒林 僉座下檀紀四千二百八十八年乙未十二月 日[羅州鄕校] 羅州鄕校典校 吳大善[羅州鄕校典校之印] 儒道會長 李啓斗 李鍾奭 李禹圭 掌議 林麟圭 金奉洙 許 鍾 羅燾仁林珉鎬 李敎昶 金東賢 鄭昺浩 尹承義 陳相洙 吳昇洙 李丙斗李良信 柳在壽 洪肇植 羅甲運 柳濟鳳 羅鍾瑾 柳永五 吳判根洪同憙 李泰炯 鄭太林 鄭東采 李東範 等[皮封] (前面) 列郡 鄕校儒林 僉座下(背面) 羅州鄕校 發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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