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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대첩비179)를 읽고 갑술년(1943) 讀荒山大捷碑【甲戌】 그대는 황산대첩비를 보지 못했는가 君不見荒山大捷碑귀부와 이수180)는 열 자 높이나 되네 龜趺螭首高十尺옛날 고려의 정사가 쇠퇴해졌을 때 在昔麗氏政衰日섬 오랑캐 빈틈을 타고 쳐들어와 창궐했네 島夷乘虛來猖獗함양을 불태우고 인월역에 주둔하여 火咸陽屯引月驛181)말을 먹이고 북상하니 형세 막을 수 없었네 穀馬北上勢莫遏이때 태조가 원수가 되어서 于時太祖爲元帥부절 받고 남으로 가니 군율이 엄중했네 受節南征嚴師律깃발은 구름처럼 하늘을 가리고 旗幟似雲蔽半天창칼은 눈처럼 밝은 대낮에 빛났네 劒戟如雪耀白日아지발도182)는 무엇 하는 놈인가 阿只拔都何爲者동으로 몸을 만들고 쇠로 얼굴을 만들어 銅作其身鐵作額기운을 토하니 안개 되어 천지가 깜깜하고 吐氣成霧天地黑한번 외치며 소리지르니 사람들 뒷걸음쳤네 擧聲一呼人辟易원수의 이름난 무예는 신이 주신 바라 元帥名武神所授화살 한 발로 투구 쏘니 투구가 기울어졌네 一矢射鍪鍪欹側그가 투구를 바로잡으려다 그 목구멍이 드러나니 仰整其鍪見其喉부장수가 연이어 쏘니 목구멍이 바로 끊어졌네183) 副帥連射喉卽絶그 우두머리를 죽이자 여세는 파죽지세라 旣殲厥魁餘破竹큰 파도가 일지 않고 남쪽 지방이 진정되었네 鯨波不揚靖南服높은 명망이 날로 성대해져 마침내 즉위하니 威望日盛終御極황산에서 한번 승리함이 근본이 되었네 荒山一捷爲根植내가 오백여 년 뒤에 찾아와 我來五百餘年後비석의 표면 어루만지며 세 번 탄식했네 摩挲碑面三歎息이곳 사람들은 어제 있었던 일처럼 말하고 土人如說昨日事지금도 붉은 피가 여전히 돌에 뿌려져 있네 至今赤血尙濺石당시에 위엄과 무력 참으로 이와 같았는데 當時威武固如此후대에 운수의 기세가 어찌 그리 쇠락해졌는가 後代運氣何衰索화산 무너지지 않아 꽃이 물에 떨어져 흐르고 花山不崩花水流성명이 사라지지 않아 돌벽을 빛나게 하네 姓諱不泐輝石壁신령한 행적이 어찌 길이 빛나지 않으랴 靈蹟那無長赫赫어찌 차마 산하를 남의 물건이 되게 하랴 胡忍山河他人物또한 하늘이 하는 것은 어찌할 방법 없기에 抑亦天爲莫能由하늘에 묻고 싶으나 하늘은 아득하기만 하네 我欲問天天漠漠 君不見荒山大捷碑? 龜趺螭首高十尺.在昔麗氏政衰日, 島夷乘虛來猖獗.火咸陽屯引月驛1), 穀馬北上勢莫遏.于時太祖爲元帥, 受節南征嚴師律.旗幟似雲蔽半天, 劒戟如雪耀白日.阿只拔都何爲者? 銅作其身鐵作額.吐氣成霧天地黑, 擧聲一呼人辟易.元師名武神所授, 一矢射鍪鍪欹側.仰整其鍪見其喉, 副師連射喉卽絶.旣殲厥魁餘破竹, 鯨波不揚靖南服.威望日盛終御極, 荒山一捷爲根植.我來五百餘年後, 摩挲碑面三歎息.土人如說昨日事, 至今赤血尙濺石.當時威武固如此, 後代運氣何衰索?花山不崩花水流, 姓諱不泐輝石壁.靈蹟那無長赫赫? 胡忍山河他人物?抑亦天爲莫能由, 我欲問天天漠漠.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1380년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왜장(倭將) 아기발도(阿只拔都)를 물리치고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은 전북 남원 운봉현(雲峯縣) 동쪽 16리 황산에 있었으며, 비문은 김귀영(金貴榮)이 지었다.《東園集 卷3 荒山大捷之碑》 귀부(龜趺)와 이수(螭首) 귀부는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이며, 이수는 용(龍)의 문양으로 장식한 비석의 머리 부분을 말한다. 驛 底本에는 없음. 일반적인 용례를 살펴 보충. 아지발도(阿只拔都) 14세기 당시 고려에 침입한 왜구를 지휘했던 장수이다. 화살……끊어졌네 아지발도가 얼굴까지 갑옷을 둘러서 활을 쏠 만한 틈이 없었는데, 이성계가 "내가 그의 투구의 꼭지를 쏘아 투구가 떨어지거든 네가 곧 쏘아라."라고 이지란(李之蘭)에게 말을 하였다. 이성계가 투구 꼭지를 맞혀 투구 끈이 끊어져 기울어지자 아지발도가 급히 바로 썼지만, 이성계가 다시 쏜 화살에 투구가 떨어지고 뒤이어 이지란이 쏘아 죽였다. 이지란은 여진족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하였으며, 태조 이성계의 결의형제로 가장 신임받는 장수가 되어 조선의 개국에 큰 공을 세웠다. 驛 底本에는 없음. 일반적인 용례를 살펴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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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를 심다 種瓜 산밭을 개간하려 키 작은 숲을 제거하고 墾得山田剔短林봄날에 오이 심으니 마침 갰다가 흐리네 種瓜春日適晴陰정자에서 삼공의 붓을 구하지 않았으니 不求亭上三公筆길가에 늙은 장수의 마음이 우스워라 自笑道傍老將心나중에 수확할 때 좋은 열매 거두려면 後獲要看收實美지금 일은 뿌리를 깊게 북돋는 데 달려 있네 現功全在壅根深유월이라 신선의 흥취에 가장 알맞기에 最宜六月仙人趣미리 속된 마음 씻으려 한번 읊조려보네 豫滌塵衿爲一吟 墾得山田剔短林, 種瓜春日適晴陰.不求亭上三公筆, 自笑道傍老將心.後獲要看收實美, 現功全在壅根深.最宜六月仙人趣, 豫滌塵衿爲一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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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장의 자에 대한 설 朴善長字說 박생 인동(朴生仁東)이 선장(善長)을 자(字)로 삼았으니, 대체로 《주역》에서 말한 "군자는 인(仁)의 도리를 체득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어른이 될 수 있다."139)라는 뜻을 취하였다. 무릇 인(仁)은 천지가 사물을 낳는 마음이고 사람이 얻어서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 인은 체(體)의 크기가 천지와 합하고 용(用)의 오묘함은 만물에 두루 미친다. 그 가깝고 절실함은 밥을 먹고 숨을 쉬는 사이라도 어길 수 없고 그 중대함은 목숨으로도 바꾸지 못한다.편맹(編氓 평민)의 미천한 신분으로도 천하의 양귀(良貴)140)를 얻고 사면(四面)이 벽 뿐인 누추한 처지로도 천하의 넓은 거처141)에 처하며 필부(匹夫)의 비루한 처지로도 천하의 중임(重任)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것이 '장인(長人)'의 뜻이고 어느 지위에 있든 태연자약함이 있는 것이다. 인(仁)을 체득하는 공부에 대해서 말하자면 《소학(小學)》이 그 논밭이고 《대학(大學)》이 그 규모이고 《논어(論語)》, 《맹자(孟子)》가 그 궤적이고 《시경(詩經)》, 《서경(書經)》과 예악(禮樂)이 그 절도(節度)이다.바라건대 선장(善長)은 경적(經籍)에 힘을 기울여 학문을 쌓고 정밀한 연구와 깊은 사색으로 사람이 살면서 당연히 가야 하는 3백, 3천의 길이 환히 앞에 놓이도록 하고 또 하나하나 실천하고 함께 지키고 번갈아 양성하여 사욕이 행하지 않고 천리(天理)가 두루 흘러 퍼지게 하라. 그렇게 한다면 인을 체득하여 다른 사람의 어른이 되는[體仁長人] 《주역》의 뜻을 깨달아 천명(天命)을 저버리지 않게 될 것이다. 가만히 보자니 풍골(風骨)이 준수하고 성기(聲氣)가 뛰어나 막힘이 없으니 더욱 자애(自愛)한다면 어찌 먼 곳에 도달하는 그릇이 되지 않겠는가. 분발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떨쳐 일어나 독실히 뜻을 넓게 펼치기를 기대한다. 朴生仁東表德以善長。蓋取大易所謂君子體仁。足以長人之義也。夫仁是天地生物之心。而人得以爲心者也。其體之大。合乎天地。其用之妙。周乎萬物。其親且切。不以食息而違之。其重且大。不以軀命而易之。以編氓之賤。得天下之良貴。以環堵之陋。處天下之廣居。以匹夫之卑。擔天下之重任。此其長人之義。不擇地而有自如者矣。至若體之之功。則小學其田地也。大學其規模也。論語孟子其樣轍也。詩書禮樂其節度也。願善長劬經績學。硏精覃思。使三百三千人生當行之路。曉然在前。又能一一實踐。夾持交養。以至私欲不行。天理周流。則可以得夫體仁長人之義。而有不負於命者矣。竊見風骨峻茂。聲氣英暢。若加自愛。安知不爲遠到之器也。發勵振作。篤實展拓。是所望也。 군자는……있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나오는 말이다. 양귀(良貴)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인의예지는 모두 하늘이 부여한 양귀(良貴)이다."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넓은 거처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의 "천하의 넓은 거처에 머물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길로 다닌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주희의 주석에서 "넓은 거처는 인(仁)이고, 바른 자리는 예(禮)이고, 큰길은 의(義)이다.[廣居, 仁也; 正位, 禮也; 大道, 義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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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귀정 별동연의 벗들에게 詠歸亭別同硏諸友 조금 나아가다 지리멸렬(支離滅裂)해지고 끝내는 고루해져 머리가 하얗게 된 채 어찌할 줄 모르고 있으니 여전히 당(堂) 아래 문밖을 서성이는 사람일 뿐이다. 보잘것없는 내가 재숙(齋塾 글방)에 발자취를 붙였던 것이 어찌 남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었겠는가. 생각지 않았건만 제군(諸君)이 일부러 찾아와서 나를 따르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밤낮으로 함께 모였으니 내가 느끼는 감상(感賞)이 참으로 한량이 없었다. 그러나 제군이 나를 본받고 따랐던 이유가 무슨 일이었던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물며 지금은 한 해가 다 저물어 행장을 꾸려 떠나려 하건만 또 이렇게 한마디 말을 청함에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성사(聖師 공자(孔子))의 격언(格言)이 전적(典籍)에 실려있으니 진실로 나귀를 타고서 나귀를 찾듯이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중복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사람의 기질이 치우친 곳, 공력(功力)이 다다른 곳을 가지고 보자면 한두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늘날 제군의 공력은 그저 어렴풋한 그림자나 메아리만 보았을 뿐 절실하게 담당한 부분이 없고 확실하게 근거한 부분이 없다. 비유하자면 참외 한 개를 구해서 이것이 먹을 만한 음식이라는 것만 알 뿐이지 여전히 쪼개고 씹어서 입안 가득한 자미(滋味)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정부(定夫), 백연(伯淵), 평중(平仲)은 말수가 적고 태도가 신중한 점은 훌륭하지만 활달한 기상이 모자란다. 자인(子仁), 경백(慶伯), 경순(景純)은 자못 영특하기는 하나 돈독함이 부족하다. 인보(仁夫), 보경(甫卿)은 순박하고 듬직하기는 하나 간혹 유유히 시간을 허비하는 데 가깝고, 경원(景元), 사앙(士仰)은 근실하고 영민하지만 또한 고집스럽고 편협한 면이 없지 않다. 형숙(亨叔), 사옥(士玉), 공실(公實)은 순직(順直)하고 진실하기는 하나 정신과 기백이 부족하다. 내원(乃源), 사온(士蘊)은 즐겁고 화평하기는 하나 자세함이나 치밀함이 없다. 사경(士敬), 양로(陽路), 자온(子蘊)은 모두 꼼꼼하고 신중함이 아낄 만하지만, 또한 경솔하고 늑장을 부리는 병통이 없다고 할 수 없다.학문이 이른 곳과 병통이 있는 곳을 알아서 바로잡고 성찰하여 허물을 줄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현철(賢哲)이 되는 것을 누가 불가능하다고 하겠는가. 지금은 제군이 처음으로 학문의 길로 나서는 때이니 만 리 앞길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물며 지금은 세상이 혼란스러워 사람에게 매우 좋지 못한 때이니 바로 학문을 연마하고 의지를 굳게 다져야 하는 시기이다. 만약 머뭇거리면서 노력하지 않아 몸가짐에 법도가 없고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면, 이것이 어찌 오늘을 서로 함께 하는 뜻이겠는가.내가 비록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제군의 스승이 되기에 모자라지만 제군의 뒤에서 장래에 어떠한 성취를 이루는지 보기를 바랄 뿐이다. 학문은 뜻을 세우는 것[立志]이 우선이다. 그러나 경중(輕重)과 취사(取捨)의 분별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무슨 뜻을 세우겠는가. 학문은 주경(主敬)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조사존망(操舍存亡)136)의 기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면 무슨 경(敬)을 지키겠는가. 학문은 역행(力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정(邪正)과 선악(善惡)의 분별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무엇을 힘써 행하겠는가. 이것이 격물(格物), 치지(致知)가 《대학》의 시조리(始條理)가 되는 까닭이다.이제 돌아가서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137)에 의거하여 오늘 하나의 이치를 궁구하고 내일 하나의 이치를 궁구하여 궁구한 것이 점점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보존되고 이치가 분명해져 모든 행동이 장차 거침이 없고 여유로울 것이다. 제군은 모두 몸가짐을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넉넉하다. 다만 사색(思索)에 대해서는 아직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부질없이 말이 여기에 미쳤다. 혹시 자기의 결점은 헤아리지 못하면서 하는 말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다행이겠다. 走少而滅裂終於固陋。白首倀倀。猶是堂下門外人耳。區區所以寄跡於齋塾之間者。豈好爲人師之意哉。不意諸君專來相從。喫苦耐辛。昕宵聚對。其爲感賞。固無涯量。而但諸君所以傚則於我者何事。愧愧萬萬。況此歲聿載暮。治裝將行。而又有此一言之請乎。聖師格言。載在方策。固不必騎驢覓驢。爲此疊床。而但隨其人氣質之所偏。功力之所至而觀之。則亦不無一二之可言。夫諸君今日之功。只是見得箇依俙影響。而無親切擔當處。無的實依據處。比如得一箇甘瓜。但識得此爲可食之物。而尙未能劈破來咀嚼來。以識其津津滋味也。定夫伯淵平仲。多簡黙而少開爽。子仁慶伯景純。頗穎悟而欠敦篤。仁夫甫卿。朴茂而或近於悠放。景元士仰。勤敏而亦不無固滯。亨叔士玉公實。醇實而少精神氣魄。乃源士蘊。樂易而無開詳縝密。士敬陽路子蘊。皆端詳可愛。而其粗率其怠緩。亦不可謂無是病矣。苟能知其學之所至。病之所在。而矯捄之省察之。損其過而補不足。則爲賢爲哲。誰曰不可。此是諸君最初發軔之日。前程萬里。曷可量哉。況今歲寒風色。甚不宜人。正是琢磨淬礪硬着脊樑之日也。若因循不力。持身無章。是非邪正。謾無所守。則豈今日相與之意哉。吾雖無狀。不足爲諸君之師。而願從諸君之後。第觀其將來成就之何如也。學問以立志爲先。然全不識輕重取舍之分。則立箇甚志。學問以主敬爲本。然全不識操舍存亡之幾。則主箇甚敬。學問以力行爲重。然全不識邪正善惡之別。則力行箇甚。此格物致知所以爲大學之始條理也。今歸且依呂氏童蒙訓。今日格一理。明日格一理。格得漸多。自然心存理明。凡所踐履。皆將沛然有餘矣。諸君皆謹勅有餘。而但於思索一路。尙未知方。故謾及之。儻勿以不恕之言而忽之。則幸矣。 조사존망(操舍存亡)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인용된 "붙잡으면 있다가도 놓아 버리면 없어지고, 출입이 일정한 때가 없이 어디로 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다."라는 공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 송나라 여본중(呂本中)이 편찬한 책으로 정론(正論)과 격언(格言)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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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김재상(金載相)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丑十二月 日 金載相 兼城主 辛丑十二月 日 1841 金載相 扶安縣監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6.5*6.5(정방형) 적색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1년(헌종 7) 12월에 부안현 일도면 당북하리에 사는 김재상이 부안현감에게 올린 산송 소지. 1841년(헌종 7) 12월에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당북하리(堂北下里)에 사는 김재상(金載相)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산송 소지(山訟所志)이다. 김재상은 일도면 중방리(中方里)의 서쪽 기슭에 친산(親山)이 있어서 여러 해 동안 관리해 왔다. 그런데 바로 이 달 초순에 누군가가 밤을 틈타 그 친산의 섬돌 바로 아래 쪽에 몰래 무덤을 쓰고는 소나무와 향목을 마구 베어버렸다. 김재상은 밤낮으로 투장자를 물색하였지만 그 종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그는 무덤 주위에 도랑을 판다면 투장자가 제발로 나타날 것이라면서 이를 허락해달라고 관에 소지를 올려 탄원하였다. 관에서는 투총자를 수색한 뒤에 수령이 관아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소를 올리라는 제사(題辭)를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신축년으로만 적혀 있으나, 다행히도 김재상이 여러 차례 시장(柴場)을 사면서 받은 명문(明文)들이 전하고 있어서 이를 토대로 위의 신축년을 1841년으로 추정하였다. (1815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1831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1834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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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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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安一道面堂後里化民金洛晉右謹言切憤至寃情由段近來偸葬之習罔念法意徒恃勢力不顧山脉不顧步數不顧已掘之地專以偸奪他人之地爲主豈不憤寃乎民之先山在於本面中方里西麓而五代以下世世繼葬之地眞所謂韓氏之河陽也數百年守護無一雜塚矣不意數昨夜不知何許人乘夜偸葬於民之先山主脉已掘之地已掘之地乃二掘處也偸葬者自知理掘隱身姑避延拖圖計耳掘漑偸塚則渠必自現故瀝血仰龥於 孝理之下 洞燭敎是後自官法掘一以雪幽明之寃一以懲偸奪已掘之習使此殘民以保先隴無至呼寃之地千萬泣祝行下向敎是事兼城主 處分乙酉二月 日官[署押](題辭)塚主眼捉來待向事十六日 狀[官印][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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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김병헌(金炳憲)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甲子十一月 日 金炳憲 城主 甲子十一月 日 金炳憲 扶安縣監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署押] 1개 7.0*7.0(정방형) 적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4년(고종 1)에 부안현 일도면 당북리에 사는 김병헌이 자신의 선산에 몰래 쓴 무덤을 즉각 파내게 해달라면서 부안현감에게 올린 소지. 1864년(고종 1)에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당북리(堂北里)에 사는 김병헌(金炳憲)이 자신의 선산에 몰래 쓴 무덤을 즉각 파내게 해달라면서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김병헌은 이 소지에서 일도면 중방리(中方里) 서쪽 기슭에 있는 자신의 선산은 고조부 때부터 대대로 계속 무덤을 쓴 곳이라고 말하고, 그동안 이곳에 아무도 함부로 무덤을 쓰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며칠 전날 밤에 누군가가 밤에 몰래 이곳에 있는 조부의 산소 오른쪽 바로 근처에 투장을 하고 달아났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밤낮으로 수색했지만 투총자를 찾지 못했다. 그러니 특별히 나장(羅將)을 파견하여 즉각 무덤을 파내어 자신들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무덤을 몰래 쓰는 나쁜 관습을 없애달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관에서는 투총자를 잡아와서 대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갑자년으로만 적혀 있으나, 다행히도 김낙진이 동치(同治) 9년, 즉 1870년(고종 7)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명문이 전하고 있어서, 위의 갑자년을 1864년으로 추정하였다.(1870년 김병헌(金炳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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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道面堂北下里化民金載相右謹言切迫情由段民之親山在於中方里西麓禁養守護者積有年所而元無一點他塚矣去辛丑十二月不知何許人乘夜偸葬於民之親山階砌下不盈尺之地而播松與香木無難斫伐世豈有如許無 法之人乎罔夜搜探終無形迹故玆敢仰訴於明庭之下爲去乎自 官掘移以雪幽冥之寃千萬祝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壬寅二月 日官(署押)(題辭)被捉偸葬漢率來對卞事狀 初四日到辛東稷[官印][官印][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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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산에 올라 김 장군의 옛터를 바라보며 登瑞石山 望金將軍故墟 장군은 서석산의 정기를 모아 태어났는데 將軍鍾出瑞石精장군이 낳고 자랐던 마을 아직도 있구나 將軍生長尙有村장군의 충성과 용기 세상에 대적할 이 없어 將軍忠勇世無敵왜놈들 잡아 한 입에 삼키길 기약했네 期取島奴一口呑큰 공로를 아뢰기도 전에 몸이 먼저 죽으니 大功未奏身先死호서의 역적357) 초사358)를 어찌 차마 말하리 湖西賊招那忍言장성을 파괴했으니 또한 무슨 마음이런가 壞破長城抑何心이 일을 주장한 사람 본래 있다지 主張此事自有人만약 장군이 그 당시에 등용되었더라면 如今將軍當日用굳이 고생하며 화친을 일삼지 않았으리라 必不辛苦事和親하늘 때문인가 사람 때문인가 일이 이 지경에 이르니 天耶人耶事至此천고에 뜻있는 선비들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千古志士淚沾巾지금 장군이 세상을 떠난 지 삼백 년인데 今去將軍三百載한 치 땅도 다시는 우리나라 소유가 아니네 寸土無復有我韓난리의 형세가 매우 위중하여 쉽지 않더라도 亂極勢重縱未易계책과 용맹이 뛰어나면 어찌 끝내 어려우리 計神勇絶豈終難장군이 구천에서 깨어나길 간절히 염원하니 思切將軍起九原능히 나라를 회복하고 생민을 편안케 하리라 庶能復國奠生民오늘 이 높은 곳에 오른 뜻을 그 누가 알랴마는 誰知今日登高意오로지 장군의 충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네 端爲將軍吊忠魂곡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노랫소리 길어지고 欲哭不可歌聲長해질녘에 끝없이 홀로 마음 아파하노라 落日無限獨傷神 將軍鍾出瑞石精, 將軍生長尙有村.將軍忠勇世無敵, 期取島奴一口呑.大功未奏身先死, 湖西賊招那忍言?壞破長城抑何心? 主張此事自有人.如今將軍當日用, 必不辛苦事和親.天耶人耶? 事至此, 千古志士淚沾巾.今去將軍三百載, 寸土無復有我韓.亂極勢重縱未易, 計神勇絶豈終難?思切將軍起九原, 庶能復國奠生民.誰知今日登高意? 端爲將軍吊忠魂.欲哭不可歌聲長, 落日無限獨傷神. 호서(湖西)의 역적(逆賊) 충청도 홍산(鴻山)의 이몽학(李夢鶴, ?~1596)을 가리킨다. 이몽학은 종실(宗室)의 후예로서 모속관(募粟官) 한현(韓絢) 등과 함께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鴻山)에서 반란을 일으켜 홍주성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목사 홍가신(洪可臣) 등에 의해 진압되자, 부하 김경창(金慶昌)에게 살해당했다. 초사(招辭) 공초(供招)의 말이다. 공초는 조선 시대에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던 일로, 공사(供辭)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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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산351)에 올라 왕양명352)이 용산을 유람한 시에 차운하다 登瑞石山 次王陽明遊龍山韻 서석산의 가장 높은 대에 날 듯이 오르니 飛登瑞石最高臺이날에야 흉금이 비로소 활짝 열렸네 此日胸懷始豁開점점이 이어진 산들을 모두 내려다보니 點點群山皆下視도도히 흐르는 많은 물이 동쪽에서 오네 滔滔萬水自東來금남353)의 웅대한 계략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錦南雄略今安在석저 장군354)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구나 石底將軍不復回한 곡조 호탕한 노래에 기운은 천 길이나 높은데 一曲浩歌千丈氣바람 불고 무지개 떠 강괴355)에 접하네 風騰虹見接罡魁 飛登瑞石最高臺, 此日胸懷始豁開.點點群山皆下視, 滔滔萬水自東來.錦南雄畧今安在, 石底將軍不復回.一曲浩歌千丈氣, 風騰虹見接罡魁. 서석산(瑞石山) 광주(光州) 무등산(無等山)의 별칭이다. 왕양명(王陽明) 양명은 명(明)나라 때의 학자인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의 호이다. 마음을 우주 만물의 근본으로 삼은 송(宋)나라 때 심학가(心學家)인 육구연(陸九淵)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을 계승하여 집대성하였다. 저서에 《전습록(傳習錄)》ㆍ《왕문성전서(王文成全書)》가 있다.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 1576~1636)의 봉호이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지략과 덕을 갖춘 명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임진왜란 때 어린 나이로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며, 이괄(李适)의 난에 공을 세워 금남군에 봉해졌다. 부원수ㆍ포도대장ㆍ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으며, 광주(光州) 경렬사(景烈祠)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만운집》ㆍ《금남집》ㆍ《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등이 있다. 석저 장군(石底將軍) 김덕령(金德齡)의 별명으로, 출생지가 광주의 석저촌이라서 생긴 것이다.석저는 석저촌(石底村)으로, 광주 충효동의 옛 이름이다. 강괴(罡魁) 천강성(天罡星)과 북두칠성의 제일성인 두괴(斗魁)를 합칭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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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영에게 답함 答洪文寧 왕림해주신 지 오래되지 않아 또 이처럼 편지를 보내주시니 감격스러움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보내오신 글이세 '날마다 하는 공부가 중간에 끊어지고 이어지질 않고 있습니다.【日用工夫, 間斷不接】'라고 한 부분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간단(間斷)이라는 두 글자는 좀 생각할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어떻게 해야만 끊어지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만 이어지는 것이겠습니까. 또한 끊어질 때는 우리 마음이 어떠하며 이어질 때는 우리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보는 것이 절실하다면 체득함이 정밀해지고, 체득함이 정밀하다면 지키는 것이 견고하게 되고, 지키는 것이 견고하게 된다면 무슨 걱정할 만한 간단함이 있겠습니까? 또 '구용(九容)과 구사(九思)82)의 공효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潛索於九容九思之功】'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모든 일을 절실히 묻고 가까이 생각함【切問而近思】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옛날 요진경(廖晉卿)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청하자,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공은 마음을 놓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우선 정신을 수렴하여야 합니다. 〈옥조(玉藻)〉에서 말한 구용(九容) 부분을 자세히 체인하여 의사가 있기를 기다린 다음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公放心已久, 且合收斂精神, 玉藻言九容處, 子細體認, 待有意思, 却好讀書.】"83)라고 하였는데 일찍이 이러한 말을 본 적이 없는지요? 대저 초학자가 몸과 마음을 수렴하고 근본을 함양하는 방법으로 구용(九容)에서 무엇을 더하겠습니까? 모름지기 착실하게 체득하고 궁구하면 끝내는 원대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사비(士抷)께서는 《혹문(或問)》을 다 읽었는지요? 새롭게 얻은 1~2 조목을 보내주실 수 있겠는지요? 오랫동안 과정을 세워 읽은 책은 무엇인지요? 순필(舜弼)과 함께 모이는지요? 그리움과 울적함이 나란히 간절하니 조만간 서로 만나서 쌓인 회포를 풀었으면 합니다. 委枉未久。又此垂訊。感不容謝。示中日用工夫。間斷不接。此固可憂。然間斷二字。儘有合商量處。如何是間斷。如何是接續。間斷時此心如何。接續時此心如何。見之切則體之密。體之密則守之固。守之固則有何間斷之可憂哉。又云潛索於九容九思之功。此可見切問而近思。昔廖晉卿請讀何書。朱子曰。公放心已久。且合收斂精神。玉藻言九容處。子細體認。待有意思。却好讀書。未知曾看此語否。大抵初學者收斂身心。涵養本源之方。孰有加於九容哉。須着實體究。卒臻遠大也。士拯讀或問未了耶。何不以新得一二條見寄耶。允深見課何書。舜弼與之相聚否。倂切戀菀。那間相奉攄此宿蘊也。 구용(九容)과 구사(九思) 구용(九容)은 《예기》 〈옥조(玉藻)〉에 나오는 군자가 수행(修行)하고 처신(處身)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아홉 가지 자세로, '걸음걸이의 모양은 무게가 있어야 하고, 손놀림의 모양은 공손해야 하고, 눈의 모양은 단정해야 하고, 입의 모양은 조용해야 하고, 목소리의 모양은 고요해야 하고, 머리 모양은 곧아야 하고, 기상의 모양은 엄숙해야 하고, 서 있는 모양은 덕스러워야 하고, 얼굴빛은 장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사(九思)는 《논어》 〈계씨(季氏)〉에 나오는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으로, '볼 때는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밝게 듣기를 생각하고,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용모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 말할 때는 충성되기를 생각하고, 일할 때는 조심하기를 생각하고, 의심날 때는 묻기를 생각하고, 분노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고서는 마땅히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요진경(廖晉卿) …… 말하였습니다 요진경이 "무슨 책을 읽어야 합니까?【廖晉卿請讀何書?】"라고 묻자, 답하기를 "공은 마음을 놓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우선 정신을 수렴하여야 합니다. 〈옥조〉의 구용을 자세히 체인하여 의사가 있기를 기다린 다음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公心放已久, 可且收斂精神. 玉藻九容處, 子細體認, 待有意思, 却好讀書.】"라고 하였다. 《심경부주(心經附註)》 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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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일【익호】에게 답함 答文子一【翼浩】 벗의 편지 한 폭이 새 봄과 함께 이르니 저도 모르게 눈이 확 뜨이고 마음이 깨치게 되었습니다. 편지를 통해 어버이를 모시며 지내는 정황이 새해에도 만복함을 알게 되었으니, 더욱 듣고 싶었던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고 한편으로는 더욱 쇠하게 되었으나 도를 듣지도 못한 채 저녁에 죽게 되었으니85) 이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칠월장(七月章)에서, '정삭만 고쳤을 뿐 월수는 고치지 않았다.【改正朔不改月數】'86)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고례(古例)입니다. 그에 대한 설이 《서경(書經)》 이훈(伊訓)에 실려 있으니 오직 원사 12월【元祀十有二月】조 아래를 살펴보면 어떠하겠습니까? 공손홍(公孫弘)의 대책(對策)에서 홍수(洪水)의 소치를 말하지 않고 단지 큰 가뭄이 걸(桀) 임금의 잔학한 여세라고 한 것은 선유(先儒)들이 공손홍(公孫弘)의 마음씀이 음사(陰詐)한 곳이라고 여긴 이유입니다. 맹자(孟子)는 '요 임금의 시대에 세상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다.【當堯之時, 天下猶未平.】'87)라고 하였는데, 대개 대개 천지가 갈라지기 전의 혼돈의 시대에 물길이 아직 통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공손홍이 이와 같이 애매모호하게 말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음사(陰詐)의 기미가 된 이유입니다.혼(魂)이 함께 배행하는 것은 예에 실로 있습니다. 혼백(魂魄)이 흩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고복(皐復)88)하고 비단을 묶어 혼백(魂帛)을 만들며 영좌(靈座)와 영상(靈床)을 설치하는 것은 모두 혼(魂)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뜻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혼백이 서로 떨어진다는 혐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보지 않는 바에서도 계신하고, 듣지 않는 바에서도 공구한다.【戒愼不睹 恐懼不聞】'는 것은 아래 문장에서 '희로애락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상태【喜怒哀樂未發】'와 서로 조응(照應)합니다. 운운(云云)계신공구(戒愼恐懼)는 미발(未發)할 때의 공부입니다. 고인(古人)이, '공부하는 곳이 없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라고 한 말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공부의 요처(要處)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 힘쓰는 것에 있습니다.중용(中庸)에 의한 군자(君子)는 잘하는 것으로 성인에 이르는 자와 현격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까.백성에게 입각하여 설명하였기 때문에 잘하는 것【能】이라고 하였고, 성인(聖人)에 입각하여 설명하였기 때문에 의한다【依】라고 하였습니다. 의한다는 것은 어김이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사(思)', '려(慮)', '염(念)', '회(懷)', '억(憶)'의 다섯 글자와 '지(志)', '의(意)', '정(情)'의 세 글자는 각각 조리(條理)가 있을 것인데 자세하지 않습니다. 운운(云云)'사(思)'는 생각하는 것이고, '려(慮)'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고, '염(念)'은 좋아하여 그리워하는 것이고, '회(懷)'는 상상하여 느끼는 뜻이고, '억(憶)'은 계속해서 그리워하는 뜻입니다. '지(志)'는 마음이 가는 바이고, '의(意)'는 계교(計較)하고 헤아리는 것이고, '정(情)'은 마음이 갑자기 나아가는【發出】 것입니다. '사(思)'는 넓고 '려(慮)'는 길며, '염(念)'은 가깝고 '회(懷)'는 멀며, '회(懷)'는 부드럽지만 '지(志)'는 강하고, '정(情)'은 빠르지만 '의(意)'는 느립니다. 故人一幅書。與新春俱至。不覺心目開醒。從審侍省餞迓百福。尤庸願聞。義林一番得年。一番添衰。而無聞夕死是爲可恨耳。七月章云云。改正朔不改月數。此是古例也。其說詳具於伊訓惟元祀十有二月條下。考之如何。公孫弘對策不言洪水之所致。而只言大旱之爲桀之餘烈者。先儒以爲此孫弘用心陰詐處。孟子云當堯之時天下猶未平。蓋洪荒未判。水道未通之致。而弘也含糊說如此。此所以有陰詐之譏也。魂與倍行。禮固有之。魂魄離散。故死則皐復束帛。靈座靈床。無非所以安魂之意也。於何而有魂魄相離之嫌乎。戒愼不睹。恐懼不聞。與下文喜怒哀樂未發。相照應云云。戒愼恐懼。是未發時功夫。古人所謂無功夫處。是功夫。是也。功夫要處。正在於此勉之。依乎中庸之君子。與能之之聖者。有懸殊否。就民上說故曰能。就聖人上說故曰依。依是無違之謂。思慮念懷憶五字。志意情三字。各有條理而未詳云云。思是商量底。慮是戒懼底。念是嗜慕底。懷是想感之意。憶是戀注之義。志是心之所之。意是計較揣量處。情是心之猝然發出處。思廣而慮長。念近而懷遠。憶柔而志剛。情速而意緩。 도를……되었으니 《논어》 〈이인(里仁)〉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공자(孔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정삭만 …… 않았다 《서경(書經)》 이훈(伊訓) 첫머리에 나오는 채침(蔡沉)의 주석에 그와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요 임금의 …… 평정되지 않았다 《맹자》 〈등문공 상〉에 나오는 말로, "요 임금의 시대에 세상이 아직 평정되지가 않았는데, 홍수가 무질서하게 흘러 온 세상에 넘쳐 흘렀다.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짐승들이 번식하였으며 오곡이 자라지 않고 짐승들이 사람들을 핍박하였다. 길짐승 발자국과 새 발자국이 나라 안에 가득하였다.【當堯之時, 天下猶未平, 洪水橫流, 氾濫於天下. 草木暢茂, 禽獸繁殖, 五穀不登, 禽獸偪人.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세상에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고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야만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서양 오랑캐들 때문에 다시 그러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고복(皐復) 사람이 죽은 뒤 지붕 위에 올라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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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규의 자설 曺元圭字說 원규(元圭)여! 그대는 덕을 옥에 비유함을 아는가? 〈학기(學記)〉에 이르기를, "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비록 아름다운 자질이 있다 하더라도 학문을 하지 않고서는 그 자질을 이룰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위시(衛詩)〉63)에 이르기를, "잘라 놓은 듯하고, 다듬은 듯하며, 쪼아 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학문으로 스스로를 닦고, 이미 정밀해졌거든 더욱더 정밀한 경지를 추구함을 말한 것이다. 〈소아(小雅)〉에 이르기를, "다른 산의 돌로도 옥을 다듬을 수 있다네."라고 하였으니, 이는 마음을 움직여 일으키고 성정을 참아서 의로운 행실을 갈고 닦음을 말한 것이다. 〈대아(大雅)〉에 이르기를, "잘 다듬은 문장이요, 금옥 같은 바탕이네."라고 하였으니, 이는 도덕이 충실하여 빛나게 나타남을 말한 것이다. 《논어》에 이르기를,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제값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출처와 거취를 반드시 그 도로써 함을 말한 것이다.이 몇 가지 말을 살펴보건대, 옥을 덕에 비유할 뿐만 아니라, 덕에 나아가는 방법도 또한 알 수 있으니, 진실로 여기에 종사하여 보배가 됨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머물러 있는 경우에는 산악(山嶽)을 빛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갈 경우에는 교묘(郊廟)64)에서 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대가 원규를 표덕으로 삼은 이유가 아니겠는가. 힘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元圭乎。君知比德於玉乎。學記曰。玉不琢不成器。此言雖有美質。而不學無以成其材。衛詩曰。如切如磋。如琢如磨。此言學問自修。己精而益求其精也。小雅曰。他山之石。可以攻玉。此言動心忍性而砥礪行義也。大雅曰。追琢其章。金玉其相。此言道德充實而光輝宣著也。論語曰。沽之沽之。我則待賈。此言出處去就。必以其道也。觀是數說。不惟比之於德。而造德之方。亦可知矣。苟能從事於此。而無失其爲寶。則止可以輝映山嶽。進可以特達郊廟。此非君表德以元圭者耶。勉之勉之。 위시(衛詩) 위(衛) 나라의 시, 즉 《시경(詩經)》 〈위풍(衛風)〉을 말한다. 교묘(郊廟) 고대 제왕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인 교궁(郊宮)과 선조를 제사 지내는 종묘(宗廟)를 합하여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조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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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열에게 써서 주다 書贈魏士悅 공자가 말하기를, "자제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미덥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54)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집안일이 번다하면 학문을 하는데 방해가 되니, 이는 본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힘써 공부하는 실제의 바탕이 되니, 매사에 도리를 간파하여 쉽게 지나쳐버리지 말고 다시 그 사이에서 평소의 병통을 간파하여 통렬하게 잘라 제거한다면 학문을 하는 방도로 무엇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만약 벗어나려는 마음이 일어나고, 배척해 버리려는 생각이 생기면 이치와 일이 도리어 둘로 나뉘게 될 것이니, 책을 읽더라도 또한 사용할 곳이 없게 될 것이다."55)라고 하였다.이는 일상생활에서 자제의 직분에 제일가는 말이기에 나는 젊어서부터 이 말을 매우 아끼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또한 하루도 실제로 여기에 힘을 쓴 적이 없어 머리가 희도록 성취함이 없는 데 이르고서야 마침내 인생의 끝없는 회한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위 사문(魏斯文) 사열(士悅)이 바야흐로 독로(篤老 70세 이상의 노인) 아래에서 집안일을 주관하면서 책을 읽어 어느 한 쪽도 폐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말을 듣고 부족하나마 공자와 주자의 두 문단의 말을 외어 알려 준다. 사열은 시험 삼아 이것을 착실하게 체험하고 감당하여 오래오래 쌓아서 하루아침에 성대하게 효과를 보게 된다면 번거롭더라도 보잘것없는 적막한 물가로 소식을 전해주어 평생토록 성취하지 못한 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바란다. 孔子曰。弟子入則孝。出則弟。謹而信。沈愛衆而親仁。行有餘力則以學文。朱子曰。家務叢委。妨於學問。此固無可奈何。然只此便是用功實地。每事看得道理。不令容易放過。更於其間。看得平日病痛。痛加剪除。爲學之道。何以加此。若起一脫去之心。生一排遣之念。則理事却成兩截。讀書亦無用處矣。此是說爲人子弟日用職分第一語也。余自少也。未嘗不酷愛此語。而亦未有一日實用力於此。以至白首無成。竟抱人生無窮之恨。今聞魏斯文士悅。方在篤老下。而幹蠱讀書。有不可偏廢。聊誦孔朱語二段以告之。願士悅試於此着實體當。久久積累。至於一朝而有沛然見效。則煩爲寄聲於區區寂寞之濱。以慰此平生未就之意也。 자제들은……한다 《논어》 〈학이(學而)〉에 나오는 말이다. 집안일이……것이다 주희(朱熹)가 60세 때 진공석(陳孔碩)에게 답한 편지에 나오는 말이다. 《朱子大全 卷49 答陳膚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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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중【봉환】에게 답함 答文翊中【鳳煥】 편지에서 하신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생각하기에 이 회합(會合)을 마련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강학(講學)을 위한 것이고 한편으로는 예를 익히기 위한 것입니다. 회원(會員)들의 마음이 모두가 성의에서 나올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뜻이 참으로 선(善)하고 그 거조(擧措)가 참으로 좋습니다. 마음이 정성스럽지 못하면 더욱 정성을 다하도록 권면하고 행동에 실효(實效)가 없으면 더욱 그 효과를 독려하여 바로잡고 경계하며 벗끼리 서로 연마하고 바로잡아 주어 거리낌 없이 멋대로 행동하는 데 이르지 않게 하면 됩니다.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명예를 좋아한다는 혐의를 피하면 선을 행할 길이 없다."9)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명예를 좋아한다는 혐의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까지 아울러 그만두겠습니까. 아우가 생각하기에도 예를 익히는 일은 의절이 매우 광대하여 갖가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우선은 중지하였습니다. 강규(講規)는 학자들의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여러 형에게 고하여 수일 동안 강규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만약 강규에 관한 일까지 아울러 그만둔다면 한바탕 질펀하게 먹고 마시는 회합이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형의 말씀대로 10년에 한 번 행하고 5년에 한 번 행한다면 형세상 반드시 날이 갈수록 해이해지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한서(漢瑞) 등 여러 벗과 충분히 상의하여 좋은 쪽으로 결론을 내기 바랍니다. 중양절(重陽節)을 맞아 술잔에 국화를 띄우는 일은 실로 듣기를 바라던 일입니다. 다만 이 몸이 그때에는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일지를 모를 뿐입니다. 示喩謹悉。以愚思之。此會之設。一則講業也。一則習禮也。會員之心。雖不能皆出於誠。而其意則固善。其擧則固好。心有不誠。則益勉其誠。行無實效。則益責其效。規警切磨。俾不至於漫浪之爲可也。古人曰避好名之嫌。則無爲善之路。夫豈以好名之嫌。而竝廢其所當爲者哉。弟意亦以爲習禮一事。其儀浩大。有難種種。故姑爲停止。至於講規。則此是學者日用平常事。故告于僉兄擬爲數日之計矣。今若竝與講規一事而廢之。則其不爲一場酒食流連之會耶。若依兄敎。十年一行。五年一行。則其勢必日涉頹弛。不過幾年。蕩然無有。願與漢瑞諸友爛商歸好也。重陽泛菊。實所願聞。但未知此身其時作何處人耳。 명예를……없다 송(宋)나라 때 범순인(范純仁)이 한 말이다. 범순인이 일찍이 간신 장돈(章惇)의 비위에 거슬려 영주(永州)로 폄출되었는데, 그 당시 눈병을 앓아 완전히 실명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는 폄출 명령을 받고 기꺼운 표정으로 길에 올랐는데, 어떤 이가 명성을 가까이하는 짓이라고 하자, 이를 듣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칠십의 나이에 두 눈이 모두 멀었으니, 만 리 길을 떠나는 것이 어찌 원하는 것이겠는가. 다만 임금을 사랑하는 구구한 나의 마음이 다하지 않아서일 따름이다. 만약 명성을 좋아한다는 혐의를 피하고자 한다면 선을 행할 길이 없을 것이다.【七十之年, 兩目俱喪, 萬里之行, 豈其欲哉? 但區區之愛君, 有懐不盡. 若避好名之嫌, 則無爲善之路矣.】"라고 하였다. 《宋史 卷314 范純仁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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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아에게 부치다 4수 寄復兒【四首】 만물은 오히려 한몸인데 萬物猶同體하물며 친한 이에게 융숭한 사랑을 받음에랴 矧於親愛隆묵자는 머리부터 갈아서 발꿈치에 이르는데293) 墨生磨頂踵이것을 중도에 지나친 것은 아니라 하네 用此非過中친아버지와 숙부는 親父與叔父간발의 차이도 없다네 其間不以髮숙부를 배반함은 아버지를 배반함과 같으니 貳叔猶貳父아버지를 배반한다면 다시 무슨 말을 하랴 貳父更何說불손함은 악덕이니 不遜是惡德절로 사치하고 난폭함이 생기네 乃自奢豪生이를 만약 반우294)할 수 있다면 此若反隅得공경함은 검소함으로 이루어지리 恭敬由儉成너의 나이 불혹295)에 가까우니 爾年近不惑한평생 가운데 절반의 나이이네 中半一平生옛날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면 舊習如不改서글프게 끝내 성취함이 없으리라 可痛竟無成 萬物猶同體, 矧於親愛隆?墨生磨頂踵, 用此非過中.親父與叔父, 其間不以髮.貳叔猶貳父, 貳父更何說?不遜是惡德, 乃自奢豪生.此若反隅得, 恭敬由儉成.爾年近不惑, 中半一平生.舊習如不改, 可痛竟無成. 묵자(墨子)는……이르는데 묵자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인 묵적(墨翟)은 모든 사람을 평등히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다. 그러자 맹자는 이를 극도로 비고아서 "자기의 정수리부터 갈아서 발 끝에 이르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한다."하였다. 《孟子 盡心上》 반우(反隅) 한 가지를 일러 주면 그와 유사한 것은 미루어 안다는 뜻으로, 《논어》〈술이(述而)〉에 "한 모퉁이를 들어 일러 주었는데 세 모퉁이를 반증하여 알지 못하면 더 이상 말해 주지 않는다.〔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하였다. 불혹(不惑) 나이 마흔 살을 말한다. 《논어》 〈위정(爲政)〉의 공자 말씀에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 마흔 살에 사리(事理)에 의혹(疑惑)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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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을 그리워하며 懷汝安 네가 집을 떠난 지 반년이나 되니 自汝離家半歲長내 마음은 서글프지 않은 날이 없었네 我心無日不悲傷전주283)에선 궁핍한 생활284)로 몸이 야위고 沛城桂玉身生瘦오산 골짜기에선 무더위로 땀방울이 떨어졌네 鰲峽蒸炎汗滴漿같이 병들어 급한 형편을 풀어주지 못해 同病未能紓方急가난이 싫어 혹 떳떳함을 잃을까 걱정했었네 厭貧恐或失其常어느 때나 휘장 맑게 하여 서실로 돌아갈까 何時淸帳歸書屋《시경》〈소완〉285)을 즐겨 강론하네 好講毛詩小宛章 自汝離家半歲長, 我心無日不悲傷.沛城桂玉身生瘦, 鰲峽蒸炎汗滴漿.同病未能紓方急, 厭貧恐或失其常.何時淸帳歸書屋? 好講《毛詩 小宛》章. 전주(全州) 원문의 '패성(沛城)'은 풍패(豐沛)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전주를 말한다. 풍패는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고향인 패(沛) 땅 풍읍(豐邑)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제왕의 고향을 말한다. 조선에서는 흔히 함경도 함흥(咸興)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나, 왕족인 이씨(李氏)의 본향이라 하여 전주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궁핍한 생활 원문의 '계옥(桂玉)'은 계수나무 땔나무와 옥으로 지은 밥이라는 말로, 물자가 부족하여 생활하기 곤란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전국 시대 소진(蘇秦)이 초(楚)나라 왕에게 "초나라의 밥은 옥보다도 비싸고 땔감은 계수나무보다도 비싸다. 지금 내가 옥으로 지은 밥을 먹고 계수나무로 불을 때고 있으니, 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楚國之食貴于玉, 薪貴于桂. 今臣食玉炊桂, 不亦難乎?〕"라고 불만을 토로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戰國策 楚策3》 시경(詩經) 소완(小宛)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세상의 난리를 만난 뒤에 몸가짐을 공손히 하여 날로 덕을 닦으며, 항상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화를 면하기를 경계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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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에게 부치다 寄汝安 사람들은 분수에 편안함이 좋다고 하지만 人言安分好일에 임해서는 말과 같지 않다네 臨事不如言낭당286)에 이르게 된 뒤에야 及到郞當後분수가 편안할 수 있음을 깊이 안다네 深知分可安백 번 참으며 가법을 보호해도 百忍保家法옛날에는 미진하다고 여겼네 昔謂未盡焉참는 것을 오히려 지금은 볼 수 없으니 忍猶今未見비로소 옛사람이 어렵게 여김을 알겠네 始識古人難을 집에 바둑 두는 사람은 어두웠으나 乙家當局暗태수가 곁에서 볼 땐 분명했네287) 太守傍觀淸얻기 어렵고 구하기 쉬운 이치는 難得易求理정녕 천명을 따르면 밝아지리라 定從天命明마음 알아주는 천륜의 친속은 知心天屬親예로부터 흔히 볼 수 없었네 從古不多覿쉬운 듯하나 도리어 어려우니 似易還復難궁구해도 얻지 못함을 늘 탄식하네 長嘆莫究得내가 들으니 필부의 뜻은 我聞匹夫志분육288)도 빼앗을 수 없다 하네 賁育莫能奪궁귀289) 때문에 바뀌었다면 如爲窮鬼移그 뜻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其志安足說옳고 그름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니 無是非非人원래 잠시도 버리는 것이 아니라네 元非暫棄者회우290)가 변고도 많은 날에 晦尤多故日육윤291)을 버렸다는 말 듣지 못했네 陸尹未聞舍큰 죄를 지으면 서로 버릴 수 있으나 大故可相棄놓아준다면 악역292)이라 말하리라 釋之謂惡逆이는 영원히 막아 끊을 일은 아니니 非玆永阻絶너무 각박한 것이 아니겠는가 無乃太爲刻 人言安分好, 臨事不如言.及到郞當後, 深知分可安.百忍保家法, 昔謂未盡焉.忍猶今未見, 始識古人難.乙家當局暗, 太守傍觀淸.難得易求理, 定從天命明.知心天屬親, 從古不多覿.似易還復難, 長嘆莫究得.我聞匹夫志, 賁育莫能奪.如爲窮鬼移, 其志安足說?無是非非人, 元非暫棄者.晦、尤多故日, 陸、尹未聞舍.大故可相棄, 釋之謂惡逆.非玆永阻絶, 無乃太爲刻. 낭당(郞當) 죄인을 묶는 쇠사슬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자기 논리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한 채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승자박의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낭당(鋃鐺)'이라고도 한다. 을(乙)……분명했네 옛 속어에, "곁에서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은 세심하고, 직접 바둑을 두는 사람은 판단이 헷갈리게 된다.〔傍觀者審, 當局者迷.〕"라는 말이 있다. 분육(賁育) 전국(戰國) 시대 제(齊)나라의 용사인 맹분(孟賁)과 주(周)나라의 역사(力士)인 하육(夏育)의 병칭이다. 맹분은 맨손으로 쇠뿔을 뽑았고, 하육은 천균(千鈞)의 무게를 들어 올렸다고 한다. 한(漢)나라의 충신 급암(汲黯)의 절의(節義)를 칭송하면서 "스스로 분육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뜻을 뺏을 수 없을 것이다.[雖自謂賁育, 弗能奪也.]"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汲黯傳》 궁귀(窮鬼) 사람을 곤궁하게 하는 귀신이라는 뜻이다.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송궁문(送窮文)에서 지궁(智窮)ㆍ학궁(學窮)ㆍ문궁(文窮)ㆍ명궁(命窮)ㆍ교궁(交窮)의 다섯 궁귀(窮鬼)를 내쫓으려다가 포기하고 그들을 상좌(上座)에 앉혔다는 말이 있다. 《古文眞寶 後集 送窮文》 회우(晦尤) 회암(晦菴) 주희(朱熹)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육윤(陸尹) 육상산(陸象山, 1139~1192)과 윤증(尹拯, 1629~1714)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육상산은 남송의 유학자 육구연(陸九淵)이다. 호는 존재(存齋) 또는 상산이고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관직에 올랐지만 곧 물러나 귀계(貴溪)의 상산에 강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주자(朱子)와 대립하여 전체를 양분하는 학문적 세력을 형성했지만, 사상적 계보로는 모두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학문을 계승했다. 저서에 어록과 서간, 문집을 수록한 《상산선생전집》이 있다. 윤증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ㆍ유봉(酉峯),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윤증(尹拯)이 부친 윤선거(尹宣擧)의 묘갈명을 스승 송시열에게 부탁하였는데, 송시열이 윤선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묘갈명을 소홀하게 지은 일로 인하여 스승과의 사이가 벌어져서 종국에는 배사(背師)하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서인(西人)이 송시열을 두둔하는 노론과 윤증을 두둔하는 소론으로 분열되어 싸우게 되었다. 악역(惡逆) 부모 또는 조부모 등을 구타하거나 죽인 죄로, 《대명률(大明律)》에 정한 열 가지 큰 죄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죄이다. 열 가지 큰 죄는 모반(謀反)ㆍ모대역(謀大逆)ㆍ모반(謀叛)ㆍ악역(惡逆)ㆍ부도(不道)ㆍ대불경(大不敬)ㆍ불효(不孝)ㆍ불목(不睦)ㆍ불의(不義)ㆍ내란(內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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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실의 자에 대한 설 朴元實字說 정(鼎)이라는 그릇은, 귀[耳]는 양의(兩儀 음양(陰陽))를 본뜨고 발[足]은 삼덕(三德)132)을 본떴으며 몸체는 오행(五行)을 두루 갖추고 담긴 물건은 구주(九州)에 응하고 바탕은 금옥(金玉)의 자질을 갖추었으며 의리는 화덕(火德)과 풍덕(風德)을 나타낸다. 성인(聖人)이 만들고 종자(宗子)가 주관하니, 이것은 그릇 가운데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안에 채우고 있는 것이 조강(糟糠 지게미나 쌀겨), 소려(蔬糲 궂은쌀로 지은 밥) 같이 추잡하고 열악한 물건이라면 저구(苴屨 풀로 엮은 신발)에 장보(章甫)를 갖추고 토우(土偶 흙으로 빚은 인형)에 화려한 예복(禮服)을 입히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모름지기 명자(明粢)와 향기(香萁)133)로 밥을 짓고 양[柔毛]과 돼지[剛鬣]로 음식을 마련하고 다섯 가지 훈채(葷菜)와 여덟 가지의 조리법으로 맛을 조절한 다음에야 《주역(周易)》에 나오는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134)는 뜻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법상(法象)을 갖춘 지극히 귀한 기물(器物)에 이렇게 진귀하고 지극히 아름다운 음식을 담으면 장차 천신 지기(天神地祇)에게 바치고 종묘에 제사를 지내 상제(上帝)와 선왕(先王)을 흠향하며, 흠향하여 드신 뒤의 은택이 천하에 미치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주역》에서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라는 말 다음에 "가는 곳을 삼가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 까닭이다.아, 사람의 몸은 정(鼎)이라는 기물이며 도덕과 재업(才業)은 그 내용물이며, 군주의 신임을 얻고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히는 것은 가는 곳이다. 박군(朴君)은 그것을 아는가? 박군 정현(朴君鼎鉉)이 원실(元實)을 자(字)로 삼았으니 그 뜻을 대체로 여기에서 취하였지만 나아가는 곳을 삼가는 뜻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서 삼가 이 내용을 적어 보충한다. 힘쓰거라! 鼎之爲器也。耳象兩儀。足象三德。體周五行。物應九州。質具金玉。義著火風。聖人制之。宗子主之。此器之貴重者也。然其實於中者。若有糟糠蔬糲鹿雜劣惡之物。則其不類於章甫之苴屨。華袞之土偶乎。須以明粢香萁。供其炊爨。柔毛剛鬣。具其烹飪。五葷八珍。調其旨否。然後可以副羲經鼎有實之義也。以此法象至貴之器。具此珍重至美之饍。則將以薦之郊社。奠之宗廟。以享上帝先王。而其餕餘之澤。足以及於天下矣。此羲經所以鼎有實之下。有愼所之之語也。嗚呼。人之身。其鼎器也。道德才業。有其實也。得君澤民。其所之也。朴君知之乎。朴君鼎鉉表德以元實。其意蓋取諸此。而於愼所之之義有不及。故謹書此以足之。勉旃勉旃。 삼덕(三德) 정직(正直), 강극(剛克), 유극(柔克)을 이른다. 《서경》 〈홍범(洪範)〉에 "삼덕은 첫 번째는 정직함이요, 두 번째는 강으로 다스림이요, 세 번째는 유로 다스림이다."라고 하였는데, 채침(蔡沈)의 주(註)에 "강극(剛克)과 유극(柔克)은 위엄을 보이고 복을 주며, 주고 빼앗으며, 억제하고 드날리며, 올리고 물리치는 쓰임이다."라고 하였다. 명자(明粢)와 향기(香萁) 명자(明粢)는 종묘(宗廟)의 제사에 바치는 깨끗한 기장이고, 향기(香萁)는 제사에 쓰이는 기장이다. 《禮記 曲禮 下》 《周禮 春官 大祝》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 《주역》 정괘(鼎卦) 구이(九二)의 효사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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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경의 자에 대한 설 鄭元卿字說 원(元)은 모든 선(善) 가운데 으뜸이다.124) 하늘에 있어서는 큰 시작의 뜻[義]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마음을 온전히 하는 덕이다. 이것은 모든 변화의 중심이고 만물의 시초이며 무극(無極)의 은미함에 근원을 두고 천지 사이를 가득 채우고 마음의 은밀한 곳에 쌓여서 사물의 밖에 드러난다. 공자(孔子)가 이른 천지의 큰 덕125)이고 맹자(孟子)가 이른 하늘의 높은 작위이며 사람의 편안한 집126)이다. 책을 읽고 경적(經籍)을 연찬(硏鑽)하는 것은 이 이치를 분명히 하기 위함이고, 놓친 마음을 수습하고 마음을 일깨우는 것은 이 마음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이치가 분명하면 취사(取捨)가 어긋나지 않고 마음이 보존되면 운용(運用)이 어지럽지 않다. 오랜 시일에 걸쳐 익숙해지고 중간에 끊이는 일이 없다면 하늘이 부여한 큰 덕과 높은 지위가 나에게 다시 온전할 수 있다.정군 현춘(鄭君鉉春) 원경(元卿)은 애산옹(艾山翁 정재규(鄭載圭))의 맏아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초례(醮禮)를 치르고 이름을 지을 때 '춘(春)' 자로 이름을 정하고 '원(元)' 자로 자(字)를 지은 것은 커다란 의리(義理)와 커다란 부담을 자신의 임무로 책임 지우고자 함이었다. 무궁한 애정과 면려의 뜻이 참으로 이와 같았다. 내가 비록 불초(不肖)하더라도 또한 그의 아버지와 벗인 사람이다. 연연(戀戀)하는 정이 아들을 보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유독 그 뜻을 밝혀주어 만에 하나라도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경은 밤낮으로 경계(警戒)하여 명명(命名)한 이 뜻을 저버리지 말라. 元者善之長也。在天爲大始之義在人爲全心之德。此是萬化之機軸。品彙之權輿。原乎無極之微。而塞乎天地之間。蘊乎方寸之密。而著乎事物之表。孔子所謂天地之大德。孟子所謂天之尊爵。人之安宅。讀書窮經。所以明此理也。收放喚惺。所以存此心也。理明而取舍不差。心存而運用不亂。久久積習。無容間斷。則天之所以賦畀者。大德尊爵。可以復全於我矣。鄭君鉉春元卿。艾山翁主器也。竊念其設醮而肇錫也。名之以春。字之以元。使大義理大擔負。責之爲己任。其無窮愛勉之意。固應如此。余雖無似。亦其父友之一也。戀戀視猶之地。獨不爲之發明其義以爲萬一之助乎。惟元卿夙夜惕厲。毋負此命名之義焉。 원(元)은……으뜸이다 《주역(周易)》 〈건괘 문언(乾卦文言)〉에 나오는 말이다. 천지의 대덕(大德)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천지의 큰 덕을 생이라 하고, 성인의 큰 보배를 지위라 한다."라고 하였다. 하늘의……편안한 집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인은 하늘의 높은 작위이고 사람의 편안한 집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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