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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族侄舜根 落鄕凡幾世。淮橘絶靑雲。丹田極鹵莽。何日復耕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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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呈參奉奇丈【蘆沙】 摳衣烏次客。重踏去年程。未必愁寒沍。河南春已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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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呈邱珍先生【蘆沙】 至人秉元化。端居撫空腹。畸生作老饕。蠹魚入左毒。膏骨難治鵲。手腕未解蝮。偶得良醫卦。莧陵夬夬獨。竪子漸退舍。氛祲日碌碌。黃江一夜雨。蘇我瘡痍穀。雙鯉濕雲飛。落手心先恧。價重百硨磲。德洽千釜斛。誰能報難際。顧憐皤皤禿。何當拜門下。歸臥南山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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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朝天館安行五 南去滄溟萬里流。漢挐山色揷天頭。遙知別後相思夢。只在園林橘柚秋。十載尋源最上流。送君今日白波頭。靑天大道滄溟闢。政是男兒闊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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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茂山崔鍾衡 君從何處趼重重。探玉探珠此幸逢。載德歸程須努力。磨天嶺上更無峯。吾師謙德漸人深。雨盡瀛洲北不咸。百舍治任豈易得。感君鐵石始終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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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婿冕植 老鳳翩然止竹亭。懷中四子已飛庭。滿園叢綠春無盡。會見琅玕葉葉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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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범【권현】에게 답함 答任士範【德鉉】 병으로 궁벽한 움집에 칩거하고 세상에 버림받아 오랜 옛 친구가 안부를 묻는 길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세상의 정취이니 감사하는 마음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편지를 받고 여름날 부모님을 모시는 것을 신명이 애처롭게 여겨 기거(起居)가 평안하시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로 축원하는 바에 합치합니다. 둘째 영랑(令郞)은 몸가짐이 조심스럽고 지각이 열려서 성취한 바가 사리에 어그러지지 않고 온당하니 덕문(德門)이 아직 누리지 못한 복록과 남은 희망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제가 의탁하는 마음도 소소하지 않습니다. 아우는 지난 몇 해 동안 병에 잘 걸려서 기혈(氣血)이 날로 손상되었으니 배우지 않으면 곧 쇠하는 것이 이치상 참으로 당연합니다. 무후(武侯)가 궁벽한 집에 살면서 탄식한 것100)으로는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도 없건만 어찌 남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병입니다. 그러나 병이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는 것이지 스승이 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후생 소자(後生小子)가 어디에서 도를 듣겠습니까. 형의 염려가 지나치다고 이를 만합니다. 일부(一副)의 좋은 약제(藥劑)는, 세간에는 본래 창공(倉公)이나 편작(扁鵲) 같은 명의(名醫)가 있으니 아우처럼 천석고황(泉石膏肓 산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가 어찌 다른 사람을 위해서 계책을 내겠습니까. 듣자니 저도 모르게 이마에 흐르는 땀이 발바닥까지 적십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病蟄窮竇。見漏於世。只有知舊存訊一路。此爲陽界意況。感佩曷任。仍審維夏省歡神勞。起居珍勝。實協祈祝。二郞謹勅開悟。所就穩藉。德門不食。餘望可量。區區寄意。亦爲不淺。弟年來善病。氣血日敗。不學便衰。理固宜然。武侯窮廬之歎。不能以自遣耳。奈何好爲人師。此固病也。然病在於好爲。而不在於爲師。不然後生小子。何從而聞道乎。兄可謂過慮矣。一副良劑。世間自有倉扁大手。如弟之方困於膏肓者。安能爲人謀也。聞之不覺頂汗流跖。諒恕如何。 무후(武侯)가……것 무후는 중국 삼국 시대 촉(蜀)나라 제갈량(諸葛亮)의 시호이다. 그가 지은 〈계자서(戒子書)〉에 "나이는 시시각각으로 들어가고 뜻은 해가 갈수록 사라져 버려 마침내 고락하여 세상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초라한 오두막에서 슬퍼하며 탄식한들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여기서는 젊은 시절에 부지런히 자신의 본업에 힘쓰지 못하여 마침내 이런 신세가 된 것이 한스럽다는 뜻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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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석【복기】에게 답함 答徐元陽【復基】 세시(歲時)의 왕래로 인하여 가까이 사는 벗들은 모두 소식을 들었지만, 영평(永平)의 고인(高人 수신인을 말함)께서는 어떤 상황인지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정감이 담긴 편지를 받으니 궁벽한 음지에서 햇빛을 보는 것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곤궁한 재력(財力)으로 천애지각(天涯地角)에 살고 있으니 몸소 나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정담을 나누기가 어찌 쉽겠습니까. 곧 서신만이 서로 따르며 가깝게 지내는 방도입니다. 하물며 안부를 묻는 외에 또 강론과 사색에 관한 이러저러한 말들이 끊임없이 종이 폭을 채우니,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계발하도록 하는 방도로 볼 때 편지가 대면하는 것에 못미친다고 할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여러 조항 운운한 것은 노형(老兄)의 말씀이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나 천지가 만물을 생(生)함과 사람의 마음이 인(仁)한 것은 본래 두 개의 일이 아닙니다. 대체로 현상은 만 가지로 달라도 근본은 하나【萬殊一本】이므로 본래 고정된 모습이 없습니다. '성(誠)' 자를 가지고 본다면 성(誠)이 하나의 근본【一本】이고 '경(敬)' 자를 가지고 본다면 경(敬)이 하나의 근본입니다. '인(仁)', '의(義)', '중(中)', '정(正)' 자도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주로 삼아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뿐입니다. 또 모든 현상에는 각각 갖추고 있는 하나의 근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효(孝)' 자나 '혜(惠)' 자 같은 부류가 그렇습니다. 나갈 때는 아뢰고 돌아와서는 고하며,101)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는102) 등 시봉하는 모든 방법이 '효(孝)' 한 글자에서 나옵니다. 조존(操存)103)과 격물(格物)의 설에 대한 대답도 훌륭합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것104)은 분명히 미발의 때이고 사려(思慮)만 막 싹터 나오는 때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모두가 어둡고 은미하여 남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것입니다. 계신공구(戒愼恐懼) 또한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엄숙하게 하며105), 생각하는 듯 엄숙한 자세를 가지고106) 감히 태만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하문하신 것은, 저처럼 과문한 소견으로는 일반적인 사례(士禮)에도 어두운데 하물며 제후의 예에 대해서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후사로 나간 아들은 친생부(親生父)에 대해 살아계실 때는 감히 아버지로 여기지 못하고 돌아가셔도 감히 예(禰 아버지의 사당))에 받들지 못하며 상복은 감히 3년을 입지 못합니다. 하물며 공자(公子)의 아들로서 입계(入繼)하여 왕통을 이은 경우야 말한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공조례(公朝禮)가 있고 가인례(家人禮)가 있습니다. 공조례는 공의(公議)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고 가인례는 사적인 은의(恩誼)를 펴고자 하는 것입니다. 조형(曺兄)이 말한 창업을 이룬 군주와 입계한 군주는 그 예가 다르다고 한 것은 옳습니다만, 입계한 군주도 가인으로서의 예가 없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살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因歲時往來。居近朋友。皆得聞信。而但未知永平高人作何狀。謂外情緘。不啻若窮陰之見陽也。吾儕俱以窮約事力。居在涯角。躬駕面穩。豈易事也。只是書尺一路。便是相從。況寒暄之外。又以講討思索多少語。娓娓盈幅。其所以令人資發。誰謂書不如面也。諸條云云。老兄之言得矣。然天地之生。人心之仁。本非兩項物事。大抵萬殊一本。本無定體。以誠字看之。誠爲一本。以敬字看之。敬爲一本。仁義中正字之類。莫不皆然。惟觀其所主而言者。如何耳。且事事物物上。有各具之一本。如孝字惠字之類。是也。出告反面。冬溫夏凊。凡百侍奉。皆是一箇孝字出來。操存格物說。所答亦善。不覩不聞。固是未發之時。獨是念慮初萌處。然凡幽暗隱微。人所不知而己所獨知者。皆是也。戒愼恐懼。亦非着意爲之。只是正衣冠。尊瞻視。儼若思。不敢慢之謂。俯詢云云。以若謏見寡聞。尋常士禮。猶且茫昧。況於諸侯之禮乎。然夫出後子之於所生。生不敢父。死不敢禰。服不敢三年。況以公子之子。而入承大統乎。是以有公朝禮。有家人禮。公朝禮者。所以正公義也。家人禮者。所以伸私恩也。曺兄所謂創業之君。入繼之君。其禮不同者。得之而但不知入繼之君。亦不無家人禮耳。更詳之如何。 나갈……고하며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자식은 집을 나갈 때 반드시 어버이에게 가는 곳을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얼굴을 보인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겨울에는……해드리는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무릇 자식이 된 예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리는 것이다."라고 보인다. 조존(操存)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마음이라는 것은 잡아 두면 있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는 것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으며,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보이지……것 《중용장구》 제 1 장에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떠날 수가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보이지 않을 때에도 경계하고 근신하는 것이며, 들리지 않을 때에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보인다. 의관을……하며 공자가 자장(子張)에게 '다섯 가지 미덕〔五美〕'을 가르쳐 주면서 "군자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존엄하게 하는 법이다. 그러면 그 모습이 엄숙해서 사람들이 쳐다보고 외경심을 갖게 마련인데, 이것이 바로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한 대목이 보인다. 《論語 堯曰》 생각하는……가지고 《예기》 〈곡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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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낙현【재성】에게 답함 答安樂賢【載性】 일전에 보내신 서신을 열어 본 이래로, 강습(講習)하는 즐거움이 이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저의 정성에 위안이 될 뿐만 아니라 학습 과정이 정명(精明)하고 세밀하여 사람을 발전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저에게 기쁘고 다행스럽기가 실로 어떻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인하여 좁은 소견 한두 가지로 감히 다시 우러러 아뢰니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하학(下學) 운운한 것을, 노형(老兄)께서는 '상(上)', 하(下)' 2자를 도(道)와 기(器)로 인식하십니까, 아니면 도와 기의 경계를 이르는 것입니까? 만약 곧장 도와 기라고 말한다면 하(下)에는 정녕 형상(形象)과 방위(方位)가 있으며, 다만 도와 기의 경계라고만 한다면 상(上)에 이미 형상과 방위가 없는데 하(下)에만 형상과 방위가 있겠습니까. 성인은 이(理)와 기(氣)를 나눌 수 없는 곳에 대해서는 '형이(形而)'107) 두 자를 쓰고 이와 기가 뒤섞일 수 없는 곳에 대해서는 '상하(上下)' 두 자를 썼습니다. 이것은 《역(易)》에 처음 나타나고 《논어(論語)》에서 반복되었으니108)108) 《논어(論語)》에서 반복되었으니: 《논어》 〈헌문(憲問)〉의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노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이실 것이다."라는 말을 가리킨다.그 경계가 매우 정밀합니다. 학자들은 단지 일상적인 인사(人事)에 종사하면서 행해야 하는 의리를 다하는 데 힘써서 격물 궁리(格物窮理)의 깊은 뜻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렇게 지극히 비근(卑近)한 곳으로 나가지만 지극히 고원(高遠)한 곳이 생생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어찌 현묘한 곳에 나아가는 것을 미리 근심하여 도와 기의 경계를 어지럽히겠습니까. 부디 잘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日前手存。披閱以還。不惟講習之樂。有以慰此期仰之誠。其盛課之精明詳密。有以開發人處。區區喜幸。實難名喩。因以一二菅見。敢復仰溷。幸見敎也。下學云云。老兄以上下二字。認爲道器耶。抑謂道器之界至耶。若是直說道器。則下固有形象方位。只是說道器界至。則上旣無形象方所。下獨有形象方所乎。聖人於理氣之不可分開處。下形而二語。於理氣之不可混雜處。下上下二字。始著於大易。反復於論語。此其界至極爲精密矣。學者但當從事於日用人事之間。務盡其當行之義。而不失其窮格之蘊。則卽此至近至卑而至高至遠者。躍如矣。豈有預憂玄妙之馳而亂道器之界至哉。千萬諒之。 형이(形而)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의 "형이상의 것을 도라고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라고 한다."라는 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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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寅四月初四日 前手標右手標事右人親山定于下西吉音洞而右麓卽吾之禁養內哛喩吾之弟嫂山與子婦山在於南麓至近之地是如乎言無事結則不可輕先許給於右人定山麓上下一脉捧価貳十五兩爲遣永永許給用山後子孫與族人中如有雜談則以此標憑考事山地主 幼學 梁機[着名]證筆 喪人 賓相鴻[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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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膺相爲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兼五衛將者咸豐五年二月 日 [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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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前奴回下覆尙此伏慰便過有日寒㬉不適伏悶靜中體事連衛萬安閤節亦安護病婦諸証其間或有動靜鄙藥試無減亦已久矣今何望掩地夬蘇空費藥料徒勞心神只望志少有起動而生還媤家不可謂大幸而已矣亦將何爲査下生親候近以感患歷日欠損情私急迫如何形達今逢權友益山果旣勘還衙云聞甚喜幸積月曠務之餘似可促裝而來際此往見固所然矣而適有少碍不得如意姑竢數日登途計耳餘姑留拜候不備上候禮丁未至月十日査下生趙膺鎬배면上候書奴回後更阻安候下懷悵慕伏不審至沍靜養體度萬安伏慕不任下誠室人日間更如何忽念令胤內合如漫擧云伏想悲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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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者上書伏想 下鑑矣伊來阻候踰月伏悵何常少弛伏未審間者氣體候萬旺閤內均安竝伏泰區區不任下誠再從孫省側粗安伏幸何達回便陳玄一丁得送矣領納將上京以後所用錢夥然而所出處少無忙何以爲之耶 貴邊或有錢兩一貫下借則不年間當報勿慮若何方今所促錢八九兩或可 下諒僕下壅塞之艱難之情否勿投此書而下送伏望耳餘不備上候書丁未四月二十日再從孫翼鉉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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阻仰有時勞摯便中伏拜惠狀謹審冬暄靜中動定連護萬重欣豁慰賀允叶勞祝第孫婦間以項病屢日委苦雖是輪行之證有妨於食欲亦至元氣之陷敗者豈勝慮矣聞廊珍更肆云尤用悶慮比近則姑無是患而未知其終竟如何也弟衰軀遇寒蟄伏頓沒陽意自憐奈何孫兒之病知是長遠離涉之証安可望願地譴却而脆弱之質逐直重經徒存形骸所見不勝愁憐孫婦新禮差退數朔豈難而但見渠之心一時爲愈無?之時屈指待日矣聞此尤覺悵然應?兒益故不□▢陳耳餘適撓姑▢不備伏惟▢▢▢謹謝狀上壬寅陽月卄四日 弟在儀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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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四年甲辰六月初一日幼學金載相前明文右明文事段以貧窮所致妻家山下墓田扶北中方里西十作惶字丁太三斗五升落只所耕六負五束庫果所付柴塲卄五同落只並以折価錢文五兩依數捧上是遣本文一丈並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子孫中誰談是去䓁以此文告官卞正事田柴塲 主同知高春成[着名]訂筆 幼學 宋亨柱[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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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애 민 참판에 대한 제문 祭沙厓閔參判文 하늘이 현철(賢哲)을 내는 것은 장차 이 세상에 쓰이고 이 사람을 진작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순박한 시대 이후로 양(陽)의 덕이 점점 박해져 비록 이룰 수 있는 자질이 있어도 능히 이룰 수 있는 지위가 없습니다.오호라! 선생은 채와(菜窩)45)의 조카이고 매문(梅門)46)의 고제로 이른 나이에 뜻을 세워 출입하여 가르침을 받았으니, 문로가 바르고 확실하며 조예가 정밀하고 깊었습니다. 이윽고 석갈(釋褐)47)하고 조정에 올라서는 명량(明良)48)이 서로 만났고, 만년에 높이 발탁되어 아경(亞卿)49)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도를 행할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또한 천년에 한 번 만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배회하며 오래지 않아 인년(引年)50)하였으니, 오호라! 그 덕이 있고 그 지위가 없으면 그만이지만, 그 덕이 있고 그 지위가 있는데 또한 당시에 행해짐이 있지 않았으니, 모르겠으나 하늘이 백성들로 하여금 장차 한번 다스려지는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없게 하려는 것입니까?돌아와 전원에 누워 문을 닫고 스스로 함양하며 노사(蘆沙) 기 선생(奇先生)과 왕복하며 강마하면서 나이가 부족한 줄도 몰랐습니다. 오호라! 이와 같은 희조(熙朝)51)의 명경(名卿)과 유문(儒門)의 장덕(長德)으로 유연히 남쪽 먼 곳 산곡(山曲)의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으나 인심을 감복시키고 세도를 진정시킨 것은 어떠합니까. 그렇다면 현철이 세상에 쓰이고 사람을 진작시키는 것은 비록 지위에 있지 않더라도 그 이로움과 은택이 미치는 것은 실로 차이가 없습니다.오호라! 지금은 끝나버렸으니, 이 세상의 무궁한 근심을 어찌하며, 후학들의 다하지 못하는 슬픔을 어찌하겠습니까! 天生賢哲。將爲需斯世而作斯人也。淳古以降。陽德浸薄。雖有可致之質。而無有能致之位。嗚呼。先生以菜窩從子。梅門高弟。早年立志。出入薰染。門路端的。造詣精深。旣而釋褐登朝。明良相遇。晩際升擢。至於亞卿。此不可謂非行道之任。而亦不可謂非千載之一會也。然逡巡徘徊。非久引年。嗚呼。有其德而無其位則己。有其德有其位。而亦未有見行於時。未知天下使民將復見一治之美耶。歸卧田廬。杜門自養。與蘆沙奇先生往復講磿。不知年數之不足。嗚乎。以若熙朝各卿。儒門長德。悠然歛跡於南荒山曲之間。而所以感服人心鎭定世道者。爲何如哉。然則賢哲之於需世作人。雖不在位。而其利澤之及。固無間也。嗚呼。今焉己矣。奈斯世無窮之憂。奈後學不盡之悲。 채와(菜窩) 민백우(閔百佑, 1779~1851)를 말한다. 호는 교채와(咬菜窩),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저서로는 《교채와유고》가 있다. 매문(梅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하를 말한다. 석갈(釋褐) 천한 자가 입는 모포(毛布)인 갈옷을 벗는다는 뜻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함을 이른다. 명량(明良) 명군(明君)과 양신(良臣)으로, 《서경》 〈우서(虞書) 익직(益稷)〉에서 고요(皐陶)가 제순(帝舜)에게 간언하기를 "원수가 현명하면 고굉이 어질어서 모든 일이 편안할 것입니다.[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원수(元首)'는 임금을, '고굉(股肱)'은 신하를 비유한다. 아경(亞卿) 조선 시대 정경(正卿)인 판서(判書)에 버금간다는 뜻으로, 육조(六曹)의 참판(參判)과 그 동급의 벼슬을 이르는 말이다. 인년(引年) 늙어서 관직을 물러나는 치사(致仕)를 뜻한다. 희조(熙朝) 잘 다스려진 왕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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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록 후 소지 信從錄後小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논란하여 말하기를 "일신재(日新齋) 정 선생(鄭先生)이 세상을 떠난 뒤에 친필의 원집(原集)을 바로 간행하였는데, 위로 종유(從遊)한 큰 덕망을 지닌 분으로부터 아래로 직접 가르침을 받은 생도에 이르기까지 성씨와 이름, 지극한 말과 요체가 되는 가르침이 책 속에 환하게 드러나 있어 당대에 두루 유행하고 아래로 먼 후세에까지 전해 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직 마땅히 원집을 돈독히 믿어 선생의 학문을 배우고 선생의 마음을 느끼는 자는 이른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지극함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도리어 이 일을 거듭 설행한다면 아름다운 명예를 구한다는 폐단이 있다고 하면서 후세에 비난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내가 말하기를 "아, 태산이 무너지고 들보가 꺾였으니3) 상을 치른 뒤에 짐을 챙겨 각자 돌아갔다. 처음에 다시 돌아와서 집을 짓고 홀로 더 거처한 자공(子貢)처럼4) 하지 못하였고, 나중에는 자하(子夏)처럼5)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성인의 의론도 70명 제자의 반열에서 금방 괴리되었는데, 더구나 성인이 떠나고 말씀은 사라져 극도로 괴란(壞亂)된 때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에 동문의 벗 박준기(朴準基) 씨가 이렇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동문들과 함께 해진 문권을 수집하여 행장(行狀) 및 언행(言行) 약간 편을 실어서 서권을 만들어 선사(先師)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을 의탁하였다. 또 후세에 우리 선사의 도덕과 광휘가 온축됨과 제자가 복종하고 믿고 따른 성대함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논란하던 자가 잘 알았다고 하고는 물러났다. 이에 글을 쓴다.정묘년(1927) 동짓날에 문인 풍산(豐山) 홍승환(洪承渙)이 삼가 기록한다. 有人難於余曰。日新齋鄭先生奠楹後。手墨原集在卽剞劂。上自從遊長德。下及親灸生徒。姓氏名啣與至言要訓。昭烈卷中。可以旁行於一時。下達於千世。則惟宜篤信原集。學先生之學。心先生之心者。可曰報答佛恩之至。而乃者疊設斯役。有不以好名要美之弊。議之於後歟。余曰。嗚呼。山樑旣頹。治任各歸。初不得子貢之反築。後未免子夏之離索。聖人議論。將乖于七十子之列。況聖遠言湮。壞亂極矣之日耶。此同門友朴準基氏。爲是之懼。乃與同門諸雅。裒粹摩擦。弁載行狀及言行略干。成編縹緗。以寓江漢無窮之思。且使來世有以知我先師道德光輝之蘊。與夫諸弟子思服信從之盛云爾。難者唯唯而退。於是乎書。丁卯陽復。門人豐山洪承渙謹識。 태산이……꺾였으니 훌륭한 스승의 죽음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일신재 정의림이 세상을 떠난 것을 가리킨다. 공자(孔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려 하는구나. 들보가 쓰러지려 하는구나. 철인이 시들려 하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읊조렸는데, 자공(子貢)이 이 소식을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는 장차 어디를 우러러보며, 들보가 쓰러지고 철인이 시들면 우리는 장차 어디에 의지하겠는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 梁木其壞, 哲人其萎, 則吾將安放?]"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禮記 檀弓上》 다시……자공(子貢)처럼 공자가 별세했을 때 모든 문인(門人)들이 심상 삼년(心喪三年)을 치른 다음 모두 짐을 챙겨 떠났으나, 자공(子貢)만은 다시 돌아와서 공자의 묘의 마당에 집을 짓고 홀로 3년을 더 거처하여 6년을 지낸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자하(子夏)처럼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자하가 말하기를 '내가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 지 또한 이미 오래되었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하였다. "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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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홍107)에 대한 제문 祭鄭致弘文 백아(伯牙)의 거문고에 그 줄이 끊어지고108) 영근(郢斤)에 그 바탕[質]이 없으니,109) 이것은 사물의 이치와 사람의 정이 고르게 하기 어려운 곳이라, 천년동안 흘러 전해져도 오히려 느껴 아파하며 다하지 않는 뜻이 없을 수 없는데, 더구나 오늘날에 내 몸에서 직접 보았으니 어떠하겠는가.오호라! 나는 형에게 50년의 오랜 친구가 되네. 시절이 춥거나 따뜻할 때, 길흉사에 왕래할 때, 글 짓고 술 마시며 마음대로 놀 때, 상란(喪亂)에 달려가고 숨을 때에 더불어 서로 필요로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마치 보거(輔車)110)가 의지하는 것 같고 봉마(蓬麻)111)가 도와주는 것 같았는데, 더구나 지금 노쇠한 나이에 평소의 친구들을 봄에, 열에 여덟아홉이 죽었으니, 외롭게 서로 향하여 마주할 사람이 또 몇 이나 되겠는가. 형은 어찌하여 조금 더 살지 않고 나를 버리고 잊음이 이와 같이 갑작스러운가? 형은 1월 18일의 편지에서 이 달 안에 한 번 방문하겠다는 말이 있었고, 아우는 2월 7일 편지에서 봄이 다 가기 전에 한 번 만날 기약을 하였는데, 이 달 안의 약속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봄이 다 가기 전이 우리 두 사람이 영원히 작별할 때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병들었을 때 부축해 주지 못하였고, 죽었을 때 반함(飯含)112)도 못하였는데, 모습은 이미 감추어 유명 간에 영원히 막혔네. 제문을 지어 슬픔을 드러냄에 눈물이 쏟아지는 듯하니, 영령은 아시는지요? 牙琴之絶其絃。郢斤之無其質。此是物理人情之所難平處。而流傳千載。尙不無感傷不盡之意。況在今日而於吾身親見之乎。嗚呼。吾於兄爲五十年舊要也。時節寒暄。吉凶往來。文酒遊衍。喪亂奔竄。無不與之相須。如輔車之依。如蓬麻之助。況今衰暮之年。見平昔知舊。十亡八九。而煢煢相向。又其幾人乎哉。兄何爲不之少延。而棄我亡我。若是其遽耶。兄元月十八日書。有月內一枉之語。弟二月初七日書。有春暮前一穩之期。誰知月內之約。竟未見就。而春暮之前。爲吾兩人永別之辰耶。病未擧扶。歿未飯含。儀形已閟。幽明永隔。操文泄哀。淸血如注。靈其知否。 정치홍(鄭致弘) 정기현(鄭琦鉉, 1844∼?)을 말한다. 자는 치홍, 호는 만취(晩翠),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백아(伯牙)의……끊어지고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이른 말이다. 춘추(春秋)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자기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을 한탄하고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絶絃]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列子 卷5 湯問》 영근(郢斤)에……없으니 옛적에 영(郢)에 도끼질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의 코끝에다 백토(白土)를 조금 붙여두고 도끼질로 그 백토를 다 깎아내어도 코는 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코를 대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그의 기술을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코를 대주었다. 그뒤에 그 사람이 죽고 나자 도끼를 던지며, "이제는 나의 바탕이 죽었으니, 어디에 기술을 쓰랴."라고 하였다.《莊子 徐无鬼》 보거(輔車) 서로 긴밀히 의지하는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봉마(蓬麻) 봉생마중(蓬生麻中)의 준말로, 좋은 사람과 사귀면 절로 바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쑥대가 삼밭에서 자라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흰 모래가 검은 진흙 속에 있으면 진흙과 함께 검어진다.[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반함(飯含) 죽은 사람을 염습할 때에 입에다 구슬과 쌀을 물리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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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중에 대한 제문 祭文集仲文 오호라! 헤어지고 합함은 서로 의지하고 모이고 흩어짐은 서로 교대하네. 그러나 합하기는 어렵고 헤어짐은 쉬우며, 모이는 것은 짧고 흩어지는 것은 기니, 이 속진의 좋지 못한 기능과 덧없는 인생의 빚진 업보가 본래 이와 같은 것인가?지난 병술년(1886, 고종23)에 내가 그대 백씨(伯氏)와 무등산[瑞石山]에서 바람 쐬며 시를 읊조리고 돌아와 강론할 집을 마련하여 끊임없이 왕래할 계획을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백씨가 나를 버리고 돌아가시어 그 전형이 아우들에게 남아 있었던 것은 오히려 붕우의 바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있었네. 이번 을미년(1895, 고종32) 봄에 내가 성동(星洞)에서 가천(佳川)으로 공을 따라 가 이웃을 맺어 노년을 보내며 갚지 못한 오랜 빚을 보상하려 하였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은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는데 인하여 병마에 시달리다가 결국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네.오호라! 서로 알았던 날을 손꼽아보니 지금 30여 년이 아니던가? 1년에 한 번 보거나 혹 두 번 보았고, 서로 보았던 시간 또한 하루 이틀에 불과 하였네. 이것으로 계산해 보면 이른바 30년이라는 것은 그 실상은 단지 2, 3개월에 불과할 따름이네. 세상에 살아 있을 대에도 오히려 이와 같았는데 더구나 각자 저승과 이승으로 영원히 작별하게 되었으니 어떠하겠는가. 어찌 합하기는 어렵고 헤어짐은 쉬우며 모이는 것은 짧고 흩어지는 것은 긴 것인가?백수의 노쇠한 나이에 벗들은 신성(晨星)152)이 되어, 들어가서는 지낼 곳이 없고 나가서는 갈 곳이 없으니, 외롭고 쓸쓸한 처지 이 무슨 신세인가? 근래 보건대 영정(詠亭)153)에서 종유하던 이가 죽은 사람이 20여 명인데 모두 내보다 나이가 적으니, 나는 유독 어떤 사람이기에 오래도록 죽지 않고 있는가? 생각건대 반드시 오래지않아 공의 백씨 중씨와 함께 저승에서 만나 기쁘게 교유하면서 다시는 이별하는 한이 없을 것이니, 누가 저승 또한 인간세상과 같다고 말하는가? 嗚呼離合相倚。聚散相襌。然合之難而離之易。聚者短而散者長。此塵海伎倆。浮生債業。本自如是耶。曩在丙戊。余與尊伯氏。風詠瑞石。歸開講社。爲源源之規。居無幾何。伯氏棄我而逝。其典刑之存於季難者。猶有可以慰朋友之望。是於乙未春。余自星洞從公于佳川。爲結隣終老。以償宿債之未了者矣。未幾公搬移他所。因爲二竪所苦。而竟至不起。嗚呼。屈指相知。今非三十餘年耶。一年而一。或再相見。其相見之頃。亦不過一兩日。以此計之。所謂三十年者。其實只是兩三月而已。生在世間。猶尙如此。況一幽一明而終天爲別乎。何合之難而離之易。聚之短而散之長耶。白首頹齡。知舊晨星。入無所寓。出無所適。踽踽凉凉。此何景色。近見詠亭從遊爲鬼者。二十餘人。而皆吾年下。則我獨何人。久無此行耶。想必非久。而與公伯仲。相遇於泉臺。驩然交遊。無復分離之恨。誰謂泉臺亦如人間世耶。 신성(晨星) 새벽별이라는 뜻인데, 벗들이 잇달아 죽어 마치 새벽별처럼 얼마 남지 않았음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송장관부거병인(送張盥赴擧幷引)〉에 "옛날에 함께 급제했던 벗들과 어울려 노닐 적에는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서 마치 병풍처럼 대로를 휩쓸고 돌아다녔는데, 지금 와서는 마냥 쓸쓸하기가 새벽 별빛이 서로들 멀리서 바라보는 것 같기만 하다.[嚮所謂同年友, 當其盛時, 聯袂齊鑣, 亘絶九衢, 若屏風然, 今來落落, 如晨星之相望.]"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영정(詠亭) 영귀정(詠歸亭)으로, 정의림(鄭義林)이 강학을 위해 1893년 12월에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會松里)에 건립한 건물이다. 여기에 아홉 성인의 진영(眞影)을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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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病中 좁은 도랑 건너는 게 마치 큰 바다와 같고 尺渠涉若大洋洲평지의 위태로움이 흡사 백척 누대와 같구나 平地危如百尺樓육신은 괴로운 매화처럼 되니 온몸이 수척하거니와 身作苦梅全體瘦정신은 짙은 안개에 빠진 듯하니 언제나 수습할꼬 神沈大霧幾時收어찌 생각했으랴 세월 따라 고황261)이 깊어질 줄을 豈料膏肓深歲月모두가 허물과 악행을 산처럼 쌓았기 때문이라네 總緣咎惡積山丘편한 마음으로 저승사자 오기를 기다릴 뿐이니 安心只待符到已서글픈 뜻이 어찌 한 점이라도 일어난 적이 있으랴 怛意何曾一點浮수는 육십육 세에 이르렀는데 壽到六十六병은 사백 네 가지262)를 겸하였다오 病兼四百四세속의 정은 노년인 줄만 알고 世情知老年저잣거리의 도263)는 처자식만 중시한다네 市道見妻子적막한 대문 앞엔 그물이 드리워지고264) 寂寂門羅垂깊고 깊은 정원엔 풀이 푸른빛을 띠네265) 深深庭草翠책 속에 좋은 스승과 벗이 있으니 卷中師友存이내 그리움을 달래줄 만하다오 卽可慰吾思쇠병함은 노인의 상사라고 누가 말했던가 誰云衰病老人常칠순에도 못 이르러 갑자기 이렇게 되었구나 未到稀齡遽此當오래 앓은 중풍으로 반벙어리가 되었고 積歲中風成半啞두 눈의 흐릿함으로 온전한 모습을 못 본다오 雙眸翳霧昧全光삼복 무더위에도 이불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褥衾不離三庚節적은 곡식으로도 수일의 양식을 댈 수 있다네 升合能支數日粮괴이해라 아침 이슬 마르듯이 죽는 게 더디니 怪底猶遲朝露溘정신을 조금이라도 유지할 수 있길 바라노라 神精倘有一毫芒 尺渠涉若大洋洲, 平地危如百尺樓.身作苦梅全體瘦, 神沈大霧幾時收?豈料膏肓深歲月? 總緣咎惡積山丘.安心只待符到已, 怛意何曾一點浮?壽到六十六, 病兼四百四.世情知老年, 市道見妻子.寂寂門羅垂, 深深庭草翠.卷中師友存, 卽可慰吾思.誰云衰病老人常? 未到稀齡遽此當.積歲中風成半啞, 雙眸翳霧昧全光.褥衾不離三庚節, 升合能支數日粮.怪底猶遲朝露溘, 神精倘有一毫芒. 고황(膏肓) 심장과 횡격막(橫膈膜) 사이가 고(膏)와 황(肓)으로 여기에 병이 나면 치료가 어렵다 하여 불치병 또는 고질병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경공(景公)의 꿈에 병마(病魔)가 두 아이[二豎]의 모습으로 나타나 고황 사이에 숨는 바람에 끝내 병을 고칠 수 없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成公10年》 사백 네 가지 사람은 오장(五臟)에 각각 81종의 병이 있어 그 총수가 405종의 병이 되는데, 여기에서 죽음[死]을 하나 빼면 404종의 병이 된다는 불가어(佛家語)에서 온 말이다. 저잣거리의 도(道) 원문의 시도(市道)는 시정(市井) 상인들이 이익만을 추구하는 도를 이른다. 적막한……드리워지고 그물은 참새 잡는 그물로, 찾아오는 빈객이 전혀 없어 참새 잡는 그물을 펼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문정(門庭)이 적막하다는 뜻이다. 한나라 적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에는 빈객이 서로 찾아오는 바람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가, 파직된 뒤에는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아 대문 앞에 참새 잡는 그물을 칠 정도[門外可設雀羅]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卷120 汲鄭列傳》 깊은……띠네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贊)〉에 주돈이(周敦頤)의 인품과 기상을 기리기를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끝없이 펼쳐지고, 뜰 가운데의 풀은 무성히 푸르렀네.[風月無邊, 庭草交翠.]"라고 한 것을 차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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