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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십사일에 감회가 있어 九月十四日有感 구십오 년 전 이 날은 九十五年前此日바로 나의 선비께서 태어나신 때라네506) 是我先妣懸帨辰불초한 육남매를 기르셨는데 育養不肖六子女졸년이 꼭 육순을 채웠다오 卒年恰滿六旬春찬찬히 보건대 환갑이 일 년이 모자랐는데 周甲看看爭一歲지연된 계책이 외려 상생507)의 궤연에 미쳤네 延計猶逮象生筵수박을 심어 크기가 항아리만 했는데 種得西瓜大如甕입동 전에 겉은 푸르고 속은 붉었다오 外碧內丹立冬前쪼개어 올리자 탁자에 향이 가득했으니 剖破獻上香滿卓마치 제철 과일처럼 단맛이 온전하였네 宛若時物甘味全호사가들이 앞다퉈 말하기를 好事之人爭有言이런 때 이런 과일이 어찌 우연이랴 하였네 此時此菓豈偶然이를 듣고 슬프고 부끄러워 자책하였으니 聞之悲愧內自訟나의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다고 말한 것만 같았네 若道此漢孝感天생전에 천년도508)를 얻을 수 있다면 生前應得千年桃사후에 어찌 환생초가 없으리오 死後詎無還生草선비가 돌아가신 뒤로 삼십여 년이 지났으니 風樹以來經三紀소자도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오 小子皤皤亦已老새삼 절절한 감회가 발하여 시가 되었는데 追切感懷發爲詩병자의 말과 절반 섞여 속마음을 다 토로하였네 半雜病話寫傾倒 九十五年前此日, 是我先妣懸帨辰.育養不肖六子女, 卒年恰滿六旬春.周甲看看爭一歲, 延計猶逮象生筵.種得西瓜大如甕, 外碧內丹立冬前.剖破獻上香滿卓, 宛若時物甘味全.好事之人爭有言, 此時此菓豈偶然?聞之悲愧內自訟, 若道此漢孝感天.生前應得千年桃, 死後詎無還生草?風樹以來經三紀, 小子皤皤亦已老.追切感懷發爲詩, 半雜病話寫傾倒. 구십오……때라네 후창의 선비(先妣)인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정사년(1857, 철종8) 9월 14일에 태어나 병진년(1916) 3월 16일에 별세하니, 향년 60세였다. 상생(象生) 죽은 사람을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여겨 궤연(几筵)을 설치하고 의복과 기물 및 의식 절차를 살아 있을 때에 준하여 행하는 것을 말한다. 천년도(千年桃) 반도(蟠桃)를 가리킨다. 서왕모(西王母)가 심은 복숭아로, 3000년에 한 번 꽃이 피고 3000년에 한 번 열매를 맺으며 이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한다. 《太平廣記 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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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병 열 폭의 그림 뒤에 삼가 쓰다 병서 ○신묘년(1951) 敬題祭屛十幅圖畵後【幷序 ○辛卯】 제병 열 폭에 선조(先祖)의 덕행을 열거해 쓰고 아울러 그림을 그려서 추모의 뜻을 부쳤다. '금강산(金剛山)의 충의[金剛忠義]'란 것은 원조(遠祖) 마의태자(麻衣太子)402)의 일이며, '영은사(靈隱寺)에 제영하다[靈隱題詠]'란 것은 24대조 복야공(僕射公)403)의 일이며, '불교를 배척하고 불경을 조소하다[斥佛嘲經]'란 것은 23대조 문정공(文貞公)404)의 일이며, '역적을 토벌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다[討賊安邦]'란 것은 15대조 첨지공(僉知公)405)의 일이며, '매죽과 짝할 만한 고고한 풍치[梅竹高致]'란 것은 13대조 생원공(生員公)406)의 일이며, '모당(慕堂)과 월사(月沙)와 도의(道義)로 사귀다[慕月道交]'란 것은 11대조 죽계공(竹溪公)407)의 일이며, '용성에서 창의하다[龍城倡義]'란 것은 10대조 참봉공(參奉公)408)의 일이며, '낙요당(樂要堂)409)에서 강학하다[要堂講學]'란 것은 선고(先考) 벽봉공(碧峰公)410)의 일이다. 각각 오언절구(五言絶句)로 그 행실을 대략 기록하였다. 신묘년 맹춘(孟春)에 택술이 삼가 쓰다.금강산이 사해에 이름난 건 金剛名四海참으로 까닭이 있으니 良有厥由而마의태자의 사적이 아니라면 不是麻衣蹟한갓 기이한 수석일 뿐이라네 徒然水石奇-금강산의 충의[金剛忠義]-바위틈 샘물은 밤낮으로 내리는 비요 石泉日夜雨소나무에 걸린 달은 고금의 등불일세 松月古今燈복야공이 영은암에서 시 읊으니 僕射靈菴詠천추의 풍아411)에 등재되었도다 千秋風雅登-영은사(靈隱寺)에 제영하다[靈隱題詠]-《원각경》에서 주장하는 이단의 설을 啾啾圓覺經일필휘지로 남김없이 쓸어버렸다오412) 一筆掃淸之아득히 멀리 창려413)의 뒤를 이으니 邈爾昌黎後사문에 공이 참으로 작지 않도다 斯文功不微-불교를 배척하고 불경을 조소하다[斥佛嘲經]-맑고 깨끗한 연적암414) 아래에 淸絶硯巖下몇 칸의 공자 사당이 있다오 數間夫子祠해동의 아름다운 추로 풍속415)이 海東鄒魯俗이곳을 뿌리 삼아 가지를 뻗었네 根此達其枝-문묘(文廟)를 창건하여 초상을 봉안하다[創廟奉像]416)-신복이 되지 않음은 태사의 절의이니417) 罔僕太師節그 풍모를 들었고 또 공을 보았네 聞風又見公당시에 덕을 함께한 벗으로는 當時同德友정문충공418) 같은 분이 계셨다오 有若鄭文忠-신복(臣僕)이 되지 않고 귀향하다[罔僕歸鄕]419)-북쪽 변방에 전란이 일어나니420) 北塞風塵起조정의 근심이 참으로 깊었네 朝廷憂正深문무의 재주를 모두 완비했으니 全材文武備산해의 요기를 말끔히 제거했다오 山海淨氛祲-역적을 토벌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다[討賊安邦]-대나무는 깨끗하여 속되지 않고 竹兮淸不俗매화도 정결하여 티끌 한 점 없다오 梅亦潔無塵담박하기 그지없는 선생의 풍취여 淡泊先生趣진실로 매죽과 짝할 만하여라 固亦與作隣-매죽과 짝할 만한 고고한 풍치[梅竹高致]-유문에는 모당옹421)이 있고 儒門慕堂老문원에는 월사옹422)이 있는데 文苑月沙翁같은 소리와 기운은 서로 찾는 법이니423) 聲氣相求處정신으로 교유해 한 몸과 같았다오 神交一體同-모당과 월사와 도의(道義)로 사귀다[慕月道交]-적현424)의 운수가 다하려 할 때 赤縣運將訖청구425)가 먼저 해를 입었다오 靑邱先受傷호남에 뜻있는 선비 많으니 湖南多志士의로운 군대426)가 명성을 길이 떨쳤도다 師直義聲長-용성에서 창의하다[龍城倡義]-초당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草堂何所事교재427)에 글 읽는 소리 울리누나 橋梓有書聲간옹의 글이 진중하기 그지없으니 珍重艮翁筆낙요명을 대대로 전하리라428) 世傳樂要銘-낙요당(樂要堂)에서 강학하다[要堂講學]- 祭屛十幅, 列書先德, 幷作圖畵, 以寓追慕.其曰'金剛忠義'者, 遠祖麻衣太子事也; 其曰'靈隱題詠'者, 二十四世祖僕射公事也; 其曰'斥佛嘲經'者, 二十三世祖文貞公事也; 其曰'討賊安邦'者, 十五世祖僉知公事也; 其曰'梅竹高致'者, 十三世祖生員公事也; 其曰'慕月道交'者, 十一世祖竹溪公事也; 其曰'龍城倡義'者, 十世祖參奉公事也; 其曰'要堂講學'者, 先考碧峰公事也.各以五言小絶, 略記其實.辛卯孟春, 澤述謹識.金剛名四海, 良有厥由而.不是麻衣蹟, 徒然水石奇.【金剛忠義】石泉日夜雨, 松月古今燈.僕射靈菴詠, 千秋風雅登.【靈隱題詠】啾啾圓覺經, 一筆掃淸之.邈爾昌黎後, 斯文功不微.【斥佛嘲經】淸絶硯巖下, 數間夫子祠.海東鄒魯俗, 根此達其枝.【創廟奉像】罔僕太師節, 聞風又見公.當時同德友, 有若鄭文忠.【罔僕歸鄕】北塞風塵起, 朝廷憂正深.全材文武備, 山海淨氛祲.【討賊安邦】竹兮淸不俗, 梅亦潔無塵.淡泊先生趣, 固亦與作隣.【梅竹高致】儒門慕堂老, 文苑月沙翁.聲氣相求處, 神交一體同.【慕月道交】赤縣運將訖, 靑邱先受傷.湖南多志士, 師直義聲長.【龍城倡義】草堂何所事? 橋梓有書聲.珍重艮翁筆, 世傳樂要銘.【要堂講學】 마의태자(麻衣太子)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의 태자인 김일(金鎰)로, 마의(삼베옷)를 입고 한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다. 부안 김씨(扶安金氏)의 중시조(中始祖)가 된다. 경순왕이 후백제 견훤(甄萱)과 고려 왕건(王建)의 신흥 세력에 대항할 길이 없어 항복하자, 태자가 이에 반대하여 금강산(金剛山)으로 들어가 마의를 입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복야공(僕射公) 고려 때 우복야(右僕射)를 지낸 김의(金宜)이다. 다른 이름으로 정립(挺立) 또는 정립(鼎立)이 있다. 말년에 변산(邊山)의 영은사(靈隱寺)에 있었는데, 〈영은사〉 시 한 수가 전한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 1211~1278)로, 자는 차산(次山), 초명은 백일(百鎰), 호는 지포(止浦), 시호는 문정이다. 고려의 명현으로, 문장과 도덕이 당대에 으뜸이었다. 첨지공(僉知公) 세조(世祖) 때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김보칠(金甫漆)이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공을 세웠다. 지방관으로 16개 고을을 잘 다스렸다. 생원공(生員公) 김종(金宗, 1471~1538)으로, 자는 사앙(士仰), 호는 매죽당(梅竹堂)이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는데, 기묘사화(己卯士禍)로 과업(科業)을 폐하였다. 매죽(梅竹)을 심고 가꾸면서 청고(淸高)함으로 자신을 수양하였다. 죽계공(竹溪公) 김굉(金鋐)으로, 자는 여기(汝器), 호는 죽계이다.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과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등과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학덕(學德)으로 경기전 참봉(慶基殿參奉) 등에 제수되었다. 참봉공(參奉公)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을 지낸 김정길(金鼎吉, 1576~1645)로, 자는 응구(應九)이다. 병자호란 때 창의(倡義)하하여 의병을 거느리고 청주(淸州)까지 진격하였다가, 화의(和議)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군대를 해산하였다고 하는데, 이 일이 《호남창의록(湖南倡義錄)》 등에 실려 있다. 낙요당(樂要堂) 후창의 부친인 김낙진(金洛進, 1859~1909)이 강학(講學)했던 초당(草堂)이다. 벽봉공(碧峰公) 김낙진으로, 자는 치일(致一), 호는 벽봉이다. 약관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간재(艮齋) 전우(田愚), 병암(炳菴) 김준영(金駿榮), 겸와(謙窩) 홍주후(洪疇厚) 등과 도의로 사귀었다. 풍아(風雅) 국풍(國風) 및 대아(大雅)와 소아(小雅)를 뜻하는 것으로, 《시경》을 가리킨다. 원각경에서……쓸어버렸다오 고려 고종(高宗) 때 권신 최항(崔沆)이 김구(金坵)에게 《원각경(圓覺經)》의 발문(跋文)을 써 달라고 청하자, 김구는 바른 도리를 지켜 굽히지 않고 시(詩)를 지어 최항을 꾸짖으니, 최항이 이에 앙심을 품고 김구를 제주 통판(濟州通判)에 좌천시킨 일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이 고사를 근거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正祖實錄 14年 2月 13日》 창려(昌黎) 당나라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의 호이다. 그는 〈원도(原道)〉, 〈논불골표(論佛骨表)〉 등을 지어서 유학을 옹호하고 불교를 배척하였다. 연적암(硯滴巖) 강릉 향교 옆에 있는 항아리 모양의 바위를 말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4》 추로(鄒魯) 풍속 추로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태어난 고향으로, 학문과 예악이 성대한 풍속을 이른다. 문묘(文廟)를……봉안하다 후창의 22대조 김여우(金汝盂)의 일을 읊은 것이다. 김여우의 다른 이름은 종우(宗盂), 시호는 충선공(忠宣公)이다. 원(元)나라로부터 문묘 제도를 도입하여 강릉(江陵)에 문묘를 처음 세웠다. 이 유문(儒門)의 공로로 부안의 도동서원(道東書院)에 배향되었다. 신복(臣僕)이……절의이니 원문의 망복(罔僕)은 망국(亡國)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켜 새 왕조의 신복이 되지 않는 절의를 이른다. 태사(太師)는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숙부로 태사 벼슬을 지낸 기자(箕子)를 이른다. 은나라가 망할 무렵 기자가 "은나라가 망하더라도 나는 주(周)나라의 신복이 되지 않으리라.[商其淪喪, 我罔爲臣僕.]"라고 하였다. 《書經 微子》 정문충공(鄭文忠公) 정몽주(鄭夢周, 1337~1392)로,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이다. 고려조의 충신으로서 훗날 조선의 태조가 된 이성계(李成桂)의 세력이 강해지자 이를 숙청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 신복(臣僕)이……귀향하다 후창의 17대조 김광서(金光敍)의 일을 읊은 것이다. 김광서는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세 형제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대의를 지키며 부안읍(扶安邑) 옹정(瓮井)에 살았다. 북쪽……일어나니 1467년(세조13) 함경도의 호족(豪族) 이시애(李施愛)가 북방 지역 사람의 차별 정책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반란, 이른바 '이시애의 난'을 두고 말한 것이다. 모당옹(慕堂翁) 홍이상(洪履祥, 1549~1615)으로,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인상(麟祥), 자는 군서(君瑞), 호는 모당,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서경덕(徐敬德)의 제자인 행촌(杏村) 민순(悶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고양의 문봉서원에 배향되었다. 월사옹(月沙翁) 이정귀(李廷龜, 1564~1635)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문장에 뛰어나 신흠(申欽), 장유(張維),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꼽힌다. 같은……법이니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같은 소리끼리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끼리 서로 찾는다.[同聲相應, 同氣相求.]"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의기투합하는 것을 뜻한다. 적현(赤縣) 중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국 시대 제(齊)나라 추연(鄒衍)이 중원(中原) 지방을 '신주적현(神州赤縣)'이라고 일컬은 데에서 유래하였다. 청구(靑丘)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우리나라가 중국의 동쪽에 있고 동방은 오행(五行)에 있어 청색이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의로운 군대 원문의 사직(師直)은 군사의 명분이 바르다는 말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12년에 "군사의 명분이 바르면 사기가 왕성하고, 명분이 없으면 사기가 쇠한다.[師直爲壯, 曲爲老.]"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교재(橋梓) 교목(橋木)과 재목(梓木)으로, 아버지와 아들, 부도(父道)와 자도(子道)를 의미한다. 주(周)나라 백금(伯禽)이 아버지인 주공(周公)을 찾아갈 때마다 회초리를 맞고 돌아왔으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다가, 현인(賢人)인 상자(商子)의 가르침을 듣고서, 남산의 양지에 의젓하게 있는 교목을 보고서 부도를 깨닫고, 음지에서 겸손하게 고개 숙인 재목을 보고서 자도를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說苑 建本》 간옹(艮翁)의……법이니 간옹은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가리킨다. 낙요명(樂要銘)은 간재가 김낙진을 위해 지어준 〈낙요재명(樂要齋銘)〉을 이른다. 《艮齋集 前編續 卷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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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군 원경 갑열 이 방문해주어 시를 주기에 차운하여 보여주다 4수 崔君元敬【甲烈】見訪有贈, 次韻示之【四首】 군과 처음 안 뒤로 이십 년이 흘렀는데 與君始識廿年多지금 새 시를 지어준 마음은 어떠한가 今贈新詩意如何감응하여 서로 통함이 신묘한 이치인데 感應相通神妙理한 마음만 온갖 화기를 헛되이 보내누나 一心虛送萬般和천추 뒤에 동생433) 무리를 다시 보게 되니 千秋復見董生儔주경야독하는 참된 사업을 남기누나 暮讀朝耕實業留바라건대 시종 한결같이 공력을 다 기울여 惟願加功終始一우리 무리에게 수치를 끼치지 않을 수 있기를 免敎吾黨或貽羞현인 되기 바라는 일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으니 希賢不易亦無難어렵건 쉽건 간에 어찌 감히 안일하게 지내랴 難易之間豈敢安단지 시비를 헤아리고 취사를 분간하고서 但問是非分取舍모두 바쁜지 한가한지 따지지 말고 즉시 행하라 卽行幷勿較忙閒군의 집안에 본디 의방434)의 규범 있으니 德門自有義方規나 같이 견문 없는 자를 어찌 의뢰하랴 如我無聞何所資학문이 끊어진 지금 거의 황년곡435)과 같으니 絶學殆同荒年穀좋은 종자 이루어 훌륭한 말을 길이 전할지어다 須成嘉種永傳辭 與君始識廿年多, 今贈新詩意如何?感應相通神妙理, 一心虛送萬般和.千秋復見董生儔, 暮讀朝耕實業留.惟願加功終始一, 免敎吾黨或貽羞.希賢不易亦無難.難易之間豈敢安?但問是非分取舍, 卽行幷勿較忙閒.德門自有義方規, 如我無聞何所資?絶學殆同荒年穀, 須成嘉種永傳辭. 동생(董生)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의 은사(隱士)인 동소남(董召南)을 가리킨다. 동소남은 동백산(桐柏山)에 은거하면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의(義)를 행하고 부모는 효로 잘 봉양하고 처자식은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당대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이렇게 훌륭한 동소남을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그를 칭송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동소남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小學 善行》 의방(義方) 의로운 방도라는 뜻으로, 자식을 가르칠 때 쓰는 방법이다. 《춘추좌씨전》 은공(隱公) 3년 조에, 위(衛)나라 장공(莊公)의 아들 주우(州吁)가 오만방자하게 굴자, 현대부(賢大夫) 석작(石碏)이 장공에게 "자식을 사랑하되 그를 의로운 방도로 가르쳐서 사악한 길로 빠져들지 않게 해야 한다.[愛子, 敎之以義方, 弗納於邪.]"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황년곡(荒年穀) 흉년에 얻기 어려운 곡식이라는 뜻으로, 세상을 구제할 만한 재능을 가진 드문 인재를 비유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예(賞譽)〉에 "세상에서 유문강을 풍년옥이라고 하고, 치공을 황년곡이라고 한다.[世稱庾文康爲豐年玉, 稚恭爲荒年穀.]"라고 하였다. 문강은 유량(庾亮)의 시호이고, 치공은 유익(庾翼)의 자로, 유량은 재상이 될 큰 기국을 지녔고, 유익은 세상을 구제할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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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鎭澤右謹言痛迫情由事民之慈母墳山在於泰仁南面盤龍村前麓而定山直守護累十餘年矣中間有勢者蔑視民之孤弱偸葬於靑龍白虎麓壓近之地者間或有之然而義理之爭訟之下渠輩皆爲掘去事蹟所載於 營邑文蹟與圖形紙也不意去月良中不知何許漢乘夜偸葬於民之慈母山白虎麓朴平仲李東英等五六塚已掘處世豈有如許昧法無據之人心乎不得不圍棘掘漑然後塚主現露乃已故前後文券帖連仰訴于 明政之下伏乞參商敎是後另加 嚴題行下使他官孤蹤之民無至呼冤之地千萬伏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己卯四月日官[着押][題辭]掘漑法外搜覓塚主更爲來訴卽當督掘向事卄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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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夫爲民者屈於訟▣…▣爲不遵 官令則必也兇獰人也民之親山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而古阜韓性浩乘夜犯▣…官 城主在在時屢次對卞而重落科則渠自萬端哀乞而今年二月內掘去之意成手記矣自今三月將盡終不掘去此無乃之故也不勝▣…連仰籲一一 參商敎是後同性浩發差捉致嚴囚督掘之地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乙未三月 日泰仁官[着押][題辭]旣有手記當此▣▣▣何故也…▣督掘次捉▣…狀二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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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재의 〈인일〉 시에 차운하다 次止齋人日韻 오늘은 인일519)이라 일컬을 만하니 今日可稱人日也내 옛말을 가지고 반복하여 본다오 我將古語反之看수만 군중이 전란을 만난 걸 어찌하리오 柰如萬衆遭兵火수천 가호가 기한에 시달림을 거듭 탄식하네 重歎千家迫飢寒웅략 있는 주운의 검을 의지한다는 말을 못 들었고520) 雄略未聞朱劍仗빼어난 인재인 공우의 관을 털어낼 희망이 끊어졌다오521) 秀才絶望禹冠彈천시가 예전과 같아 세상이 소란스러우니 天時如舊世擾攘이 좋은 날을 저버리는 게 어렵기만 하구나 負此良辰亦堪難 今日可稱人日也, 我將古語反之看.柰如萬衆遭兵火? 重歎千家迫飢寒.雄略未聞朱劍仗, 秀才絶望禹冠彈.天時如舊世擾攘, 負此良辰亦堪難. 인일(人日) 음력 1월 7일을 말한다. 1일은 닭, 2일은 개, 3일은 양, 4일은 돼지, 5일은 소, 6일은 말, 7일은 사람의 날이라 한다. 점치는 날 기후가 청명하고 온화하면 평안하고 풍년이 들며, 기후가 흐리거나 추우면 질병이 있고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荊楚歲時記》 웅략(雄略)……들었고 주운(朱雲)은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의 직신(直臣)이다. 주운이 성제를 만난 자리에서 상방(尙方)의 참마검(斬馬劍)을 빌려주면 성제가 총애하는 간신(奸臣) 장우(張禹)를 베겠다고 간언하였고, 성제가 노하여 끌어내라고 명하였는데도 끝까지 굽히지 않고 간쟁하였다는 고사가 있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漢書 卷67 朱雲傳》 빼어난……끊어졌다오 한(漢)나라 때 공우(貢禹)와 왕길(王吉)은 서로 아주 친한 친구 사이였던 때문에 왕길이 출사하면 공우 또한 자기도 응당 등용될 것을 믿고 관(冠)의 먼지를 미리 털어내어 출사를 준비했다는 고사가 있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漢書 卷72 王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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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홍 규상 을 애도하다 哀崔載洪【圭相】 아아 군의 효성은 하늘에 근본하니 嗟君之孝根於天비록 배우지 못했다 해도 나는 배웠다고 하겠네515) 雖曰未學吾謂學십 년 동안 병든 부친의 뜻과 몸을 잘 받들었고 病父十年適志體초상과 제사를 경건히 하여 다시 덕이 후하게 되었네516) 愼終追遠復厚德품삯을 먼저 지급하여 제실을 지었으니 傭金先下作祭室헌청의 창과 벽은 어찌 그리 밝고 깨끗한가 軒廳牕壁何明潔당상의 편모께서 근심이 없으셨으니 堂上偏慈無戚戚털끝만큼도 어기는 경우가 없었다오 一毫無或有違越근본이 서고 나면 도가 절로 생겨나니 本之旣立道自生언행이 대부분 은연중에 시의적절하였네 言動于時多暗合오늘날 세상에는 패악한 자식이 넘쳐나니 滔滔悖子今世界미친 듯이 날뛰어 방자하기 그지없다오 陸梁挑達恣活躍아아 군은 한창 때인데 하늘이 빼앗아 가니 嗟君盛年天奪去어찌 저 무리를 위해 원수를 갚듯이 했는가 胡爲此曹仇報復의심되고 한탄스러워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니 且疑且歎意莫定하늘에 묻고 크게 혼을 부르는 걸 내 하고자 하네 天問大招我欲作군의 가정에 준수한 두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聞君庭下秀二蘭어질고 효성스러워 훗날 부친의 자취를 이으리라 賢孝他日繼父迹최씨 집안이 대대로 창대할 것을 기약할 수 있으니 崔門世世期昌大이로써 황천에 있는 군의 넋을 위로하노라 以是慰君泉下魄 嗟君之孝根於天, 雖曰未學吾謂學.病父十年適志體, 愼終追遠復厚德.傭金先下作祭室, 軒廳牕壁何明潔?堂上偏慈無戚戚, 一毫無或有違越.本之旣立道自生, 言動于時多暗合.滔滔悖子今世界, 陸梁挑達恣活躍.嗟君盛年天奪去, 胡爲此曹仇報復?且疑且歎意莫定, 天問大招我欲作.聞君庭下秀二蘭, 賢孝他日繼父迹.崔門世世期昌大, 以是慰君泉下魄. 비록……하겠네 《논어》 〈학이(學而)〉에 "어진 이를 존경하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서 하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군주를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바치며, 붕우와 사귀되 말함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하겠다.[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초상(初喪)과……되었네 《논어》 〈학이(學而)〉에 "어버이의 초상을 신중하게 치르고 먼 선조의 제사를 정성껏 지내면 백성의 덕이 후함에 돌아갈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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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居民宋寅玉右謹言冤抑情由罪民曾祖母山在於治下南村面盤龍村前麓而不知何許人乘夜偸葬於至近之地已掘處而塚主尙不搜覓掘漑之意 嚴題敎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泰仁城主 處分丙申四月 日山在官[題辭]掘漑法外塚主期於搜覓後來告事初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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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村面進士民崔永大右謹言情由事近來偸葬之習間或有之豈有甚於興德七星洞李致大者乎去戊戌正月良南村面姑當山盤龍村西麓山地給價一千三百兩買得於全州宋柱埰處民之慈親葬用山矣世稱山運不合云故果然以他移葬後置標如前定山直守護矣千萬意外上項李致大偸葬於置標之上如是無據兇獰之者乎不勝憤寃玆以仰訴 洞燭敎是後所謂李致大發校捉上杖囚督掘以雪偸葬之習千萬伏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卯二月 日行官[着押][題辭]當照會捉致嚴査督掘向事卄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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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問邇來春和仕體萬重閤節均禧仰祝區區弟自初旬前窮卒以感祟彌留尙未見君悶人悶人耳就悚月玄里李春明卽弟親山守護之誼貴旣稔燭者而今因形便將欲移居龍積里矣其小作驛屯土必有運動者卽望須勿爲聽施必以月玄里梁鍾根變更報郡無至先機之歎千萬切仰切仰李旣移他故守護之節付托於梁氏矣以此另諒勿泛若何若何卽當面敍而無暇小隙玆以替仰耳餘爲此不備候上庚元月卄二日弟辛圭錫拜拜卽希賜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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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昨邂逅旋爲相先虞勝悵缺所示謹悉而昨者出勤時忘未袖矣今日因家事缺勤明日當手續以來爲計以此下諒如何如何餘姑不備更希仕安卽弟辛圭錫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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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詢葭露懷人仕候萬祉公務不甚惱勞仰溯仰溯弟狀省與役依遣而已耳就悚此呈松枝伐採願另飭担任寮使之添付調書卽爲提出切仰切仰耳餘擾不備候上九月十一日 弟辛圭錫拜拜圖面以不必要雖無之無妨云故近日此願提出者只以願書一枚提出而自郡依此受理矣諒之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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卽拜承審淸夏仕體候萬重慰溸且祝弟侍依役俾幸於分已耳示事謹悉而郡事之見敗亦是數奇所關也非戰之罪也在於令從叔丈其肯許此實情而深恕於兄我郡甚悶且歎出資金卽爲還推爲計而有當人印章持參後出給云此意轉告于令從叔丈使卽入往郡廳卽爲還推之地如何如何餘擾不備候謝五月六日弟辛圭錫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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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丑七月二十日 前手標右手標事當此窮節數多眷屬生活無路故右宅前陸拾兩每朔五分例得用爲遣限來四月晦內依數備報之意如是成標以此憑考事標主 林元汝[着名][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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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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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戌正月晦日 前手標右手標事切有緊用處右人前錢文二十兩每朔五分例得用累年矣定限來十二月二十日俱本利備報之意如是成標爲去乎日後若過限則以此手標憑考事手標主 朴德裕[着名]證筆 姜正心[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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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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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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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卯九月二十八日 前手標右手標事段切有急用處故右人前錢文㱏百貳拾十兩以每朔五分例得用是矣定限明年五月晦內幷本利沒數備報之意如是成標爲去乎日後若有過限是去等以此標憑考事標主 林在根 喪人證人 金希聖[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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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김주백 종락 에 대한 만사 挽金友周伯【宗洛】 어려서부터 사귀어 늙을수록 친해졌는데 小少爲交老益親열흘 동안 달려도 천리마를 따라잡기 어려웠네528) 難將十駕躡行塵두 대양의 격류 속에 우뚝한 지주와 같았고 二洋頹浪亭亭柱스승을 가까이 모시며529) 강직한 인품을 지녔다오 三席春風侃侃人백옥루에 틀림없이 기문이 지어졌겠거니와530) 白玉樓應文有記선비들은 학문하는 이웃이 없음을 어이하리오 靑衿士柰學無隣아아 내 오래 앓고 있지만 저승사자가 더디 오는데 嗟吾積病遲符到그 누가 다시 때때로 이내 몸을 돌아볼까 誰復時時顧此身 小少爲交老益親, 難將十駕躡行塵.二洋頹浪亭亭柱, 三席春風侃侃人.白玉樓應文有記, 靑衿士柰學無隣?嗟吾積病遲符到, 誰復時時顧此身? 열흘……어려웠네 《순자(荀子)》 〈수신(修身)〉에 "무릇 준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데, 노둔한 말도 열흘을 달리면 역시 따라잡을 수 있다.[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라고 하였는데, 자신은 노둔한 말에 상대는 천리마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스승을 가까이 모시며 원문의 삼석(三席)은 임금이나 신하, 스승과 제자 사이의 매우 가까운 거리를 말한다. 《禮記 文王世子》 춘풍(春風)은 좌상춘풍(座上春風)의 줄임말로, 봄바람처럼 온화한 스승을 의미한다. 《近思錄 卷14》 백옥루(白玉樓)에……지어졌겠거니와 백옥루는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의 누각을 말한다. 당(唐)나라 이상은(李商殷)이 지은 이하(李賀)의 전기(傳記)에, 하루는 이하의 꿈속에 붉은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옥황상제가 백옥루를 완성하고 당장 그대를 불러 기문(記文)을 짓게 하려 한다.'라고 하였는데, 그 꿈을 꾸고 나서 그가 곧 죽었다."라고 하였는데, 이를 원용한 것이다. 《李賀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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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꿈에서 조비 및 선고와 선비를 뵙지 못하다 不復夢見祖妣先考先妣 나는 기유년부터 余自屠維歲늘 꿈에서 벽봉옹을 뵈었고531) 每夢碧峰翁거듭 화를 당한 뒤의 꿈에서는 荐禍以後夢조비와 선비까지 함께 뵈었다오532) 祖妣先妣同평소의 그리움이 꿈이 되어 平生思爲夢밤마다 헛된 적이 없었는데 夜夜殆無空중풍의 병에 걸린 뒤로는 自嬰中風疾마음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니 心官職失供그리움이 지극하지 못한지라 惟其思不至이 때문에 꿈에서 만나지 못한다오 所以夢不逢마치 옛날 공중니께서 有若孔仲尼다시는 꿈에서 주공을 못 보셨던 것과 같다오533) 不復夢周公아아 너 소자는 嗟嗟汝小子나의 말을 귀담아들을지어다 我言留汝聰도를 행하려는 뜻은 늙으면 진실로 쇠하거니와 行道老固衰네가 어버이를 잊는 건 어찌 용납될 수 있으랴 汝親忘豈容너의 불효를 말하지 않고 不言汝不孝옛일을 끌어와 교묘히 둘러대는구나 引古巧彌縫이 말씀을 듣고 아무 대답도 못 드린 채 聞言無以答눈물만 줄줄 흘리며 실의에 빠졌다오 有淚徒龍鍾 余自屠維歲, 每夢碧峰翁.荐禍以後夢, 祖妣先妣同.平生思爲夢, 夜夜殆無空.自嬰中風疾, 心官職失供.惟其思不至, 所以夢不逢.有若孔仲尼, 不復夢周公.嗟嗟汝小子, 我言留汝聰.行道老固衰, 汝親忘豈容?不言汝不孝, 引古巧彌縫.聞言無以答, 有淚徒龍鍾. 나는……뵈었고 기유년(1909)년 1월 21일에 후창의 부친인 벽봉공(碧峰公) 김낙진(金洛進)이 별세하였다. 거듭……뵈었다오 병진년(1916)년 3월 13일에 후창의 조모인 영광 김씨(靈光金氏)가 별세하고, 3일 후인 16일에 모친 전주 최씨(全州崔氏)가 별세하였다. 마치……같다오 중니(仲尼)는 공자(孔子)의 자이다. 공자가 일찍이 말하기를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도다. 내 다시는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였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라고 하였다. 《論語 述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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