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전주 마을 집을 지나다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過全州村舍 聞讀書聲 어디선가 글 읽는 소리가 나니 何處讀書聲보내온 충고인 듯 나그네가 듣네 來砭客子聽처음엔 단산235)의 정상에서 初認丹山頂봉황새가 화락하게 운 줄 알았네 噦噦鳳鳥鳴다시 균천광악236)인 듯 기뻐했으니 再喜均天樂우르릉 천둥 소리 동정호에서 듣는 듯 轟轟聞洞庭때까치 소리237)가 천하에 가득하건만 鵙舌盈天下이 소리가 어찌해 생겨났는가 此聲胡爲生이레 동안 우레를 남겨 둔 것238) 留作七日雷하늘도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無乃天有情생각하니 옛날 주나라가 쇠퇴했을 때 念昔周衰日공자가 무성에서 빙그레 웃었네239) 夫子莞武城지금 세상은 또 어떤 세상인가 此世又何世마음과 눈이 깨어있지 않구나 有不心目醒사문이 어찌 끝내 망하겠는가마는 斯文豈終喪아마도 태평한 정치를 기다려야 하리 庶以待治平 何處讀書聲, 來砭客子聽.初認丹山頂, 噦噦鳳鳥鳴.再喜均天樂, 轟轟聞洞庭.鵙舌盈天下, 此聲胡爲生?留作七日雷, 無乃天有情?念昔周衰日, 夫子莞武城.此世又何世? 有不心目醒.斯文豈終喪? 庶以待治平. 단산(丹山) 봉황이 산다는 전설적인 산 이름으로, 단혈(丹穴)이라고도 한다. 《산해경(山海經)》 〈남산경(南山經)〉에 "단혈의 산에…새가 사는데, 그 모양은 닭과 같고 오색 무늬가 있으니, 이름을 봉황이라고 한다.[丹穴之山…有鳥焉, 其狀如雞, 五采而文, 名曰鳳皇.]"라는 구절이 보인다. 균천광악(鈞天廣樂) 천상의 음악을 말한다.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이 병이 들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 말하기를 "내가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 갔는데 심히 즐거웠으며 신선들과 균천광악을 들었다." 하였다. 《列子 周穆王 註》 때까치 소리 다른 나라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말한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지금 남만의 때까치 소리를 하는 사람의 말이 선왕의 도가 아니다.〔今也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라는 말이 나온다. 이레……것 복괘의 괘사(卦辭)에 "그 도를 반복하여 7일 만에 와서 회복하니, 가는 것이 이로우니라.〔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가……웃었네 공자께서 자유(子游)가 다스리는 무성(武城)에 가서 현가(弦歌)를 들으시고 빙그레 웃으셨다.[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는 일을 말한다.《論語 陽貨》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부질없이 읊다 謾吟 성도에 팔백 그루 뽕나무도 심지 못했고317) 未種成都八百桑집에 간직한 것은 적적하여 책상 하나네 家藏寂寂一書床달빛이 집을 비춰 정다운 벗이 되어주고 月光入戶爲情友솔잎은 산을 채워 양식 걱정은 아니하네 松葉盈山不慮粮일이 없을 때도 도리어 항상 두려워하고 無事還能常惕惕곤궁하게 살아도 다시 절로 양양318)하네 居窮亦復自陽陽이내 생애의 뜻과 사업이 이같을 뿐인데 此生志業如斯已누가 허명으로 분수 밖의 일을 취하리오 誰遣虛名取濫觴 未種成都八百桑, 家藏寂寂一書床.月光入戶爲情友, 松葉盈山不慮粮.無事還能常惕惕, 居窮亦復自陽陽.此生志業如斯已, 誰遣虛名取濫觴. 성도에……못했고 유산으로 남길 만한 넉넉한 재산이 없다는 뜻이다. 제갈량(諸葛亮)이 죽음에 임해 촉한(蜀漢)의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올린 표(表)에서 "성도에 뽕나무 800그루와 척박한 땅 15경(頃)이 있으니 자손들의 의식은 절로 충분합니다.[成都有桑八百株, 薄田十五頃, 子孫衣食自有餘饒.]"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三國志 卷35 諸葛亮傳》 양양 원문의 '양양(陽陽)'은 '양양(揚揚)'과 같은데, 득의(得意)한 모습이다. 《시경》 〈군자양양(君子陽陽)〉에 "군자가 양양하여, 왼손에 생황을 들고, 오른손으론 날 방으로 부르니, 아 참으로 즐겁네.[君子陽陽, 左執簧, 右招我由房, 其樂只且.]"라고 하였다. 주희 집전에 "양양은, 득의한 모습이다.[陽陽,得志之貌.] 하였다."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외종형 김경문 태현 을 애도하다 ○무자년(1948) 悼外從兄金景文【泰鉉○戊子】 함께 나고 함께 죽는 것은 俱生與俱死오직 가난일 뿐이라네 惟是一貧字효성과 공손은 일신의 직분이요 孝恭一身職굳세고 깨끗함은 평생의 뜻일세 介潔平生志집안에 혈혈단신인 아들이 있는데 家有孑孑子나가서는 그와 견줄 사람이 없다네 出無一人比공의 행적이 향리에 묻히니 足跡埋鄕里그 이름을 그 누가 다시 알리오 姓名誰復識한 번 황천에 들어간 뒤로 一入黃泉後염두에 두는 사람이 전혀 없구나 無人念頭置나 홀로 애통해하기를 마지않는 건 余獨慟不已참으로 공의 특출함 때문이라네 良亦祗以異공의 솜 속의 쇠219) 같은 성품을 흠모하니 欽公綿中鐵죽어도 줏대 없이 굽실거리지 않았고 死不作骫骳공의 적자의 마음220)을 사랑하니 愛公赤子心살아서 교활한 꾀를 부리지 않았다오 生不作巧智어찌 단지 중표221) 사이일 뿐이었겠는가 豈適以中表친형제처럼 여겨 우애가 두터웠네 視若親兄誼일찍이 친애하는 정을 느꼈으니 曾經親愛情말도 하기 전에 먼저 눈물이 쏟아지네 未言先傾淚슬픈 마음이 너무나 심한지라 還恐悲太劇애사를 지으려다 그만둘까 염려된다오 欲題旋自閟 俱生與俱死, 惟是一貧字.孝恭一身職, 介潔平生志.家有孑孑子, 出無一人比.足跡埋鄕里, 姓名誰復識?一入黃泉後, 無人念頭置.余獨慟不已, 良亦祗以異.欽公綿中鐵, 死不作骫骳.愛公赤子心, 生不作巧智.豈適以中表? 視若親兄誼.曾經親愛情, 未言先傾淚.還恐悲太劇, 欲題旋自閟. 솜 속의 쇠 원문의 면중철(綿中鐵)은 용면과철(用綿裹鐵), 과철이면(裹鐵以綿), 이서과철(以絮裹鐵)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모두 외강내유(外剛內柔)의 성품을 비유한 말이다. 적자(赤子)의 마음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여 거짓이 없는 본연의 마음을 이른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대인이란 적자의 마음을 잃지 않은 자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하였다. 중표(中表) 내외종(內外從) 사촌 형제를 뜻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최정석에게 지어 주다 贈崔正錫 군의 객지 생활이 너무 청한함을 걱정하니 憫君旅況太淸寒찬 구들방과 거친 음식이 어찌 어렵지 않으랴 冷突粗飯豈不難두 끼로 죽을 나눠 먹었던 범로248)의 고사를 들었고 粥畫兩時聞范老눈 덮여 봉해진 한 방에 누워 있던 원안249)을 생각하네 雪封一室憶袁安옥성시킴이250) 어찌 하늘에게 아무 뜻이 없으랴 玉成豈是天無意재주 쓰임을 장차 사람들이 통쾌하게 보리라 器用應將人快看늙은이의 복 많음을 스스로 축하하노니 自賀衰翁福分好이렇게 수재를 얻어 기쁨으로 삼았구나 得玆秀士作欣歡 憫君旅況太淸寒, 冷突粗飯豈不難?粥畫兩時聞范老, 雪封一室憶袁安.玉成豈是天無意? 器用應將人快看.自賀衰翁福分好, 得玆秀士作欣歡. 두……범로(范老) 범로는 소범 노자(小范老子)로 불렸던 송(宋)나라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으로, 자는 희문(希文),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범중엄이 젊은 시절에 친구 한 명과 함께 산사(山寺)에 들어가 3년 동안 학문에 힘썼는데, 단지 좁쌀 두 되를 삶아 죽 한 그릇을 쑤어 놓고는 하룻밤이 지나 마침내 죽이 굳으면 칼로 나눠 네 덩이를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두 덩이씩 취해 먹었던[惟煮粟米二升, 作粥一器, 經宿遂凝, 以刀畫爲四塊, 早晚取二塊.] 고사가 있다. 《五朝名臣言行錄 卷7 參政范文定公》 눈……원안(袁安) 원안은 후한 화제(和帝) 때의 충신으로, 효성과 청렴으로 추천되어 초군 태수(楚郡太守)를 거쳐 정승을 지냈다. 원안이 일찍이 미천했을 때 낙양(洛陽)에 큰 눈이 내렸다. 낙양 영(洛陽令)이 민가를 순행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을 치우고 나와서 걸식(乞食)을 하고 있는데, 원안의 집만 유독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사람을 시켜 눈을 치우고 들어가 보았더니 원안이 방 안에 태연히 누워있는 것이었다.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묻자, "큰 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는 때에 남에게 밥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이에 낙양 영이 원안을 어진 사람이라 하여 효렴(孝濂)으로 천거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게 한 고사가 있다. 후에 이를 '원안고와(袁安高臥)'라 하여 선비가 곤궁함에 처해서도 굳게 지조를 지키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後漢書 卷45 袁安列傳》 옥성(玉成)시킴이 옥성은 사람을 옥처럼 훌륭히 완성시켜 준다는 뜻이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빈천과 우척은 너를 옥처럼 다듬어 완성시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무더위 苦熱 돌도 녹고 또 쇠도 녹는 때를 당하니 時當石爍又金流무더위 속에 유인의 머리가 다 희었다오 苦熱幽人白盡頭두자의 높은 누대는 눈 위를 밟는 듯하고254) 杜子高樓如踏雪청련의 큰 부채는 가을인 줄 의심하였네255) 靑蓮大扇却疑秋인연 있다면 어찌 천금 주고 사는 걸 아끼랴 有緣何惜千金買계책 없으니 한갓 시름 하나만 더할 뿐일세 無計徒添一種愁후회하노니 금년 정월 대보름날에 悔不今年上元節더위 파는256) 아이들의 노래를 함께 읊지 않음을 共吟賣暑小兒謳 時當石爍又金流, 苦熱幽人白盡頭.杜子高樓如踏雪, 靑蓮大扇却疑秋.有緣何惜千金買? 無計徒添一種愁.悔不今年上元節, 共吟賣暑小兒謳. 두자(杜子)의……듯하고 두자는 당(唐)나라 시인인 두보(杜甫)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이다. '높은 누대'는 두보의 시 〈중야(中夜)〉에 "깊은 밤 강산은 고요한데, 높은 누대에서 북신을 바라본다.[中夜江山靜, 危樓望北辰.]"라고 한 시구 가운데 위루(危樓)를 두고 이렇게 말한 듯하다. 즉 높은 누대가 하얀 구름 위로 솟아 있어 마치 눈 위를 밟고 있는 듯하다는 뜻이다. 청련(靑蓮)의……의심하였네 청련(靑蓮)은 당나라 시인인 이백(李白)으로,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큰 부채'는 이백의 시 〈여름날 산중에서[夏日山中]〉에 "백우선을 게을리 부치며, 푸른 숲속에 벗은 채로 있다오.[嬾搖白羽扇, 躶體靑林中.]"라고 한 시구 가운데 흰 깃털로 장식한 부채인 '백우선(白羽扇)'을 두고 이렇게 말한 듯하다. 즉 큰 부채를 부치니 가을바람처럼 시원한 바람이 일어 마침 가을인 줄 의심했다는 뜻이다. 더위 파는 옛날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흔히 아이들이 행했던 '더위팔기〔賣暑〕'라는 민속놀이를 가리킨다. 이날 아침에 서로 상대의 이름을 불러서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한다. 상대가 대답을 하지 않고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하면 더위를 팔지 못하고 도리어 내가 상대의 더위를 사는 꼴이 된다. 더위를 많이 팔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지낼 수가 있다고 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배 철원236)행 裵哲媛行 배부인이여 진정한 철원이로다 裵夫人眞哲媛하늘이 정해준 윤 의사의 훌륭한 배필이로세 天定良配尹義士의사가 순국한 뒤 더욱 스스로 면려하여 義士沒益自勵시부모를 봉양하고 두 아들을 가르쳤다오 養舅姑敎二子갑자기 부친의 병세를 듣고 가서 살펴보니 忽聞父病往省視증세가 나쁘지 않은지라 어찌 기쁘지 않으랴 證不無幸豈無喜이미 왔고 또 여기에 머물 만하다는 旣來且可此留宿제부의 말이 참으로 은근하였지만 諸父之言良勤止부인은 지금 미망인의 신세로 今爲未亡人오직 몸가짐을 삼가야 하는데 惟當愼持己부친에게 더 이상 근심 없으니 父兮且無虞딸은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고 답하였네 女當歸吾里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뜻을 굳혀 言訖卽決意결연히 일어나 곧바로 떠났다오237) 介然作不俟아아 부인의 말과 행실은 嗟哉夫人言與行참으로 음 가운데를 행하나 홀로 돌아온 것이로다238) 中行獨復允是여염 사이에서 생장했다고 들었는데 聞是生長閭閻間어디에서 왔기에 이와 같단 말인가 何處得來乃如此윤 의사와 배 철원이 부부가 된 건 尹義士裵哲媛是夫是妻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맺어준 것이로세 乃天所爲非人爾 裵夫人眞哲媛, 天定良配尹義士.義士沒益自勵, 養舅姑敎二子.忽聞父病往省視, 證不無幸豈無喜?旣來且可此留宿, 諸父之言良勤止.今爲未亡人, 惟當愼持己.父兮且無虞, 女當歸吾里.言訖即決意, 介然作不俟.嗟哉夫人言與行, 中行獨復允是.聞是生長閭閻間, 何處得來乃如此?尹義士裵哲媛是夫是妻, 乃天所爲非人爾. 배 철원(裵哲媛) 윤봉길(尹奉吉)의 아내인 배용순(裵用順, 1907~1988)으로, 철원은 명철(明哲)한 부인이라는 뜻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1922년 16세에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윤봉길과 결혼하였다. 슬하에 아들 윤종(尹淙), 윤담(尹淡)을 두었다. 남편 윤봉길이 1932년 순국한 뒤 종부로서 50여 년간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자식을 키우며 가정을 지켰다. 일어나 곧바로 떠났다오 원문의 작불사(作不俟)는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君子見幾而作, 不竢終日.]"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음(陰)……것이로다 《주역》 〈복괘 육사(六四)〉의 효사(爻辭)로, 소인(小人)들이 득세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외롭게 분투하며 바른 도(道)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산에 오르다 登高 노년에 옛 산천을 다시 보노라니 衰年復見舊山川특별한 풍광이 눈앞에 들어오누나 別有風光入眼前강토는 어이하여 남북으로 찢겼는가 疆土如何南北裂전란으로 또다시 아시아와 유럽이 연합하도다 干戈又是亞歐連바다 너머 일천 봉우리엔 청제241)가 돌아오고 千峰海外歸靑帝인간 세상 일만 촌락엔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네 萬落人間起暮煙산에 올라 한 곡조 부르기로 벗들과 약속하니 約伴登高歌一曲지음이 다시 들새 통해 소식을 전해 오는구나 知音更得野禽傳좋은 술이 동이에 가득하고 안주도 소반에 그득한데 盈樽旨酒滿盤肴자리 위에 의관 갖춘 자들은 모두 옛 친구로구나 座上衣冠盡舊交봄이 지난 뒤라 낙화가 붉은 싸락눈을 이루고 春後落花紅作霰비가 내린 뒤라 방초가 교외에 푸르게 펼쳐지네 雨餘芳草綠鋪郊나라는 이미 새로운 운수가 돌아왔건만 國家已得回新運세도는 어이하여 밑바닥까지 떨어졌는가 世級胡然降末梢온종일 기우에서 풍영하는 흥취242)를 즐기고 盡日沂雩風詠趣돌아와 남은 흥취를 한 서재에 간직한다오 歸藏餘興一書巢 衰年復見舊山川, 別有風光入眼前.疆土如何南北裂, 干戈又是亞歐連.千峰海外歸靑帝, 萬落人間起暮煙.約伴登高歌一曲, 知音更得野禽傳.盈樽旨酒滿盤肴, 座上衣冠盡舊交.春後落花紅作霰, 雨餘芳草綠鋪郊.國家己得回新運, 世級胡然降末梢?盡日沂雩風詠趣, 歸藏餘興一書巢. 청제(靑帝) 봄을 주관하는 신이다. 오행에서 동방은 목(木)에 속하는데, 목은 봄과 청색을 상징하므로. 봄을 주관하는 신을 동황(東皇), 동제(東帝), 청황(靑皇), 청제 등으로 불렀다. 기우(沂雩)에서 풍영(風詠)하는 흥취 기우는 기수(沂水)와 무우(舞雩)를 가리키고, 풍영은 바람을 쐬며 시를 읊조린다는 뜻으로,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즐기는 흥취를 이른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稽顙言久阻悵耿之際先施惠函慰荷萬千可知不遐之情也謹詢老炎尙劇仕體萬旺閤覃均謐仰溸且祝客年弄璋之慶仰賀仰賀罪弟頑命苟支而扶餘安候頻頻承珍新寓凡百萬不成樣可悶可悶第貴邊農形似未免歉而此近亦可謂大無到處皆然樣將奈何咄嘆之餘略此不備謝疏七月七日罪弟金敎彬謝疏再昨日過行先舍伯回甲茶禮悲感之懷益深如新已耳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취성재88)를 세운 지 두 번째 주갑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시 병소서 ○병술년(1946) 聚星齋再度周甲紀念詩【幷小序○丙戌】 부안(扶安)의 석동산(席洞山)에 있는 우리 선조(先祖) 군사공(郡事公)89) 묘소 아래에 예전에는 덕성암(德星菴)이 있었다가 화재를 만나 소실되어 취성재(聚星齋)를 중건하였다. 전후로 지은 이름은 모두 석천(石川) 임 선생(林先生)90)의 '김씨 집안에 덕성이 모였네.[金門聚德星]'91)라는 시구(詩句)의 뜻을 취한 것이다. 취성재를 상량(上樑)한 때가 인릉(仁陵)92) 병술년(1826, 순조26) 2월에 있어 121년이 지났다. 지금 두 번째 주갑(周甲)을 맞이하여 비록 성대한 모임을 가져 잔치를 베풀지 못한다 해도 어찌 기념하고 싶은 감회야 없을 수 있겠는가. 이에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여러 종족(宗族)과 함께 시를 읊어 재실의 고사(故事)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유조엄무(柔兆閹茂)93) 중춘(仲春) 초하루에 군사공(郡事公)의 17세손 택술(澤述)은 삼가 쓴다.재실을 지은 해의 육갑이 거듭 돌아오니 六甲重周築室年덕성의 상서로운 빛이 갑절로 찬란하구나 德星瑞彩倍煌然시운이 중흥으로 돌아온 청구의 날이요 運回興復靑邱日절서가 온화함에 속하는 이월의 하늘일세 序屬溫和二月天진씨 정자94)만 어찌 꼭 예로부터 명성이 최고라 하리오 豈必甄亭名擅古위씨 모임95)만 굳이 전대에 가장 아름답다고 할 것 없다오 不須韋會美專前끝없는 서쪽 바다에 봉산96)이 우뚝 솟았으니 西溟無盡蓬山屹이 재실을 잘 보호하여 세상에 길이 전하리라 護得楣樑永世傳 扶安之席洞山我先祖郡事公墓下, 舊有德星菴, 而遭回祿, 重建聚星齋, 前後命名, 皆取林石川先生"金門聚德星"之詩義也.聚星抛樑之時, 在仁陵丙戌二月, 而爲百二十一年矣.今當再度周甲也, 雖不能盛會宴飮, 烏得無紀念之感哉? 玆庸構成一韻, 願與諸宗族聯賦, 以備齋中故事云爾.柔兆閹茂仲春初吉, 郡事公十七世孫澤述謹識.六甲重周築室年, 德星瑞彩倍煌然.運回興復靑邱日, 序屬溫和二月天.豈必甄亭名擅古, 不須韋會美專前.西溟無盡蓬山屹, 護得楣樑永世傳. 취성재(聚星齋)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 남동쪽에 있는 부안 김씨(扶安金氏)인 군사공(君事公) 김광서(金光敍) 묘소의 재실(齋室)이다. 1819년(순조19)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되고 1826년(순조2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군사공(郡事公) 후창의 17대조가 되는 김광서(金光敍)를 가리킨다. 그는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예로, 고려 말에 지고부군사공(知古阜郡事公)을 지냈다. 임 선생(林先生) 임억령(林億齡, 1496~1568)으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대수(大樹)호는 석천(石川)이다. 박상(朴祥)의 문인이다. 1545년(명종 즉위년) 금산 군수 때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소윤(小尹)인 동생 백령(百齡)이 대윤(大尹)의 선배들을 내몰자 자책을 느껴 벼슬을 사직하고 해남에 은거하였다. 문집에 《석천시집(石川詩集)》이 있다. 김씨……모였네 임억령이 일찍이 부안 김씨가 살고 있는 옹정리(瓮井里)를 찾아가 〈만가(挽歌)〉라는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 시에 "옹정 마을엔 군자가 많고, 김씨 집안엔 덕성이 모였네.[瓮井多君子, 金家聚德星.]"라는 시구에서 보인다. 다만 임억령의 문집에 실린 시에는 김문(金門)의 문(門)이 가(家)로 되어 있다. 《石川詩集 卷3 挽歌》 인릉(仁陵) 조선 제23대 왕 순조(純祖)의 능호(陵號)이다. 유조엄무(柔兆閹茂) 병술년(1946)을 가리킨다. 유조는 고갑자(古甲子)로 천간(天干) 가운데 병(丙)에 해당하고, '엄무'는 고갑자로 지지(地支) 가운데 술(戌)에 해당한다. 진씨(甄氏) 정자(亭子) 송(宋)나라 때 서주(徐州) 사람인 진씨(甄氏)가 부모의 장례를 지낸 뒤 그 곁에 사정(思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돌아가신 부모를 사모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진사도(陳師道)의 〈사정기(思亭記)〉에 보인다. 여기서는 후창의 부안 김씨(扶安金氏) 집안에서 선조 김광서(金光敍)를 추모하고 제향하기 위해 지은 취성재에 비겨 말한 것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思亭記》 위씨(韋氏) 모임 당(唐)나라 때 명문가였던 위씨(韋氏)들이 종회법(宗會法)을 만들고 화수회(花樹會)를 결성하여 원근의 친족들이 자주 꽃나무 아래에 모여서 술을 마시며 친목을 다진 고사가 있다. 이로 인해 종친회를 화수회라고 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잠삼(岑參)의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 시에 "그대의 집 형제들을 당할 수 없나니, 열경과 어사와 상서랑이 즐비하구나. 조회에서 돌아와 꽃나무 아래 늘 모이니, 옥 항아리에 꽃이 떨어져 봄 술이 향기롭네.[君家兄弟不可當, 列卿御使尙書郞. 朝回花底恒會客, 花撲玉缸春酒香.]"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199 韋員外家花樹歌》 봉산(蓬山)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의 봉래산(蓬萊山)을 가리킨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신원석이 김염재가 부쳐준 시를 보여주기에 차운하여 지어 주다 申元石示以金念齋所寄詩 次韻以贈 어린 나이에 물고기보다 학문을 더 좋아하니109) 童年嗜學甚於魚멀리서 쇠한 늙은이를 찾아와 고서를 읽는구나 遠訪衰翁讀古書아아 이내 몸은 너에게 모범되기 어려우니 嗟我難能模範汝단지 성현을 스승 삼아 편안히 거할지어다 直師賢聖作安居학량110)의 은혜로 궁한 물고기 신세111)를 구제해주니 學粮惠澤救窮魚김씨 집안의 높은 풍도는 특별히 기록할 만하네 金氏高風可特書세상에 이러한 훌륭한 일을 보기 드무니 罕見世間如許事독실하게 힘쓰고 편안히 지낼 겨를 없어야 하리 正宜慥慥不遑居풍협112) 잡고 생선 없다고 한탄하지 않나니 不將馮鋏嘆無魚본래부터 시렁 위에 천편의 책이 있다오 自有千篇架上書객을 대접할 때 좋아하는 바를 알아야 하니 待客要須知所好주인이 어찌 꼭 가난한 생활을 부끄러워하랴 主人何必愧貧居천리 밖 두류산에서 안어113)가 소식 전해오니 千里頭流來鴈魚바로 한 통의 진중한 염재의 편지일세 一封珍重念齋書어진 스승을 기대하니 어찌 저버릴 수 있으랴 賢師期待何能負훗날에 응당 오하에 사는 사람은 아니리라114) 他日應非吳下居홀연히 물고기가 변하여 용 되기115) 어렵나니 難得成龍忽變魚여유 있게 다섯 수레 책116)을 읽어야 한다오 優遊須讀五車書천추의 맹성117)께서 밝은 가르침을 남기셨으니 千秋孟聖留明訣조예가 깊으면 그 거처함을 편안히 할 수 있다고118) 深造可能安厥居 童年嗜學甚於魚, 遠訪衰翁讀古書.嗟我難能模範汝, 直師賢聖作安居.學粮惠澤救窮魚, 金氏高風可特書.罕見世間如許事, 正宜慥慥不遑居.不將馮鋏嘆無魚, 自有千篇架上書.待客要須知所好, 主人何必愧貧居?千里頭流來鴈魚, 一封珍重念齋書.賢師期待何能負? 他日應非吳下居.難得成龍忽變魚, 優遊須讀五車書.千秋孟聖留明訣, 深造可能安厥居. 물고기보다……좋아하니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의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리를 택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인데,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다. 학량(學粮) 학업을 하는 데 필요한 양식 또는 학사(學舍)의 운영 자금을 이른다. 궁한 물고기 신세 학철부어(涸轍鮒魚)의 고사에 나오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얕은 물속에서 말라 헐떡이는 붕어와 같은 신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곤경에 처해 다급한 사람을 비유한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수레바퀴에 고인 물속에서 다 죽어 가는 물고기가 약간의 물만 주면 살겠다고 애원을 하면서, 만약 시기를 놓치면 건어물 가게에서나 자기를 찾게 될 것이라고 탄식했다는 고사가 있다. 풍협(馮鋏)……않나니 풍협(馮鋏)은 풍환(馮驩)의 칼이라는 뜻이다. 전국 시대에 풍환이 일찍이 제나라 맹상군(孟嘗君)의 문객(門客)이 되었는데, 맹상군이 후하게 대우하지 않고 좌우로부터 천시를 받자, 풍환이 불만을 품고 손으로 칼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긴 칼아, 돌아가야겠다. 먹자 해도 생선이 없구나. 긴 칼아, 돌아가야겠다. 밖에 나가려도 수레가 없구나.[長鋏歸來乎! 食無魚; 長鋏歸來乎! 出無車.]"라고 하니, 맹상군이 좌우에게 명하여 풍환의 요구를 들어주게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안어(鴈魚) 기러기와 물고기가 서신을 대신 전한다는 데서, 일반적으로 편지를 뜻한다. 물고기는, 《문선(文選)》의 고악부(古樂府)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 "먼 곳에서 손님이 와 두 마리 잉어를 주었는데, 아이를 시켜 요리했더니 배 속에서 비단 편지가 나왔네.[客從遠方来, 遺我䨇鯉魚.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고, 기러기는 《한서(漢書)》 〈소무전(蘇武傳)〉에 흉노에 억류된 소무의 소식이 적힌 비단이 한 소제(昭帝)가 잡은 기러기발에 묶여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오하(吳下)에……아니리라 사람의 식견과 학문이 과거에 비해 몰라보게 진보함을 비유한 말이다. 오(吳)나라 여몽(呂蒙)이 처음에 무식하였는데, 손권(孫權)이 그를 군정(軍政)에 참여시키면서 독서할 것을 권하자, 그 후로 여몽이 열심히 공부하여 학식이 높아졌다. 뒤에 노숙(魯肅)이 여몽과 담론하다가 학식이 몰라보게 진보한 것에 탄복하면서 "나는 그대가 무사(武事)만 아는 줄로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건대 학식이 깊고 넓으니 더 이상 오하(吳下)의 아몽(阿蒙)이 아니다.〔吾謂大弟但有武略耳 至于今者 學識英博 非復吳下阿蒙〕"라고 칭찬하니, 여몽이 "선비는 사흘만 헤어져 있어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되는 법이다.〔士別三日 卽更刮目相對〕"라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54 吳書 呂蒙傳》 오하(吳下)는 소주(蘇州)를, 아몽(阿蒙)은 여몽을 가리킨 말이다. 물고기가……되기 황하(黃河)의 상류에 있는 용문(龍門)의 폭포수는 세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강해(江海)의 큰 물고기 수천 마리가 그 밑에 모였다가 그 폭포를 뛰어오르는 놈은 변하여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이 고사는 전하여 과거(科擧)에 급제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다섯 수레 책 원문의 오거서(五車書)는 다섯 수레에 쌓을 정도로 많은 서책이라는 말로 수많은 서책이나 박식함을 뜻하는데, 《장자(莊子)》 〈천하(天下)〉에 "혜시의 학문은 다방면이어서 그 서책이 다섯 수레에 쌓을 정도이다.[惠施多方, 其書五車.]"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맹성(孟聖)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조예가……있다고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함이 깊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하여 씀에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득하고자 하는 것이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공주 제천의 임간송134) 호철 을 방문하다 ○9수 公州濟川訪林澗松【浩喆○九首】 독락정135)에서 구산옹136)을 함께 모신 지가 獨樂亭中陪臼山어느덧 사십 칠년 세월이 흘렀구나 忽焉四十七年間어찌 생각했으랴 봄바람 속에 함께 앉았던 이들이 豈料同坐春風伴오늘 아침엔 둘 다 늙은 얼굴로 서로 마주할 줄을 相對今朝兩老顔용사의 액137)을 고하매 갑자기 태산이 무너지니138) 龍蛇告厄遽頹山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양쪽 다 비통하였네 私痛公悲徹兩間현재 무함하는 무리들이 어지러이 날뛰니 脚下紛紛誣衊輩훗날 저승에서 뵐 때 무슨 면목으로 대하리오 他年歸拜作何顔근심의 끝이 우뚝한 남산과 가지런할 뿐만 아니니139) 憂端不啻屹南山목숨 바쳐 스승께 보답함이 우리가 어찌 다르리오 致死報師吾豈間평생 밝게 분변하는 뜻이 한결같고 지성스러우니 斷斷生平明辨志위로 아래로 부끄러울 게 없어140) 당당히 고개 든다오 無慙俯仰正擡顔천리 흐르는 시냇물이 깊은 산중에서 나오고 澗流千里出深山축축 늘어진 소나무가 눈 속에 우뚝 서 있네 落落蒼松立雪間지조와 절개가 원래 저와 같이 드높으니 志節元來高似許마침내 부헌이라 쓴 재실 편액을 본다오 孚軒終見作齋顔구산옹이 부헌이란 이름을 지어 주셨으니141) 嘉錫孚軒自臼山초당의 현판 사이에서 광채가 나는구나 草堂生色揭楣間교화가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치는 날을 기다려야142) 待看化及豚魚日비로소 사문에 부응하여 공안143)을 기약할 수 있다오 始副師門期孔顔장대한 뜻이 처음엔 아홉 길 산144)을 기필했는데 壯志初期九仞山은근한 가르침을 또한 함장145) 사이에서 받았다오 叮嚀亦受丈函間지금 와서 결국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今來竟作如何狀후창이란 두 자가 너무도 낯부끄럽게 하는구나146) 二字後滄堪愧顔돌아가는 길에 아스라한 상당산147)을 바라보니 歸路迢迢上黨山석별의 정이 아득히 운수148) 사이로 들어가누나 別懷杳入樹雲間집이 멀어서 생각만 할 뿐이라고149) 하지 마소 莫言室遠相思地만년의 절조를 서로 닦아 다시 만나야 하니 晩節交修更接顔백발에 푸른 눈으로150) 서로 만난 옛 사림의 벗이니 白髮靑眸舊士林일찍이 근심이 많았건만 아직도 시름 속에 있구나 曾經憂慮尙欽欽백육 만나151) 도를 잃으니 자신을 해친 듯하였고 道喪百六如戕己삼천리 강토를 회복하니 마음이 다소 위로된다오 疆復三千稍慰心목석 사이에 은거하며 맑아지기를 기다릴 만하니 且可待淸居木石시속과 섞여 살며 금란의 교분152)을 말한 필요 없다오 未須混俗說蘭金서풍은 날마다 수시로 성대하게 불어오는데 西風日競無時定어찌하면 제민153)들이 바른 복식으로 돌아오려나 安得齊民返正襟사문에 아무아무 자들이 수풀처럼 많지만 斯文某某積如林사람에게 흠모의 정을 생기게 하기 어렵구나 難得令人起景欽책방과 같고 자잘한 말을 하면서도154) 부끄러움이 없었고 書肆說鈴曾沒恥높은 관 넓은 띠를 착용하면서155) 도리어 마음을 속이누나 峨冠博帶反欺心아우와 형이 어찌 차마 창칼을 수선하면서156) 弟兄何忍修戈戟의리와 이욕을 모두 잊은 채 쇠와 금을 분변하랴 義利都忘辨鐵金다만 자신이 외려 그 속에 있을까 염려스러우니 但恐自家還在裡은나라 거울157)을 가지고 내 옷깃을 여며야 하리라 可將殷鑑整吾襟 獨樂亭中陪臼山, 忽焉四十七年間.豈料同坐春風伴, 相對今朝兩老顔?龍蛇告厄遽頹山, 私痛公悲徹兩間.脚下紛紛誣衊輩, 他年歸拜作何顔?憂端不啻屹南山, 致死報師吾豈間?斷斷生平明辨志, 無慙俯仰正擡顔.澗流千里出深山, 落落蒼松立雪間.志節元來高似許, 孚軒終見作齋顔.嘉錫孚軒自臼山, 草堂生色揭楣間.待看化及豚魚日, 始副師門期孔顔.壯志初期九仞山, 叮嚀亦受丈函間.今來竟作如何狀, 二字後滄堪愧顔.歸路迢迢上黨山, 別懷杳入樹雲間.莫言室遠相思地, 晩節交修更接顔.白髮靑眸舊士林, 曾經憂慮尙欽欽.道喪百六如戕己, 疆復三千稍慰心.且可待淸居木石, 未須混俗說蘭金.西風日競無時定, 安得齊民返正襟?斯文某某積如林, 難得令人起景欽.書肆說鈴曾沒恥, 峨冠博帶反欺心.弟兄何忍修戈戟, 義利都忘辨鐵金?但恐自家還在裡, 可將殷鑑整吾襟. 임간송(林澗松) 임호철(林浩喆)로,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경선(敬善), 호는 간송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後滄集答 卷6 答林敬善》 독락정(獨樂亭) 공주(公州)의 동쪽 30리쯤 되는 삼기촌(三岐村)에 있는 정자이다. 임호철의 선조인 임목(林穆, 1371∼1448)이 정자를 건립하고, 송대(宋代)의 명상(名相) 사마광(司馬光)의 원명(園名)인 독락(獨樂)을 본떠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금강팔경(錦江八景)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질 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7 忠淸道 公州牧》 구산옹(臼山翁) 간재(艮齋) 전우(田愚)로, 구산은 그의 호 가운데 하나이다. 용사(龍蛇)의 액(厄) 사람이 죽는 액운이 든 해를 말하는데, 흔히 현인의 죽음을 비유한다.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병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서 지내는데, 하루는 꿈에 공자가 나타나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올해는 용의 해이고 내년은 뱀의 해이다.[起起, 今年歲在辰, 來年歲在巳.]"라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 참술(讖術)로 맞추어 보고 자신의 목숨이 다할 줄 알았더니, 실제로 그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後漢書 卷65 鄭玄列傳》 태산(泰山)이 무너지니 공자(孔子)가 어느 날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대들보가 쓰러지겠구나. 철인이 시들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하였는데, 그로부터 병이 나서 7일 만에 별세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禮記 檀弓上》 태산이 무너졌다는 것은 선사(先師)의 죽음에 대한 비유로 쓴 말로,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전우(田愚)의 죽음을 가리킨다. 근심의……아니니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자경부봉선현영회(自京赴奉先縣詠懷)〉 시에 "근심의 끝이 종남산과 가지런하여, 끝없는 근심을 걷을 수가 없어라.〔憂端齊終南, 鴻洞不可掇.〕"라고 한 것을 원용한 표현이다. 《杜少陸詩集 卷4》 위로……없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름을 지어 주셨으니 원문의 가석(嘉錫)은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뜻으로,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황고께서 나의 초년 시절을 관찰하여 헤아리사, 비로소 내게 아름다운 이름을 내리셨으니, 나의 이름을 정칙이라 하시고, 나의 자를 영균이라 하시었네.[皇覽揆余于初度兮, 肇錫余以嘉名. 名余曰正則兮, 字余曰靈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교화가……기다려야 원문의 화급돈어(化及豚魚)는 《주역》 〈중부괘(中孚卦)〉의 단사(彖辭)에 "돼지와 물고기가 길함은 미더움이 돼지와 물고기에 미친 것이다.[豚魚吉, 信及豚魚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말이다. 미더움이 돈어에 미친다는 것은, 성인(聖人)의 덕화가 매우 우둔하고 미천한 동물에까지 미침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부헌(孚軒)'이란 명칭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공안(孔顔) 공자(孔子)와 안자(顔子)를 합칭한 말이다. 아홉 길 산 원문의 구인산(九仞山)은 《서경》 〈여오(旅獒)〉에 "작은 행실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큰 덕에 끝내 누를 끼칠 것이니, 이는 마치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는데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여 그 공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다.[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야 공이 이루어진다는 경계이다. 함장(函丈) 스승의 자리 또는 강학(講學)하는 자리를 뜻한다. 본디 옛날에 스승의 자리와 제자의 자리에 1장(丈)의 사이를 둔 데서 나온 말로, 전하여 스승의 경칭(敬稱)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간재 전우를 가리킨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만일 음식 대접을 위한 객이 아니고 강문(講問)하러 온 객이거든 자리를 펼 때 자리와 자리의 사이를 한 길 정도가 되게 한다.[若非飮食之客, 則布席, 席間函丈.]"라고 하였다. 후창(後滄)이란……하는구나 김택술의 '후창'이란 호는 스승인 간재가 지어준 것이다. 일찍이 중봉(重峯) 조헌(趙憲)이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계승하겠다는 취지로 자신의 호를 '후율(後栗)'이라고 지었는데, 간재가 이 일을 본떠 남송(南宋)의 호가 창주(滄洲)인 주희(朱熹)를 계승하라는 의미로 '후창'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후창이 자신을 돌아보니 스승의 뜻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後滄集 卷6 答洪韋軒》 상당산(上黨山)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있는 산 이름이다. 상당은 청주의 별칭이다. 운수(雲樹) 멀리 떨어진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춘일회이백(春日懷李白)〉에 "위수 북쪽에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에는 해 저문 구름이로다. 언제나 한 동이 술을 마시며, 다시 함께 자세히 글을 논해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 집이……뿐이라고 일시(逸詩)에 "당체의 꽃이여, 바람에 펄럭이도다. 어찌 너를 생각지 않으리오마는, 집이 멀어서이다.[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라고 하였는데, 孔子가 이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아서이지, 어찌 멀어서이겠는가.[未之思爾, 夫何遠之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푸른 눈으로 원문의 청모(靑眸)는 청안(靑眼)과 같은 말로, 반가워하는 눈길이라는 뜻이다. 진(晉)나라 때의 명사(名士)인 완적(阮籍)은 세속(世俗)의 법도에 구애받지 않고 지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을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으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백육 만나(百六) 백육은 106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액운(厄運)을 말한다. 4500년이 1원(元)이고 1원 중에 5번의 양액(陽厄)과 4번의 음액(陰厄)이 있어 106년마다 액운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漢書 律歷志上》 금란(金蘭)의 교분 원문의 남금(蘭金)은 돈독한 우의(友誼)를 비유한 말로,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니 그 단단함이 쇠를 끊을 만하도다. 마음이 서로 같은 말은 그 향내가 난초와 같도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제민(齊民) 일반 백성을 뜻하는 말로, 서민(庶民), 평민(平民) 등과 같은 말이다. 책방과……하면서도 원문의 서사(書肆)는 책방의 뜻으로, 책의 요점은 파악하지 못한 채 많이 읽는 것만 욕심낸다면 그저 책을 많이 쌓아둔 책방에 불과하게 된다는 뜻이다. 설령(說鈴)은 긴요하지 않은 자질구레한 말을 이른다. 후한(後漢)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오자(吾子)〉에 "책을 좋아하여도 중니에게 긴요하지 않는 것은 책방일 뿐이고, 말을 좋아하여도 중니에게 보이지 않으면 자질구레한 말이다.〔好書而不要諸仲尼, 書肆也, 好說而不見諸仲尼, 說鈴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또 북송의 정이(程頤)가 일찍이 문인 윤돈(尹焞)에게 이르기를 "공이 학문하는 방도를 알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굳이 많이 볼 필요가 없고 요점을 알아야 하니, 많이 보기만 하고 요점을 알지 못한다면 책방일 뿐이다.[公要知爲學, 須是讀書. 書不必多看, 要知其約, 多看而不知其約, 書肆耳.]"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3》 높은……착용하면서도 원문의 아관박대(峨冠博帶)는 높은 관과 헐렁한 띠로, 사대부의 정장 혹은 조복(朝服)을 의미한다. 창칼을 수선하면서 원문의 수과극(修戈戟)은 《시경》 〈진풍(秦風) 무의(無衣)〉에 "어찌 옷이 없어서, 그대와 솜옷을 함께 입으리오. 왕명으로 군대를 일으키거든, 우리의 창칼을 수선하여, 그대와 한 짝이 되리라.[豈曰無衣, 與子同袍? 王于興師, 修我戈矛, 與子同仇.]"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돈독한 우의(友誼)가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은(殷)나라 거울 원문의 은감(殷鑑)은 《시경》 〈대아(大雅) 탕(蕩)〉에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아서, 하후의 세대에 있느니라.[殷鑑不遠, 在夏后之世.]"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대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날의 경계로 삼는다는 뜻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오윤일158)의 별장에 이르다 到吳允一庄 한여름에 반천 리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가니 炎天來訪半千程그 누가 알리오 이 늙은이의 사랑하는 마음을 誰識老夫相愛情선조 묘비에 정성을 다하니 아름다운 행적 전하고 誠竭祖碑傳懿蹟시골 마을에 덕이 미더우니 어리석은 백성 교화하네 德孚鄕里化蚩氓책 속에 실로 몸 편케 하는 방법이 있거니와 書中儘有安身術세상에 어찌 실상에 부합하는 명성이 없으랴 世上那無副實名그대처럼 근본 서는 건 참으로 쉽지 않나니 本立如君諒匪易이로부터 대도가 자연히 생겨나리라159) 從玆大道自然生상당산성160) 서쪽의 작천 주변에 上黨城西鵲川邊풍광 좋은 골짝 한 구역이 있구나 一區洞壑好風煙기암의 수석은 이름난 승경을 전하고 機巖水石傳名勝목령의 산세는 온전한 기운을 보이네 木嶺岡巒見氣全인정 넘치는 마을엔 옛 풍속이 남아 있고 誼洽一村餘舊俗풍성하게 여문 오곡은 좋은 밭에 무성하여라 年登五穀有良田이곳에 다시 안풍자161)가 있어 斯間復得安豐子평생 주경야독하며 천명을 즐기누나 耕讀生平自樂天서원162)에 먼 길손이 창동에서 찾아온 건 西原遠客自滄東학풍이 좋은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오 爲有之君好學風시례는 용은 뒤에 여전히 남아 있고163) 詩禮猶餘龍隱後발자취는 목산에서 벗어나지 않았도다 鞋筇不出鶩山中마음은 섬돌 앞 잣나무와 같아 길이 푸름을 보고 心如砌柏長看翠몸은 정원 속 꽃과 짝하여 홀로 붉음을 보전하누나 身伴庭花獨保紅이별과 만남은 무상하니 어찌 말할 것이 있으랴 離合無常何足道일생토록 마음에 두는 바가 같아야 할 뿐이라네 一生須要所存同 炎天來訪半千程, 誰識老夫相愛情?誠竭祖碑傳懿蹟, 德孚鄕里化蚩氓.書中儘有安身術, 世上那無副實名?本立如君諒匪易, 從玆大道自然生.上黨城西鵲川邊, 一區洞壑好風煙.機巖水石傳名勝, 木嶺岡巒見氣全.誼洽一村餘舊俗, 年登五穀有良田.斯間復得安豐子, 耕讀生平自樂天.西原遠客自滄東, 爲有之君好學風.詩禮猶餘龍隱後, 鞋筇不出鶩山中.心如砌柏長看翠, 身伴庭花獨保紅.離合無常何足道? 一生須要所存同. 오윤일(吳允一) 오원홍(吳源弘)으로, 윤일은 그의 자이다. 그 밖의 사항은 미상이다. 《後滄集 卷4 答吳允一》 그대처럼……생겨나리라 《논어》 〈학이(學而)〉에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공경은 아마도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상당산성(上黨山城)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있는 산성 이름이다. 상당은 청주의 별칭이다. 안풍자(安豐子) 당(唐)나라 때 안풍(安豐)에 은거하였던 동소남(董邵南)을 이른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의(義)를 행하고 부모를 효로 잘 봉양하고 처자식을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당대의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그를 칭송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동소남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여기서는 오원홍을 안풍자에 비겨 말한 것이다. 《小學 善行》 서원(西原) 청주(淸州)의 별칭이다. 시례(詩禮)는……있고 오원홍이 이곳에 은거한 뒤에도 가학(家學)을 잘 계승하고 전수함을 말한다. 시례는 가정교육 또는 가학을 뜻한다. 공자(孔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詩)와 예(禮)를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고 또 왜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듣고서 물러나와 시와 예를 배웠던 일에서 유래한 말이다. 《論語 季氏》 용은(龍隱)은 지명 등의 고유명사로 보이는데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民宋鎭澤…▣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定山直守護數十年矣去五月良中李泰▣(壽)▣偸葬于民之慈母山單白虎已掘處故緣由仰訴于前 城主則▣(題)音內農務方劇潦水又漲則雖是情勢旣迫訟理且直姑俟移秧更擧則斷當捉囚督掘向事行下故姑待移秧更欲擧狀之際右民泰壽自知其罪渠自來到於民之家以十月晦內掘去之意累累懇乞故不得已捧手標待限矣十月已過尙不掘去世豈有如許奸慝之民乎不勝憤寃前呈所誌〖志〗與手標帖連仰籲於 明政之下細細垂察上項李泰壽捉囚督掘以保遠居孤弱之民先壟之地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辛未十一月 日泰仁官[着押][題辭]彼隻率來對卞向事初五日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民之親山在於治下南村面盤龍村前麓而守護局內者數十年矣不意今者遽遭偸葬於內白虎至近之地而此是曾往偸塚已掘處也搜探葬者則淳昌居名不知尹哥漢民居在他邑道里稍遠凶彼尹漢瞰其山主之遠居孤弱肆然有此偸葬者也若此乃已則遠地有山者安得禁護乎又況此地則已往偸塚起訟掘去處也旣有決案之蹟則與他尋常處偸葬有異也玆以仰籲所謂尹漢發差捉致杖囚督掘之地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辛未十一月 日泰仁官[着押][題辭]今不督掘待明春更呈事十三日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全州)居民宋鎭澤右謹言憤迫情由段民之慈母墳山在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而守護累十年矣中間有勢者蔑視民之孤弱敢爲偸葬於民之慈母山靑龍麓白虎麓者間或有之然而義理爭訟之下渠輩皆屈於法理已爲掘去者昭在於前 官時也不意去年夏良中該面下鍮村居李正壽爲名人乘夜偸葬於民之慈母山白虎麓逼近之地置標下朴平仲已掘處世豈有如許倚勢蔑法之氓乎民豈不欲趂時呈卞矣間以身病沈吟難抽今玆前呈文蹟帖連仰籲於 明政之下細細 垂察後上項李正壽發差捉致儼囚督掘以保遠居孤弱之民先壟之地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酉十月 日泰仁官[着押][題辭]査問次李正水捉來事▣▣告宋弼尙主人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敬啓者先祖位土와林野을共同登記하난事로業經大宗會인바其時各門中에서負擔하신金額을互相觀望하고送交零星하와登記手續上에困難이多大하온中始祖太師公林野登記만爲先印刷謄本하야送付하오며各處登記난次第送達하게사오니以此 照亮하신후 貴門中負擔金을斯速辦送하시와以完竣事之地를千務萬望함再右登記난趂其時謄本付送이오나經濟困難은京鄕이大同이기于今遵循矣러니今則秋收가在邇하고經濟도回復됨으로如是仰通하온니 簽宗氏난尤加另念하시와無至再告케하심을切企이외다始祖降生一千三十二年壬申九月 日京城府長沙洞一一七ノ一番地坡平尹氏大宗約所[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正月惠函迨切慰荷緣於忽擾尙稽修謝甚歎甚歎謹詢肇夏仕體萬旺閤覃均迪仰溸且祝弟日月流邁已經吉祀罔涯益復如新而大朞時惠送祭需良感良感第舍季自年前沒産於京生計沒策寄食數三學生崔玉煥君亦留在竟不淸帳食費而亦不告還去尙不上送事涉孟浪故玆仰煩須卽言及于崔君處使之卽爲付送如何舍季事勢若不困難則豈可論及食費等事於崔君家現今形便萬不成說思不獲已如是者也猶切愧歎愧歎貴邊農形果何如耶願聞耳餘姑不備謹.四月十八日弟金敎彬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日到付▣(全)▣…▣▣▣(宋鎭澤)右謹言議▣…▣習▣…▣仁居李太漢之甚者乎生之慈母墳山▣…▣盤龍洞案山而守護數十▣…去己巳良中▣…▣爲名人忽有偸葬▣…▣母塚階下往卞于泰仁依 官題掘去矣▣▣夢外泰仁李太漢爲名人乘夜▣…掘處世皆如▣…▣無據則法無可施訟不可息不勝情惋往卞于泰仁 官圖尺明査之下同李太漢{犭+凶}猾難逃致之落科然▣…玆敢前後本狀與圖形題旨帖連仰籲細細洞察后 嚴明發官于泰仁刻期督掘之地千萬伏祝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癸酉十月 日兼史[着押][題辭]旣爲落科指日督掘事十二日山在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여러 벗들과 두승산423)에 오르다 同諸益上斗升山 산은 절로 푸른데 사람은 백발이 되어 山自蒼蒼人白頭납극424) 다섯 번 신으니 세월도 흘러갔네 五穿蠟屐歲華流중간에 오랜 세월 지나 뽕밭이 바다 되니 中經浩劫桑田海우선 맘껏 노닐고자 중들의 누각을 빌렸네 且借遨遊釋子樓옛날에 한 말 한 되의 술을 누가 마셨는가 昔日斗升誰酌酒삼신산이 지척이니 배를 번거롭게 찾지 않네 三神咫尺不煩舟하늘가에 저녁 구름이 다시 만나듯이 暮雲天際還相合만남과 이별 부질없이 근심할 것 없네 聚散無將作謾愁 山自蒼蒼人白頭, 五穿蠟屐歲華流.中經浩劫桑田海, 且借遨遊釋子樓.昔日斗升誰酌酒? 三神咫尺不煩舟.暮雲天際還相合, 聚散無將作謾愁. 두승산(斗升山) 전라도 고부군(古阜郡)에 있는 산이다. 납극(蠟屐) 밀랍을 발라서 반질반질하게 한 나막신을 이르는데, 남조 송(宋)나라 때 사령운(謝靈運)이 산에 오를 적에는 반드시 나막신을 신었다고 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늦봄에 가뭄을 걱정하며 暮春憫旱 농사를 점칠 땐 먼저 맥우425)를 보는데 歲事占看雨麥先어찌하여 봄철 내내 큰 가뭄이 드는가 如何亢旱一春全전답의 이앙 조금 늦어져 껍질 더디 터지고 田秧差晩遲開甲길가 풀도 자라기 어려워 절로 털방석 되네 路草難長自成氈구름 무지개 보며 비 내려주길 얼마나 생각했는데 幾望雲霓思惠霈또 들으니 책력에도 흉년에 속한다 하네 又聞星曆屬災年겸하여 약육강식이 만연한 이 시대에 兼玆弱肉强呑日백성들을 보니 또 동병상련의 마음이 드네 同病蒼生亦可憐 歲事占看雨麥先, 如何亢旱一春全?田秧差晩遲開甲, 路草難長自成氈.幾望雲霓思惠霈, 又聞星曆屬災年.兼玆弱肉强呑日, 同病蒼生亦可憐. 맥우(麥雨) 보리가 익을 때 내리는 비를 뜻한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