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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아66)가 몽사67)의 스승이 된 것을 기뻐하며 喜復兒爲蒙士師 기뻐한 건 본디 몽사의 스승에 있는 게 아니니 可喜本非蒙士師네가 이 일을 해낸다면 얼마나 기특하겠는가 汝能此事一何奇남의 모범이 되려면 먼저 자신을 따르게 할지니 作人模範先從己글이나 익히게 한들 끝내 누구를 이롭게 하리오 溫故文書竟益誰잘못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았기에 탕왕을 성군이라 했고68) 過不吝時湯謂聖분수를 편안히 여길 수 있었기에 소옹을 지혜롭다 했다네69) 分當安處邵稱知만약 온갖 고생을 감내할 수 있다면 如令煞喫辛酸得틀림없이 앞으로 쾌활한 경지에 이르리라 快活前頭在不疑 可喜本非蒙士師, 汝能此事一何奇?作人模範先從己, 溫故文書竟益誰?過不吝時湯謂聖, 分當安處邵稱知.如令煞喫辛酸得, 快活前頭在不疑. 복아(復兒) 후창의 첫째 아들인 김형복(金炯復)을 가리킨다. 몽사(蒙士) 어린 학도를 이른다. 잘못……했고 《서경》 〈상서(商書)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상(商)나라 탕왕(湯王)의 덕을 칭송하며 "사람을 등용하는 데 자신으로 생각하고,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게 하지 않으시어 능히 너그럽고 능히 인자하여 그 덕이 밝게 드러나 만백성에게 믿음을 받으셨습니다.[用人惟己, 改過不吝, 克寬克仁, 彰信兆民.]"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분수를……했다네 소옹(邵雍)은 송나라의 학자로,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와(安樂窩), 시호는 강절(康節)이다. 《주역》의 이치에 정통하고 상수학(象數學)에 능하였다. 그의 〈어느 곳이 선향인가[何處是仙鄕]〉 에 "만일 분수를 편안히 여길 수 있다면, 모두가 유별난 생각보다 나을 것일세.[若能安得分, 都勝別思量.]"라고 하였다. 《擊壤集 卷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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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일당 김공52)에 대한 제문 祭愛日堂金公文 성인과 세상이 멀어지고 말씀이 인몰되니풍속이 경박하고 상하였네추향에 실마리가 많으니배워서 익숙한 것을 떳떳함으로 삼네군자가 있지 않으면누가 그 참됨을 깨우치랴처음 동류에서 뛰어난 이오직 공이 그 사람이네지기가 원대하며타고난 것이 높고 밝았네학문으로 겸비하여 이룬 것이더욱 크고 넓었네사문의 은미하고 깊은 뜻공이 실로 참여하여 들었네우리들 강론하며 모임에공이 실로 창도하였네쌍계사에 봄바람 불고취정에서 밤에 달 뜰 때창수가 정다웠고위의가 정연하였네공이 이미 병들었다 하였고나도 돌아와 또 쉬게 되었네날마다 원기를 회복하길 바라며옛 날의 교유 이으려 하였네누가 알았으랴 영원한 작별이갑자기 이에 있을 줄을거문고 부셔지고 줄이 끊어짐53)은만고에 같은 슬픔이네사론이 분열되니거두어 쇄신할 기약이 없네또 한 분의 현인을 잃었으니여생을 어찌하리오내 사는 곳 막히고 멀어오래도록 달려가 문상하는 것 미루었네세월이 한해가 지났으니유풍 여운이 날로 멀어지네구운 닭과 술54) 올리니상생55)은 여전하네큰 소리로 길게 울부짖으니눈물이 샘처럼 쏟아지네 世遠言湮。風澆俗傷。趍向多端。習熟爲常。不有君子。孰覺其眞。出類發軔。惟公其人。志熟磊落。禀賦高明。濟以學問。益大益宏。師門微蘊。公實聞焉。吾儕講聚。公實倡焉。雙寺春風。翠亭夜月。唱酬款款。威儀秩秩。公旣告病。我歸且休。日望天和。擬續舊遊。誰知永別。遽爾在兹。琴破弦斷。萬古同悲。士論分裂。收刷無期。又失一賢。餘生何其。我居阻遠。久稽奔問。星霜一周。風韻日遠。灸雞漬綿。象生依然。大聲長號。淚隕如泉 애일당(愛日堂) 김공(金公) 김치희(金致煕, 1828∼?)를 말한다. 자는 장여(章汝), 호는 애일당,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기정진의 문인으로 낙안(樂安)에 거주하였다. 거문고……끊어짐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이른 말이다. 춘추(春秋)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자기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을 한탄하고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絶絃]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列子 卷5 湯問》 구운 닭과 술 원문의 '적계지면(炙鷄漬綿)'을 풀이한 말인데, 친구 간에 조상(弔喪)하거나 묘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서치(徐穉)는 자가 유자(孺子)로 남주(南州)의 고사(高士)라 일컬어졌다. 그는 먼 곳으로 문상(問喪)하러 갈 때 솜을 술에 적셔 햇볕에 말린 다음 그것으로 구운 닭을 싸서 휴대하기 간편하도록 만들어 가지고 가서 솜을 물에 적셔 술을 만들고 닭을 앞에 놓아 제수를 올린 뒤 떠났다 한다. 《後漢書 卷35 徐穉列傳》 상생(象生) 궤연을 말하는데 망자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기물들을 진열하여 살아있을 때를 그대로 본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우(杜佑)의 《통전(通典)》 권49 〈시향천신부(時享薦新附)〉에 "사당에 신주를 보관하여 사시제를 지내고, 침전(寢殿)에는 의관과 궤장 등 살아생전에 쓰던 기물을 두고서 그곳에 새로운 음식물을 올린다.[廟以藏主, 以四時祭, 寢有衣冠几杖象生之具, 以薦新物.]"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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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아70)가 독서하는 것을 기뻐하며 喜謙兒讀書 푸른 등불은 깜박이는데 밤이 얼마나 되었는고71) 靑燈耿耿夜何其큰 소리로 글 읽는 겸아도 참으로 기특하구나 大讀阿謙亦一奇일찍 공부에 힘쓸 뜻을 잃으니 어리석은 너를 어쩌겠는가 早失勤工柰癡汝뒤늦게나마 뜻을 분발하면 호걸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晩能奮志匪豪誰노천학사는 진정한 사표라 하겠고72) 老泉學士眞師表동백산인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있었다네73) 桐栢山人卽己知이로부터 우리 집안에 남은 운수가 있을 터이니 從此吾家餘運在그저 더욱 힘쓰고 망설이거나 의심하지 말거라 只要加勉莫遲疑 靑燈耿耿夜何其? 大讀阿謙亦一奇.早失勤工柰癡汝? 晩能奮志匪豪誰?老泉學士眞師表, 桐栢山人卽己知.從此吾家餘運在, 只要加勉莫遲疑. 겸아(謙兒) 후창의 넷째 아들인 김형겸(金炯謙)을 가리킨다. 밤이 얼마나 되었는고 원문의 야하기(夜何其)는 《시경》 가운데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정사(政事)를 보는 수고를 찬미한 〈정료(庭燎)〉 시에 "밤이 얼마나 되었는고. 한밤중도 아니 되었으나, 정료가 환히 빛나도다.[夜如何其? 夜未央, 庭燎之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노천학사(老泉學士)는……하겠고 노천은 송(宋)나라의 문인이자 학자인 소순(蘇洵, 1009~1066)으로, 자는 명윤(明允)이고, 노천은 그의 호이다. 아들 소식(蘇軾), 소철(蘇轍)과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 독서를 좋아하지 않다가 늦은 나이에 어느 날 갑자기 발분하여 두문불출하며 오로지 독서에 전념하여 육경(六經)에서 제자백가(諸子百家)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달하고 마침내 대문장가가 되었다. 동백산인(桐栢山人)은……있었다네 동백산인은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의 은사(隱士)인 동소남(董召南)을 가리킨다. 동소남은 동백산(桐柏山)에 은거하면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의(義)를 행하고 부모를 효로 잘 봉양하고 처자식을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당대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이렇게 훌륭한 동소남을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그를 칭송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동소남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한유의 〈동생행(董生行)〉에 "아, 동생이여! 부모께 효도하고 처자식 사랑함을 남들은 알지 못하고, 오직 천옹만이 알아, 수시로 상서를 내고 길조를 내려주도다.[嗟哉董生! 孝且慈人不識, 唯有天翁知, 生祥下瑞無時期.]"라는 구절이 있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는 동소남의 훌륭함을 알아주고 세상에 크게 드러낸 한유를 가리킨다. 《小學 善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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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74)에게 부치다 寄汝安 흐르는 물처럼 세월이 빨리도 흐르니75) 居諸奔迅若流水올해 제석도 이십 일만 남아 있을 뿐일세 今年除夕餘二旬아 내가 어느새 칠순의 나이가 되었으니 嗟我遽當七耋年몸은 고목 같고 귀밑은 흰 털이 분분하구나 身如槁木鬢雪紛아 그대는 가난하여76) 세상사에 얽매이니 嗟君食貧絆世故몹시 바쁘고 분잡하여 한가한 겨를이 없구나 倥傯紛沓無暇辰동서로 삼십 리 정도 떨어져 있는데 東西相距三十里함께 수세77)한 지 십년이나 되었네그려 與同守歲積十年늙어 가매 약한 마음이 쉬이 감상에 젖으니 老來弱腸易感傷매양 울적함을 품고 밤새도록 시름한다오 每抱鬱陶悄達晨생각을 하지 않아서이지 어찌 멀어서이겠는가78) 未之思也夫何遠고통의 바다에도 때맞춰 조수가 밀려든다네 苦海亦有信潮臻장차 관 속에 들어갈 형을 가련히 여길지니 須憐阿兄將就木번연히 마음 돌려 지난 일을 뉘우치고 있다오 幡然回心悔前塵바라노니 눈 내린 밝은 달밤 창동 집에서 願言雪月滄東屋그대와 묵은해 보내고 새해를 맞고 싶어라 與君送舊又迎新 居諸奔迅若流水, 今年除夕餘二旬.嗟我遽當七耋年, 身如槁木鬢雪紛.嗟君食貧絆世故, 倥傯紛沓無暇辰.東西相距三十里, 與同守歲積十年.老來弱腸易感傷, 每抱鬱陶悄達晨.未之思也夫何遠? 苦海亦有信潮臻.須憐阿兄將就木, 幡然回心悔前塵.願言雪月滄東屋, 與君送舊又迎新. 여안(汝安) 후창의 셋째 아우인 김억술(金億述, 1899~1959)로, 자는 여안, 호는 연강(蓮岡) 또는 척재(拓齋)이다. 또한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문집으로 《척재집(拓齋集)》이 있다. 세월이 빨리도 흐르니 원문의 거저(居諸'는 일거월저(日居月諸)의 줄인 말로, 세월이 흘러감을 이른다. 《시경》 〈패풍(邶風) 백주(柏舟)〉에 "해여 달이여, 어찌 뒤바뀌어 이지러지는가.[日居月諸, 胡迭而微?]"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가난하여 원문의 식빈(食貧)은 거빈(居貧)과 같은 말로, 《시경》 〈위풍(衛風) 맹(氓)〉에 "내 그대의 집에 시집간 뒤로, 삼년 동안 가난하게 살았도다.[自我徂爾, 三歲食貧.]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수세(守歲) 제석(除夕)에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새해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을 기다려 맞는 것을 이른다. 생각을……멀어서이겠는가 일시(逸詩)에 "당체의 꽃이여, 바람에 펄럭이도다. 어찌 너를 생각지 않으리오마는, 집이 멀어서이다.[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라고 하였는데, 孔子가 이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아서이지, 어찌 멀어서이겠는가.[未之思爾, 夫何遠之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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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일을 위로하다 慰允一 선경169)은 예로부터 하늘의 이치임을 믿을 만하니 善慶從來信上天그대 집안의 복록이 어찌 성대하지 않으리오 君家福祿盍繁延나이 사십170)은 비록 자식을 늦게 보는 때라 해도 强年縱道遲兒子남은 음덕은 어찌 선조를 의뢰하지 않으랴 餘蔭那無籍祖先이미 향산이 백련171)을 여는 걸 보았는데172) 已見香山開白蓮하물며 희무173)가 주의 국운을 이었다고 들음에랴 況聞姬武續周緣한 마디 말로 위로함은 아부하는 게 아니니 一言慰祝非阿好이치로 증험해보면 명백히 그러한 것일세 以理證之明自然 善慶從來信上天, 君家福祿盍繁延强年縱道遲兒子, 餘蔭那無籍祖先己見香山開白蓮2), 況聞姬武續周緣?一言慰祝非阿好, 以理證之明自然. 선경(善慶) 선행(善行)을 쌓아 많은 복록(福祿)이 생김을 뜻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나이 사십 원문의 강년(强年)은 강사(強仕)와 비슷한 말로, 나이 40세를 이른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나이 사십을 강이라고 하니, 이때에 벼슬길에 나선다.[四十曰强而仕]"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백련(白蓮) 저본에는 '백운(白運)'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을 살펴 운(運)을 련(蓮)으로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이미……보았는데 향산(香山)은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자호한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를 가리킨다. 백련(白蓮)은 자연 속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단체를 결성하여 어울리는 결사(結社) 가운데 대표적인 백련사(白蓮社)를 이른다. 백련사는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에 있는 동림사(東林寺)의 고승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당대의 명유(名儒)인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 등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을 할 목적으로 결성된 결사이다. 백거이와 관계된 결사는 백거이가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향산(香山)의 승려 여만(如滿)과 함께 결성했던 향화사(香火社)가 있다. 여기서는 백거이의 향화사를 백련사로 대신하여 말한 것이다. 희무(姬武) 주(周)나라 무왕(武王)을 가리키는 말로, 희(姬)는 주나라의 성이다. 무왕은 주나라를 창업한 초대 황제로서, 이름은 발(發)이다. 서백(西伯)인 부친 문왕(文王)을 계승하여 상(商)나라를 멸한 후 아우 주공(周公)의 보좌를 받아 봉건적인 통치제도를 수립하였다. 蓮:底本에는 "運".문맥을 살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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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리의 족숙 낙찬 을 삼가 애도하다 敬悼立石里族叔【洛瓚】 지금 세속엔 거짓이 불어나고 있는데 僞滋今世俗공만은 홀로 천진함을 보전하였다오 公獨保淳眞네 아들을 두었으니 남은 경사182)를 알 수 있고 四子知餘慶팔순을 넘었으니 인자에게 보답함183)을 볼 수 있네 八旬見報仁인간 세상의 묵은 빚을 모두 다 갚고는 人間方了債천상 세계로 갑자기 구름 타고 올라갔다네 天上遽乘雲아아 이제는 끝이로다 성재의 모임184)에서 已矣星齋會더 이상 모시고 정담을 나눌 수가 없구나 更無陪話辰 僞滋今世俗, 公獨保淳眞.四子知餘慶, 八旬見報仁.人間方了債, 天上遽乘雲.己矣星齋會, 更無陪話辰. 남은 경사 선행을 쌓아 많은 경사가 생김을 뜻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인자(仁者)에게 보답함 《논어》 〈옹야(雍也)〉에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동하고 어진 자는 고요하며,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어진 자는 장수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라고 하였는데, 이를 차용하여 그가 팔순을 넘도록 산 것은 하늘이 그가 평소 어질었기 때문에 장수하게 하는 것으로 보답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성재(星齋)의 모임 성재는 취성재(聚星齋)를 가리킨다. 취성재는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 남동쪽에 있는 부안 김씨(扶安金氏)인 군사공(君事公) 김광서(金光敍) 묘소의 재실(齋室)이다. 1819년(순조19)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되고 1826년(순조2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이곳에서 부안 김씨의 종회(宗會)를 열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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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오공69)에 대한 제문 祭松庵吳公文 공은 어버이를 섬김에 종시(終始)의 효성이 있었고 집안을 일으킴에 이룩한 사업이 있었으며, 몸가짐에 근칙(謹勅)하다는 명예가 있었고 고을에서는 화락한 풍모가 있었습니다. 자식의 혼사를 다 시켜 자손들이 줄을 이루고, 선을 닮도록 하여70) 아들이 계술하는 것이 다함이 없습니다. 걱정 없이 강녕의 복에 응하고 욕됨이 없이 예순의 장수 누렸습니다. 인생의 사업 끝냈다 하겠고, 세상의 책임 마쳤다 하겠습니다. 이것이 유연히 떠나고 호연히 돌아가 근심하며 죽음을 슬퍼하는 뜻이 기미에 나타나지 않았던 까닭이니, 공은 사생의 설을 알고 종시(終始)의 의가 있었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향당(鄉黨)에서는 기구(耆舊)의 명망을 잃게 되었고, 글방에서는 위의를 갖춘 현인이 사라졌고, 붕우 간에는 따를 만한 유익한 벗이 없어졌으니, 뒤에 죽을 사람의 비통함은 그만 둘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영원히 돌아갈 날이 정해져 저승과 이승이 장차 막힐 것이라, 제문을 지어 대신 제사 드리며 슬픈 마음 깃들이니, 어둡지 않은 존령이여 보시고 흠향하소서. 公事親而有終始之孝。起家而有成立之業。持身而有謹勅之譽。處鄕而有愷悌之風。昏嫁畢而孫枝成行。式穀似而子述不匱。無憂而膺康寧之福。無辱而享耆久之壽。人生之業。可謂終矣。世間之債。可謂了矣。此所以悠然而逝。浩然而歸。無慽慽怛化之意。見於幾微。公可謂知死生之說。而有終始之義者也。但鄉黨失耆舊之望。庠塾無風儀之賢。朋友乏從逐之益。後死者之悲痛。有不可已者。大歸有日。幽明將隔。緘辭替侑。以寓一哀。尊靈不昧。庶幾鑑饗 송암(松庵) 오공(吴公) 오수화(吴壽華, 1835∼1895)를 말한다. 자는 태중(泰仲), 호는 송암,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자세한 내용은 《일신재집》 권18 〈송암 오공 행장(松庵吳公行狀)〉에 보인다. 선을 닮도록 하여 자식 교육을 잘 시키는 것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언덕 가운데의 콩을 서민들이 거두어 가는 것처럼, 명령의 새끼를 과라가 업어 데리고 가서 키우니, 네 자식도 잘 가르쳐서 선을 닮게 하거라.[中原有菽, 庶民采之, 螟蛉有子, 蜾蠃負之, 敎誨爾子, 式穀似之.]"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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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에 회포를 적다 至日書懷 오늘 아침 해가 남쪽에 이르니59) 今朝日南至천시가 이로부터 새로워지고 天時從此新전란 먼지가 맑게 걷힌 때를 만나니 適玆兵塵晴나라의 명운도 새롭게 되는구나 邦命亦維新어이하여 창상자60)는 如何滄上子덕업이 날로 새로워지지 못하는가 德業未日新중년61)의 나이에 덕을 이룬다고 하는데 中身云成德하물며 삼광62)을 순히 따라 새해를 맞이함에랴 順三況歲新이것으로 생애를 마칠 것을 생각하니 言念以此終그저 통탄함만 새로 더함을 느끼겠네 但覺痛恨新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으니 忽然有所悟한 점의 생기가 새롭기도 하여라 一點生意新어찌 위 무공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盍思衛武公구십에도 오히려 스스로 새롭게 했다오63) 九十猶自新천고의 훌륭한 녹죽편64)이여 千古綠竹篇찬란히 빛나는 중광65)이 새롭구나 燁燁重光新애오라지 스스로 위로하고 면려하노니 聊以自慰勉일어나 새로운 새벽빛을 맞이한다오 起迎曙色新 今朝日南至, 天時從此新.適玆兵塵晴, 邦命亦維新.如何滄上子, 德業未日新?中身云成德, 順三況歲新!言念以此終, 但覺痛恨新.忽然有所悟, 一點生意新.盍思衛武公? 九十猶自新.千古綠竹篇, 燁燁重光新.聊以自慰勉, 起迎曙色新. 해가 남쪽에 이르니 원문의 남지(南至)는 동지(冬至)의 별칭이다.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5년에 "태양이 남쪽에 이르렀다.[日南至]"라고 하였는데, 두예(杜預)의 주(注)에 "동짓날에는 태양이 남쪽 끝에 있게 된다.[冬至之日, 日南極.]"라고 하였다. 창상자(滄上子) 후창이 자기 자신을 일컫는 것이다. 중년(中年) 원문의 중신(中身)은 중년으로 40세에서 50세까지를 말한다. 《서경》 〈무일(無逸)〉에 "문왕이 천명을 받은 것이 중신이었는데, 나라를 누린 것이 50년이었다.[文王受命惟中身, 厥享國五十年.]"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중신은 중년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삼광(三光) 해와 달과 별을 이른다. 어찌……했다오 춘추 시대 위 무공(衛武公)은 95세의 고령임에도 나라에 경계하기를 "경(卿) 이하로부터 사장(師長)과 사(士)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조정에 있는 자들이면 내가 늙었다고 하여 나를 버리지 말고, 반드시 조정에서 삼가고 공손히 하여 서로 나를 경계하라."라고 하였고, 또 〈억시(抑詩)〉와 〈빈지초연(賓之初筵)〉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 고사를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詩經集傳 衛風 淇澳》 녹죽편(綠竹篇) 《시경》에 수록된 〈기욱(淇澳)〉편을 가리킨다. 이는 위 무공(衛武公)의 성대한 덕을 찬미한 시이다. 녹죽은 그 시에 "저 기수 물굽이를 바라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네. 아름답게 문채 나는 군자여, 자르고 다듬은 듯하며, 쪼고 간 듯하도다.[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중광(重光) 임금의 성대한 덕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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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말이 어눌해지다 偶然言語鈍弱 폐경186)이 쇠약하고 또 풍증까지 있으니 肺經衰弱又兼風말이 분명치 못해 반벙어리와 같구나 語不分明半啞同예양의 심정은 이 일과 상관없거니와187) 豫讓心情非本事주리188) 상태와 같은 이 늙은이는 누구인가 侏離狀態是何翁노망 난 건 남들 얼굴을 보기가 부끄럽기는 해도 癡呆縱愧瞻人面어눌한 건 성인 되는 일을 배우는 데 무방하다오 訥訒無妨學聖功요수에 의심하지 않는다189)는 옛 가르침이 밝게 있으니 夭壽不疑明古訓하늘이 내리는 처분만을 그저 기다릴 뿐이라네 處分只可俟蒼穹 肺經衰弱又兼風, 語不分明半啞同.豫讓心情非本事, 侏離狀態是何翁?癡呆縱愧瞻人面, 訥訒無妨學聖功.夭壽不疑明古訓, 處分只可俟蒼穹. 폐경(肺經) 십이 경맥의 하나로, 대장에 속하고 폐에 이어진다. 예양(豫讓)의……상관없거니와 예양은 전국(戰國) 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지백(智伯)을 섬겨 총애를 받았는데, 조양자(趙襄子)가 지백을 죽이자,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병 환자처럼 변신하였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었으며, 시장에서 걸식하며 거지행세를 하면서까지 조양자를 암살하고자 하였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자결하였다. 여기서는 예양이 숯을 삼켜 일부러 벙어리가 된 고사를 두고 말한 것이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豫讓》 주리(侏離) 방언(方言)으로, 소수민족 혹은 그들의 언어나 문자를 이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 요수(夭壽)에 의심하지 않는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요절하거나 장수함에 의심하지 않아 몸을 닦으며 천명을 기다림은 명을 세우는 것이다.[夭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貳)는 의(疑)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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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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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72년 김경술(金暻述)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申二月 日 金暻述 城主 壬申二月 日 金暻述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2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72년(고종 9) 2월에 김경술(金暻述)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72년(고종 9) 2월에 태인(泰仁)에 사는 김경술(金暻述)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김경술은 빈한(貧寒)하여 전주(全州)에 사는 사인(士人) 송진택(宋鎭澤)의 친산(親山)을 수호하였다. 1월 27일, 송총(宋塚)의 섬돌 아래 인적(人跡)이 있어 가보니 투장(偸葬)을 하던 역군(役軍)들은 달아나고 김우서(金禹瑞)만 있었다. 하관(下棺)만 한 상태이므로 관만 꺼내면 되지만 김우서 혼자는 어렵다고 하여 우선 용서하고 다음 날 스스로 관을 꺼내도록 하였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김우서는 관에 무고(誣告)하였고 관정에 대령하게 되었을 즈음에 사화(私和)를 청하며 장례에 들어간 돈 5냥을 요구하였다. 김우서에게 잘못한 것도 없이 억지로 사화를 하고, 그가 요구한 장례비 5냥도 빚까지 얻어 지급하였다. 그런데 또 김우서가 관에 김경술을 무고하여 족쇄를 차고 무릎까지 꿇리더니 돈을 더 주면 사화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김경술은 백골을 핑계로 돈을 토색하는 김우서를 엄히 조사하여 처분해 달라고 관에 탄원하였다. 태인현감은 김우서의 무소(誣訴)는 알고 있으니 다시 조사할 것이 없고 밖으로 방송(放送)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고 수호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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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족형 백언7)【시림】에게 보냄 與族兄伯彦【時林】 성묘하고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가 마침 내렸는데 편안하게 돌아가셨습니까. 우리들이 서로 교유한 지 오래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금년에 만나도 다만 지난해의 공부 수준에서 진보가 없고 오늘 만나도 다만 전일에 했던 말을 반복하는 정도이니, 분발하여 힘쓰는 뜻은 도리어 이전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습니다. 대저 사람이 뜻을 세우는 초기에는 대체로 왕성한 기세가 일어 진보할 가망이 있을 듯하지만 오래되면 의지가 약해지고 마음이 해이해져 끝내 떨치지 못하고 마니, 이는 일반 사람들의 공통된 근심입니다. 우리들의 공부가 이 정도에서 그치고 말 뿐이라면 당일 서로 기약한 뜻에 부응하지 못한 것일 뿐만이 아니니, 천하의 도리가 또 어찌 진보하지도 않고 퇴보하지도 않는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산중에서 문을 닫은 채 외롭게 홀로 거처하느라 강습하지 않고 경계하는 것도 없으며, 보고 느끼는 것이 적고 다짐한 마음이 해이해져 허송세월을 보내며 진보는 없고 퇴보만 있으니 어찌합니까. 안으로는 부형을 속이고 밖으로는 사우를 속여 부형과 사우의 바람을 끝내 저버리게 하였으니, 이는 소생의 크나큰 죄입니다. 벗과 사우 가운데 만일 매우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들 가련하게 여겨 구제하기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족형께서는 가장 가까이에 살고 깊이 알고 있으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지금부터 왕래할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구구하게 허여하는 습속을 절대 본받지 말고 모름지기 맹렬하게 충고하고 통렬하게 꾸짖어, 두려운 마음으로 성찰하여 뜻이 어지럽고 마음이 해이해져 명성을 떨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근심이 없게 해 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사상의 행차가 보름 뒤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그때 만나자는 약속 아직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省楸返程。驟雨時至。未審駕旋安穩否。吾輩相從。不爲不久矣。今年相逢。只是去年工夫。今日相逢。只是前日說話。而其奮勵勉作之意。則反有不及於前。夫人於立志之初。多爲銳氣所使。似有進及之望。而及其久也。則意爛心解。終於不振者。此常情通患也。吾輩工業。止於此而已。則不惟不能副當日相期之意。而天下道理。又豈有不進不退者哉。弟杜門峽庄。孑然獨居。講習廢而規警絶。觀感疎而繩約弛。日邁月征。未見其進。而只見其退。奈何。內欺父兄外欺師友。而使父兄師友之望。竟歸差池。則此生罪戾。大矣。知舊士友。苟有相愛之深者。孰不爲之矜然。而思有以救之。况族兄居之最近。服之最深者乎。自今而有往復。切勿效世人區區推與之習。須猛告痛責。使之畏懼修省。俾無意爛心解終於不振之患。幸甚。沙行。望後爲料否。伊時聯鞭之約。倘記念耶。 백언(栢彦) 정시림(鄭時林, 1839∼1912)으로, 자는 백언(伯彦), 호는 월파(月波)이다. 보성 출생으로, 기정진의 문인이며, 정의림의 사촌 형이다. 문집으로 《월파집(月波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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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숙365)을 그리며 懷希淑 언제나 흥을 타고366) 노를 저어 가볼까 一棹何時乘興行봉산에는 밤마다 달만 공연히 밝겠구나 蓬山夜夜月空明꿈속의 혼은 삼분의 고통 견디기 힘들고 夢魂叵耐三分苦시의 격조는 응당 배나 맑음을 알겠네 詩格應知一倍淸요즘 세상 자제들은 모두 태도 속된데 今世芝蘭皆俗態뿌리가 같은 친족은 가장 정이 많다네 同根花樹最多情그대의 성가는 천금처럼 귀중하니 之君聲價千金重원컨대 참공부로 옥을 이루어 부응하게367) 願副眞工用玉成 一棹何時乘興行, 蓬山夜夜月空明.夢魂叵耐三分苦, 詩格應知一倍淸.今世芝蘭皆俗態, 同根花樹最多情.之君聲價千金重, 願副眞工用玊成. 희숙(希淑) 후창의 족제(族弟)인 김현술(金賢述)이다. 흥을 타고[乘興] 흥이 나서 그리운 이를 찾아간다는 뜻이다. 산음(山陰)에 살던 왕휘지(王徽之)가 어느 겨울날 밤에 눈이 펑펑 내리자, 흥에 겨운 나머지 멀리 섬계(剡溪)에 살고 있는 친구 대규(戴逵)가 보고 싶어 밤새 배를 저어 그의 집 문 앞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정작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발길을 돌려 되돌아왔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내 본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온 것이다.[吾本乘興而行, 興盡而返.]"라고 한 고사에서 원용한 것이다. 《世說新語 任誕》 옥을 이루어 부응하게 원문의 '옥성(玉成)'은 역경을 통해 인격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가난하고 천함과 근심 걱정은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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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촌 황 처사71) 기현에 대한 제문 祭明村黃處士【紀顯】文 오호라! 선생은천품이 우뚝하고기상이 시원하였네풍상을 다 겪고돌아와 과축72)을 정하였네풍월은 끝이 없고송국은 늘 봄 같았네광채를 거두어 숨기고정신을 모았네보배로운 덕은 더욱 살찌고아름다운 명성 가만히 드러났네후손들 가르침에옛 법도 따랐네옛날 을묘년(1855, 철종6)에소자가 책상 지고 배우러 갔었네가르쳐 인도해 주심이 간절하였고교화를 받은 것 흡족하였네한 번 집으로 돌아오고 부터는온갖 일이 침범하였네멀리서 바라본 것이세월이 오래 되었네누가 알았으랴 역책73)이오늘에 있을 줄을상생74)에 달려가 곡하며슬픈 마음 적어 영결을 고합니다 嗚呼。先生天姿挺邁。氣尙磊落。游歷風霜。歸占薖軸。風月無邊。松菊長春。潛光斂輝。聚精會神。寶德加腴。令聞闇章。敎授來裔。依倣古程。音在乙卯。小子負笈。提撕懇到。董蒸浹洽。一自告歸。百故侵尋。涯角相望。歲月已深。誰知易簀出於今日。奔哭象生。綴哀告訣。 명촌(明村) 황 처사(黃處士) 황기현(黃紀顯)을 말한다. 정의림이 10세에 《소학》을 배웠던 스승이다. 과축(薖軸) 현인이 은거하는 곳을 말한다. 《시경》 〈위풍(衛風) 고반(考槃)〉에 "고반이 언덕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고반이 높은 언덕에 있으니, 석인이 한가로이 서성이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考槃在陸, 碩人之軸.]"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역책(易簀) 스승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증자(曾子)가 임종할 때 일찍이 계손(季孫)에게 받은 대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자신은 대부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깔 수 없다며 다른 자리로 바꾸게 한 다음 운명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상생(象生) 궤연을 말하는데 망자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기물들을 진열하여 살아있을 때를 그대로 본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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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오 오장 택호(宅鎬) 에 대한 만사 挽竹塢吳丈【宅鎬】 사람들이 오랑캐 풍속을 미워한다고 하는데 人言惡夷俗대부분 진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네 擧非出心肝여섯 아들이 모두 두발을 보전하고 있으니 六子皆全髮공만 홀로 이 세상에서 진실하게 살았다오 公獨此世間이것을 가지고 세 귀퉁이를 반증해보면97) 以是三隅反마음속에 간직한 바를 헤아릴 수 있다네 庶可量所存아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而余何狀人공에게 친애의 정을 받았는가 得爲公所親옛날에 공의 집98)에 방문했을 때 昔嘗造軒屛닭고기와 기장밥99)이 소반 위에 그득하였네 鷄黍盈盂盤오늘 아침에 길이 난 것을 보고 훌륭하게 여기며100) 今朝佳成路흐르는 눈물로 옷깃을 온통 적셨다오 涕淚滿衣巾청산은 이를 데 없이 무정하나니 靑山最無情순후한 덕기를 전부 묻어 버렸구나 埋盡德氣淳 人言惡夷俗, 擧非出心肝.六子皆全髮, 公獨此世間.以是三隅反, 庶可量所存.而余何狀人, 得爲公所親?昔嘗造軒屛, 鷄黍盈盂盤.今朝佳成路, 涕淚滿衣巾.靑山最無情, 埋盡德氣淳. 세 귀퉁이를 반증해보면 원문의 삼우반(三隅反)은 한 가지를 알면 이를 미루어 그와 유사한 것을 유추하여 안다는 뜻으로, 《논어》 〈술이(述而)〉에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으며,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되, 한 귀퉁이를 들어 보였는데도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하지 못하면 더 이상 일러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공의 집 원문의 헌병(軒屛)은 마루의 난간과 방 안에 둘러친 병풍이라는 뜻으로, 어른의 가까운 곁을 이르는 말이다. 닭고기와 기장밥 원문의 계서(鷄黍)는 살계위서(殺鷄爲黍)의 준말로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이다. 《논어》 〈미자(微子)〉에, 어떤 노인이 공자(孔子)의 문인 자로(子路)를 자기 집에 묵게 하여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길이……여기며 미상이다. 다만 원문의 성로(成路)의 용례를 가지고 따져보면, 효자가 어버이 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지내면서 어버이의 묘소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묘하러 왕래하기 때문에 묘소 아래에 '길이 난다.[成路]'는 용례가 다소 보인다. 이를 근거로 여기서는 공을 안장할 선영(先塋)에 올라와보니, 공의 어버이의 묘소 아래에 길이 난 것을 보고 공의 효성을 훌륭하게 여겼다고 한 것은 아닐까 추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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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시국 소식을 듣고 개탄하다 聞時耗慨然 빈자든 부자든 둘 다 복극85)이 나뉘게 되니 貧富雙將福極分은사의 홍범86)이 이미 밝게 드러나 있다오 殷師洪範己昭然만약 공산 제도가 천하의 공리라고 한다면 若云共産爲公理성현이 외려 참된 도를 모른 것으로 귀결되리라 賢聖還歸昧道眞조철의 균전법을 맹성께서 말씀하셨는데87) 助徹均田孟聖云지금이야말로 백성에게 시행할 만한 때일세 卽今定可施諸民어찌하여 주장함이 자본주의로 돌아가 如何所主歸資本또다시 탐부에게 제멋대로 병탄하게 하는가 更使貪夫恣幷呑 貧富雙將福極分, 殷師洪範己昭然.若云共産爲公理, 賢聖還歸昧道眞.助徹均田孟聖云, 卽今定可施諸民.如何所主歸資本, 更使貪夫恣幷呑? 복극(福極)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아홉 번째 조목인 오복(五福)과 육극(六極)을 가리킨다. 《서경》 〈홍범(洪範)〉에 "다음 아홉 번째는 향함을 오복으로써 하고 위엄을 보임을 육극으로써 하는 것입니다.[次九曰嚮用五福, 威用六極.]"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이르고, 육극은 흉(凶)함, 단절(短折), 질병(疾病), 우환(憂患), 가난〔貧〕, 악함〔惡〕, 나약함〔弱〕을 가리킨다. 은사(殷師)의 홍범(洪範) 은사는 은(殷)나라 태사(太師)였던 기자(箕子)를 가리킨다. 은나라가 망할 때에 기자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전하였고, 무왕은 기자를 조선(朝鮮)에 봉해주어 신하로 삼지 않았다고 한다. 홍범은 바로 홍범구주를 가리키는데,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칙으로, 오행(五行), 오사(五事), 팔정(八政), 오기(五紀), 황극(皇極), 삼덕(三德), 계의(稽疑), 서징(庶徵), 복극(福極)이다. 홍범은 본디 하우씨(夏禹氏)가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에게서 얻은 것인데, 이것이 대대로 전해져 기자가 무왕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조철(助徹)의……말씀하셨는데 맹성(孟聖)은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균전법(均田法)은 백성들에게 토지를 골고루 나누어 주는 토지 제도로, 여기서는 정전법(井田法)을 가리킨다. 조철(助徹)은 은(殷)나라의 조세(租稅) 징수법인 조법(助法)과 주(周)나라의 조세 징수법인 철법(徹法)을 이른다. 조법은 정전법에 의거하여 여덟 집에 각각 70묘(畝)의 땅을 나누어 주고, 중앙의 공전(公田) 100묘를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을 관청에 바치게 한 것이다. 철법은 정전법에 따라 토지를 구획하여 여덟 가(家)에 각각 100묘의 사전(私田)을 지급하고 중앙의 공전 100묘는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을 조세로 바치게 한 것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서 맹자가 "하후씨(夏后氏)는 50묘에 공법(貢法)을 썼고, 은나라 사람은 70묘에 조법을 썼고, 주나라 사람은 100묘에 철법을 썼으니, 그 실제는 모두 10분의 1이다. 철은 통한다는 뜻이요, 조는 돕는다는 뜻이다.[夏后氏五十而貢, 殷人七十而助, 周人百畝而徹, 其實皆什一也. 徹者徹也, 助者藉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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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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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876년 김익용(金益容) 난곡기(蘭谷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丙子三月下澣 金益容 丙子三月下澣 1876 金益容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6년(고종 13) 3월에 김익용이 종족 김낙곤의 집 처마에 난곡이라고 쓴 편액을 달면서 지은 기문. 1876년(고종 13) 3월에 김익용(金益容)이 종족 김낙곤(金洛坤)의 집 처마에 난곡(蘭谷)이라고 쓴 편액을 달면서 지은 기문(記文)이다. 김익용은 이 기문에서 김낙곤의 집안이 누대에 걸쳐 여러 효자와 열부를 배출하였다고 칭찬하면서, 이는 마치 심산유곡에 홀로 있어도 향기를 품고 있는 난(蘭)의 모습을 닮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김낙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최씨(崔氏), 종조모(從祖母) 박씨(朴氏) 등이 그 효행과 열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아 3효열(孝烈)로 이름이 높다고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김낙곤의 아버지는 세 번이나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며, 효행 또한 뛰어나 죽을 때까지 선친에 대한 성묘(省墓)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김낙곤의 형 김낙진(金洛晉)도 선친을 본받아 문사(文士)로서의 길로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효행도 뛰어났으며, 김낙곤도 77세의 나이였지만 한 겨울에도 삭망(朔望)에 성묘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김익용은 김낙곤에게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원숙한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 기문에는 작성연대가 병자년으로만 되어 있지만, 김낙곤이 1911년과 1917년에 부안에 있는 논을 각각 팔면서 작성한 명문들을 통해서 병자년을 1876년으로 추정하였다. (1911년 김낙곤(金洛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7년 김낙곤(金洛坤)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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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876년 김익용(金益容) 난곡편액후제(蘭谷扁額後題)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丙子三月下澣 金益容 丙子三月下澣 1876 金益容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6년(고종 13) 3월에 김익용이 종족 김낙곤의 집 처마에 난곡이라고 쓴 편액을 달면서 지은 후제. 1876년(고종 13) 3월에 김익용(金益容)이 종족 김낙곤(金洛坤)의 집 처마에 난곡(蘭谷)이라고 쓴 편액을 달면서 지은 후제(後題)이다. 글의 내용은 같은 시기에 그가 지은 난곡기(1876년 김익용(金益容) 난곡기(蘭谷記) 참조)와 거의 동일하다. 뒷 부분만 조금 다를 뿐이다. 김익용은 이 글에서 김낙곤의 집안이 누대에 걸쳐 여러 효자와 열부를 배출하였다고 칭찬하면서, 이는 마치 심산유곡에 홀로 있어도 향기를 품고 있는 난(蘭)의 모습을 닮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김낙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최씨(崔氏), 종조모(從祖母) 박씨(朴氏) 등이 그 효행과 열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아 3효열(孝烈)로 이름이 높다고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김낙곤의 아버지는 세 번이나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며, 효행 또한 뛰어나 죽을 때까지 선친에 대한 성묘(省墓)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김낙곤의 형 김낙진(金洛晉)도 선친을 본받아 문사(文士)로서의 길로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효행도 뛰어났으며, 김낙곤도 77세의 나이였지만 한 겨울에도 삭망(朔望)에 성묘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한 세상에 숨어 살며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고 성내지 않는 김낙곤의 모습이,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 해도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는 꽃과 닮았다면서 찬탄하고 있다. 이 후제는 작성연대가 병자년으로만 되어 있지만, 김낙곤이 1911년과 1917년에 부안에 있는 논을 각각 팔면서 작성한 명문들을 통해서 병자년을 1876년으로 추정하였다. (1911년 김낙곤(金洛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7년 김낙곤(金洛坤)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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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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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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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양자선【청묵】에게 답함 答梁子善【淸黙】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매 사방의 식물들이 녹음이 짙어 가니, 그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에 더욱 깊어지네. 인편을 통해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이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라 나의 고마운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인하여 부모를 모시고 공부하면서 줄곧 건강이 좋음을 알게 되니, 더욱 듣고 싶었던 바이네. 편지지 가득 길고 자세하게 쓴 내용은 명리(名理)의 핵심이 아님이 없으니, 그대 공부가 크게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네.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는다는 것은 내포한 의미가 대단히 넓다네. 마음을 다스린다고 말한다면 뜻을 견지하는 것도 참으로 그 안에 있으며, 몸을 닦는다고 말하면 기운을 함양함도 또한 그 안에 들어 있네. 지금 "몸을 닦아서 기운을 함양함에 이르고, 뜻을 견지하여 마음을 다스림에 이른다."고 한다면 아마도 온당하지 않을 것이네. 또한 "생각이 바르지 않을까 두렵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보이지 않음에도 경계하고 들리지 않음에도 두려워한다50)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일이 없을 때 게으르고 방만한 자가 어찌 생각이 처음 발동할 때 그 기미를 살펴서 검속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존양(存養)하는 공부가 학문의 본령이 되는 까닭이네. 존양과 궁격(窮格), 성찰과 극치(克治), 그 무엇이 하학상달(下學上達)을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사단과 칠정에 대해 논한 것은 옳네. 대저 사단은 기(氣)가 없지는 않지만 주장하여 말한 것은 리(理)이네. 칠정은 리가 없지는 않지만 주장하여 말한 것은 기이네. 주자의 말은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만약 사단이 리에서 발하고 칠정이 기에서 발하는 것을 가지고 사단과 칠정이 자리를 바꾸고 리와 기가 서로 발한다고 이른다면 대단히 옳지 않네. 선유가 '아마도 옳지 않은 듯하다.'고 한 것은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말을 타는 것에 대한 비유는 또한 훌륭하네. 어린 나이의 초학이 이런 정도로 말을 한다는 것에서 재성(才性)의 아름다움과 지향의 올바름에 실로 경탄이 이네. 餞春屬夏。時物蔥倩。懷人一念。於玆尤至。便頭惠幅。出於料外。區區慰沃。曷以勝喩。仍審侍旁學履。連爲佳迪。尤協願聞。滿紙娓娓。無非名理肯綮。可見盛課之長長。治心修身。所包甚廣。言治心則持志固在其中。言修身則養氣亦在其中。今曰修身以至養氣。持志以至治心者。恐涉未穩。又曰恐思慮之不正云云。此戒愼不覩恐懼不聞之意耶。不然。怠惰放倒於無事之時者。安能省檢於思慮幾微之始也。此存養之功。所以爲學問之本領也。存養窮格。省察克治。夫孰非下學上達之謂耶。四端七情。所論是。大抵四端非無氣。而所主而言者。理也。七情非無理。而所主而言者。氣也。朱子之言。其非此意耶。若以四端發於理。七情發於氣。謂四七異位。理氣互發。則大不是先儒之言。恐不可者。其非此意耶。乘馬之喩亦好。妙年初學。能自說得到此。其才性之美。志尙之正。實可欽歎。 보이지……두려워한다 《중용장구》 제 1 장에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보이지 않아도 조심하는 것이요, 들리지 않아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숨어 있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세한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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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형신에게 답함 答魏亨信 가뭄과 장마가 서로 자리를 내주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니, 이러한 때가 되면 그리워하는 마음이 평소보다 배나 된다네. 한 통의 귀한 편지가 바람을 따라 이르니 마음에 위안과 고마움이 이는데 마치 침상을 나란히 하거나 책상을 마주한 것 같으니 90리가 먼 곳인지 잘 모르겠네. 더구나 부모를 모시면서 기쁜 일이 많고 건강도 좋다고 하니, 더욱 멀리서 바라는 마음에 부합하네. 편지지 가득 길고 자세하게 쓴 것에서 깨닫지 못해 분하게 여기고 표현을 못하여 답답하게 여겨30) 격앙하는 뜻이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을 알게 되었네. 이것은 학문이 앞으로 나아갈 노맥(路脈)이니, 서로 헤어진 뒤로 우리 벗의 공부가 반드시 허투루 하지 않음을 알겠네. 편지에서 '헛되이 인생을 보내 초목과 함께 썩어간다.'라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이 일게 하네. 또한 '심지(心地)를 진실되게 하고 각고의 공부를 한다.'라는 말과 '솥을 깨뜨리며 막사를 태우고 삼일의 식량을 지닌다.'31)는 등의 말에서 학문하는 입지(立志)의 참된 법과 요결이 이에 지나는 것이 없음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네. 早寮相禪。金火交遞。此際懷想。有倍平昔。而一角珍函。颺風而至。慰沃感豁。怳然若聯床對榻。不知三舍之爲闊也矧審省侍歡慶。體度茂謐。尤協遠祝。滿幅縷縷。可見憤悱激昂之意。出於至誠。此是進步路脈。吾友別後功夫。必不草草也。所謂虛住百年。草木同腐。令人感歎。又謂眞實心地。刻苦功夫。及破釜燒廬。持三日粮等語。尤覺痛切。爲學立志。眞詮要訣無過於此。 깨닫지……여겨 분비(憤悱)의 분은 마음속으로 뭔가를 통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하고, 비는 입으로 말을 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입으로 말해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거니와,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이로써 세 귀퉁이를 유추해서 알지 못하면 다시 더 말해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솥을……지닌다 원래 살아 돌아올 기약을 하지 않고 결사의 각오로 싸우겠다는 결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항우(項羽)가 진(秦)나라와 싸우러 가면서 하수(河水)를 건넌 뒤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태우고, 사흘 양식을 지니고서 사졸에게 반드시 죽을 것임을 보여 주었던 것[沈船破釜甑, 燒廬舍, 持三日糧, 以示士卒必死]에서 유래한다. 《史記 項羽本紀》 여기서는 죽을 각오로 공부에 매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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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경에게 답함 答文【濟敬】 난초 같은 흉금과 지초 같은 얼굴은 잊히지 않고 내 눈 속에 있네. 뜻밖에 또한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사람이 사랑스럽고 글씨도 사랑스러워 한 자나 되는 거북이나 한 아름의 구슬에 비할 것이 아니니, 고마운 마음을 어찌 견디겠는가. 인하여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하고, 그 남은 힘으로 책을 읽어서 날로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니, 더욱 걱정하던 마음에 위로가 되네. 당기(堂記)의 체제가 우아하지 않아 쓰기에 합당하지 않으니, 보고 나서 쓸데없는 작품이라 치부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학문의 방법은 참으로 한 가지가 아니지만 최초에 제일 먼저 할 것은 뜻을 세움에 있네. 학자가 뜻을 지니는 것은 집에 들보가 있고 농부가 밭이 있는 것과 같으니, 눈앞의 자잘한 일이라도 뜻이 서지 않고서 성취한 자가 없네. 더구나 막중하고 막대한 하늘이나 성인과 같은 공적을 세우는 일임에랴. 온전히 그럭저럭 지내며 뜻이 없는 자는 많고 뜻이 있는 자는 적으니, 값을 매길 수 없는 밝은 구슬을 연못에 던져버리고서 쓸모없는 물건처럼 여긴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우리 벗은 젊은 나이에 매우 뛰어난데, 만 리 앞길에 월로 갈지 초로 갈지는 바야흐로 지금 수레를 출발하는 처음에 달렸으니, 모름지기 맹렬하게 안목을 붙이고 견고하게 발을 내딛어 커다란 책임을 짊어지며 큰 사업을 성취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나는 일찍 이런 뜻이 없지 않았지만 견고하게 유지하지 못하여 드디어 마침내 쇠락하고 시들어져서 슬피 탄식함118)으로 떨어지고 말았으니, 이 일은 또한 어진 후배들에게 복철(覆轍)의 경계가 될 것이네. 그대의 편지에서 때때로 가슴에 새길 가르침을 주라고 하였는데, 나는 절대로 그러한 사람이 못되네. 비록 한 때 위로가 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어찌 실상과 판이하며 정도에 지나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나를 돌아봐주는 두터움에 감동하여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지만, 나 또한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니 자신도 모르게 매우 부끄럽네. 蘭襟芝宇。耿耿在阿睹中。謂襮又承惠幅。可愛人可愛字。非尺蔡拱壁之比。感戢曷勝。仍詢重省康寧。餘力咿唔。日造優境。尤符懸情。堂記體裁不雅。不合入用。覽付散墨如何學文之道。固非一端。而其最初第一着。在於立志而已。學者之有志。如屋之有脊樑。農之有田地。眼前小小事。未有志不立而能有所就者。況莫重莫大希天希聖之功哉。渾區悠悠。無志者多。有志者少。使無價明珠。淪棄在淵。而視同笆離之物。豈不可哀也哉。惟吾友妙齡騰異。前程萬里適越適秦。方在今日發軔之初。須猛着眼目。牢着脚跟以任大擔負。以做大事業。如何如何。義也早不無此志。而持之不固。遂成枯落悲歎之歸。此一事。亦加以爲賢輩前車之鑑耶。若來喩所謂時惠鑴誨之云。萬萬非其人。雖一時慰藉之言。而豈浮實過當至如是耶。感傾眷之厚。覼縷到此。此亦不逮之言。不覺愧愧。 쇠락하고……탄식함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자식들을 경계하여 지은 글에 "나이가 시절과 함께 더해지고 의지가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려서 마침내 쇠락하고 시들어지게 되면 궁벽한 오두막에서 슬피 탄식한들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年與時馳, 意與歲去, 遂成枯落, 悲歎窮廬, 將復何及?]"라고 하였다. 《小學 嘉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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