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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중에게 드림 갑술년(1934) 答崔汝重 甲戌 자유(子由)의 죽음은 참혹하여 차마 말을 못하겠습니다.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음란한 이에게 재앙을 내린다는 말이 거꾸로 시행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진실로 그대의 말씀과 같습니다. 부음을 듣고 처음에 비통함이 가슴을 메워 자리를 설치하고 바라보며 통곡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내일 장례식에 참석하여 스스로 한번 통곡하려고 오늘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했는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미 임시 매장하여 혼백을 모셔놓은 자리조차 없었으니 어느 곳에서 슬픔을 폈겠습니까? 그리하여 곧바로 신주를 설치하게 하고 신주가 설치되면 곡을 하려고 했는데, 신주가 설치되는 사이에 참석한 빈객들과 안부를 주고받다보니 슬픔을 잊어서 곡을 하지 못했습니다. 돌아와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있어 다시 조문을 갖추어 묘로 가서 곡을 하려고 합니다. 생각하건대 저 자유는 도(道)를 구하고 학문에 뜻을 둠이 어찌 그리 절실한지 늘 "오늘날의 풍조 속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로다!"라고 했는데 금일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도를 말살하고 저놈들을 위해 원수를 갚아주려고 하는 것인지 애통하고 애통합니다. "묵제(黙齊)거사김군자유지구(柩)"53)라는 10글자를 명정(銘旌)에 써서 그 뜻을 선양하고 나의 마음을 표하고자 하는데도 할 수 없으니 한탄을 그치지 못합니다. 子由不淑, 慘不忍言.福善禍淫, 倒行逆施, 誠如所喩.聞訃之初, 悲慘塡胸, 欲設位望哭.旋思明當會葬, 自當一慟, 今不必爾, 孰謂其業己藁葬? 又無靈筵洩哀之所乎, 卽使之設靈, 靈旣設一哭而歸, 然設具之頃, 不免與衆賓寒暄酬答.哀散而不能成慟, 追思歉然, 更當操文哭其墓爾.念渠求道志學, 何等切實, 常謂當此風潮, 可恃者此人, 今焉至此.天欲抹殺此道而爲時輩報仇也, 痛哉痛哉! 欲以黙齊居士金君子由之柩十字爲書銘旌, 闡其志表我心, 而不可得, 歎恨不能已也. 묵제(黙齊)거사 자유(子由)의 호가 묵제(黙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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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과경【석량】에게 답함 答魏果卿【碩良】 가을 하늘이 바야흐로 높아가니 그대를 그리는 마음이 참으로 간절하네. 뜻밖에 존부장께서 왕림해 주고 겸하여 그대의 편지를 받으니 너무나도 고맙네. 더구나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하며 학문도 매우 발전한다고 하니, 멀리서 그리는 마음에 매우 흡족하네. 나는 노쇠함과 병이 서로 도모하여 날로 퇴락하고 있으니, 매번 사우(士友)에게 보낼 편지를 쓸 때면 자랑할 것이 없어서 부끄럽네. 편지 끝에 몇 조목의 의문에 대해 물었는데, 이에서 옛날 배운 것을 다시 익혀 부지런히 멈추지 않고 연구하는 뜻을 볼 수 있으니, 이후로 깨닫지 못함을 어찌 걱정하겠는가. 부지런히 노력하게나. "군자는 덕을 생각한다."라는 말은 덕을 숭상하고 덕을 좋아함을 이르니, 그 마음에 보존하고 있는 것이 원래부터 있던 선115)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생각하고서 숭상한 것이 바로 덕이네. 만일 마음에 지닌 바가 아니라면 어찌 생각하겠는가. 이에 나는 말하노니, "나는 이에서 사람과 천지가 일체라는 뜻을 볼 수 있다."라고 하네. 《중용》에서 "만물을 발육시켜 그 높은 도의 경지가 하늘에까지 닿았도다."116)라는 것을 성인의 도라고 하였으며, "하늘이 하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네.117)"라는 것을 지극한 덕의 드러나지 않는 오묘함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에서 사람과 천지가 일체라는 것을 알 수 있네. '머문다[住]'는 말과 '의지한다[倚]'는 같은 뜻이지만, 그러나 불가, 도가가 으뜸으로 삼는 것은 공적(空寂)이기 때문에 '머문다[住]'고 하고, 우리 유가가 주장하는 것은 중용이기 때문에 '의지한다[倚]'고 말하네.118) 정으로 해산물을 보내니, 고맙기 그지없네. 다만 그대 어른에게도 이바지할 음식도 분명히 많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멀리 있는 벗에게까지 보내는가. 마음이 매우 편치 않네. 秋色方高。懐人政勤。謂外尊院府委枉。兼承惠翰。慰感萬萬。矧審重省康寧。學履佳迪。尢叶遠情。義林衰與病謀。日就頽落。每作士友書。愧無以相聞也。紙末数條。可見溫理硏究。舋舋不已之意。率是以徃。何患無得。勉之勉之。懷德如尙德好德之謂。以其所存固有之善。故所思念而慕尙者德也。如非所存。何思念之爲。吾道之吾可見人與天地一體之意。中庸以發育萬物。峻極于天。爲聖人之道。以上天之載。無聲無臭。爲至德不顯之妙。此可見矣。住與倚。自是一義。然佛老所宗者。是空寂故言住。吾儒所主者。是中庸故言倚。海物出於情眖。感戢亡已。但篤老下供具之節。想必浩多。而何以遠及於朋友耶。旋切不安。 군자는……있던 선 《논어》 〈이인(里人)〉에서 공자는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한다.〔君子懷德 小人懷土〕"라 하였는데, 주에서 주자는 "덕을 생각하는 것은 원래 있던 선을 보존함을 이른다.〔懷德 謂存其固有之善〕"라 하였다. 만물을……닿았도다 《중용(中庸)》 제27장에서 "위대하다, 성인의 도여. 물이 넘쳐흐르듯 끝없이 만물을 발육시켜 그 높은 도의 경지가 하늘에까지 닿았도다.〔大哉 聖人之道 洋洋乎發育萬物 峻極于天〕"이라 하였다. 하늘이……없네 《중용》 제33장에 보인다. 원래 《시경》 〈대아·문왕〉에 보이는 구절인데, 《중용》에서 인용하여 지극한 덕의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중용이기……말하네 《중용장구》 제11장에서 "군자는 중용을 따라 세상에 은둔하여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으니, 오직 성인만이 가능하다.〔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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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에게 보냄 경진(1940) 與金振玉 庚辰 애시(哀侍)는48) 나에게 여러 해 동안 서신이 끊겼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강호(江湖)에 사는 나를 잊은 지 오래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 상을 만나 멀리서 부음을 전해오자 비로소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잊지 않았다는 것은 곧 학문을 잊지 않았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옛날 우암(尤庵 송시열)이 임금께 고하여 말씀하시길 "전하께서 참연(斬然 끊어질듯 한 마음)히 상중에 계셔서 다만 일단의 순선한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금일 애시(哀侍)의 마음 또한 그러한 때입니다. 옛날에 오염되었던 나쁜 것들이 자연히 얼음처럼 녹아사라질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 기회로 인하여 독례(讀禮)의 여가에 더욱 격물치지(格物致知)하고 성의정심(誠意正心)의 공부를 더하여 끝내 성현의 학문을 이루는 것이 평소 선장(先丈)께서 가졌던 소망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효를 행하는 것이 어찌 검은 얼굴과 수척한 몸으로 거상(居喪)을 잘하는 것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哀侍於鄙人, 積歲阻信.意謂江湖之忘久矣.今遭大故, 遠致訃音, 始知其不忘也.其不忘我者, 乃所以不忘學也.昔尤庵之告君曰, 殿下斬然在疚, 只有一端純善之心.今日哀侍之心, 亦其時也.舊梁之汙, 自然氷消矣.惟願因此機會, 更加窮格誠正之功於讀禮之暇, 終以成聖賢之學, 是爲奉副先丈平日之望也.而其爲孝也, 豈但面墨身瘠善居喪比也? 애시(哀侍) 어머니 상중(喪中)에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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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경【태주】에게 답함 答任宇卿【泰桂】 편지를 받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답장을 써도 보낼 인편이 없었는데, 어찌 생각이나 했으리, 오늘 용희(龍熙)네 집에 오가는 인편이 있는데도 알지 못할 줄을. 뒤늦게 알아 어쩔 수 없으니 다만 탄식만 이네. 또 들으니 내일 쌍봉(雙峰)댁 인편이 있다고 하기에 이 편지를 써서 보내니, 잘 모르겠네만 옆으로 새지 않았는가.1) 잘 모르겠네만, 세모에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고 경전 공부하면서 줄곧 건강은 좋은가. 힘에 맞게 학업을 익힐 테니 이미 날로 높은 경지에 나아갔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런 소식 듣기를 원하는 마음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형편없는 나는 이전처럼 변함없이 비루하고 저열하며 보잘것없네. 편지에서 리(理)와 이(利)의 구분하기 어려움을 말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이네. 성찰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는 것[切問近思]'이어서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네. 이는 어릿하고 아득하여 형체가 없어서 붙잡을 수 없는 이(理)와 기(氣)에 대해 담론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보내준 편지에서 '은미한 생각이 발하고 일을 행할 때 어떤 것이 리(理)이고 어떤 것이 이(利)인지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참으로 이치를 궁구하는 방법이네. 또한 남헌(南軒) 장식(張栻)이 이른바 '바라는 것이 있으면서 하는 것은 이(利)요, 바라는 것이 없으면서 하는 것은 의(義)이다.'라고 한 것은 또한 매우 분명하게 말한 것이니, 평소에 이 말로서 성찰한다면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네. 보내준 편지에서 '공부를 하는 바탕은 계근(戒謹)과 공구(恐懼)에 있다.'고 한 것은 또한 옳네. 주자가 이른바 '존양의 공부가 정밀하면 취사의 구분이 더욱 밝아진다.'2)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뜻이네. 그러나 전적으로 존양만을 믿어서 궁구하는 공을 보태지 않는 것은 옳지 않으니 반드시 둘 다 공부를 행하여 마치 수레의 두 바퀴나 새의 양 날개 같이 한 연후에 어긋나지 않게 되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질없이 말로만 하는 것은 일에 보탬이 되지 않으니 반드시 몸으로 직접 겪어보아야 그 의미의 실상을 알 수 있네. 더욱 힘쓰시게나. 承書月已。修答無階。誰謂今日龍熙家有來往便而不知耶。晩時無及。只用歎歎。且聞明日有雙峯便。故修此以去。未知不至喬沈耶。未詢歲暮重省餘經況。一衛增重。隨力溫業。想已日就佳境。區區願聞。曷有己已。義林無狀。醜差碌碌。依前而已。所喩理利之難辨。此固衆人通患。省察至此。可謂切問近思。不畔於道矣。其談理說氣。怳惚渺茫。無形響沒把捉之比哉。然來諭所謂念慮之微。事爲之際。精察其何者爲彼。何者爲此。此正是窮理之方。且張南軒所謂有所爲而爲者利也。無所爲而爲者義也者。亦說得分明。日用之間。以此省察。思過半矣。來諭又謂下功之地。在於戒謹恐懼者。亦得。朱子所謂存養之功密。則取捨之分益明者。正此意也。然不可專恃存養。而不加窮索之功。必兩下功夫。如車輪鳥翼然後。可以不差矣。如何。徒言不濟事。必身親經歷。可以知其意味之實。勉勉焉。 옆으로 새지 않았는가 진(晉) 나라 은선(殷羨)이 예장군(豫章郡)의 태수(太守)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즈음에 사람들이 100여 통의 편지를 주면서 경성에 전달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석두(石頭)까지 와서 모조리 물속에 던져 놓고는 "가라앉을 놈은 가라앉고 떠오를 놈은 떠올라라. 내가 우편 배달부 노릇을 할 수는 없다.〔沈者自沈 浮者自浮 殷洪喬不能作致書郵〕"라고 하였다. 은선의 자는 홍교(洪喬)이다. 존양의……밝아진다 《논어》 〈이인(里仁)〉 제3장의 주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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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헌에게 보냄 寄憲孫 근래 잘 지내는지 모르겠구나. 집안일을 맡아하고 집안일을 돌보는 여가에 가끔 책을 읽느냐. 집의 서숙을 깨끗이 청소하고 마을의 수재 한두 명과 능력에 따라 글을 읽어야 하니, 이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책을 끼고 밥을 싸서 일이 없는 날에 영귀정으로 와서 책을 읽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다만 이전처럼 한가롭게 지내면서 날을 헛되이 보내고 이 삶을 헛되이 저버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하다. 옛말에 "부지런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요, 조심함은 몸을 보호하는 부절이다."192)라고 하였는데, 이는 훌륭하고 중요한 말이니 마땅히 가슴에 새겨야 한다. 사람이 조그마한 금이나 자잘한 옥을 얻어도 오히려 아끼고 지켜서 혹시라도 잃어버리고 떨어뜨릴까 걱정하는데, 더구나 이 몸은 얼마나 지극히 귀중한 물건이거늘 아끼고 보호하며 온전히 지킬 방법을 다하지 않겠느냐. 한 마디 말과 한 번의 행동도 조심하지 않는 것은 모두 그 몸을 스스로 잃은 것이며, 한 시나 한 각(刻)193)이라도 조심하지 않는 것은 모두 그 몸을 스스로 떨어뜨린 것이다. 스스로 오만한 자는 타인이 반드시 업신여기며, 스스로 포기하는 자는 사람이 반드시 버리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 간절히 바라노니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니고 게으르고 오만한 습관을 경계하며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그 남은 힘으로 학문에 종사하여 네 할아버지의 만년의 마음을 위로하고 네 자신 앞날의 업을 세운다면 대단히 좋은 일일 것이다. 未知日間好在否。幹家視家之餘。頗能種種讀字耶。淨掃家塾與村秀一二人。隨力咿唔固好。不然。挾冊裏飯。以無事日。來讀詠亭亦好。切不可悠泛因循。虛過此日。虛負此生也。古語曰。勤爲無價寶。愼是護身符。此是格言要語。所當服膺者也。人得片金零玉。猶愛之護之。如恐失墜。況此身是何等至重之物。而可不盡愛護保全之方乎。一言一行之不謹。皆自失其身也。一時一刻之不謹。皆自墜其身也。自慢者人必慢之。自棄者人必棄之。豈不可懼。切望夙興夜寐。存恭畏之心。戒惰慢之習。入孝出恭。餘力學文。以慰乃視晩年之情。以立自家前頭之業。好事好事。 부지런함은……부절이다 《명심보감》에 실린 강태공의 말이다. 한 시나 한 각 한 시는 지금으로 치면 두 시간이며, 한 각은 1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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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보름날 七月之望 천시에 오늘은 바로 중원271)이니 天時是日卽中元백종272)이란 별칭이 속론에서 나왔네 白踵之稱出俗論성긴 오동에서 잎 떨어지니 우물가의 집이요273) 葉落疏梧井上屋올벼에서 꽃 피니 언덕 사이의 마을이로세 花開早稻壟間村세상이 지극히 혼란하니 치세를 그리워할 테고274) 世當極亂宜思治몸이 장차 죽게 되었으니 본원을 깨닫는구나 身到將終可悟原이내 뜻을 오늘밤에 그 누구와 얘기할까 此意今宵誰與語다정한 밝은 달이 산문에 들어가누나 多情明月入山門 天時是日卽中元, 白踵之稱出俗論.葉落疏梧井上屋, 花開早稻壟間村.世當極亂宜思治, 身到將終可悟原.此意今宵誰與語? 多情明月入山門. 중원(中元) 음력 7월 15일을 이른다. 도가(道家)에서 1월 15일을 상원(上元), 10월 15일을 하원(下元)이라고 하며 7월 15일의 중원과 함께 삼원(三元)이라 하여 초제(醮祭)를 지내는 풍속이 있었다. 백종(白踵) 중원(中元)의 별칭으로, 백중(百中), 백종(百種), 망혼일(亡魂日)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긴 ……집이요 당(唐)나라 이백(李白)의 〈증별사인제대경지강남(贈別舍人弟臺卿之江南)〉 시에, "오동잎이 금정에 떨어지니, 잎새 하나 은상에 날리누나.[梧桐落金井, 一葉飛銀床.]"라고 하였다. 세상은 ……테고 《시경집전》 〈조풍(曹風) 하천(下泉)〉을 평한 정자(程子)의 해설 중에 "혼란이 극도에 이르면 절로 치세(治世)를 그리워하게 마련이다.[亂極則自當思治]"라는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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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月夜 맑은 달빛277)이 감호278)의 물결과 같은데 月光澄似鑑湖波좋은 이 밤 아까우니 어이하면 좋을까 惜此良宵可柰何상 위에 황금이 다하니279) 친우가 끊어지고 床盡黃金親友絶머리에 백발이 가득하니 나이가 많기도 해라 頭盈白雪得年多비록 창로가 몹시 무료하다 말하지만 縱云滄老殊無賴봉래280) 신선이 늘 찾아오는 건 기뻐한다오 但喜蓬仙每見過끝없는 세상만사 말할 게 뭐 있으랴 萬事悠悠那足說베게 위 남가의 한바탕 꿈281)에 부치노라 付之枕上一南柯 月4)光澄似鑑湖波, 惜此良宵可柰何?床盡黃金親友絶, 頭盈白雪得年多.縱云滄老殊無賴, 但喜蓬仙每見過.萬事悠悠那足說? 付之枕上一南柯. 달빛 저본에는 '일광(日光)'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을 살펴 일(日)을 월(月)로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감호(鑑湖) 일명 경호(鏡湖)로,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마진(馬臻)이 회계 태수(會稽太守)가 되어 절강(浙江) 소흥(紹興)에 관개를 위해 만든 호수이다. 《通典 卷2 食貨2 水利田》 상……다하니 당(唐)나라 시인 장적(張籍)의 〈행로난(行路難)〉 시에 "그대는 못 보았나 와상 머리에 황금이 다하여, 장사가 안색이 없게 된 것을.[君不見牀頭黃金盡, 壯士無顔色.]"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곤궁한 지경에 처한 것을 의미한다. 봉래(蓬萊)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의 봉래산(蓬萊山)을 가리킨다. 봉래산은 본디 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신선이 거주한다고 한다. 삼신산은 봉래산,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일컫는다. 남가(南柯)의 한바탕 꿈 덧없는 인생을 비유하는 말로, 당(唐)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이 대낮에 느티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괴안국(槐安國)에 들러 공주에게 장가들어 남가 태수(南柯太守)를 지내는 등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꿈속의 괴안국이 바로 나무 밑동의 개미굴이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類說 卷28 南柯太守傳》 月:底本에는 "日".문맥을 살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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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일에게 답함 答奇會一 영남의 풍기(風氣)는 여러 도와 비교가 되지 않으니 비록 세도가 쇠미해지는 시기일지라도 석유(碩儒)와 명사(名士)가 간간이 서로 이어져 선행을 즐기고 학문을 좋아하는 풍속이 성대합니다. 아우는 10년 동안 벗들과 헤어져 홀로 지낸 터라 식견이 열리고 비루함을 씻어낸 것이 적지 않았지만, 다만 못나고 졸렬하여 영남의 벗들에게 비웃음을 받는 것 또한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답문류편(答問類編)》45)은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형과 뇌룡정(雷龍亭)에 모여 2, 3일 동안 살펴보았지만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분주하여 단지 5, 6권만 열독하고 그쳤습니다. 애산 형의 생각은 여러 해에 걸쳐 편집한 나머지 서둘러 일을 끝마치려고 했지만, 아우는 그와 같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평생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인하여 정자(程子)의 "《역전(易傳)》에 아직 주석을 붙이지 않은 것은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근력이 아직 쇠하지 않았으니 행여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기를 바래서이다."46)라는 말을 들어 고하였더니 애산 형도 자못 그렇게 여겼습니다. 지난번에 형의 편지를 받드니 간행할 의향이 있다고 하였는데 근래에는 생각이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감히 애산 형에게 고했던 것을 다시 알려드리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만둘 수 없다면 반드시 먼저 한자리에 모여서 충분히 상의하고 충분히 교감(校勘)을 한 뒤에야 착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께서 혜량(惠諒)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嶺中風氣。非諸路之比。雖在世衰道微之日。而碩儒名士。間間相望。樂善好學。蔚然成風。弟十年離索之餘。其所以開豁淘滌者。不爲不多。而但無狀醜劣。爲貽笑於嶺中。則想亦不少矣。答問類編與艾山兄聚於雷龍亭。奉閱二三日。而驚於應接。所閱只到五六卷而止耳。艾兄之意以積年編摩之餘。急欲斷手。弟以爲不必如此。此是吾儕平生事。因擧程子所謂易傳。未傳自量筋力未衰。尙覬有少進之語。而告之。艾兄頗然之。向承兄敎。有刊行之意。未知近意若何。敢以告於艾兄者。復以奉告。如何。無已則必先一席爛商。十分讎校然後。可以下手也。惟在兄諒。 《답문류편(答問類編)》 조선 순조(純祖)~고종(高宗) 때의 학자인 기정진(奇正鎭)이 옛 지기 및 문인들과 서찰로 문답한 학문적 내용을 분류해 엮은 책으로 15권 6책으로 이루어졌다. 1902년 단성(丹城)에서 기양연(奇陽衍)ㆍ정재규(鄭載圭)ㆍ정의림(鄭義林) 등 문인들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역전(易傳)》에……바래서이다 《근사록》 권3 〈치지(致知)〉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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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송진택(宋鎭澤) 의송(議送)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酉十一月日 宋鎭澤 巡使 癸酉十一月日 宋鎭澤 全羅道觀察使 전라북도 전주시 巡使[着押] 2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73년(고종 10) 11월에 송진택(宋鎭澤)이 순찰사(巡察使)에게 올린 의송(議送). 1873년(고종 10) 11월 전주(全州)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순찰사(巡察使)에게 올린 의송(議送)이다. 문서가 훼손되어 소지를 올린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소장처와 그 내용으로 미루어 송진택으로 추정하였다. 송진택은 태인현에 사는 이태한(李太漢)의 투총(偸塚)에 대해 여러 번 관에 정소하였다. 태인현감이 보고한 도형 보장(圖形報狀, 즉 첩정)에 대해 "송민(宋民)의 전후 문서들이 분명하므로 이민(李民)의 억지를 알 만하니 즉각 독굴(督掘)하라"는 순찰사는 제음(題音)을 내렸다. 순찰사의 지시로 태인현감이 차사를 보내 이태한을 체포하려고 했으나 이태한은 요리조리 도망하며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에 송진택은 순찰사에게 다시 정소하여 관에서 독굴해 달라고 하였다. 순찰사는 이전의 제음대로 독굴하라고 산재관(山在官, 즉 태인현감)에게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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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일에게 보냄 與奇會一 두 서생(書生)이 이미 돌아갔으니 누가 오늘 다시 노형(老兄)이 손수 쓴 서한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서글프면서도 위로가 되는 것을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경부담판(京部談辨)〉56)을 삼가 읽어보았습니다. 공정하고 사심 없는 본성이 조금도 꺾이지 않았으며 엄밀하고 강직함이 가을 서리처럼 늠름하였습니다. 비록 쓰러질 듯 나약하여 죽을 날이 가까웠지만 한 올의 실 같은 선비의 기상이 죽지 않았습니다. 서한을 통해 형의 체후가 편안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험난한 일을 두루 겪은 것이 이토록 오래되었으니 노쇠한 기력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가호(加護)하여 사문(斯文)이 다행스럽게 여기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백수형(白水兄)의 병이 매우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치달아 마음을 진정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은 덜하거나 심하거나 하는 증상이 또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달려가서 안부를 살피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아우는 병이 거듭된 끝에 피곤하고 초췌한 것이 고질이 되었으니 아마도 다시는 평소 모습을 되찾지 못할 듯합니다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어찌하겠습니까. 요즘 세상 소식은 근래 들은 바가 있습니까? 하늘이 내린 재앙을 거두려는 마음을 지녀 혹시 국운(國運)이 융성해지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굴삼려(屈三閭)가 말한 "오래 살아서 세상을 초탈하고자 한다."57)는 것이 애초에 요즘 제가 지닌 뜻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형은 서로 소식을 들었습니까? 얼마 전 돌아오는 길에 구동(龜洞 최익현(崔益鉉)이 살던 곳)으로 들어가 조문하였는데 한쪽 사람들의 시끄러운 의론을 그치게 하였습니까? 《면옹유고(勉翁遺稿)》는 한창 간행하려고 계획한 것은 과연 그리했는지요? 비문(碑文)의 정본(定本) 또한 얼마나 산삭(刪削)하여 간추렸는지 보셨습니까? 쌓인 회포가 산처럼 높지만 일일이 고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날씨가 서늘해지거든 한 번 나아갈 계획입니다만 노정(路程)이 성부(城府)를 지나기가 매우 불편하니 어쩌겠습니까. 형이 때에 맞추어 체후를 잘 보전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二生旣告返矣。誰謂今日得復見老兄手筆耶。悲慰不可言。京部談辨。謹已讀之。正大之情。不少沮撓。而嚴密剴直。凜如秋霜。雖靡靡孱弱。幾乎垂盡之日。而一縷士氣。爲不死矣。仍審兄候有不安之節。備經險難。至此之久。而衰老氣力。安得不然。千萬加護。以幸斯文。白水兄所愼。聞甚沈重。馳慮之至。不能定情。未知日間歇劇又何如。未能趨走相省。恨恨弟積病之餘。羸瘁成痼。恐不得復作平時人。勢也何爲。時耗近有所聞否。未知天心悔禍。而祚宋或有其日耶。屈三閭所謂長生度世者。未始非區區今日之意也。艾兄有相聞否。向日回程入吊龜洞。而有以破一邊嘵嘵之口耶。勉翁遺稿方營刊始。果然。而碑文定本。亦見其有多少刪畧耶。積懷如山。有難枚告。第待凉生。爲一造計。而但路過城府。極爲不便。奈何。只祝兄體爲時保重。 〈경부담판(京部談辦)〉 《송사선생문집(松沙先生文集)》 권12 〈잡저〉에 수록되어 있다. 오래……한다 이 내용은 주자가 유덕수(劉德修)에게 답한 편지의 "굴평(屈平)이 이미 지나간 것은 어쩔 수가 없고 앞으로의 일은 알지 못하니, 오래 살아 속세를 초탈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다.【屈平, 以往者不及, 來者未聞, 而有長生度世之願.】"라는 구절을 원용하였다. 《晦庵 續集 卷4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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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선【우종】에게 보냄 與金乃善【佑鐘】 예는 생략합니다. 며칠 전 제 종자(從者)가 와서 말하기를, 존가(尊駕)의 행렬이 제가 사는 부근 점사(店舍)에 이르렀으나 비에 막혀서 잠시 머물러 있다가 곧 처소로 돌아가셨다고 하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고 나아가 뵙고 정담을 나누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또 노형(老兄)께서 근래 이사를 하실 계획이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자세히 헤아리고 정밀하게 살펴보셨을 터이니 주변 사람이 간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천박한 저의 견해로는 반드시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릇 이사하는 도리는 마을이 어진 곳을 택하거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환경을 택하거나 이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정(事情)이 크게 다르거나 아주 부득이한 까닭이 아니고 그저 백 보와 오십 보 사이에 불과하다면 어찌 선조의 유물이 있는 땅을 가볍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일은 어진 마을을 택하든 살아가는 환경을 택하든 과연 지금 있는 곳보다 손실이 없을 수 있을지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물며 이렇게 험난한 세월에 당장 살아갈 방도가 더욱 힘들고 고생스럽건만, 오가는 비용과 토목(土木)의 역사(役事)를 어떻게 충당하고 어떻게 마치겠습니까. 훗날의 화복은 본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눈앞의 이해(利害)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어찌하여 이리도 잘못 헤아리십니까. 생각건대 노형(老兄)께서 가난과 곤궁함에 마음이 흔들려 계획을 세우고 마음속으로 계산해 온 날들이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좋은 뜻으로 하는 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심이 담긴 계책도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상태가 되셨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민간 속담에서 말하는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은 알지 못한다."라는 것이 어쩌면 여기에 가까울 듯합니다. 무릇 중요한 일은 한번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천 번 만 번 잘 헤아려 살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省禮。日昨。鄙從來道。尊駕行至鄙邊店舍。爲雨所滯。滯留少頃。旋爲返次云。追念耿耿。恨未得晉拜穩晤也。且道老兄近爲搬移計云。想必有詳量精察。非傍人所可與者。然以淺見。切不能無疑。夫搬移之道。或擇里仁。或取生理。不出二者而已。然非大端懸絶及甚不得已之故。而只是百步五十步之間。則豈可輕棄舊物之地哉。今日之事。以擇以取。吾不知其果能無損於見在之地。而况此險歲。目前計活。尤爲艱辛。其來往之費。土木之役。何以支了耶。日後禍福。固所不知。而目前利害。明若觀火。何其錯料若是也。想老兄爲貧窮所動。經營思算。爲日久矣。是以良言不入忠謀難售。吾恐里諺所謂知得不知失者。或近之矣。夫機事一失。後悔莫追。惟千萬諒之何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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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중에게 보냄 與朴學仲 경립(景立)이 담헌(澹軒)에서 돌아왔을 거라고 짐작하고 사온(士溫)을 보내 안부를 묻게 했더니, 사온(士溫)이 길을 가던 중간에 경립을 만나 함께 돌아왔습니다. 한창 걱정스럽던 시기에 마음이 매우 흡족하였습니다. 제게 끊임없이 물으시니 노형(老兄)께서는 역시 예학(禮學)에 대하여 매우 상세하고 세밀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용렬하고 천박한 사람이 어떻게 견줄 수 있겠습니까. 제 의견으로는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과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이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주장에 비해서 더욱 온당한 듯합니다. 이미 "시기가 지나면 담제(禫祭)67)를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면, 담제를 지내는 달에 대상제(大祥祭)를 지내는 것은 시기가 지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날을 가려 대상제를 지내고 그 다음에 중순이나 하순에 다시 날을 가려 담제를 지내는 것은 무엇이 안 되겠습니까. 왕숙(王肅)이 "그달 안에"라고 한 것 또한 하나의 증거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시기가 지나면 담제를 지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어찌 공제(公祭 국가의 제사)와 사제(私祭 사가(私家)의 제사)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상중에는 담제를 지내지 않는다는 주장은 본래 부모의 상을 동시에 치르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찌하여 가벼운 상의 장례를 치른 뒤 무거운 상의 담제를 지내지 않겠습니까. 그렇더라도 가벼운 상이 만약 장례를 치르기 전이라면 무거운 상의 담제를 지낼 수 없습니다. 2년이 되는 날 이미 고사(告辭)를 했다면 대상제(大祥祭) 때의 축문(祝文)은 차이가 없을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모두 천박한 견해이고 근거 없는 말이니 노형께서 다시 지당한 논의를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축하드릴 만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노형께서 근래 병에 매여 계시니 누구인들 염려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문을 닫고 홀로 지내며 쓸데없는 빈객을 맞지 않고 쓸데없는 얘기를 듣지 않으며 오직 성현의 서적에만 침잠 반복(沈潛反復)하실 뿐입니다. 이 때문에 지식이 날로 열리고 사유(思惟)가 날로 넉넉해지니 시력을 일찍 잃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는 주부자(朱夫子)의 말을 알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두 자제가 아침저녁으로 감화를 받는 기회가 되는 것은 어찌 한량이 있겠습니까. 위로가 됩니다. 意景立自澹軒還。送士溫候之。士溫行到中路。逢景立俱還。企慮之際。甚愜情緖。俯詢縷縷。足見老兄於禮學。亦甚詳密。顧此疏慵淺劣。何足以上下也。鄙意尤菴同春。比沙溪說。似益穩當。旣曰過時不禫。則禫月行祥者。不可謂過時矣。卜日行祥。其次中旬及下旬。又卜日行禫。何所不可乎。王肅所謂是月之中者。亦不可謂非一副證佐矣。且過時不禫一也。豈有公祭私祭之別乎。喪中不禫。本以父母偕喪說也。豈以輕喪葬後不行重喪之禫乎。然雖輕喪若其葬前。則不可行禫也。再期日。旣有告辭。則祥時祝文。似無異同矣。如何如何。此皆淺見臆說。幸老兄更示以至當之論。第有一說可奉賀者。老兄近來爲病所縶。孰不悶慮然閉戶獨居。不接閒人客。不聞閒說話。而所沈潛反復。惟是聖賢書籍而已。是以知識日開。神明日腴足見朱夫子却恨盲廢不早之語也。况爲令允兄弟日夕薰染之地者。豈有量哉。慰仰。 담제(禫祭) 삼년상에서 25개월이 되는 달에 대상제(大祥祭)를 지낸 뒤 한 달을 건너 27개월째에 지내는 제사이다. 담은 담담한 듯 평안하다는 뜻으로, 대상제를 통해 실제적인 삼년상의 과정을 마무리함으로써 부모에 대한 친애(親愛)의 정감을 다할 수 있었던 효자(孝子)의 마음을 표상하는 상제(喪祭)이다. 담제를 지내고는 음악을 연주하고 정사(政事)에 복귀하는 등 상례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일반적으로는 정현(鄭玄)의 주장에 따라 27개월째에 지내지만 대상제와 동일하게 25개월이 되는 달에 지낸다는 왕숙(王肅)의 이설(異說)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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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오【현옥】에게 답함 答金豐五【顯玉】 《답문편(答問編)》70)은 이미 일을 마쳤다고 들었습니다. 그 애를 쓴 마음과 진심 어린 정성이 사람으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형과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아마도 여러 무덤이나 책 상자에 들어있는 자질구레한 시문(詩文)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발문(跋文)을 지으라는 부탁은 아우가 적절한 사람이 아니니 어찌 감히 그렇게 하겠습니까. 대곡(大谷)71)이 죽은 뒤 이미 해가 세 번 바뀌었지만, 체백(體魄)이 여전히 낮은 땅속에 있으니 이것 또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형께서 천 리 밖에서까지 글을 거두어들인다고 들었습니다. 풍도(風度)와 의용(儀容)이 가상(可尙)하여 구름 속의 방장산(方丈山)이 한 층 더 높아졌습니다. 유문(遺文)은 몇 권이나 편집하셨습니까? 보고 싶은 마음이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정도일 뿐만이 아닙니다. 보내주신 정사시(精舍詩)와 서문(序文)을 여러 번 읊조리니 완연하기가 마치 이 몸이 방장산 위에 있자니 산의 기상(氣象)이 천만 가지로 변하여 빽빽하게 주변을 두르고 있는 듯합니다. 방장산은 평소에 선옹(仙翁)의 굴혈(窟穴)로 세상에 이름이 났지만, 하루아침에 문교(文敎)가 밝아지고 도리를 강설하는 지역이 되어 천고에 황당한 이야기를 깨트리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조정에 나가지 못하는 선비는 산림(山林)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산림의 즐거움을 어찌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겠습니까. 노형(老兄)께서는 어떤 마음과 어떤 능력을 지녔기에 근실하게 고인을 따르는 것이 매사에 이처럼 우뚝한 기상을 보이십니까? 내년에 가려는 계획을 따르게 된다면 방장산의 뛰어난 천석(泉石)이 혹여 저속하고 비루하다고 저를 가로막지나 않을까요? 애초에 형의 경률(瓊律 상대방의 시)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올리고 싶었지만, 인편의 재촉을 받아 우선 그만두었습니다. 答問編聞已了緖。其苦心血誠。令人斂衽。非兄與艾山。此書幾不爲諸冢巾衍中散墨耶。跋語之託。弟非其人。豈敢爾也。大谷之沒。三燧已改。而體魄尙在淺土。此亦吾儕之責也。奈何奈何。聞兄千里收文。風義可尙。雲裏方丈。更高一層矣。遺文編得幾卷耶。願見之心不啻飢渴。俯示精舍詩若序。諷詠數回。完然若身在方丈山上。氣像萬千。森羅左右也。方丈素以仙翁窟穴。有名於天下。豈知一朝爲文明講道之區。而破其千古荒唐之說耶。士之不得於朝者。山林。然山林之樂。豈人人所可得。老兄以何心力每事勤遵古人若是磊落耶。來歲行。若如所料。則方丈泉石之勝或不以俗累見拒耶。瓊律初欲賡呈爲便人所促姑爲中止耳。 답문편(答問編) 《답문유편(答問類編)》을 가리킨다. 기정진(奇正鎭)이 옛 지기 및 문인들과 서찰로 문답한 학문적 내용을 분류해 엮은 책으로 목판본이며 15권 6책으로 이루어졌다. 1902년 단성(丹城)에서 기양연(奇陽衍), 정재규(鄭載圭), 정의림(鄭義林) 등 문인들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대곡(大谷) 김석귀(金錫龜, 1835~1885)의 호이다. 본관은 김해(金海), 전라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맹자(孟子)》에 통달하여 '김맹자(金孟子)'로 불렸다.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담양군 대전면 대곡리(大谷里)로 이사하였고, 27년간 기정진의 문하를 왕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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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해【문규】에게 답함 答朴景行【文奎】 질문 : 제가 생각건대, "하루 종일 부지런히 한다."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또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조심한다."161)고 하였으니, 대개 해가 저물면 사람은 노곤해져서 어두운 기운이 쉽게 탑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말한 것입니다. 철원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즉 "옛날 병오년 봄 순강(旬講)162) 때 오재덕과 위의 저처럼 논하였는데, 으레 선생께서 '그렇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또한 다른 뜻도 있습니다. 대개 옛사람이 정밀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밤중에 있습니다. 장자(장재)가 말한 '낮에는 함이 있고 밤에는 생각함이 있다.'163)라 하였으니 이 때에 더욱 두려워하며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공이 하늘을 우러러 생각하기를 밤으로 낮을 이어서 다행히 터득하면 그대로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으니,164)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는 것이 어떠하였겠습니까."답변 : 두 사람 말이 괜찮네. 文奎以爲終日乾乾則足矣。又曰夕愓若。盖日暮人倦。昏氣易乘。故特言之。澈源以爲昔在丙午春旬講時。與吳在德論之如此。而例蒙先生之曰可矣。而今思之。亦有一義。盖古人精思。多在夜中。張子所謂晝有爲夜有思者也。於此時。尤不容不惕厲也。周公之仰而思之。夜以繼日。幸而得之。坐以待朝。其惕若。爲何如也。兩說無妨。 하루 종일……조심한다 《주역》 건괘(乾卦) 구삼효(九三爻) 문언(文言)에 "군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쓰고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君子終日乾乾夕惕若 厲 無咎〕"라 하였다. 순강(旬講) 열흘에 한 번 여는 강독회를 말한다. 낮에는……있다 《장자전서(張子全書)》 권3 〈유덕(有德)〉 제12에서 "낮에는 열심히 하는 일이 있고, 밤에는 얻는 점이 있어야 하며, 숨을 쉴 때나 눈을 깜빡할 사이에도 존양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晝有爲, 宵有得, 息有養, 瞬有存.]"라고 하였다. 주공이……기다렸으니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주공은 세 왕의 덕을 겸비하여 그분들이 행한 이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였다.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 생각하기를 밤으로 날을 이어서, 다행히 터득하시면 그대로 앉아 날이 새기를 기다리셨다.[周公思兼三王, 以施四事。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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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홍【기용】에게 답함 答朴士洪【淇容】 면주(綿州)129)는 하늘 위에 있는 것도 아닌데 그리워하는 그대는 이처럼 아득히 멀리 있는가. 이슬에 젖은 갈대와 구름에 덮인 나무가 매일 그리움을 일으키네. 낙경이 오는 차에 그대 편지를 받았는데, 나의 위안은 한곡(寒谷)에서 해를 보는 것130) 그 이상이니, 고마운 마음 어찌 그치겠는가. 인하여 부모를 모시고 책을 읽으면서 건강이 매우 좋다고 하니 더욱 듣고 싶었던 바이네. 나는 정신이 소진되어 다만 속이 텅 비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았는데, 아직도 이 세상에 머물고 있네. 그밖에 다시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멀리 있는 붕우에게 들어서 보여주겠는가. 참으로 대단히 부끄럽네. 물을 길어오고 짚신을 짜는 것은 아들이 해야 할 일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인데, 그 일을 하지 않고 한갓 책만 읽는다면 과연 어디에 쓰겠는가. 성인이 말한 '부모를 모시고 남은 힘으로 글을 배우라.'131)는 것은 참으로 이런 뜻이네. 한편 평소에 자신에게나 집안일에 무익한 것을 헤아려야 하니, 예를 들면 한가하게 출입하거나 한가하게 대화하는 것 등은 일체 통렬하게 끊어버리고, 익힌 것을 심신(心身)과 성정(性情)의 사이에 증험해보고 움직이고 쉬거나 말을 하고 행동할 즈음에 체험하여 성인의 말로 하여금 종이 위에 적혀진 헛된 문장에 이르지 않게 한다면 많은 스승132)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멀리 있는 벗이 나를 멀리하지 않는 정성에 감동하여 일부(一副)의 어리석은 말을 해주니, 잘 모르겠네만 남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는 말이라고 여겨서 배척하지는 않을 것인가. 綿州不在天上。而所懷伊人。若是闊遠耶。露葭雲樹。無日不與懷。樂卿來。承此惠存。區區慰豁。不啻若寒谷之見陽。感感何已。仍審奉親讀書。候節珍勝。尤副願聞。義林神耗精脫。只有枵然一形殼。尙爾住泊此世耳。餘外復有何說。可以擧似於遠朋哉。良愧良愧。汲水捆屨。此是子職之所不容已者。不修其職。而徒爾讀書果何用哉聖人所謂餘力學文。正此意也。第於日用間。度其無益於身事家事者。如間出入閑說話之類。一切痛斷。驗之於身心性情之間。體之於動靜云爲之除。使聖人言語不至爲紙上虛文。則不患無餘師。如何如何。感遠友不遐之勤。敢以一副瞽曚之說及之。未知不以不恕之言而見斥否。 면주(綿州) 무안현의 옛 이름이다. 한곡에서 해를 보는 것 한곡은 연(燕)나라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추워서 곡식이 자라지 못하는데, 추연(鄒衍)이 옥률(玉律)을 불었더니 따뜻한 기운이 일어 마침내 화서(禾黍)가 자랐다고 한다. 《列子 湯問》 여기서는 상대방의 편지가 추연의 옥률과 같다는 의미이다. 성인이……배우라 앞의 〈여정원경(與鄭元卿)〉에 보인다. 많은 스승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도는 대로와 같은 것이니, 어찌 알기 어렵겠는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이 병일 뿐이다. 그대가 돌아가서 찾아본다면 많은 스승이 있을 것이다.〔夫道若大路然 豈難知哉 人病不求耳 子歸而求之 有餘師〕"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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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내영【영주】에게 답함 答朴乃英【瑩柱】 만나보지 못한 것이 오래되었으니 그리운 마음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이에 한 통의 편지를 받으니 참으로 진귀한 보물과 같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이 신령이 보호하여 좋다고 하니 더욱 듣기 바라던 바이네. 나는 병든 모습이 이전과 같으니 달리 할 말이 없네. 보내준 편지에서 눈은 피상적인 것에 내달리기만 하고 마음은 핵심에 어둡다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겸손한 말이네. 그러나 또한 어진 그대에게 전혀 이런 병이 없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네. 나는 그대에게 매번 이것으로 한번 충고해주려고 하였네. 지금 그대는 스스로 그러한 병을 알고 있는데다가, 또한 차의(箚疑)의 몇 가지 조목을 편지 끝에 써서 보냈는데 피상적인 것에 내달리는 습관을 없애고 핵심의 지경에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으니, 위안이 됨이 그치지 않네. 옥백(玉帛)과 종고(鐘鼓)는 이미 예악에 쓰이는 것이지만 그 쓰임만 있고 근본이 없으면 장차 어떻게 쓰임이 되겠는가. 만약 '소나무를 심고 잣나무를 심은 뜻'120)에 대해 묻는다면 분명 대답해 줄 말이 없을 것이지만, 과연 그대 편지처럼 그 말을 견강부회함이 어찌 '백성으로 하여금 전율케 하려는 것.'이란 말과 비슷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겠는가. 관중은 그릇이 적지만 공은 크다고 하였는데,121) 그릇이 적다고 해서 그 큰 공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이 또한 성인의 지극히 공정한 마음이네. 不相見久矣。懸懷曷任。一書眞百朋也。因審侍省節宣。神相佳吉。尤協願聞。義林病牀如前。無足提喩。示中眼走皮毛。心昧肯緊。此固撝謙之語。然亦不可謂賢者全無此病也。區區和相向。每欲以此爲一奉規矣。今賢者自知其病。又有箚疑數條。錄在紙尾。其祛皮毛之習。而入肯緊之域。可以見矣。慰仰亡已。玉帛鍾鼓。旣是禮樂之用。則有其用而無其本者。將何以爲用哉。若問以松以柏之義。必無辭可對。果如來諭。又安知傳會其說。不似使民戰栗者乎。管仲器則小而功則大。不可以器之小而不與其功之大。此亦聖人至公之心也。 소나무를……뜻 《논어》 〈팔일(八佾)〉에 "애공이 재아에게 사에 대하여 물으니, 재아가 대답하기를, '하후씨는 소나무를 사용하였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사용하였고,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사용하였으니, 백성들이 전율을 느끼게 하도록 해서였습니다.'[哀公, 問社於宰我, 宰我對曰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曰使民戰栗.]"라고 하였다. 관중은……하였는데 《논어》 〈팔일(八佾)〉 제25장에서 "관중의 기국이 작구나!〔管仲之器小哉!〕"라고 한 것과 〈헌문(憲問)〉 제17장에서 자로(子路)가 관중은 인(仁)하지 못하다고 하자, 공자가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하되,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라고 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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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 경방에게 답함 答從弟敬方 지난번 헤어져 돌아온 뒤에 편지를 두 번이나 받았으니 연달아 읽어보며 위안이 되었네. 더욱이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이 줄곧 좋다고 함에랴. 종형(나)는 거처를 떠나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며 사방에 친척이 없는데, 질병으로 인한 근심과 고통이 이따금 서로 기인하여 일어나니, 다만 매우 슬프고 처량하네. 옛날 우리 아우와 함께 거처할 때는 아침저녁으로 충고해주어 그 효과가 적지 않았는데, 지금은 귀는 있지만 나의 허물을 듣지 못하네. 더구나 마음과 힘이 노쇠하여 쉽게 무너져 풀어져버리고 진작하여 분발하기는 어려움에랴. 오호라! 우리 종제는 조금도 기운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또한 이처럼 기상이 장대하네. 비록 그러나 인생 사업의 최종 결정은 전적으로 만년의 행적에 달렸으니, 다만 더욱 주의하고 노력하여 '그 허물을 적게 한다.[欲寡其過]'166)는 네 글자로 평소 목표를 삼는 것이 어떻겠는가. 차분히 살펴보니, 우리 아우는 근래 어진 벗들을 종유하면서 오래 배운 학업을 익혀서 집안의 기대에 매우 부응하여 내 앞 항렬이 성취하지 못한 기대에 위안을 주는 것이 크네. 다만 가문 안의 화목하는 도리에는 응당 다시 강구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수하 사람들이 조심하지 않는 행동으로 말미암았지만 그 책임은 그대와 나에게 돌아오지 않겠는가. 《시경》에서 "형과 아우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 서로 어긋남이 없네."167)라고 하였는데, 무릇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만나더라도 급격히 격노하지 말고 모름지기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로 차근차근 알아듣게 깨우쳐서 뉘우치게 만드는 것이 어떻겠는가. 頃也分歸後。承手書者再。續續披慰。矧審侍履凡百。一直沖茂乎。從兄離寓孤索。四無親戚。而疾病憂苦。種種相仍每自顧影。只切悲悵。昔與吾弟同處時。晨夕警責。其力不少。今則有耳。而不聞吾過。況衰老心力。易頹弛而難振厲者耶。嗚乎。吾從行零星無幾。而又且落落若是。雖然。人生事業。究竟結案。專在晩節。惟加意增勉。以欲寡其過四字。爲日用家計如何。竊覵吾弟近年追逐賢友。溫理舊業。甚副家戶之計。而慰我先行未就之志願者。大矣。但於門內雍睦之道。似當更有講究處。此是手下人不愼之擧。而其責則不歸於君與我乎。詩曰兄及弟矣。式相好矣。無相猶矣。凡遇不如意底事。勿遽生激怒。而須以溫言順說。諄諄開喻。期於回悟如何。 그 허물을 적게 한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大夫) 거백옥이 공자에게 사자(使者)을 보냈을 때에 공자가 "선생께서는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물으니, 사자가 "선생께서는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지만, 아직 잘하지는 못합니다.[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형과……없네 《시경》 〈사간(斯干)〉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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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원【노정】에게 답함 答朴允元【魯貞】 한 통의 편지가 뜻밖에 이르니, 어찌 다만 귀한 공청이나 수벽134)에 그치겠는가. 편지를 받고서 부모를 모시면서 철마다 건강이 좋다고 하니 더욱 걱정하던 마음에 위로가 되네. 다만 잘 모르겠네만, 근래 그대의 학과(學課)는 어떻게 절도 있게 잘 해나가 날로 달로 발전하는 효과가 있는가. 나는 이전 편지를 보낼 때와 완전히 같다네. 대저 공부는 다만 치지(致知)와 거경(居敬)에 달려 있는데 치지하지 않으면 거경할 수 없고 거경하지 않으면 치지할 수 없으니, 수레의 두 바퀴나 새의 양 날개처럼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이 되어야 성취할 수 있네. 윤원은 또한 이를 응당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되니, 반드시 평소하는 일에서 한가하게 출입하거나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등은 완전히 통렬하게 끊어버리고 문을 닫고 휘장을 내린 뒤에 침잠하여 연구하고, 어진 사우 및 나보나 나은 자를 종유하여 잘잘못을 분별하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구범이 말하기를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을 보배로 삼아야 한다."135)라고 했는데, 그 주에서 "인(仁)은 사랑함이다."라고 하였으니, 사랑한다[愛]고 말하지 않고 인하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인(仁)자는 뜻이 상대적으로 깊고 애(愛)자는 뜻이 상대적으로 얕기 때문이네.질문 :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며, 상(喪)은 형식적으로 잘 다스려지기 보다는 차라리 슬퍼하여야 한다."136)라고 하였는데, 예를 말하면 상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거늘 특별히 그 상을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예는 길례로서 말하였으며, 상은 흉례로서 말하였기 때문이네. 一書出於望外。奚啻空靑水碧之爲貴也。承審侍旁節宣。體事衛重。尤叶懸情。但未知近來盛課。作何如節度。而有日邁月征之效否。義林一如向奉時而已。大抵功夫。只在致知居敬。非致知無以居敬。非居敬無以致知。如車之兩輪。鳥之兩翼。相須交資。乃可有爲。想允元亦應諒之。必於日用事物上。如閑出入閑說話。一切痛斷。杜門下帷。沈潛硏究。從賢士友及勝已者。以辨其得失。如何。舅犯曰。仁親以爲寶。註曰仁愛也。不曰愛而言仁。何也。仁字義較深。愛字義較淺。禮與其奢也。寧儉。喪與其易也。寧戚。言禮則喪亦在其中。特言其喪何也。禮以吉禮言之。喪以凶禮言也。 공청이나 수벽 한약 재료의 하나. 구범이……한다 《대학장구》 전 10장에 보인다. "구범이 말하기를 '도망 온 사람은 보배로 여길 것이 없고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을 보배로 여긴다.' 하였다.[舅犯曰:亡人無以爲寶, 仁親以爲寶.]" 예는……한다 《논어》 〈팔일(八佾)〉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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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헌에게 보냄. 寄憲孫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반드시 귀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으며 반드시 부유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모름지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귀함과 부유함은 천명이 있으니, 구한다고 반드시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타인에게서 구할 것도 없고 밖에서 찾을 것도 아니며 다만 나의 본성을 따르고 나의 행실을 닦기만 하면 되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몸가짐을 삼가고 조심하며 집에 거처함에 효도하고 우애하며 게으르지 않고 방탕하지 않으며 죄를 짓지 않고 허물을 만들지 않아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자신의 집을 지킨다면 이것이 이른바 좋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평소에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항상 겸손과 공손으로 자처하고 진심을 다하여 신의로 상대하며, 절대로 업신여기는 생각과 분노하는 낯빛으로 마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에 온당하지 않은 것이 있거든 마땅히 자신을 책망하고 구차하게 남을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책망하는데 힘쓰면 원망이 더욱 쌓이고 자신을 책망하는데 힘쓰면 덕이 날로 나아가니, 그 득실의 거리가 과연 어떠하겠느냐. 맹자는 말하기를 "지극히 성실하고서 감동시키지 않은 자는 있지 않으니, 성실하지 못하면 능히 남을 감동시킬 자가 있지 않다."199)라고 하였다. 대저 자신의 성실이 지극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고서 다만 타인이 감동하지 않음을 책망한다면 자신의 몸을 굽혔는데 그림자가 곧지 않음을 미워하는 것 또는 그 근원을 더럽히고서 흘러가는 물줄기가 맑지 못함을 탓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붕우 관계는 진심을 다하여 신의가 서로 통한다면 말을 내면 사람이 믿게 되며, 친척 간에 은혜와 사랑이 서로 무젖으면 말을 내면 사람이 감응하게 된다. 이는 바뀌지 않는 이치이니,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해라. 집에 거처할 때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뜨락을 청소하고 집안일을 맡아 하는 여가에 조금이라도 남은 힘이 있거든 곧 성현의 책을 잡고 읊조리면서 연구하여 의리로 하여금 항상 내 마음에 무젖게 한다면 평소 일을 행할 때 자연스럽게 도움을 받는 것이 있을 것이다. 점술과 방술의 책은 불경스럽고 고아하지 않으니 선비가 숭상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바둑과 잡스런 놀이 등은 뜻을 빼앗고 일을 방해함에 가장 심한 것이니, 깊이 생각해 보아라. 나 자신을 생각해보건대, 헐떡이는 실낱같은 숨은 조만간 끊어질 것이니 세상만사를 둘러보아도 다시 기대할 것이 없는데, 다만 바라는 것은 이것 하나뿐이다. 마음과 뼈에 새기고 한가로운 이야기라 여기지 말라. 人生斯世。不必要作貴人。不必要作富人。要作好人。是第一事。況貴與富有命焉。求之不可必得。至若做好人則無求於人。無慕乎外。只是順我性分。修我行實而已。何難之有哉。持身謹勅。居家孝友。無怠無荒。無罪無過。以保其身。以守其家。此非所謂好人耶。平日接人爲一大事。常以謙恭自牧。忠信相與。切不可以侵侮之意。忿戾之色。加之也。事有不可。當責己而勿苟責於人也。務責人則怨益積。務責己則德益進。其得失相去。果何如哉。孟子曰。至誠而不動者。未之有也。不誠。未有能動者也。大抵不知已誠之不至。而但貴人之不感動。何異於曲其身而惡影之不直。濁其源而責流之不淸乎。朋友之際。忠信相孚。則言出而人信之。親戚之間。恩愛相浹。則言出而人感之。此是不易之理。千萬勉之。居家夙興夜寐。灑掃庭除。幹蠱之餘。少有餘力。輒把聖賢書。諷詠硏究。使義理常常浸灌吾心則於日用行事。自然有所補助者矣。至於占訊方技之書。不經不雅。非儒者所尙。況碁奕雜戲。其爲喪志妨務。最爲甚焉。千萬戒之。自惟喘喘一縷。朝夕待盡。環顧萬事。無復所望。而所望惟此而已。銘心刻骨。勿視以閑說話也。 지극히……있지 않다 《맹자》 〈이루상(離婁上)〉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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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의서【재봉】에게 보내는 별지 與吳儀瑞別紙【在鳳】 뜻밖의 불길한 변고로 댁의 종조(從祖) 어른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고(訃告)를 받들자니 놀랍고 서글픔을 멈출 수 없을 뿐입니다. 하물며 천 리 밖으로 고향을 떠났다가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정경(情景)을 생각하니 가슴이 막힙니다. 운상(運喪)하는 절차는 어떻게 치르셨습니까? 극인(棘人)의 슬픔은 어떻게 억누르고 계십니까? 대체로 이것은 의례(疑禮)이고 변례(變禮)입니다. 하물며 이 사람의 좁은 견해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상례를 잘 치르는 일을 노형(老兄)께서 이미 하문하셨으니 또 어찌 소견을 말하지 않겠습니까. 대체로 성복(成服)88)은 시신을 수습하여 염을 하고 입관(入棺)을 하고 빈소(殯所)를 마련한 다음의 일입니다. 시신이 객지에 있어 아직 수습하여 염하고 입관하고 빈소를 차리지 못하였다면 효자의 심정으로 볼 때 어찌 먼저 성복을 하겠습니까. 하물며 분상(奔喪)하는 도리는 한시가 급하니 또 어찌 편안히 성복을 기다리겠습니까. 아우가 생각은 이렇습니다. 부고를 들은 초기에는 피발(被髮 머리를 풀어 헤침)을 하고 곡을 하여 애통함을 모두 드러내며, 노정(路程)에 오르면 속발(束髮 머리를 묶음)을 하고 사각건(四脚巾)을 착용하며 소복(素服)을 입고 승대(繩帶)를 두릅니다. 그리고 시신이 있는 장소에 이르면 다시 피발을 하고 습렴(襲斂)의 절차를 진행한 연후에 성복을 하고 돌아와 상례를 치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집에 머무는 사람은 부고를 듣고 피발을 한 뒤 다시 속발을 하며 허위(虛位)를 마련하여 조석전(朝夕奠)과 조석곡(朝夕哭)을 거행하고, 시구(尸柩)가 집에 당도하면 다시 초상(初喪) 때처럼 피발을 하고 3일이 된 뒤에 성복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각건의 제도에 대해서는 《상례비요(喪禮備要)》에 실려 있으니 고람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시신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성복을 한 다음에는 길을 갈 때는 수질(首絰)과 요질(腰絰), 그리고 상관(喪冠)과 최복(衰服 상복(喪服))을 착용해야 합니다. 집에서 변고를 당하는 것도 가장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천 리 먼 곳에서 당하는 경우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생각하니 경악을 금치 못하여 저도 모르게 심담(心膽)이 땅으로 떨어집니다. 정으로 보나 예로 보나 효자께서 여정을 떠나는 때 곧바로 달려가 위로를 드려야 하지만, 마침 구애되는 일이 있어 몸이 빠져나올 계책이 없습니다. 이것이 어찌 인정이고 도리이겠습니까. 부끄럽고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다만 천 번 만 번 자세히 살피시고 유감(遺憾)이 없으시기를 기원합니다. 不意凶變。令從祖丈棄世。承計驚怛。不能已已。況離鄕千里。奄然至此。其情景念之胸塞。運喪之節。何以經紀。棘人攀擗。何以支抑大抵此是疑禮也變禮也。況此謏見。何足言之。但愼終之地。老兄旣爲下問。則又豈不以所見言之乎。夫成服者。收斂尸身。入棺成殯然後事也。尸在客土姑未有收斂棺殯之節。則在孝子之情。豈可先爲成服乎。況奔喪之道。一時爲急。又豈晏然俟成服耶。弟意則聞訃之初。被髮哭盡哀。登程則束髮着四脚巾。衣素服。帶繩帶。到尸側。又被髮行襲斂之節然後。成服返喪。似乎宜矣。若在家之人。則聞訃被髮然后。更爲束髮。設虛位。行朝夕奠。朝夕哭。尸柩到家更爲被髮如初喪時至。三日而后成服。如何。四脚巾制度。在於備要。考之如何。到尸側。旣爲成服則行道之時。當着首腰絰。及冠與衰服耳。在家遭故。猶爲第一難事。況於千里遠程之外耶。念之驚愕。不覺心膽墜地。以情以禮。卽當匍匐赴慰於孝子發程之時。而事適有碍。抽身無計。此何情道耶。萬萬愧悚。只祝千萬慎審。母之遺憾如何。 성복(成服) 사망한 지 4일째 되는 날에 상복(喪服) 짓기를 끝내고 상복으로 갈아입는 절차, 성복한 뒤에는 죽을 먹기 시작하며 조석곡(朝夕哭)과 무시곡(無時哭)만을 하고 대곡(代哭)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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