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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 기성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鄭國振基聲 ○乙亥 때때로 친구 전사견(田士狷)을 만나 좌하(座下)의 소식을 들었는데, 법도에 지킴이 있고 절조가 더욱 굳세어 맹세코 치흑(薙黑)119)의 욕됨을 받지 않으며 더욱더 위벽(衛闢)120)의 책임을 다하여 우뚝하게 퇴파(頹波)121)의 기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전사견은 눈이 높고 입이 곧아서 구차하게 다른 사람을 칭찬할 사람이 아니니, 나는 이 말을 통해서 좌하가 진실로 이런 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사의 영혼이 어찌 "그 바름을 잃지 않은 사람은 정씨의 아들이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흠모하여 우러를 뿐만 아니라 우리 당(黨)에 믿을 분이 있음이 매우 기뻤습니다. 좌하가 수립한 것이 이미 이와 같으니, 학문(學問)과 사변(思辨)을 통해 정미(精微)의 것까지 철저히 연구하는 공부에 매진하여 말을 세우고 책을 써서 오묘함을 발휘하여 선사가 전한 도를 광대하게 하기를 더욱 바랍니다. 그리하실 수 있는지요? 時逢田友士狷,聞座下繩尺有守,節操彌厲,誓不受薙黑之辱,益盡分衛闢之責,卓然爲頹波之柱.狷友眼高口直,非茍譽人者,吾以是知座下之實有是德也.先師之靈,豈不曰"不失其正者鄭氏子"乎? 欽仰之餘,充然喜吾黨之有所恃也.座下樹立旣如此,更願益加意於學問思辨窮研精微之功,立言著書,發揮奧妙,使先師所傳之道,有以弘大之,如何? 치흑(薙黑) 머리 깎고 얼굴에 먹칠하는 것을 말한다. 위벽(衛闢) 정도(正道)를 보호하고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 여기서는 사문(斯文)을 호위하고, 이단을 물리치겠다는 것을 말한다. 퇴파(頹波) 퇴파는 거세게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물살을 말하는데, 무너져 가는 세상의 풍속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황하의 중류에 거센 물결을 막고 있는 지주(砥柱)라는 바위산이 있는데, 이 지주와 함께 '퇴파지주(頹波砥柱)'라고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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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석의 독본 《천자문》 뒤에 쓰다 【병인년(1926)】 題宋仁錫讀本千字文後 【丙寅】 성인(聖人)이 글자를 만드실 적에는 육서(六書)197)의 법에 각각 그 의리가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조자법(造字法)의 의리에 어두워 점점 그 근본을 잃고 멀어졌고, 그리하여 사물의 이름을 잘못 붙이고 이치가 뒤얽히게 되었다. 천하의 폐단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이 무엇이랴! 나는 다시 왕이 나타나 문자를 고찰하지 않으면 이 폐해를 구제할 수 없으리라 생각해왔다.그런데 이제 글 가르치는 사람이 어린 아이가 공부를 시작할 때에 글자 공부를 착실히 해두어 나이 든 뒤의 큰 착오를 면하게 한다면,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배운다면, 아마도 폐단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내 붓 솜씨가 졸렬하지만 여덟 살 아이 송인석(宋仁錫)을 위해서 《규장전운(奎章全韻)》에 의거하여 내 손으로 천자문을 써서 주는데, 나의 깊은 뜻을 담은 것이다. 인석이는 비록 어리지만 오히려 나의 이런 뜻을 몸받고[體化] 장차 뒷날에 유추확대하여 온 세상이 다시 옛 성인의 조자(造字)의 본의(本義)를 회복하는 데 이르기를 바란다. 聖人造字, 六書之法各有其義。 後世昧於法義, 轉相失本, 以致名物註誤, 經理倒錯, 天下之弊孰大於是! 余謂非復有王者考文, 莫能救此。 然敎人者且自小兒入學時, 俾謹字學, 免夫老大誤錯, 是敎是學, 庶可革弊也。 故顧雖筆拙, 爲八歲童宋仁錫, 依奎章全韻而親書千字文授之, 蓋有深意也。 仁錫雖幼, 尙其體余意, 將異日推類, 而盡以及天下復聖人造字本義哉。 육서(六書) 한자의 글자 만드는 법 즉 조자법(造字法)을 설명하는 여섯 가지 항목, 즉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를 말하는데, 앞의 넷은 한자의 구조를, 뒤의 둘은 한자의 융통활용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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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경 선영의 자사 【갑인년(1914)】 李舜敬【璿榮】字辭 【甲寅】 하늘에 일곱 다스리는 별 있으니 天有七政,해와 달 그리고 오성이네 日月五星,우(虞)나라 순(舜)임금이 維虞舜氏,선기옥형으로 운행을 관측했네. 乃察璣衡.사시와 해를 셈하고 정하여 授時成歲,많고 큰 일들 다 빛나게 이루는 庶績咸熙,그 일을 다 맡아 해낸 것이 其在乎人,그 사람 한 몸이었다 하네. 一身云爲.성실히 삼가고 밝게 살피며 克謹克審,각지고 둥근 규범 잘 지키고, 循厥矩規,사물을 응대하고 처리함에 酬事應物,백 가지가 다 곧고 참되었다네. 百度皆貞.이씨 댁의 빼어난 수재 李氏之秀,여기 이선영 있으니 爰有璿榮,순경(舜敬)이라 자를 보태 曰舜敬甫,그 덕을 표현하네. 是其表德.순임금 큰 지혜는 본디의 것이고 舜固大知,경(敬)은 배운 규범이었네. 敬乃學則,동정과 표리를 가림 없이 動靜表裡,오직 이 경(敬)을 의지하소. 惟敬是依.몸이 규범에 합치하기가 身之合矩,마치 하늘의 별자리 같아 如天于璣,문채롭고 밝으며 깊고 현철하니 文明濬哲,순(舜)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舜何予何.이로써 자의 뜻을 글로 지으니 我用作辭,다팔머리의 이 가상한 선비여 髦士孔嘉,애써 노력할지니 勉哉强哉,이 하나 밖에 다른 것 없네. 一此靡他. 天有七政, 日月五星, 維虞舜氏, 乃察璣衡。 授時成歲, 庶績咸熙, 其在乎人, 一身云爲。 克謹克審, 循厥矩規, 酬事應物, 百度皆貞。 李氏之秀, 爰有璿榮, 曰舜敬甫, 是其表德。 舜固大知, 敬乃學則, 動靜表裡, 惟敬是依。 身之合矩, 如天于璣, 文明濬哲, 舜何予何。 我用作辭, 髦士孔嘉, 勉哉强哉, 一此靡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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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간재 선생께서 오상에 대해 읊은 시에 차운함 2수 ○임인년(1902) 謹次艮齋先生五常詠 【二○壬寅】 의인과 중정은 하늘로부터 내린 것 義仁中正降從天모두 만 가지 형상이나 본래 같다네 一切萬形同本然음양과 오행을 모두 갖고 있으니 載在兩儀兼五氣흠결과 남음 거칠고 현묘한 것도 없네 體無欠剩與粗玄인간은 어찌 태어난 이후 모두 마음대로 하여 人豈生來都擅得사물 쓰인 곳에 온전히 통하지 않게 했나 物於用處未通全다만 전해진 학설만 생각하다 잘못 본다면 只被錯看思傳註괴로이 글과 말로써 연구를 낭비한다네 苦將辭說費窮硏형체를 만들고 성을 부여한 것은 하늘이니 成形賦性是爲天만상도 이 본연의 성은 모두 같다네 萬象均同此本然성인과 범인도 모두 본바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聖凡不外皆由質날짐승 길짐승이 어찌 다시 현묘함이 있었던가 翔走何曾更有玄이(理) 안에 분수와 한계 정해져 있다 말하지 마라 休道理中定分限기(氣)에 따라 치우침과 온전함을 볼 뿐이니 直從氣上見偏全어찌 한 본체에서 달리 쓰이는 곳 있지 않으랴 盍於體一用殊處맹렬히 힘쓰고 정밀하게 밝히며 궁구하고 닦아야 하리 猛著精明究且硏 義仁中正降從天,一切萬形同本然.載在兩儀兼五氣,體無欠剩與粗玄.人豈生來都擅得,物於用處未通全.只被錯看思傳註,苦將辭說費窮硏.成形賦性是爲天,萬象均同此本然.聖凡不外皆由質,翔走何曾更有玄?休道理中定分限,直從氣上見偏全.盍於體一用殊處,猛著精明究且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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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菊 진나라 선비는 아침 이슬 베끼고43) 晉士寫朝露초나라 신하는 저녁 꽃을 먹었네44) 楚臣餐夕英고고한 두 분의 절개는 高高二公節천 년이 지나도록 향기로운 이름 남겼네 千載留香名지위와 덕은 자신의 것이 아니면 位德非其人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 自作蚩蚩氓강직한 천성 이 국화 사랑하니 索性愛此物어찌 옛사람의 마음에 견주리오 豈擬古人情맑고 굳은 자태를 사랑하니 只憐淸勁姿유속과 더불어 다투지 않아서라네 不與流俗爭봄날 성에 온갖 꽃 만발해도 春城百花發초연히 홀로 영화로움 감추네 超然獨藏榮서리와 바람 저녁 내내 불어도 霜風一夕吹가지가지 금주머니 가득하다 枝枝金朶盈고개 돌려 먼저 마른 놈을 보니 回看先萎者품격은 말이 없어도 밝구나 品格不言明네가 비록 정이 없는 사물이나 爾雖無情物청컨대 교류하며 동맹을 맺자구나 託交堪同盟 晉士寫朝露,楚臣餐夕英.高高二公節,千載留香名.位德非其人,自作蚩蚩氓.索性愛此物,豈擬古人情.只憐淸勁姿,不與流俗爭.春城百花發,超然獨藏榮.霜風一夕吹,枝枝金朶盈.回看先萎者,品格不言明.爾雖無情物,託交堪同盟. 진나라……베끼고 진나라 선비란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키며, 그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국화를 노래했음을 가리킨다. 초나라……먹었네 초나라 신하는 굴원(屈原)을 말한다. 굴원의 〈이소(離騷)〉에 "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떨어진 가을 국화꽃을 먹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으므로 이렇게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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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보냄 정묘년(1927) 與靜齋田丈 丁卯 일전에 왕림하신 것은 진실로 후고(後稿)를 찾으러 온 것인데 받들어 부응하지 못하여 마음이 심히 송구하였습니다. 생각하건대 어른도 크게 마음이 불편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시험 삼아 한번 생각해보지 않으십니까? 오진영이 이미 스승을 무함하고 진주에서 인가를 받아 간행하였으니, 사람들이 진실로 선사께서 진짜 '문집 간행을 요량해서 하라'는 말씀과 말로 하지 않은 인가에 대한 지시가 있었다고 의심합니다. 어른께서 친아들로써 또 용동에서 간행하기 위하여 인가를 받는 데에 참여해 유서를 무시하신다면 사람들이 장차 유서가 진짜가 아니라고 의심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제가 무함을 변론하고 유훈을 지킬 것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또 원고를 꺼내어 어른에게 주어 그 일이 성사되도록 돕는다면 이것은 선사 문하의 온전한 하나의 의리가 다시는 세상에 영향을 미침이 없게 되어 세상 사람들의 의심을 해명할 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선사는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어른께서 진실로 시험 삼아 한번 생각하여 자못 마음속에 불편함을 없애고 제가 가르침을 어긴 것을 죄주지 마십시오. 日前枉臨, 亶出索去後稿, 而未能奉副, 心甚悚息.想丈亦大不平于中也.然何不試一思之? 震旣誣師而認印于晉, 人固疑先師眞有料量不言之認敎.丈以親子, 又參龍刊之認, 而不有遺書, 人將又疑遺書之非其眞.于斯時也, 澤述以主辨誣守訓之人, 又出稿與丈, 助成其事, 則是先師門下, 一副義理, 無復影響, 而世人之疑, 無路可鮮.到此地頭, 先師爲何如人? 丈誠能試一思之, 自無不平于中, 而不罪澤述之違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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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에게 답함 을해년(1935) 答鄭國振 乙亥 보내주신 편지를 받들어 읽고서 보존하고 있는 것의 독실함이 과연 들은 바와 같음을 알았습니다. 또 부쳐주신 시(詩)를 읽고서 중화를 지키는 의연한 절개와 무함을 분별하는 절연한 의리를 더욱 잘 알게 되었는데, 언어와 편지로 능히 다 알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만약 지난번에 전사견(田士狷)의 말로 인하여 제가 편지를 보내고 저의 편지로 인하여 성대한 좋은 시를 얻지 못했다면, 거의 노형을 잘 알지 못한 채 문득 몇 년이 지났을 것이니,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다행입니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시세(時勢)는 비록 변할지라도 나는 어찌 감히 변하겠는가."라고 하였는데, 형은 진실로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능히 말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칠 수 있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122)라고 했으니, 형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박문약례(博文約禮)의 공부에 더욱 매진하고 도를 밝히는 책을 저술하기를 맹자의 7편과 정자의 《역전(易傳)》처럼 하여 백세가 넘어서도 앙모하는 것이 이미 수립된 것을 능가할 뿐만 아니게 하기를 더욱 바랍니다. 저는 크게 기대해마지 않습니다. 奉拜惠覆,有以見所存篤實,果如所聞.又讀所寄諸詩,益悉守華毅然之節、辨誣截然之義,有非言語書翰之所能悉者.如非向因狷友之言而致惡札,因惡札而獲盛詩,則幾乎淺知老兄而奄過幾年也,何幸何幸! 程子有言曰: "時勢雖變,某安敢變?" 兄實有焉.孟子有言曰: "能言距楊墨者,聖人之徒." 兄即其人.願益加博約之工,著成明道之書,如孟子之七篇、程子之《易傳》,俾百世之景仰,不徒樹立之已然者.區區不勝其厚望焉. 능히……무리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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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병진년(1916) 與季弟汝安 丙辰 오늘이 섣달그믐이구나. 세월이 어찌 이리 빠르단 말이냐. 우리들이 어버이께 갚을 수 있는 만의 하나는 오직 집상(執喪) 하나에 있을 뿐인데 눈 깜짝할 사이 일 년이 되가는구나. 생활하고 먹고 마시는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응대하는 것까지 만약 열심히 노력하여 상을 잘 마치지 않고 슬픔을 잊고 예의를 범하는 데 이르면, 참으로 사람종자가 아니고 신명에게 죄를 얻는 것이다. 네가 어린 나이에 상례를 치르며 진실로 항심(恒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은 비록 이를 아끼지만, 그러나 시간이 오래될수록 쉽게 잊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고, "나아감이 급하면 물러남이 빠르다.49)"는 옛 성현이 경계한 말이다. 그러므로 단지 이를 편지에 언급하여 서로 면려하는 바탕으로 삼으니 마땅히 헤아려 알기 바란다.집안 부녀자의 분분한 말은 듣는 사람도 참으로 믿어서는 안 되고 당하는 사람도 또한 분변할 필요가 없다. 만약 분변하여 밝히려고 하면 저 또한 단서를 야기하여 더욱 난리를 칠 것이다. 특히 장부의 도량이 아니면 바로 가문의 누가 될 것이다. 단지 나의 말을 신실하게 하고 행동을 바르게 하여 저가 믿음을 보고 감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今日歲除也.何居諸之迅也.吾輩報親之萬一, 惟在於執喪一節, 而轉眄之間, 歲將一周.自起居飮食, 以至一應應接, 若不加勉而克終, 以致忘哀犯禮, 則眞非人類, 而獲誅神明矣.汝之弱齡執制, 固非無恒者.吾心雖愛之, 然日遠易忘, 人之常情;"進銳退速", 往聖攸戒.故聊此書及, 爲胥勖之資, 想宜諒會也.家間婦女之紛言, 聽之者固不可信, 而遭之者, 亦不須辨.苟欲辨而明之, 彼又惹出端緖, 益致紛騰.殊非丈夫之量, 適爲門戶之累也.只要我之發言也信, 行己也正, 俟彼見孚而感化, 可也. 나아감이……빠르다 《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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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의 《벽봉유고》 뒤에 삼가 쓰다 敬題先考碧峯遺稿後 돌아가신 아버님 유고의 정서가 끝나 이제 읽을 만하게 되었다. 아버님께서는 뜻이 독실하고 배움을 좋아하셔서 스스로 얻은 바로써 나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나는 실행하기를 힘쓰지 않아서 늙도록 성취한 바가 없으니 큰 불효이다. 그래서 삶을 마쳐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받아 쓴 바를 더럽히지 않고 앞서 지은 죄를 대속하기를 기대하면서, 후손을 넉넉하게 해 줄 자산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유고이다. 마땅히 곧장 인쇄해서 길이 보전할 것을 꾀해야 하지만, 지금은 시절 형편이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지난날을 생각건대 아버님께서는 시대의 정의에 대단히 엄격하시어 기유역서(己酉曆書)196)가 새로운 예규를 채용한 것을 보고나서는 절대 다시 그것을 펴보지 않으셨다. 지금 이처럼 마음과 정신을 담은 일을 시류(時流)에 구걸하여 진행한다면, 그것은 선사 간재 선생님이 말씀하신 바의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그러니 감히 할 마음이 안 나고, 또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다만 몇 권을 베껴 두어, 자손들 더러 각자가 보관하며 하늘에 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하려한다. 몰래 혼자 생각하기를 "그러면 뜻을 기르는 도리는 끊기지 않고 이어지리라" 한다.갑신년(1944) 6월 6일 불초한 아들 김택술의 환갑 아침에 삼가 쓰다. 先君遺稿旣淨書, 可以讀矣。 先君篤志好學, 以得乎己者敎不肖, 而行之不力, 到老無成, 不孝大矣。 然及今畢生受用, 期無忝而贖前罪, 因以作裕後之資者, 惟是稿在耳。 宜卽就印, 用圖壽傳, 第今時律有不得自由者。 念昔先君於時義甚嚴, 見己酉曆書之用新例者, 絶不復觀。 今以心神所寓乞諸時而爲之, 豈非自辱, 如先師艮翁所云乎? 是所不敢, 亦不忍爲, 只欲鈔得數本, 子孫各藏, 以俟天返之日, 竊自謂養志之道, 無間存沒云爾。 甲申六月六日不肖子, 澤述周甲生朝謹書。 기유역서(己酉曆書) 1909년 반포한 《대한융희삼년력》을 말한다. 조선 병탄과 통치 기틀을 마련한 일제 내각이 제정한 것으로 예전의 역법과 크게 달랐는데, 양력 위주로 배치하고 조선 왕조의 기념일을 양력으로 바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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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여직275)의 자사 【신해년(1911)】 舍弟汝直字辭 【辛亥】 하늘이 낳은 뭇 인민에는 天生烝民,선한 이도 악한 이도 있으니 有善有惡,어떻게 구분되나 其分維何,곡(曲)과 직(直)에서 갈린다네. 曰直與曲.공자님 가르치셨네 仲尼有訓,사람이 사는 길은 곧음이라고 人生也直,이로써 후대의 모든 학도들 凡厥後學,바른 표준 삼을 바를 알았네. 知所準的.나의 아우 이름 만술(萬述)은 家弟萬述,돌아가신 아버님이 주시었고, 先君肇錫,이제 너에게 관을 씌워주며 今加爾冠,삼가 여직(汝直)을 자로 준다. 欽以汝直.성인이 일을 대응하는 법은 聖人應事,하나가 아니고 만 가지인데 有萬不一,그 궁극의 귀결을 보면 究厥歸宿,다만 곧음에 있네. 只在乎直.이것은 주자의 요결로서 是爲朱訣,천년을 변치 않으니 千古不易,만 가지 중에 직(直)을 취하라. 於萬取直,이제 그 하려는 말은 玆其可說,너 여직은 '직에로 나아가라'이니 曰汝汝直,어찌 감히 애쓰지 않으랴! 曷敢不勉! 天生烝民, 有善有惡, 其分維何, 曰直與曲。 仲尼有訓, 人生也直, 凡厥後學, 知所準的。 家弟萬述, 先君肇錫, 今加爾冠, 欽以汝直。 聖人應事, 有萬不一, 究厥歸宿, 只在乎直。 是爲朱訣, 千古不易, 於萬取直, 玆其可說。 曰汝汝直, 曷敢不勉! 여직 김택술(金澤述)의 셋째 아우 김만술(金萬述, 1895~1946)의 자이며, 호는 영은(瀛隱)이다. 부친은 김낙진(金洛進, 1859~1909), 조부는 김경순(金景淳, 1825~1867)이다. 부인 도강김씨(道康金氏)의 생몰년은 1897~1954이며, 그 부친은 김유술(金有述), 조부는 김영근(金永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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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사에 제함 題鳳棲寺 세속 전하는 말에, "봉곡 김공과 진묵15)은 선하지 못한 인물이다. 하루는 진묵의 넋이 서역에 들어갔는데, 봉곡이 그것을 알고 그의 몸을 불사르고 왔다. 진묵의 돌아오는 넋이 봉곡에 대한 원망을 드러낼 바가 없어 계곡을 끊어 마을 앞 시냇물이 땅속으로 흘러들게 했다. 그래서 봉서산은 서쪽으로 겨우 흘러나올 뿐 봉서사 밖은 한줄기 물도 없었다고 하니, 이 말을 믿는다. 봉곡은 학문을 한 군자이나, 이에 다른 사람을 몰래 해를 끼치는 데 이르렀으니 진실로 매우 어그러지고 오만하여 족히 믿을 수 없다. 진묵의 명철함으로도 이미 그의 몸을 보존할 수 없었고 또 육진에 얽매임에도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원수를 갚는 데에만 구구했으니, 어찌 능히 그를 이른바 대선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유가는 예로부터 인과 사랑에 힘을 쓰고 儒門自是務仁愛석가는 원래 육신에 중점을 두지 않았네 釋敎元非重肉身만약 봉공이 진묵의 육신을 정말 태웠다면 若使鳳公焚震默사람 죽였을 뿐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이라 不徒害物亦愚人세상에선 진묵이 천지와 통한다 전하지만 世傳震默通天地어떻게 칠 척의 몸 하나 간수하지 못했던가 何不能防七尺身시냇물 땅속으로 흐른 것을 다시 논하지 마시오 溪水伏流休更說헛되이 잘못된 사실로 사람들을 의혹하게만 하니 謾將謬訛惑人人 俗傳,鳳谷金公與震默不善.一日,震默魂入西域,鳳谷知之,來燒其身.震默歸魂,無所著怨鳳谷,斷谷,村前溪水,使之伏流.故鳳棲山以西纔出,寺外無一派水云,信斯言也.鳳谷以學問君子,乃至陰害人物,固已悖慢不足信.震默之明,旣不能保其身,又不免六塵之累,而區區於報怨,安得爲渠家,所謂大禪師乎.儒門自是務仁愛,釋敎元非重肉身.若使鳳公焚震默,不徒害物亦愚人.世傳震默通天地,何不能防七尺身?溪水伏流休更說,謾將謬訛惑人人. 봉곡……진묵 봉곡 김공은 전주 유학자 김동준(金東準, 1573~1661)을 말하며, 진묵은 속명 일옥(一玉, 1562~1633)으로 여러 기행과 이적이 있는 인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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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원로 신조공 형기 의 장례에 스승을 위한 상복이 여전히 몸에 있어 만사를 짓지 못했는데 지금 비로소 뒤늦게나마 올림 갑자년(1924) 겨울 ○이하 동일하다. 族老信潮公【炯基】之葬也 師服在身 未致挽詞 今始追呈 【甲子冬○下同】 의를 행함은 동중서와 부합되고207) 行義稱董子효성과 근심은 석씨라 불렸네208) 孝謹聞石君온화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진중하여 溫溫席上珍몇 번이나 연사께서 탄식하게 했나 幾發淵師歎어찌해서 짐승에게 짓밟힌 때 如何蹄跡日법도를 많이도 잃어버리나 法器多喪淪어릴 적부터 오래도록 덕을 입었고 從少久飽德게다가 다시 같은 파의 친척임에서랴 矧復同派親다만 한스러운 건 삼십 년 동안 只恨三十載한 글자도 서로 이르지 못한 것 一字不相及곡이 끝나고 사람들 보이지 않는데 哭罷人不見봉래산에 구름 만겹이구나 蓬山雲萬疊 行義稱董子,孝謹聞石君.溫溫席上珍,幾發淵師歎.如何蹄跡日?法器多喪淪.從少久飽德,矧復同派親.只恨三十載,一字不相及.哭罷人不見,蓬山雲萬疊. 의를……부합되고 한나라 동중서(董仲舒)는 "어진 사람은 의리를 바르게 행하고 이익을 꾀하지 않으며, 도를 밝히고 공을 따지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의를 행한 인물이다. 효성과……불렸네 석씨 집안은 '석분(石奮)의 집안'을 말하는데, 석분은 여러모로 살펴 두루 깊이 삼갔고, 그 네 아들 석건(石建), 석갑(石甲), 석을(石乙), 석경(石慶)도 효도하며 조심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석경은 태복(太僕)으로 있을 때 한 무제(漢武帝)가 수레 끄는 말이 몇 필이냐고 묻자 채찍으로 세어 보고 난 다음 여섯 필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하니, 근신한 것을 여기서 알 수 있다. 《史記 卷103 萬石張叔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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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辛酉 신유년(1921)제가 삼가 들으니 계화재(繼華齋)에 책 읽는 소리가 갑자기 줄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결코 작은 근심이 아닙니다. 오늘날 풍조가 크게 변하여 전통을 고수하는 집안의 자제도 때때로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머리를 깎고 신학에 들어가는 것을 즐비하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들 수 있으니, 어찌 우리 집 아이들이 이처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일체(一體)라는 관점에서 보면, 남의 집 자제도 곧 나의 자제이니 다른 집 자제가 모두 이런 지경에 들어감을 면하지 못하였다면, 어찌 우리의 자제가 다행히도 면한 것을 기뻐만 할 수 있겠습니까?대개 오늘날의 청년은 훗날 세도(世道)를 책임질 사람들인데 모두가 짐승 같은 상황에 빠져버리고 몇 명 살아있는 옛 학자마저 늙어서 사라진다면 윤리의 학문은 세상에 영원히 끊어지고 부자의 사당도 풀이 한길이나 자라게 될 것입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어찌 시운에다만 맡기고서 끝내 만회할 방법을 조금이나마 추구하지 않겠습니까? 걱정스럽고 또한 개탄스럽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선생께서 세상을 근심하는 간절함은 다른 사람들과 사뭇 다르니 이런 일들을 듣는다면 애달프게 한숨만 쉴 것입니다. 竊聞繼華齋中, 書聲頓減, 此非細憂.目今風潮一變, 守舊家子弟, 往往有不告父兄剃髮入新學者, 見聞所及, 比比焉, 安知吾家子弟之亦不如此也? 且以一體視之, 人之子弟, 即吾之子弟, 人家子弟舉不免入此, 則安可以吾之子弟幸免爲喜也哉? 蓋今日青年, 即後日任世道者, 而皆淪於翔走, 幾箇舊學人老而沒, 則倫理之學, 永絕於世, 而夫子廟庭草深一丈矣.柰之何! 奈之何! 豈可任之時運, 而終無少試挽回之道耶? 可憫亦可慨也.伏想先生憂世之切, 有異餘人, 聞此爲之惻然一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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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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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6년 물왕리 소재 전답 증명서 고문서-증빙류-증명서 大正五年 陰十一月 十一日 李冕容 和容 大正五年 陰十一月 十一日 李冕容 李和容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음력 11월 11일에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소재의 전답이 형재공의 제전임을 증명하여 작성한 증서 1916년 음력 11월 11일에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소재의 전답이 형재공의 제전임을 증명하여 작성한 증서이다. 1916년 음력 11월 11일에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소재의 전답이 형재공의 제전임을 증명하여 작성한 증서이다. 형재공은 이직(李稷)이다. 증명의 대상지는 4곳인데,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전평 담자 697-2의 전지 286평2홉, 같은 곳의 담자 698의 전지 118평5홉5석, 담자 택지 697-1의 940평, 같은 곳의 인자 641과 64의 답지 1095평1홉3석 등이다. 이것을 합친 것을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에 사는 족제 의용이 증명을 제출한 바, 이 선산은 형재공(亨齋公)의 제전답(祭田畓)인 까닭에 이 전답을 종중의 명의로 증명을 제출하는 것이 옳다는 것으로 문중의 의논이 일치하였다. 이에 이 뜻을 이의용에게 설명하니 사체가 당연하다고 하고 즉시 이 전답의 증명건을 가져와 이 증서를 작성한다고 하였다. 이 증서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 거주하는 문장(門長) 이면용이 작성하여 족제인 화용과 선용, 복용에게 보내는 것이다. 입회인은 문덕면 장동리에 거주하는 이교인과 이교섭이다. 증명 사실은 '이 전답은 6세조와 5세조 3위의 전답이다.'라는 것이다. 증명비 7원은 족제 이의용이 먼저 썼기 때문에 계산해 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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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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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7년 김관두(金寬斗)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12.□.11 金寬斗 李大淳 (昭和)12.□.11 金寬斗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7년 5월 12일에 김관두가 수신자에게 고발 사건은 공을 먼저 생각하니 신문을 받은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하는 간찰 1937년 5월 12일에 김관두(金寬斗)가 수신자에게 고발(告發) 사건은 공(公)을 먼저 생각하니 신문(訊問)을 받은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하는 편지이다. 고발사건에 대하여 미안하지만 하필 이교성(李敎聲)에게 마음이 있고 당신에게 무정(無情)하여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공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마음에 두지 말고 이교성씨를 방출(放黜)하면 만사가 편안하여 송사(訟事)가 없을 것이니, 서로 화호(和好)하는 도리가 이것이다. 자신의 본마음은 수신자가 의심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나 추후에 수신자의 생각에 불을 지필 수 있을 것이니 다른 사람과 상의하는 것이 좋겠다. 어제 경서(警署)에서 신문을 받았으니 말경(末境)에 가서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다. 피봉이 있는데, 발신자는 곡성군(谷城郡) 곡성면(谷城面) 읍내리(邑內里) 조수환(曺壽煥)이고, 수신자는 보성군 복내면 시천리의 이대순(李大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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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답함 答靜齋田丈 甲戌 갑술년(1934)옛날에 한 위공(韓魏公 한기(韓琦))의 아들이 수도 낙양에 정자와 동산을 만들어, 한 위공이 노년을 편안하게 보낼 곳으로 만들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위공이 말하기를 "지금 내 나이가 이미 70으로 형해(形骸)조차 도외시하는데, 어찌 정원을 가지겠는가?"라 하고 드디어 그 일을 금지시켰습니다. 생각해보면, 정원은 심대하게 해로운 것은 없는데도 오히려 형해조차 도외시한다는 것으로 금지시켰습니다. 이제 우리 어른의 나이도 70이니 어찌 다시 연연해하는 것이 있어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행할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혹 자손 때문에 구애가 된다고 말씀하신다면, 자손이 내 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여 남겨주신다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는 것을 남겨주는 데이겠습니까? 우리 어른에게 있어서 지금 해야 할 도리는 오직 못을 끊고 쇠를 자르듯 확실하게 행동하여 훗날에 후회가 없도록 하는 것이 있을 할 뿐입니다. 오진영의 무리가 올리는 제기를 어찌 차마 선친의 영정 앞에 진설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어른이 당일에 한 말이 엄하지 못한 것은 이미 흠결의 일이나 오늘에 이르러서 오히려 나재(懶齋)와 신헌(愼軒)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에게 받지 말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진영을 끊는다는 명백한 문장일 될 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昔韓魏公之子, 欲治亭園於京洛, 以爲魏公逸老地.魏公曰: "吾今年已七十, 則形骸可外, 何有亭園?" 遂禁其事.竊以爲亭園, 無甚大害者, 猶然以形骸可外禁之.今吾丈之年, 亦已七十矣, 豈可復有所顧戀, 而不能行其所當行者哉? 若或以子孫爲拘云, 則子孫於我何加焉? 况以所當行者行而遺之, 遺爲莫大者乎? 在吾丈今日之道, 惟有斬釘截鐵, 可無他日之悔耳.震黨所進祭器, 安忍陳列於先人影幀之前也? 吾丈當日言之不嚴, 已是欠事, 及今猶可致書於懶齋愼軒, 使之勿受, 可也.此正爲絶震之明文耳.若何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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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에게 보냄 기묘년(1939) 與金 己卯 당신 조부의 유고는 아마 간행하여 배포한지가 이미 오래되었을 것인데 저는 아직까지 받아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잘 모르겠으나, 무슨 곡절이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연고가 있어서 아직까지 간행의 일을 마치지 못한 것입니까?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또한 받들어 고할 일이 있습니다. 간옹선사(전우)가 선생에게 적통을 전한 직접적 근거는 편찬한 행장과 제문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노인오(노동원)에게 답한 편지와〈눈 내리는 군산에서 김덕경을 추억하다[羣山雪中憶金德卿]〉의 시에서만 보이는데, 그 시는 원고에 들어가 있지 않고 편지는 진주본에서 삭제를 당했습니다. 비록 화도수정본과 용동본 두 책에 실려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이미 진주본이 성행하고 있으니, 사람 중에 진주본만 본 자는 어떻게 선생에게 적통이 전해진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생각할 때, 간행된 원고에는 반드시〈부록〉·〈행장〉·〈제문〉·〈만사〉 등이 있어야 합니다. 선생을 위해 지은 것으로 쓸 수 있는 모든 것은 마땅히 모두 다 기록해야 하고, 간옹이 노인오에게 답한 편지와〈군산설중억김덕경〉시도 함께 써서 사람들로 하여금 선생에게 적통이 전해졌다는 것을 명확히 알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尊王考遺稿, 想刊布已久, 而鄙人則尚未奉讀, 未知何委? 抑有他故, 猶未訖役? 願聞願聞.又有所奉告者, 艮翁先師傳統先生之直據, 不見於所撰《行狀》·《祭文》, 惟見於答盧仁吾書, 及《羣山雪中》詩, 而詩則不入稿, 書又刪於晉本.雖其載於華龍二本, 今既晉本盛行, 則人之但見晉本者, 何以知得傳統於先生乎? 故鄙意以爲刊稿必有《附錄》·《行狀》·《祭文》·《挽詞》.凡爲先生作而可書者, 宜皆備錄, 而艮翁答盧書․《羣山》詩, 幷書之, 使人明知傳統於先生, 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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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일당25) 김 어른【치희】에게 답함 答愛日堂金丈【致熙】 특별하게 찾아와 주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위문 편지를 또 보냈기에 돌보아 주시는 마음을 알았으니, 감사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환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고 염려스러웠습니다. 철에 따라 몸을 잘 조리하여 오직 빨리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중년 이후로 눈이 어두워 힘을 붙여 글을 읽지 못하고 한가한 가운데 고요히 앉아 몸과 마음을 수렴하니 자못 득력하는 곳이 있음을 깨달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문장(文丈)께서 눈이 어두운 나이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병든 몸을 요양하는 여가에 이 말을 체득하여 묵묵히 깨닫는 것이 있으십니까? 소생은 성현의 책을 읽은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지만 부침을 거듭하여 배우지 않은 사람과 조금도 차이가 없으니, 책망을 받을 일이라는 것을 또한 어찌 모르겠습니까. 처음에 《소학(小學)》에서 말하는 존양(存養)에 힘쓰지 않고 다만 애매모호하고 분잡한 사이에 생각을 두고 모색하여 이렇게 무한한 병통을 초래하여 졸지에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후회한들 어찌 미치겠습니까. 맹자가 말하기를 "학문하는 방도는 다른 것이 없다. 잃어버린 마음을 구할 따름이다."라고 하였고, 주자가 홍경(洪慶)에게 고하기를 "우선 모름지기 단정하고 장엄하게 존양할 것이요, 정력을 허비하여 종이 위의 말만 뚫어지게 쳐다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26)라고 하였으니, 이 몇 마디 말에서 공부의 선후를 대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학자는 입만 열면 곧 성명(性命)을 말하지만 이러한 의체(義諦 사물의 근본 뜻)에 대해서는 그다지 힘을 기울이지 않으니, 들은 것을 기억하고 외고 말하거나 안배하고 조작하는 데로 귀결되지 않는 자가 거의 드뭅니다. 소생은 근래 대략 이러한 폐단을 궁구하며 매일 공부하고 있습니다. 비록 여기에 마음을 두고자 하지만 옛 것만 답습한 지 오래되어 깨달아 힘을 얻기가 매우 어려우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직 문장(文丈)께서는 30년 동안 독서하였으니, 필시 고생하며 이미 징험한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소생을 위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寵顧未幾。委存踵至。仰認傾眷。感荷亡量。愆候之報。驚慮萬萬。節宣調護。惟望不遠復。朱子云。中年以後。目昏不能着力讀書。閒中靜坐。收斂身心。頗覺得力。今文丈雖不至目昏時節。養病之暇。體認此語。而有黙會者否。生讀聖賢書。已有年所。而浮浮沈沈。與不學人無毫髮差殊。其受病之端。亦豈不知哉。初無小學存養之力而但有以懸想模索於疑似紛雜之間。致此無限病痛。而至於猝不可收殺之地。悔之何及。孟子曰。學問之道。無他。求其放心而已。朱子告洪慶曰。且須端莊存養。不須枉費功夫鑽紙上語。於此數語。其用功先後。槩可知矣。世之學者。開口便說性命。而於此等義諦不甚着力其不爲記問誦說安排造作之歸者。幾希。生近來粗究此獘。每日下功。雖欲留心於此。而因循之久。得力甚難。奈何。惟文丈三十年讀書。必有幸苦已驗之方。幸爲小生告之。 애일당(愛日堂) 김치희(金致煕, 1828~?)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장여(章汝), 호는 애일재이다. 기정진의 문인으로 낙안(樂安)에 거주하였다. 주자가……것이다 제자 홍경(洪慶)이 돌아가려 할 때, 주희(朱熹)가 "지금 공부를 하려 한다면 우선 모름지기 단정하고 장엄하게 존양하고 밝고 드넓은 근원의 경지를 홀로 관찰할 것이요, 정력을 허비하여 종이 위의 말만 뚫어지게 쳐다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如今要下工夫, 且須端莊存養, 獨觀昭曠之原, 不須枉費工夫鑽紙上語.]"라고 하였다. 《朱子語類 卷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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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에게 답함 정축년(1925) 答鄭國振 丁丑 편지에 "마귀가 물러나는 날을 조금 얻어서 기필코 심중(心中)의 일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마귀는 무엇입니까?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변괴가 밖으로부터 온 것으로서 마치 귀신이 시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한 내가 능히 물리칠 수 없는 것을 말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질병(疾病), 화환(禍患), 수화(水火), 도적(盜賊) 이외에 마땅히 이른바 마귀란 것은 없습니다. 형의 지금 분란한 것에 대해 응해야 하므로 응하는 경우는 이는 내 일을 도모하는 조건이니, 진실로 마귀라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응해서는 안 되는데 태만하게 우선 응하는 경우 이것을 마귀라 말한다면 결국 스스로 마귀를 만드는 것이고 진짜 마귀가 아닙니다. 이를 물리치는 방도는 또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물리치는 것뿐이니, 진실로 물리치고자 한다면 손을 한 번 뒤집는 사이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선 행하지 않고 앉아서 마귀가 물러가기를 기다린다면, 끝내 그런 날은 없을 것이고, 심중의 일도 영원히 도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자(禪子)의 게송에 "해를 차갑게 할 수 있고 달을 뜨겁게 할 수 있어도, 뭇 마귀는 감히 진결을 파괴시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 사도(邪道)가 진짜 마귀에 대해서도 오히려 이렇게 하는데, 하물며 우리의 정학(定學)으로 스스로 만든 마귀에 대하여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형은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來狀喻以稍得魔退之日,期圖心中之事.夫魔者, 何也? 非謂不自我致而變自外來,有若鬼神猜之而又非吾之所能退者乎? 然則疾病、禍患、水火、盜賊以外,宜無所謂魔者也.若兄之目下紛擾,其當應而應之者, 旣此是圖吾事之條件也,固不可謂魔.其不當應而謾且應之者,以是謂魔,則究是自魔,非眞魔也.退之之方,亦在我自退之而已,茍欲退之,在一反手之間耳.然且不爲而坐待魔退,則是終無其日,而心中之事,永不可圖矣.禪子之偈曰: "日可冷,月可熱,衆魔不敢壞眞訣." 彼邪道之於眞魔猶然,況以吾正學,其於自魔也何有? 惟兄諒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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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 임 좨주29) 어른【헌회】에게 올림 上全齋任祭酒丈【憲晦】 의림(義林)은 삼가 아룁니다. 예부터 사문에 이름이 있었던 군자는 모두 사우의 도움을 받아 그 학문을 성취하였습니다. 비록 안자(顔子), 증자(曾子), 정자(程子), 주자(朱子)와 같은 현인이라도 반드시 스승에게 전수받은 뒤에 더욱 그 덕을 드러내었습니다. 더구나 그 아랫사람은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를테면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시대 절의와 문장이 있는 선비는 그 재주와 그 인품을 가지고 만약 공자(孔子)를 만나 배웠다면 그 성취한 것이 어찌 한 기예와 한 행적이 드러난 선비 정도에서 그쳤겠습니까. 매번 《한서(漢書)》와 《당서(唐書)》를 읽을 적에 일찍이 이러한 인물에 대해 애석하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의림의 혼우한 재주는 그 누구보다도 심하고 거처하는 곳은 매우 외지며, 또 이끌어 주는 어진 사우가 없어 갈팡질팡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내 마땅히 문을 닫고 스스로 수양하여 우선 학업에 조금 진보한 뒤에 세상에 나가서 도가 있는 문하에 나아가 질정해야겠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인하여 몇 년 동안 학문하였지만 더 진보하지 않았고, 금곡(錦谷), 삼계(三溪), 화서(華西)와 같은 선생들이 서로 이어서 세상을 떠났으니, 외롭게 오늘날 세도의 기대를 받는 사람이 몇이겠습니까. 이에 평소의 계획이 허사가 될까 매우 두려워 여러 날 힘들게 가서 문하에 절하였으니, 소생의 평소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치쯤 되는 가는 죽간으로는 큰 종을 울릴 수 없고, 썩은 나무는 봄 햇살을 받아 살 수 없으니, 이른바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은 처음부터 소생에게 해당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문장(文丈)께서는 특별히 포용해 주시는 은혜를 내리고 가르쳐 주시는 정성을 곡진히 쏟아 오랫동안 중병을 앓는 이에게 알맞은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게 해 주소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마땅히 명심하고 가슴에 새겨 평소 수용할 자료로 삼겠습니다. 생은 출발에 앞서 구구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여 미진한 뜻을 삼가 서신으로 감히 이렇게 번독스럽게 아뢰니, 너무나 송구한 마음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義林伏以自古君子之有名於斯門者。莫不由師友之助而成就其學焉。雖顔曾程朱之賢。必待其師而益彰其德。況其下者乎。如漢唐之世節義文章之士。其才器也。其人品也。若遇孔子而從事。則其所就進。豈止於一藝一行之士而已哉。每讀漢唐書。未嘗不爲此等人物而惜之也。義林才稟昏愚最出人下。所居深僻。又無賢師友之指引。擿埴倀倀者。已二十有餘年矣。初以爲吾當杜門自養。姑俟學業之少進然後。出而就正於有道之門矣。因以有年學不加進。而如錦谷三溪華西諸先生。相繼下世則煢煢爲今日世道之望者。爲幾人乎哉。於是切懼素計之歸虛。累日跋涉。獲拜門下。小生平日之願。可謂遂矣。然寸筳不能發洪鍾之音。朽木不能受陽春之化。所謂下愚不移。未始非此生也。伏願文丈特軫包荒之惠。曲加俯就之敎。使積年膏肓。如得對證單方也。第當書紳服膺。以爲平日受用之資。生將臨行。不勝區區。未盡之意。謹以咫尺之書。敢此煩瀆。不任悚仄之至。 임 좨주(任祭酒) 임헌회(任憲晦, 1811~1876)로,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ㆍ전재(全齋)ㆍ희양재(希陽齋)이다. 송치규(宋穉圭)ㆍ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다. 1874년에 이조 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상소하여 사직하였다. 그 뒤 대사헌ㆍ좨주 등에 임명되었다. 경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낙론(洛論)의 대가로서 이이(李珥)ㆍ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계승하여 그의 제자 전우(田愚)에게 전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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