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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 어른에 대한 제문 祭勉庵崔丈文 갓과 신발이 도치되는 것은 옛날에도 간혹 있었지만 화(禍)는 송나라가 망한 것보다 참혹함이 없고, 금수의 자취30)가 횡행하는 것은 세상에 간혹 있었지만 변고는 오늘의 혼란함보다 심함이 없습니다. 이미 비상한 화와 비상한 변고가 있으니, 반드시 비상한 현인이 나와 부지하여 강상(綱常)의 한 맥으로 하여금 천하 만세토록 실추시키지 않도록 함이 있으니, 송나라 문산 선생(文山先生)31)과 지금의 면암 선생勉庵先生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선생은 벽문(蘗門)32)의 고제로 중옹(重翁)과 종유하여 연원과 문로가 가장 확실하여 말과 마음으로 전수하여 함양한 것이 두텁고 힘입은 것이 깊었으니, 온축함에 덕행이 되고 행함에 사업이 된 것이 순수하여 한결같이 정대하고 광명한 영역에서 나왔습니다. 일용의 전례(典禮)로부터 고금의 사변(事變)에 이르고, 상고의 전훈(典訓)으로부터 근세 유자의 의론에 이르기까지 망라하여 깊이 체득하고 해박하게 관통하였는데 그 원위(原委)와 곡절(曲折), 향배(向背)와 취사(取舍)는 모두 스승의 설을 독실하게 믿어 지켜서 전하여 유가의 한 가닥 정맥을 보존한 것은 선생의 은혜입니다. 선생이 조정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시사(時事)가 날로 그릇되는 것을 보고 걱정과 울분이 강개(慷慨)하여 전후의 40년 동안 아는 것은 말하지 않은 것이 없고 말한 것은 곧은 말이 아님이 없어 비록 정확(鼎鑊)33)이 앞에 있고 영해(嶺海)34)가 뒤에 있더라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비록 쓰이지는 못했지만 천한 사람이 보는 것을 용동시키고 한 시대의 마음과 눈을 일깨울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은혜입니다.한가한 숲속에 물러나자 문하에 찾아와 학업을 청하는 이들이 온 나라에서 몰려들었는데, 타일러 부축하고 가르쳐 이끌어줌에 순순하게 하여 게을리 하지 않아 후생과 후손들로 하여금 방향이 있음을 알게 한 것은 선생이 부지해준 덕분이니, 어찌 오늘의 일에만 알맞을 뿐이겠습니까. 유운(遺韻)과 여열(餘烈)이 드러나 책에 있고 전하여 사람에게 있으니, 천년을 지나고 만세를 지나더라도 태산과 그 높음을 다툴 수 있을 것이고, 해와 별과 그 광채를 다툴 수 있을 것입니다.오호 통재라! 선생이 이 세상을 버리시니, 이 세상은 끝내 오랑캐 지역이 될 것인가? 선생이 이 사람들을 버리시니, 이 사람들은 끝내 금수 같은 부류가 될 것인가? 하늘이 이미 선생을 낳아 강상이 실추되지 않도록 하였으니, 혹 이것으로 인하여 강상의 도가 이에 다시 천하에 크게 밝아질 것인가? 하늘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기의 운수는 기필할 수 없으니, 모르겠으나 선생의 영령이 원기를 되돌려 조진(朝眞)35)하여 귀신을 합하고 조화를 도와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만회하고 옮길 수 있을 것인가? 애통하고 애통하도다.의림(義林)은 기구하게 남은 목숨이 천리에 떨어져 있어 비록 책상을 지고 문하에 찾아가 배운 날은 없지만 편지를 올려 가르침을 청한 것은 끊임없이 이어져 쇠하지 않았으니, 지금 30여 년이 됩니다. 재작년에 이르러서는 질병과 상사가 이어지고 거듭하여 1년 사이에 거의 없었던 날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까이로는 같은 도내에서 달려가 위로 드리지 못하였고, 멀리로는 절역(絕域)의 밖에 달려가 안부도 드리지 못하였으며, 크게 두렵고 크게 놀라운 일이 종종 여기에 이르렀는데도 편안히 집에 있으면서 알지도 못하였으니, 저버린 죄가 여기에 이르러 속죄할 수 없습니다. 제 사가의 전후 상장(喪葬)은 올해에 비로소 끝났으니, 이로부터 거의 한가한 날이 있을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였는데, 문득 몸에 병이 심하여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남을 시켜 제문을 가지고 가 감히 저의 무궁한 슬픔을 고하게 함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冠屨倒置。古或有之。而禍莫慘於有宋之亡。蹄迹交横。世或有之。而變莫甚於今日之亂。旣有非常之禍。非常之變。則必有非常之賢。出而扶持之。使綱常一脉。不墜於天下萬世。宋之文山先生。今之勉庵先生。卽非其人耶。先生以蘖門高弟。重翁遊從。淵源門路。最爲端的。口傳心授。涵厚資深。蘊之爲德行。行之爲事業者粹然一出於正大光明之域。自日用典禮。至古今事變。自上古典訓。至近儒議論。包羅浸淹. 該貫愽通。而其原委曲折。向背取舍。皆篤信師說。守而傳之。以存儒門一條正脉者。先生賜也。先生立朝。曾未幾日矣。見時事日非。憂憤慷慨。前後四十年。知無不言。言無不讜。雖鼎鑊在前。嶺海在後。而莫之顧也。其言雖不見用。而有以聳褐夫之觀瞻。醒一世之心目者。先生賜也。其退閑林樊也。及門請業。傾國坌集。誘掖提絜。諄諄不倦。使後生來裔。知有方向者。先生扶持之力。豈適今日事而已哉。遺韻餘烈。著之在書。傳之在人。經千秋閱萬世。而可以與泰岳爭其高矣。可以與日星爭其光矣。嗚呼痛哉。先生棄斯世。斯世其終爲夷狄之域耶。先生棄斯人。斯人其終爲禽獸之類耶。天旣降先生。使綱常不墜。則或者因此而綱常之道。乃復大明於天下耶。天心未可知。氣運未可必。未知先生之靈。返元朝眞。合鬼神贊造化。有以挽回轉移於㝠㝠之中也耶。痛矣痛矣。義林崎嶇殘生。隔在千里。雖未有負笈踵門之日。而納書請敎。源源不賛。今三十有餘年耳。至再昨歲。疾病喪禍。連綿荐疊。一年之內。殆無間日。是以近焉。而不得奔勞於同省之內。遠焉而不得趍候於絕域之外。大震懼大驚動。種種至此。而恬然在家而不知。辜負至此。無以可贖。私家前後喪葬。臨歳始畢。自謂從此而庶有間日。旋以身憂沈苦莫振。竟不免因人操文。敢告區區無窮之悲。 금수의 자취 오랑캐가 마음대로 설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청나라나 일본 등의 외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송(宋)나라 구규(丘葵, 1244∼1333)의 시에 "거북 규범, 말 그림 같은 상서가 모두 안 보이니, 짐승과 새 발자국만 참으로 분분하네.[龜範馬圖俱寂寂, 獸蹄鳥跡正紛紛.]"라고 하였다. 《釣磯詩集》 문산 선생(文山先生) 남송(南宋)의 충신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을 말한다. 문산은 그의 호이다. 그는 송 이종(宋理宗) 때 우승상(右丞相)으로 화의(和議)하러 원(元)의 궁중에 갔다가 포로가 되었으나 밤에 도망쳐서 온주(溫州)로 돌아왔다. 익왕(益王)이 즉위하여 그를 좌승상(左丞相)에 임명하고 강서(江西)의 도독(都督)으로 삼았으나 또 원군에게 패전하였다. 위왕(衛王)이 즉위하여서는 신국공(信國公)의 봉(封)을 받고 조양(潮陽)에 주둔하였다가 원장(元將) 장홍범(張弘範)에게 패전하여 포로가 되어 연경에 3년 동안 억류(抑留)되었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자신의 충절(忠節)을 나타내고 죽었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벽문(蘗門)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문하를 말한다. 정확(鼎鑊) 형벌의 도구로 사람을 삶아 죽이는 가마솥이다. 영해(嶺海) 중국 오령(五嶺)의 남쪽이나 근해(近海)의 변지(邊地)로, 험난한 땅 혹은 궁벽한 귀양지를 가리킨다. 조진(朝眞) 도교에서 진인(眞人)을 알현하는 것, 혹은 불가(佛家)의 좌선(坐禪)처럼 도가의 방식대로 수련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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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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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남 최원칙에 대한 제문 祭溪南崔元則文 오호라! 공은 말세에 우뚝하게 태어나 천품이 도에 가까웠고 문로가 이미 발라 능히 함양함에 방도가 있었습니다. 단후(端厚)하고 장묵(莊黙)하여 위대하게 산립(山立)36)의 기상이 있었고, 온량(溫良)하고 화락[愷弟]하여 성대하게 봄기운이 불어오는 기운이 있었습니다. 바라봄에 공경할 만하니 도가 있는 기상이 되는 줄 알겠고, 나아감에 사랑할 만하니 덕 있는 군자가 되는 줄 알겠습니다. 나이가 더욱 들수록 덕은 더욱 성대하고, 몸이 더욱 막힐수록 도는 더욱 형통하여 사문의 일맥을 우주가 회양(懷襄)37)하는 가운데서 실추되지 않도록 함이 있었으니, 공은 여기에 대해서는 아마 유감이 없어 생순사안(生順死安)38) 처를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오호 통재라! 사촌(沙村)39)에서 입설(立雪)40)하고 진구(珍邱)에서 스승을 모셨으니, 옛적 어느 날이었던가? 산이 무너졌으니 누구를 우러를까? 벗들을 떠나 쓸쓸히 홀로 지낸지 몇 년이 되자, 옛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을 탄식하고 동지들이 더욱 멀어짐을 개탄하여, 이에 수시로 강론하며 모일 계획을 하였는데, 영남의 신안사(新安社)·뇌룡정(雷龍亭)과 호남의 담대헌(澹對軒)·영귀정(詠歸亭), 방장산·쌍계사·화엄사 등이 모두 그런 곳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선 세상이 혼란하다고 정지하였으니, 어찌 혼란이 끝날 기약이 없고 공이 이미 먼저 갈 줄 알았겠습니까. 우리들이 백수(白首)의 여생에 간관(間關)41)으로 서로 따르며 구구한 세한(歲寒)의 계획42)으로 삼았던 것이 지금은 모두 선천(先天)의 뜬구름이 되었습니다. 뒤에 남은 모래와 자갈 같은 사람43)은 누구를 통하며 누구44)를 의지하겠습니까. 더구나 회양(懷襄)의 경색이 나날이 더욱 심하여 눈으로 차마 볼 수 없고 귀로 차마 들을 수 없음에랴! 단지 덜컥 죽어 공과 함께 팔뚝 잡고 나란히 유람하기를 살았을 때와 같이하려고 하니, 조만간 공은 기다리시라. 嗚呼。公挺生叔世。天資近道。門路旣正。克養有方。端厚莊黙。偉然有山立之象。溫良愷弟。藹然有春噓之氣。望之可敬。知其爲有道氣象。卽之可愛。知其爲有德君子。年彌衰而德彌盛。身益否而道益亨。使斯文一脉。有以不墜於宇宙懷襄之中者。公其於此。庶乎無憾。而可以爲生順死安處矣。嗚呼痛哉。沙村立雪。珍邱侍瑟。昔何日矣。山頽安仰。離索有年。歎舊業之未卒。慨同志之愈遠。乃爲隨時講聚之計。嶺之新安雷龍。湖之澹對詠歸。方丈雙溪華巖。皆非其地耶。行之未幾。姑以世亂停止。豈知亂無了期而公已先逝耶。吾輩以白首殘年。間關相從。以爲區區歲寒之計者。今皆爲先天浮雲矣。沙石在後。誰因雖依。況懷襄景色。日甚一日。目不忍見。耳不忍聞。只欲溘然歸化。與公把臂倂遊。如在世時。早晚公其待之。 산립(山立) 주희(朱熹)의 〈정명도화상찬(程明道畫像贊)〉에 "양기가 만물을 기르듯 하고 산처럼 우뚝 섰으며, 옥빛처럼 아름답고 종소리처럼 쟁쟁하였네.[揚休山立, 玉色金聲.]"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회양(懷襄) 회산양릉(懷山襄陵)의 준말로, 재앙이 매우 큼을 뜻한다.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넘실거리는 홍수가 널리 해를 끼쳐 거세게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넘는다.[湯湯洪水方割, 蕩蕩懷山襄陵.]"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생순사안(生順死安) 도에 입각하여 살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논어》 〈이인(里仁)〉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공자의 말에 대해서 주희(朱熹)가 "도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니, 참으로 이것을 얻어 듣는다면, 살아서는 이치에 순하고 죽어서는 편안하여 다시 남은 한이 없을 것이다.[道者事物當然之理, 苟得聞之, 則生順死安, 無復遺恨矣.]"라고 주석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살아서는 천리(天理)에 따라 일을 행하고, 죽을 때에는 마음 편히 부끄러움이 없다.[存吾順事, 沒吾寧也.]"라고 사용하였다. 사촌(沙村)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있는 마을이다. 입설(立雪) 정문입설(程門立雪)의 준말이다. 송나라 유작(游酢)과 양시(楊時)가 처음 정이(程頤)를 찾아갔을 때 마침 정이가 눈을 감고 앉아 있으므로 두 사람은 인기척을 내지 않고 서서 기다렸는데, 정이가 눈을 떴을 때는 문밖에 내린 눈이 한 자가량이나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정문입설'이라는 유명한 고사로,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宋史 卷428 楊時列傳》 간관(間關) 《시경》 〈소아(小雅) 차할(車舝)〉에 "덜커덩 수레 걸쇠여, 예쁜 막내딸을 생각하여 가도다.[間關車之舝兮, 思變季女浙逝兮.]"라는 말이 나오는데, 수레에 걸쇠를 설치하는 소리이다. 세한(歲寒)의 계획 세한은 해가 저물어 가는 한겨울의 매운 추위를 이르는 말인데, 노년의 지조를 비유한다. 《논어》 〈자한(子罕)〉의 "해가 저물어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뒤에……사람 원문의 "사석재후(沙石在後)"를 풀이한 말이다. 진(晉)나라 왕탄지(王坦之)와 범계(范啓)가 서로 앞을 양보하면서 걸어가다가 뒤에 처지게 된 왕탄지가 "곡식을 까불며 바람에 날리면 겨와 쭉정이가 앞에 있게 마련이다.[簸之颺之, 糠粃在前.]"라고 한마디 하자, 범계가 "조리질을 하며 물에 흔들면 모래와 자갈이 뒤에 있게 마련이다.[淘之汰之, 沙礫在後.]"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世說新語 排調》 누구 저본에는 '雖'로 되어 있으나 '誰'의 오류로 보고 수정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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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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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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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성재30) 유 어른【중교】께 올림 上省齋柳丈【重敎】 연전에 두 통의 편지를 보낸 것은 실로 오랫동안 앙망해 오던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매번 전해지지 못할까 의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함평(咸平)의 인편을 통해 뜻밖에 은혜로운 편지를 보내 종이 가득 온갖 말을 나열해 주시니, 그 순순하고 측달한 말씀은 비록 10년 동안 강석 사이에서 부지런히 배우며 정성을 다한 자라도 어찌 이보다 더 하겠습니까. 아, 덕이 성대하고 예가 공손한 문장(文丈)께서 멀리 있는 사람을 잊지 않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 지극한 뜻을 알았습니다. 돌아보면 이렇게 무능하고 어둡고 용렬한 사람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삼가 사양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소생은 젊어서 노사(蘆沙 선생을 스승으로 섬겼는데 학업을 마치기 전에 갑자기 스승님이 돌아가시는 슬픔을 만났습니다. 저는 삼가 생각건대, '천하가 도도하게 흐르니, 이 몸을 의지할 곳이라곤 오직 화서(華西) 문하의 두세 군자일 따름이다.'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신일신과 집안은 채무로 나락으로 떨어져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느라 거처할 겨를이 없는 지 십수 년 되었습니다. 비록 문하에 찾아가 인사드리지는 못했지만 기대하고 기다리며 어찌 하루라도 잊은 적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위엄이 매우 엄절하고 예수(禮數)가 본디 있으니, 어찌 감히 스스로 총애를 믿고 갑자기 번거롭게 해 드리는 죄를 짓겠습니까. 이것이 이전 편지에서 아뢰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감히 소략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윽고 편지를 주고받을 길이 열려 묻고 가르치는 교분을 이미 맺었으니 구구한 마음에 위로되고 흡족함을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보내온 편지에 "학문을 논하자면 주리(主理)를 큰 종지(宗旨)로 삼고, 시의(時義)를 논하자면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을 제일의로 삼는다."라고 하였고, 또 "우리 유자의 학문은 실로 나아감에 바름을 얻는 것을 급선무로 여기고 바름을 얻은 뒤에는 또 반드시 덕을 증진하고 학업을 닦는 절도가 두루 다하여 치우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천고에 폐할 수 없는 불변의 법칙이고 오늘날 병폐를 치료할 수 있는 진정한 처방전이니, 감히 명심하여 좌우명으로 삼아 아침저녁으로 돌아보고 살피는 방도로 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리(主理)" 2자는 소생이 일찍이 노사 선생의 문하에서 들었고, 나중에 또 벽계(檗溪) 선생의 편지에서 보았습니다. 아, 이(理)는 실로 기(氣)의 주재이니, 어찌 사람이 주재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세상에 주기(主氣)의 폐단이 지극합니다. 태극을 논하면 대기(帶氣)라고 하고, 오상(五常)을 논하면 인기(因氣)라고 하며, 명덕(明德)을 논하면 형이하(形而下)라고 하며, 중화(中和)를 논하면 화(和)를 기로 삼고, 비은(費隱)을 논하면 비(費)를 기로 삼습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에 이르러서는 무릇 용(用)에 발하여 행(行)에서 베풀어지는 것이 조금이라도 조리가 있고 조금이라도 신묘하면 모두 기라고 하면서 마침내 이(理)를 미련하고 흐릿한 것으로 삼아 기식(氣息)이 없는 한 덩어리 죽은 물체로 여기니, 이것이 과연 강충(降衷), 병이(秉彛), 서질(敍秩), 명토(命討)의 의리입니까. 두 선생이 고심하여 매우 힘써서 사문(斯文)과 세도를 위해 계책을 세운 것이 실로 굳건하여 어그러지지 않고 질정해도 의심이 없을 수 있었습니다. 벽계(檗溪)의 문하에 다행히 여러 노련하고 덕이 훌륭한 분들이 있어 또 이어서 밝게 서술하였고, 영호남의 선비들이 또 왕왕 믿고 따르는 자가 있어 두 선생의 논의가 세상에 유행하게 되었습니다.연간에 삼가 문장(文丈)의 말씀을 들으니 심(心)은 기(氣)이지 이(理)가 아니며, 물(物)이지 칙(則)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설이 과연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문장께서 사문(師門)의 종지(宗旨)를 받아 힘써 주리론(主理論)을 주장하시지만 그 논의가 만약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그 사이에 달리 의의가 있는 것입니까? 대략 비루한 견해를 아뢰어 가부의 명을 듣겠습니다. 대저 이와 기는 통틀어 말한다면 기는 다만 이 가운데의 일이니 나란히 하거나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나누어 말한다면 형상(形上) 형하(形下)가 이것입니다. 그러나 주자(朱子)가 이 형상 형하의 뜻을 논하여 말하기를 "형의 유무를 가지고 말하면 물과 이가 서로 단절되어 있다."라고 하였으니, 만약 형체가 없는 것이 이가 되는 것을 알고 형체가 있는 것은 처음에 도가 아님이 없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단절되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심이라는 물건은 지극히 허령하여 당체(當體)에 있어서는 실로 기의 정상(精爽)31)이 되고 기타 질실(質實)한 골자(骨子)는 어찌 일찍이 이 이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선각(先覺)이 어떤 때는 이로 말하였다가 어떤 때는 기로 말한 것이 실로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 어찌 유독 그 기가 되는 것만 인정하고 이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까. 게다가 일찍이 문장(文丈)께서 완이(莞爾) 어른과 저의 스승님께서 문인과 문답한 몇 조항의 말을 논한 것을 구해서 읽은 적이 있는데 사람을 경계하여 깨우친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가만히 노사(蘆沙)의 뜻을 살펴보면 흡사 선과 불선이 함께 태극에 근본하는 듯하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스승님의 뜻이 전혀 아닙니다. 스승님의 말씀 가운데 "'선악은 모두 천리(天理)이다.'라고 한 것은 두 가지가 나란히 하여 각자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천하에는 본래 악이 없다는 것인데 이른바 악이란 것은 바로 선의 얼자(孼子)이니, 얼자는 일찍이 자기의 혈통이 아닌 것이 없으므로 악 또한 천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32)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천하에는 두 가지 종자가 있을 수 없으니, 악이라 할지라도 또한 선에 뿌리를 두고 생겨난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원두(原頭)로부터 말한다면 이(理)는 본래 기를 낳고 유행(流行)으로부터 말한다면 기는 혹 이를 해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평소에 늘 하신 말씀입니다. 「답김경범문목(答金景範問目)」에 "우매한 자를 위해서 한 말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선한 것은 이(理)에 근본하고 불선한 것은 기에서 만들어진다고 한 것이다.……"라고 한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저 평상적으로 말한다면 불선은 기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괜찮지만,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불선 또한 이(理)에서 생겨납니다. 이를테면 정자(程子)가 이른바 "악 또한 성(性)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대저 어찌 정자의 말을 가지고 선악이 태극에서 함께 근본하였다고 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다면 그래도 성악설을 주장하지는 않을 텐데 어찌 스승님께서 이러한 말을 하였겠습니까. 또 완이(莞爾) 어른의 문목을 보니 "일(一)은 이(理)가 관통함이요, 만(萬)은 형(形)이 다른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어찌 만 가지로 나뉘는 이(理)가 있은 이후에 만 가지 다름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설은 저의 생각에 선명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일(一)이라는 것은 만 가지가 모인 것이고, 만(萬)이라는 것은 일이 나누어진 것이니, 어찌 일을 이(理)로 삼고 만을 형(形)으로 삼겠습니까. 만(萬)은 일(一)이 나누어진 것이니 만 가지로 나뉘는 이치가 이미 일(一)에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 본래 만 가지로 나뉘는 이(理)가 없어서 때에 임하여 배정해서 만 가지 다름에 응하겠습니까. 문장(文丈)의 답서를 보니, 한마디 말도 옳지 않다고 한 것이 없었습니다. 한 부(副)의 강토(講討)가 이미 답서 외에 있는 것입니까? 바라건대, 재량하여 가르쳐 주시어 몽매한 이를 깨우쳐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다시 바라건대 도를 위해 더욱 보중하십시오. 年者再度奉書。固出於積仰之私。而程途遙夐。每疑其不免浮沈。月前咸平便。不謂辱賜惠幅。滿紙臚列極其諄惻。雖十年席間服勤致情者。何以加此。於以見文丈德盛禮恭。不忘遐遠。不遺細微之至意也。顧此悾悾昧劣。何以當之。切欲解使去已而不可得也。生少師蘆沙先生。未及卒業。而遽遭山樑之痛。區區竊念寰宇滔滔。可以爲此身依歸之地者。惟是華西門庭數三君子而已。然而身家債業。墜在於水山雲雷之中。流離瑣尾。不遑其居。以來十數年矣。雖未能抱刺踵門。而期擬等待者。何嘗一日而忘也。然等威切嚴。禮數自在。則豈敢自恃隻愛。而遽犯煩瀆之罪乎。此前書所以不能不達。而亦不敢不略也。旣而一往一復。書路已開有問有敎。契分已定。區區慰洽。不容名喩。下喩有曰。論學問則以主理爲大宗旨。論時義則以斥羊爲第一義。又曰吾儒之學。固以趨向之得正爲急先務。而及其待正。則又必以進修節度之周盡無偏爲貴。此是千古不刊之典要。今日對證之眞劑。敢不書紳銘座。爲日夕顧諟之方也。然主理二字。生嘗聞之於蘆沙先生之門矣。後又得見於檗溪先生之書矣。嗚呼。理固氣之主。何待乎人之主之也。世之主氣之獘極矣。論太極則謂之帶氣。論五常則謂之因氣。論明德則謂之形而下。論中和則和爲氣。論費隱則費爲氣。以至三綱五倫。凡發於用施於行者。才有條理。才涉神妙。皆謂之氣。遂以理爲冥頑儱侗。没氣息底一塊死物。此果降衷秉彛敍秩命討之義耶。二先生所以苦心極力。爲斯文世道計者。實可以建不悖而質無疑矣。檗溪之門。幸有諸老長德。又從而紹述之。嶺湖士子。又有往往信從者。庶幾二先生之論。見行於世矣。年間伏聞文丈之言。以爲心氣也。非理也。物也。非則也。未知此說果爾否。文丈受師門宗旨。力主主理之論。而其論若果如此。則抑別有意義於其間耶。略陳鄙見以聽可否之命。夫理與氣。統言之。則氣只是理中事。非比倂對峙之物也。分言之。則形上形下是也。然朱子論此上下之義曰。若以無形有形言之。則便是物與理相間斷了。若知無形之爲理。而不知有形之未始非道。則不其幾於間斷乎。心之爲物。至虛至靈。在當體。固爲氣之精爽。而其他骨子實頭處則何嘗不是理耶。此先覺所以或以理言或以氣言者。固不一二矣。今何獨與其爲氣而不與其爲理也。且曾得文丈與莞爾丈論鄙師門與門人問答數條語。讀之。其警發人。甚多。但其中有曰。竊觀蘆沙之意。恰似善不善同根於太極。此則甚非先師之意也。先師之言曰。善惡皆天理云者。不是兩端倂立。各自出來。正以天下本無惡。而所謂惡者。乃善之孼子。孼子未嘗非已之血脈。故惡亦不可不謂之天理也。又曰。天下不容有兩種子。雖慝亦根於淑而生者也。又曰。自原頭言。則理本生氣。自流行言。則氣或害理。此其平日雅素之言也。至若答金景範問目有曰。爲昧者言。不得不曰。善者根於理。不善者作於氣云云。夫平說則謂不善作於氣可也。極言之則不善亦生於理。如程子所謂惡。亦不可不謂之性也。夫豈以程子之言謂善惡同根於太極乎。稍有知識者。猶不爲性惡之說。豈先師而有是言乎。又見莞爾丈問目有曰。一者理之通萬者。形之異。又曰。豈有萬分之理而後。可以酬應萬殊乎。此說。於鄙意多未塋。一者萬之總。萬者一之分。豈以一爲理而以萬爲形乎。萬爲一之分。則萬分之理。已具於一矣。豈本無萬分之理。而臨時排定。以應萬殊乎。見文丈答書。無一言以爲不然者。未知一副講討。已在於答書之外耶。望乞俯賜裁敎。以開蒙蔀。如何。天氣漸寒。更乞爲道增重。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1832~1893)로,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이다. 한말에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하였고, 심설(心說)에 대한 학술 논쟁을 전개하는 등 학문에 전념하였다. 정상(精爽)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마음은 기의 정상이다.[心者, 氣之精爽也.]"라고 하였는데, 정상은 일종의 신명(神明)과 같다. 마음은 이 신명이 있어서 지각운용(知覺運用)의 묘(妙)를 발현하게 된다. 선악은……없다 이 내용은 《노사집(蘆沙集)》「담김경범(答金景範)」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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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 및 제군들과 작별하며 4수 別玄狂及諸君【四首】 해가 저물어 새봄으로 바뀌는 걸 보니 歲行將見換新春인간사 때에 따라 감회가 새로워라 人事隨時覺感新내 집에 세 봉우리 목가산544)을 보지 말게 毋我三峯看木假그대들 백번 단련해 금단 얻었다 인정하네 許君百鍊得金眞석별할 때에 몹시 서글퍼하기보다는 與其惜別生怊悵마음을 알고 몸을 잊는 게 어떻겠는가 何似知心忘骸身부지런히 공부해 천성을 회복하길 기다렸는데 好待返天勤勉學얼마 뒤에 바닷가에서 전쟁이 일어나누나 俄聞海上起兵塵외진 곳이라 평소에 찾아오는 이 없으나 僻地無人見過尋때로 젊은 선비들545) 숲처럼 모여든다네 有時衿佩會如林뒤에 시든 솔잎은 겨울을 지낸 모습이고 後凋松葉經冬色백 번 꺾인 계곡물은 바다 속에 이른다네 百折溪流到海心증언546)이 선한 일인지는 진즉 알았으나 久識贈言爲善物화답은 적은데 고상한 시구라 깜짝 놀랐네 忽驚寡和是高吟눈 오는 날에 송별하니 남은 인연 중한데 雪天送別餘緣重땅 밑에는 봄이 와서 벌써 시월547)이라네 地底陽春已剝陰요사이 쇠잔한 병증이 한사코 찾아드는데 邇來衰病苦侵尋유독 나이 들어 백발이 가득함을 느낀다네 偏感年華雪滿林누각은 푸른 봉우리를 묶어 땅에서 솟은 듯 樓括峯靑超地面달은 어두운 밤기운 몰아 하늘 한복판에 이르네 月驅夜黑到天心〈아양곡〉548)을 지금 세상엔 연주하기 어려운데 峨洋今世難爲奏〈양보음〉549)을 어떤 사람이 홀로 읊겠는가 梁甫何人獨自吟이 모임의 슬픔과 기쁨도 묵은 자취 되었으나 此會悲歡陳跡又우군이 먼저 이미 산음의 모임을 기록했었네550) 右軍先已記山陰어느 해에 군자가 띠 풀의 뿌리 뽑으려는지551) 何年君子拔茹茅책 속에서 아득히 정신으로 교분을 나눈다네 卷上遙遙神有交심법을 누가 물속의 달에게 전할 수 있으랴 心法誰能傳水月세풍은 아교로 황하를 맑게 하는 것처럼 어렵지552) 世風難得試河膠중년 들어 귀밑털이 희어짐을 탄식하지 말게 休歎雪鬢過中歲최후에 있는 남은 인연을 반드시 기다리리라 定待餘緣在末梢어찌 꼭 창려처럼 감개함이 많아서 那必昌黎多感慨불평스런 문자를 차가운 교외로 보내랴553) 不平文字送寒郊 歲行將見換新春, 人事隨時覺感新.毋我三峯看木假, 許君百鍊得金眞.與其惜別生怊悵, 何似知心忘骸身?好待返天勤勉學, 俄聞海上起兵塵.僻地無人見過尋, 有時衿佩會如林.後凋松葉經冬色, 百折溪流到海心.久識贈言爲善物, 忽驚寡和是高吟.雪天送別餘緣重, 地底陽春已剝陰.邇來衰病苦侵尋, 偏感年華雪滿林.樓括峯靑超地面, 月驅夜黑到天心.《峨洋》今世難爲奏, 《梁甫》何人獨自吟?此會悲歡陳跡又, 右軍先已記山陰.何年君子拔茹茅? 卷上遙遙神有交.心法誰能傳水月? 世風難得試河膠.休歎雪鬢過中歲, 定待餘緣在末梢.那必昌黎多感慨, 不平文字送寒郊? 세 봉우리 목가산(木假山) 산의 아름다움과 좋은 기운을 예찬하였다. 소순(蘇洵)의 〈목가산기(木假山記)〉에 "내 집에 세 봉우리의 목가산이 있는데 내가 매양 생각해보니 운수가 그 사이에 있는 듯하다.〔予家, 有三峰, 予每思之, 則疑其有數存乎其間.〕"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젊은 선비들 원문의 '금패(衿佩)'는 푸른 옷깃과 푸른 패옥(佩玉)을 말한 것으로 푸른 복장(服裝)을 한 청년 학도를 가리킨다. 《시경》 〈정풍(鄭風) 자금(子衿)〉에 "푸르디푸른 그대의 옷깃이여, 길이 생각하는 내 마음이로다. 비록 나는 가지 못하나, 그대는 왜 소식을 계속 전하지 않는고. 푸르디푸른 그대의 패옥이여, 길이 생각하는 내 마음이로다. 비록 나는 가지 못하나, 그대는 어이하여 오지 않는고.[靑靑子衿, 悠悠我心. 縱我不往, 子寧不嗣音? 靑靑子佩, 悠悠我思. 縱我不往, 子寧不來?]"라는 말이 나온다. 증언(贈言) 고대에 지인들과 이별할 때 서로에게 좋은 말[言]을 주었다. 뒤에 증시(贈詩)나 증서(贈序) 등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사기》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노자(老子)가 공자(孔子)를 전송하면서 "부귀한 자는 사람을 보낼 때 재물을 주고, 어진 사람은 사람을 보낼 때 말을 준다고 나는 들었다.〔吾聞富貴者送人以財, 仁人者送人以言.〕"라고 한 고사에서 온 것이다. 시월(十月) 원문의 '박음(剝陰)'은 음(陰)이 양(陽)을 다 갉아먹었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음이 꽉 찬 상태인 순음(純陰)으로 이루어진 곤괘(坤卦)에 해당하는 음력 10월을 의미한다. 아양곡(峨洋曲) 거문고 연주곡의 이름으로,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타고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는 '고산유수곡(高山流水曲)'을 말한다.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자 종자기(鍾子期)가 "높고 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라고 하였고,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자 "넓고 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하였다. 양보음(梁甫吟) 악부가사(樂府歌辭)의 이름으로, 예부터 전해 온 만가(挽歌)이다.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일찍이 지어 노래한 가사가 특히 유명한데, 그 내용은 곧 제 경공(齊景公) 때 안영(晏嬰)이 천하무적의 용력(勇力)을 지닌 공손접(公孫接),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 세 용사(勇士)에게 기계(奇計)를 써서 그들에게 복숭아 두 개를 주어 서로 다투게 하여 끝내 모두 자살하도록 만들었던 일을 몹시 안타깝게 여겨 노래한 것이다. 《삼국지(三國志)》 권35 〈촉서(蜀書) 제갈량전(諸葛亮傳)〉에 의하면 "제갈량은 몸소 농사를 지으면서 〈양보음〉 읊기를 좋아했다.[亮躬耕壟畝, 好爲梁父吟.]"라고 하였다. 우군(右軍)이……기록했었네 우군은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낸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키며, 산음은 중국 절강성 회계현에 있는 지명이다. 영화(永和) 9년 삼짇날 왕희지(王羲之)가 당시의 명사(名士) 40여 명과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서 모임을 갖고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풍류를 즐겼던 일을 〈난정기(蘭亭記)〉라는 글로 기록해 놓은 것을 말한다.《古文眞寶 後集 卷1》 띠 풀의……뽑으려는지 뜻을 같이하는 현인들이 때를 만나 한꺼번에 나온다는 의미이다. 《주역》 〈태괘(泰卦) 초구(初九)〉에 "엉켜있는 띠 풀의 뿌리를 뽑는 것과 같아 동류들과 함께 감이니, 길하다.[拔茅茹, 以其彙征, 吉.]"라는 말이 보인다. 아교(阿膠)로……어렵지 아교(阿膠)는 검은 당나귀 가죽을 진하게 고아서 굳힌 약품으로, 여기에는 흐린 물을 맑게 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른 말인데, 작은 양의 아교로는 많은 물을 맑게 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신(庾信)의 〈애강남부(哀江南賦)〉에 "아교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게 할 수 없다.[阿膠不能止黃河之濁]"라고 하였다. 창려(昌黎)처럼……보내랴 창려는 당나라의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호이다.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사람이 불우하게 지내야 좋은 시문을 짓는다는 뜻을 말하면서 "만물은 평정함을 얻지 못하면 운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라고 하였다. 《韓昌黎文集 卷19 送孟東野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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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익에게 보냄 병인년(1926) 與吳士益 丙寅 김태형(金台亨)에게 들으니, 음성 사람이 선사의 손자를 고소하여 가둔 뒤에 애시(哀侍)4)께서 여러 자질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이후로는 다시는 석농(石農)의 호를 들어 부르지 말라."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고명한 제공(諸公)이 선사를 무함했을 때에 배척하지 않다가 선사의 손자가 갇히는 것을 기다렸다 비로소 폄하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러나 이미 깨달았으니 또한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선사의 원고를 바꾸고 첨삭을 하였으니, 이처럼 지극히 무엄한 것을 본다면 제공은 의당 호를 없애는 정도로 폄척할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聞諸金台亨,陰人訴押師孫之後,哀侍與群從語曰: "今而從不當復舉石農之號而呼之." 以若諸公高明,不於誣先師而斥之,始待押師孫而貶之,何也? 然既已覺悟,亦云幸矣.今又改換添削師稿之罪,如是無嚴之極,諸公見之,應不但去號之貶而已也. 애시(哀侍) 서간문에서 흔히 쓰는 말로, 거상(居喪) 중에 있으면서 홀아버지나 홀어머니를 모시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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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유 정술의 자사 【무진년(1928)】 金士由【正述】字辭 【戊辰】 내가 일찌기 들었는데, '의(義)는 사람이 갈 바른 길'이라고 맹자는 주장했고, '어찌하여 사도(斯道)를 말미암지 않는가'라고 공자는 탄식했다. 족제(族弟) 정술(正述)에게 주는 자는 사유(士由) 즉 선비가 말미암는 바이니 이는 진실로 변하지 않는 명언이다.나는 바라건대, 사유가 눈 앞의 한 줄기 탄탄대로를 따라 멈춤 없이 마냥 계속 나아가기를 바란다. 만약 눈과 발을 한번 잃으면 좌우에 깊은 구덩이와 우거진 가시나무를 보게 될 것이다. 아! 정(正)을 따라감은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니, 어찌 남에게 달려있겠는가? 사유여, 부디 노력하시라! 蓋嘗聞義爲人之正路, 孟氏有論, 何莫由斯道, 宣聖攸歎。 族弟正述, 士由之欽, 洵不易之名言。 吾願士由由眼前坦坦一條路, 只管行行去不住。 如足目之一失, 將見左坑塹而右荊榛也。 噫! 由正由己, 而由人乎哉, 由哉其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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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날 삼려대부 굴원을 생각하며 端午懷屈三閭 오래전 굴원이 초나라 강가에서 昔年屈子楚江涯연잎의 얇은 옷에 난패 찼었지 荷葉衣凉蘭佩斜공연히 미인 가탁해 초목을 슬퍼했고 空借美人悲草木어찌 탁한 세상 따라 진흙탕과 뒤섞이랴 肯隨濁世混泥波회옹의 집주17)에는 마음으로 진정 사모했으니 晦翁集註心誠慕양부18)의 애사를 보니 눈물 또한 많다네 梁傅哀辭淚亦多단오절 술잔 들고 애오라지 강신해서 樽酒端陽聊出酹천년 간 충혼 어찌 지냈나 묻노라 忠魂千載問如何 昔年屈子楚江涯,荷葉衣凉蘭佩斜.空借美人悲草木,肯隨濁世混泥波.晦翁集註心誠慕,梁傅哀辭淚亦多.樽酒端陽聊出酹,忠魂千載問如何? 회옹의 집주 송(宋)나라 주희(朱熹)의 《초사집주(楚辭集注)》를 말한다. 양부(梁傅) 회양왕태부(梁懷王太傅) 가의(賈誼 B.C.200~B.C.168)를 말한다. 그는 시서(詩書)에 뛰어난 한 문제(漢文帝) 때 사람으로 20세의 젊은 나이에 박사(博士)가 되고, 이어 태중 대부(太中大夫)가 되었는데,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다가 시기를 받아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밀려날 때 상수(湘水)를 건너면서 〈조굴원부〉를 지어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이어 양 회왕(梁懷王)의 태부가 되었으나 양 회왕이 낙마(落馬)하여 죽자 자책을 느끼고 33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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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복에게 보냄 경오년(1930) 寄炯復 庚午 옛날에 듣기로 '금강산은 마치 천상에 있는 듯하다' 던데, 어제 출발하여 오늘 도착했으니 기차가 이렇게 빠르구나. 겨우 동천(洞天)에 들어가니 맑은 승경이 더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단다. 평생 세상일에 대한 생각과 함께 어쩔 수 없는 것들조차 거의 연기처럼 사라지고 구름처럼 없어지는 듯하였는데, 하물며 일종의 잡념과 사욕으로 이름을 욕되게 하고 몸을 망치는 것에 있어서랴! 스스로 상쾌한 나머지 너를 데리고 와서 함께 보지 못한 것이 한이더구나. 비록 그렇지만 산수(山水)는 외적인 것이고, 마음은 내적인 것이다. 마음이 만약 청정하면 내 몸은 금강산의 승경에 있지 않은 날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곧 구경법(究竟法)이다. 스스로 나를 면려하는 중에 또 너도 여기에서 준칙으로 삼기를 바란다. 천리 멀리서 마음으로 부탁함은 또한 대면하여 말하는 것보다 특별하니 맹렬히 성찰하기 바란다. 昔聞金剛如在天上, 昨發而今到, 汽電之速, 乃若是也.才入洞天, 已覺淸勝, 非復人境.生平世念, 幷與不容已者, 幾欲烟消雲滅, 而況一種雜思私欲, 以辱名喪身者乎! 自快之餘, 恨不携汝同觀也.雖然, 山水外也, 心地內也.心苟淸淨, 吾身無日不在金剛勝境.此乃爲究竟法.自勉之餘, 又欲汝之準極于此也.千里心託, 又別面喩, 想或猛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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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복에게 보냄 경술년(1934) 寄炯復 甲戌 얼핏 듣기로 네가 현광(玄狂)을 쫓아 《간재선생속집(艮齋先生續集)》 관련 일을 같이 한다고 하던데, 만약 전해준 자가 빈말이 아니라면 이는 필시 내가 알면 못하게 할까봐 서신도 다 끊고 행방도 비밀로 한 것인가 보구나. 너는 한 번 생각해보아라. 오늘날 형세 상 어찌 문집이 간행되는 걸 모를 리가 있겠느냐. 또 아비는 유훈을 지키는데 자식이 간행 일을 보는 이치가 어디 있단 말이냐. 네가 비록 스스로 이 일을 시작하였으나 이 일은 스승 문하와 관련되어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집에 있으면서도 모르는가."하곤 하는데, 그것을 듣고 걱정과 상심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구나. 부디 속히 돌아와 산중에 깊이 들어가 시골 수재나 가르치며 겨울을 날 계책으로 삼거라. 이것이 네가 명(命)을 세워 몸을 편히 할 수 있는 자리이니 깊이 반성하여 소홀히 하지 말거라. 似聞, 汝從玄狂, 同事艮翁續集之役, 若傳者非虛, 是必汝恐我知而禁止, 幷絶書信秘行住也.汝試思之.今日之勢, 焉有不認刊集之理? 又焉有父守訓而子認刊之理? 汝雖自作此事, 事係師門.人肯謂吾"在家不知乎?", 聞之憂傷, 莫知所爲.千萬亟歸, 深入窮山, 敎授村秀, 爲經冬計也.是爲汝立命安身之地, 其猛省毋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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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友人 同年古所善。蛩蟨互相依。歘爾成千古。臨風淚濕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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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日省楸 墓道彷徨怵惕新。經冬莎草向陽春。未知白骨安寧不。此事平生恨莫伸。筇音深淺崦嵫歸。益歎神精舊日非。達夜呻吟渾不省。朝看騰六羃篁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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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和蘆沙先生丈入山韻 湖省群山瑞嶽宗。瞻之慱厚仰之隆。主翁不敢靑城唾。表德如今喚作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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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에 유선암19)에 올라 을사년(1905) ○이하 같음 五月望日上遊仙菴 【乙巳○下同】 옛날 신선들 이곳에서 놀 때를 생각하니 憶昔仙人此地遊신선들 이미 떠나갔고 물만 공연히 흐르네 仙人已去水空流온 산은 검푸른 바다 밖에 아득하고 羣山縹渺滄溟外화각은 고을 성가퀴 앞에 삐죽빼죽 畫閣參差郡堞頭오월이 비로소 왔으나 꾀꼬리는 늦게야 오고 五月始來黃鳥晩십 년 또 흘렀는데 흰구름만 유연히 떠가는구나 十年重到白雲悠반나절 한가한 시간 얻었으니 맑음 넉넉하여 偸間半日淸眞足이로부터 세속의 인연은 누각에 오르지 못하리라 自是塵緣不上樓 憶昔仙人此地遊,仙人已去水空流.羣山縹渺滄溟外,畫閣參差郡堞頭.五月始來黃鳥晩,十年重到白雲悠.偸間半日淸眞足,自是塵緣不上樓. 유선암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일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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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初雪 점점이 바람 따라 떨어지더니 點點隨風落펄펄 내려 나무 가득 덮는구나 霏霏入樹冥배꽃처럼 천만송이 떨어지더니 梨花千萬朶순식간에 앞뜰 가득하구나 頃刻滿前庭 點點隨風落,霏霏入樹冥.梨花千萬朶,頃刻滿前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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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재명 【동생 김억술199)을 위해 지음. 경인년(1950)】 拓齋銘 【爲舍弟億述作 庚寅】 그 도량 넓고 크고 弘大其量,그 지향 높고 머니, 高遠其志,마치 이름난 장수처럼 有若名將,천리 땅을 새로 개척하고, 千里拓地,중니의 밝고 쾌활함을 仲尼明快,밀어 나아가서 끝내 얻으라. 推極可致.어찌 구구하게 구애되어 豈可規規,걱정근심을 일삼아 하랴. 事爲戚戚,시름과 가난을 하찮이 보는 憂貧若小,크고 늠름한 대장부 모습. 丈夫然哉!나 이제 척 여는 방이라 하여 我以拓齋,너의 평안한 방 편액 써주니. 扁汝安室,힘쓰거라 너의 자 여안(汝安)이 勖哉汝安,너의 실질에 딱 맞도록. 能副其實. 弘大其量, 高遠其志, 有若名將, 千里拓地。 仲尼明快, 推極可致, 豈可規規, 事爲戚戚, 憂貧若小, 丈夫然哉! 我以拓齋扁汝安室, 勖哉汝安, 能副其實, 김억술(金億述) 1899~1959, 김택술의 세째 아우로, 자는 여안(汝安)이고, 초호는 연강(蓮岡)이다. 마찬가지로 전우의 문인이다. 부인은 조양임씨(兆陽林氏)이고, 사남삼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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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봉 仙人峯 한 봉우리 우뚝 솟은 지 천년 만년 一峯聳立萬千年곧장 하늘에서 꽂은 듯 기세 깎아지른 듯 直揷蒼穹勢截然뜬구름 같은 세상 속인들은 부질없이 멀리 바라보고 浮世塵人徒遠望흰구름은 신선들과 짝을 이뤄 몇 번이나 머물렀던가 白雲仙侶幾留緣잘 갈은 검은 칼집에서 막 나온 듯 磨來劒鍔鞱中出막 딴 연꽃이 손 위에 전해진 듯 摘取蓮花掌上傳영험한 뿌리 늙지 않아 이곳에 있음을 알겠으니 不老靈根知在此시황제여 헛되이 해동에 배를 띄워 보냈는가20) 秦皇謾泛海東船 一峯聳立萬千年,直揷蒼穹勢截然.浮世塵人徒遠望,白雲仙侶幾留緣.磨來劒鍔鞱中出,摘取蓮花掌上傳.不老靈根知在此,秦皇謾泛海東船. 시황제여……보냈는가 진시황(秦始皇)이 서불(徐市)을 시켜 서인봉에 불로초(不老草)를 따올 것을 명했던 고사를 전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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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사를 찾아가 스님 영호에게 줌 過龜巖寺贈僧暎湖 숨어 지내던 사람이 스님의 거처를 찾아왔더니 幽人來訪上人居궁벽한 협곡엔 가을 소리에 온 나무는 휑하네 窮峽秋聲萬木疎시율로는 재주도 좋고 필법 또한 오묘하며 詩律能才兼筆妙범선이 한가한 틈에 유학서 섭렵했네 梵禪暇隙理儒書석상에서 과일 먹다 보니 정은 오히려 두텁고 石牀喫果情猶厚오래된 절에서 새로운 얘기에 뜻이 넘쳐나네 古寺談新意有餘훗날 우리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他日吾行重到此이별에 어찌 굳이 슬퍼할 일 있겠소 別離何必悵然如 幽人來訪上人居,窮峽秋聲萬木疎.詩律能才兼筆妙,梵禪暇隙理儒書.石牀喫果情猶厚,古寺談新意有餘.他日吾行重到此,別離何必悵然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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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비가 내리기에 雨夜 구름 깊어 산에 비가 내리는데 雲深山有雨하늘은 컴컴 밤에 별 하나 없네 天黑夜無星적막한 숲속의 집에서는 寂寂林間屋책 보는 등불 하나 밝구나 書燈一點明 雲深山有雨,天黑夜無星.寂寂林間屋,書燈一點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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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경재 계옥 에 화답하다 和李顧敬齋【啓鉅】 마음으로 사귐은 원래 동서의 구분 없으니 心交元不限西東어찌 염량세태 향해 허덕허덕 쫓아가리오 肯向炎涼逐逐中이치를 따르면 평탄한 길 아닐까 어찌 걱정하리 順理何憂非坦道사익을 부수면 바야흐로 풍성한 공을 허락 받으리 破私方許是豊功영산의 달은 온 하늘을 나누어 비치나니 一天分照瀛山月수사299)의 풍화에 영원토록 함께 돌아가리 萬劫同歸洙泗風늘그막에도 생기가 넉넉하여 보기 좋으니 晩境好看生意洽서재300)에서 한 해가 간다 한스러워 말라 莫恨芸牕歲華窮 心交元不限西東, 肯向炎涼逐逐中.順理何憂非坦道, 破私方許是豊功.一天分照瀛山月, 萬劫同歸洙泗風.晩境好看生意洽, 莫恨芸牕歲華窮. 수사(洙泗)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강물 이름인데, 공자가 고향과 가까운 이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것을 들어 공자와 유가(儒家)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서재 원문의 '운창(芸牕)'으로, 운(芸)은 다년생 풀인데, 좀을 물리치는 향기를 지녔으므로 서재나 장서실을 운각(芸閣) 또는 운창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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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에서 자책하며 病枕自訟 대장부 반백년에 이룬 것은 하나도 없고 丈夫半百一無成달팽이 집 세 칸만 고부 북쪽 성에 있네 蝸屋三間阜北城가업을 망치는 것은 망국의 죄와 같은데 敗業有同亡國罪경전 궁구하며 감히 집안 명성 이엇다 하랴 窮經敢曰繼家聲뭇 원망을 실컷 썼으나 전혀 없는 일 아니고 飽蒙羣讟非全罔좋이 남의 스승 되었으나 실제 행실 부끄럽네 好作人師愧實行병석에서 헤아리며 다시 스스로 책망하니 病枕商量還自訟괜히 읊으며 어찌 불평한 소리364) 내리오 謾吟何用不平鳴 丈夫半百一無成, 蝸屋三間阜北城.敗業有同亡國罪, 窮經敢曰繼家聲.飽蒙羣讟非全罔, 好作人師愧實行.病枕商量還自訟, 謾吟何用不平鳴. 불평한 소리[不平鳴] 불공평한 일을 당했을 때 내게 되는 불만의 소리를 말하는데 시(詩)가 그런 것이다.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대체로 사물이 그 화평함을 얻지 못하면 운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맹동야가 시를 잘 지은 것을 '잘 울었다[善鳴]'라는 말로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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