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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유(吳錫裕)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吳錫裕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24_001 오석유(吳錫裕)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5월 30일에 오석유(吳錫裕)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 자신이 없을 때에 찾아주었는데 만나지 못해서 몹시 섭섭했고, 매번 편지를 써서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는데 잡다한 일에 치여 겨를이 없던 차에, 마침 보내준 편지를 받고나니 더욱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하였다.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시절에 전원생활은 어떠신지, 부친께서는 편안하신지 묻고, 아드님이 학업을 잘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축하를 전하였다. 상대방이 사는 곳이 가까운데도 찾아뵙지 못하여 더욱 그립다고 하면서 자주 방문해달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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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계묘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인 이생원(李生員)에게 안부를 전하며 자신 집안에서 당숙모를 열부 정려를 받기 위해 정장을 추진하는 과정이니 명첩을 써서 보내주기를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계묘년 8월 10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고모부의 병환 소식을 듣고 염려스러웠는데 그사이 다 나았는지, 집안 식구들은 다들 잘 지내는지에 대해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이 그럭저럭 예전처럼 지내고 있어 다행이지만 작년 연말 전후로 집안의 상변(喪變)을 거듭 당하여 비통한 심정으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치수(致受) 사촌이 상대방 고을로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당신이 있는 곳을 방문할 것 같다고 소식을 전하였고, 보내준 여러 물품들에 대한 감사도 전하였다. 자신 집안에서 당숙모(堂叔母)의 열부(烈婦) 정려(旌閭)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상대방 고을의 여러 사람들에게도 많은 명첩(名帖)을 받았다고 하면서 고모부도 인편을 통해 써서 보내주기를 청하였다. 고모부의 형님께서 서울 행차에서 돌아오셨는지 묻고 바빠서 따로 서찰을 쓰지 못하니 안부를 전해 달라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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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김환상(金煥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煥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에 김환상이 노진영에게 안부를 묻고 지난번의 가르침에 감사를 전한 서간. 1912년 3월 28일, 제(弟) 김상환(金煥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묻고 지난번의 가르침에 감사를 전한 편지이다.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지내고 있는 김환상이 오랫동안 친분을 가지고 가르침을 받는 상대에게 이즈음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자신은 별 탈 없이 집에 도착하였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번에 당신이 있는 곳에 갔을 때 두터운 가르침을 받았으며 넉넉히 대접해 주어 감사했다고 인사했다. 안부를 묻기 위해 편지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상대의 종형제가 되는 춘강(春岡) 형은 잘 지내는지 물으며 자신이 안부를 물었음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무성서원은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무성리(武城里)에 있는 사액 서원이다. 노진영은 당시 광주군 지산면 일곡리(日谷里)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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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4년 무성서원유회소(武城書院儒會所)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茂城書院儒會所 李太沃 茂城書院(흑색, 직방형, 7×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4년 11월에 무성서원유회소에서 유학 이태옥을 본원의 도내색장 후보로 추천한 문서 1924년 11월에 무성서원유회소에서 강진군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유학 이태옥(李太沃)을 무성서원의 도내색장(道內色掌) 후보로 추천한 문서이다. 문서의 발급날짜 위에 '유회소인(儒會所印)'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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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16년 최덕련(崔德連)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16 谷城縣監 崔德連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16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덕련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16년(순조 16)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덕련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덕련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8통 4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28세 기유생(己酉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덕련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할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증조(曾祖)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贈嘉善大夫工曹叅判五衛都摠府副摠管) 성남(聲南), 외조(外祖) 학생 황경하(黃慶河)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최덕련의 아내 박씨(朴氏)는 나이 29세 무신생(戊申生)이며, 본관은 밀성(密城)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외 소유하고 있는 여종 상원(尙元)이 있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1813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계유상준인(癸酉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덕련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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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朝鮮 全南 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永 氏殿(피봉_뒷면)大阪市 東成區 大益里町 五0三竹田方金熙道十月十六日(簡紙)久未承安候에 下懷는 無日不憧憧耳. 謹未審秋涼,侍中體度萬安하시오며 諸集이 均平하온지 遠外區區願聞且祝耳. 戚弟는 旅窓眠食이 別無他損하오니以是伏幸也. 外何煩上아 第拱戚弟의 家事形便을 말할것 갓허면 兄任도 아시는 바와 갓치 저좃차 이곳에와서잇고 兄任에개 不足하고 未安한 일이 만헐줄 저도 生覺하옵내다만은 兄任工은 十分에 一分도 갑지못하오니 엇듯타말할수도업나이다. 연이나 저도 이곳서 한五百圓만 되면 還家하아 兄任과 이논하야 商業이라도한면 할나 하엿드니 이곳도不景氣로서 마음되로 되지 안이하고 至今貳百圓가량은저축하야서나 긔것설 가지고 敀鮮을 하야 허비하고 보면 長來가 엇지될 줄 몰나서 자지中이외다만은 歲末에는 집農事준비하기爲하야 一次還家하기를 爲計하노니 萬事를다 容恕하야주시고 令般留移이오ㅡ바 一幅을 付送하오니 번번치 못하오나 推尋하야주심을 千萬伏望耳옵고 推尋后 卽之回示를 伏望耳. 餘不備上書.旧十月十六日, 金熙道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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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정순묵(鄭淳默)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默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음력 6월 28일에 사생 정순묵이 사돈 노종룡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보낸 서간. 1916년 음력 6월 28일에 사생(査生) 정순묵(鄭淳默)이 사돈 노종룡(盧鍾龍, 1856~1940)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보낸 간찰이다. 극남(極南) 지역에 재해가 든 것 중 이번 여름만한 것이 없다며 이러한 때에 배나 더 그립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사돈과 아드님, 당신의 사위되는 형님의 근왕을 묻고 자신은 어르신 곁에서 그럭저럭 보낸다고 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나머지 병들지 않은 이가 없다며 큰 걱정은 안하지만 고생스럽다고 했다. 선(選) 아이 집도 또한 다른 일 없다는 것, 이달 22일 술시에 며느리가 남자애를 낳았고 순산했고 다른 증세가 없다는 것, 다만 초산이라 젖꼭지가 홍색이 되어 작은 통증이 있다고 했다며 단방처방을 쓰려는데 사돈의 회답이 어떠할지 모르겠다는 것, 집안에서는 7월이 산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남자애를 낳았다며 작년 9월에 잉태한 모양이라고 했다. 집안에 웃음소리가 들려 다행이라는 것, 큰비 내리는 중이라 두 집 간의 소식이 조용하니 지척 거리가 천리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마침 우체편이 있어 안부를 묻는다며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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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김희도(金熙道)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熙道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음력 10월 16일, 척제 김희도가 노진영에게 자신의 국외 근황을 전하며 상대에게 일정금액을 보내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음력 10월 16일, 척제(戚弟) 김희도(金熙道)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의 국외 근황을 전하며 상대에게 일정금액을 보내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국한문혼용으로 규격지 2장에 푸른 잉크의 만년필로 썼다. 내용은 오랫동안 안부를 듣지 못해 그립다는 것, 서늘해진 가을에 상대가 안녕하신지 멀리서 소식이 듣고 싶다는 인사, 척제(戚弟)인 자신은 여정중인 곳에서 별일 없이 지내 다행이라는 것, 자신의 가정 형편이 별로 좋지 않고, 자신도 이곳에 와 있다며 형님의 공을 하나도 갚고 있지 못하고 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자신은 이곳에서 500원 정도를 모아야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 그래야 형님과 의논하여 상업(商業)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곳도 불경기라서 마음대로 되지 않고 지금은 약 200원 정도 저축하였다는 것, 이것을 가지고 조선(朝鮮)으로 가면 다 허비하고 장래 어찌될 줄 모른다며 지금 귀향할 수 없다는 것, 다만 연말에는 집의 농사 준비를 위해서 1차 환가(還家)를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1폭(幅)을 보내오니 변변치 못하지만 받아주시고 받는 대로 답장을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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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이우로(李㝢老)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寓老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1월 23일, 이우로가 노진영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 1935년 1월 23일, 제(弟) 이우로(李寓老)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소작(小作)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서로 사는 곳이 한 령(嶺)을 사이에 두고 있고, 해가 또 바뀌게 되었다며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여 매우 그립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새해에 어른 모시고, 형님과 가족들 모두 평안한지 묻고, 자신은 이전 모습 그대로 지낸다고 했다. 주요내용은 자신이 풍문으로 소식을 듣자니 담양 수북면(水北面)의 형님 소유 토지가 소작인의 과실 때문에 금년도부터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고 했다던데 그것이 사실인지 묻고, 자신이 보내는 사람에게 소작을 부쳐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이번에 편지 들고 가는 고(高) 군의 아버지와 형은 수북면 개동리(開東里)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일찍부터 세계가 확실하다며 귀하의 소작지를 절실히 원하고 있었으니 그 형편을 참작하여 소작을 부처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추기에는 재작년 여름에 자신의 자식으로 인한 부분을 아직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살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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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노진영(盧軫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軫永 李寓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에 노진영이 이우로의 소작 간청에 답변한 내용의 서간. 1935년에 편지를 받자마자 제(弟) 노진영(盧軫永)이 이우로(李寓老)에게 소작문제에 답변한 내용으로 작성한 서간이다. 그리워하던 중에 편지를 받았다며 새해의 좋은 소식이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상대의 안부를 물은 후 자신의 아버지가 근래 노증(老症)으로 6~7일간 좋지 않았다며 자식 된 도리로 걱정했던 것을 말로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상대가 편지로 한 말이 매우 정성스러워 땀이 났다고 하고 이미 소작인이 정해졌음을 전하며 상대의 뜻에 따라주지 못한 것에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편지는 노진영이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편지가 들어있는 봉투는 이우로가 노진영에게 보낸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우로가 노진영에게 소작을 간청하는 편지가 남아 있으므로 수신인이 이우로 임을 알 수 있다. 형태는 세로 점선이 그어 있는 규격 편지지 2장에 연속하여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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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노진영(盧軫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1939 盧軫永 安秉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39년 5월 15일, 제 노진영이 손자 지섭의 학교 문제로 안병현으로부터 온 편지에 답하여 쓴 편지의 초안. 1939년 5월 15일, 제(弟) 노진영(盧軫永)이 안병현(安秉鉉)에게 손자 노지섭(盧地燮)의 학교 문제로 애쓰고 편지를 준 안병현에게 답하여 쓴 편지의 초안이다. 자질(子姪)이 상대에게 지도를 받고 있는데 한번 인사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성의가 부족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최근 청화한 날씨에 상대가 공무(公務)를 잘 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여전히 지내고 있다고 인사했다. 지난 일주일 전에 다른 곳에 나가서 2틀전 저녁에 광주 봉호(蓬戶)에 돌아왔는데 보내주신 전보가 와 있었다는 것, 다음날 과연 상대의 편지가 하나 도착했다는 것, 편지에서 말씀하신 이미 소비한 3회분은 더 논할 것도 없고, 2회분 또한 활동으로 소비해 놓고 각자 자금을 내어 보냈다니 도리어 미안하다고 했다. 모두 나에게 혐의가 있는 것이지 형을 허물할 것이 없기에 다시 돌려 드리니 잘 받으시라고 했다. 자신이 마땅히 집에 찾아가 감사 인사를 해야 당연한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며 3~4개월 간 내로 꼭 찾아뵙고 방도를 도모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꼭 책임져 줄 사람이 있다는 말에 매우 기쁘다는 것, 먼저 실패하고 후에 성공하는 것이 맞으니 다시 제 뜻을 수용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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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노긍석(盧兢錫) 등 3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兢錫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4월 20일, 고자 노긍석 등 3인이 노진영에게 아버지 장례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 11942년 4월 20일, 고자(孤子) 노긍석(盧兢錫) 등 3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아버지 장례에 위문해 준데 대하여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노긍석 등이 이마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고 말씀드린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픈 상황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자애로운 상대가 위문(慰問)해 주심을 받았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발신자는 노긍석(盧兢錫), 노만석(盧晩錫), 노남석(盧南錫) 3인이며 이들의 주소는 경상북도 달성군 지구면(求智面) 대포동(大浦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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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노재혁(盧在爀) 등 2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在爀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2월 2일, 노재혁 등 2인이 노진영에게 아버지 상을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 1942년 2월 2일, 노재혁(盧在爀) 등 2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아버지 상에 위문해 준데 대한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자신의 아버지 상이 졸곡(卒哭)을 넘기게 되었는데, 그때 위문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전한다고 하였다. 연활자 인쇄의 방식으로 서간을 작성했다. 발신자는 노재혁, 노재철(盧在{火+喆})이며, 거주지는 마산부(馬山府) 성호동(城湖洞) 50번지이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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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근(朴判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判根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박판근(朴判根)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농사가 흉년이므로 소작료 결정에 앞서 사람을 보내 살펴주기를 당부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9월 25일에 박판근(朴判根)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우선 올해 농사의 10분의 9가 재해를 입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자신이 소작한 논의 작료는 3속(束) 이상을 넘지 못하게 수취해 왔고 선척(先尺) 결정은 매년 정했지만, 워낙 농사가 흉작이므로 다시 사람을 보내 살펴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렇게 해준다면 이후부터는 못 먹는 형편이 있더라도 다시 말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자신 누이의 고통스런 사정과 남긴 말을 명심해서 잊지 않고 선척 1승(升)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25일 안으로 사람을 보내 살펴주시기를 신신당부하였다. 올해와 같은 농사는 또 없었거니와 보리를 갈게 되었으니 빨리 보내달라고 하면서 못 오게 되면 회답하여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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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鄙地方面으로 말하면 全異한 細雨도 업난事實임이다 鄙地의 送人하시와 形便를 보시면 다알의시것심이다 鄙地年▣로 말하면 十分에 九은 災라 할수잇고 一은 豊이라고 할수잇심니다 弟의小作한畓租中에不可三束以上에 넘지못하게 收取하고 그대로 잇심니다 先尺決定은 每年의 定尺하엿시나어너니廢農故로 更히 送人하시라한거심니다 其時에도 不安心를 두시지만은 右記와갓치 年運닌니 十分容恕하시고 送覽하여주시면 以後부터셔난 만닐못먹난形便이잇드라도 更히말슴告白치안커심이다 歸去한 鄙妹의 苦痛한 事情과 遺語로하다하드라도 銘心不忘 先尺一升도 懶惰치안키로함니다 그리알으시고 二十五日內로 送覽하여주시룬 千萬大望하난밤니다 今年갓튼 年勢과 ᄯᅩ잇실가요 十分顧護하시와 今年에 更히 보와주시시오 麥를 갈게되야신니 速速키 送覽하여주시를 切望함이다 餘不備書舊九月二十五日 弟朴判根 上呈他人定尺도 更히보와갓신니곳來臨하시오못오게되면回答하여주시시오【피봉】〈前面〉光州郡本村面日谷里▣▣永氏〈後面〉緘 長城郡森溪面社倉朴判根拜二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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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경오년 2월 22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갑회(甲會) 모임을 다음달 2일로 미뤘으니 그 때 왕림해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간찰 경오년 2월 22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꿈에서도 생각날 정도로 그립던 차에 사촌 성호(星皓)가 와서 매우 기뻤고, 그 편에 형님의 서신을 받아 읽고서 형님이 잘 지내고 계시고 식구들 모두 편안하며, 아드님도 어른 모시며 공부 잘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고, 종질녀도 무탈하며 손자의 천연두는 그간 잘 나았는지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을 모두 잃은 고로여생(孤露餘生)으로서 지금 이런 때를 만나니 수고하셨을 부모님 생각에 더욱 견디기 어렵다고 하였다. 지난번에 형님이 조카들을 데리고 와서 단란하고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주고 손자가 때로 춤추고 노는 모습을 보니 노쇠한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갑회(甲會) 모임을 다음달 2일로 날짜를 미뤘으니 그때 여러 사촌들과 함께 왕림해서 회포를 터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고, 여인(汝仁) 형도 평안한지 모르겠다며 바빠서 따로 서신을 쓰지 못하니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주고, 더불어 갑회 모임에 함께 오실 수 있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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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김석지(金錫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智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신년에 김석지(金錫智)가 옥계(玉溪)의 매형 댁에 안부를 전하고 보내준 물건에 대해 감사 표시를 하는 내용의 간찰 병신년 10월 19일에 김석지(金錫智)가 옥계(玉溪)의 매형 댁에 보낸 간찰이다. 지난 가을에 뵙고 몹시 감사했는데 뜻밖에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니 몹시 위로가 되고 또 죄송하다고 인사하였다. 편지를 통해서 매형이 잘 지내고 계시고 가족들 모두 편안하다고 해서 몹시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어머니께서 풍담(風痰)으로 고생하시는데 겨울 추위 때문에 더욱 안 좋아져서 애가 탄다고 하였고, 계씨형(季氏兄)을 못 보다가 만났더니 몹시 기뻤지만 흉년에 많은 식솔로 생계가 어렵다고 해서 차마 들을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보내주신 건어(乾魚)는 잘 받았고 초자(椒子)는 감사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다만 양이 적어서 아쉬웠다며 다음 인편에 혹 더 보내주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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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92년 장계득(張戒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戎得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2년(정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득(張戒得)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92년(정조16) 강진현에서 임자년(1792)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득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득은 현재 28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천익(張天翼),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서공명(徐公明)으로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올해 8세인 딸 아지(阿只)가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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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갑진년 민수(玟守)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玟守 張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진년 민수(玟守)가 장인어른인 장생원(張生員)에게 보낸 간찰 갑진년 1월 2일에 사위 민수(玟守)가 장인어른 장생원에게 보낸 간찰이다. 장인어른의 새해 안부를 묻고 자신은 어버이의 건강이 여전한 것이 새해 들어 가장 다행스런 일이고 그 외에 달리 전할 만한 소식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근래 장인어른 집안에 아들을 낳는 경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집안에 후손을 남기는 조짐이니 매우 축하를 드린다고 하였다. 이번 달 보름 안에 한번 찾아뵙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나무라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였다. 장인어른인 장생원댁은 신리(新里) 월복동(月復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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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3년 장용(張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3년(헌종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張龍)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43년(헌종9) 강진현에서 계묘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은 현재 64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고, 데리고 살던 27세 딸은 출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임인년(1842)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임인년의 다음 해인 계묘년(1843)이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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