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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 자유 인술에게 답함 기사년(1929) 答宗第子由 仁術 己巳 근래에 그대가 액난(厄難)을 만나 먹고살기 어렵게 된 후부터 그 곤경으로 인해 번뇌가 발생해 내면의 실질적인 일에 다소 방해가 될까 염려했는데, 지난번 손수 쓴 편지를 받고나서 그 정력(定力 학문의 힘)이 이미 탁연하고, 문장과 학문을 논하는 것이 볼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뿌리 깊은 나무는 비바람이 흔들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고, 또한 금세 청년 중에도 믿을만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묻는 것이 나를 흥기 시킨다"라는 사람이 곧 그대이니 타인이 아닌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언급한 말에 대해서는 합당함을 잃었습니다. 그 말씀이 기약하고 바라는 뜻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기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보는 자들이 현재 완성된 실제의 덕이라 간주하고 그것을 아부의 말이라고 지적한다면 어찌 나 때문에 그대에게도 병통이 되지 않겠습니까? 심히 두렵습니다. 현재 우리 도(道)의 궁함이 극도에 들어, 풍조(風潮)의 요탕함에 젊은이는 혼백을 빼앗기고, 구학(溝壑)이 눈앞에 닥치매 노성(老成)한 이들은 걸음을 잃고 있습니다. 천하를 돌아보매 이 아득히 실추된 자취를 부축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석현(昔賢)이 이르길 "하늘이 일세에 사람을 낼 때에는 스스로 일세의 일을 마칠 수 있게 하였다."20)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스스로 자기의 재주를 헤아려 하류(下流)를 면치 못한다면 그만이거니와, 만일 자기의 재주와 뜻이 조금이라도 일반 사람과 다름이 있다면 곧 하늘이 나를 낸 것이 반드시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퇴탁(退托)하여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것은 학자의 큰 꺼림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물며 이 세상이 긴 밤을 만나서 가히 믿을만한 사람이 없게 된 날을 만났으니 분발자강(奮發自强)하여 자신의 도를 닦아 세상에 확충시켜 떳떳한 윤리를 밝히고 세교를 행하여 마땅히 이 세상의 일을 마칠 사람이 될 것을 생각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를 버리고 남들까지 버리는 것이니 불인(不仁)과 부지(不智)가 너무나 막대합니다. 어찌하여 그대가 읽고 있는 《한천편(寒泉編)》21) 가운데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 생민을 위하여 도를 세우며, 전대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문을 계승하고,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열어가야 한다."라는 훈계를 보지 않으십니까? 만약 이 네 가가지를 행하는 것으로 큰 절박(節拍)을 삼는다면 곧 평생의 대사가 무슨 일을 하던지 절반을 이룰 것입니다. 크게 보고 얻는 것이 이보다 높은 것이 없을 터이니, 어찌 몇 편을 송독하는 효과와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보내온 편지에서 "자중자려(自重自勵)하여 진상(陳相)을22) 범치 않을 터이니 가르치는 제자의 반열에 두기를 청합니다."라는 말에서 깊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힘쓰고자 하는 "걸음걸이를 넓게 차지하고, 의지를 굳게 가진다."라는 것으로 그대의 일층 격앙된 뜻을 돕고자 합니다. 또 일상생활 가운데 진덕수업(進德修業)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 편(한천편)의 격치(格致), 존양(存養) 등의 항목이 있으니 번거롭게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近自賢弟遭厄艱食之後, 意其因境生惱, 少妨向裡實事, 頃得手書, 見其定力旣有卓然, 措辭論學, 又復可觀.乃知根深之木, 非風雨之可撼, 今世靑年中, 亦有可恃人物.所問起余者, 卽賢弟是已, 非他人也, 何辛何辛.至於語及此身者, 有失稱停.然認出期望之愛, 則非不可感.但見之者, 視作見成實德, 而指謂阿好之言, 則豈不以我而病賢弟乎? 可懼可懼.見今吾道之窮, 入於極度, 風潮之蕩, 少者奪魄, 溝壑之迫, 老成失步.環顧宇內, 扶此茫茫之墜緖者, 何人乎? 昔賢不云乎? 天生一世人, 自足了一世事.自量己材, 苟不免下流則已, 如其之才之志, 稍有異乎衆者, 則是天之生我, 必非偶然.退托自少之爲學者大忌, 尙矣.而况遭此世入長夜, 無人可恃之日, 不思所以奮發自强修道于身, 而推之於世, 使彛倫明而世敎行, 當得了此世事之人, 則其爲自棄棄人, 不仁不智亦已大矣.盍觀乎盛課《寒泉編》中, 爲天地立心, 爲生民立道, 爲前聖繼絶學, 爲萬世開太平之訓乎? 若能於此四爲, 把作一箇大節拍, 卽此平生大事, 思過半矣.其爲大見得, 莫此爲尙, 豈可以幾篇之誦讀, 與論於效果哉? 今於來狀自重自勵毋犯陳相乞置敎數等語, 深有感焉.以所欲自勉於闊占地步硬著脊梁者, 庸助賢弟一層激昂之志.至於日間進修之方, 自有此編格致存養等目在, 不必煩提耳. 하늘이……하였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에 나오는 말로 "천지가 한 시대의 인재를 낼 때는 한 시대의 일을 충분히 완수할 수 있도록 한다.〔天地生一世人, 自足了一世事.〕"라고 하였다. 한천편(寒泉編) 《근사록(近思錄)》을 말한다. 진상(陳相) 《맹자》 〈등문공상〉에 나오는 인물로, 본래 유학자인 진량(陳良)에게 유가의 학설을 배웠지만 농가(農家)인 허행(許行)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스승을 배반했다고 하여 맹자의 질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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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 자유에게 보냄 계유년(1933) 與宗第子由 癸酉 지난번 여흥 김용승23)의 일에 대해 논했는데 그대가 나의 변론을 보고 "그가 스승을 배반한 실체임을 분명히 알았더라면 내가 다시 번거롭게 제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랑캐 연호를 썼다고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을 배척한 일은 일찍이 명백한 변문(辨文)이 있지 않다.'라고 하시니, 때문에 내가 다시 상논(詳論)하여 그대에게 알려주어서 보고 듣는 것의 미혹됨을 깨뜨려주겠습니다. 그는 "노주가 오랑캐 연호를 썼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조야(朝野)에 가히 근거할만한 문자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집(本集) 경세문(警世文)에24)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 비록 저 오랑캐의 정삭(正朔)을 행하더라도 공사(公私) 문헌에 대부분 여전히 숭정(崇禎) 연호를 쓰는 것은 실로 정밀한 의리가 있다. 이것이 어찌 한갓 황명(皇明)이 재조(再造)한 은혜25)를 잊지 않아서이겠는가? 신주(神州 중화)가 침탈을 당해 존왕양이(尊王攘夷)를 강론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가만히 성인이 10월을 양월(陽月)이라 부른 의리를 취하여 공언(空言)에 양기(陽氣)의 일선을 기탁하여 그것을 써서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대개 경세의 정론이 이미 이와 같은즉 어찌 스스로 오랑캐 연호를 쓸 이치가 있었겠습니까? 김씨는 《매산집(梅山集》의 〈간노주용노년서(諫老洲用虜年書)〉'를 근거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매산집(梅山集》에 그 글이 있는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진실로 있다하더라도 노주가 애초에 쓰지 않았는데 매산이 혹 노주가 그것을 사용할까 지나치게 우려하여 규간하여 그치게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님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다면 모두가 노주에게 손상 될 것이 없는데도 어찌하여 괴롭게 구차히 비난하는 것인지요? 김씨는 늘 "이 의리(오랑캐 연호를 쓰지 않는 것)는 우리 집안 삼백년간 대대로 지켜온 것이요. 중화를 높이는데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는데, 이 설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근자에 〈김과제행장(金過齊行狀)〉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상소에 숭정연호를 썼느냐고 물으니, 답하기를 '위호(僞號 오랑캐 연호)를 썼다'고 했다. 이에 대해 지구(知舊 오랜 친구)들이 의심한다고 하니, '우리 선세(先世)는 과목(科目 문과 무과 등 과거)으로 출신(出身 벼슬살이)했기 때문에 부득불 쓰지 않을 수 없어서 나 또한 썼다.'" 이 문장은 본고(本稿) 11권 4판에 있는데 송강제(宋剛齊)가 편찬한 것입니다. 과제(過齊)는 곧 김씨의 5대족조로 함께 충정공(忠正公)에서부터 나왔고 그의 고조(高祖)는 매산(梅山)의 스승입니다. 그 고조의 연원과 도학은 세상에서 나라 안의 대가(大家)로 칭해졌으니, 비단 김문(金門)의 으뜸만이 아닙니다. 과제(過齊)도 이와 같았으니, 그가 말한 우리 집안의 삼백년 지켜온 의리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대저 김씨가 노주(老洲)를 배척한 것이 공정한 것인가? 사사로운 것인가? 물으면 저는 반드시 공정한 것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상인 과제(過齊)에 있어서는 위호(僞號)가 들어간 글이 본고에 드러났음에도 은폐하여 말하지 않고, 노주(老洲)에 있어서는 경세의 문장이 일세에 전파되었음에도 애써 이를 심히 배척하니, 이를 공심(公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김씨가 과제(過齊)의 그와 같은 사실이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면, 곧 자기 집안의 문헌에도 오히려 어두운 것이니 어찌 유독 노주(老洲)가 꼭 위호(僞號)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에게 공정한 마음이 있다면 과제(過齊)의 사건을 보여준 날에 마땅히 그 편견과 망언을 사과하고 복종하기에도 겨를이 없어야 하거늘, 그런 계책을 내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끈하여 "어디 사는 놈이 과제(過齊)의 유고(遺稿)를 이와 같이 인출하였단 말인가?"라고 진노하니, 그렇다면 저 인출한 원고가 조작되어 그 문장에 들어갔단 말입니까? 아! 그러니 그 사람됨을 가히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이기기 좋아하는 기질과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망상이 습관이 되어 극복해내지 못하고 고질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오진영과 시기하고 교묘하게 쟁변하다가, 노주(老洲)가 오진영의 족조(族祖)로 성리의 여러 설이 오진영에게 인용되기 때문에 노주의 설까지 아울러 불만족스럽게 여기고, 돌고 돌아 노주가 오랑캐 연호를 썼다고 배척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노주(老洲)는 우리 선사(先師 간재) 연원의 정맥(正脈)으로 가장 존신(尊信)해야 할 분이거늘 저들이 감히 배척하기를 여력을 남기지 않으니, 어찌 인무(認誣)26)를 믿고 선사(先師)를 사우(師友)로 여기는 것을 기다린 연후에 사문의 죄를 얻는 것이 되겠습니까? 向論驪金事, 左右旣見鄙辨, 而謂明知其爲倍師之實, 則吾不須再煩.若其斥老洲以書虜年, 則未曾有明辨之文, 故玆復詳論以告左右, 幷以破觀聽之惑.其云老洲用虜年者, 雖未知出於朝野文字之可據者與否.然本集警世文, 有曰國中縱行彼虜正朔, 公私文獻亦多尙記崇禎年號者, 實有精義.豈徒爲不忘皇明再造之恩而然哉? 神州陸沈, 無地可講尊攘矣.竊取聖人十月號陽月之義, 欲寓一線於空言, 用俟河淸已矣.蓋其警世之定論旣如此, 則豈有自用虜年之理哉? 金謂《梅山集》有〈諫老洲用虜年書〉, 此爲可據.梅集之有無, 亦不可知, 信有之安知其非洲初不用, 梅或過慮洲或欲用, 因諫而止耶? 如此則俱無損於老洲, 何苦苟訾乎哉? 金常曰此義吾家三百年世守, 尊周之家, 莫不皆然, 此說亦不然.近觀〈金過齋行狀〉, 有人問疏中書崇禎年號耶, 答曰書僞號.知舊多疑之者, 而吾先世科目出身, 不得不用, 故吾亦用之.此見本稿十一卷四板, 而宋剛齋撰也.過齊卽金之族五代祖, 而同出於忠正公, 其高祖梅山之師也.淵源道學, 世所稱國中大家, 非獨爲金門最矣.過齊而如此, 則所謂吾家三百年世守之義者, 果安在哉? 蓋金斥老洲者, 爲公耶? 爲私也? 彼必曰爲公矣.然在過齋則僞號之書, 明著本稿而掩之不言, 在老洲, 則警世之文, 布諸一世而斥之甚力, 是可謂公心耶? 若曰不知過齊之有此, 則自家文獻, 尙且眛然者, 何以獨知老洲之必用僞號乎? 苟有公心於左右, 示以過齋事之日, 當謝服其偏見妄言之不暇, 計不出此, 乃勃然怒曰, 何許漢印出過齋遺稿乃如此? 彼謂印稿者, 造入此文也耶? 噫! 其人可知已矣.蓋其好勝之氣, 自尊之習, 不能克下, 爲其痼疾.始與吳震泳猜巧爭辨, 因以老洲爲震族祖, 而性理諸說爲震引用, 故幷不滿其說, 而輾轉至於斥以用虜號而極矣.老洲先師之淵源正脈, 而最所尊信者, 彼敢斥之不遺餘力, 何待信認誣而師友先師然後爲得罪斯文耶? 여흥의 김씨 김씨는 김용승(金容承)을 말한다.처음에는 후창과 함께 오진영을 성토하는 쪽에 가담했으나 뒤에 돌아선 자이다. 본집(本集) 경세문(警世文) 노주 오희상의 《노주집(老洲集)》 〈경세문(警世文)〉을 말한다. 황명(皇明)이……은혜 명(明)나라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나라를 지킬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의미이다. 인무(認誣) 스승과 절의를 무함하여 원고를 고치고 일제의 허가를 받아 선사의 유집을 간행한 사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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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영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李 憲永 乙丑 지난 그믐 이별할 때에 그대의 눈을 보니 거의 눈물이 줄줄 흐를 듯 했으니 나의 혼도 어찌 슬피 녹아내리지 않았겠는가?28) 얼마 후 듣자하니 다음날 아침 강교(江郊)에서 여러 사람들과 이별했을 때에 끝내 나의(蘿衣 은자의 복장)를 적셨다고 들었다. 그러한 행동이 바로 우리 헌영다운 것이리라. 그 눈물이 어찌 벗과 이별하는 애달픈 정 때문 만이었겠는가? 학문의 파도가 막 용솟음 쳐 오르는데 서탁(書槖)의 금29)이 다하여 공부가 끊어짐을 개탄하고 유수 같은 세월을 한탄한 것이니 어찌 눈물 한번 흘러내리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눈물을 쏟은 것이 곧 헌영이 학문에 뜻이 있다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오호라! 종고 이래로 뜻은 있지만 자금이 떨어져 학업 성취에 방해를 받은 자가 어찌 한이30) 있겠는가? 내가 그대를 아끼지만 도울 길이 없어서 다만 두보(杜甫)의 〈대비한사(大庇寒士)〉31)의 탄식만 절절하구나. 그러나 분수에 따라 공부를 하는 것도 옛사람이 이르지 않았던가? 나는 '분수에 따른다는 것은 곧 분수에 편안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귀에 뜻을 두고 분수에 안주하지 못한 자는 실로 말할 것이 없거니와, 덕업에 뜻을 두었는데도 분수에 안주하지 못한 자 또한 허물과 인색을 초래할 뿐이다. 이제 '행유여력즉학문(行有餘力則學文)'32)과 '필유사언물망물정(必有事焉勿忘勿正)'33) 열여섯 글자를 그대에게 보내니 한편으로는 사람의 도리에 따라 부여된 직책을 수행하고, 한편으로는 공부의 절차로 삼아서 한번 마련한 전일한 뜻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여라. 去晦之別, 見君眼睫, 幾乎潛潛然淚矣, 我之魂豈不黤然銷乎? 俄聞翼朝江郊羣別, 竟不覺蘿衣之濕, 此所以爲吾憲永也.斯漏也豈爲雲樹勞勞之情? 文瀾之泉纔湧, 書槖之金告罄, 慨工夫之間斷, 恨流光之迅駚, 安得不悢悢然一涕也? 惟其悢悢乎此, 此憲永之所以爲有志也.嗚呼! 從古來, 有志無姿而妨進就者何恨? 愛莫助之, 只切老杜大庇寒士之歎.雖然隨分施功, 古不云乎? 余謂隨分者卽安分也.志富貴而不安分者, 固不足論也, 志德業而不安分者, 亦致咎吝.今以行有餘力, 則以學文, 必有事焉, 勿忘勿正, 十六字, 奉呈, 一以修人道之分職, 一以作工程之節度, 俾毋負所辦一志而已. 이별할……않았겠는가? 강엄(江淹)은 그의 〈별부(別賦)〉 첫머리에서 "암담하게 애간장을 녹여내는 것이 바로 이별하는 일이구나[黯然銷魂者, 唯別而已矣.]" 하였다. 서탁(書槖)의 금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학자금의 의미이다. 한이 원문에는 恨이나 限으로 여겨 번역하였다. 대비한사(大庇寒士) 두보(杜甫)는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爲秋風所破歌)〉에서 "어떻게 하면 천만 칸의 넓은 집을 얻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들을 크게 덮어 주어 모두 즐겁게 하고, 비바람에도 산처럼 끄떡없이 편안하게 할까?[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라는 구절이 있다. 행유여력즉학문 《논어 학이(學而)》 "[弟子 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則以學文]" 필유사언물망물정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하며 "반드시 무슨 일을 하되 미리 기약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 말며 조장하지도 말아야 한다.〔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라고 하였다. 《맹자》 〈공손추상(公孫丑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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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만 상락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金順萬 常洛 乙丑 "뜻을 세움이 높지 못해 안맹(顔孟 안자 맹자)을 언급하면서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고차원적인 것을 말해줄 수 없다."라는 것이 진료옹(陳了翁)34)의 말이다. 내가 그를 이어서 "자임(自任)함이 무겁지 않아서 세도를 부지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지 않는다면, 이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대저 성현의 학문은 가까이 수신(修身)으로부터 멀리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이른다. 공맹(孔孟)께서는 도를 이미 통하시고 제후를 낱낱이 방문했으나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돌아가 서책을 저술하여 중화를 높이고 이적을 물리쳤으며,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였기에 일치(一治)의 운35)에 해당시킨 것이, 이러한 연고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유(先儒)들이 말하기를, (세상에) 나가서 (세상을) 부지(扶持)하는 자는 (세도를) 부지하는 것으로 부지하는 자요. 재야에 있으면서 부지하는 자는 불부지(不扶持, 교육 등)로 부지한다는 것이 또한 이런 뜻이다. 대저 학문에 뜻을 두면서 안맹(顔孟)에 뜻을 두지 않는 자는 전성(前聖)을 이어서 끊어진 학문을 계승하려는 자가 아니다. 또 세도(世道)로 마음을 삼지 않는 자는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열어주려는 자가 아니다. 다만 이 일념(一念)이 이미 스스로를 삿되게 하는 큰 요인이니, 어찌 학문을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대개 세상의 화(禍)는 완급(緩急)의 차이가 있고 성인의 공택(功澤)에는 대소의 차이가 있다. 비록 우임금처럼 홍수를 다스려 천지를 평성(平成)하지 못하고, 맹자처럼 양묵을 배척하여 사악함을 물리치고 성인의 도를 옹호하지 못할지라도, 이 세상에 태어나 만일 성학(聖學)을 밝히고 민속을 바르게 하는 자가 있다면 모두 세도를 부지했다는 공을 허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창려(昌黎) 한유(韓愈)를 보지 않는가? 한유의 도는 대원(大源)을 궁구하지 못했고, 학문 또한 요체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천년의 학문이 끊어진 후, 세상의 화란이 매우 급박하던 날에 불로(佛老)를 배척했기 때문에 상론자(尙論者)36)들이 그의 공을 맹자에 버금간다고 말한다. 다만 지금 천하의 화는 태고 이래로 있지 않은 바이니, 대성현이 나오지 않는다면 족히 (세상을) 부지할 수가 없다. 이것이 그대가 나의 말에 겸손히 여기는 바이다. 그러나 그대는 뜻이 굳건하고 견해가 밝으며, 행동이 민첩하고 기(氣)가 맑다. 그러니 만일 안자(顔子)가 말한 것처럼 "순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37) 라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옛 성인에 미치고 이 세상을 부지하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비록 갑자기 미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어찌 한유의 사업에는 많이 양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한유가 될 수 있다면 우임금, 맹자의 사업도 순서대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니, 그대는 힘쓰기를 부탁한다. 立志不高, 語及顔孟而不敢當, 則不可以語上, 此陳了翁語也.余嘗繼之曰, 自任不重, 不以扶世道爲心, 則不足與有爲也.夫聖賢之學, 近自修身, 遠而至於治平天下.孔孟之道旣通, 歷聘諸侯而不遇.則歸而著書, 尊華而攘夷, 遏人欲存天理, 以當一治之運者, 爲是故也.故先儒有言, 出而扶持者, 以扶持而扶持者也.處而扶持者, 以不扶持而扶持者也, 亦此意也.夫爲學而不以顔孟立志者, 非爲前聖繼絶學者也.不以世道爲心者, 非爲萬世開太平者也.只此一念, 己是自私之大者, 焉用學爲哉? 蓋世禍有緩急之殊, 功澤有大小之異.雖不能地平天成, 若禹抑洪水, 閑聖距詖, 若孟斥楊墨, 然生斯世也, 苟有能明聖學正民俗者, 皆可許以扶世道之功.盍觀乎昌黎韓氏? 道不能究大源, 學且不得其要.以其排斥佛老於千載絶學之後, 世禍孔急之日, 故尙論者, 稱其功亞於孟子乎.顧今天下之禍, 振古之所未有, 非有大聖賢出, 不足以扶持.此君之所以謙謙於余言也.然君志堅而見明, 行敏而氣淸.苟能以顔子之舜何予何爲心, 其於及古聖而扶斯世也, 何難之有? 雖不可遽及, 亦豈多讓於昌黎氏事業乎? 旣得爲昌黎, 則禹孟之業, 可馴致矣, 請君之勗哉. 진료옹(陳了翁) 송(宋)나라 때 학자인 진관(陳瓘, 1057~1124)을 가리킨다. 요옹은 그의 호이다. 일치(一治)의 운 한 시대를 평치한 공로이다. 맹자(孟子)는 사설(邪說)을 막는 자신의 일을, 우(禹)가 홍수(洪水)를 다스린 일, 주공(周公)이 이적(夷狄)을 겸병한 공, 공자가 난신적자(亂臣賊子)를 두렵게 한 일과 마찬가지로 한 시대를 다스린 것이라고 하였다. 《맹자 등문공하(滕文公下)》 상론자(尙論者) 옛것을 평론하는 자들로 《맹자(孟子) 만장(萬章)》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 순은……사람인가?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안연(顔淵)의 말로 인용되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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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용에게 보냄 갑자년(1924) 與李 起容 甲子 집은 가까운데 사람은 천상에 있는 것 같으니 형편 때문인가? 마음 때문인가? 이 모임의 설립은 그대와 자유(子由)가 선창한 것이 아니던가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설창(雪窓)과 월황(月榥)40)에서 삼여(三餘)의 여가41)에 서로 절차탁마하는 것이었는데 누가 알았으랴? 즐거운 일이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대의 가문에 변란이 생겨 홀연 아내를 잃게 될 줄을. 그리하여 방은 비고 음식은 떨어지고, 회포는 사납고 뜻은 꺾여서 그대로 하여금 나를 꿈속에 있는 냥 잊게 만들었고, 나는 그대를 구름을 바라보듯 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이것은 내 인연의 각박함과 그대 운수의 기구함 때문이리라. 대개 종고 이래로 하늘이 정한 원만한 복을 향유한 자가 몇 사람이나 되었던가? 대개는 우환 가운데 살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만약 편안하고 부유한 자만 뭔가를 이루고 근심 많고 가난한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민이(民彛)42)가 헛된 그릇이 되지 않는 것도 다행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다시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으며,43) 빈천과 근심이 너를 옥으로 다듬어 완성시킨다'는44) 훈계가 모두 나를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즉 학문이 진보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실로 덕을 완성시키는 복음이 됩니다. 지난밤에 그대를 위해 천강대임장(天降大任章)45)을 강론한 것이, 생각해보건대 우연이 아닌듯한데 과연 그대가 나의 뜻을 이해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대의 타고난 자질은 굳세고 주도면밀하고, 효도하고 우애하고, 근면하여서 진실로 이처럼 뜻에 어긋나는 역경으로 인해 배로 더욱 인내하며 진덕수업(進德修業)해야 할 것입니다. 순임금과 부열(傅說)은 큰 덕을 지닌 사람이라 쉽게 논할 수 없다 할지라도 앞날의 성취를 어찌 다만 관중(管仲), 백리해(百里奚) 이하를 기약하겠습니까? 오직 이와 같이 되기를 바라노니 부디 급히 찾아오십시오. 하늘가득 장풍이 일시의 번뇌를 씻어주고 천강의 맑은 달이 전성(前聖)의 심법(心法)을 밝혀주니 창송(蒼松)과 백설가(白雪歌)46)로 서로 세한(歲寒)을 기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室邇而人若天上, 勢歟心歟? 次會之設, 非賢與子由倡之乎? 所準擬者, 雪牕月榥三餘之相觀也, 孰謂其樂事未幾, 變出德門, 奄哭伉儷.室虛而簞空, 懷惡而志沮, 便賢忘我如夢, 使我望賢如雲乎.噫! 其我之緣之薄也, 賢之數之奇也.蓋從古以來, 享得天定圓福者幾人? 擧皆生且死於憂患之中.若道安富者有爲, 而憂貧者無爲, 天惟與我民彝, 其不爲虛器者幸矣.焉有是理而復生於憂患? 死於安樂, 貧賤憂戚, 庸玉汝成之訓, 俱不我欺.則不惟不妨進學, 實爲成德之福音也.疇夜之爲賢講天降大任章, 意非偶然, 而未知果能領會否.賢之素質, 堅確而周敏, 孝友而勤蠱, 誠能因此拂戾困衡, 一倍動忍而進修也.舜傅大德, 縱未易論, 前頭所就, 奚遽但以管奚以下期哉? 惟是之望, 幸亟賁然.滿天長風, 滌一時之煩惱, 千江霽月, 講前聖之心法, 蒼松白雪, 相期於歲寒如何? 설창(雪窓)과 월황(月榥) 눈과 달빛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서재의 의미이다. 삼여(三餘)의 여가 삼여란 한 해의 겨울과, 하루의 밤과, 흐리고 비오는 날들을 말한다.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여가 시간들만 잘 이용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민이(民彛) 사람의 마음에 가진 떳떳한 도리로, 《시경》 〈증민(蒸民)〉의 "사람이 떳떳한 본성을 가진지라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도다.〔民之秉彝, 好是懿德.〕"라는 구절이 있다. 우환에서……죽으며 《맹자》 〈고자 하(告子下)〉 "〔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빈천과……완성시킨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장차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 함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하였다. 천강대임장(天降大任章) "하늘이 어떤 이에게 장차 큰 임무를 내리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의 심지를 괴롭게 하며 그의 근골을 수고롭게 하며, 그의 육체를 굶주리게 하며 그의 몸을 빈궁하게 하여, 그가 하는 일마다 어긋나 이루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마음을 분발시키고 참을성 있는 기질로 만들어 그가 해내지 못했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라고 하였다. 《맹자》 〈고자 하(告子下)〉 백설가(白雪歌)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고아(高雅)한 가곡(歌曲)이다. 어떤 나그네가 초나라에서 〈하리(下里)〉와 〈파인(巴人)〉의 속요(俗謠)를 부르니 수천 명이 따라 불렀고, 〈양아(陽阿)〉와 〈해로(薤露)〉의 노래를 부르니 몇백명이 따라 불렀는데, 고상한 〈양춘(陽春)〉과 〈백설(白雪)〉의 가곡을 부르니 몇십명밖에는 따라 부르지 못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文選 卷23 宋玉 對楚王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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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사문 흥술에게 답함 계유년(1933) 答族弟士聞 興述 癸酉 맹자는 "반드시 일삼음이 있어야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릇 제왕의 여러 정무처리와 공경대부의 온갖 정사에서부터 아래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백가지 임무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일없는 자가 없는데도 "반드시 일삼음이 있어야 한다."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사람이 사람 된 까닭은 그 의(義)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가 모인 곳에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겨나고, 호연지기가 생긴 연후에 사람은 천지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맹자의 이 말은 사람이 집의양기(集義養氣)에 종사하는 데, 간단(間斷)이 없어야함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 집의양기(集義養氣)는 진실로 세간의 여러 일과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간의 여러 일 외에 별도로 집의양기(集義養氣)할 일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의(義)는 일의 마땅함입니다. 일상생활 중 사물에 응접함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인해 의를 모을 것인가요? 다만 의라는 것은 반드시 독서궁리(讀書窮理)하여 밝혀야 하고 본원을 함양해서 내야지, 사물에 시행하여도 절도에 맞고 언행에 징험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어서 호연지기의 생성에 차츰 이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때문에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를 제외하고는 제왕의 호령(號令)과 형상(刑賞), 공경대부의 열심히 봉직하는 일, 사농공장(士農工商)의 독서하고, 농사짓고, 기계를 만들고, 화물을 운송하는 것들이 모두 집의(集義)가 아님이 없습니다. 유사(有事)라고 이른 것은 마땅히 사물 가운데서 구할 따름입니다. 이제 그대는 힘이 넉넉지 못하고 또한 분가하여 가정을 다스리는 일이나 농사의 수고로움을 면하기 어려운 형세이니, 일없이 고요히 앉아 독서 궁리할 수 있는 날을 아마 많이 얻지는 못할 듯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현재 일하는 가운데 반드시 일삼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아는 것에 나아가 얻을 바를 추구한다면 이미 이해가 절반은 넘은 것입니다. 게다가 밤과 새벽의 외물을 접하기 이전과 겨울과 봄 사이의 여가에, 족히 의를 모으고 호연지기 생성의 바탕이 되는 밝고 고요한 공부가 없음을 근심하지 않으니, 그대는 더욱 힘쓰십시오. 孟子曰必有事焉.夫自帝王之萬機, 公卿大夫之庶政, 下至士農工商之百務, 世無有無事者, 其必曰必有事焉何也? 人之所以爲人者, 以其有義也.義之所集, 浩氣生焉.浩氣生然後, 人可以參天地.孟子此言, 謂人當從事於集義養氣而無間斷也.此事也, 固非若世間庶務之事者, 故云然.然則外世間庶事, 而別有事乎集義養氣乎? 曰否否.義者事之宜也.非應事接物, 何所因而集其義乎? 但所謂義者, 必須讀書窮理以明之, 涵養本源以出之, 乃可以施之事物而中節, 驗之言行而無愧, 以馴致乎浩氣之生.故於是乎有除却煩冗兀然端坐之時.除此以外, 帝王之號令刑賞, 公卿大夫之奉職鞅掌, 士農工商之文字稼穡器械貨物, 罔非集義之地.所謂有事者, 當於事物中求之而已.今子力旣不贍, 而亦已析著, 治家之務, 服田之勞, 勢所難免, 無事靜座讀書窮格之日, 恐不多得.然苟知其必有事乎當下應事之中, 則但就所知所得者而求之, 思已過半.而况乎夜朝之未接, 冬春之餘暇, 不患無明静之功足以資義集氣生之本乎, 子其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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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득 종열 이관 일섭에게 드림 을해년(1935) 與崔以得宗烈 以貫一燮 乙亥 지난번 그대들의 형이 산려(山廬)에서 돌아왔을 때 총총히 지나쳐 가서 지금까지 한스럽게 여깁니다. 형은 홀로 묘에서 슬퍼하고 아우는 집에서 영혼을 받들어 선대의 업을 보존하여 형의 뜻을 안정시키니 일문의 세 효자가 자취는 다르나 마음은 같으니 어찌 찬탄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옛날 진백상(陳伯常)은 스스로 경작하면서 아우 평(平)은 자유롭게 학문하게 하여 끝내 경상(卿相)의 지위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육자정(陸子靜) 형제는47) 여섯 사람인데, 세 사람은 집안일을 하고 세 사람은 유학을 하여 송나라의 명가(名家)가 되었습니다. 이제 양애(兩哀 어머니 상중인 두 형제)께서 형을 대신해 집안일을 다스려 형으로 하여금 예를 다하는 효자로 완성시키는 것은 가히 진씨와 육씨로 하여금 옛날의 아름다움을 독차지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비록 그러나 진씨(陳氏)와 육씨(陸氏)는 반평생의 일이고, 그대들은 삼년의 일이니 오랜 세월 지속은 어렵고 짧은 세월은 쉬우니 그 차이가 어찌 현격하지 않겠습니까? 짧은 세월은 쉽지만 오랜 세월은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인정입니다. 그러나 오래지속하기 어렵다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삼년 또한 오랜 세월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처음과 끝을 제대로 마치지 못해서 형에게 선조를 받들면서 집안을 지키는 근심을 초래시킨다면 어찌 다시 진륙(陳陸)의 죄인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순임금은 대성인임에도 그 신하가 오히려 오만하지 말라는 경계를 진언했습니다. 비록 그대들이 그럴 리가 없겠지만 의리상 일가나 다름없기 때문에 정을 쓰는 것이 부득불 여기에 이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이러한 마음을 깊이 헤아리기 바랍니다. 向自令兄山廬而歸, 悤悤戞過, 至今爲恨.兄專哀于墓, 弟奉靈于家, 保先業安兄意, 一門三孝, 迹殊心同, 豈勝贊嘆? 昔陳伯常耕, 縱弟平遊學, 終致卿相.陸子靜兄弟六人, 三人治産業, 三人遊學爲宋名家.今兩哀之替兄治家, 俾成盡禮之孝子者, 可使陣陸二氏不得專美於古也.雖然陳陸是半生事, 兩哀是三年事, 久近難易, 豈不懸乎? 但易暫而難久人情也.自其難久而言, 則三年亦長遠歲月.萬之一始終不克, 以致令兄奉靈保家之憂, 則豈不更爲陳陸之罪人乎? 夫以大舜之聖, 其臣猶進傲慢之戒.雖知兩哀之無是理, 誼同一家, 自不得不用情至此.幸幷深諒焉. 육자정(陸子靜) 형제 남송의 사상가인 육구연(陸九淵, 1139~1192)과 육구령(陸九齡, 1132~1180) 형제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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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관에게 보냄 병인년(1926) 與崔以貫 丙寅 이 일(학문의 길)은 모름지기 전일한 지극정성과 오랜 시간의 접속 공부가 있어야 합니다. 마치 닭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붙잡듯 한 연후에 성취가 있게 될 것입니다. 닭이 만약 둥지를 벗어나고 고양이가 혹 다른 곳을 본다면, 계란은 곧 부패하고 쥐는 곧바로 달아날 것입니다. 이제 그대가 둥지를 벗어나고 다른 곳을 본 것이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나는 아무래도 그대가 알과 쥐를 잃을까 걱정됩니다. 대저 질병이 오는 것은 성현도 면치 못한 것으로 비록 어찌할 바가 없으나, 이불을 안고도 덕을 성취한 것은 고인이 이미 능한 바이니 고인의 그러함이 또한 느낌을 일으킵니다. 그런 즉 병이 심하거나 조금 나은 중에 힘쓸 바를 알 수 있습니다. 듣자하니 그대의 질병이 차도가 있게 된지 몇 십일 되어서 먹지 못하거나 누워있는 데는 이르지 않아 여전히 문밖에 나가 손님을 맞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곳 청정하고 밝은 서창아래 사우(師友)와 서적(書籍)들 가운데로 오지 않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완쾌되지 못한 증세를 보양하고, 한편으로는 혼우한 마음을 맑게 하지 아니합니까? 그리고 늘 먼지 나는 길거리 파리가 들끓는 좁은 집에서 농사이야기와 아이들 떠들썩한 곳에서 정신과 기운이 막혀 펴지 못하고 심지(心志)가 쇠퇴해 쓰러질 듯 하고 있습니까? 참으로 그대의 뜻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흑암으로 들어가서 유학이 진멸하게 된 것은 배우는 자가 싫어하는 것이 빌미가 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가르치는 자가 게으른 소치입니다. 세상을 돌아보건대 자식을 가르치는데 정성을 다하는 자도 이미 많지 않거늘, 어찌 아우를 가르치는데 힘을 다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위에서 지탱해주고 아래에서 받쳐주어 배우는 자가 궁핍하지 않도록 그대의 형처럼 동서로 자문을 구하며 완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우 된 자가 만일 진지한 정성과 접속한 공부를 써서 그 형의 마음을 체인하지 못한다면 아우노릇도 못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학문의) 일은 그대에게 한 가지 무거운 짐으로 한 순간도 게으를 수 없는 것인즉 병든 몸을 부축하고 번뇌를 맛볼 즈음에라도 요컨대 마땅히 일삼아서 잊지 않는 뜻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형의 계란을 부화시키고 쥐를 붙잡으라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크게 마땅할 것입니다. 此事要須有一團眞至精誠, 長時接續工夫.如鷄抱卵, 如猫捕鼠, 然後有成.鷄若離窠, 猫或放視, 卵便腐而鼠便逸矣.今君之離窠放視, 不其久乎? 吾竊慮夫君之卵鼠也.夫疾病之來, 聖賢之所不免, 雖無如之何, 然擁衾而成德.古人之所已能, 亦可以興感.然則或劇或差之間, 可以知所勉矣.聞君之疾向蘇數旬, 不至於减食委床, 尙可以出門對客.則何不來此凈境明牕師友書籍之中? 一以調養未快之證, 一以澄淸昏擾之心? 長處乎巷蠅窩農談兒喧之間, 使神氣湮鬱而不宣, 心志委靡而欲頹, 誠不知其意所在也? 今世入長夜, 儒學殄滅者, 不但學者厭之之爲崇, 亦敎者倦之之攸致.環顧一世, 盡誠於敎子者, 已不多得.更安有竭力於敎弟, 上支下築, 學資不乏, 東咨西諏, 社事以完如令兄者乎? 爲弟者如不用眞至精誠接續工夫以體其兄之心, 雖謂不足爲人弟, 不爲過矣.此爲君一副重擔, 不容一息少懈者, 則雖於扶病喫惱之際, 要當有有事勿忘者存.以毋負父兄化卵獲鼠之望焉, 丕宜丕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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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용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金孺定 滽 丁卯 편지에서 "경솔함을 바로잡고 나쁜 습관을 고치는데 능치 못하다."라고 하신 말씀으로 미루어 근자에 학문을 근심하는 절실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의 천품은 일반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맹자가 이른바 "사람됨이 욕심이 적은 자"에 해당하니 어찌 근심이 그 같이 이르렀습니까? 혹 근심할 것이 있다면 어찌 그것이 그대의 타고난 자질의 허물이며 공부에 힘씀이 소홀해서 뿐이겠습니까? 또한 부족한 내가 본디 가르치는 방법이 없고, 정성과 힘이 부족한 소치 때문일 터니 그 점이 매우 부끄럽고 계면쩍을 따름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여사인(呂舍人 여본중)이 "지도하여 인도하는 것은 스승의 공이요. 가만히 경계하는 것은 벗의 임무이며, 뜻을 결단하여 나아가는 것은 모름지기 자기의 힘을 써야지 타인에 기대서는 어려운 것이다."라고 이르지 않았습니까?49) 그러니 집에 있거나 멀리 유람하든 간에 모두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스스로를 격려함에 달려 있으니 스승이나 벗에게 의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십분 노력하여 견문(見聞)이나 문사(文辭)에 주력하지 말고 존성극치(存省克治)50)를 임무로 삼아, 돌아오는 날에는 몇 단계 정진되었음을 징험해주기 바랍니다. 대저 홍의(弘毅)51) 두 글자는 선비가 덕을 세우는데 수레바퀴, 날개와 같은 것이니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가만히 보건대, 그대는 홍(弘)은 가능하나 의(毅)는 혹 부족한 듯합니다. 옛 현인이 말하길 "극기(克己)는 모름지기 자기 성(性)이 치우쳐서 극복하기 어려운 곳부터 이겨 나가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또 "두통에는 머리에 뜸을 하고, 각통(脚痛)에는 다리에 뜸을 한다."라고 했으니, 만약 분신용발(奮迅聳拔)하고 각고인내(刻苦忍耐)하여 천리를 홀로 나아가면서 화복(禍福)을 따지지 말고, 한숨이 남아 있을 때까지 도의(道義)를 잊지 않는다면 그것이 의(毅)의 시종(始終)입니다. 이것이 그대의 약석(藥石)이 될 것이니 시험 삼아 뜻을 더해 한번 복용해 봄이 어떻겠습니까? 所喩矯輕革汙之未能, 可見近日憂學之切.然君之天分, 較諸夫夫, 正孟子所謂爲人寡慾者, 何至憂之若此? 雖或有可憂者, 豈但君稟質之疵? 功力之踈, 亦由淺拙, 素無敎術, 幷之誠力致然, 是爲媿歉.雖然呂舍人不云乎? 指引師之功, 從容規戒, 朋友之任, 決意而往, 直須用己力, 難仰他人.不論在家與遠遊, 總在自策自勵, 依靠師友不得, 須十分努力.勿以聞見文辭爲主, 以存省克治爲務, 驗取歸日進得幾格也.夫弘毅二字, 士子立德之輸翼, 闕一不得.竊觀高明弘則可能, 毅或不足.昔賢曰克己須從性偏難克處, 克將去.又云頭痛炙頭, 脚痛炙脚, 若乃奮迅聳拔, 刻苦忍耐, 千里獨往, 不計禍福, 一息尙存, 不忘道義, 此毅之始終而可作高明藥石也.試加意服之如何? 여사인(呂舍人)……않았습니까? 《소학》 〈가언(嘉言)〉 "[夫指引者, 師之功也, 行有不至, 從容規戒者, 朋友之任也. 決意而往, 則須用己力, 難仰他人矣.]" 존성극치(存省克治) 본성을 보존하면서 사사로운 욕심이나 그릇된 생각을 이겨 내어 물리치는 것이다. 홍의(弘毅) 《논어》 〈태백(泰伯)〉에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士不可以不弘毅.]"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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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회재 근호에게 보냄 기사년(1929) 與朴晦哉 根浩 己巳 편지에서 '지난날 심화(心火)가 있었다.'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바로 주자(朱子)가 말한 '불길이 없는데 뜨거운 것'으로서 그대처럼 아름다운 자태와 맑은 흉금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요컨대 반드시 일시적인 유소(有所)의 매임이52) 있어서 급절하게 마음을 쏟아내기 어려워 그것을 심화가 발작한 것으로 인식한 듯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오래도록 청소하지 않아 더욱 치성하게 되면 어찌 끝내 우려가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대개 마음은 신명이 머무르는 집으로, 본디 담일(湛一)하고 허명(虛明)하여 허다한 사물이 그 사이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치를 따라 마음을 순히 길러서 그 신체를 온전히 하고 그 마음의 작용을 잘 이끌어낸다면 백행(百行)과 만선(萬善)이 도도하게 흘러 강하가 바다에 도달하는 것처럼 될 터이니, 어찌 맹렬히 타오르는 횃불과 석탄덩이 같은 사물이 있겠습니까? 오장(五臟)을 오행(五行)에 분속시키면 심(心)은 불에 해당합니다. 고로 경영하여 계산하는 바가 있어서 큰 욕망이 있는데 오래도록 이루지 못한 경우와, 사랑하고 기대어 평생 의지하는데 하루아침에 잃게 되는 경우에 번민과 조급증이 뜨거운 불길로 타올라 유황, 인, 땔감, 석유 등의 물질이 없어도 오장이 타서 작열(灼熱)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사가 원지(遠志), 창포(菖蒲) 등의 청량한 약재로 다스리니, 그것이 본디 병을 치료하는 관례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성현의 문정(門庭)에 또한 한 가지 청량한 약제가 있어서 탕전(湯煎 탕약)과 도규(刀圭 병 고치는 기술)를 기다리지 않고도 한 번에 쓸어 없앨 수 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의 청량한 약제는 무엇일까요? 독서하여 이치를 밝히고, 이치를 따라 분수에 안주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주자가 "세간의 만사는 잠깐 사이에 변멸(變滅)하니 모두 흉중에 담아둘 것이 없다. 오직 독서하고 궁리하는 것만이 궁극의 법이 된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주자가 이른바 세상만사란 모든 성색(聲色), 취미(臭味), 궁실(宮室), 의복(衣服)으로서 하나같이 응당 경영하고 애련의 마음이 쉽게 발생하는 것들이니, 심화라는 것이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한번 이 훈계를 읽어보면 책을 펴서 이치를 완미하여 그 힘을 얻을 것을 기다리지 않고도 먼저 흉중에 청쾌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대저 이른바 독서궁리(讀書窮理)는 또 어찌 백발이 되도록 경전에 골몰하여 종신토록 애쓰는 것뿐이겠습니까? 대개 이 네 글자 "독서궁리(讀書窮理)" 중에는 심신(心身) 안팎의 일과, 가국(家國)의 멀고 가까운 허다한 사업이 포괄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늘 "자고로 도리를 알지 못하는 영웅은 없다"라고 하였고, 옛 훈계에도 "진정한 대 영웅은 전전긍긍(戰戰兢兢), 여림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氷)53) 가운데서 만들어진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은 모두 정확하고 간절한 의론으로 매번 암송할 때마다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을 흔들어 분발을 느끼게 합니다. 부족한 나를 돌이켜보면 비록 백발이 성성하지만 여전히 배로 더욱 힘써서 "얻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겠다."라는 소원이 있는데, 하물며 그대처럼 젊고 건장하여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어찌 잠시라도 무관심하여 진실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방해가 있다고 하여 평소에 가졌던 뜻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대개 이 학문과 세도(世道)를 일으킬 책임은 그대 같은 미래 세대에게 희망이 있으니, 부형(父兄)은 자재를 믿고 스승과 웃어른은 후생을 기약합니다. 그러니 선진(先進)을 계승하여 일어나는 자가 있지 않다면 우리의 도는 거의 끊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보잘 것 없는 내가 세한(歲寒)의 마음을 기약함이 다른 사람이 아닌 그대에게 하는 까닭입니다. 만일 이런 나의 고심을 헤아려주지 않는다면 나를 저버린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모름지기 곧바로 행장(行裝)을 꾸려서 이곳으로 와 서로 교학상장하여 여러 해 동안 학업을 온당하게 닦는다면 매우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向日心火之喩, 是何謂也? 此正朱子所謂不火而熱者, 以賢美姿淸襟, 豈有是耶? 要必不免爲一時有所之係, 而難於急切放下, 認以爲心火之發也.然此念久不掃淸, 而益以熾盛, 則安保其終無慮也? 蓋心者神明之舍, 本自湛一虛明, 不容許多物介其間.苟順而養之, 全其體而達其用, 則但見百行萬善, 混混流出, 若江河之達海, 安有一般燄燄烈烈, 燎把炭槐樣物事哉? 惟其以五臟分屬於五行, 則心乃屬火.故有營爲計較, 大欲所在而積久未遂者, 及愛憐依恃, 生平所賴而一朝見失者, 則煩悶燥輕, 烈擧熾楊, 無硫燐柴油等物, 而五內己焚灼矣.醫者乃以遠志菖蒲等淸凉之劑治之, 此固治病之例方.然殊不知吾聖賢門庭, 亦自有一副淸凉之劑, 不待湯煎刀圭而一掃掃下者也.所謂聖門淸劑何也? 讀書而明理, 循理而安分是也.朱子不云乎? 世間萬事, 須臾變滅, 擧不足置胸中.惟有讀書窮理爲究竟法, 所謂世間萬事, 凡聲色臭味宮室衣服, 一應營爲, 愛憐易生, 心火者非此乎? 試讀此訓, 不待展卷玩理得其力, 而先覺胸膈之淸快也.夫所謂讀書窮理, 又豈但皓首窮經矻矻終身而已乎? 蓋此四字中包括身心內外, 家國遠近許多事業.故人有恒言曰, 自古無不識道理底英雄, 古訓又曰眞正大英雄, 從戰兢臨履上做出來.皆的確懇切之論, 每一詠誦, 使人足以興感奮發也.顧玆陋劣, 雖顚髮星星, 尙有一倍加勉不得不措之願, 况如賢之年富力强, 可以一日千里者, 豈可片刻伈俔, 有妨於造眞境而負夙志乎? 蓋斯文世道之責, 有望於來許者, 在父兄侍子弟, 在師長期後生.不有繼先進而作者, 吾道不幾乎熄乎? 此區區所以歲寒相期者, 不于他而于賢也.如不諒此苦心, 雖謂之負余可也.須卽理裝賁枉, 互相長益, 穩做歲月之業, 甚幸甚幸. 유소(有所)의 매임 《대학》 〈정심수신장(正心修身章)〉 "[心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則不得其正, 有所好樂則不得其正, 有所憂患則不得其正.]" 전전긍긍(戰戰兢兢), 여림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氷)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은 듯이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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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익부 인상에게 보냄 을축년(1937) 與羅益夫 仁相 乙丑 공자께서 광견(狂狷)을 칭찬한 것은 중행(中行)의 선비를 얻기 어려움을 탄식한 것입니다. 나는 "사람은 시대에 따라서 낮아지고 풍습은 세상을 따라 비속해져서, 오늘날 인재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중도보다 과하다고 칭해지는 자가 중도에 귀결된다."라고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대도(大道)가 어두워지고 이해(利害)의 길이 밝아져 유자(儒者)의 무리 가운데도, 일종의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평평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은 인물들이 있어서, 도(道)와 의(義)는 궁구하지 않고 스스로의 편리함만 차지하면서 중도에 거처한다고 의심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를 중도로 여기는데 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 오늘날 말하는 중행(中行)의 선비는 고대에 말하는 향원(鄕原)입니다. 대저 광자(狂者)는 지나치게 고대하고, 견자(狷者)는 지나치게 개결하여 진실로 중도를 넘는 재질입니다. 다만 오늘날 스스로를 낮게 여기는 습관과 혼란한 풍습이 어지럽게 세상에 가득차서 그들이 아니면 벗어나 도에 합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광견자(狂狷者)가 오늘날 나온다면 중행의 인재로 허여할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하, 은, 주 삼대의 시절에 선비를 구하면 오직 명예를 좋아할 것을 걱정하고, 삼대 이하에서 선비를 구하면 오직 명예를 좋아하지 않을 것을 걱정한다."라고 했으니, 이 또한 같은 뜻입니다. 감히 스스로 생각하건대 폐단을 구제할 뜻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공자 평상의 가르침과 말은 다르지만 뜻은 일치하지 않음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대처럼 과격하지도 않고 순하지도 않으며, 소박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재질은 진실로 얻기 어려운 자질입니다. 다만 그대가 오늘날의 세상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말로 힘쓰게 해서 떨치고 일어나 용감하게 나아가 한번 도약해 뛰쳐나가는 힘을 내가 돕고자 합니다. 孔子之稱狂狷, 歎中行之難得也.余謂人以代降, 風隨世卑, 至于今日人材, 則其所稱過中者, 乃可以歸乎中也.何者? 大道晦, 利害之塗明, 儒流之中, 乃有一種非寒非熱不平不仄低人物, 不究道義, 自占便宜者, 居之以中而不疑, 人亦疑其爲中.噫! 今之所謂中行, 古之所謂鄕原也.夫狂者過於高大, 狷者過於介潔, 固過中之材也.但今卑小之習, 混汙之風, 汨汨盈世, 非此無以脫出而揆諸道.吾故曰有狂狷者, 出於今日, 乃可許以中行之材也.古人云求士於三代之上, 惟恐其好名, 求士於三代之下, 惟恐其不好名, 亦此意也.敢自謂其捄弊之意, 未始不與過猶不及平常之訓, 殊言而一致也.君之不激不循, 匪樸匪華之材, 誠難得也.但在今世也故, 以此說勗之, 助振發勇邁一躍躍出之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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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 및 어려움을 함께한 집안의 자제들에게 고함 【1925년 12월】 告汝安及同難家子弟 【乙丑十二月】 증자가 말하기를, "내가 바름을 얻고서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57)"라고 하였으니, 이 가르침이 우리들이 오늘날 사용하기에 딱 맞는 말이다. 만약 부형(父兄)을 위해 어려움을 구하려는 자가 통문을 고치고 화해를 구걸하는 일을 멋대로 한다면 부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형을 죽이는 것이다. 曾子曰: "吾得正而斃焉, 斯而已矣." 此訓吾輩正合今日用. 若爲父兄救難者, 擅行改通乞和之事, 則非所以救父兄也, 乃所以戮父兄也. 내가 …… 그만이다 증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비단자리를 깔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동자가 대자리로 바꾸기를 청하자, 증자가 불편한 몸을 일으켜 대자리로 바꾸면서 "내 무엇을 바라겠는가. 내 바름을 얻고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吾何求哉? 吾得正而斃焉. 斯已矣.〕"라고 한 말이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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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와 셋째 두 아우에게 고함 【1925년 12월 10일】 告仲叔二弟 【乙丑十二月十日】 가난을 편히 여기고 자신의 힘으로 먹고 살면서 자식을 가르치고 조카를 훈도하며, 큰 절개를 힘써 지키고 자질구레한 일에는 관여하지 말게나. 安貧食力, 敎子訓姪, 務持大節, 無關瑣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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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명 【최백렬에게 증정함. 신미년(1931)】 靜精銘 【贈崔白烈 辛未】 마음은 고요하기를 바라고 心欲其靜,학업은 정밀하기를 바란다 業欲其精,고요하지 않으면 들뜨게 되니 不靜則浮,도(道)를 응시할 수 없고, 道無由凝,정밀하지 않으면 거칠어지니 不精則粗,리(理)를 밝힐 수 없네. 理何能明,하나의 병통과 하나의 덕에 一病一德,거취를 삼가고 조심해야 하니, 去就必欽,천하를 다 모은 구정(九鼎)211), 九牧之鼎,백 번 담가 벼린 강철, 百鍊之金,애써 이와 같이 공 들이면 用功若此,성인 되는 것도 먼 일 아니네. 作聖尺尋,한번 소홀함에 이르고 나면 一涉疏忽,시루에 물 붓는 모양 되리니, 注水漏鬵,나의 바늘 잠언 아프게 들어 我箴劄痛,너의 마음에 깊이 새기기를! 爾其銘心. 心欲其靜, 業欲其精, 不靜則浮, 道無由凝, 不精則粗, 理何能明, 一病一德, 去就必欽, 九牧之鼎, 百鍊之金, 用功若此, 作聖尺尋, 一涉疏忽, 注水漏鬵, 我箴劄痛, 爾其銘心。 구정(九鼎) 중국 하(夏)나라의 우(禹) 임금이 구주(九州)의 수령에게서 동을 거두어 주조(鑄造)한 큰 솥으로서, 천하를 다스리는 크고 무거운 권위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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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명 【최창식ㆍ최현식에게 증정함. 신미년(1931)】 誠勤銘 【贈崔昌植賢植 辛未】 참됨[誠]은 하늘의 도리이고 誠爲天道,부지런함은 성인의 공력이니, 勤是聖功,부지런히 애쓰면 굳고 세어지고 用勤剛健,참됨을 생각하면 밝고 통하리니, 思誠明通.밝고 통하며 굳고 세면 旣明且剛,이를 일러 성인ㆍ철인이라 하니, 斯謂聖哲,재질이 무디다 말하지 마소 莫曰才鈍,증자는 노둔함으로 성취하였네. 曾以魯得.순일한 한마음으로 나아가면 一心所到,쇠와 돌이라도 뚫을 것이고, 可透金石,애써 제 때마다 부지런하면 務厥時敏,내내 닳아 지치지 않으리. 來來不竭.재능은 공경함에서 나오나니 才由敬出,정자의 가르침에 말하였네. 程訓可質,오오, 우리 젊은 사람들 嗟嗟小子,부지런히 애쓰며 지치지 마소! 勉哉無射. 誠爲天道, 勤是聖功, 用勤剛健, 思誠明通。 旣明且剛, 斯謂聖哲, 莫曰才鈍, 曾以魯得。 一心所到, 可透金石, 務厥時敏, 來來不竭。 才由敬出, 程訓可質, 嗟嗟小子, 勉哉無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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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에게 답함 신유년(1921) 答金聖九 辛酉 김씨의 일은 저의 의론이 인가를 받았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대저 김씨의 자결이 만약 [삭발을 당할 때] 그 자리에서 행했다면 어느 누가 그 심정을 헤아려 의리를 인정하지 않았겠습니까. 오직 그의 죽음이 너무 늦었고, 중화니 오랑캐니 하는 고담준론이 삭발을 당한 이후에 있었으니, 뻔뻔하게도 수치를 알지 못한 것이 심하였습니다. 설사 비웃음을 당하고 싶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삭발 이후 죽기 전의 여러 날 동안 하루아침에 우연히 감기에 걸려 죽었다면, 비록 자결하여 뜻을 이루고자 해도 어찌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지금 스승의 가르침을 받드니, "삭발을 당하여 자결한 자에 대해 절개를 손상하였다고 하면 괜찮지만 절개를 잃었다고 한다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절개를 손상시킨 것은 절개를 잃은 것과 매우 차이가 나며, 저의 주장도 스승의 가르침과 매우 가깝게 됩니다. 그대의 편지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 것은 진실로 옳은 말씀입니다.유자로서 오랑캐의 나라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머리를 깎았지만 장성하여 그것이 그르다는 것을 깨달은 자가 능히 풍속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훌륭할 것입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나라로 가서 사는 것도 괜찮습니다. 만약 갈 만한 나라가 없거나 갈 수 없는 형편이 있다면 마땅히 수치를 알고 억울함을 품고서 일생을 사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것은 보내온 편지대로 선생께 여쭈어 가르침을 받은 것입니다. 金氏事, 鄙論得蒙印可, 幸甚.大抵金氏之死, 若在於不旋其踵, 則孰不原情而與義? 惟其死之也太晚, 而曰華曰夷之高談峻論, 乃在於見削之後, 其靦不知恥甚矣.縱不欲見笑得乎? 若其削後死前許多日, 一朝偶得寒疾而死, 則雖欲自裁而遂志, 何可得乎?今承師訓, 曰: "被削自死者, 謂之虧節則可, 謂之失節則不可." 然則虧節之於失節爲甚遠, 而鄙說之於師訓爲甚近也.盛喩所謂微有異者, 誠是矣.儒者生於夷狄之國, 自幼薙髪而長覺其非者, 有能變俗之力則尚矣, 不然則往之他國居焉可也.若無可適之國, 或有勢不能往者, 則當知恥含冤, 以度一生, 可也, 此是師門因來書轉稟而下敎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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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 정장인창에게 보냄 을축년(1925) 9월 與惟夢鄭丈寅昌 ○乙丑九月 옛날 경자년(1900) 겨울에 팔풍(八風)을 맞으며 두 갈래로 눈길을 뚫고 어른 집에서 선사를 어렵게 배알했던 것을 생각하니, 행장은 초라하고 나이는 어려 어리석었는데 어른께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면서 매우 곡진하게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 후로 몇 년을 금곡(金谷)97)과 화전(華田) 사이에서 하루처럼 보냈는데, 한번 선사께서 남쪽으로 내려가신 뒤로는 가르침을 받는 것이 점점 드물어졌고, 스승께서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난 뒤에는 더욱 멀리 떨어져 마치 텅 빈 세상의 인사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찌 일찍이 잠시인들 옛 은혜를 잊은 적이 있겠습니까. 스스로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선사의 무함을 변론하려다가 음성 오진영에게 고소를 당하여 세 번이나 검사국에 호출되었으니, 일의 기미를 헤아릴 수 없었고 화망에 걸려 몸을 해쳤습니다. 비록 불효이나 스승을 위해 죽는 것도 분수와 의리에 관계되니, 다시 무엇을 원망하겠습니까? 인하여 생각하니, 우리 어른께서는 스승을 섬기는 정성이 평범함을 크게 벗어나서 금곡(金谷)과 화전(華田)에서 진술을 할 때 유독 현명하였고, 스승이 돌아가셨을 때 곡을 잘하여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이것이 시생이 마음으로 열복(悅服)한 것인데, 유독 무함을 변론하는 일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들리는 말이 없습니다. 부지런히 종사하여 마음을 다하는 것은 스승을 섬기는 작은 것이고, 도를 밝히고 의리를 높이는 것이 스승을 섬기는 큰 것입니다. 우리 어른의 고명함으로 어찌 대소의 분별을 살피지 못하겠습니까? 부디 가르침을 주셔서 의혹을 풀어주시기를 천만 바랍니다. 念昔庚子之冬, 櫛八風風穿雙龍雪, 間關拜先師於仙庄也.行李蕭蕭, 弱齡蚩蚩, 吾丈護之導之, 極其缱綣.茲後, 數年如一日於金谷華田之間, 一自先師南下, 奉誨希闊, 山頹三年之後, 則尤落落若曠世人事, 然何嘗須臾而忘舊惠也? 不自量力, 欲辨師誣, 遭陰吳之訴, 三被檢呼, 事機罔測, 嬰禍戕身.雖則不孝, 爲師致死, 亦係分義, 夫復何恨也? 因念吾丈事師之誠, 遠出尋常, 獨賢於金華之在陳, 感人於摧樑之善哭.此侍生之所心悅也, 而獨於辨誣之擧, 尙未有聞焉.夫服勤盡情, 事師之小者也, 明道尊義, 事師之大者也.以吾丈之高明, 豈不審於大小之分哉? 幸賜回敎解惑千萬. 금곡(金谷) 지금의 충남 논산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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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사 정향축문306) 泌陽祠丁享祝文 실질적인 학문과 實地學問하늘을 찌르는 절의는 撑天節義많은 선비들이 추모하니 多士追慕백세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百世無替 實地學問, 撑天節義, 多士追慕, 百世無替. 정향축문(丁享祝文) 정향 또는 정제(丁祭)에 읽는 축문이다. 정향은 음력 2월과 8월 정일(丁日)에 제사 지내는 것이다. 한 달에 상정(上丁)ㆍ중정(中丁)ㆍ하정(下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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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유대유 천종 에게 보냄 ○2수 贈劉友大有【千鍾○二】 적적한 곳에 쑥대문 짓고 물가에 거처하다 涔寂蓬門滄下居와서 정 나누며 마음 어떠냐고 물어보네 問君來款意何如거친 밥이라도 삼시 세끼 배불리 먹고 麤飯甘飽三時際짧은 옷 입고 흰구름 뜰 때 잠 못 이루네 短被難眠白雪初지극한 정성으로 금석을 뚫는 건 두려울 만한데 可畏至誠金石透얕은 학문에 작은 그릇 남는 건 또 부끄럽네 還羞淺學斗筲餘우리들의 일이란 게 한계가 없음을 알겠으니 吾人事業知無限모름지기 날이 가고 달이 감을 애석해하네 須惜天西日月諸일산 기울여 잠시 교분 맺고 다시 한 해 지나 傾蓋爲交再閱年왕래할 때 그대가 먼저여서 늘 감사했네 過從常感自君先돌아보니 넓은 길은 온통 풀로 막혀 있고 回看周道多蓁塞뜬구름 같은 세상 모두 취하여 잠든 것 탄식했지 堪歎浮生盡醉眠정도를 지키는 데 어찌 궁벽함과 치욕이 관여하리오 守正何關窮且辱공부하는 데 있어서는 백배 천배 노력해야지 下工須要百兼千다만 책을 가지고 진심을 다할 뿐이니 只將黃卷輸肝膽여러 번 깎은 등심 책상 앞에 떨어지리 頻剔燈灰落案前 涔寂蓬門滄下居,問君來款意何如?麤飯甘飽三時際,短被難眠白雪初.可畏至誠金石透,還羞淺學斗筲餘.吾人事業知無限,須惜天西日月諸.傾蓋爲交再閱年,過從常感自君先.回看周道多蓁塞,堪歎浮生盡醉眠.守正何關窮且辱?下工須要百兼千.只將黃卷輸肝膽,頻剔燈灰落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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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구함 求道 이 도라는 게 밝기가 마치 해와 별 같고 此道昭然似日星곧장 하늘땅 따라서 우뚝 서 있는 것이라 直從天地立亭亭공자께서는 지극한 가르침을 물이 감으로 증명했고58) 宣尼至敎證川逝무숙은 살려는 마음을 풀이 푸른 것을 통해 봤지59) 茂叔生心見草靑눈을 뜨고 참 세상을 알려 하면 開眼要知眞境界수레를 돌려 큰 문의 뜰을 향해야 하네 回輈須向大門庭지금 같은 티끌 세상 모두 눈 감고 취하니 如今塵世皆眠醉장차 옛사람들 따라 홀로 깨어 있으리 且踵前人獨自醒 此道昭然似日星,直從天地立亭亭.宣尼至敎證川逝,茂叔生心見草靑.開眼要知眞境界,回輈須向大門庭.如今塵世皆眠醉,且踵前人獨自醒. 공자께서는……증명했고 원문 '선니(宣尼)'는 한나라 평제(平帝) 때 '포성선니공(褒成宣尼公)'이라는 시호를 받은 공자를 가리키며,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를 전용한 것이다. 무숙은……봤지 무숙(茂叔)은 북송 시대 주돈이(周敦頤)의 자이다. 주돈이가 살던 곳의 창 앞에 풀이 무성히 자라도 베지 않기에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나의 의사와 같다.〔與自家意思一般〕" 하였는데, 이 말은 풀의 살려는 뜻〔生意〕이 자신의 살려는 뜻과 같기 때문에 베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돈이는 풀을 통해서 천지가 생생(生生)하는 뜻을 보았던 것이다. 《近思錄 卷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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