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회재 근호에게 보냄 기사년(1929) 與朴晦哉 根浩 己巳 편지에서 '지난날 심화(心火)가 있었다.'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바로 주자(朱子)가 말한 '불길이 없는데 뜨거운 것'으로서 그대처럼 아름다운 자태와 맑은 흉금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요컨대 반드시 일시적인 유소(有所)의 매임이52) 있어서 급절하게 마음을 쏟아내기 어려워 그것을 심화가 발작한 것으로 인식한 듯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오래도록 청소하지 않아 더욱 치성하게 되면 어찌 끝내 우려가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대개 마음은 신명이 머무르는 집으로, 본디 담일(湛一)하고 허명(虛明)하여 허다한 사물이 그 사이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치를 따라 마음을 순히 길러서 그 신체를 온전히 하고 그 마음의 작용을 잘 이끌어낸다면 백행(百行)과 만선(萬善)이 도도하게 흘러 강하가 바다에 도달하는 것처럼 될 터이니, 어찌 맹렬히 타오르는 횃불과 석탄덩이 같은 사물이 있겠습니까? 오장(五臟)을 오행(五行)에 분속시키면 심(心)은 불에 해당합니다. 고로 경영하여 계산하는 바가 있어서 큰 욕망이 있는데 오래도록 이루지 못한 경우와, 사랑하고 기대어 평생 의지하는데 하루아침에 잃게 되는 경우에 번민과 조급증이 뜨거운 불길로 타올라 유황, 인, 땔감, 석유 등의 물질이 없어도 오장이 타서 작열(灼熱)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사가 원지(遠志), 창포(菖蒲) 등의 청량한 약재로 다스리니, 그것이 본디 병을 치료하는 관례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성현의 문정(門庭)에 또한 한 가지 청량한 약제가 있어서 탕전(湯煎 탕약)과 도규(刀圭 병 고치는 기술)를 기다리지 않고도 한 번에 쓸어 없앨 수 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의 청량한 약제는 무엇일까요? 독서하여 이치를 밝히고, 이치를 따라 분수에 안주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주자가 "세간의 만사는 잠깐 사이에 변멸(變滅)하니 모두 흉중에 담아둘 것이 없다. 오직 독서하고 궁리하는 것만이 궁극의 법이 된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주자가 이른바 세상만사란 모든 성색(聲色), 취미(臭味), 궁실(宮室), 의복(衣服)으로서 하나같이 응당 경영하고 애련의 마음이 쉽게 발생하는 것들이니, 심화라는 것이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한번 이 훈계를 읽어보면 책을 펴서 이치를 완미하여 그 힘을 얻을 것을 기다리지 않고도 먼저 흉중에 청쾌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대저 이른바 독서궁리(讀書窮理)는 또 어찌 백발이 되도록 경전에 골몰하여 종신토록 애쓰는 것뿐이겠습니까? 대개 이 네 글자 "독서궁리(讀書窮理)" 중에는 심신(心身) 안팎의 일과, 가국(家國)의 멀고 가까운 허다한 사업이 포괄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늘 "자고로 도리를 알지 못하는 영웅은 없다"라고 하였고, 옛 훈계에도 "진정한 대 영웅은 전전긍긍(戰戰兢兢), 여림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氷)53) 가운데서 만들어진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은 모두 정확하고 간절한 의론으로 매번 암송할 때마다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을 흔들어 분발을 느끼게 합니다. 부족한 나를 돌이켜보면 비록 백발이 성성하지만 여전히 배로 더욱 힘써서 "얻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겠다."라는 소원이 있는데, 하물며 그대처럼 젊고 건장하여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어찌 잠시라도 무관심하여 진실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방해가 있다고 하여 평소에 가졌던 뜻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대개 이 학문과 세도(世道)를 일으킬 책임은 그대 같은 미래 세대에게 희망이 있으니, 부형(父兄)은 자재를 믿고 스승과 웃어른은 후생을 기약합니다. 그러니 선진(先進)을 계승하여 일어나는 자가 있지 않다면 우리의 도는 거의 끊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보잘 것 없는 내가 세한(歲寒)의 마음을 기약함이 다른 사람이 아닌 그대에게 하는 까닭입니다. 만일 이런 나의 고심을 헤아려주지 않는다면 나를 저버린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모름지기 곧바로 행장(行裝)을 꾸려서 이곳으로 와 서로 교학상장하여 여러 해 동안 학업을 온당하게 닦는다면 매우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向日心火之喩, 是何謂也? 此正朱子所謂不火而熱者, 以賢美姿淸襟, 豈有是耶? 要必不免爲一時有所之係, 而難於急切放下, 認以爲心火之發也.然此念久不掃淸, 而益以熾盛, 則安保其終無慮也? 蓋心者神明之舍, 本自湛一虛明, 不容許多物介其間.苟順而養之, 全其體而達其用, 則但見百行萬善, 混混流出, 若江河之達海, 安有一般燄燄烈烈, 燎把炭槐樣物事哉? 惟其以五臟分屬於五行, 則心乃屬火.故有營爲計較, 大欲所在而積久未遂者, 及愛憐依恃, 生平所賴而一朝見失者, 則煩悶燥輕, 烈擧熾楊, 無硫燐柴油等物, 而五內己焚灼矣.醫者乃以遠志菖蒲等淸凉之劑治之, 此固治病之例方.然殊不知吾聖賢門庭, 亦自有一副淸凉之劑, 不待湯煎刀圭而一掃掃下者也.所謂聖門淸劑何也? 讀書而明理, 循理而安分是也.朱子不云乎? 世間萬事, 須臾變滅, 擧不足置胸中.惟有讀書窮理爲究竟法, 所謂世間萬事, 凡聲色臭味宮室衣服, 一應營爲, 愛憐易生, 心火者非此乎? 試讀此訓, 不待展卷玩理得其力, 而先覺胸膈之淸快也.夫所謂讀書窮理, 又豈但皓首窮經矻矻終身而已乎? 蓋此四字中包括身心內外, 家國遠近許多事業.故人有恒言曰, 自古無不識道理底英雄, 古訓又曰眞正大英雄, 從戰兢臨履上做出來.皆的確懇切之論, 每一詠誦, 使人足以興感奮發也.顧玆陋劣, 雖顚髮星星, 尙有一倍加勉不得不措之願, 况如賢之年富力强, 可以一日千里者, 豈可片刻伈俔, 有妨於造眞境而負夙志乎? 蓋斯文世道之責, 有望於來許者, 在父兄侍子弟, 在師長期後生.不有繼先進而作者, 吾道不幾乎熄乎? 此區區所以歲寒相期者, 不于他而于賢也.如不諒此苦心, 雖謂之負余可也.須卽理裝賁枉, 互相長益, 穩做歲月之業, 甚幸甚幸. 유소(有所)의 매임 《대학》 〈정심수신장(正心修身章)〉 "[心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則不得其正, 有所好樂則不得其正, 有所憂患則不得其正.]" 전전긍긍(戰戰兢兢), 여림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氷)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은 듯이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는 구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