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군【병노】을 전송하는 서문 【갑자년(1924)】 送李君【炳魯】序 【甲子】 "맹자 뒤에 태어나 성인의 도를 밝히고 이단(異端)을 물리친 사람으로 공이 창려 한자(昌黎韓子)119)보다 더 큰 사람이 없는데, 맹자의 도통을 계승한 자를 거슬러 올라가 논할 때에 한자를 논하지 않고 주(周)ㆍ정(程)120)을 논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답하기를,"그의 문장이 너무나 성대하기 때문입니다."하니, 내가 말하였다."이것이 무슨 해가 되겠는가. 문장은 도학이 숭상하는 바가 아니지만, 또한 버리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 도통을 계승할 수 있다면 문장의 성대함이 비록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하더라도 어찌 병통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잠시 틈을 내줄 수 있다면 그 이유를 말해보겠네.대저 한자의 문장은 기운이 창성하고 뜻이 잘 전달되며, 이치가 명확하고 의미가 장대하였으니, 비유하면 순풍을 만난 돛대이고 잘 달리는 말의 발굽이며, 해처럼 빛나고 못처럼 깊네. 한자가 삿된 학설을 배척한 것은 마치 용문(龍門)을 뚫고 구하(九河)를 소통시킨 것121)처럼 확연히 통하고 흡연히 안정되었네. 문장으로 인해 도를 밝히고, 도가 밝혀짐에 문장이 더욱 드러났으니, 서로 병통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서로 도움이 되었네. 그러니 문장의 성대함이 도통을 계승하지 못한 것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아, 한자의 문장은 진실로 성대하였으니, 주ㆍ정이 미치지 못한 바이고, 세도(世道)에 대한 한자의 공이 또한 위대하였으니, 어찌 대번에 주ㆍ정보다 낮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 도통이 한자에게 있지 않고 주ㆍ정에게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네.성인의 도는 격치(格致)122)를 귀하게 여기고 실천을 요체로 삼는데, 애석하게도 한자는 이 두 가지를 궁구하지 않았네.123) 때문에 성삼품(性三品)124)을 말한 것은 도의 근원을 알았다고 할 수 없고, 서장(書狀)을 투척하여 천거를 구한 것125)은 자중하는 도리를 알지 못한 것이네. 이것이 맹씨(孟氏)의 도통을 접하지 못한 이유이네.오늘날 선비 중에 문장을 가지고 놀며 조충소기(雕蟲小技)126)를 공교롭게 하는 자는 실로 말할 것도 없고, 대가(大家)의 법도를 좇아 답습하며 백세토록 화려한 명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한자에 뜻을 두지 않는 자가 없네. 한자는 진실로 호걸스러운 선비이니, 한자에 뜻을 둔 것을 나는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네. 다만 한갓 그의 못처럼 깊고 고색창연한 문장만을 기뻐하되 성인의 학문을 보호하고 이단을 물리치는 것이 공적이 되는 줄 모르는 것은 옳지 않으며, 그의 공적이 사문(斯文)에 있음을 알고서 사모하되 도통을 계승하지 못한 데에 이유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도 또한 옳지 않네.그래서 나는 한자에 뜻을 둔 세상의 선비들이 문장이라면 내가 대적할 수 있고, 공적이라면 내가 맡을 수 있으며, 또 격치와 실천에 착수하여 한자가 궁구하지 못한 것을 궁구하되 정밀하고 익숙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네. 이와 같이 한다면 한자의 문장을 문장으로 삼고, 주ㆍ정의 도를 도로 삼아서 도통이 진실로 나에게 있게 될 것이니, 문장도 또한 도에서 빛남이 있지 않겠는가."나를 따라 공부한 이군 병노(李君炳魯)는 도학에 뜻을 두었고, 아울러 문장을 닦는 자이기에 그가 돌아갈 때에 특별히 이러한 말을 주어서 문장이 비록 도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도통이 문자에 있지 않고, 공이 비록 도를 보호할 수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실천을 지극히 다하는 것이 성인의 도가 됨을 알게 하였다. 後孟子而明聖道、闢異端者, 功莫尙乎昌黎 韓子, 而尙論繼孟子統者, 不于韓而于周、程, 何哉? 曰: "爲其文章之太盛也. " 曰: "是何傷哉? 文非道之所尙, 亦非其所棄, 苟可以繼其統, 文之盛, 縱不足增美, 庸可以爲病乎? 請得間而爲之說. 夫韓子之文, 氣昌而辭達, 理明而意長, 譬如風檣駿蹄, 日皦淵深. 韓子之斥邪說, 如鑿龍門而疏九河, 廓然而通, 翕然而定, 因文而明道, 道明而文益彰, 不惟不相病, 實爲之相資. 文盛之於統不繼, 奚涉哉? 噫, 韓子之文, 固盛矣, 或周、程之所未逮也. 韓子世道之功, 亦偉矣, 何遽讓乎周、程? 然其道統之不于韓而于周、程者, 厥有由焉. 聖人之道, 以格致爲貴, 踐履爲要, 惜乎韓子之未究乎此二者也. 故說性三品, 未足爲知道之源, 投書求薦, 不知其自重之道. 此其所以未接乎孟氏之統也. 今之士之操弄觚墨、雕蟲小技之是工者, 固不足道, 其欲追步大家軌範, 彰華聞于百世者, 擧莫不志乎韓子. 韓子誠豪傑之士, 志韓子, 吾不曰'不可', 但徒喜其淵然蒼然之文, 而不知閑聖闢異之爲功, 則未可也; 知慕其功在斯文, 而不究其不繼統之有由, 亦未可也. 故余欲世之志韓子者, 文乎其能吾敵矣, 功乎其能吾任矣, 又能實下手於格致踐履, 究韓子之所未究而精熟之. 是則文韓子之文, 道周、程之道, 道之統, 固在我矣, 文亦不于道有光乎. " 從余遊者李君 炳魯, 志於道而兼治文者, 於其歸也, 持此說而贈之, 使知文雖資乎道, 而道之統不在文; 功雖足以衛道, 而必極踐履之爲聖道. 창려 한자(昌黎韓子) 당나라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한유(韓愈)로, 창려는 그의 호이다. 주(周)ㆍ정(程) 주는 주돈이(周敦頤)를, 정은 정호(程灝)와 정이(程頤) 형제를 말한다. 용문산(龍門山)을 …… 것 우(禹) 임금이 이 아홉 물줄기의 길을 내어 범람을 막은 일을 말하는 것으로, 《사기(史記)》 권87〈이사열전(李斯列傳)〉에 "우 임금이 용문을 뚫고 구하를 소통시킬 때에 손발이 부르트고 얼굴이 누렇게 초췌하였다.〔禹鑿龍門, 疏九河, 手足腁胝, 面目黧黑.〕"라는 구절이 보인다. 격치(格致) 격물(格物)ㆍ치지(致知)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학》의 '팔조목(八條目)'인 격물ㆍ치지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ㆍ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 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한다. 애석하게도 …… 않았네 한유는 〈원도(原道)〉에서 《대학》의 '팔조목'을 언급하면서 격물ㆍ치지를 제외시켰다. 성삼품(性三品) 한유는 〈원성(原性)〉에서 "성의 품등에는 상중하 세 가지가 있다. 상품은 선할 뿐이고, 중품은 인도하여 위나 아래로 가게 할 수도 있으며, 하품은 악할 뿐이다.〔性之品有上中下三, 上焉者善焉而已矣, 中焉者可導而上下也, 下焉者惡焉而已矣.〕"라고 하여 성삼품설(性三品說)을 주장하였다. 《昌黎文集 卷11》 서장(書狀)을 …… 것 〈위인구천서(爲人求薦書)와〈상재상서(上宰相書)〉 등을 말한다. 《古文眞寶 後集》 조충소기(雕蟲小技) 벌레 모양이나 전서(篆書)를 조각하듯이 미사여구(美詞麗句)로 문장만을 꾸미는 조그마한 기교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