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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김재정(金在廷)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廷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46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정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46년(헌종 12)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정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환부(鰥夫) 김재우의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9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5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49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재우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啓鉉),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가족 구성원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연령 87세 경진생(庚辰生)이다. 아들 기옥(祺玉)은 나이 28세 기묘생(己卯生)이며, 며느리 유씨(兪氏)는 연령 26세 신사생(辛巳生)이고 본적은 기계(杞溪)이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로 나이 45세 임술생(壬戌生) 여종 악춘(惡春)이 있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43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계묘호구상준인(癸卯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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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최상현(崔相鉉)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相鉉 盧軫永 崔相鉉(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1월 9일에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새해 안부를 전한 서간. 1927년 1월 9일에 소생(小生) 최상현(崔相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새해 안부를 전한 서간(書簡)이다. 국한문혼용으로 세로 줄이 그어진 편지지 1장을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내용은 새해 이후로 잘 계심을 축하드린다는 것, 자신은 전과 같이 지내니 참으로 당신께서 생각해 주심을 깨닫는다는 것, 한번 직접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쓸데없는 일들 때문에 자신의 미음을 이루지 못한다며 작은 편지지로 안부의 글을 올린다고 했다. 나머지는 훗날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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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최상현(崔相鉉)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相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월 14일, 생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그의 족인인 노광명을 귀하가 있는 쪽으로 가도록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28년 1월 14일에 생(生) 최상현(崔相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족인인 노광명(盧光明)을 귀하가 있는 쪽으로 가도록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새해 첫 달에 상대가 평안함을 알았다며 송축하는 마음 그지없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자신은 못난 모습 여전하다고 전한 후 귀족(貴族)의 노광명(盧光明) 군을 귀변(貴邊)에 오도록 권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의논할 일이 있는 중이라서 자신이 만약 직접 청하면 불응(不應)할 수 있겠기에 이와 같이 편지로 말씀드린다고 전했다. 이 편지는 1927년 1월 9일에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보낸 간찰과 합봉(合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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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노인택(盧仁澤)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仁澤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4월 25일, 족종 노인택 등 3명이 노종룡에게 노씨문중 선단 비용 문제로 보낸 서간. 1935년 4월 25일, 족종(族從) 노인택(盧仁澤) 등 3명이 노종룡(盧鍾龍)에게 노씨문중 선단(先壇) 비용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봄에 만났던 뒤로 항상 그리웠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4월의 날씨에 상대가의 여러분들이 모두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족종등(族從等)'인 자신들은 별 탈 없이 똑같이 지낸다고 한 뒤 선단(先壇)을 의보(義補)하는 일에 대해 언급했다. 의연금으로 보조하는 자손이 되어 선조를 섬기는 일로 당연한 일이며, 자신들이 잔문(殘門)으로 많은 의연금을 모으는 일로 지난 3월의 행사에서 자신들의 가문 형편을 조사하여 여러분들에게 일일이 고했다고 했다. 그런데 편지로 말씀해주신 2두락에 대한 값 120원(圓)을 언급하신 것은 무슨 까닭이냐고 묻고 60원으로 허락을 받았는데 20원은 너무 적다며 당신의 종문(宗門)에서 선출된 사람을 내보내 꼭 모두 돈을 모아 주기를 당부했다. 편지 봉투에 적힌 이름이 노영원(盧永源)인 것으로 보아 편지의 발기인은 여럿이나 작성자가 노영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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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최수갑(崔秀甲)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76 谷城縣監 崔秀甲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76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수갑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76년(고종 13)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수갑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수갑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오가작통 순번은 4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40세 정유생(丁酉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수갑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종득(宗得), 할아버지 학생 덕연(德延), 증조(曾祖) 학생 동룡(東龍), 외조(外祖) 학생 정대익(鄭大益)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최수갑의 아내 이씨(李氏)는 나이 40세 정유생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이씨의 사조는 아버지 사고참봉(史庫參奉) 용갑(龍甲), 할아버지 학생 동방(東芳), 증조 학생 광언(光彦), 외조 학생 김영욱(金永郁)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가족으로 아들 동몽(童蒙) 정국(楨國)은 나이 15세 임술생(壬戌生)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으로는 상원(上元)이 있다. 이 문서에 '호적단자(戶籍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 방식으로 쓰여 있으나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1873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계유상준인(癸酉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수갑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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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김병주(金柄周)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柄周 盧軫永 金柄周神(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3월 4일, 죄제 김병주가 노진영에게 안부를 전하고 돈을 빌려 줄 것을 부탁한 내용의 서간. 1928년 3월 4일, 죄제(罪弟) 김병주(金柄周)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전하고 돈을 빌려 줄 것을 부탁한 내용의 서간(書簡)이다. 해가 지나도록 편지하지 못했다며 음력 2월의 날씨에 어버이 모시고 있는 상대와 여러 가족들이 잘 지내는지 물었다. 자신은 지난 가을 엄친이 별세하신 뒤로 병에 걸렸다가 최근 겨우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 드릴 말씀은 매번 누를 끼친다며 그래서 편치 않은 마음이 막심하다고 했다. 오랫동안 출입하지 못하던 중에 또 병마로 인해 곤란을 받았고, 저간에 정리하는 글의 건수(件數)가 적지 않아 다소간에 소비가 매우 긴급하게 되었다며 형의 높으신 우의로 자신의 아이 성환(星煥)에게 금50원을 모조로 주선하여 빌려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 윤달 2월 말일까지 마땅히 찾아뵙고 다 갚겠다며 꼭 은혜를 내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추신으로 작년 가을에 보낸 부고는 전해 보았느냐고 묻고 전기(前記)는 대략 말씀드렸는데, 모든 수에 다 전하지 못했다며 형이 가급적 주선을 해주어 보급(補給)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했다. 발신자 김병주는 광주군(光州郡) 평저리(坪底里)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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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盧軫永 氏 侍史親展.(피봉_뒷면)盧承鉉 拜上(簡紙)(제1장)1.拜復尊堂淸榮하심을 仰祝하옵나이다. 宗生은 無事學하고 地燮도 잘 通校하니 大幸千萬耳. 就地燮이는 城南, 景福(二高), 徽文, 新設할 中學校 等四校에 入學手續하기로 擔任先生과 約束하엿스나 實地受驗은 形便보아서 受驗함이 適宜할줄로 밋나이다. 一次安氏를 相逢할야고 하엿드니 意外로 兒患으로 一月三十日부터 入院中이여 相逢期를 延期하고잇습니다만 退院後 急速히 相逢하기로 宋先生과 相議하엿나이다. 故로 下諒하시압소셔.傳聞한즉 十四日頃에 上京하신다 하오니 其時欽永氏鑛山賣買件 委任狀을 取得하시와 上京하시엿스면 好機逸失치 아니하고 仲介에 成功하겟슴니다.(제2장)2.그리고 運動費에 對하야는 아즉 무엇이라고 上告하엿스면조흘지 未定이오나 確實予定이 슨 後 다시 通知하겟나이다.地燮 姊夫와도 相議하여 景福中學校에 連絡運動하도록 工作하엿드니 全然不當하다고 嚴言하드라고 하오니 公立은 此亦難問題이옵니다.徽文集中으로 進行하겟스나 유지될 것인지가 궁금하기 짝이업나이다. 怱怱, 이만 끝합니다.昭和十五年二月七日, 盧承鉉.盧軫永氏 侍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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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承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40년 2월 24일, 종생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노진영 자손인 지섭의 학교 문제로 보낸 서간. 1940년 2월 24일, 종생(宗生) 노승현(盧承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 자손인 지섭의 중학교 입학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일전에 편지를 받고는 사방에 연락을 취해 보았지만 별로 신통한 곳이 없다는 것, 경복(景福)은 공립(公立)이기 때문에 절대 공평하게 처리한다고 하며 거절하였다는 것, 휘문중학교에 속히 연락하여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어찌 해야 할지 답주시기를 기다리겠다는 내용이다. 규격 편지지 1장을 이용하여 국한문혼용으로 작성하였다.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보낸 3편의 서간과 합봉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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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박장환(朴章煥)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章煥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10월 16일, 제 박장환이 노진영에게 그의 손자 혼례를 위해 혼처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41년 10월 16일, 제(弟) 박장환(朴章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손자 혼례를 위해 혼처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이번 달 초에 서울에서 이별한 후 지금까지 마음이 슬프다며 잘 돌아가셨는지 묻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요즈음 상대와 식구들의 안부가 어떠한지 물은 후 자신은 잔렬한 모습을 겨우 보존하고 있고, 아이들 별 탈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주요 내용은 상대가 자세히 물었던 중평리(中坪里) 김상완(金相完) 가벌(家閥)이 어떠한지에 대하여 말해주는 내용이다. 김상완은 면장을 지낸 김인수(金仁洙)의 종질(從侄)인 김상락(金相洛)의 재종(再從)이라며 그 집 규수는 정숙(貞淑)한 자태로 많이 배워서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니 형이 그 집과 혼례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답변을 부탁하고 편지를 마쳤다. 발급자 박장환은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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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채준(盧埰晙)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埰晙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노채준(盧埰晙)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 부친의 병세를 누군가에게 탐문하고 그 탐문한 치료법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10월 6일에 족생(族生) 노채준(盧埰晙)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국한문혼용 간찰로, 자신이 노진영 부친의 병세를 누군가에게 탐문하고 그 탐문한 치료법을 전하는 내용이다. 부친의 병세는 풍열(風熱)의 여독(餘毒)으로 폐풍(肺風)이 되어 화염(火炎)이 금(金)을 녹이기 때문이니, 금석(金石)의 재료로만 오로지 다스리게 되면 끝내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고, 노쇠한 상황에는 혈기가 부패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뼈마디도 마비가 오게 되니 노인의 치료법이 결코 아니라고 하였다. 내외를 순화(順和)시킬 수 있는 약재를 복용해야 한 달 안에 화(火)가 내려가고 풍(風)이 물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전하면서 한 집에 살았던 정분으로 충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귀하의 효성으로 헤아려달라고 하였다. 혹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신이 머물고 있는 녹동재(鹿洞齋)로 기별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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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신영협(辛泳協) 등 20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泳協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9월에 신영협 등 20인이 노진영에게 반곡 조병의의 회갑 축하 시문을 투고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 1941년 9월, 신영협(辛泳協) 등 20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반곡(盤谷) 조병의(曺秉儀)의 회갑 축하 시문(詩文)을 투고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이다. 인사를 간단히 적고 곧바로 사문(斯文) 반곡(盤谷) 조병의(曹秉儀)씨는 타고난 성품이 매우 효성스럽고, 선대를 받들고 후생을 기르는데 진실로 공경스럽고 순수하고 독실하다며 향리에서 독효(篤孝)를 칭찬한다고 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색하지 않고 친절하고, 용감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주 알맞아서 남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힘써 구해주고, 친구가 힘든 상황이 되면 재물을 덜어 구제해 주는 등, 재물을 아끼지 않고, 물질보다 사람의 화합과 정을 우선하였다고 적었다. 이런 그가 음력 10월 2일이면 61세 초도(初度, 회갑)를 맞으니 우리들이 그 경사를 축하기 위해 여러분들이 시나 글을 지어 축하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시의 압운(押韻) 자는 장(長), 방(芳), 향(香), 상(觴), 향(鄕)이며, 투고 장소는 광주부(光州府) 학강정(鶴岡町) 66-3, 신영협(辛泳協)의 집이라고 했다. 발기인은 신영협을 필두로 조광호(曺光鎬), 오병남(吳秉南) 등 총 20인이다. 기름종이에 철필 인쇄하는 방식으로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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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山郡 瑞坊面 日谷【芝山面】盧軫永 殿(피봉_뒷면)光州府 鶴岡町 六六ノ三曺秉儀 二拜鶴鳴社告白(簡紙)伏惟辰下文祺淸穆, 仰祝?摯. 第白曺斯文盤谷秉儀氏, 天性至孝,奉先養生, 誠敬純篤, 鄕里稱其篤孝, 稟賦軒昂, 惇厚勇敢慈善, 各適其宜, 見人寃柱, 極力救伸, 知舊有不能聯生者, 損物極濟, 心常向上, 進就聞善, 輒行于友之情, 務爲式好, 未嘗失和物無物我, 此其事行之畧槩也. 陰十月二日,卽其六十一初度. 鄙等爲其賀慶, 玆敢仰告, 伏願 僉君子, 庸述詩與文, 以壽其壽, 千萬幸甚.韻押 長芳香觴鄕.投稿場所 光州府 鶴岡町 六六ノ三 辛泳協方.辛巳九月 日發起人 辛泳協 曺光鎬 吳秉南 河應鎔曺喜南 呂宗鉉 朴文俠 吳亨南金台鉉 閔泳元 宋鎭杓 李鍾杓丁鳳燮 曺甲鎬 李浩榮 丁日燮鄭淳煥 曺昌煥 奇敬度 梁仁黙 等座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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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父主前上書今日午後에누님下書는拜讀하엿습니다 무엇보다도故鄕어룬들께오서는 氣体候萬康들하시다니몃칠남지안은放學을압둔孫은伏喜萬萬이로소이다 누님下書와갓치孫도 曾祖父主忘終生辰을生覺하옵고一時는가서뵈울予定이엿섯사오나 달녁을보오니其날이바로放學이되와고만두기로하엿든次에누님下書를밧자오닛가實로뵈웁고십푼마음은마지못하엿습니다그러나孫이결코가보지안하여도關係은無할줄로암니다 가뵈운다는것은道理上禮義라고하실것이옴니다마는 實은形式이오니마음으로서멀니서遙拜만을함과조곰도其精神的에잇서서는差異가업슬줄로암니다 거기다異常히도三日에는放學이오니三日夜車로上京하오며는回日卽其이튼날은當하지안는가요 그리고別로工夫라는것은업서요그러나 下書에萬一오며는靈昏이오즉깃버하시랴하섯지만 缺席꺼지하여서가뵈운다며는깃거하시지도안하실것이옵니다 여러 가지로生覺하오니不可能하옵니다 (三日夜車로上京하겟서요)述孫地燮上書【피봉】〈前面〉全南光州府大正町百十二盧地燮本第入納〈後面〉京城府城北町五八ノ二0盧地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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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芝山面 日谷里…▣(盧掌)議 軫永 殿至急至急(피봉_뒷면)井邑郡 七寶面 二里院誌刊所 金成基[赤色正方印: 金成基印](簡紙)前日付郵書類, 仰想入覽矣.謹不審春殷春府先生氣候康寗, 而侍餘體度萬旺, 寶節亦爲均吉, 仰頌且祝. 弟依劣, 而方以院誌校正之汨沒, 無暇度之, 良悶耳. 就昨臘 仁兄許自作付道掌議后, 只到舊院誌, 無有回答, 故質問於裵道漢, 則言內,兄與小室夫人寓居於光州邑,不在未淂答來云, 則依其言信之后 兄許數次更書, 良爾此也. 而去月裵漢以單金收捧次,興德高敞三四處傳之矣. 胸獰那漢四十円金橫領, 暗夜率家逃走, 卽爲告訴於本駐在所, 使警官搜索那漢家, 則推出五六人回答書中發見 兄書, 則只存單金十円與單子奉安韻無有矣. 一則未安, 一則憤歎, 而是以方南北道大搜索矣. 不勝??. 安敢望厚恕否. 那漢二月在家時, 弟書兄看答, 則其時那末督推, 不然則捉囚, 而何無回答耶? 漢罪狀永失耳. 憤歎憤歎. 五十餘円金損失后, 院誌費用葛藤, 姑爲停止耳. 諒裁如何如何. 弟因於此事, 生病一朔, 出沒鬼關, 今纔起於矣. 自憐自憐耳. 餘邙眩. 不備候上.甲戌二月卄六日, 弟 金成基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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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 12월 1일, 봉산정사의 이재춘 등 5명이 노진영에게 미납된 출의금을 내달라고 촉구한 내용의 서간. 1934년 12월 1일, 봉산정사(鳳山精舍)의 임원 이재춘(李載春) 등 5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미납된 출의금(出義金)을 내달라고 촉구한 내용의 서간이다. 추운 12월에 상대의 안부를 간단히 묻고 봉산정사에 낼 의연금액과 토지 및 도조를 정리하는 일로 연락을 했다며, 작년 이래 여러 번 통지하였으나 아직까지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라 본의(本義)가 상실되게 되었다며 금년 내로 결말을 보려고 한다고 했다. 가장 급한 것이 올봄에 매수한 논 8두락 대신의 돈 약 400원을 정리하는 일이라며 이에 대하여 어찌해야 할지 여러분의 답장을 바란다고 전했다. 황색 종이에 철필등사의 방식으로 배포된 문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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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안병현(安秉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安秉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 11월 말일, 제 안병현이 노진영에게 안부와 그의 아들의 학업 생활 등을 전한 서간. 1938년 11월 말일, 제(弟) 안병현(安秉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와 그의 아들의 학업 생활 등을 전한 서간이다. 경성부 내수정(內需町) 70-77에 사는 안병현(安秉鉉)이 노진영에게 답한 편지로 아직 답장을 하지도 못했는데 또 편지를 받았다며 어쩔 줄 몰라하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 상대의 안부가 어떠한지 묻고 자신은 우거하는 상황이 한 결 같이 힘들다는 것, 간간이 듣는 고향 소식이 평안하다고 하고, 나머지 가속들이 큰 탈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상대의 아드님은 추위를 뚫고 서울에 돌아와서는 조금도 피곤한 기색 없이 이후로 매일 등교하여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 이것을 보면 평소 가정교육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으며 자신이 가르칠 것이 없으니 참으로 축하할 일이라는 것, 두 명의 아이도 잘 하고 있다고 전한 내용이다. 이 편지에 적힌 별지에는 최근의 서울에 있는 고보(高普)로 전학하려는 세태와 움직임이 정말 심하다는 것을 전하고, 이는 세속의 흐름이고 돈이 최소 400여엔 이상 들고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遊學)하는 일은 이를 거행하는 수단이 약 2천여 엔(円)에 이르니 형은 그 속류에 편입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상대가 자식의 전학(轉學)을 생각한데 대하여 답장한 편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고보(高普)로 가는 한 방도를 얻었는데 형이 하려 하신다면 양력으로 이달 27일 이내로 직접 와서 얼굴 보고 의논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전학을 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조건 2가지를 편지의 끝에 좌기(左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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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承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39년 12월 25일, 종생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노진영 자손의 휴학중 생활을 당부하고 광산에 관한 일의 진행을 어찌 할지 답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서간. 1939년 12월 25일, 종생(宗生) 노승현(盧承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 자손의 휴학 중 생활을 당부하고 광산에 관한 일의 진행을 어찌 할지 답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서간이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무사히 통근을 하고 있으며, 몸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본론으로 상대에게 부탁할 일은 상대의 아들이 광주로 내려간 뒤에 특히 건강에 유의하면서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도록 할 것을 당부하였다. 공부를 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제시해 주었는데, 아침 먹기 전 2시간은 매일 국어(國語)와 독서를 하고, 점심 먹기 전 2시간쯤은 매일 글씨 쓰는 것과 작문 창작 연습을 하고 책을 읽을 것, 저녁 먹기 전 2시간쯤은 학교규정에서 내는 숙제를 열심히 하도록 하고, 저녁 먹고 1시간 뒤부터 10시까지는 작문(作文) 수험준비서를 연구하고 암송할 것, 국어의 의미 연구 등에 전심전력 하라고 전했다. 이와 같은 매일의 일과를 충실히 하면 건강도 증진되고 공부에 재미도 붙을 것이라며, 낮의 휴가 시간에는 되도록 산과 들을 걸으며 산책하도록 할 것을 당부했다. 다음으로 자신이 서울에 올라갈 때 말씀하셨던 광산(鑛山) 일에 대해서는 휴가를 이용하여 활동해 볼 것이니 어떻게 일을 진행할지 편지로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휘문(徽文) 측의 운동 등은 휴가를 이용하여 연락해 볼 것이고, 시세에 맞는 운동을 선택해 볼 것이니 안심하라고 했다. 결과는 훗날에 말씀드리겠다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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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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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피봉_앞면)光州郡 芝山面 日谷里盧蘇海 鍾龍氏 宅回(피봉_뒷면)咸平郡 羅山面 黾山里盧永▣(源)(簡紙)春間拜別之懷, 隨昨恒切, 一雁傳書, 披玩再三, 感荷無比. 謹未審淸和僉體候連衛萬寧, 寶覃均安否.並仰溸區區, 不任勞祝. 族從等省狀印昔, 而惟幸渾門之無驚耳. 就拱惟我先壇義補事, 爲子孫爲先事實是當然之事也. 如我殘門夥多之義捐募貸之, 故去三月之行, 鄙門之形便査實一一稟告于 貴家之僉座矣. 示意中貳斗落代壹百貳拾圓云云, 是何故乎? 鄙等那時以六拾圓金額措處賜諾之意爲料而其額条, 如此窮節, 不勝一綿之力. 故帶推沒數持參爲計, 而 貴宗議擧員送之, 期於了刷, 無至起弊之地云云. 此義可謂恐生空費也. 自黾山門中言之則, 子孫之生活推世名, 然諸般困難, 不可成言, 何暇有意於爲先之道乎?但爲愧赦, 自歎自歎耳. 餘惟冀貴宗之處分. 謹不備謝禮.乙亥四月念五日, 族從 仁澤, 璟源, 永源 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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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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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府 大正町 一一二番地盧 兄 軫永 氏[消印: 全南·長城 13.7.24 ][消印: 全南·長城 13. 7. 2?](피봉_뒷면)長城郡 北上面 鈤峴里金龍植氏方梁會得敬.(簡紙)日谷在天亡耶. 如是以間縮, 瞻悵有倍於他時. 謹不審春府丈, 隆老氣力對時康寧, 曁侍中體度益護萬重, 渾眷濟濟平善, 旣深仰祝. 弟狀今方滯在于長城郡金龍植氏家, 而送了夏日, 不家食情怳, 姑依前樣子, 他無可喩者耳. 就兄我間年來事, 鄙之累度所向意表出, 於不義中不啻, 亦出於不信之誼. 故到今慨難而已. 于先欲爲仰煩, 第營事年來幾多. 明日與 貴族永洙氏等覽于各勝地, 而占得於何處何山耶. 數三處占得料,想必存矣. 第推想時局, 于此營事,促進歲月也. 倘無轉眄無暇之日乎. 更爲勵志精慮, 無至於敀虛狼貝之地, 至祝至祝. 前者所送, 付之一笑, 更爲一者奉握, 是所祝企, 而未知 尊貴之意(同紙內 小字 書簡)一別修鬲之霜, 繼綣之意, 何日可已. 欲探高燭査, 若白雲深處, 只自咄悵矣. 謂外承惠感下不息耳.謹詢庚炎, 旅中侍體上淸珍, 而家音種種所承而亦得勻禧否. 慰溸之至. 弟省候粗保, 而外無足放道耳. 就近間看得幾據佳山麗水而占了幾個處利之過乎?願聞耳. 鄙則近來經於宗事, 無由淂到於山水之間, 悶悶耳. 那時更有光接引期乎. 企企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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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보성향교(寶城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寶城鄕校 羅州鄕校 寶城郡鄕校印(4.9×4.5), 寶城郡□□典校之章(2.5×2.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5년 보성향교(寶城鄕校)에서 열부(烈婦) 장씨(張氏)의 행적을 알리며 포양(褒揚)의 은전을 받을 수 있도록 나주향교(羅州鄕校)에서 답문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통문 1965년 보성향교(寶城鄕校)에서 나주향교(羅州鄕校)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보성의 열부(烈婦) 장씨(張氏)의 실제 행적에 대해 알리니 나주향교의 여러 집사(執事)께서 특별히 살펴보고 천양(闡揚)하는 답문(答文)을 보내달라는 요지이다. 보성향교에서 알리고자 하는 장씨는 문강공(文康公)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의 4남 안익지(安益之, 1608~1687) 호 야옹공(野翁公)의 부인으로, 충의공(忠毅公) 장윤(張潤)의 딸이다. 장부인이 시집갔을 때 야옹공이 먼저 풍창(風瘡)을 앓아 농이 온몸에 흐를 정도였는데, 치료를 위해 별도의 방에서 동거하며 더러워진 옷과 이불을 몸소 세탁하여 집안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였고, 밤낮으로 약을 달였으며, 오래도록 효험이 없이 마침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장부인은 허벅지 살을 조금 베어 죽에 타서 먹게 하여 조금 효험을 보았고, 마침내 양쪽 허벅지가 뼈만 앙상해졌을 때 공이 완쾌되어 향년 83세를 누렸다고 한다. 부인이 죽어서 남편을 따른 경우는 있어도 돼지나 양의 살을 베는 것처럼 자신의 살을 베어서 남편의 병을 낫게 하였으니, 하늘을 감격시킨 이 행위는 옛 열부라도 드문 경우라고 평가하였다. 집안의 명성이 중간에 미약해져서 수백 년 동안 포양(褒揚)의 은전을 받지 못했으므로 유감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장씨 부인의 실제 행적을 대략 써서 진달하니, 첨존(僉尊)께서 열부의 탁월함을 생각하여 다시 무너진 윤강(倫綱)을 붙들어서 천양하는 답문을 보내주기를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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