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봉(草峰) 유공(劉公) 묘명 –계사년(1953)- 草峰劉公墓銘【癸巳】 유씨는 대성이라 劉爲大姓천하에 두루 있으니 遍于天下한나라 때 크게 번창하여 漢時大昌중국의 황제가 되었지 帝于華夏태상황제의 太上皇帝40세손인 四十世孫문양공 전은 文襄公荃송나라에서 고려로 왔다네 自宋而鮮누구와 동쪽으로 건너왔는가 孰與東渡칠학사가 함께 왔네33) 七學士同거타군(거창(居昌))에 거처하였으니 居居佗郡고려 문종 때였네 時麗文宗8세를 내려와 승비는 八傳承備복야의 높은 관직에 올랐네 僕射官崇3세를 내려와 창은 三世而敞시호가 문희공으로 謚文僖公다섯 고을의 사우에서 五郡祠宇성대하게 제향을 받들고 俎豆其豊강릉을 본관으로 삼았으니 江陵爲貫공훈으로 봉해져서라네34) 以其勳封3세를 내려와 한량은 三傳漢良무장 현감에 제수되었고 授官茂長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龍蛇之亂진양(진주(晉州))에서 순절하였으니 殉節晉陽고창 검암사에서 향사(享祀)하였네 享于高敞儉巖之祠2세를 내려와 덕부는 再傳德部정읍으로 이주하니 井邑之移원종공신이었네 原從功臣4세를 내려와 학련은 四傳鶴連아들 태우를 두었는데 有子泰祐고부에서 역병을 피해 古阜避疫오곡의 초장으로 옮겼으니 梧谷草庄자손이 여기에 거처를 정했네 子孫奠宅조정에서 벼슬을 내리니 天爵有隕통정대부의 노직이었네 通政老職4세를 내려와 제윤은 四傳濟允당호를 초봉이라 지으니 草峰扁室초명은 윤갑이고 初諱允甲자방은 자라네 子房表德부친은 만진이니 考維萬鎭대를 이어 문학이 있었고 繼世文學모친은 개성 왕씨로 妣開城王부친은 소택이네 其父昭澤공은 순조 公生純祖갑자년(1804, 순조4) 9월에 태어났으니 甲子九月나면서부터 뛰어난 자질 지녀 生有異質어버이 섬기는 법 알았지 知事親法학문할 나이가 되어 及其就學《효경》을 숙독하였고 熟讀孝經부친이 중병 앓을 적에는 大人沈疾근심하는 기색 드러냈지 憂色于形뒤뜰에 제단 쌓아 築壇後園하늘과 귀신에게 빌었고 祝天禱神끝내 큰 변고를 당해서는 竟當大故하늘이 무너진 듯하였네 若崩其天가슴 치고 곡하며 애도하느라 擗哭攀號얼굴이 새카맣게 되니 深墨其顔상을 견디지 못할까 염려하여 慮不勝喪도리어 자신 책망하였네 反責其身눈물 흘리며 통곡하면서 痛哭泣下예가에게 묻기를 問於禮家"삼년상의 제도는 三年之制박정하지 않은가" 其不薄耶예가가 안타까워하며 禮家憮然위로하고 답하기를 慰而答云"효성스럽구나, 그대의 말이여 孝哉汝言그러나 예는 따라야 한다네" 然禮當遵후에 모친상을 당해서도 後丁妣憂부친상과 똑같이 하였지 前喪一轍평생토록 어버이의 기일 만날 때면 平生每値考妣夫日초상을 치를 때처럼 슬퍼하여 哀同袓括살아계실 때 같이 지극히 삼갔네 致如在恪제사 받들 적에는 凡於奉祀제수(祭需) 넉넉하고 깨끗하였으니 豊潔粢牲죽은 이 섬기고 산 사람 후히 모심에 事死厚生깊이 바른 도를 얻었다고 하겠네 深得乎程늦도록 아들 보지 못해 嗣續遲遲근심으로 애태웠으니 憂心惸惸후사 없는 것이 불효35)라는 無後不孝성인의 가르침 경계할 만하네 聖訓可驚세 아들을 낳으니 三龍矯矯꿈에서 선조의 영령에 감응한 것이리라36) 夢感先靈순임금이 종신토록 부모 사모한 일37) 舜終身慕공에게서 다시 보았으니 於公復覿향리에 추천이 있어 鄕有剡薦여론이 일제히 일어났네 輿論齊發공은 걸맞은 사람 아니라며 公謂非人추천장 손으로 찢었으니 手裂狀紙자처한 바를 논하면 論其自處진실로 또한 고매한 선비로다 誠亦高士초장동에 草庄之洞정려가 내리지 않는 것은 不表宅里서울과 지방의 유사가 京鄕有司불민하여 이리 된 것이로다 不敏致此천수 누리고 돌아가시니 考終正寢회갑의 다음 해이고 周甲之翼거마산 巨馬之山효죽 기슭 孝竹之麓병좌(丙坐) 언덕이 負丙之原공의 묘역이로다 惟公隧域공의 현량한 부인은 公之良配전주 이씨로 全州之李정수의 따님이니 正壽之女부덕이 아름다웠지 婦德克美공은 비록 없었으나 公雖沒矣아들들 모두 가르치고 畢敎諸子8년 뒤에 돌아가셨으니 後八年沒때는 임신년(1872, 고종9)이로다 玄黙涒灘공의 왼편에 합장하였는데 墓祔公左오곡으로 이장하였도다 梧谷緬遷아들 세 사람은 諸子三人권, 영, 로이니 曰權英魯세 '병' 자를 보태면 加以三秉항렬의 순서를 볼 수 있네 行序是覩공, 학, 형, 성과 孔鶴炯星창, 대 여섯 사람은 閶大六人손자 항렬로 '열' 자를 쓰니 孫行以烈이렇게 해서 순서를 볼 수 있네 如是而觀이름 위에 '재' 자를 보탠 加載名上증손이 16인인데 曾孫十六한 사람이 쌍둥이를 낳았네 一龍二佰순, 동이 연달아 태어나고 淳東連茁원, 금이 재롱을 부리고 元金繞膝관, 현이 나란히 서 있으며 冠現比立그 다음은 남, 두이고 其次南斗그 다음은 만, 철이며 其次晩喆근, 근, 숙, 문 등 瑾根淑文창대하여 다 남기지 못하네 昌大未畢아, 모든 행실의 근원인 효는 嗚呼 百行之源공이 간직한 것이니 公之所存이는 옛날에도 此在古先명철한 임금이 중시했도다 明王重焉선을 표장하여 旌淑彰善풍성을 수립했건만 樹之風聲후세는 경시하여 後世輕之치화가 밝혀지지 않았도다 治化不明후손이 한으로 여기다가 后孫爲恨묘소를 이장하면서 有事佳城열 자 비석으로 十尺貞珉공의 실정을 드러내려 하기에 表公實情학렬과 재순이 鶴烈載淳나에게 명을 지어 달라 부탁하였네 屬余爲銘초야에 있다 하여 莫曰草野말이 가볍고 사람이 못났다 하지 말라 言輕人䢇자고로 사론은 自古士論또한 중히 여길 만하도다 亦足爲重 劉爲大姓, 遍于天下。漢時大昌, 帝于華夏。太上皇帝, 四十世孫。文襄公荃, 自宋而鮮。孰與東渡? 七學士同。居居佗郡, 時麗文宗。八傳承備, 僕射官崇。三世而敞, 謚文僖公。五郡祠宇, 俎豆其豊。江陵爲貫, 以其勳封。三傳漢良, 授官茂長。龍蛇之亂, 殉節晉陽。享于高敞儉巖之祠。再傳德部, 井邑之移, 原從功臣。四傳鶴連, 有子泰祐, 古阜避疫。梧谷草庄, 子孫奠宅。天爵有隕, 通政老職。四傳濟允, 草峰扁室。初諱允甲, 子房表德。考維萬鎭, 繼世文學。妣開城王, 其父昭澤。公生純祖, 甲子九月。生有異質, 知事親法。及其就學, 熟讀《孝經》。大人沈疾, 憂色于形。築壇後園, 祝天禱神。竟當大故, 若崩其天。擗哭攀號, 深墨其顔。慮不勝喪, 反責其身。痛哭泣下, 問於禮家: "三年之制, 其不薄耶?" 禮家憮然, 慰而答云: "孝哉汝言! 然禮當遵。" 後丁妣憂, 前喪一轍。平生每値考妣夫日, 哀同袓括, 致如在恪。凡於奉祀, 豊潔粢牲。事死厚生, 深得乎程。嗣續遲遲, 憂心惸惸。無後不孝, 聖訓可驚。三龍矯矯, 夢咸*(感)先靈。舜終身慕, 於公復覿。鄕有剡薦, 輿論齊發。公謂非人, 手裂狀紙, 論其自處, 誠亦高士。草庄之洞, 不表宅里, 京鄕有司, 不敏致此。考終正寢, 周甲之翼。巨馬之山, 孝竹之麓。負丙之原, 惟公隧域。公之良配, 全州之李。正壽之女, 婦德克美。公雖沒矣, 畢敎諸子。後八年沒, 玄黓涒灘。墓祔公左, 梧谷緬遷。諸子三人, 曰權英魯。加以三秉, 行序是覩。孔、鶴、炯、星, 閶、大六人。孫行以烈, 如是而觀。加載名上, 曾孫十六。一龍二佰, 淳、東連茁。元、金繞膝, 冠、現比立。其次南、斗, 其次晩、喆。瑾、根、淑、文, 昌大未畢。嗚呼! 百行之源, 公之所存。此在古先, 明王重焉。旌淑彰善, 樹之風聲。後世輕之, 治化不明。后孫爲恨, 有事佳城。十尺貞珉, 表公實情。鶴烈、載淳, 屬余爲銘。莫曰草野, 言輕人䢇。自古士論, 亦足爲重。 송나라에서……왔네:칠학사는 임팔급(林八及), 설인검(薛仁儉), 허동(許董), 송규(宋奎), 최호(崔沍), 권지기(權之奇), 공덕수(孔德狩)를 말한다. 송나라 신종(神宗) 때 유창이 병부 상서(兵部尙書)로 있으면서 올린 각종 간언(諫言)이 간신들의 모함을 입자, "진실한 직언을 용납지 않는 이 땅에서는 더 머물 수 없다" 하고, 평소 뜻을 같이하던 칠학사와 함께 1082년(문종36)에 바다를 건너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에 이르렀다. 공훈으로 봉해져서라네:유창은 조선 개국공신 2등에 녹훈(錄勳)되고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옥천은 강원도 우계(羽溪)의 별칭인 옥당(玉堂)에서 따온 듯한데, 강릉의 속현(屬縣)이다. 후사……불효:《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불효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그중에 후사를 잇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불효이다.[不孝有三 無後爲大]"라고 하였다. 꿈에서……것이리라 원문은 '夢咸先靈'이다. 문맥에 근거하여 '咸'을 '感'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순임금이……일:《맹자》 〈만장 상〉에 "큰 효자는 평생 부모를 사모하는 법이니, 나이 50이 되어도 부모를 사모한 경우를 나는 위대한 순에게서 보았다.[大孝終身慕父母 五十而慕者 予於大舜見之矣]"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