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령 김씨 문계안의 서문 【신유년(1921)】 扶寧 金氏門契案序 【辛酉】 《시경》에 "부모가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한다.11)"라고 하였으니, 뽕나무와 가래나무조차 선조의 손때가 남아 있다 하여 오히려 공경하였는데, 하물며 선조의 넋이 의탁하고 있는 묘소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것으로 봉분을 하지 않고 나무를 심지 않는 것은 태고의 풍속이 됨을 면치 못하고 무덤가의 나무를 베지 않는 것이 바로 선왕의 제도가 됨을 알 수 있다.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이후로 우리 왕조에 이르러 더욱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에 마음을 다하여 이슬과 서리가 내리는 봄ㆍ가을과 세시(歲時)ㆍ속절(俗節)마다 가까이로는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멀게는 시조까지 미루어서, 성묘하는 의식과 분향하는 제사를 때에 맞게 하고 공경하게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것은 진실로 천리와 인정에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내가 생각하기에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제사를 지내는 예법은 제왕가(帝王家)와 다르니 체협(禘祫)12)은 감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니고, 제사는 친진(親盡)13)하지 않았더라도 때로 기피하는 경우가 있으니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는 오히려 그만 둘 수 있다. 그러나 종친 관계가 이미 끝나고, 묘소에서 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끝내 조상에 대한 마음을 드러낼 곳이 없게 된다. 이로 보면 친진에 1년에 한 번 묘소에서 제사지내는 것[歲一祭]이 예의 중도에 맞는 제도가 되니, 더욱 정성을 다 해야 한다. 그러나 매번 보건대, 잔약한 자손과 가난한 종족의 집안은 해마다 여러 신위에 올리는 제물을 공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니, 중유(仲由)가 예를 행할 수 없다고 탄식하고14), 맹자가 기뻐할 수 없다고 훈계한 것15)은 진실로 까닭이 있었다.종친의 영재인 인술(仁述)이 이러한 것을 근심하여 여러 친족과 의론하여 약간의 자본을 모으고 하나의 계를 설립하여 먼 훗날을 경영할 계책을 도모하면서 나에게 한마디 말을 권면해 줄 것을 청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천하의 일은 비록 진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성립될 수 없다16) 하더라도 사물이 없으면 또한 그 진실함을 볼 수 없다. 지금 제사로 논하면 재계(齋戒)와 애정, 정성은 진실함이고, 제수 물품[牲羞]과 제기[籩豆]는 사물이다. 한낱 사물만 있고 진실함이 없다면 진실함도 또한 헛된 것이고, 만약 사물이 없다면 비록 진실함이 있다 하더라도 어디에 담기겠으며, 선조가 어디에서 흠향하겠는가. 그렇다면 사물과 진실함 둘 다 지극하여 어느 한 가지도 폐해서는 안 되는 것이 참으로 바꿀 수 없는 완전한 의론이며, 그 중에서 본말과 경중을 말한다면 《주역》에 "동쪽 이웃집에서 소를 잡아 성대하게 제사지내는 것이 서쪽 이웃집에서 검소하게 제사를 지내는 것만 못하다.17)"라는 경계가 있으니, 이것이 또 마땅히 살펴야 할 바이다. 만약에 혹 서쪽 이웃의 검소한 제물마저 없게 된다면 효자와 효손의 마음이 다시 어떠하겠는가? 나는 그래서 한마디 말로 결단하여 말하기를, "무릇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되 사물에 힘을 다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진실함이 없는 것이다."라고 할 것이니, 그대는 이러한 데에서 거의 벗어났음을 알겠다.또 생각하건대, 사람이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에 진실함을 다하는 것은 내 몸이 태어난 근본을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자기 몸을 공경하지 않으면 이는 근본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18)"라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말한다면 몸을 해치고 근본을 상하게 한 것이 죄가 될 만함은 일찍이 제사를 지내지 않고 근본을 잊는 것보다 심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내가 바라건대, 이 계안에 들어간 사람은 제물을 잘 갖추어 해마다 선조의 묘소에 제사지내는 것으로 후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고 여기지 말고 반드시 '자신을 공경하라'는 성인의 가르침에 종사하여 간단한 말과 걸음걸이 등의 작은 언행부터 몸을 세우고 세상일에 응대하는 등의 큰일에 이르기까지 만약 선왕의 도와 옛 현철의 법규에 어긋난 점이 있거든 전전긍긍하여 감히 잠시라도 거기에 거처하지 않음으로써 선조에게 욕됨이 없기를 구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몸을 공경함이 클 것이고, 선조를 선양한 초손(肖孫)이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선조의 묘소를 공경히 닦고 때마다 제사를 경건히 받드는 것은 다만 인사의 한 가지 소략한 항목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어찌 이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문으로 인해 이렇게 말하여 책머리에 쓰게 한다. 《詩》云: "維桑與梓, 必恭敬止. " 桑梓以祖先手澤之存, 而猶加敬焉, 況於祖先體魄攸託之丘壟乎? 是知不封不樹, 不免爲荒古之俗, 而不斬丘木, 乃得爲先王之制也. 自漢、唐以降, 逮夫我朝, 尤盡情於墓祭, 春露秋霜, 歲時俗節, 近自祖禰, 遠推其所自, 瞻掃之儀, 香苾之奉, 罔不惟時惟虔, 是固天理人情之不容已者也. 余謂士夫家祭禮, 與帝王異, 禘祫非所敢, 祭則親未盡而有時忌者, 墓祭猶可已也. 宗已毁而墓又不祭, 則終無所用其情也, 是則親盡歲一祭, 爲禮之中制, 而尤當盡誠者也. 然每見人家孱孫貧族, 多有不給於每歲累位之薦者, 仲由之歎無以爲禮, 孟子之訓不可爲悅, 良有以也. 宗英仁述, 爲是之憂, 議與諸族, 合若干資, 立一契, 以圖經遠計, 請余一言以勖之. 余惟天下之事, 雖不誠無物, 而無物亦無以見其誠. 今以祭祀論之, 齋戒愛慤, 其誠也; 牲羞籩豆, 其物也. 徒有其物而無其誠, 則誠亦虛矣, 若無其物焉, 則雖有誠, 何所寓乎? 而祖先安所享乎? 然則物、誠兩至, 不可偏廢者, 固不易之完論, 就中而語本末輕重, 則《易》有"東鄰殺牛, 不如西家礿"之戒, 此又在所當審. 若或幷與西礿之物而闕焉, 則孝子慈孫之心, 復如何哉? 余故斷之以一言曰: "凡祭先而不盡力於物者, 必其無誠者也. " 而子於此, 庶知其免矣夫. 抑又念之, 人之所以盡誠於祭先者, 爲吾身所生之根本也. 故孔子曰: "不能敬其身, 是傷其本. " 由此言之, 戕身傷本之爲可罪, 未嘗不甚於不祀而忘本也. 吾願入此契者, 勿以克備粢牲, 歲祀先墓, 作後承之能事, 更須從事乎聖人敬身之訓, 自片言尺步之細, 以至立身酬世之巨, 苟有背於先王之道、前哲之規者, 兢兢然不敢須臾處焉, 以求無忝乎所生, 則其爲敬身也大矣, 而可謂揚先之肖孫也. 其在敬修丘壟, 虔奉蒸嘗, 特不過爲人事之一疏節爾, 盍於是勉乎哉? 因序此語, 俾書其卷首云. 부모가 …… 공경한다 《시경》 〈소아(小雅) 소반(小弁)〉에 보인다. 체협(禘祫) 조상의 신주를 한곳에 모셔 놓고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친진(親盡) 제사를 지내는 대수(代數)가 다 된 것을 이르는 것으로 임금은 5대, 일반인은 4대 조상까지 제사를 지낸다. 중유(仲由)가 …… 탄식하고 중유는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의 이름으로,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에 자로(子路)가 "가난하게 사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구나.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에는 제대로 봉양할 수가 없고, 돌아가시고 나서는 제대로 예를 행할 수가 없다.〔傷哉貧也, 生無以爲養, 死無以爲禮.〕"라며 탄식하였다. 맹자가 …… 것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맹자가 노(魯)나라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제나라로 돌아올 때 충우(充虞)가 맹자에게 "모친상에 관목(棺木)이 너무 아름다운 듯하였다."라고 말하자, 맹자가 "법 제도상 할 수 없으면 마음이 기뻐할 수 없고, 재력이 없으면 마음이 기뻐할 수 없다. 할 수 있고 재력이 있으면 옛사람들이 모두 사용했으니, 내 어찌 홀로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不得, 不可以爲悅, 無財, 不可以爲悅. 得之爲有財, 古之人皆用之, 吾何爲獨不然.〕"라고 하였다. 진실하지 …… 없다 《중용장구》 제25장에 "진실함은 사물의 시종을 이루는 것이니, 진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성립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진실함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다.〔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是故君子誠之爲貴.〕"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말이다. 동쪽 …… 못하다 《주역》 〈기제괘(旣濟卦) 구오(九五)〉에 "동쪽 이웃집에서 소를 잡아 성대하게 제사 지내는 것이 서쪽 이웃집에서 의 검소하게 제사를 지내어 실제로 그 복을 받는 것만 못하다.〔東鄰殺牛, 不如西鄰之禴祭, 實受其福.〕"라는 구절이 보인다. 자기 …… 것이다 《예기(禮記)》 〈애공문(哀公問)〉에 "군자는 공경하지 않음이 없지만 몸을 공경하는 것이 큰일이 된다. 몸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가지이니,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몸을 공경하지 못하면 이것은 어버이를 상하게 하는 것이요, 그 어버이를 상하게 하는 것은 그 뿌리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 뿌리를 상하게 하면 가지도 따라서 죽는다.〔君子無不敬也, 敬身爲大. 身也者, 親之枝也, 敢不敬與? 不能敬其身, 是傷其親. 傷其親, 是傷其本. 傷其本, 枝從而亡.〕"라는 공자의 말이 보인다.